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너는 편하게 살고자 하는가 라이즈 포 라이프 1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요한 옮김 / RISE(떠오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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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의 글은 너무나도 감성이 풍부하고 위트가 넘쳐흐르며, 그의 작품들을 평가하기란 마치 컵에 폭포수를 담아 마시려는 시도와도 같다. 솔직히 니체가 철학자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조차 잘 모르겠다. 아마도 그는 수필가, 시인, 현자, 신경증 환자, 광적인 광인, 선견지명이 있는 예언자로 더 잘 묘사될 수 있겠다. 사실 그의 정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어떤 비교 기준 없이 니체와 그의 글을 측정하기란 난감하다. 유일한 방법은 니체를 그 자신과 비교하는 것이다.


그의 전체 저작을 놓고 보면, 이 책(원제 The Joyful Wisdom)은 분명히 니체의 강력한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책은 그가 바그너와 결별하고 쇼펜하우어를 포기한 후, 여전히 그의 가장 특징적인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있던 중기의 작품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 책에서 니체는 "신은 죽었다"는 첫 번째 선언을 했으며, 영원한 회귀에 대한 첫 번째 언급도 있다. 니체의 과학, 인문주의, 자유주의,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덕에 대한 많은 비판이 이 책의 페이지에서 초기 형태로 나타나 있으며, 이는 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에서 더 완전하게 발전된다.

 

니체의 중심 생각은 간단히 말해 서구 역사의 근본적인 가치와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었다. 그중 많은 부분은 소크라테스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니체는 소크라테스를 경외와 공포가 섞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플라톤의 작품에서 소크라테스는 이상으로 바뀌며, 그는 냉정하게 논리적이고 모든 감각과 감정을 경멸한다. 그는 우리의 일상 세계가 저 너머의 세계보다 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예술은 지식이나 지혜의 원천이 아니라 단지 감각을 현혹시키는 것이라 본다. 그는 행동보다는 사색이, 열정보다는 평온이 낫다고 여기며, 도덕적 행동이 행복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니체는 이 교리 집합이 기독교로 변형되었으며, 이는 니체가 나중에 "노예 도덕"이라고 부르는 특징을 추가했다고 믿는다. 기독교 설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온유함, 연민, 친절, 부드러움, 동정심의 찬양이 그것이다.


니체는 이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랫동안 고군분투했으며, 그 과정에서 그의 의심하는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전시켰다. 니체는 모든 수용된 관념, 자동적인 충동, 오래된 전통, 위로가 되는 생각, 기분 좋은 가정, 일반적인 의견을 의심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거미줄에서 자신을 풀어내고 새로운 명확한 시각으로 세상을 보기를 희망했다. 그는 유럽의 도덕을 멀찌감치서 조망하면서 과거와 미래의 다른 도덕과 비교해 보고 싶다면 도시에 들어가서 마치 도시의 탑들이 얼마나 높은지 알고 싶은 방랑자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의 사회와 문화를 완전히 뒤로 하고 멀리서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마도 그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니체는 먼저 물리적으로 자신을 고립시키고, 친구와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혼자 생활하며, 바젤 대학교에서 받은 연금으로 생활했다. 이 관점에서 니체는 자신이 인식한 서구 문화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분명 처음에는 시스템 구축이 아닌 공격이었다. 니체는 어떤 시스템에서도 벗어나 생각하려 했고, 끊임없이 변하는 지반 위에서 춤추며, 출발점으로 어떤 가정도 취하지 않으려 했고, 전통적인 의견으로 가는 모든 충동을 불신했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아포리즘(경구)으로 글을 쓴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돌파구에서 빨리 후퇴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는 그가 비판하려던 가정으로 다시 끌려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깊은 문제에 접근할 때 냉수 목욕처럼 접근한다. 빨리 들어가고, 빨리 나오는 것이다. 니체는 이 작업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이라고 느꼈다. 그의 유명한 말 "신은 죽었다"는 선언은 신의 개념이 더 이상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니체는 이를 지적에 그치지 않고 미학적으로도 설명한다. 기독교에 대해 결정적이지 않은 것은 우리의 취향이지, 더 이상 합리가 아니라고 했다. , 오래된 세계관은 지적으로 파산했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매력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신의 죽음은 하나의 고립된 사건이 아닌 문화의 결정적 전환을 의미했다. 우리의 기본적인 가정, 즉 진리, 도덕, 정의, 삶에 대한 부분들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세계관의 지지가 없다면 사람들은 이 가정들을 단순한 편견으로 보기 시작할 것이다. 실제로 니체가 가장 즐겨 지적했던 것 중 하나는 우리가 기독교적 가정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진리가 외관보다 더 가치 있다는 생각은 모든 진리가 신에게서 나온다는 오래된 믿음에서 비롯된 편견이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며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현대적 아이디어는 모두가 신의 눈에 평등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니체는 결국 자신을 반기독교인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의 기독교 반대는 리처드 도킨스나 버트런드 러셀과는 전혀 다르다. 이들은 기독교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에 반대했던 반면, 니체는 기독교가 생명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반대했다. 기독교는 인류를 본질적으로 죄악스럽게 여기며, 모든 육체적 쾌락을 수치스럽게 여기며, 이 지상의 삶을 추악하고 비참하다고 비난하며, 내세에 희망을 걸며, 약함의 미덕을 찬양하는 종교다. 병자에 대한 연민, 같은 신을 믿는 신자들에 대한 제한적인 상냥함, 전능한 신 앞에서 보이는 온유한 태도를 보라.


