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법 - 행복한 삶을 위해 나와 친해지기
엔도 슈사쿠 지음, 김영주 옮김 / 북스토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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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엔도 슈사쿠의 인생론이다.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으로 끙끙 앓는 사람, 완벽주의 성향으로 딱딱한 삶에 지친 사람에게 적합한 책인 것 같다.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한 채 삶을 즐기며 살아가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오늘날 자기계발서보다 간결하고 내용도 좋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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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편단심 분도그림우화 23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영무 옮김 / 분도출판사 / 198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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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을 천성으로 우직하게 살다 간 황소의 이야기다. 짧고 단순한 이 이야기의 저자는 놀랍게도 헤밍웨인데, 동화같지만 읽으면서 뭔가 황소가 헤밍웨이의 스타일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성적이랄까, 그치만 내용이 그저 그래서 별로 추천드리진 않는다. 단, 삽화는 아름다워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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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오레올
타카츠 지음 / 블랑코믹스(BLANC COMICS)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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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스킵과 로퍼> 작가님의 초기작이다. 현재 종이책은 절판되었지만 알라딘에서는 물론 예스 24나 리디 같은 곳에서도 이북으로 구매해서 볼 수 있다. 괜히 중고로 비싸게 사지 말고 싸게 이북으로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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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동서문화사 월드북 76
허먼 멜빌 지음, 이가형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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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곧 철학이나 인문학 책을 읽다가 오랜만에 소설책을 읽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작가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1819년 8월 1일 ~ 1891년 9월 28일)'<모비 딕>이다. <모비 딕>은 대학 필독서로서도 유명한 책인데 아마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 이름은 들어봤을 거다. '모비 딕'이라는 흰고래에 의해 한쪽 다리를 잃고 분노와 복수심에 불탄 '에이허브'라는 선장이 포경선을 이끌고 모비 딕을 잡기 위해 여정을 떠나는, 그런 얘기다.

책도 이렇게 한 줄로 끝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아쉽게도 본 책은 무려 700페이지가 넘는 어마 무시한 두께를 자랑한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나는 재밌게 읽었다. 잘 하지 않던 책갈피 표시(?)까지 하면서 집중해서 읽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고전 문학들이 시대적 차이와 그 깊이 때문에 현대인들에게 다소 다가가기 어려운 편이긴 하다. 멜빌의 책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평생을 육지에 발붙여 사는 '천생 육지인'인 내가 한 번도 겪어보지도, 본 적도 없는 '포경선'을 배경으로 펼쳐치는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다 읽어 본 결과, 과연 고전 문학의 반열에 어울리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앞에서 말했던 단점을 제쳐두고, 이야기의 흐름이라든지 소재가 무척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책을 펼치면 "Call me Ishmeal(나를 이스마엘이라 부르라)"로 시작하는 인상적인 문구가 나온다. 해당 문구는 문학계의 10대 명문장 중에 하나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만큼 명작의 시작을 알리는 팡파르 소리라 할 수 있겠다. 작품의 주인공은 '이스마엘'이다. 그는 원래 교사였으나 뭔가 알 수 없는 답답함으로 최근 몇 년간 선원이 되어 바다를 누비고 다녔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스마엘은 성에 차지 않았고, 이번엔 늘 타던 상선(물건을 나르는 배)이 아닌 '포경선'을 타기로 결심한다. 포경선은 말 그대로 '고래를 잡는 배'다. 배에 타서 그냥 앉아만 있는 게 아니라 직접 노도 젓고 고래와 사투를 벌여야 하는 험난한 일이다.

