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고 - 세계사를 훔친 오류와 우연의 역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글루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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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우리는 흔히 활자로 기록된 역사를 있는 그대로 믿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슈테판 츠바이크의 유작 아메리고에서는 이 믿음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아메리카 대륙에게 자신의 이름을 나누어준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야기를 통하여 고발하고 있다. 그는 세계사를 훔친 오류와 우연의 역사가 어떻게 만들어지며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논리적으로 그리고 있다. 과연 아메리카 땅을 발견한 적도 없는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어쩌다가 그 큰 땅에 명성을 기록했을까?


슈테판 츠바이크의 아메리고는 1000 년 세상의 종말론이 대두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로 인하여 낙원을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1503년 어느 날 알베리쿠스 베스푸치우스라는 사람이 쓴 신세계라는 팸플릿이 도시에 날아든다. 세상 어디에서도 평화를 찾을 수 없던 사람들에게 위의 문구가 적힌 그의 팸플릿은 곧바로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새로운 땅에 대한 소망은 처음에 부와 명예보다는 종교적 염원과 평화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이후 학자들이 모여 새롭게 찾은 땅을 기록하기 위하여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을 수정한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이 땅을 아메리카로 명명한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학교를 세워준 백작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스스럼없이 실제 사건보다는 날조된 내용을 기록한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실제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를 옹호하는 쪽과 베스푸치를 옹호하는 쪽이 모여 이 자료에 대한 진실성 여부를 두고 치열하게 싸운다. 증거를 들이밀면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아메리고는 세계사 이야기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알려진 자료들을 통하여 아메리카라는 이름의 근원을 찾아올라 가는 탐사 기록에 가깝다. 애초에 왜 콜럼버스의 이름을 따서 콜롬비아라고 명명하지 않았는지, 왜 하필이면 아메리고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라고 이름을 지었는지를 하나씩 자료를 통하여 따져간다. 세계사를 훔친 오류와 우연의 역사라는 소제목만 보면 철저히 베스푸치에게 불이익을 논할 것 같은 제목이지만 저자는 철저히 객관적인 시각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1장부터 3장까지는 기존의 항해 역사와 베스푸치의 여행 그리고 아메리카가 탄생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가 여러 곳에 보낸 수많은 보고서 형식의 편지와 일기부터 파헤치는데 그 내용에 오류가 심각하다. 가장 먼저 날짜를 2년씩 조절한 것도 있었으며 많은 이가 자신이 하지도 않은 여행을 언급한 책을 찍어내고 있을 때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야말로 자신의 명성을 위하여 일부러 자료를 조작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보며 혼자서 만족했을 것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4장으로 넘어가면서 아메리카에 대한 논쟁이 시작된다. 철저히 베스푸치를 옹호하는 이들이 그간의 의혹을 잠재우기 위하여 조사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범죄 사실만 더 드러낸다. 반면에 콜럼버스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단순히 베스푸치의 악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가능성까지 제시하면서 의심을 내비친다. 덕분에 그동안 죽음마저 외롭게 맞이해야 했던 콜럼버스의 명성이 다시 부활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이미 당사자들은 하늘의 별이 된지 오래인데 말이다.



5장으로 넘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콜럼버스와 베스푸치와의 대결이 시작되는데 그 과정이 굉장히 코믹하다. 왜냐하면 생전에 당사자들의 관계와 주변인의 관계에서 온도 차이가 현저하게 다름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문제로 재판까지 열리는데 상세한 내용은 책으로 접해보길 추천한다. 여기까지가 실질적인 증거에 의한 츠바이크의 해석이다. 남아 있는 자료는 매우 미흡했고, 말만 분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장에서 저자는 베스푸치 자체를 탐구한다.



마지막 6장에 넘어오면 베스푸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조명한다. 사실, 앞부분이 굉장한 흥미를 끄는 내용이었다면 6장은 독자가 그에게 연민을 느끼고 공감을 하게 만드는 파트였다. 41살에 실직자가 되었고, 집도, 아내도, 자녀도 없는 그가 먹고살기 위하여 찾은 직업이 항해사였다. 물론 처음에는 이름도 없는 한 사람으로 탑승하지만 돌아올 때는 멋진 항해사로 거듭났다. 이후 9년이 지난 후 드디어 가정을 이루었으나 그가 죽을 때는 매우 가난하였다. 