이 모든 것은 니체에게 생명에 반대하는 것, 죽음을 갈망하는 병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니체에게 기독교는 약한 몸과 건강하지 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나머지 인류에게 그들의 병을 강요하려는 시도였다. 이는 허약하고 비참한 사람들이 나머지 인류를 그들의 수준으로 끌어내리기 위해 만든 시스템이었다. 이에 대해 니체는 생명 긍정적 철학을 선언한다. 이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기본 교리는 amor fati, 즉 운명 사랑이다. 니체에게 이상적인 것은 자신의 삶을 너무나도 사랑하여 반복적으로 똑같은 행동을 하며 다시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영원한 회귀이다.

 

니체의 사상을 그의 삶과 성격 없이 논의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니체는 병약한 사람이었으며, 성인기 내내 극심한 통증을 동반한 질병(아마도 매독?)에 시달렸다. 따라서 철학이 생명 부정적이냐 긍정적이냐의 문제는 니체에게 개인적인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초월하고, 자신의 고통 때문에 생명을 폄하하는 충동에 저항하며, 대신 즐거운 지혜를 키우고자 했다. 따라서 그의 철학은 매우 개인적이었고, 그의 글에서는 그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니체는 분명히 깊이 내성적인 사람이었으며, 그는 종종 자신을 우주와 혼동했다. 그는 결코 좋은 학자가 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편견을 한순간도 제쳐두고 중립성을 시도할 수 없었다. 대신, 니체는 세계를 자기 생각의 배경으로 취급하며, 사물 자체보다는 사물에 대한 자신의 의견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그는 매우 놀랍고 독창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어서 대부분 경우 흥미진진한 경험을 제공하지만, 이는 또한 명백히 터무니없고 경험적으로 거짓인 진술로 종종 이어진다. 더 나아가, 니체의 깊은 내성은 결국 심각한 자기애로 변했고, 이는 그의 후기 저작의 배경을 침울하게 만들었다.


앞서 말했듯이, 니체의 가장 강력하고 다재다능한 무기는 그의 의심이었다. 그의 깊은 불신은 그를 놀라운 결론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가끔 그의 의심은 냉소로 치닫는데, 냉소는 매력적인 자질이 못된다. 이 냉소와 자기애의 조합은 때때로 니체를 어리석은 결론으로 이끌었다. 예를 들어, 여성에 대한 그의 많은 바보 같은 발언들이 그러하다. 이러한 자질들은 니체를 오늘날 대부분 사람에게 극도로 반동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이라고 여기게끔 했다. 그의 말은 인류의 무리, 하찮은 자들, 어리석은 대중에 대한 모욕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전통적인 도덕에 대한 그의 비판은 때때로 다음과 같은 잔인한 결론으로 이어진다. “큰 고통을 가하지 않는다면 위대한 것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가장 작은 일이다. 약한 여성과 심지어 노예조차도 종종 그 분야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한다. 그러나 큰 고통을 가하고 그 고통의 비명을 들을 때 내부적인 고통과 불확실성으로 인해 멸망하지 않는 것그것이 위대함이며, 위대함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니체의 성격이 얼마나 매력적이든, 그의 결론이 얼마나 달갑지 않든 간에, 그의 책은 여전히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단순히 산문 작가로만 놓고 보아도 니체는 일류에 속한다. 그의 산문은 이글거리는 불꽃이 말하는 것 같다. 나아가 그의 책은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고, 너무나도 열정이 풍부하고 넘쳐흐르며, 그의 정신은 매우 민첩하고, 그의 성격은 매우 독특하며, 그의 결론은 매우 독창적이어서 그의 책을 읽고 나면 영감으로 머리가 어지러울 수밖에 없다.