그렇게 큰맘 먹고 이스마엘은 12월의 추운 겨울 날씨에 어떤 여관에 겨우 묵게 된다. 방이 다 찼으나 오늘날로 치면 킹 사이즈 베드가 있는 곳이 있으니까 대충 거기에 묵으라는 주인장. 대신에 다른 사람이랑 같이 자라고 한다. 그 사람이란 예의 바른(?) '야만인'이라고 하는데 쿨한 이스마엘은 바로 OK 한다. 원래 뱃일을 하면 여러 인종들을 보는지라 대충 그런가 보다 하고 방에 들어가지만..... 이윽고 나타난 야만인은 큰 덩치에 온몸에 문신을 하고 심지어 사람 두개골 파는 등의 무시무시한 사람이었다! '퀴퀘그'라고 하는 이 야만인은 솜씨 좋은 작살잡이였다. 처음엔 퀴퀘그도 이스마엘을 보고 놀라지만 이내 두 사람은 서로 마음을 트고 찐친이 된다. 이스마엘은 퀴퀘그와 함께 포경선 '피쿼드 호'에 올라탄다. 그곳 선장인 '에이허브'와 항해사 '스타벅', '스텁', '플래스크', '대구' 등등과 함께 이스마엘은 본격적인 포경 작업을 위한 항해에 나선다.


그런데 순조롭게 항해하던 도중에 대뜸 선장인 에이허브가 파격 선언을 한다. 이 배의 항해 목적은 단순한 포경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모비 딕'이라고 하는 흰고래를 죽이기 위한 여정이라는 거다! 몇 년 전 에이허브는 모비 딕 때문에 한 쪽 다리를 잃은 상태다. 그 이후로부터 오직 모비 딕을 죽이기 위해 벼르고 있었고, 지금이야말로 그때라는 게 에이허브의 설명이다. 그리곤 모비 딕을 맨 처음 발견하는 자에겐 비싼 스페인 금화를 주겠다고 선언한다. 한 마디로 에이허브는 선원들을 선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선원들은 포경업자 특유의 사나이다움과 고래 사냥을 위한 열정으로 에이허브의 말에 적극 동의한다. 그렇게 포경선 피쿼드 호는 모비 딕을 쫓는 여정을 시작한다.



줄거리만 보면 대충 모비딕을 쫓기 위한 얘기가 주된 내용 같다. 하지만 실제로 보면 그렇지 않다. <모비 딕>은 전체적인 구성이나 내용 면에서 그리 단순하지 않으며 오히려 웬만한 작품들보다 '심오하다'. 내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이자면 '고래잡이를 빙자한 인생 서사시' 같았다. 말이 고래잡이지, 이들이 포경을 하는 과정이라든지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는 모습은 인간의 삶 그 자체다. 바다와 고래가 인간이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자연세계, 즉 삶이라고 한다면 그것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선원들의 모습은 자연과 삶을 정복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흰고래 모비딕을 죽이고자 하는 에이허브의 모습이 그러하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스타벅처럼 이성을 가지고 자연과 삶에 거리를 두고 안전하게 살아가고자 하지만, 에이허브는 미친 듯이 모비딕과의 결투라는 운명에 온몸을 던진다. 설사 이로 인해 파멸하게 되더라도 말이다.


스타벅 얘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나는 에이허브 다음으로 이 스타벅이라는 인간이 참 정감 갔다. 우리가 잘 아는 카페 '스타벅스'가 이 사람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건 그렇다 치고, 불같은 에이허브와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스타벅은 이성적인 사람이다. 그는 포경선의 목적을 에이허브의 개인적인 원한이 아니라 선박의 주주들의 이익과 고래를 잡아 이윤을 내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은 살아남아서 육지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 때문에 그는 작중 다른 선원들과 달리 에이허브의 말에 반기를 드는 등 충돌을 일으킨다. 에이허브와 스타벅, 이 두 사람의 반목은 책에서 느껴진 '인간의 삶'이라는 심오한 주제에 더 불을 붙이게 했다. 에이허브처럼 운명에 적극적으로 달려들 것인가, 아님 스타벅처럼 인간의 운명이니를 떠나 이성적으로 자기 안위를 생각할 것인가!

