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최진혁 사진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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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저자를 알게 된 계기는 <채식주의자> 때문이었습니다. 이 작품이 해외에서 상을 수상했다고 타임라인이 들떠 있었습니다. 한 번 읽어볼지 말지 알아봐야 하겠다는 생각에 검색을 했습니다.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겁이 났습니다. 제가 과연 이 책을 잘 소화할 수 있을지 감이 오지 않았거든요. 해외에서 상까지 받을 만한 작품이라면 완성도는 보장되지만, 완성도를 이루는 얼개를 제대로 더듬을 자신이 없어서 조용히 넘어갔습니다. 그 뒤로도 한강의 작품은 타임라인에 언급됐습니다. 어떤 분은 <채식주의자>는 다양한 요소를 다루고 있어서 문학 초보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다고 감상을 남겼습니다. 딱 제 기분이 그랬지요. 문학 계열에 익숙하지 않은 제가 섣불리 건드리면 안 되는 성역으로만 생각했지요.

 

그런데 2024년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가 나왔습니다. 바로 어렵다고 피해왔던 한강 작가님입니다. 책을 구매할지 조금 고민했습니다. 해외 작가가 수상했다면 작가에 대해서 작가의 삶에 대해서 작가의 국가에 대해 아는 배경지식이 없기 때문에 오독하게 되더라도 핑계를 댈 게 많았습니다. 그런데 한국 작가가 수상했습니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은 적어도 1권 이상은 읽어왔기 때문에, 과감히 도서를 구매했습니다.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 소식에 타임라인은 요동을 쳤습니다. 그 글들을 하나씩 읽어보니 공통된 분모가 하나가 나왔습니다.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면 마음에 태풍이 일수도 있으니 조금씩 천천히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음미할 부분이 많다는 뜻도 포함되겠지요.

 

<> 이 작품을 읽으면서 조금씩 천천히의 의미를 실감했습니다. 찰나를 묘사하는 문장들이 폐부를 찔렀습니다. 바람이 산들산들 불다가도 거세게도 불었습니다. 절묘하게 강약 조절을 해 주어서 끝까지 읽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적 소양이 얕은 제가 감히 글의 의도를 논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책에서든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는 저만의 법칙은 내려놓겠습니다. 한강 작가님이 구축한 소설 세계는 <>에 실린 평론을 읽는 쪽이 더 좋고요. 이 감상문에서 저는 <>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을 최대한 언어로 치환해 표현해 보고자 합니다. 감상문을 쓰면서 책 소개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니 불성실하네요.

 

1. <붉은>

이 팔에서 몇 번 피를 흘렸는지 모르겠다. 그 때마다 자력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외부의 힘을 빌려서 가까스로 숨을 쉬었다. 외부의 힘이 멀어질 때마다 짐작도 할 수 없는 양의 피가 다시 흐른다. 인생을 외부 요소에 의지하지 않는 삶을 그리고 싶다.

 

2. <짓눌린>

눈이 내린다. 그 눈은 세상을 하얗게 물들인다. 검은 아스팔트를 화사하게 바꾼다. 그 뒤로 태양열에 서서히 녹아가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다. 그런데 그 길 위를 자동차 바퀴가, 인간의 두 발이 짓누른다. 자신들이 순백의 한 삶을 새까맣게 칠하는 걸 애써 외면하면서. 눈은 생각한다. 이 위기를 벗어나려면 눈으로서의 삶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고.

 

3. <앓고 있는>

가장 심하게 앓았던 시기에 알약을 복용했던 적이 있었나? 없었다. 계속 앓았기 때문에 누구나 앓고 있는 상태일지도 모른다며 익숙해지려고만 했다. 그런데 지금 그 앓음이 치료의 대상이 되었다. 수십 년을 앓아온 이 앓음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치료하겠다고 덤비는지 모르겠다. 수박 겉핥기식의 치료로 도대체 나의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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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름에 별을 보다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강영혜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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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이 말은 어디에서 태어났을까요? 어느 누가 무슨 연유로 이 말을 썼을까요? 현재 의식주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직장에 많은 시간을 소모합니다. 충분한 수면 시간을 확보한다는 전제로, 업무에 쏟은 시간을 빼면 남는 시간은 별로 없습니다. 고독과 도파민 중에서 한 가지를 골라 그 몇 시간을 써야 할 때, 사람들은 어느 쪽을 선택할까요?

