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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왜 친구를 원하는가 - 우리 삶에 사랑과 연결 그리고 관계가 필요한 뇌과학적 이유
벤 라인 지음, 고현석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12월
평점 :
이 책의 중심 문제의식은 ‘외로움/고립’이 개인의 감정 문제를 넘어 뇌와 몸의 건강을 좌우하는 공중보건적 위험 요인이라는 데 있다. 많은 사람이 이미 외로움을 체감하고 있고 그 여파가 사회 전반의 분열과 공격성, 신뢰 붕괴로 드러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현대를 ‘외로움과 고립의 시대’로 규정하면서, 수면·운동·식단으로 대표되던 건강의 3대 축에 ‘사회적 관계’를 네 번째 축으로 추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외로움(loneliness)과 고립(isolation)을 구분한다. 외로움은 “충분히 연결돼 있지 않다고 느끼는 주관적 상태”, 고립은 “실제로 혼자 있는 객관적 상태”로 정의되며, 두 상태는 사람들로 가득한 콘서트장 한가운데서도 외로울 수 있는 경험과, 가족여행 뒤 잠시 혼자 있고 싶을 때의 편안한 고립감처럼 전혀 다른 현상임을 강조한다. 문제는 현대의 고립이 ‘휴식으로서의 혼자 있음’이 아니라, 관계의 결핍과 단절이 누적되는 방식으로 증가한다는 데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첫 번째 핵심 논지는 인간의 뇌가 본래 ‘연결을 위해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진화적 환경에서 인간은 식량 부족, 포식자, 질병 등 위험 속에서 혼자 생존하기 어려웠고, 협력적 집단에 속한 사람이 더 잘 살아남았다. 그 결과 뇌에는 사회적 보상 시스템이 자리 잡았고, 타인과의 연결감을 느낄 때 도파민·세로토닌·옥시토신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어 즐거움·안정감·신뢰를 높이며 ‘이들과 더 있고 싶다’는 동기와 유대를 강화한다. 사회적 관계는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생존과 적응의 산물이며, 지금도 우리 뇌는 ‘서로 곁에 있을 때’ 보상을 주도록 작동한다는 것이다. “왜 고립이 흡연보다 더 해롭다는 말이 나오는가”라는 질문을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사회적 연결이 건강의 핵심 변수로 작동할 수 있다는 문제 제기로 끌어올린다.
두 번째 논지는 이런 생물학적 설계가 오늘날 ‘분열된(divided) 사회’라는 환경 변화와 충돌한다는 주장이다. 사람들이 타인과 함께 보내는 시간, 가까운 친구의 수, 주관적 외로움 등 여러 지표가 전반적으로 악화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개인이 체감하는 고립과 소외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문제의 핵심을 단순한 “외롭다”가 아니라 “분열”로 표현하는데, 정치적 양극화와 집단 정체성의 경직, 온라인 공간의 비공감적 공격성, 타자를 같은 공동체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겹치며 고립이 증폭된다는 시각이다. 즉 ‘혼자 있음’ 자체보다 서로를 적대적 타자로 대하는 사회적 정서가 고립을 구조화하고 관계 맺기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
세 번째 논지는 고립이 ‘스트레스’로서 몸에 작동한다는 점이다. 과거 무리에서 낙오 또는 배척은 생존 위험을 뜻했기 때문에 고립을 감지한 뇌는 경보를 울리고 스트레스 반응 체계(HPA 축)를 가동한다. 이 과정에서 코르티솔 같은 호르몬이 관여하며 단기적으로는 에너지를 동원하고 집중·학습에 이득이 있을 수 있지만 고립이 길어지면 경보가 상시화되어 몸이 늘 비상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이 만성 스트레스가 코르티솔 둔감(조절 실패)과 만성 염증의 경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대규모 역학 연구와 동물 실험을 근거로 고립이 사망률, 치매 진행 속도, 심혈관 예후 등과 연관된다는 결과들이 반복적으로 보고된다고 소개한다. 결론은 명확하다. 고립은 마음이 불편한 정도를 넘어 뇌·면역·심혈관 시스템에 부담을 주는 생물학적 위험 요인이다.
네 번째 논지는 디지털 상호작용이 대면 상호작용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대면 상황에서 뇌는 목소리 톤, 표정, 시선, 말의 간격, 몸의 방향과 자세 같은 복합적 사회 단서를 동시에 읽어 상대의 감정을 추론하고 자신의 반응을 미세하게 조율한다. 이 ‘동시 처리’가 공감과 신뢰 형성의 핵심인데, 문자·SNS·화상통화 등 온라인 소통은 단서를 축소 또는 지연시키며 문맥을 좁힌다. 그 결과 오해가 늘고 공감은 약화되며 불필요한 적대감과 공격성이 더 쉽게 표출될 수 있다. 저자는 이를 ‘가상 탈 참여 가설’로 묶어 설명하며, 텍스트 중심 상호작용이 공감 관련 뇌 영역(전전두엽, 대상피질, 섬엽 등)의 작동 방식에 다른 조건을 만든다고 논의한다. ‘소셜 미디어’라는 이름과 달리 그것이 제공하는 사회성은 대면 만남의 전부를 재현하지 못한다는 결론이다.
