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 - 오늘을 위해 내일을 당겨쓰는 사람들 더 생각 인문학 시리즈 9
양승광 지음 / 씽크스마트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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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하루 24시간을 보내지만, 질적으로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물리적으로는 24시간이지만 누구나 똑같은 비중으로 살고 있지는 않다는 말이다. 나의 선택으로 온전하게 보낼 수 있는, 나만을 위한 자유로운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진정한 자유란 내가 하고픈 일을 할 수 있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타인 혹은 타의에 의해 소모되지 않으며 자신의 능동적인 선택과 의지가 동반되어야 한다. 따라서 출퇴근, 학업, 업무, 가사노동 등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은 진정한 나의 시간으로 볼 수 없다. 나만의 시간, 얼마나 가지고 있는 걸까, 아니, 가질 수 있는 걸까.

 

개인의 생활세계는 노동하지 않는 시간(여가, leisure)에 만들어진다.” - 한동우 교수

 

자신을 경제인, 가족 구성원, 임금노동자, 연구자, 귀차니스트라고 표현하는 저자는 우리가 소유물이라 생각했던 시간이 왜 온전히 소유될 수 없는지, 우리의 시간은 왜 공평하지 못한지, 왜 오늘을 위해 내일을 당겨 쓰게 되는지를 묻고 있다. 책은 모두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저자의 차분하고 깊은 통찰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간명한 결론이 돋보인다.

 

1. 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

인간의 삶은 시간으로 채워졌기 때문에 삶이라는 말과 동의어이다. 어느 누구도 똑같은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로 삶이 공평하지 않듯 시간 역시 공평하지 않다.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픈 욕구에 더하여 의미를 지니려면 생존 이외에도 자유의 개념이 더해져야 한다. 능동적인 시간만이 진정한 자유인 반면 누구나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생존에 필요한 시간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시간은 공평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2. 직장인의 시간은 어떻게 달라질까

근로와 노동의 차이는 수동과 능동의 차이에 있다. 직장인들은 노동의 삶을 원하며 퇴근 이후에도 노동을 연장해야 하는 조악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법정 노동 시간보다 더 오래 일해도 보호받지 못하는 유권 해석의 모순, 은폐된 점심시간의 노동, 메신저 지옥 등 희생과 강요에 의한 직장인들의 애환을 예로 들고 있다. 직장 가까이 거주를 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한계를 두고 정신승리 이외에는 별 뾰족한 수가 없음을 토로한다. 생존에 필요한 직장인들의 시간은 극복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3. 비정규직은 어떻게 신분이 되었을까

대한민국에서만 통용되는 신분제 그 이름은 바로 비정규직. 요즘은 무기계약직이라는 대체용어도 있긴 하지만 정치적으로 옳지 못한 말이다. 기간제, 단시간, 간접고용과 같은 말 또한 우리 노동 형식에서 벗어나 있고 마땅한 명칭이 없어 생겨났는데 웃기지도 않게 상대 개념인 정규직은 이후에 생겼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되며, 원청업체의 갑질에 무방비로 놓인 약자인 동시에 차별적 신분의 또 다른 이름으로 등장한 비정규직은 사회적 정의에 어긋난다. 임금 격차를 줄이고 고용을 보장하며 신분에 무관한 노동을 통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적 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

 

4. 취업을 준비하는 시간은 동일할까

내일의 노동을 저당 잡히는 대학 학자금 대출로 졸업과 동시에 채무자로 시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사회생활 격차는 시작부터 벌어진다. 학비와 용돈 조달을 위해 시작한 부업 역시 업주의 인건비 절약을 이유로 보장받지 못해 두세 군데 더 뛰는 쪼개기 알바를 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신조어가 된 취업준비생은 취업 활동에 쓰인 시간이 곧 취업의 보장을 의미하지 못하기 때문에 경쟁 치열한 의자 빼앗기 놀이의 희생자인 셈이다.

 

5. 게으름과 노력, 그 일란성 쌍생아

근거 없는 자신감의 줄임말인 근자감은 결과적으로 자신감을 안겨주기에 저자는 이 조어를 좋아한다. 기대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게으르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게을러지려면 충분한 시간 여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시간이 충분한데 하지 않는 것은 능력 부족일 뿐 게으른 게 아니며 역량을 기대하게 만들고 결국 표현되기 때문에 게으름은 생각보다 괜찮은 일이다. 게을러져야 노력도 가능하므로 노력과 게으름은 반대어임에도 불구하고 닮은꼴이다.

