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용을 아직 먹지 않는다 1 - S코믹스 S코믹스
이나바 하치 지음, 천선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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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으로 나오니 좋네요. 책도 고급스럽고 내용 역시 재미있어서 만족합니다. 2권도 빨리 나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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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주부도 10
오노 코스케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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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에 이어서 이번 10권도 너무 재미있네요. 뭔가 어처구니가 없어보이면서도 뻘하게 웃긴, 일상 공감형 개그 같아서 좋습니다. 11권도 빨리 나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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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노 군에게 닿고 싶으니까 죽고 싶어 7
시이나 우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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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목님 에피소드의 최종장이 펼쳐지는 7권! 귀신이 된 아오노와 유리 간의 관계가 다시 한번 재정리(변화)되는 중요한 권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출판사의 꾸준한 출간을 응원하며 다음 8권도 기대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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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 나탄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 지음, 윤도중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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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이슬람교, 그리고 유대교 간의 화해를 다룬 레싱의 작품이다. 교리를 떠나 인간적인 순수한 감정과 사랑을 바탕으로 종교를 대해야 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바와 달라서 아쉽다. 전체적으로 약간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달까. 어색한 부분이 없지않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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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기적 - 프랑스 떼제와 신한열 수사 이야기 나와예수 2
신한열 지음 / 신앙과지성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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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떼제'라는 곳을 아는가? '떼제'는 프랑스의 어느 시골 마을의 이름이다. 하지만 요즘은 시골 마을의 이름보다는 특정 단체의 이름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바로 '초교파 기독교 공동체'인 '떼제'이다.


내가 '떼제'를 처음 만난 건 유튜브에 올라온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종교의 역사라든지 관련 다큐를 자주 보기 때문에 알고리즘으로 떴던 것 같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떼제'라는 공동체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의문으로 점차 빠져들게 되었다. 신앙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강한 여느 기독교 단체와 달리 믿음을 강요하지 않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저마다 다른 국적의 젊은이들이 모여 솔직한 마음으로 서로를 알아가는 이들의 모습들이 꽤나 신선했달까.


https://youtu.be/H7Eik5hgw5M

그들이 부르는 노래 또한 인상적이었는데, 보통 1,2,3절까지 가는 긴 찬송가 대신 한 두 구절로 된 아주 간단한 가사로 된 찬송가를 쓰며 누구나 부를 수 있게 했다는 점, 그리고 하나의 언어가 아닌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일본어, 심지어 한국어 등등 여러 나라 언어로 부른다는 점 같은 부분이 새로웠다. 이는 떼제라는 곳 자체가 어느 하나에 머무는 곳이 아닌, 여러 국가와 언어, 종파를 넘어 모두가 하나 됨을 추구하는 초교파적인 특징을 지니기 때문으로 보인다. 거기다 떼제는 기독교의 교리를 강의나 가르침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참가자(신자든 비신자든 상관없이)들이 하느님을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물론 중간에 교리 관련한 강의도 하지만 30분에서 1시간 정도만 하고 나머지는 묵상과 기도를 함). 위에서 말한 떼제의 노래는 이에 더해 조용하면서도 차분함 느낌을 주어 잠시 마음을 비울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준다.


아무튼,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개인적으로 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신자든 비신자든 차별하지 않고, 믿음을 강요하지 않으며, 국적이나 종파에 상관없이 누구나 받아주는 이 단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어떤 이유로 이런 단체가 만들어졌으며, 그 목적은 무엇인가 궁금했다. 아쉽게도 국내에 알려진 떼제 관련 책은 거의 없다. 있더라도 절판되었거나 찾아보기 힘들다. 아무래도 앞서 말했듯, 떼제가 어떤 교리나 가르침을 통해서가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따로 없는 것일 수도 있고, 주로 가톨릭 매체를 통해 가톨릭 단체로 잘못 알려져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잘 퍼지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히 현제 떼제에서 활동 중인 '신한열 수사'가 펴낸 <함께 사는 기적>이라는 책이 있었고, 이참에 읽어보게 되었다.


일단 '떼제'라는 곳은 무엇이며 그곳에서 살아가는 '수사'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책 속에서 신한열 수사는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떼제의 존재를 '공동체의 비유'라고 소개한다. 떼제의 창립자인 '로제 수사'는 혼돈 그 자체였던 세계대전을 직접 몸으로 겪은 사람이다.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전쟁을 치르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죽고 죽이고, 미워하고 증오하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같은 인간들끼리 이럴 수 있는가'하는 충격과 그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로제 수사는 이것이 상호 간의 이해와 화해가 부족했기 때문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상대가 누구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어떤 종파든 조건에 상관없이 화해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고 '떼제'라는 곳에서 동명의 단체를 만들었던 것이다.