남북 아메리카의 대륙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대단한 명성을 가졌지만 그에게 주어진 것은 가난이 전부였다는 아이러니함을 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역사를 전복시킬 정도의 영향력이 있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자료들을 통하여 심리학적으로 저자는 해석한다. 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그가 쓴 편지 중 일부를 분석하면 그는 매우 성실하고 정직하며 조용한 편이지만, 다른 편지에서는 거짓말쟁이에 명예욕이 넘쳐나며, 사기꾼 기질이 다분하다고 나온다. 그야말로 몸통 하나에 두 명의 사람이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 책은 단순히 한 인물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인간의 욕망이 작용하여 발생한 오류와 우연이 어떻게 대륙의 명칭을 정하고, 한 사람을 역사에 새겨 넣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이 치밀한 탐사를 통하여 우리가 믿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이 때로는 얼마나 불확실한 토대 위에 놓여 있는지를 드러낸다. 세계사를 훔친 오류와 우연의 역사라는 부제는 역사가 늘 진실만을 말해주는 건 아니라는 냉정한 고발이기도 하다.



세계사를 훔친 오류와 우연의 역사를 그린 슈테판 츠바이크의 유작 아메리고는 단순한 전기나 역사 해설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어떻게 조작되고, 반복되며, 어느새 진실이 되어버리는지를 낱낱이 보여준다. 역사는 늘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때로는 실수와 무관심, 그리고 작은 인쇄물 하나가 세계사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그러니 역사를 읽는다는 건 그 허술함을 인정하고도 다시 들여다보려는 태도를 배우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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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드펠 수사의 참회 캐드펠 수사 시리즈 20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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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글로스터의 로버트 백작의 아들 필립은 스티븐 왕의 침입에 아버지인 로버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상황에 눈을 돌린다. 더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필립은 아버지를 배신하고 스티븐 왕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필립의 아래에는 캐드펠의 아들인 올리비에가 있었다. 이 항복 때 자신의 지조를 버린 이들은 그대로 필립의 아래에서 스티븐 왕을 위해 싸웠으나 그렇지 못한 이들은 모두 포로가 되었다. 올리비에도 포로였다.



이때는 포로가 되면 가족이나 그가 충성하던 주인이 돈을 주고 포로에서 해방시켜주는 형식을 취했다. 따라서 모든 포로는 현재 누구에게 붙잡혀 있는지 알리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올리비에의 행방은 묘연했다. 이를 알게 된 캐드펠은 수도원장께 말하고 아들을 찾으러 나선다. 이때 수도원장은 돌아올 날짜를 지키지 않으면 더는 우리 수도회의 사람이 아니라고 못 박는다. 이렇게 도착한 회의장에서 아들의 소식은커녕 살인 사건을 맞이하게 된다. 심지어 가해자로 몰린 사람은 억울한 이브 위고넹이었는데...




<역사적 배경 설명>


모드 왕후가 마틸다 왕비와의 싸움에서 패하고 도망간다. 이때 마틸다 진영의 수장 로버트 오브 글로스터가 포로로 잡혔고, 1141년 말 스티븐과 로버트는 맞교환되며 스티븐 왕이 복권되었다. 곧 조프루아 5세가 노르망디를 침공하면서 마틸다 진영은 잉글랜드에 고립되었고 귀족들은 이탈하기 시작했다. 주화 통제권도 무너져 지역 주교와 영주들이 자체 화폐를 찍는 등 왕권이 극도로 약화되었다. 한편 제프리 드 맨더빌은 수도원을 점거하고 약탈을 일삼다 1144년 전사했다.