이 책에 담긴 니체의 주요 사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았다.

1. 신의 죽음 (God is Dead)

이 책에서 니체는 "신은 죽었다"는 유명한 선언을 처음으로 소개한다. 이는 인간 사회에서 종교와 절대적 도덕적 기준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전통적인 가치가 붕괴된 이후 인간이 직면하는 허무주의와 새로운 가치 창조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2. 허무주의 (Nihilism)

니체는 종교적 가치의 붕괴와 이에 따른 허무주의의 도래를 경고한다. 그는 기존의 가치가 무너진 상태에서 인간이 직면하는 무의미함과 방향 상실을 지적하며, 이러한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3. 예술가적 본능 (Artistic Instinct)

니체는 예술가적 본능을 통해 삶의 의미를 재창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예술가가 자신의 삶을 예술 작품처럼 창조하듯 개인도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삶의 창조적 가능성 및 예술적 표현을 통한 자기실현을 강조한 것이다.

 

4. 영원 회귀 (Eternal Recurrence)

이 책에서 니체의 중요한 개념인 영원 회귀의 아이디어가 처음으로 나타난다. 이는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삶이 무한히 반복된다고 가정하고, 그러한 삶을 사랑하고 긍정해야 한다는 도덕적 시험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삶의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행동과 선택에 대해 깊이 숙고하게 만든다.

 

5. 건강한 삶에 대한 찬양 (Praise of a Healthy Life)

니체는 건강한 삶과 정신을 찬양하며, 이러한 건강이 삶의 활력과 창조성의 원천임을 강조한다. 그는 병약함과 퇴보를 경계하고, 생명력과 건강을 통해 자신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삶을 지향한다.


6. 디오니소스적 삶 (Dionysian Life)

니체는 "디오니소스적 삶"이라는 개념을 통해 충만하고 열정적인 삶을 제안한다. 아폴론적 질서와 합리성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열정, 혼돈, 창조적 에너지를 강조한다. 니체는 디오니소스적 삶이 인간 존재의 본질적 측면을 반영한다고 보았다.

 

7. 철학적 유머와 경쾌함

이 책은 니체의 철학적 사유와 유머가 결합된 작품으로, 무겁고 심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경쾌하고 가벼운 문체를 유지한다. 철학적 사유의 즐거움을 강조하며, 독자에게 철학적 탐구의 기쁨을 느끼게 한다.

 

결론

이 책은 니체의 중기 사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품으로, 그의 주요 철학적 개념들이 집약되어 있다. 신의 죽음과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가치 창조, 예술적 본능을 통한 자기 실현, 건강한 삶의 찬양, 영원 회귀 등의 주제를 다루며, 니체의 독특한 철학적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 니체의 사상은 여전히 현대 철학과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 책은 그 이해를 위한 필수적인 텍스트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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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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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너는 편하게 살고자 하는가 라이즈 포 라이프 1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요한 옮김 / RISE(떠오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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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얇고 가벼운 문고판에 경쾌한 문구로 쓰인 니체 인생 중기의 책이지만 내용 만큼은 벽돌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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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안부를 묻습니다 - 나다움과 교사다움 그 사이에서
강은우 외 지음 / 에듀니티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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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이 심각하게 침해당하는 요즘 샘들의 안부가 궁금하네요 읽고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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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바이러스 - 잊혀졌던 아군, 파지 이야기
Tom Ireland 지음, 유진홍 옮김 / 군자출판사(교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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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실린이 발견되기 10여 년 전인 1910년대, 자칭 미생물학자 펠릭스 드허렐르는 실험실에서 설사를 유발하는 박테리아를 배양하고 있었다. 프랑스인인지, 벨기에인인지, 캐나다인인지 아무도 모를 정도로 신분이 불확실한 과학자였던 그는 멕시코의 골칫거리 메뚜기떼를 전염시켜 박멸할 수 있기를 원했다. 치명적인 미생물 수프를 배양하던 중 그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박테리아가 만든 얇은 막 중 하나에 정체불명의 존재가 구멍을 낸 것이었다. 그는 그 구멍에서 샘플을 채취하여 다른 박테리아 접시에 뿌렸고 같은 효과를 얻었다. 구멍은 더 늘어났다. 분명 그는 뭔가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정체를 알지 못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범인은 박테리아를 잡아먹는바이러스의 일종인 파지(phage)였다. 이 책은 종종 무시되어 왔지만 엄청나게 풍부한 파지에 대한 다채로운 구원 이야기이며, 과학자들이 2050년까지 연간 최대 천만 명의 사망자를 초래할 것으로 추정하는 항생제 내성의 실존적 위협을 잠재울 수 있는 파지의 잠재력을 말하고 있다.