 

6. 우리는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시간의 주인으로 사는 삶의 예로 대입시험과 사법시험 두 개를 제시한다. 대입시험은 부모의 욕망이 나에게 투사된 경우이나, 사법시험은 내 욕망이 실현된 것이므로 시간의 소유 면에서 의미가 달라진다. 시간의 주인으로 산다고 함은 욕망을 가진다는 뜻이고 이는 삶을 누린다는 말과 같다. 삶을 누린다는 말은 곧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는다는 뜻으로 우리는 인간답게 생활을 할 이유가 충분하며 이를 실현할 잉여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시간이 적용되지는 않지만, 최선을 다해 추구하면서 자신의 시간을 확대하는 삶이 필요하다. 이처럼 시간은 각자에게 모두 달리 나타난다.


이 책을 읽으며 시간이 가지는 의미를 돌아보고 인간들의 삶에 동질적으로 적용되느냐는 질문의 답을 사유해 보았다. 시간은 모두에게 각자 다른 모습으로 다가가며 이를 알아채기는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간은 불평등의 디폴트 값을 지닌다. 다만 강요되지 않는 나만의 자유로운 시간이 사회 구조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만큼은 누구나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 시간을 소재로 한 영화 두어 편이 떠오른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영화 <인 타임>처럼 시간을 매매, 탈취, 독점하여 영원불멸의 존재가 될 수도 없고 <어바웃 타임>처럼 임의로 시간의 앞뒤를 오갈 수는 없다. 하지만 시간으로 채워진 우리의 삶이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우리 사회에 제도화된 시간 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멈추지 않기를 바라며, 저자가 제시한 시간의 공식 [(시간+노력) x 역량+=성과]에서 시간이 최소한의 상수가 되도록 독자 여러분과 함께 고민한다면 더없이 행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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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도 싫고, 보수도 싫은데요 - 청년 정치인의 현실 정치 브리핑
이동수 지음 / 이담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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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건으로 가린 얼굴. 뒤집어 입은 교련복. 깨진 벽돌과 몰로토프 칵테일. 군부 독재 타도를 외치던 팔뚝질. 이게 다 뭐냐고? 영화 1987의 시위 장면과 겹치며 등장하는 멋진 주인공 강동원처럼은 아니지만 나름 군부 독재로부터 정치 민주화에 한 숟가락 얹어본 세대의 기억 속 장면들이다


그로부터 30년도 더 지나 비록 정치는 민주화되었다지만 경제 분야는 아직도 갈 길이 멀어 상황은 그다지 나아진 것 같지 않다. 피 끓던 청춘이 이제는 배 나온 아재가 되어 식구들 먹고사니즘에 지치고 아직도 진보냐 보수냐 진영 싸움하는 정치권에 진력이 난 요즘, 우리나라 정치 현실에 대해 2, 30대 청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던 차에 마침 이 책을 만났다.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 태어난 저자는 이제 30대에 막 들어선 젊은이지만 정치 활동에 관한 한 절대 초심자가 아니다. 이미 고등학생 시절부터 청년의회 활동을 시작하여 대학에서는 언론을 공부하였고 졸업 후에는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내기도 했으며 지금은 청년정치크루를 이끌고 있다.

 

책 제목처럼 저자는 분열로 망하는 진보와 부패로 망하는 보수를 모두 지켜보며, 이념과 패거리에서 벗어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지켜주는 상식정치의 현주소를 묻고 있다. 아직도 그저 그런 수준의 정치환경을 물려 준 앞선 세대로서 저자가 던지는 질문을 접하며 떠오른 옛말이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상식적으로 이 나라의 미래는 앞으로 죽을 날이 가까운 기성 정치인들보다 살날이 더 많은 젊은 정치인들이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지난 30년간 새 술을 담글 환경이 아직도 조성되지 않아 여전히 헌 부대에 술을 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곳곳에서 수준 이하의 언행을 일삼는 일부 정치인들을 볼 때마다 왜 불필요한 사회적 스트레스를 국민이 감당해야 하는가 자문도 많이 해보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능한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새 술을 담글 새 부대를 마련하면 될 것 아닌가.