1144년 초 조프루아가 루앙에 입성해 노르망디 전역을 장악하고 프랑스 왕의 공인을 받자, 스티븐은 용병과 측근 의존도를 높이며 내전을 이어갔다. 1143년 모드 황후 진영의 핵심 장수 마일즈가 사고사하고, 1145년 스티븐은 패링던을 점령해 마틸다 세력을 서부 전선에서 고립시켰다. 같은 해 말, 글로스터의 로버트의 아들 필립 피츠로버트가 스티븐에게 귀순해 콘월 백작 부부를 생포해 넘겼으나, 스티븐은 명분을 위해 이들을 석방했다. 이에 감명받은 레지널드는 스티븐과 화해했고, 백작 작위를 공식 인정받았다. 


위 역사적 배경은 중세 잉글랜드의 상황을 11권 이후 20권 사이에 있었던 일을 짧게 요약한 것이다.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12세기 영국의 무정부 시기의 역사를 그대로 품도 있어 역사 추리 소설이라고도 한다. 실제 사건과 실제 인물이 그대로 등장하기 때문에 첫 권부터 진득하게 읽기만 하여도 당시의 영국 상황을 모두 알 수 있다. 게다가 이 당시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왕가의 거듭된 배반은 한 치 앞을 모르는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의 싸움은 독자를 더욱 즐겁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캐드펠 수사의 참회에서는 그가 세상을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로 맹세한 이래 가장 큰 위기를 맞게 된다. 바로 아들의 생사를 알 수 없다는 소식 때문이다. 이에 지금까지 모든 사람에게 비밀로 하였던 아들의 존재를 라둘푸스 수도원장에게 털어놓고 올리비에를 찾으러 나선다. 이 과정에서 필립을 만나게 되면서 작품은 캐드펠과 올리비에, 글로스터의 로버트 백작과 필립의 구도로 자리를 잡아간다. 양쪽 다 부자지간이지만 각자의 행동이 매우 달라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달까?



먼저 백작과 필립의 경우에는 아버지의 도움 거부로 인해 스스로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왕을 배반하고 스티븐 아래로 들어간다. 이후 둘은 냉각 상태를 맞이하고 서로에게 단 한 마디도 건네지 않은 채 완전히 멀어진다. 그런데 캐드펠은 다르다. 단 하루도 아들과 함께하지 못했지만 그 아들을 위해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고 기꺼이 수도복을 벗을 각오를 한다. 이를 지켜본 필립은 자신에게는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아버지라는 개념과 처음 마주하게 된다. 그때부터 이야기는 단순한 수사극을 벗어나 전쟁과 혈연, 믿음과 후회가 얽힌 묵직한 이야기로 넘어한다.



범인은 마지막에 겨우 나타날 정도로 풀기 어려운 살인은 일어났고, 이브는 포로가 되었고, 올리비에는 실종되었다. 이번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권력을 위하여 싸움을 벌이는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나쁜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모두 이해가 되며 안쓰럽기 그지없을 뿐이다. 심지어 살인자까지도. 게다가 단순한 배신자인 줄 알았던 필립에게는 생각보다 큰 대의가 존재했었기에 어떤 면에서는 이번 20권에서 가장 멋진 인물로 기억된다. 로맨스 소설의 남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래서 이야기가 풀어나갈수록 독자의 감정 이입은 더욱 커지고 모두가 필립의 편에 서서 그를 응원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역사 추리 소설답게 모든 스토리를 알고 있지만 작가가 끼워 넣은 모종의 사건들과 그녀의 필력 덕분에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지는 아이러니를 느낀다. 과연 캐드펠은 이번 사건에서 아들도, 필립도, 이브도 구하고, 범인도 잡은 후 무사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마지막 권이기에 작가는 그를 다시 속세로 돌려보냈을까?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 20권 캐드펠 수사의 참회는 지금까지 읽었던 열한 권의 이야기와 달리 정말 마음을 졸이면서 읽었다. 가운데 건너뛴 이야기들이 궁금하여 이번에 예스24에서 주간 우수 리뷰로 선정되어 받은 포인트에 조금 더 보태서 바로 캐드펠 수사 시리즈 로얄 컴플리트 에디션 박스 세트를 구매했다. 나머지 여덟 권은 조금 더 천천히 내용을 음미하면서 이번 여름 더위를 날려줄 친구로 함께 할 예정이다. 중복된 세 권은 조만간 블로그 이벤트로 나눔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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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미스터리 캐드펠 수사 시리즈 1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손성경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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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실제 사건과 실제 인물이 등장하는 역사 추리 소설인 캐드펠 시리즈의 새로운 시리즈가 출간되었다. 기존에 10권까지 출간되었으나 이번에 나머지 11권이 더해져 완결본이 나왔다.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시리즈 11 위대한 미스터리는 기존의 작품과 결이 조금 달라 시리즈를 읽는 사람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그 소재는 기존의 내용보다 더 충격적이고, 더 인간적이어서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럼 이번에는 캐드펠이 어떤 활약을 하는지 살펴보자.



