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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미술관 - 문학과 역사가 깃든 독일 미술 산책
류신 지음 / 미술문화 / 2024년 9월
평점 :
요즘 문학을 자주 접하면서 미술과 음악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전혀 다른 카테고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서로가 서로에게 녹아 있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작한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를 한창 읽고 있지만 특정 국가에 국한된 것이 아니기에 내용이 포괄적이다. 그러다가 이번에 독일에 국한되어 디깅한 류신 작가의 사색의 미술관 출간 소식에 꼼꼼하게 읽어 보았다. 작가의 이름만 보고 옆 동네인 줄 알고 처음에 잠깐 망설였는데 너무 매혹적인 내용이어서 찾아보니 한국인이었다.

시대적 배경은 신성로마제국이 생긴 962년부터 1987년까지이며 사조로는 로마네스크 양식부터 아방가르드까지이다. 각 챕터마다 각각의 역사적 배경과 사조, 그에 따른 화가와 특징을 비롯하여 그 화가의 작품 해설이 주를 이룬다. 이때 작품 해설을 읽다가 보면 큐레이터를 옆에 두고 있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꽤 다양하게 설명한다. 작품 자체의 스토리, 작가 개인사에 비춘 해석, 시대적 상황에 맞춘 해석, 작품 속 요소 하나하나의 의미 및 비슷한 작품과의 비교까지 다루고 있어 '사색'이라는 말이 이처럼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모든 작가는 모두 독일인이며 모두 읽고 나면 독일의 역사 및 미술사까지 얼개를 맞출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한 가지 단점이라면 익숙하지 않은 작가의 이름들이 많이 나오며 그 이름이 비슷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림을 보면 어디선가 한 번씩은 본 작품이기에 퍼즐 맞추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두 소개해 주고 싶을 정도이지만 여백과 저작권의 문제로 인상 깊었던 몇 가지만 소개한다.
가장 먼저 색연필에 관심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름인 알브레히트 뒤러이다. 그의 이름은 파버카스텔의 수채색연필의 명칭이기도 하다. 그는 독일의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이며 목판화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으로 유명한 것은 참된 수사학의 거울 속 삽화인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풍자 문학의 걸작 바보배의 미루기를 좋아하는 바보 등이 있다. 미루기를 좋아하는 바보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데 바로 타로카드 0번 The Fool 카드의 이미지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대사들로 유명한 독일의 라파엘로 한스 홀바인이다. 아버지, 형, 삼촌, 고모부까지 모두 재능을 타고난 예술가 집안이다. 그는 주로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그가 그린 초상화로는 우신예찬의 저자 에라스무스, 헨리 8세의 사랑놀이에 형장의 이슬이 된 토마스 모어, 독일 상인 게오르크 기제, 헨리 8세, 유클리드 기하학을 강의한 니콜라우스 크라처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하게 사람만 그린 것이 아니라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오브젝트에 심혈을 기울였다.
지구본, 해 시계, 천체의 고도 측정을 위한 반원형 사분면 등은 중세의 신의 시대에서 과학의 시대로의 도래를 알려주고 있다. 한스 홀바인의 경우 새롭게 시도한 것이 몇 가지 있었는데 바로 그림 속 가상 현실로 들어가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방식이나 화가가 자신의 가족을 화폭에 담은 최초의 예술가 가족화를 그린 점 등이 있다. 사실 그는 가족에게는 그다지 좋은 가장은 아니었다. 예술가로서의 부와 명예를 위하여 항상 타국으로 떠돌았으며 결국은 영국에서 흑사병으로 사망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은 예술가라는 마인드를 가진 요제프 보이스이다. 처음 들어보는 예술가인데 독일 낭만주의 회화의 거장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풍경화에 자주 등장하는 '나무와 돌'의 조합을 가장 창조적이며 파격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대적인 인물이기에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작가가 '역경의 동지'로 부르기도 하였다. 그는 조각, 오브제, 설치·행위미술 등 전방위로 활약한 아방가르드 예술가이다. 이런 그의 생각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2차 세계대전이었다.
'7천 그루의 참나무'라는 제목의 프로젝트는 카셀 시 곳곳에 7천 그루의 참나무를 심어 도심을 숲으로 만들겠다는 생태적 행위예술이다. 첫 그루를 보이스가 싶었으며 하나의 나무를 심고 현무암으로 옆에 이정표를 세우면 한 작품인 셈이다. 이때 참나무는 과거의 상처를 청산한 독일의 재생과 부활, 희망과 미래를 상징하며 현무암은 나치, 히틀러, 2차 세게 대전, 유대인 학살 등 자국의 불편한 과거를 상징한다. 결과적으로 도시 하나가 거대한 전시관이 되었으며 시내에 사는 모든 이가 예술가가 된 셈이다.

예술 작품을 볼 때마다 언제나 갑갑했던 부분은 각 국가별 상징성을 알 수 없어 눈으로 뻔히 보면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가령 참나무의 경우 온갖 시련과 고통을 견디고 생존한 독일인 특유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그 이유는 아리안족이 참나무를 신이 선택한 성스러운 나무로 숭배하였기에 그들에게 영혼의 부활과 갱생의 상징으로 각인된 것이라고 한다. 덕분에 그림마다 시대는 달라도 참나무가 그려진 작품이 여럿 눈에 들어왔다.
초록색의 양가성에 관한 부분도 기억에 남았다. 초록색은 보통 편안한 컬러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에서는 기쁨과 환희의 색이며 중세 시대에는 사랑의 출발을, 초록빛 포도 덩굴은 신의 은총과 사랑의 기쁨을 암시한다는 설명을 읽고 나서 그림을 보니 단순한 한 폭의 이미지가 아니라 작가가 형태로 쓴 한 장의 편지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런 초록색도 쓰기에 따라 슬픔과 우울을 나타낼 수도 있음을 각각의 작품으로 비교한 작가의 센스에 매우 감사했다.
류신 작가의 문학과 역사가 깃든 독일 미술 산책 사색의 미술관은 딱딱한 작품 설명이 아닌 사람을 위주로 된 한 국가의 국민성과 그들이 세월에 수긍하거나 저항하는 모습을 깊게 이해하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은 책이다. 책 한 권으로 독일의 각종 예술 사조, 문학, 신화, 역사, 국민의 정서까지 살필 수 있는 교양서적이기에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누구라도 읽으면 도움이 될 책이다. 시야를 넓힐 기회를 얻을 수 있기에 개인적으로 별 다섯 개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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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