살인 편지
설라리 젠틸 지음, 최주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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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이제 무더위를 날려줄 미스터리 소설의 계절이다. 이 시기에 맞춰 위즈덤하우스에서 미스터리 스릴러 설라리 젠틸의 살인 편지를 출간했다. 이 작품은 소설 속에 또 다른 소설이 들어 있는 액자식 구성으로 현실의 작가 해나와 조언자 리오의 편지, 그리고 해나가 쓰는 추리소설이 번갈아 전개된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바깥과 안을 오가며 하나의 인물을 중심으로 양쪽 세계가 교묘하게 연결되는 과정을 따라가게 된다. 그 속에서 완벽하게 감춰진 트릭과 의심은 충격적인 반전의 결말로 이어진다.



호주에 거주하는 작가 한나는 미국 보스턴을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을 집필하고 있다. 그녀는 현지의 생생한 분위기를 구현하기 위해 보스턴에 사는 리오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세부 묘사와 배경 정보를 보완해나간다. 이 작품은 작가 한나가 쓰고 있는 소설과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편지 교환이 액자식 구조로 전개된다. 리오는 점차 과도하게 개입하며 언젠가부터 그의 편지에는 해나가 쓴 소설 속 살인 사건들이 그대로 발생하고 있다. 해나의 소설 속 리얼한 묘사를 돕기 위하여.



프레디, 케인, 윗, 마리골드는 우연하게 보스턴 공공도서관에서 의문의 비명 사건이 벌어진 그 순간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들은 급속도로 가까워졌으며 다음 날 이 비명 소리가 살인 사건이라고 알게 된다. 케인은 전과자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온 우주가 케인을 살인자로 만들기 위하여 움직이는데 과연 살인이 일어나던 시각에 열람실에 있던 그가 진짜 범인일까? 그러나 마지막에 상상하기 힘든 반전이 일어나는데....


설라리 젠틸의 살인 편지는 읽을 때 방점을 어디에 두고 읽느냐에 따라 컬러가 달라지는 특이한 작품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 소설은 두 가지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나오지만, 현실 인물과 작중의 인물의 이름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 독자는 이 둘을 묘하게 혼동한다. 이는 출판사의 제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원제는 소설 속 소설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번역본은 리오의 편지에 포인트를 두었다. 전자에 방점을 두고 읽는다면 흥미를, 후자는 사회 문제 인식을 얻을 수 있다.



게다가 본문에는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 급 인물이 다섯 명이나 나온다. 이런 장치로 인하여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을 즐기려는 독자뿐만 아니라 작가를 꿈꾸는 이에게 작법서로도 다가온다. 창작 활동을 하기 전 인물 설정, 자료 조사, 배경 묘사, 피드백 등등 많은 부분에서 글쓰기하는 방법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소설 속 작품의 맥을 끊는다는 평가를 받는 리오의 피드백 편지를 통해서 가장 많이 알 수 있다. 다른 작가의 방식을 엿볼 수 있는 기회랄까? 



먼저 흥미를 위하여 사건에 초점을 맞추었을 때 인상 깊었던 점을 살펴보자. 저자 설라리 젠틸은 살인 편지에서 강한 흥미 유발을 위하여 첫 챕터에 사중 구조로 시작하였다. 첫 번째는 작품 속 현실 작가 해나가 이 모든 것을 쓰고 있다는 것, 두 번째는 그녀의 작품 속 작가인 프레디의 현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녀가 쓰고 있는 작품으로. 여기에 리오의 피드백과 작품 속 저자가 오늘 범인과 처음으로 커피를 마셨다는 멘트까지. 독자는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서부터 허구인지 첫 챕터부터 헷갈리기 시작한다. 



심지어 등장인물들은 해나가 현실에서 차용하였으며 그 과정을 프레디가 답습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인하여 독자는 해나와 프레디를 헷갈리기 시작하는 것이 이 작품의 묘미이다. 이것을 위한 또 다른 장치가 현실의 리오와 작품 속 리오이다. 심지어 리오는 이름조차 동일하다. 이런 이유로 이 작품이 해나의 소설인지 프레디의 현실인지 모호해져 독자의 긴장도는 배가 된다. 개인적으로 이 장치 덕분에 수많은 상에 노미네이트되고 수상을 한 것이 아닐까 한다.