헨리 1세(11세기)는 왕좌를 딸 마틸다에게 물려주지만 그가 죽자마자 스티븐 왕이 왕위를 찬탈한다. 이후 모드 황후는 프랑스로 피신을 가고 각자 지지하는 세력들과 결탁하여 싸운다. 모드 황후는 스티븐 왕을 이겨 그를 가두는데 성공하지만 거만함으로 인하여 시민들에게 지지를 얻지 못한다. 이번 이야기는 시민들에 의해 쫓겨난 모드 황후와 중간에 배신을 했다가 다시 돌아온 헨리 주교와의 전쟁이 주 배경이다. 이 싸움으로 인하여 모드 황후의 피해는 극심해졌으며 자신의 오른팔인 글로스터의 로버트 백작이 포로로 잡힌다.



북하우스에서 출간한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시리즈 11권 위대한 미스터리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1411년 8월 평온한 슈루즈베리이지만 다른 쪽은 지금 모드 황후와 헨리 주교 및 마틸다 왕비의 군대가 싸우고 있다. 이곳에서 피난을 온 휴밀리스 수사와 벙어리 피데일리스 수사. 휴밀리스는 젊은 시절 십자군 전쟁에 나갔다가 불구가 될 정도로 큰 상처를 입고 돌아온다. 한 여자와 약혼을 하고 갔으나 이 상처로 인하여 그는 수도원에 몸을 맡기고 혼인을 파기해 버린다.



파혼 후 3년이 지난 어느 날 휴밀리스의 과거 부하가 줄리언과의 결혼 승낙을 위해 그를 찾아온다. 흔쾌히 승낙하여 그는 그녀의 집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약혼녀 줄리언 크루스는 이 파혼 소식을 듣고 수녀원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네 명의 하인과 재물을 싣고 수녀원으로 떠나지만 이후 행방이 묘연해진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수녀원에서는 그녀가 오지 않았다고 하여 결국 혐의는 네 명의 하인에게 돌아가는데... 무엇을 상상하든 상상 그 이상의 내용이 기다리고 있는 위대한 미스터리이다.



북하우스에서 재출간한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 11권 위대한 미스터리는 기존의 작품과 달리 캐드펠이 얌전한 편이다. 10권까지 그는 수도원 내에 있는 시간보다 온갖 동네 일을 해결하기 위하여 마을 밖에서 활약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60%가 지나도록 수도원 안에만 머무는 특징이 있다. 덕분에 독자들은 이후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져 마지막에 사건을 해결할 때에 카타르시스가 몇 배에 달하게 만든다.



그는 손수 사건에 몸을 던지던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사건의 흐름을 관찰하는 위치에 서 있다. 이런 그의 캐릭터 변화는 오히려 독자들에게 사건 발생의 시점을 유추할 수 없어 더 큰 긴장감을 준다. 이런 그의 행동 장치는 사건의 전개를 더욱 예측할 수 없게 만들어 10권 이후 다음 책의 출간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독자들에게 선물처럼 다가온다. 캐드펠의 깊은 통찰이 마침내 빛을 발하는 순간 그간의 팽팽한 긴장감이 짜릿하게 해소된다.