다큐에서 로제 수사는 말한다, <우리는 다 같은 인간이고,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라고. 책에서도 떼제는 단순히 시골 산속에서 파묻혀 세상과 단절된 수도원 같은 곳이 아니라 모두가 모여 같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공동체의 모습을 몸소 보여주면서, 동시에 세상 속 다툼을 겪는 이들을 이곳 떼제에 모이게 하여 그들에게 화해와 이해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주는 것. 이것이 떼제의 존재 의의라고 나온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같이 살아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예시로서' 보여주는 공동체인 것이다. 종교적으로도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로 나뉜 기독교들의 화합을 중요시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떼제에서 중요시하는 건 하나 더 있다.

바로 젊은이이다. 떼제에선 매년 수만 명의 젊은이들이 모인다. 국적이나 나이, 종교에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데, 이는 떼제에서 열리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말하는 프로그램 중에는 기도하고 묵상하는 것도 있지만 거기에 한정되지 않은 여러 행사들이 있다. 개최 장소따라, 현재 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된 사건 사고(분쟁 사례)들을 바탕으로 함께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는 식의 프로그램도 있다. 이때 대다수의 사람들이 젊은이들인데, 모두가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있지만 떼제를 찾은 가장 큰 이유는 <이곳은 종교를 강요하지 않고 상대가 누구든 평화롭게 소통하며 평화를 꿈꿀 수 있다>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요즘 기독교에서 젊은이들의 빠져나가는 일이 다반사가 된 한국에선 젊은이들이 제 발로 찾아온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책을 보면 지금까지 알고 있는 기독교인들 중에서 젊은이들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높아 보이는 구절이 많이 보였다.

떼제의 수사들은 독신 생활을 하며 사유 재산도 없이 오로지 공동체 형제들과 더불어 살아간다고 한다. 속세를 떠나 살아가는 듯해 보이는 그들이지만 저자인 신한열 수사가 말하는 '오늘날 젊은이들'에 대한 생각을 보면 웬만한 보수 종교인들의 마인드보다 한결 현실적이라 할 수 있다.


책에서 신한열 수사는 젊은이들에게 어떠한 것을 강요해선 안된다고 말한다. 젊은이들은 결정보다는 질문이 더 많은 시기이고, 무언가를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로움이 필요한 세대라고. 우리같은 어른들은 그저 옆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며, 때로는 위로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떼제에서 왜 기독교적 가르침보다는 대화와 경청, 묵상의 시간이 많은가는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한 가지 더 흥미로웠던 건 떼제 특유의 기도 방식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떼제에선 묵상과 기도가 중요하다. 다 같이 모여 기도하는 곳을 보면 의자도, 높은 단상도, 심지어 기독교적 상징물도 거의 없다. 사람들은 아무 곳에서 앉아 기도를 드리며 수사들 역시 가운데에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앉아 기도를 드린다. 앞에는 꺼지지 않은 희망과 신앙을 상징하는 촛불이 그득하며 묵상의 마지막엔 서로 촛불을 나누며 희망의 씨앗을 나눈다. 그 누구도 다른 이들보다 높은 위치에 있지 않으며 모두가 평등하게 기도한다. 이는 약자를 중시하고 소박한 삶과 무한한 용서를 보여준 예수의 모습을 본받고자 하는 것에서 왔다고 한다. 떼제에선 신앙은 '신뢰'이며 그 신뢰란 거창하게 교리를 설명하거나 성대한 기도를 올리는 게 아닌, <우리는 그런 게 없어도 언제나 주님 곁에 머물러있겠습니다>라는 소박한 마음가짐이다. 이 역시 거창한 교리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우리나라의 몇몇 사이비 교단이나 무자비하게 십일조나 뜯어가는 여느 기독교인들과 전혀 다른 모습이라 신선했다. 이게 진정한 기독교가 아닐까?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건 그들의 세상을 넘어서서 종교계에서의 화해와 일치 운동이었다.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한 분이시다>라는 사실을 통해 가톨릭과 개신교, 정교회 모두 싸우지 말고 화해하길 바라는 떼제. 그렇다고 혼합주의로 치우쳐지지 않은 채 저마다의 다름을 인정하며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흔히 떼제를 기독교를 중심으로만 화해를 추구한다고들 하는데, 이슬람교, 유대교, 심지어 불교 등등 여러 종파와도 마찬가지로 화해를 추구한다.

한 번은 내전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해 온 이슬람교 난민들이 있었는데, 떼제에선 임시 거처가 필요한 이들을 기꺼이 초대해 정착을 위한 프랑스어 교육 주선은 물론이고, 그들이 따로 기도할 수 있도록 자리 또한 마련해 줬다고 한다. 이때 마침 프랑스에서 이슬람교도로 추정되는 테러리스트들이 테러를 벌여 수많은 사상자를 만들어낸 일이 발생했는데, 떼제에 머물던 이슬람교 난민들은 이렇게 말했다.