두 번째로 한국 출판사인 위즈덤 하우스에서 초점을 맞춘 리오의 편지에 초점을 맞추면 이 작품은 단순한 미스터리 스릴러물이 아니라 공포물에 가까워진다. 자신의 꿈을 투영하여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을 우리는 흔히 롤 모델, 팬심으로 빠지는 것을 우상이라고 한다. 작중에 등장하는 현실 리오의 모습이다. 리오의 직업은 출판사에 투고하였을 때 언제나 거절당하는 포지션에 있는 작가이다. 반면 해나는 이미 상까지 받은 인물이기에 리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다.


그는 처음엔 단순한 팬심으로 해나의 작품을 돕기 위하여 피드백을 보낸다. 헤나는 호주에서 보스턴을 배경으로 작품을 쓰고 있었고, 그는 보스턴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보낸 피드백 내용은 보스턴의 배경, 미국과 호주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다른 점, 해나가 글을 쓸 때 놓쳤던 부분 등이다. 완결도 나지 않은 책의 각 챕터를 보낼 정도면 둘 사이에 이미 친분이 있었다는 것을 알기에 즉, 매우 순수한 팬으로서의 건강한 교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그가 무너져 그녀의 작품을 좌지우지하려고 하는 건 출판사에서 거절을 당한 후이다. 즉, 이전까지는 나긋나긋한 봄과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제 한겨울의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기이한 상황이 연출되기 시작한다. 그 결과 해나의 작품 속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이 그가 사는 곳에서 그대로, 우연히 발생한다. 해나는 이 사진들이 하나둘씩 쌓이면서 결국 리오의 편지를 증거로 FBI에 신고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런 소설에서 당연하다는 듯 FBI는 그를 놓치고 그는 호주로 입국한다.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설라리 젠틸의 살인 편지는 독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읽힌다. 사건 중심으로 읽으면 치밀한 트릭과 반전의 재미가, 리오의 편지에 주목하면 집착과 감시가 만들어내는 현실 공포를 느낄 수 있다. 흔히 리오의 편지는 타 작가에 대한 과잉 참견이어서 읽기 불편하다는 평이 있지만 사실은 그 광잉이 그의 정신이 무너져 내림과 연결되고, 작품 속 트릭을 배가 시킨다는 것을 알면 오히려 저자의 센스에 감탄할 것이다. 더운 무더위를 잊고 싶다면 이 작품을 추천한다.


#살인편지 #설라리젠틸 #미스터리스릴러 #위즈덤하우스 #여름소설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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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의 남자들 세트 - 전2권 -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 클레오파트라의 남자들
윌리엄 셰익스피어 외 지음, 김연수 옮김, 안지희 감수 / 히스토리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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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클레오파트라는 흔히 요부, 희생자, 혹은 사랑에 눈먼 여왕으로 소비된다. 그러나 조지 버나드 쇼의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를 함께 엮은 클레오파트라의 남자들 세트를 읽으면 전혀 다른 인물이 드러난다. 두 작품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녀를 그리지만, 공통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인간적인 존재로 묘사한다. 그녀의 사랑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전략이었거나 열망이라는 감정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불완전한 사랑은 이집트와 로마의 운명을 바꾸었다.



두 작품의 클레오파트라는 같은 인물이지만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버나드 쇼의 그녀는 성장 중인 소녀이며, 권력에 대한 본능적 직감을 가진 전략가다. 반면 셰익스피어의 그녀는 이미 왕권을 손에 쥐었으나, 사랑에 눈이 멀어 그 손아귀에서 모든 것을 흘려보내고 있는 비극의 여왕이다. 하나는 국가를 세우는 과정을 보여주고, 다른 하나는 국가와 함께 무너지는 모습을 담아낸다. 그러나 둘 다, 그녀가 역사의 관찰 대상이 아니라 서사를 주도하는 주체임을 그리고 있다.