이번 작품에서 중요한 점은 죽음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죽음이 전통적인 살인 사건과는 다른 성격을 지닌다. 모든 사람이 실종된 약혼녀의 행방을 알기 위하여 노력하면서 점차 사건은 그녀의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것으로 흐른다. 작가의 트릭이 매우 강하여 독자마저도 눈앞에 뿌려진 단서를 보기보다 행정 장관 휴 등의 수사를 따라가기 급급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녀가 범죄의 피해자가 아님을 알게 된다.



눈치가 빠른 분은 아시겠지만 문제는 그 이유와 그녀의 행방이다. 나쁜 사람이 하나도 없는 가운데 발생한 사건은 모든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결국, 사건의 진상을 풀어가는 과정은 사람들 간의 오해와 착각이 얽혀 있는 미로와도 같고, 그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 나가는 캐드펠의 모습을 통해 독자는 인간 심리의 미세한 변화를 포착하게 된다. 이 사건은 단순한 범죄를 넘어서, 각 인물들이 숨기고 있는 깊은 감정과 상처를 드러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엉뚱한 피해자가 발생한다. 바로 아내에게 이용당하고 버림받아 상처로 얼룩진 유리언 수사이다. 수도원 내에서 성추행을 일삼는 그의 행태에 독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더는 등장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결말까지 읽고 나면 그 또한 어떤 사건의 피해자임이 드러난다.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독자는 그의 행동들에 대하여 용서할 수는 없지만 애처로운 눈길로 그를 바라볼 여지를 가질 수 있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블랙 코미디에 가까우니 이 부분은 작가의 서비스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작품 속에는 상처를 입은 사람이 이름 있는 등장인물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정치 싸움에 휘말려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이유도 모른 채 죽은 자와 남겨진 가족들까지 셀 수 없는 피해자가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 마지막에 캐드펠이 던지는 남은 자의 상실에 대한 회복의 한 마디는 독자는 칼을 들고 싸우는 중세 영국에서 현실로 끌고 나온다. 죽음을 향해 힘껏 달리는 우리의 삶도 상실의 연속이지만, 그 속에서도 회복은 가능하다는 그의 한 마디는 마치 어두운 터널 끝에 빛을 비추는 등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 11권 위대한 미스터리의 포맷은 기존과 달라졌지만 캐드펠의 통찰은 오히려 더 날카롭고 깊어졌다. 읽고 나면 가벼움보다는 중세의 사건을 통해 현대 삶에 대한 지혜를 얻으며 묵직함이 남는다. 그의 깊은 사고는 단순한 추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각 사건마다 숨겨진 인간의 감정선과 철학적 고민이 드러나며 그 안에서 우리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추리 소설의 계절이 왔다. 단순히 흥미 위주로 흐르지 않고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기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추천한다.