 

저자는 청년들이 기성 정치인들과 공정한 정책 대결이 가능하도록 선거법을 정비하여 진영과 관계없이 소신껏 활동할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정치 초년생인 점을 고려하여 비례대표를 늘리거나 공천의 일정 부분을 할당해 달라는 요구 따위는 필요 없는 대신, 능력과 콘텐츠로 경쟁할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런 패기와 참신함이야말로 기성 정치인들에게 던지는 정책 대결의 도전장이 아니겠는가. 이 부분, 상당히 고맙고 마음에 들 뿐 아니라 정치의 장래를 낙관할 여지가 많아 보인다. 앞으로 저자와 같은 젊은 정치인들이 대거 입문 등용되기를 강력히 희망해본다.


 

사족으로 간접 민주주의, 대의정치의 한계를 극복하는 차원에서, 그리고 제대로 일하는 국회의원을 위해 어설프나마 다소 과격할 수 있는 제안 몇 가지를 적어보았다. 대한민국의 한 유권자로서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니 이로 인한 시비는 없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만 하면 모르기는 해도 정말 하고픈 사람만 할 수 있는 업종이 되지 않을까 싶다.

 

군필자(남성) 및 실거주 1주택자로 자격 제한. 국회의원 외 사학재단 사외이사 등의 겸직 금지. 보좌진과 비서 폐지. 최저시급의 5배 이내 급여. 고급 승용차 대신 자전거 지급. 입법 활동과 무관한 면책특권의 축소 또는 폐지. 해외연수 자부담. 무노동 무임금 원칙으로 국회 회기 중 결석 시 벌금부과. 일반 공무원처럼 58세 은퇴.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금지. 국회의원 단 하루만 해도 받는 연금제 폐지.’

새 술은 새 부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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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기계보다 특별할까? - 포스트휴먼의 시대, 우리가 생각해야 할 9가지 질문
인문브릿지연구소 지음 / 갈라파고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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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의료시설을 갖춘 병원에서 태어나고 무공해 완전연소 소각로에서 생을 마감하는 현대인의 모습에서 보듯, 삶과 죽음조차 단 하루도 문명의 영향을 비켜 갈 수 없는 우리는 지금 첨단 기술의 발달로 삶과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화된 포스트 휴먼(Post Human) 시대에 살고 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이 기술 발전의 끝은 어디까지이며 인류에게는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크게 기술의 발전으로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는 인간의 조건(1부), 기계와 인간이 서로 공존할 가능성(2부), 미디어와 인간 사이의 관계 재정립(3부)으로 범주를 나누고 각각 세 가지씩 흥미로운 질문과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 있다.



‘죽음’도 기술로 차단할 수 있는가

; 과학 기술이 인간의 죽음에 개입하면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상황과 그 변화의 의미

인간은 기계보다 특별한 존재인가

; 인간만이 우월한 존재라는 고정관념 변화, 인간과 기계의 관계성

기술은 자연과 소통할 수 있는가

; 인간과 기술의 균형적 관계 복원을 찾아가는 방법

힘든 노동은 기계가, 인간은 자유로운 여가를?

; 노동과 여가가 가진 본질적인 가치와 의미

기술로 인간의 도덕성도 향상시킬 수 있는가

; 기술과 도덕성 사이의 적절성, 정당성 관계

과학은 인간도 ‘제작’할 수 있는가

; 제작의 대상이 되어버린 포스트 휴먼 시대에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소셜미디어는 인간의 관계를 대신할 것인가

; 미디어 발전이 가져온 사회적 현상과 인간 사이의 관계성에 가져온 변화

빅 데이터가 세상을 바꿀 것인가

; 가치 중심적인 데이터 활용과 관리에 관한 질문

가상현실, 세계는 진짜 존재하는가

; 정교해진 가상현실이 인류의 마지막 플랫폼이 될 것인가


질문마다 주로 영화와 문학작품을 소개하며 위와 같이 질문하게 된 배경 지식을 제공하고 있으며, 큰 담론에서는 견해를 같이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태도를 보이는 철학자들의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한 가지 질문에 다양한 시각의 답변이 나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각 챕터의 말미마다 영화의 등장인물끼리 가상의 인터뷰를 갖게 함으로써 서로 다른 시각의 차이점을 파악하기 쉽게 하였다.