카이사르는 계산적인 통치자이다. 그는 클레오파트라에게 감정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이집트를 다스릴 자격이 있는지를 시험한다. 아이처럼 굴면 여왕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하며 감정 표현까지 통제한다.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는 유모에게 억눌린 열여섯 살 소녀였지만, 카이사르 앞에서는 눈물을 삼키고 명령을 흉내 내며 여왕처럼 행동한다. 반면 안토니우스는 그녀의 감정에 휘말려 정치를 버리고 사랑을 택한다. 한 사람은 여왕으로 만들고 떠나고, 다른 한 사람은 함께 몰락한다.



그러면 왜 같은 사람인데 상대방에 따라 다른 사람처럼 묘사되었을까? 단지 작가의 차이일까? 아니다. 그녀는 시대가 요구한 방식대로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다. 카이사르는 여왕을 원했기에 그녀는 그에게 맞는 여왕이 되었으며, 안토니우스는 여인을 원해서 그녀는 그에게 맞는 여인이 되었다. 정치의 언어를 말하던 그녀는 사랑의 언어로 바뀌었고 목적을 위해 살아가던 존재는 감정에 목숨을  건 존재로 변했다. 이 극적인 변모가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그녀가 그녀라는 인물보다 시대와 욕망이 만든 역할에 가깝기 때문이다.



클레오파트라는 언제나 무대 위에 있었다. 무대는 시대가 만들고 관객인 그녀의 남자들은 그녀에게 그에 걸맞은 연기를 요구했다. 카이사르 앞에서 그녀는 스핑크스처럼 침묵했고, 안토니우스 앞에서는 나약한 여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질의 변화가 아니라 정세의 반영이었다. 로마라는 제국의 파도 속에서 그녀는 끊임없이 중심을 유지하기 위해 흔들려야 했던 존재다. 고정된 인물이 아니라 상황에 반응하는 역할로 존재했기에 그녀는 살아남을 수 있었고, 동시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유동성은 그녀를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해석의 대상으로 만든다. 버나드 쇼는 그녀를 열여섯 소녀로, 셰익스피어는 치명적인 여인으로 그려냈지만, 두 극작가 모두 사실상 동일한 구조를 그리고 있다. 어린 그녀는 아직 체계로부터 자유롭고 감정을 통제하며 외교의 언어를 배워나간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그녀는 통제의 언어를 내려놓고 내면에 귀 기울이며 감정의 파국으로 진입한다. 그녀는 둘로 쪼개진 두 인물이라기보다 한 인물의 전환 구조 안에 존재하는 상이한 시기의 생존 의지이다.



또 다른 차이는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의 시작을 만들어준 인물이다. 그는 그녀를 정치의 언어에 입문시켰고 냉철함과 절제를 요구했다. 카이사르 앞에서의 그녀는 배우가 아닌 학생이었고, 그만큼 성장의 가능성을 가진 미완의 존재였다. 반면 안토니우스는 그녀를 이미 완성된 존재로 대했다. 그 앞에서 그녀는 더 이상 배워야 할 것이 없었다. 오직 사랑하고, 보여주고, 함께 몰락하는 것만이 남아 있었다. 그 차이는 그녀의 본성이 아니, 그녀가 대응해야 했던 관계의 문법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종종 한 인물의 진면목을 찾기 위해 변화를 배제하고, 일관된 성격이나 고유의 기질을 추적하려 한다. 그러나 그녀에게 그런 접근은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인물로 다가오게 만든다. 그녀의 진실은 변하지 않는 본질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형되는 상태에 있다. 시대에 따라, 권력에 따라, 그리고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그녀는 정체성의 고정값이 아닌 유동성의 극단에 놓인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읽어내고, 거기에 맞춰 움직이는 능력으로 생존했고 몰락했다.