드허렐르와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의해 파지는 콜레라 퇴치를 위한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그러나 1940년대에 페니실린을 상용화하는 방법이 발견되면서 '항생제 시대'가 열리자 유럽과 미국에서는 파지 치료법이 돌팔이로 여겨지기 시작했는데, 이는 파지와 달리 항생제가 자본주의 사회의 틀에 맞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자본가들은 특허를 좋아한다. 특허 제도의 재미있는 점은 자연물 전체에 특허를 줄 수는 없지만, 그 부산물을 추출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특허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곰팡이의 분비물인 최초의 항생제는 전체 바이러스인 파지보다 미국에서 특허받기가 더 쉬웠다.


초기 미생물학자들은 종종 한 환자에게서 파지를 채취하여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다른 환자에게 투여했지만, 다른 모든 가능한 오염 물질로부터 착한 바이러스를 분리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없었다. 또한 파지는 특정 종의 박테리아에만 효과적이기 때문에 광범위한 병원균을 공격할 수 있는 페니실린과 같은 항생제보다 효과가 떨어졌다. 특히 강대국들의 경쟁으로 서구의 페니실린 생산 방법이 냉전의 비밀이 된 후, 소련에서는 이데올로기적 악감정으로 인해 파지 치료법이 더 좋은 평판을 얻었다. 조지아의 트빌리시에서는 파지 물약이 번성했는데, 드허렐르의 연구 덕분에 연구자들이 국영 연구소를 설립할 수 있었다. 세계 2차대전에서 스탈린그라드 포위 공격 중 콜레라가 창궐했을 때 훔쳐 온 독일군 시체에서 채취한 파지가 소련군이 나치를 물리치는 데 도움을 준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파지는 서양 일각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다. '파지의 영부인'이라 불리는 생물학자 베티 커터(Betty Kutter)는 워싱턴주 올림피아에 있는 파지 머리 모양으로 지어진 집에서 살고 있다. 1996년 트빌리시의 연구소에서 일하던 커터는 디스커버(Discover) 잡지의 기자에게 소련식 파지 치료의 효과를 극찬했다. 이 치료법은 FDA의 승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조지아는 절망에 빠진 미국과 서유럽 감염 환자들의 메카가 되었다. 이 연구소는 여전히 운영되고 있으며 수백 명의 파지 과학자들이 파지 머리 조형물이 거리에 늘어선 트빌리시에서 학회를 열기 위해 모인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에서 파지 치료는 여전히 최후의 수단으로 간주되지만, 과학자들은 파지 칵테일을 정제하는 데 더 능숙해졌고 파지의 운명은 반전되었다.


파지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저자는 특정 박테리아 병원균과 싸우기 위해 파지를 신중하게 조합했을 때 놀라운 의료 사례와 기적의 치료법을 설명하면서 파지 치료의 가능성을 내비친다. 특히, 세계보건기구에서 지구상 최악의 박테리아로 지정한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균에 감염된 남편을 위해 파지 치료를 받기까지의 힘든 과정을 역학자인 아내 스테파니 스트라스디가 쓴 책 '완벽한 포식자'에 나오는 이야기를 요약 소개한다. 2015년 캘리포니아의 한 정신과 의사가 이집트로 휴가를 떠났다가 이 초강력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돌아왔는데, 파지 치료가 그의 생명을 구했고 이 시련을 다룬 책이 출간되면서 파지의 위상이 높아진 것이다.