아홉 개 챕터마다 함께 보면 좋은 영화로 추천된 3가지와 본문에 예시된 영화들을 다 합치면 39편에 이른다. 나름 영화 좀 본다는 애호가로서 반가운 마음에 세어보니 다행스럽게도 절반 이상을 관람하였다. 평소 문화적 배경의 이해를 통한 어학 학습을 강조해 왔는데 그 혜택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영화가 제시하는 메시지를 깊이 있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 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흔히들 기술력 자체는 도덕이나 윤리가 없다고 말한다.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중요하며,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생활이 더욱 편리해지거나 기술의 노예가 될 수도 있음을 뜻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인간 본성에 미칠 영향, 그로 인한 생활의 변화, 무엇이 가장 인간을 인간답게 해 주는 기술인지를 묻는 진지한 철학적 질문과 답변이다.

이 책에 제시되는 수많은 공상과학 영화와 저작들은 미래 기술이 적용된 후 변화될 환경을 예측할 수 있는 훌륭한 시뮬레이션이 되어 준다. 이 책은 상상력이란 인간만이 가진 특별한 재능인 동시에 알 수 없는 미래를 풀어가는 판도라의 상자 열쇠가 되고 여기에 기술력이 더해지면 실로 인간의 일상에 상상 이상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며, 상상력에는 옳고 그름의 기준이 없으므로 반드시 실행 이후에 다가올 결과를 예측하도록 더더욱 진지한 가치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잘 제시된 철학자들의 관점과 영화를 참고하면 위에 나열한 아홉 가지 질문에 대한 각각의 답을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철학이야 워낙 문외한이라 그렇다 치고, 간략히 소개되었지만 관람하지 못한 영화들은 인터넷을 이용하여 소개 영상과 개요 정도만 파악해도 도움이 된다. 필자의 자녀가 그랬듯 굳이 왜 그런 수고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기왕에 받을 충격이라도 난데없이 한 대 얻어맞는 것보다는 알고 맞는 게 훨씬 덜 아프다는 ‘몸빵의 법칙’을 믿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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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인간 - 불신과 불공정, 불평등이 낳은 슬픈 자화상
김기헌.장근영 지음 / 생각정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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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 영감을 받아 초등학교 입학 직후 첫 지필고사부터 대졸자 선발시험에 이르기까지 과연 몇 번의 시험을 치렀을까 세어보려 시도했다가, 그만두었다. 그러고 보니 제도권 교육의 지필고사부터 온갖 학위, 자격, 공인 어학 능력, 대기업 입사는 물론 이민 가고 싶어도 시험을 보아야 하는 세상이다. 하기야 우리 인생 자체가 시험인데 따져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고 지금의 밥벌이조차도 연속된 시험을 거친 결과물이 아닌가.

 

사회학 박사와 심리학 박사가 힘을 합쳐 시험을 주제로 책을 썼다. 시험에 관한 기억을 돌이켜보니 씁쓸한 이유는 이 책의 부제에 표현된다. ‘불신과 불공정, 불평등이 낳은 슬픈 자화상이란다. 그러면서 다시 질문을 던진다. 대체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크게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대한민국이 어떻게 시험 공화국이 되었는지, 한국에서의 시험이 지니는 특수한 의미는 무엇인지를 찾아보고(1), 불신과 불공정이 낳은 슬픈 자화상으로 그려지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상을 돌아보며(2), 앞으로 변화가 예견되는 세상을 위해 시험에 매몰되지 않을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3).

 

저자는 우리나라 시험문화의 특징을 고부담 시험(high-stakes exam)’으로 정의한다. 단순히 배운 내용을 확인하고 이해도를 점검하는데 그치지 않고, 시험 성적에 따라 상급학교 진학 또는 취업과 승진이 결정되며 심지어는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로 이루어져 그 압박감은 최고조에 이를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에게 시험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투명성과 그로 인해 보장되는 공정성이며, 시험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커녕 그 순기능에 매료되어 선발이나 자격 부여와 같은 중요한 사안일수록 시험에 의존하게 된다고 말한다.