클레오파트라는 여왕이면서도 여인이었고, 계산과 감정 사이 줄다리기를 계속한 인물이다. 두 작가는 클레오파트라의 남자들 세트에서 서로 다른 시선으로 그녀를 조명했지만, 공통적으로 드러난 건 단일한 성격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모하는 정체성이었다. 그녀를 희대의 요부로 낙인찍은 건 로마인의 시선이었고, 이후 많은 문학 작품도 그 이미지를 답습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문학 속에 오래 살아남은 이유는 다면성과 불확정성 덕분이었다. 이제는 낙인과 답습을 넘어, 그녀의 진짜 얼굴을 독자가 직접 마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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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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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1904년, 미모 비탈리아니는 왜소증을 가진 채 태어나 조각가인 삼촌 치오 밑에서 착취당하며 자란다. 그는 오르시니 가문의 막내딸 비올라를 만나 처음으로 지식과 가능성을 배운다. 두 사람은 서로를 날게 하고 지탱하겠다고 맹세하지만, 비올라는 열여섯 생일에 강제 약혼 소식을 듣고 자살을 시도한다. 이후 미모는 다른 도시로 팔려가고 그의 재능으로 인해 온갖 고초를 겪는다. 그러나 몇 년 후 미모는 조각가로서 성공하지만, 성장한 비올라와의 관계는 점차 어긋나기 시작한다.



비올라는 남편과 사회에 무시당하며 도도새처럼 자신을 감춰 살아가고, 미모는 파시스트 정권의 조각을 맡으며 정치적 타협에 휩싸인다. 두 사람은 서로의 선택을 비판하며 갈등하지만, 결국 미모는 유대인 친구의 도움 요청을 계기로 정권에 맞서다 투옥된다. 전쟁 후 풀려난 미모는 다시 비올라와 재회하고, 그녀는 국회의원 출마를 선언한다. 그러나 두 오빠는 그녀의 공약을 막기 위해 출마를 저지한다. 비올라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며 끝까지 맞서려 하고 그런 그녀에게 또 다른 장애물이 닥친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그녀를 지키다는 불가능에 도전한 두 사람의 우정을 그리고 있다. 자신의 재능으로 날아보고 싶었던 소년 미모는 신분과 환경에 가로막혔고, 하늘을 날고 싶어 비행기를 만들던 비올라는 귀족 사회 여성이라는 신분에 막혀 답답함을 느끼는 상황에 만났다. 이런 묘한 공통의 상황으로 인하여 이 책은 단순한 우정담이 아니라 시대라는 감옥 속에서 마음속에 샘솟는 꿈을 어떻게 실현하며 존재하고, 기억되는지를 그린 작품이다. 


작품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격동의 이탈리아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다. 귀족 계급과 파시즘 정권의 권력 구조 아래 개인은 쉽게 말소되거나 조작됨을 매우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모순 속에서 미모와 비올라는 서로의 꿈을 지지하며 연대하지만 현실은 그들의 선택을 수없이 좌절시킨다. 각자의 자리에서 마주한 억압은 정치적이면서도 철저히 일상적이며 그 안에서 우정은 개인적 이상을 넘어 생존의 몸부림으로 작동한다.


비올라는 지식과 자유의지를 갖춘 존재로 시대가 허용하지 않는 자율성과 정치의식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오빠들에 의해 통제되고, 남편에게 억압당하며,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한 능력이 됨에도 불구하고 선거 출마를 저지당한다. 비올라는 이런 자신을 도도새에 비유하는데 이는 그런 시대적 구조가 인간의 내면을 어떻게 침식시키는지를 보여준다. 비올라의 결혼으로의 도피를 위한 비행 추락은 단순한 물리적 사건이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사회적 제한에 대한 거부의 결과이다.



그녀의 우뚝 선 여자라는 표현은 침묵을 견딘 이가 더는 침묵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사적 존재가 공적 주체로 전환되는 시점에 선 인물의 의지를 상징한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계속해서 그녀를 시험하며 이 과정은 시대가 개인의 꿈과 목소리를 어떻게 제한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녀는 자기 세계에 갇힌 삶을 넘어 공적 공간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이는 단순한 정치 참여가 아니라 억압된 존재가 시대를 향해 스스로를 주장하는 근본적인 선언이다. 그녀는 발화되지 못한 말들의 총체이자, 억압된 모든 여성의 대리인으로 서 있다.