 

전 도파민입니다. 자는 시간 빼고 전부를 일에 몰두했는데, 하루 중 조금만 주어지는 나만의 시간을 유쾌하게 보내고 싶어서요. 고독을 선택하게 되면 사색에 잠길 확률이 높습니다. 여기 저기 흩어진 생각을 하나로 모으고, 논리적으로 배치하는 시간을 보내게 되지요. 단순히 고독하게 사색에 잠길 뿐인데도 에너지와 시간을 많이 잡아먹습니다. 그에 반해 도파민을 형성하는 활동들은 짧은 시간에 무언가를 해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어서 사색보다 더 이롭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도파민을 선택하는 이유입니다. 집중 방해, 중독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도파민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도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렇기만 할까요?

 

<이 여름의 별을 보다>의 학생들은 코로나로 인해 학업도 동아리 활동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목표에 도전해 볼 기회조차 사라집니다. 이 사태는 한 가지 사례를 낳게 됩니다. 온라인으로 이어져서 별 찾기를 목표로 망원경 만들기를 합니다. 자신이 올려다보던 별을-외부 상황에 강제적으로- 잃고 새로운 별을 찾아가는 학생들의 여정이 또 다른 길을 발견하는 과정 같았습니다. 학생들은 좌절만을 경험하고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디지털 기기와 기기를 이어주는 온라인 세상이 존재했기에 다른 것에도 눈을 뜰 기회를 발견했습니다.

 

별은 밤하늘에 흩뿌려진 무늬가 아니라 하나하나 깊이를 갖고 저마다 크기며 반짝임, 거리가 다르다는 걸 실감했다. 그래, 하늘은 입체였구나! 128

 

우주 속의 별의 빛이 지구에 도달하기까지 몇 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시간, 거리상 꽤 멀리 떨어져 있는 셈이지요. 그 간격은 별마다 다르고요. 눈으로만 봤을 때는 모두 똑같아 보이는 별들이 자신들이 만든 망원경을 가지고 바라보면 멀고 가까움을 느끼게 됩니다. 원근감이 생깁니다. 가장 가고 싶은 저 먼 별에 도달하려면 많은 시간과 긴 거리를 지나야 합니다. 당연히 소모되는 에너지도 많지요. 사색만을 추구하다 에너지가 부족해져서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갈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도중에 위치한, 도파민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별에 잠시 쉬어가는 것도 하나의 방편입니다.

 

다만, 잠시 쉬는 별에서 우리는 하늘을 자주 올려다봐야 합니다. 자신이 가려고 했던 저 먼 별을 계속 바라봐야 합니다. 에너지를 모아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수시로 확인합니다. 에너지를 전부 충전했을 때, 길을 잃지 않도록 말이죠. 에너지가 충전될수록 그 빛이 뚜렷하게 보이는 타이밍을 잡을 수 있습니다. 떠나야 할 때를 알게 됩니다. 계기만 생긴다면 미련 없이 떠나게 됩니다.

 

학생들의 계기는 졸업이 될 것입니다. 어른들은 어떤 계기를 기다려야 할까요? 입학과 졸업 시스템을 벗어난 어른들은 계기가 없어서 하나의 별에 머물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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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 한 장을 쓰는 힘 - 글쓰기 근력을 길러줄 최소한의 글쓰기 수업
안광복 지음 / 어크로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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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참 어려운 장르입니다. 행간에 숨은 힌트를 알아채고 생각해야 합니다. 아마 이 책은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을까. 이런 추측을 하면서 결말까지 읽습니다. 그 힌트와 결말이 딱 맞았을 때의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중요한 힌트라고 여겼던 것이 그저 지나가는 장치일 때도 있고,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요소가 키포인트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리뷰라는 글은 태어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다양한 개인의 삶속에서 소설이 어떻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일 테니까요.

 

그런데 문학도 장르를 구분합니다. 크게 순수 문학, 장르 문학으로 나뉩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이렇게 구분하는지 예나 지금이나 어렵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문학은 순수 문학만을 포함하며, 장르 문학은 오락 소설이라고 구분하기도 합니다. 후자의 구분에 따르면 저는 문학을 거의 접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추리 소설, 미스터리 소설, 게임 소설, 판타지 소설, 무협 소설…… 같은 소설을 많이 읽었으니까요. 앞에 말한 장르는 모두 오락 소설에 포함되겠지요.