 

제도권 교육에 몸담은 필자의 경우 시험 제도와 더불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학생들의 심적 신체적 피로도를 높여주는 네 차례의 정기고사와 수행평가는 물론 각종 경시대회와 전국 학력평가 삼단 콤보를 어찌어찌 막아내면 시험의 끝판왕 수능이 그들을 기다린다. 해마다 바뀌고 복잡해지는 입학전형 탓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준비해야 하는 수험생의 입장에서 지금의 제도는 부담은 커지고 과정은 더 복잡해졌을 뿐이다. 이는 또한 곁에서 이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야 하는 학부모들을 비롯하여 사회 계층 전반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물론 힘들기로 말하자면 내 자식들처럼 수능시험을 앞둔 고3 수험생들 앞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겠다. 시험 제도가 곧 사회 문제의 한 축인 셈으로 그 여파가 이만저만 한 게 아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흔히 목격하는 안타까운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전체 고졸자 가운데 약 19%라는 무시할 수 없는 수의 인원이 졸업은 하되 학업이 부실하여 진학은 물론 취업도 못 하고, 제대로 된 직업 훈련도 받지 않은 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계층이 된다. 이들에게 가능한 선택은 군 입대 혹은 단순 일용직 등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자신의 힘으로 인생을 꾸려갈 만한 역량을 갖춘 학생들이 얼마나 되겠는가를 고려하면, 시험은 계층을 선별하고 잘라내는 훌륭한 도구이다. 시험의 응시 기회만이 아니라 시험을 치를 수 있기까지의 과정에 미친 외부의 영향력으로 인해 이미 그 결과가 예견된다는 점이 문제이다. 양질의 경제인구로 흡수되지 못하는 현상이 계속되면 그 결과는 국가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질 것이다. 인구 절벽과 더불어 증가하는 이민 인구의 유입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매년 요동치는 입시제도 역시 이 혼란의 불바다에 기름을 붓고 있다. 마치 영토가 없어 헤매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정착지 한편을 내주었던 팔레스타인이 핍박을 받듯, 처음 시작은 미약했던 수시모집이 공정성 훼손 요인으로 지목되자 이제는 정시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선발 비중이 아니라, 공정하고 투명하기는 해도 소기의 교육적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시험 제도의 한계에 있다. 공부의 흥미를 제거하는 선행학습과 더불어 꼬리가 개 몸통을 흔들 듯 평가를 위한 학습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과거 학업 인구를 대량 배출하고 노동력을 대량 고용하던 시대에는 적합했을지 몰라도, 개개인의 특성과 능력이 더욱 중시되는 추세의 환경에서는 학습자의 성장과 발전이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되면서 시험 역시 이러한 흐름에 합당한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선다형 지필시험은 응시자의 창의력이나 유연성은 측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지식의 반감기라는 말처럼, 예컨대 심리학 분야의 지식은 약 7년이면 새로운 것으로 대체된다고 한다. 반드시 정답이 있고 이를 찾아야 하는 객관식 선다형 시험은 지금까지의 정답을 의심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그 대안을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찾아보는 창의적 문제해결능력을 키울 수 없다면서,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고부담 시험에 매달리는 지금의 교육으로 정답을 확신하지 못하는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수 있겠는가를 묻고 있다.

 

우리 기성세대는 세계로 뻗어 나갈 충분한 역량을 갖춘 인재들이 나아갈 길을 닦아줘야 할 의무가 있다. 소 팔고 땅 팔아 댄 돈으로 시험 만능주의에 승리하여 고관대작이 되었지만, 영혼 없는 사리사욕으로 나라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일부 정계 인사들을 보면 젊은 층에 이런 나라 물려줘서 미안해소리가 절로 나온다. 우리 자신과 다음 세대를 위해 고부담 시험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데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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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 - 마음을 얻는 지혜 위즈덤하우스 한국형 자기계발 시리즈 2
조신영.박현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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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강압으로 법대에 진학하지만, 실제 하고팠던 일은 바이올린 제작자였으며 음악에 관한 관심으로 악기 제조회사의 홍보부장으로 일하는 주인공 이청. 아내의 말은 물론 회사 동료들 말도 귀담아듣지 않고 알았다고만 건성으로 대답하는 버릇으로 생긴 그의 별명은 이토벤이다.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퇴사하여 악기 대리점장이 되었으나 개업하기로 한 전날 쓰러져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아내와 주변 사람들이 다 떠나가도록 자신에게만 몰두했던 그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폐증 증세를 보이는 아들에게 직접 제작한 바이올린을 남겨주리라 결심하고 강원도의 공장으로 내려가 그곳 사람들과 부대끼게 된다. 뇌종양이 오른쪽 청신경을 눌러 말년의 베토벤처럼 청력을 거의 잃으면서 말하는 사람의 입술을 읽는 독순법으로 겨우 의사소통할 수 있게 된 그는, 약해진 청각 기능을 통해 역설적이게도 진심으로 타인의 말을 듣는 사람으로 변모한다.