미모는 예술가로서 성공하지만 그의 성공은 철저히 정치권력의 통제 아래 이루어진다. 그는 유대인 친구의 도움 요청을 통해 파시즘의 실체를 깨닫고 예술가로서의 방향을 전환한다. 이는 단순한 전향이 아니라 자신이 조각하는 존재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전환점이다. 이후 그는 다시는 권력을 위한 조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그와 동시에 감옥에 수감된다. 이 과정은 예술이 권력의 도구가 아니라 기억의 증언이 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듯하다.



단순히 비올라에 대한 애정과 스스로의 성공을 위해 시작한 조각이지만 사회적 고난과 그녀로 인해 나름의 철학을 만들어 가는 그는 급기야 모든 사람의 호기심을 참지 못하게 하는 작품으로 마무리한다. 그를 보면 종종 미켈란젤로가 떠오르는데, 이는 그가 조각을 새기는 것이 아니라, 꺼내는 작업이라 말하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가 돌 속에 이미 존재하는 형상을 해방시키듯 미모 역시 원석 안에 잠든 존재를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그의 조각은 창작이라기보다 구출이며 존재의 기록이다.


이 작품의 묘미는 미모의 회상이 현대에 이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그는 분명 그의 피에타에 큰 비밀을 숨겨 놓았다. 이것을 보는 사람은 묘한 감정에 사로잡혀 결국 수도원은 피에타를 숨겨 놓는다. 그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각국의 석학들이 찾아오지만 작중에서는 여전히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그려진다. 다만, 미모의 죽기 전 마지막 회상을 통하여 인간의 눈으로는 절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을 독자는 깨닫게 되며 그 이유와 비밀에 전율을 일으키게 된다. 덕분에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 여운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특징이 있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그녀를 지키다는 우정을 넘어선 연대, 존재를 위한 몸부림, 구조적 폭력에 대한 저항을 조각이라는 예술 언어로 풀어낸 작품이다. 시대가 꺾은 존재를 예술이 어떻게 복원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그는 너무 순순히 인간을 따랐기에 멸종한 도도새를 살린 조각가로 남는다. 그 방법이 상당히 충격적이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방식에 반기를 들 수 없는 방식으로. 이 책은 아름답지만 존재를 증명할 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우리에게 묻는다.


#그녀를지키다

#장바티스트앙드레아 #열린책들

#장편소설 #프랑스소설 #콩쿠르상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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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문장들 - 흔들리는 이들에게 보내는 다정하지만 단단한 말들
박산호 지음 / 샘터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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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어른의 문장들은 번역가 박산호가 삶의 문장들을 정리한 책이다. 모든 게 처음인 길에서 성숙함 한 스푼 얹은 어른살이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다정한 문장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자기 계발서처럼 목표를 설정하거나 정서적 울림을 강하게 유도하지 않는다. 대신 짧고 단단한 문장을 따라가며 독자가 자기 삶의 흐름을 비춰보게 만든다. 그 과정은 감동보다는 사유에 가깝고, 위로보다는 정돈에 가깝다. 결국 이 책은 특정한 메시지를 주기보다는 독자의 마음을 조용히 비춰주는 거울에 가까운 형태로 작동한다.



박산호의 어른의 문장들은 총 다섯 장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 장은 어른살이의 태도, 관계, 성장, 회복, 행복에 관한 주제를 다룬다. 단단한 어른이 되고 싶어서에서는 거절과 성실, 선택의 태도를, 이상하고 이로운 어른들에서는 관계 안에서의 감수성과 경계를 다룬다. 3장은 부모로서의 시선을 통해 성장의 관찰을, 4장은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중심으로 감각의 회복을 말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실패 이후의 재시작, 도망이라는 선택, 자기 보호의 기술이 중심에 있다. 각 장마다 인용된 문장에 저자의 경험을 덧붙이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이 책의 문장들은 길지 않고 대부분 인용과 사유의 결합 형태를 띤다. 단문 중심의 서술은 일상 속 어느 지점에서든 쉽게 읽히고 멈출 수 있다. 책 전체를 따라 읽기보다 필요한 부분을 골라 보는 방식으로도 충분히 소화된다. 읽다 보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문장을 받아들이게 된다. 저자는 방향을 제시하거나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조용한 책이다. 말을 줄이되 그 안에 생각을 머금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한 다기보다는 독자 스스로의 언어가 떠오르기를 유도하는 흐름으로 정리되어 있다.