참고로 이 두 사람이 완전 상극인 사이인 것 같지만 사실 스타벅도 에이허브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그도 에이허브의 열정에 감복한다. 다만 너무 과할 뿐! 에이허브 본인도 이걸 잘 알고 있다. 만약 이대로 가다간 정말 모비딕과 최후의 일전을 벌여 자신뿐만 아니라 나머지 선원들도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 마음이 약해진 에이허브가 인간으로 하여금 투쟁하게 만드는 저 자연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라며 울부짖은 모습은 스타벅의 마음을 울린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작품의 명장면, 클라이맥스 같았다. 우리도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렇게 삶을 살아가는 걸까, 왜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그리고 우리는 이런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드는 장면이었다.

본 책이 심오하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구성이다. 보통 소설책 하면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하나의 흐름에 따라 흐르기 마련이지만 <모비 딕>은 그렇지 않다. 처음엔 주인공 이스마엘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다가 피쿼드 호를 타면서 전지적인 시점으로 이스마엘이 등장인물들의 모든 행동들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중간중간마다 고래의 종류라든지 뼈 구조, 성질 등등 고래와 관련된 각종 TMI와 고래 해체 과정같이 포경일에 대한 세세한 설명이 나온다. 잘 생각해 보면 이야기의 흐름과는 별로 상관없고 온갖 지식들이 잡다하기 흩뿌려진 느낌인데 굉장히 높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또한 작품 자체에서 뿌리는 떡밥이 넘쳐난다. 예를 들어 작중 이스마엘이 묵었던 여관 주인장의 이름이 '관'을 뜻하는 단어였다든지(죽음을 암시), 이스마엘을 비롯한 캐릭터들의 이름과 배의 명칭이 구약 성경 속 인물이라든지 소위 '아는 사람 눈에만 보이는' 떡밥들이 엄청났다. 이 같은 걸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면 즐겁게 읽을 수 있지만 만약 아니라면.... 토닥토닥......



이외에도 작품은 1851년에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진보적이다. 앞서 이스마엘과 야만인 퀴퀘그와의 일도 그렇고 인종적, 종교적, 사상적인 면에서 차별을 두지 않고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한다. 오히려 퀴퀘그를 일반인보다 더 고귀한 인간으로 묘사할 정도다. 퀴퀘그 말고도 본 책에선 흑인, 아시아인, 아랍인 등등 다양한 인종이 등장하고, 배 안에서 이들은 자신의 역할에 맞게 자유롭게 행동한다. 동시대 때의 작품들과 비교한다면 나름 파격적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결말은 아시다시피 에이허브의 패배로 배가 침몰하게 되어 이스마엘을 빼고 전원 사망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죽었다 깨어나도 인생과 자연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인가 싶지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중요한 건 항해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행동이다. 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자신의 본성에 맞게 자유롭게, 그리고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희망과 즐거움을 잃지 않은 선원들의 모습이다. 에이허브처럼 운명에 따라 불같이 살아갈 수도 있고, 스타벅처럼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도 있고, 스텁처럼 낙천적으로 살아갈 수도 있으며, 퀴퀘그처럼 작살잡이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소박한 삶을 살 수도 있다. 이렇게 서로 각기 다른 태도를 보였지만 삶을 향해 두려움 없이 용감히 나아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므로 절망할 필요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포경선 얘기임에도 삶을 발견할 수 있는 책이 바로 <모비 딕>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결국 그게 뭐란 말인가? 외관뿐이지 않나? 어떤 가죽을 뒤집어썼건 정직한 사람은 있는 법이다.

그야말로 이 고래잡이의 일에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느닷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람을 혼돈에 빠지게 하여 영원의 세계로 쓸어 넣겠지. 그러나 그게 어쨌다는 건가? 우리는 이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굉장한 오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땅에서 이른바 그림자라 부르는 것이야말로 나의 진실한 실체인지도 모른다. (중략) 갓난아이 같은 이류가 그 과학과 기술을 아무리 자랑하고 즐거운 미래에 그 과학 기술이 얼마만큼 진보한다 하더라도, 영원히 바다는 인간을 모욕하고 살해하여 파멸의 심연으로 떨어뜨리고, 인간이 만든 장대하고 견고한 군함을 짓밟아 버릴 것이다.