 

문학 소설을 기피하는 이유는 책을 읽기도 전에 어렵다라고 느껴서입니다. 국어 시간에 배웠던 시대적 배경, 작가의 삶, 주제 등 다양한 요소를 분석해야만 할 것 같아요. 시험에 나오는 유형은 싫다는 이유로, 복잡한 생각하기 싫다는 이유로 기피했지요. 그래도 최근에는 문학을 접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나이차가 많이 나지 않는 작가들이 데뷔를 하면서 공감하기 쉬운 캐릭터가 많아진 게 한 몫을 합니다.

 

그러나 공감되는 캐릭터가 많이 나온다고 해서 소설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요. 감상문을 쓰면서 늘 불안합니다. 저자가 전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이 맥락의 설명이 이게 맞는지 등등 불안 요소가 많습니다. 그래도 꾸역꾸역 감상문을 써서 올립니다. 에라, 모르겠다. 이런 심정으로요.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현재로서는 이렇게밖에 이해할 수 없다는 살짝 포기도 섞입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감상문이랍시고 올려도 좋은지 늘 의문입니다. 그래도 <A4 한 장을 쓰는 힘>을 통해 위안을 얻습니다.

 

나에게 보이는 만큼만, 내가 이끌어나갈 수준으로만 책을 소개해도 충분한 요약이 된다. 무엇보다 자신감을 갖고 내가 이해한 내용만큼은 분명하게 설명하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153

 

더 깊은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끙끙 앓기보다 자신이 이해한 만큼 앞으로 나아가고, 나아가며 다시 한 번 새로움을 체득합니다. 그렇게 확장되는 과정이 글쓰기의 세계라고 말합니다. 독서 기록을 쓸 때 왜냐하면’, ‘다시 말해’, ‘예를 들어거듭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리된다고 합니다. (81) 근거, 예시를 확보하며 주장을 재확인하기 때문에 뼈대가 튼튼한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책을 읽고 독서 기록을 하는 과정을 통해서 탄탄한 사고방식을 지니게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인생에서 겪는 선택의 순간도 무던히 넘길 힘을 갖출 수 있습니다. 설령 실패로 끝나더라도 자신의 논리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보다 빨리 파악하고, 보완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탄탄한 사고방식이 뒷받침되어야 인생의 뼈대를 견고히 구성할 수 있습니다. 사고방식을 탄탄히 쌓으려면 지식, 지혜, 경험의 습득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직접적·간접적 요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중의 하나로 독서와 독서 기록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장르가 무엇이든 노트와 펜을 들어보는 시간 보내도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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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와의 7일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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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많이 보급되었습니다. 대중교통에서도 스마트폰에 열중하는 사람을 많이 봅니다. 스마트폰으로 사람들은 무엇을 할까요? 오직 SNS에만 열중할까요? 아닙니다. 전자책을 보는 사람도 있고, 뉴스를 읽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티브이, 책이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서비스를 했지만 지금은 모든 서비스가 스마트폰 같은 디지털 기기 안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디지털 기기 하나로 모든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는 시대라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디지털 기기에 대한 의존도가 저절로 높아지게 됩니다.

 