박산호의 어른의 문장들은 실천을 강요하지 않는다. 태도를 정리해 주되 그 적용은 전적으로 독자 몫이다. 거절, 성실, 실패와 회복이라는 익숙한 키워드를 다루면서도, 문장과 태도는 반복과 과잉을 피한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말들이지만 이 책 안에서는 조금 더 깊게 다가온다. 미움받을 용기, 지금 당장 행복하자 같은 문장은 자극 없이 전달되며, 독자는 이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태도를 조정해 볼 수 있다. 말보다 말투, 주장보다 맥락이 우선시되는 방식은 읽는 이에게 생각할 시간을 건넨다.


저자의 역할은 이끌기보다는 비추는 쪽에 가깝다. 독자의 삶을 평가하거나 서열화하지 않는다. 대신 저자는 자신이 겪은 일과 읽은 문장을 통해, 나도 그런 적 있다는 태도로 곁에 머무른다. 이로써 책은 위로보다는 혼자 생각할 시간을 제공하는 도구로 작동한다. 관계에 대한 이야기, 양육과 돌봄에 대한 통찰, 감정과 거리 두기에 대한 성찰 모두가 과시 없이 서술된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누군가에게 필요한 말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에 닿아 있는 사람에게만 자연스럽게 읽히는 구조다. 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적합하다.


이 책의 유용성은 명확하다. 문장은 가볍지만 그것이 주는 정돈감은 독서 후에도 오래 남는다. 서술의 긴장이 낮은 대신 반복해서 펼쳐볼 수 있는 안정감이 있다. 특히 긴 글을 읽기 어려운 시기, 복잡한 설명보다는 마음을 두드리는 말이 필요한 순간에 효과적이다. 인생을 바꾸는 책이라기보다는 하루의 균형을 바로잡는 글이다. 복잡한 현실 속에서 사고의 중심을 다시 조정하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은 정리된 언어와 생각의 기본 단위를 건네줄 수 있다. 정보보다 리듬, 감정보다 구조를 전달하는 데 초점이 있다.



어른이라는 단어는 이 책 전반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하지만 이 책이 말하는 어른은 나이와 무관하다. 태도와 시선, 자기 거리 두기와 회복 탄력성에 가까운 개념이다. 책은 이런 어른다움을 특별한 위치로 올리지 않는다. 실수해도 괜찮고, 도망쳐도 괜찮다는 말은 그 자체로 해답이 아니라 여지를 남긴다. 완성형 어른이 되기를 강요하는 대신 미완의 상태에서도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조용히 제안한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누군가를 닮으라고 하지 않고 각자 스스로 다다를 수 있는 방식의 여백을 남긴다.


에세이라는 형식에 기대는 글이 많은 시대다. 이 책은 그 가운데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톤과 구성을 유지한다. 개별 경험에 과도하게 몰입하거나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에서 자신을 비추는 방식은 읽는 이에게도 생각의 거리를 유지하게 만든다. 반복되는 자기 말 걸기보다는 독자가 조용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 이 책의 미덕은 그 조용함이다. 어떤 말을 하고 싶다기보다, 어떤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로 정리된다. 말보다 태도가 오래 남고, 언어보다 맥락이 깊게 스며든다. 


박산호의 어른의 문장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처음인 길 위에서 성숙함 한 스푼을 보태려 애쓰지만, 정작 나이 듦에는 서글픔을 느끼기 쉽다.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젊음만이 좋은 것처럼 떠드는 세상이지만, 오히려 나이 듦 그 자체에 좋은 점이 더 많다고. 여러 이유 가운데 특히 마음을 깊이 울린 말은 오랜 시간 나라는 존재와 함께 살아왔다는 것이었다. 이 문장은 나이 듦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시선으로 다가온다.