스타벅은 ‘고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놈은 내 배에 태우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의미는 아마도 가장 신용할 만하고 유용한 용기란 직면한 위험을 공정하게 판단하는 데서 생겨난다고 하는 것 외에도, 조금도 두려움을 모르는 인간이란 겁쟁이보다도 위태롭다는 뜻일 것이다.

에이허브 : 신이여, 신이여, 오오, 신이여! 나의 심장을 박살내고, 나의 머리통을 깨드려 주십시오! 스타벅, 인간의 눈을 내게 보여 주게. 바다나 하늘을 들여다보는 것보다는, 아니 신을 우러러보는 것보다도, 그편이 좋지. 오오, 이것은 마법의 거울인가? 푸른 대지여, 밝은 낫롯가여, 나는 그대의 눈동자 속에서 나의 아내와 자식을 본다.



스타벅 : 오오, 선장님, 선장님! 고귀하신 분! 훌륭하신 노인이시여! 결국 무엇 때문에 저 저주받은 고래 따위를 쫓아야 한단 말입니까? 나와 함께 갑시다! 이 지옥의 바다에서 뛰쳐나갑시다! 집으로 돌아갑시다.

에이허브 : 이건 무언가. 이 무슨 이름없고 불가사의 하고 기이한 것인가. 우리를 잘도 속이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군주와 잔인무도한 황제가 내게 명령해서 나를 모든 본인의 사랑과 정을 배반하게 하고, 이 몸을 부단히 틀어막고 밀고 나가고 부딪치게 하고, 올바른 본래의 마음으로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일에 무모하게 덤벼들게 하는 것인가. 에이허브는 과연 에이허브 자신인가? 지금 이 팔을 추겨든 건 나인가? 신인가, 아니면 무엇인가? 그러나 만일 웅장한 태양도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심부름하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면, 또 하나의 별이라도 무언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하지 않고는 회전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 조그마한 하나의 심장이 고동치고 이 조그마한 하나의 두뇌가 사색한 것은 누구에 의해서인가. 그 고동을 치게 하고 그 사색을 하게 하고 그 생을 영위하게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신일테지.

선량한 우리 장로교인들은 이러한 문제들에 관대해야 하며, 이런 대상물에 반쯤은 미친 듯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해서 이교도 같은 사람들에 비해 우리 자신들이 월등하게 우수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신이여, 장로교파이건 이교도이건 묻지 말고 우리에게 모든 자애로움을 내려 주옵소서. 우리는 모두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니, 절실히 고칠 필요가 있나이다.

우리가 인생이라고 일걷는 이 잡다한 일에는 기묘한 때와 기묘한 사건들이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담긴 진의는 막연하게만 알고 있는데, 그 농담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실망하지는 않으며 별로 이의를 달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그는 온갖 사건, 주의와 신조와 이론, 눈에 보이든 안 보이든 그 모든 고난 따위가 아무리 어려워도 받아들이고 만다. 마치 위장이 튼튼한 타조가 총탄이나 부싯돌을 꿀떡 삼키는 것과 같이 사소한 고생이라든가 근심거리, 또는 앞날이 갑자기 암담해진다든가 생명의 위험이 닥친다든가 하는 것들은 말할 것도 없고, 죽음 그 자체도 그에게는 자기가 방심하는 틈을 타서 생면부지의 장난꾸러기에게 슬쩍 한 때 얻어맞은 것 정도로밖에는 생각하지 않는다. 즉, 대수롭지 않는 농담처럼 여겨질 수가 있다.

이 낙천적이고 자포자기적인 철학을 낳는 것으로 고래잡이의 위험에 견줄 만한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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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뢰님과 인간의 배꼽 - 히라코 와카 초기 작품집, S코믹스 S코믹스
히라코 와카 지음, 박소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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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브로큰 마리코‘를 읽고 (좋은 의미로) 큰 충격을 받았었다. 인상깊은 작가라 생각한다. 그와 같은 마음으로 이번 책도 기대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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