#위대한미스터리 #캐드펠수사시리즈 #엘리스피터스 #북하우스 #역사추리소설 #정세랑작가추천 #미스터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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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비포 유 미 비포 유 (다산책방)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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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번역도 되기 전에 원서로 읽을 만큼 궁금했던 작품이다. 이후 몇 년이 지나 호주의 104세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의 존엄사 소식이 전해졌고 그 내용이 책과 겹쳐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최근에는 호주와 네덜란드에서 부부가 함께 안락사를 결정한 사례도 보도되었다.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선택하는 이들이 조금씩 늘고 있지만 여전히 가족과 당사자 사이의 의견차는 쉽사리 좁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 이 작품을 다시 읽게 되었고 가족의 사랑과 당사자 선택의 간극에 관한 고민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작은 마을에 사는 루이자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일하던 카페가 문을 닫자 급하게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휠체어에 의존하는 전신마비 환자 윌 트레이너의 간병인으로 고용된다. 시급은 높은 만큼 그녀는 이 일이 곧 고통을 동반할 것임을 직감한다. 윌은 한때 능력 있는 사업가이자 익스트림 스포츠와 여행을 즐기던 인물이었으나 사고 이후 삶에 대한 의욕을 완전히 잃고 안락사를 결심한 상태다. 루이자는 단지 생계를 위해 이 일에 뛰어들었지만, 윌과의 첫 만남부터 낯설고 불편한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처음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루이자와 윌은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루이자의 진심 어린 말과 행동은 윌의 굳게 닫힌 마음에 균열을 만든다. 루이자는 윌의 안락사 계획을 알게 된 뒤 충격을 받지만 그의 삶을 바꾸기 위해 직접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그는 여전히 차갑고 단호했으나 가끔은 미소도 보였다. 여행을 떠나고, 콘서트에 가고, 함께 새로운 경험을 하며 두 사람은 점점 깊은 유대를 쌓아간다. 하지만 그 어떤 노력에도 불구하고 윌의 마음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미 비포 유는 미비포유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이후 애프터 유와 스틸 미로 이어진다. 이 시리즈는 한 여성의 성장기를 다루지만, 첫 권의 핵심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한 남자의 자기 결정권이다. 작품은 전신마비 상태로 존엄을 잃었다고 느낀 인물이 죽음을 결정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생존 자체보다 자기다움의 지속 가능성이 인간에게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점을 그린다. 또한 가장 가까운 가족의 사랑과 당사자의 선택 간의 간극을 조명하고 있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하지 않다. 죽음을 선택한 한 인물의 결정을 두고, 우리는 삶의 조건, 통제, 사랑, 존엄성 등 다양한 층위에서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생명이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을 삶이라 부를 수 있는가? 타인의 선의가 당사자의 의지를 대신할 수 있는가? 사랑은 정말 구원이 될 수 있는가? 중요한 것은 그 결정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이 왜 가능한지, 또 우리는 그것을 허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고민하는 일이다.



작중 윌의 결정은 단순히 고통을 피하려는 문제가 아니다. 그는 사고 이후 전신마비가 되면서 모든 일상을 타인의 손을 거쳐야만 삶이 유지되는 상태에 놓인다. 여기서 핵심은 육체의 불편함이 아니라 인생의 선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의 상실이다. 동시에 최소한으로 보장되어야 할 인간 존엄성의 소멸이기도 하다. 삶을 구성하던 능동적 행위들이 제거된 상태에서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자신이라 부를 수 없었다. 생존은 단순한 물리적 조건이 아니라 통제 가능성의 유무에 따라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 드러난다.



죽음을 결정하는 행위는 흔히 포기, 절망, 혹은 삶의 실패로 간주된다. 하지만 윌의 결정은 그와는 다르다. 그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죽음을 택한 것이 아니라, 더는 자신을 자신이라 부를 수 없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지막 선택을 한 것이다. 이는 회피가 아니라, 무너진 통제 속에서 유일하게 남은 주체적 표현이자 저항이다.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자기 정의의 마침표이자 마지막 자기 복원일 수 있다. 우리는 이 결정을 단지 비극으로만 간주할 수 있을까?



타인의 삶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흔히 사랑이라 불린다. 그러나 그 사랑이 살아야 한다는 전제를 강요하기 시작할 때 그것은 구원이 아니라 개입이 된다. 작품 속에서 주변 인물들의 설득은 선의로 출발하지만 결국 윌의 결정권을 뒤흔드는 외부의 압력으로 작동한다. 그의 존재는 보호받아야 할 상태로 정의되고 판단은 유예된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결정을 바꿔도 되는 걸까? 선의는 언제부터 통제가 되며, 그 통제는 왜 쉽게 정당화되는 걸까?



사랑은 언제나 구원의 언어로 제시된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저자는 이 믿음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루이자는 윌을 사랑했지만 그 감정이 그의 존재 조건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끝까지 자각하고 있었다. 감정은 의식을 대체하지 못하며 사랑이 선택을 대신할 수는 없다. 우리가 누군가를 구하고 싶다는 마음은 종종 그 사람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일 수도 있다.