목표 지향적인 사회에서 살다 보면 나라는 존재는 자연스레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허탈감에서 비롯된 공허한 우울 속에서도 저자의 말을 곱씹다 보면 가장 좋은 치료제를 이미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바로 오랜 시간 내 곁에 머물러 있던 나라는 존재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내가 오랫동안 돌아봐주지 않았을 뿐이다. 무슨 일이든 오래 하면 익숙해지듯 나라는 존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면이 텅 빈 듯한 순간에도 해결의 실마리는 내 나이만큼 내 옆에 붙어 살아온 나에게 있다.



박산호의 어른의 문장들은 인생을 바꾸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조용히 삶을 정리하고 싶은 순간, 하루의 속도를 늦추고 싶은 사람에게는 의미 있는 책이다. 이 책은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대신 생각할 시간을 만들고 감정을 정리할 틈을 건넨다. 감정은 줄이고, 여백은 넓힌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시작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적합하다. 묻지 않고 조용히 곁에 머무는 책. 그게 어른의 문장들이다. 이를 저자는 흔들리는 이들에게 보내는 다정하지만 단단한 말들이라고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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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왕
마자 멩기스테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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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살만 루슈디가 극찬하고 오펜하이머 제작사가 영화화를 확정한 마자 멩기스테의 역사 소설 그림자 왕은 전쟁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본질은 전쟁이 아니다. 이 작품은 진실을 쥔 자와 기록을 조작하려는 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형태의 전쟁, 즉 기억을 둘러싼 역사 기록 패권 쟁탈전에 가깝다. 누가 이름을 남기고, 누가 잊힐 것인가. 가장 치열한 싸움은 말과 기억, 그리고 존재의 서사를 두고 벌어진다. 그럼 그 장대한 서사의 현장으로 들어가 보자.



1935년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한다. 어린 하녀 히루트는 군 총사령관 키다네의 집에서 일하다 전쟁에 휘말린다. 여성들은 처음에는 식량을 나르고 무기를 나르지만 곧 전투에 직접 참여한다. 황제가 망명하자, 전사들의 사기를 위해 한 농부가 그림자 왕으로 위장돼 세워지고 히루트는 그의 호위병이 된다. 이 과정에서 히루트는 무고한 민간인 학살과 수용소 포로 생활까지 겪으며 전쟁 한복판을 통과해 나간다. 어린 소녀였던 히루트는 점차 이름 없는 전사로 성장하며 스스로 운명을 선택하는 인물로 자리 잡는다.


역사 소설 마자 멩기스테의 그림자 왕은 1935년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전쟁을 단일 사건으로 두고 본다면 작품이 주는 메시지의 크기가 확연하게 줄어든다. 왜냐하면 이것의 이면에는 1895-6년에 벌어졌던 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서의 패배 기록을 지우고 그 위에 승리의 역사를 덧씌우기 위한 심리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 전쟁에서 대외 국가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였으며 향후 국제 사회는 이탈리아에 경제 제재만을 가하게 된다. 그 결과 2차 세계대전의 씨앗으로 작용한다.



이런 기본적인 역사적 배경을 알고, 작품 속에서 몇 가지 포인트를 인지하고 읽는다면 작품이 주는 메시지의 깊이가 다르게 다가온다. 먼저 이 작품 속에는 책 제목을 의미하는 그림자 왕이 엄밀하게 따져 두 명 등장한다. 바로 실제 전쟁 전 실제 황제였던 하일레 셀라시에와 그와 닮아 국민들의 구심점이 되도록 만들어진 가짜 왕. 전자는 기억을 잊은 왕으로 후자는 기억을 지키기 위한 존재로 보이기도 한다. 그럼 왜 굳이 당시의 황제가 책 제목에 부합하는 인물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전쟁 발발 전, 솔로몬 왕과 시바 여왕의 후손이라는 전설을 가져 종교적 정통성과 정치적 절대성이 있었다. 대외적으로도 아프리카 통합과 반제국주의 상징의 아이콘이었다. 그러나 그는 전쟁이 발발하자 영국 망명이라 쓰고 도망이라고 읽는 행위를 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으나 왕국이 붕괴되어 기억의 유령으로 남은 그림자 왕에 불과했다. 이런 위상의 변동은 이후 에티오피아 내전이 발발하는 발판이 되었다.