박테리오파지가 지구상에서 가장 흔하고 다양한 생명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박테리오파지는 토양, 공기, 물 등 박테리아나 고세균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바닷물 한 티스푼에는 수백만 개의 박테리오파지가 포함되어 있다. “빛의 파장보다 더 작은박테리오파지는 박테리아 세포를 표적으로 삼아 침입하여 자신을 미친 듯이 복제하고, 그 구성 요소가 자발적으로 새로운 입자를 스스로 조립한 다음, 종종 폭발적으로 빠져나가며 그 과정에서 박테리아 숙주 세포를 죽인다.


지구상에는 박테리아를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유기체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박테리오파지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박테리오파지가 '착한 바이러스'로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테리오파지는 박테리아 개체군을 조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익한 박테리아와 유해한 박테리아의 성장을 모두 조절할 수 있어 항생제 내성 균주를 퇴치할 수 있는 유망한 후보이다. 러시아는 1920년대부터 파지 요법을 활용해 왔는데 긍정적인 측면은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러시아 이외의 국가들은 무얼 하고 있었을까? 좋은 질문이다. 이러한 유형의 치료법은 제약 회사가 행정기관으로부터 특허를 낼 수 없으므로 이를 추구할 유인책이 거의 없다. 또한 1회 생산량이 엄격하게 통제되지 않기 때문에 FDA는 이를 승인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측면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두 가지 시사점이 있다. 첫째, 인체와 세상의 설계는 놀랍도록 닮아서 견제와 균형 기능이 내장되어 있으며 우리는 이를 활용하여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둘째, 파지 요법과 같은 간단한 치료법은 그 효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에게 집중적으로 판매되는 새로운 의약품에 밀려 뒷전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파지가 발견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800년대 말, 과학자들은 액체를 여과하여 모든 박테리아를 제거할 때 여과된 액체가 박테리아 배양액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왜 그랬을까?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연구자들은 여과된 액체에 너무 작아서 광학 현미경으로 볼 수 없는개체가 포함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곧이어 과학자들은 구소련, 중부 유럽 전역, 프랑스에서 이 여과 액체를 항균 치료제로 사용하였고 1930년대에 항생제가 발견되면서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된다. “20세기 초 수십 년 동안 전 세계는 파지에 열광했고, 파지 치료는 어디에나 있었다.”라고 과학 작가인 저자는 말한다. 오늘날에도 항생제 생산에 드는 높은 비용 때문에 폴란드 브로츠와프, 러시아 일부 지역, 특히 조지아에서는 수십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파지 요법'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파지 요법이 항상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파지는 다루기 까다롭기 때문이다. 일부는 감염력이 약하고 다른 일부는 특정 균주만을 표적으로 하는 초특이적존재이다. 기술 자체가 원시적이고, 정부는 전임상 시험에 대해 느슨하며, 제약 회사는 파지에 대한 특허를 받을 수 없으므로 상용화에 관심이 없다. 또한 특정 박테리아 균주를 공격하는 파지를 식별하거나 설계하기가 어렵고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데다 치명적인 질병에 걸린 사람에게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그런데도 몇 가지 극적인 치료법이 있었다. 한편, 농업과 의학 분야에서 항생제를 광범위하게 남용하면서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가 진화했고, 그중 일부는 오늘날 어떤 방법으로도 막을 수 없는 괴물로 진화했다. 이 무서운 현실은 현대 의학에서 잠자고 있던 파지 요법에 관한 관심을 다시 일깨우고 있다.


파지는 의료 환경 밖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과학자들은 최근에야 파지가 산소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유전자를 공유하거나 탄소 순환에 영향을 미치고 박테리아가 질병을 일으키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독소를 암호화하는 등 지구상의 모든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저자는 합성 생물학의 도움으로 파지 치료가 자본주의 생산의 요구에 맞춰 수십억 달러 규모의 산업이 될 수 있는 미래를 예견하고 있다. 1%만이 접근할 수 있는 맞춤형 파지 치료법이 탄생할 수도 있으나 예언은 확실하지 않다. 오늘날에도 약물 내성 질환을 앓고 있는 소수의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 파지 공식을 개발하기란 쉽지 않다.


