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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팔기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평점 :
<도련님>, <산시로>, <그 후>, <행인>에 이어 읽는 나쓰메 소세키 전집 제13권 <한눈팔기>. 이 책은 저자인 나쓰메 소세키의 자전적 소설이라 잘 알려진 작품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겐조'는 옛날 소세키처럼 머나먼 외국에 있다가 이제 막 본국인 일본으로 돌아온 사람이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겐조를 맞이한 것은 그의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근처에 살고 있는 형제 가족들이었다. 하지만 가족과 친인척들만이 겐조를 기다린 건 아니었다. 바로 과거 겐조의 양아버지였던 '시마다'라는 사람 역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겐조는 어느 비가 내리던 날, 거리를 산책하다가 길가에서 자기를 뚫어지게 보는 어떤 남자를 보게 된다. 얼굴을 보자마자 누군지 알아차린 겐조였으나 그와의 껄끄러운 과거사 때문에 바로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내 시마다는 대리인까지 보내 겐조네 집에 찾아온다. 어렸을 적, 겐조가 아직 어렸을 때, 그는 시마다의 양자로 보내져 그곳에서 몇 년간을 보내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시마다에게 개인적으로 문제가 생기고, 어쩔 수 없이 겐조는 다시 본가로 돌아오게 된다. 겐조의 아버지가 증서니 뭐니를 작성하면서 그를 복적시키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이도 들고 돈이 궁해진 시마다는 겐조가 성인이 되고 어느 정도 사회인으로 돈을 벌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는 '옛 인연'을 핑계 삼아 그에게 돈을 빌리러 찾아 온다(작중 시마다는 돈 이외에는 별로 가치를 두지 않는 인간으로 나온다). 겐조와 그 형제자매 가족들은 이런 시마다를 질색해 하지만, 도리 때문인지 그들 모두 시마다와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끝내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겐조마저 집에 찾아오는 시마다에게 푼돈을 쥐여주기도 한다. 마음속으론 싫다고 하면서 말이다.
앞서 본 책이 나쓰메 소세키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했다. 위와 같은 겐조의 이야기 역시 소세키 본인의 이야기라고 한다. 그도 어릴 때 '시오바라'라는 사람의 양자로 들어갔다가 모종의 이유로 다시 본가로 복적된 적이 있으며, 그 시오바라라는 사람도 작중에 나온 시마다처럼 훗날 성장한 소세키에게 옛일을 핑계로 찾아와 돈을 요구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은 단순히 저자가 겪었던 일을 쓴 책일까? 그건 아니다.
시마다와 겐조의 일은 소세키 본인이 겪었던 일을 바탕으로 쓴 것은 맞지만, 결코 지금까지의 소세키 적 소설의 틀(방식)에서 벗어나 있지 않는다. 또한 시마다와의 일은 작중 중요한 사건으로 다뤄지지만, 이것 이외에도 주인공 겐조의 심리 상태라든지 부인과의 관계, 그리고 결정적으로 당시 세태(世態)를 향한 소세키의 진지한 성찰을 다루고 있기에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일을 다룬 작품이라고 하기엔 어렵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시마다와의 갈등은 그저 겉면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마디로 이들의 갈등은 하나의 계기일 뿐, 그 밑에는 더 중요한 것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싶었다. 겐조의 독백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어쩌면 소세키는 당시 근대의 삶 속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불안의 원인으로 <첫째, 돈 / 둘째, 시간 / 셋째, 소통의 부재 / 마지막으로 소외>를 꼽는 듯 했다.
먼저 '돈'은 <한눈팔기>라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다.
앞서 시마다와의 일도 그렇고 겐조는 작중 내내 돈의 괴롭힘을 받는다. 매일 같이는 아니더라도 겐조의 주위 사람들 대부분 그로부터 돈을 빌려 쓰고 또 내심 돈을 빌리고 싶어 한다. 겐조의 누나는 가끔 그로부터 용돈을 받는다. 아내의 장인도 한때 높은 관직에 올랐던 적이 있었으나 지금은 좌천되어 생활히 궁핍해 돈을 빌리려고 겐조를 찾아온다. 옛 양아버지였던 시마다는 말할 것도 없고, 옛 양어머니도 찾아와 무언의 압박을 한다. 겐조의 형은 그에게 돈을 빌리지는 않지만 박봉의 공무원 생활을 하며 가난하게 살아간다. 누나의 남편은 돈을 어찌 쓰는지 모를 정도로 다소 해이하게 산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들 모두 대체로 돈 얘기를 꺼낸다. 교수인 겐조에게 '학문은 드는 비용이 꽤 있지만 나중에 돈 버는 데는 쓸모 있다'라고 말하는 등 학문을 그 자체로 보지 않고 투자의 의미에서만 바라본다. 그들 사이에 있는 겐조는 뭔가 붕 떠다니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다들 돈이 탐나는 거다. 그리고 돈 말고는 아무것도 탐나지 않는 거다'라는 겐조의 독백은 모든 걸 말해준다. 친척들은 물론 그의 장인까지 모두 과거엔 잘 살았지만, 이제는 돈 이외에 다른 가치들이 배제되는 근대 사회의 현실에서 이들 모두 가난하게, 그리고 아득바득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로 '시간'은 겐조가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중 하나다.