다음으로 표면적으로 드러난 그림자 왕인 농부 미님의 가짜 황제 만들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깊다. 이들은 도망간 황제를 대신하여 국민을 하나로 묶어줄 구심점이 필요했기에 닮은 이를 황제로 만든다. 이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협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인 공동의 상상과 연결된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과 관계없이 우리 모두가 믿기로 한 허구라는 개념을 작중 주인공들은 전쟁 속에서 뼈저리게 겪었기에 가짜 왕을 내세우게 된 것이다. 


이 작품에는 크게 두 명의 여전사가 나온다. 표면적으로만 읽으면 이 책은 억압받고 멸시받던 여성들의 활약을 다룬 전쟁 소설에 불과하다. 그러나 살만 슈디가 극찬한 내용과 연계한다면 단순히 젠더 갈등보다 훨씬 깊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처음 다룰 여전사는 아스테르이다. 그녀는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부모들끼리의 계산으로 현재 남편과 결혼한 케이스이다. 결혼식 전에 요리사와 도망을 계획했다가 그녀 대신에 요리사가 고초를 겪었을 정도로 저항이 심했다.



첫 날밤을 묘사하는 부분이 꽤 긴 편인데 이 부분에서 작가의 필력(물론 다른 부분에도 많이 드러난다)이 드러난다. 바로 그녀 자리에 에티오피아라는 국가를 대입함과 동시에 첫 날밤의 묘사는 당시 국가와 국민의 고통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스테르는 고귀한 혈통을 지녔기에 당시 당시 공식적으로 황제라는 칭호를 유일하게 사용했던 에티오피아와 흡사하다. 이런 그녀조차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한 남자에게 유린당하다시피 첫 날밤을 보내게 된다.



아스테르 개인의 서사인 강제 결혼, 도망과 저항, 출산, 억압의 종말을 상징하는 아이의 죽음, 그리고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을 지키려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그녀 자리에 에티오피아를 넣어 집단 서사로 바꾸면 강제 합병으로 인한 식민지화, 저항과 전쟁의 실패, 정복의 산물인 식민지 체제, 이후 식민체제의 붕괴로 독립의 조건 달성으로 대비된다. 아스테르의 결혼은 단순한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국가의 상태로 놓게 되면 그녀는 에티오피아라는 국가의 아이콘으로 신화적 상징으로 급부상한다.


마지막으로 작중에서 모든 것을 기억하는 인물인 히루트 이야기이다. 그녀는 살아남은 자이다. 신화로 봉인된 왕도, 죽음으로 상징화된 귀족 여성도 아닌, 육체로 전쟁을 통과한 이름 없는 병사다. 누구의 딸도, 누구의 아내도 아닌 존재로 그녀는 더 이상 대체되지 않는 국가의 현재를 상징한다. 기억과 생존이 그녀 안에 결합되며, 에티오피아는 왕도, 여왕도 아닌 그녀의 이름으로 다시 시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전쟁을 일으켜 역사의 기억을 다시 쓰려 했던 이탈리아에 맞선 싸움의 최종 승자는 히루트가 아니었을까.?



살만 루슈디가 극찬하고 오펜하이머 제작사가 영화화를 확정한 마자 멩기스테의 역사 소설 그림자 왕은 단순한 전쟁 서사가 아니다. 이 작품은 신화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기억이 어떻게 선택되며, 상징이 어떻게 권력을 잃는지를 기록한다. 왕은 돌아왔지만 아무것도 복원하지 못했고, 여전사는 침묵 속에 사라졌으며, 살아남은 병사만이 국가의 현재가 되었다. 이름을 잃은 이들이, 살아남은 자가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마치 현대 에티오피아는 더 이상 왕의 나라가 아니라, 히루트들의 나라라고 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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