죽음을 결정하는 순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 선택을 붙잡으려 한다. 하지만 사랑이 강할수록 그 결정이 더 무겁게 거부당할 수 있다. 루이자는 끝내 윌의 선택을 존중한다. 중요한 건 감정이 아니라 그 결정이 당사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서로가 이해하려는 과정이다. 삶을 연장하는 것이 생명을 지키는 일은 아니다. 목숨은 하나뿐이고 결정 또한 단 한 번뿐이다. 우리는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해 충분히 고민하고 나서 서로의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도록 결정하여야 할 것이다.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는 죽음조차 한 인간의 자기표현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삶의 끝에서 내리는 결정은 단순히 옳고 그름으로 나뉘지 않으며 우리는 타인의 선택 앞에서 쉽게 감정으로 반응하지만, 그 감정이 판단을 대체할 수는 없다. 과연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선택을 허용하거나 금지하려는 건 아닐까? 존엄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감정 없이 정의될 수 있는 것일까? 이 작품은 가족의 사랑과 당사자의 선택 사이의 간극을 고민하게 만든다. 



#미비포유 #조조모예스 #다산책방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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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리를 불태운다
브루노 야시엔스키 지음, 정보라 옮김 / 김영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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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브루노 야시엔스키의 나는 파리를 불태운다는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 혁명이 가능하던 시절의 뜨거운 상상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저자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의도하지 않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에 이 방식으로 외쳤다. 흑사병이 퍼진 파리, 붕괴되는 자본주의, 자치국을 세우는 이민자들과 무너지는 질서. 인간판 동물농장이라 불릴 만하다. 유토피아는 끝내 도달할 수 있을까? 파리의 몰락에서 다시 피어오르는 가능성이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놀랍도록 현재적이다.



경기 침체로 해고된 공장 노동자 피에르는 여자친구 자네트에게조차 실직 사실을 숨긴 채 거리로 내몰린다. 결국 자네트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장면을 목격한 그는 분노에 휩싸여 폭행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풀려나고, 노숙자로 전락해 굶주림에 시달리게 된다. 쓰레기통을 뒤지던 어느 날, 고향 친구 르네를 우연히 만나 그의 도움으로 시립 정수장 수압관리탑에서 일하게 된다. 르네는 세균 연구소에서 일하며 흑사병 균을 비롯한 치명적 병원체들을 돌보고 있었다.



르네는 흑사병 세균이 든 시험관을 보여주며 한 말에 피에르는 자극받아 결국 시험관을 훔쳐 정수장에 투입한다. 프랑스 혁명 기념일, 파리는 봉쇄되고 죽음이 도시를 휩쓴다. 이후 도시 곳곳에서는 각 민족과 이념 세력이 자치국을 선언하고, 지배 계급을 전복하려는 혁명이 시작된다. 판창퀘이는 황인종 공화국을, 유대인은 자치령을, 백계 러시아인은 제국의 재건을 꿈꾸며 파리를 세계 축소판으로 만든다. 혼란과 전복 속에서 유토피아는 폐허 위에 싹튼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문자 그대로 무너졌다. 전쟁으로 인프라가 파괴되었고, 경제는 회복되지 못했으며, 노동자들은 길거리로 쫓겨났다. 프랑스도 상황은 비슷했다. 공장은 일주일 중 이틀만 가동되었고, 일자리에서 쫓겨난 이들은 하루아침에 빈민이 되었다. 인간은 더 이상 존엄한 존재가 아니었다. 기계는 인간을 대체했고, 계급은 고정되었으며, 인종과 출신은 배제의 기준이 되었다. 구조조정은 한 사람의 삶이 아니라 체제를 위한 기술처럼 작동했다. 사람들은 숫자가 되었고, 일상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 되었다.


그 혼란 속에서 정치적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러시아 10월 혁명 이후 유럽 각국은 공산주의 확산을 두려워했고, 프랑스 역시 우익과 좌익의 충돌이 거세졌다. 파업과 실업이 일상화되었고, 극우 정당은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며 세를 넓혔다. 빈곤은 범죄와 연결되었고, 이념의 차이는 적대와 혐오의 언어로 바뀌었다. 이 불안정한 시기에 쓰인 『나는 파리를 불태운다』는 단지 허구가 아니다. 그것은 당대 현실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며, 문학이 가장 어두운 현실을 상상으로 직시하는 방식이었다. 불가능한 시대에 가능한 상상만이 남았다.