작중 겐조는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며, 이를 잘 느끼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예를 들어 그의 누나는 시간만 되면 수다를 떤다. 겐조는 누나의 수다를 듣는 것이 시간 낭비이고, 이 사실을 전혀 모르는 누나를 생각하며 쓴웃음을 짓는다. 그는 계속해서 시간에 대해 생각하며 혹시나 시간 낭비를 할까 봐 걱정하기도 한다(하지만 정작 겐조가 그 시간에 하는 것이라곤 서재에 앉아서 생각에 잠기거나 빼곡히 글을 쓰는 것뿐이다).
세 번째로 '소통의 부재'는 겐조와 그의 아내를 통해 드러난다.
<한눈팔기>는 돈 문제 다음으로 이들 부부의 소통에 대해 많이 다룬다. 겐조는 지식인 특유의 고지식함을 가지고 있으나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고 고집스러운 독불장군으로 나온다. 반면에 아내는 현실을 중요시 생각하고 어려운 말로 상대방을 깔본다며 남편을 비꼬는 등 전체적으로 불만스러워한다. '갑자기 아내에게 폐를 끼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다시 얼굴을 돌리고 말았다. 그래서 아내에게는 남편의 마음이 조금도 전해지지 않았다'라는 구절은 이들 관계가 어떠한지 보여준다. 이렇듯 소통의 부재,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마음조차 알지 못하며, 또한 알고 싶어도 끝내 다가가지 못하는 모습은 <행인>에서도 그렇고 개인주의가 퍼진 근대 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소외'이다.
겐조는 양자로 갔다고 다시 본가로 돌아온 경험이 있다. 그래서인지 그에겐 항상 출생의 콤플렉스가 있었고, 자신이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 의구심을 느끼기도 한다. 시마다는 겐조를 그저 나중에 자신의 노년을 책임질 보험(자식)으로서만 대했고, 반대로 친아버지 역시 원치 않게 그를 다시 데려오게 되면서 애물단지 취급한다. 결국 그 누구에게도 존재 자체를 인정받지 못한 겐조는 도대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절망과 허무함을 느낀다. 이러한 겐조의 감정은 소외감과 비슷해 보인다. 그는 대학교수로 어느 정도 평범한 일상생활을 보내고 있으나 정작 본인은 그다지 즐거워 보이지 않고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을 받는다. 이 역시 급격한 근대화를 겪으며 과거의 흔적과 개화의 흔적이 어지럽게 섞여 있는 당시 일본의 현실을 살던 개인의 심리를 표현하는 것 같았다.
<한눈팔기>는 작가의 자전적 소설임과 동시에 소세키가 말하는 근대 사회의 불안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소설이라고 본다. 죽기 전에 완결한 마지막 작품인 만큼, 어쩌면 소세키는 자신의 마지막을 예견하고 이런 자전적이면서 세태를 향한 솔직한 심정을 드러낸 작품을 쓴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짧은 <도련님> 다음으로 읽기 쉬웠고, 소세키의 일생을 생각하며 읽으니 술술 읽혀졌다. 소세키의 솔직한 심정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걸 추천드린다.