소설에서 소년의 아버지 가쓰시는 눈으로 범인을 쫒았습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수상해 보이는 사람을 발견하면 뒤를 쫒았지요. 그런데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인공지능이 알려주는 사람을 쫒게 됩니다. 인공지능은 범인으로 추측되는 몽타주와 전국에 깔린 CCTV에 기록된 사람의 얼굴을 비교, 분석하여 동일인으로 인식되는 사람을 골라냅니다. CCTV가 설치되지 않은 곳까지 인공지능이 분석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을 사람이 대신 처리하는 셈입니다. 인공지능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사회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소년의 아버지는 인공지능보다 자신의 눈썰미를 믿습니다. 자신의 눈썰미로는 도통 알 수 없는 한 사람에 집착합니다. 그 사람의 삶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요. 가쓰시는 용의자로 추정되는 사람의 몽타주나 사진을 업무를 통해 처음 접할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첫 만남에서 눈썰미를 활용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나이, 직업 등이 무엇인지 추측하고, 행복하게 살아왔는지 불행하게 살아왔을지 짐작해 봅니다. 이 과정에서 편견이나 선입견이 생겨날 수도 있지요. 이 점을 근거로 인공지능은 중립적 또는 객관적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인공지능과 관련된 몇 개의 기사를 보면 윤리에 어긋나는 글을 생성하기도 합니다. 여성과 노인을 차별하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고, 자살을 권유하는 등 윤리에 어긋나는 내용을 언급하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은 왜 벌어졌을까요? 인공지능은 사람이 쓴 텍스트로 학습을 합니다. 이 때, 윤리에 어긋나는 표현(혐오나 차별도 포함해서)을 거르지 않고 무분별하게 학습을 시키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닐까요? 거기에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사람이 잘못됐다고 인식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활용할 때 문제는 더욱 커집니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의 보급으로 윤리에 어긋나는 표현에 접근할 수 있는 연령대는 점차 낮아지고 있습니다. 미성년자를 위한 시스템이 존재한다고 해도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겠지요. 그런 표현에 익숙해지는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요? 이미 온갖 미디어 매체를 통해 윤리에 어긋나는 표현에 익숙해져 그것들이 윤리에 어긋나는 표현인지 모르고 받아들였습니다. 그 사실을 나이가 들고 나서 깨달아 많이 창피합니다. 인공지능의 개입이 없었던 어린 시절의 저도 그랬는데, 인공지능이 개입된 지식이 온라인으로 순식간에 퍼지는 요즘 아이들은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사람도,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사람도 윤리를 의식하며 공존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윤리 의식이 결여된 인공지능은 비윤리적인 길로 빠지는 또 하나의 경로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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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
야기사와 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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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명분을 자주 찾으시나요? 중대한 결정이 필요할 때만 찾는 사람도 있고, 사소한 결정을 내릴 때도 찾는 사람도 있겠지요. 결정은 지금까지 자신이 드러낸 생각과 말, 행동 나아가 신념을 부정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확실한 명분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으려는 마음도 이해됩니다.

 

그 명분이 가장 필요한 시점은 언제일까요? 부정적 감정에 휩쓸렸을 때 아닐까요? 부정적 감정은 집요하게 자존감을 무너뜨려서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 때마다 머리로는 변화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자신이 골랐던 길이 끊긴 상황에서 다른 길을 걷는다고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새로운 길을 걷다가 끊겼을 때, 명분은 자신의 결정이 옳은 결정이었다는 이유가 됩니다. 인생에서 꼭 필요한 요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부정적 감정에 빠졌을 때, 새로운 길을 걸어갈 명분만 찾으면 되는 걸까요? 부정적 감정을 정리하지 않은 채 서둘러서 새로운 길로 나섰다가 또 다치는 일은 없을까요? 부정적 감정이 선명한데도 일상으로 빨리 복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합니다. 그러는 동안 부정적 감정은 이전에 생겼던 부정적 감정과 뒤엉켜 존재감이 더욱 커집니다. 늪에 빠지는 셈이지요.

 

다카코는 자신이 사귀던 애인이 다른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정적 감정에 휩싸입니다. 무기력해집니다. 자신감을 잃습니다. 자존감도 바닥을 칩니다. 이런 다카코를 구원한 곳은 헌책방입니다. 다카코는 헌책방에서 머물며 조금씩 부정적 감정을 정리합니다. 다카코는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잠을 잡니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일을 하면서 마음을 달래는 일에 집중하는 셈이지요. 그 시간 동안 마음은 실컷 울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합니다. 마음껏 욕하고 때리고 흔듭니다. 강도 높은 솔직함에 부정적 감정은 너덜너덜해집니다. 부정적 감정도 경험이기에 잊을 수는 없겠지만, 존재감이 작아집니다.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시작한 헌책방의 일에서 긍정적 감정을 느낍니다. 그렇게 새로운 길을 찾아서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 때, 부족한 자신감의 일부를 명분이 채워줍니다. 기억의 정화라고 명명하고 싶습니다.

 

명분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자주 사용되는 말이지요. ‘어쩔 수 없이에서 의지가 포함되지 않을 때 주로 사용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다카코는 헌책방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든 뒤에도 떠나야만 하는 상황을 기다립니다. 명분을 기다리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명분은 천운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명분을 기다리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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