 

재정적 난관에 부닥쳐있던 회사는 우여곡절 끝에 이토벤과 공장 3팀이 연구 개발한 신공법으로 개선된 성능의 바이올린 대량생산 체제를 도입함으로써 활로를 찾게 되고, 이 과정에서 사장은 금전적 이익보다 더 소중한 경청의 위력을 깨닫게 된다. 이토벤은 회사 창립 20주년 연주회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된 후 아들의 바이올린 연주 장면을 소리로만 접하며 생을 마감한다. 자신과 너무나도 닮은 아픔을 겪는 아들에게 그는 모든 걸 다 내어주고 싶었다. 마치 사람에게 과일부터 그늘, 놀이터, 목재까지 제공하고 베어져 사라진 후에도 그루터기마저 쉬어 갈 의자가 되어주는 나무와도 같은 감동적인 모습에서 우리의 굴곡진 인생을 보게 된다.

 

이 책은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와 강렬한 인상을 주는 전화위복 소재를 잘 섞어 만든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아무리 훌륭한 격언과 말씀이라도 듣는 이의 처지에 따라 온전히 전달되기 어려운 점을 생각하면, 구성면에서 경청을 소재로 한 편의 이야기로 엮어낸 부분은 매우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잘 짜인 줄거리로 실제 영화나 드라마의 각본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한편 그가 열악한 환경에서 바이올린을 만들면서도 독순법 치료를 위해 구 박사와 메시지로 대화를 주고받는 내용은 사실 독자들에게 경청을 잘 설명하는 장치로 쓰였다.

 

우리는 대부분 상대의 말을 듣기도 전에 미리 나의 생각으로 짐작하고 판단하곤 합니다. 상대의 말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빈 마음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텅 빈 마음이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나의 편견과 고집을 잠시 접어 두라는 의미입니다. (p67) 사실 청각 기능과 듣기 능력은 동일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마치 육체적으로 청각 기능에 이상이 없으면, 누구에게나 듣기 능력이 저절로 따라오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지요. (p82)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의 구조 가운데 현의 울림을 키워주기 위해 비어있는 공간은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의 울림을 비유한 것으로, 다른 등장인물의 이름과 같이 공명통 혹은 사운드박스로 표현된다. 사람들 사이에 진실이 울리게 하려면 마치 악기의 공명통을 잘 다듬어야 하듯이 마음을 비우고 정성을 다해야 한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자기 말을 들어주고 자기를 존중해주며, 이해해주는 것이다. 귀가 둘이고 입이 하나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진심이 담긴 칭찬을 받은 사람은 예외 없이 마음의 문을 여는 법이다. 모든 것을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경청을 실행하기 위한 행동강령을 제시한다.


공감을 준비하자

상대를 인정하자

말하기를 절제하자

겸손하게 이해하자

온몸으로 응답하자

 

무엇을 하든 사람이 혼자의 힘으로는 성공할 수 없음을 깨닫는 요즘, 이제는 나의 성공을 도모하려면 남을 먼저 도와야 한다는 말을 실천해 볼 때이다. 성공하는 사람 대부분이 다른 사람을 성공하게 하는 사람이고, 성공하는 조직은 다른 조직을 살리는 조직이므로 그러한 성공은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일찍이 대인 관계의 대부인 데일 카네기도 그의 저서에 경청의 중요성을 언급하였고,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서도 이야기를 잘 들어준 상대가 나의 편이 되는 일화를 보여준다.

 

말하기는 지식의 영역이지만 듣는 것은 지혜의 영역으로, 남의 말을 경청해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동시에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지름길이며, 우리가 타인을 경청해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삶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바꿔주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그러니 온 정성을 다하여 내 마음의 소리를 듣고 타인의 마음에 귀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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