<저들은 진정한 이슬람교도가 아닙니다. 수사님, 저희가 저들을 대신해 무고한 희생자들을 위해 사과의 기도를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은 마련해 준 자리에서 한참을 기도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스님들이 부르는 성가라든지 세계 각국의 언어로 부르는 찬송가에 대한 에피소드들은 뭔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비신자였던 내가 기독교 관련 책을 읽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화해와 평화에 대한 희망을 얘기하는 본 책은 종교를 떠나 이와 비슷한 바람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헛된 희망이 될 수도 있는 이러한 바람을 누군가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바람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 사람이 예수를 믿는 진정한 기독교도라면 더더욱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언젠가 프랑스에 가게 된다면 이 떼제라는 곳을 한번 찾아가 보고 싶기도 하다.



우리는 ‘공동체의 비유‘이다.

우리는 분열된 그리스도인들 사이, 갈라진 민족들 사이에서 화해의 징표를 우리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그분 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결혼을 하든 독신 생활을 하든, 한국에서 살든 프랑스 혹은 어디에서 살 건, 하느님과 함께 그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나의 길이다.

우리 떼제의 형제들은 이곳에 오는 젊은이들에게 신앙을 주입하거나 일방적으로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 모색하고 성찰하고 해답을 찾도록 얘기를 들어주고 질문을 던지고 함께 기도할 뿐이다. 사랑과 믿음을 어떻게 강요할 수 있겠는가? 사랑이신 하느님은 우리 각자의 자유로운 응답을 기다리신다.
젊은이들은 현대의 절대적인 가치인 자유와 개성을 추구하면서도 공동체와 친교를 동경한다. 그래서 수도원이든 결혼이든, 공동생활에 투신함으로써 자유와 개성을 잃어버리고 단체나 가족에 얽매이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 많은 젊은이들의 공통적인 우려인 듯 하다.

한국 청년들의 고민과 어려움에 관해 듣다 보면, 문제의 본질이 개인보다는 사회(통념)나 제도, 부모나 기성세대에 있는 경우도 많다. 소수만 성공하며 다수가 좌절감을 맛보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 실패하면 자기 능력 부족으로 돌리며 자책하게 만드는 것도 같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경제적 삶이 부모들보다 못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 첫 세대다. 내가 볼 때 한국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에 비해 훨씬 더 개방적이고 융통성 있고 포용적이다. 이들은 거창한 꿈이나 대단한 성취가 없더라도 작은 것들에 감사하고 만족하며 행복을 찾을 줄도 안다. 또 거대한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일상의 구체적인 일에서 공정하지 않은 관행을 고쳐 나가려 애쓴다. 이들은 혈연, 지연과 학연에 매이지 않고 훨씬 더 자유롭다. 이들은 선배나 상사, 어른들이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보다 지금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본다. 젊은이들의 눈에는 과거의 민주 투사보다 지금의 비민주적인 상사의 모습이 더 현실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은 목마르고 배고프다.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물으며 삶의 의미를 찾는다. 삶과 신앙에 대해 해답보다는 질문이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오늘날의 보통 젊은이들이다.

그것(신앙)은 강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공동기도와 침묵, 단순 소박한 생활 가운데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다. 평화롭고 신뢰하는 분위기에서 며칠을 보낼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줄 뿐이다. 기도 시간에도 누구나 편안하게 참여하도록 배려한다. 어렵고 긴 말이 전혀 없다. 짧은 한두 마디를 여러 차례 반복해서 노래하면서 묵상한다. 때로는 말보다 침묵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발견할 수 있다.


기도는 생각을 채우는 것이기보다 비우는 것이다. 그 빈자리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분", "우리와 전혀 다른 분"이 찾아오신다. 기도는 내 처지와 상황에 대해 하느님께 설명하고 설득해서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시도가 아니다. 신뢰하는 마음으로 그분 앞에 머무는 것이다. 가난한 이의 기도를 하느님께서는 들어주신다. 가난한 마음, 부서지고 깨진 마음으로 그분께 향하는 사람, 절실한 마음으로 당신을 바라보는 인간을 하느님께서는 외면하지 않으신다.

희망은 함께 찾아가는 것이다. 고립되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가 ‘하느님‘이라도 하든 ‘하나님‘이라고 하든, 기도를 들으시는 이는 한 분이다. 다른 교파의 신자들이 비록 번역을 달라도 같은 성경을 읽고, 똑같은 ‘주님의 기도(주기도문)‘를 드리고, 같은 신경을 고백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있지 않는가? 그들 모두가 하느님(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이다.

그렇다, 평화(샬롬, 안녕)는 이미 주어졌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자애로우신 하느님은 무엇보다 참을성 있는 분이시다. 분명한 것은, 이 땅 위의 불의와 배고픔이 있는 곳, 억압과 소외가 있는 곳, 사람들이 안녕하지 못한 곳에서 그분은 오늘도 지극히 가난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태어나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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