브루노 야시엔스키의 나는 파리를 불태운다 속 피에르는 그 모든 붕괴의 끝에 서 있었다. 일자리를 잃고, 월세를 내지 못해 집에서 쫓겨나고, 연인에게조차 버림받은 그는 더 이상 살아 있는 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배고픔에 쓰레기통을 뒤졌고, 벤치에서 노숙하다 우연히 친구 르네를 만난다. 그를 통해 정수장이라는 임시 일자리를 얻지만, 거기서 본 것은 인간보다 더 냉정한 실험실이었다. 흑사병을 담은 시험관을 본 순간, 피에르는 파괴라는 방식으로 세계에 말을 걸기로 한다. 아무도 듣지 않으니, 그는 도시 전체에 병을 뿌린다.



저자는 전염병을 병리학이 아니라 언어로 본다. 피에르가 흑사병을 뿌리는 장면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세계에 남긴 하나의 메시지다. 제도는 그를 구제하지 않았고, 사회는 그를 잊었으며, 제시된 해답은 없었다. 그는 복수하지 않는다. 그는 증명하고 싶었다. 존재하고 있음을, 버려졌음을, 남겨졌음을 말이다. 전염병은 그가 던진 유일한 언어였고, 병든 도시만이 그 말을 들었다. 저자는 이 파괴를 미화하지 않지만 사회가 누군가를 얼마나 철저히 침묵시키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결과, 파리는 응답한다. 죽음으로.


피에르의 죽음 이후 도시에는 기이한 변화가 일어난다. 각 인종과 계급, 이념이 모여 자치 정부를 선언하며 도시를 분할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인은 황인종 공화국을, 유대인은 자치령을, 앵글로색슨은 연합국을 세운다. 모두가 평등과 자치를 말하지만 결과는 새로 칠한 권력일 뿐이었다. 유토피아는 오지 않았고 단지 새로운 지배 구조가 탄생했다. 이 소설은 유토피아를 꿈꿨지만 도달한 것은 인간판 동물농장이었다. 각 세력은 이전의 억압을 답습하고 해방을 외치며 타인을 배제한다. 권력은 얼굴만 바꿔 반복되었다.



지금 우리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이 삶을 통제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 해고자, 디지털 문해력에서 밀려난 이들은 더 이상 시장의 주체가 아니라 배제된 잉여로 취급된다. 기술은 편리함을 가져왔지만 그 편리함은 배제된 자들의 생명 위에 세워진 것이다. 피에르가 흑사병을 퍼뜨린 이유는 단지 분노가 아니다. 지금의 우리는 다시 누군가의 절규를 외면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 이 순간에도 데이터 바깥, 체제 바깥에서 "나는 파리를 불태운다"라고 속삭이는 이들이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또 듣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유토피아를 말하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배제된 타인이 존재해왔다. 평등을 외치면서도 구조 속에서 새로운 불평등을 복제하고, 해방을 주장하면서도 또 다른 억압을 정당화한다. 이 작품은 이러한 유토피아의 역설을 드러낸다. 유토피아는 실현 가능한 꿈이 아니라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의 또 다른 이름이다. 진짜 유토피아가 가능하려면 먼저 인간의 욕망부터 바꾸어야 한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우리가 만들려는 세상은 진짜 유토피아인가, 아니면 더 정교한 동물농장인가?



인간판 동물농장을 그린 브루노 야시엔스키의 나는 파리를 불태운다는 도시가 무너진 뒤에야 드러나는 진짜 얼굴들을 보여준다. 각자 평등과 해방을 말하지만 그 안에서 또 다른 질서와 배제가 생긴다. 이상을 말하면서 누군가는 밀려난다. 이 작품은 혁명이 어떻게 반복되는지, 구조가 어떻게 사람을 바꾸는지를 말한다. 또한 이 소설은 단순한 재난 소설이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체제도 인간의 욕망과 맞닿을 때 유토피아는 어려운 과제임을 말해준다.



#나는파리를불태운다 #브루나야시엔스키 #김영사 #인간판동물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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