파지는 1940년대와 1950년대에 서구의 유전학 연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파지는 비교적 단순한 생물처럼 보였고 번식이 매우 빨랐기 때문에 냉전 시대 과학자들이 단기간에 유전학을 연구하는 데 널리 사용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게놈 시퀀싱 기술이 이 좋은 바이러스로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최초의 전체 게놈 시퀀싱은 1976년에 이루어졌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우리 몸은 면역 건강의 일부로 파지를 적극적으로 채택하고 배치하며, 내장을 통해 매일 수백억 개의 파지를 흡수하고 숙주로 삼는다고 한다. 파지 감염은 장내 박테리아에 갇혀 있는 유용한 영양소를 방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파지는 항생제라는 단어처럼 영어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단어가 아닐까? 파지는 소련에서 자랐고 항생제는 서구에서 자랐다. 파지는 공산주의가 만든 약이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었다. 생물학자들은 연구를 위해 파지를 사용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냉전은 끝났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파지는 사람마다 반응이 다르고, 투여량은 추측 게임이며, 무엇보다도 제약 산업에 충분한 자금을 댈 수 없으므로 대규모 임상 시험을 통해 파지를 얻기란 매우 어렵다. 이는 파지 요법을 기다리는 몇 가지 문제일 뿐이며, 저자는 이 외에도 더 많은 문젯거리를 지적한다. 한 가지 유형의 파지가 신체에서 박테리아 병원균을 완전히 박멸할 수는 없지만, 항생제가 효과적이거나 다른 파지가 나머지를 제거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개체 수를 감소시킬 수 있다. 이는 미래의 의학이 더욱 개인 맞춤형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이 책은 1부에서 항생제의 역사 및 발전과 함께 파지의 개발 역사로 시작한다. 그런 다음 2부에서 파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3부에서는 파지를 사용할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 설명한다. 4부와 5부에서는 항생제 내성으로 인해 닥칠 수 있는 의료 문제를 극복하는 데 파지가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자세히 설명한다. 이 책의 표지는 프로펠러 추진기처럼 보이는 구근 모양의 머리와 몸체를 가진 두 개의 노란색 파지의 컬러 전자 현미경 이미지를 보여준다. 작은 팔다리를 가지고 있으며 마치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는 듯 나란히 포옹하고 있다. 이 유익한 책은 파지의 잠재적 용도를 발견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파지 연구의 최전선에 있는 똑똑하고 기발한 과학자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페니실린이 발견되기 몇 년 전에 소련이 질병 퇴치를 위해 파지를 받아들여 세계 최초의 진정한 항생제로 인정받게 된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에도 구소련의 일부 고립된 지역에서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파지 한 병을 마시는 것이 일반의약품을 복용하는 것만큼이나 흔한 일임을 알게 된다.


결과적으로 바이러스는 흔히 '더러움'을 연상시키며 전염병, 죽음, 질병과 연관된 단어이지만 파지는 전혀 다르다. 파지는 의료업계에는 물론 우리의 생활 방식에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가히 '우주 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파지 발견의 핵심 주역부터 사례 연구, 현재 이 과학에 종사하는 놀라운 연구자들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서 배울 점은 매우 많다. 과학자와 과학도는 물론이고 과학적 배경지식이 전혀 없어도 이 분야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은 사람 등 모두를 위한 책이다. 복잡한 과학을 이해하기 쉽게 분해하여 읽는 내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정말 흥미로운 과학 분야이므로 누구나 꼭 읽어야 할 책이다. 게다가 이 책은 박테리아 감염 퇴치에 대해 잠재적으로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접근 방식을 조명하는 계몽서이다. 인류의 건강을 개선하기 위해 자연의 해결책을 활용하는 대체 치료법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절묘한 스토리텔링으로 과학사와 정치학을 엮어 모든 사람을 매료시킬 수 있는 흥미롭고 가독성 있는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책에 빠져들게 할 독특한 무언가를 찾고 있다면 이 책을 권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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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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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바이러스 - 잊혀졌던 아군, 파지 이야기
Tom Ireland 지음, 유진홍 옮김 / 군자출판사(교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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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의 번식을 조절할 수 있는 미생물의 진수 박테리오파지에 대해 몰랐던 이야기로 가득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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