그는 독선가였다. 아내에게 더 이상 설명할 필요는 처음부터 없었다고 믿었다. 왜 좀 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해줄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그녀의 가슴 속 깊은 데서 일어났다. 그러면서도 남편이 마음을 터놓고 이야가하게 할 만한 타고난 재질이나 재주를 충분히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 P48
"역시 학문을 할 때는 그만큼 돈이 들어서 손해인 것 같지만 막상 해놓고 보면 결국 그게 더 남는 장사니까 배우지 못한 사람은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지요" "결국 이득이지요" 겐조는 그들의 수작에서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했다. - P56
"당신한테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 자기 혼자 괴로워하니 도리가 없잖아요?" - P67
"사실 나도 청춘 시절을 완전히 감옥에서 보낸 거나 마찬가지니까." 청년은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 "감옥이란 뭔가요?" "학교지. 그리고 도서관이고. 생각하면 둘 다 감옥 같은 곳 아닌가? 하지만 내가 만약 오랫동안 감옥 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결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겐조의 말투는 반은 변명조였고 반은 자조적이었다. 과거의 감독 생활 위에 현재의 자신을 쌓아 올린 그는 현재의 자신 위에 꼭 미래의 자신을 쌓아 올려야 했다. 하지만 그 방침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지금의 그에게는 헛되이 늙어간다는 결과 외에 어떤 것도 가져오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 P88
형은 과거 사람이었다. 화려한 앞길은 이제 형 앞에 펼쳐져 있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뒤를 돌아보는 일이 많은 그와 마주 앉아 있는 겐조는 자신이 나아가야 할 생활의 방향이 반대로 되돌려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쓸쓸하군‘ 현재의 겐조 역시 상당히 쓸쓸한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현제애서 차례로 헤아린 미래도 당연히 쓸쓸할 것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중략) 형은 이런 경우 결코 자기가 담판을 지으러가지 않는 사람이었다. 조금이라도 신경을 써야 하는 성가신 일이 생기면 반드시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 사정이 허락하는 한 가만히 참으며 혼자 괴로워했다. 겐조는 그런 모순에 화가 나지도, 우습지도 않은 대신 그냥 딱하게만 여겼다. - P110
시마다 부부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들의 은혜를 겐조에게 인식시키려고 했다. ‘아버지가‘라든가, ‘어머니가‘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겐조는 자기 혼자만의 자유를 가지고 싶었다. 장난감을 받고 기뻐하거나 색도 인쇄한 풍속 목판화를 질리지도 않고 바라보면서도 그는 오히려 그것들을 사준 사람을 기쁘게 해주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그 둘을 깨끗이 분리해서 순수한 즐거움에 빠지고 싶었다. - P122
인간은 평소 미래만 바라보며 살아가더라도 그 미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어떤 위험 때문에 돌연 막혀버려 이제 끝장이라는 사실이 확실해지면 갑자기 눈을 돌려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는 거지. 그래서 모든 과거의 경험이 한꺼번에 의식에 떠오른다는 거야. - P133
‘다들 돈이 탐나는 거다. 그리고 돈 말고는 아무것도 탐나지 않는 거다‘ - P164
떨어져 있으면 아무리 친해도 그것으로 끝나는 대신 함께 있기만 하면 설사 원수지간이라도 그럭저럭 살아가는 법이지. 결국 그게 사람일 거야. - P187
‘나는 묵묵히 조금씩 자살하는 거다. 딱하다고 말해주는 사람 하나 없다.‘ - P195
"단지 남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존경해야 한다고 강요해도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어요. 만약 존경을 받고 싶으면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추게 제 앞에 나서면 돼요. 남편이라는 간판 같은 건 없어도 상관없으니까요" 신기하게도 학문을 한 겐조는 이런 점에서 오히려 구식이었다. 자신은 자신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주의를 실현하고 싶으면서도 처음부터 남편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아내를 가정했던 것이다. 남편에게서 독립된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려는 아내를 보면 겐조는 금세 불쾌해졌다. - P201
겐조는 바다에서도 살 수 없었다. 산에서도 있을 수 없었다. 양쪽에서 버림받고 이쪽저쪽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동시에 바다에서 나는 것을 먹고 때로는 산에서 나는 것에도 손을 댔다. 친아버지의 입장에서도 양아버지의 입장에서도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물건이었다. 그저 친아버지가 그를 허드레 물건을 취급한 것에 비해 양아버지는 조만간 어떤 도움이 되게 해야겠다는 심산이 있을 뿐이었다. - P256
‘너는 결국 뭘 하러 세상에 태어난 거냐?‘ 그의 머리 어딘가에서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가 있었다. 그는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면 대답을 피하려고 했다. 그러자 목소리가 다시 그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몇 번이라도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그는 결국 소리쳤다. ‘몰라‘ 그 목소리는 갑자기 코웃음을 쳤다. ‘모르지 않을걸. 알고 있어도 거기에 갈 수 없는 거지? 도중에 막혀 있는 거겠지‘ ‘내 탓이 아니야, 내 탓이 아니라고‘ 겐조는 도망치듯이 빠르게 걸었다. 사람들은 빠른 걸음으로 그를 지나쳤다. 다들 바쁜 모양이었고 일정한 목적을 갖고 있는 듯했다. 한시라도 빨리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인다고만 생각되었다. 어떤 사람은 그의 존재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엇갈릴 때 흘끗 쳐다봤다. ‘넌 바보야‘ 드물게 이런 표정을 짓는 자조차 있었다. - P273
해가 바뀌었을 때, 겐조는 하룻밤 사이에 변한 세상의 겉모습을 심드렁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모두 쓸데없는 일이다. 일간의 잔꾀다‘ 실제로 겐조 주위에는 섣달그믐도 정월 초하루도 없었다. 모조리 전해의 연속일 뿐이었다. 그는 남의 얼굴을 보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인사하는 것조차 싫었다. 그런 새삼스러운 말을 입에 담는 것보다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조용히 있는 것이 더 기분 좋았다. - P282
세상에 매듭지어지는 일은 거의 없어. 한번 일어나는 일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 다만 여러 가지 형태로 변하니까 남들도 자신도 알 수 없을 뿐이야.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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