다섯 번째 논지는 인간의 뇌 자체에 ‘사회적 함정’이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사회적 만남을 실제보다 덜 즐거울 것으로 예측하는 경향이 있고 타인이 자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자신의 사회적 기술이 어느 정도인지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 편향 때문에 실제로는 친구를 만나고 대화하는 편이 뇌에 더 유익함에도 ‘집에 머무르기’를 선택하고 결국 연결의 기회를 스스로 줄여 고립을 강화한다. 저자는 이 함정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보며, ‘나가서 만나보니 생각보다 좋았다’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축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에 더해 ‘긍정적 상호작용이 주는 보호 효과’를 강조한다.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옥시토신·세로토닌·도파민 분비를 증가시켜 기분 개선과 동기 상승, 유대 강화로 이어진다는 설명은 익숙하지만, 저자는 이를 더 선명하게 만들기 위해 MDMA(엑스터시) 연구를 끌어와 “사회적 상호작용이 저강도 MDMA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도발적 비유를 소개한다(비유의 요지는 ‘쾌감’이 아니라 ‘유대·신뢰 회로의 활성’에 있다). 또한 옥시토신이 ‘사랑 호르몬’이라는 통념을 넘어 항염·신경 보호·면역 기능 등과도 연관될 수 있다는 연구를 언급하며, 소속감과 친밀감이 실제로는 몸을 보호하도록 진화한 생물학적 장치일 가능성을 제시한다. 즉 연결은 마음만 따뜻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몸의 항상성 유지와도 맞물린다.

이 논지들을 바탕으로 저자는 ‘사회적 식단(social diet)’이라는 실천 개념을 제안한다. 사회적 관계를 영양 섭취처럼 관리해야 한다는 비유로, 사람마다 필요한 ‘사회적 칼로리’가 다르되(내향형/외향형의 차이를 가치판단이 아닌 필요량의 차이로 설명) ‘0’은 위험하다는 메시지를 준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성향 점검(외향성 척도 등)과 함께 만남 이후의 피로·만족·기분 변화를 기록하는 ‘사회적 저널링’을 권한다. 누구를 만나 어떤 대화를 했을 때 에너지가 오르는지/소모되는지를 관찰함으로써 자신에게 맞는 관계의 빈도·형태·상대를 찾아가라는 처방이다. 큰 모임이 부담스러운 사람은 소규모 만남이나 반복적 일상 접촉(짧은 대화, 친절, 동네 커뮤니티)을 통해도 ‘사회적 영양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취지로 읽힌다.
책의 후반부는 고립이 특히 치명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노년기를 다룬다. 저자는 고립된 노인의 치매·심혈관 질환 예후가 더 나쁘다는 연구를 소개한 뒤 자기 할머니의 사례를 조심스럽게 제시한다. 식단·운동·수면을 철저히 관리했음에도 사회적 연결의 중요성을 배우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혼자 보내면서 언어 기능과 의사소통 능력이 크게 퇴보한 모습이 그려진다. 통계와 개인적 서사가 맞물리는 지점에서 ‘사회적 연결을 건강 습관으로 교육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연구 요약 이상의 무게를 얻는다.
장점과 한계도 함께 정리해본다. 장점은 사회 진단을 뇌과학적 메커니즘과 촘촘히 연결해 외로움/고립을 명확한 생물학적·역학적 위험 요인으로 재정의했다는 점이다. 또한 ‘대면 상호작용의 가치’와 ‘작은 친절·반복되는 만남의 효과’를 연구 근거로 뒷받침하며 독자가 생활 수준에서 실천을 상상하게 만든다. 반면 논의가 미국 사회를 전제로 한 부분이 많아 한국의 가족 구조·노동 문화·복지 제도와 결합할 때는 조정이 필요하며, 개인의 습관 변화에 초점이 강해 정책·도시 구조·노동 환경 같은 구조적 요인이 고립을 강제하는 문제는 상대적으로 덜 다뤄진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저자의 기본 시선이 외향적 화자에 가깝게 느껴질 수 있으나, 내향형에게도 사회적 영양분의 최소치는 필요하다는 점을 반복하며 ‘완전 차단’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결론부에서 저자는 이 논의가 단순한 경고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뇌가 연결을 ‘보상’하도록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거꾸로 말하면 연결을 회복시키는 작은 개입이 생각보다 큰 건강상의 이득을 낼 수 있음을 뜻한다. 그래서 그는 “카톡 한 줄로 처리할 일도 가능하면 얼굴을 보고 이야기해 보라”는 식의 생활 속 방향 전환을 제안한다. 동시에 온라인 공간의 설계(익명성, 추천 알고리즘, 갈등을 키우는 보상 구조)가 공감의 단서를 더 줄이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암시하며, 기술·정책·공동체 차원의 ‘분열 완화’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남긴다. 즉 개인은 자신의 사회적 필요량을 점검하고(사회적 저널링), 최소치의 대면 접촉을 꾸준히 확보하며, 사회는 사람들이 서로를 같은 집단의 구성원으로 다시 인식할 수 있는 안전한 만남의 장(학교, 동네, 직장 문화, 돌봄 체계)을 넓혀야 한다. 외로움은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연결의 인프라’가 무너질 때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사회적 증상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상투적 문장을 최신 뇌과학과 구체적 사례로 실감 나게 복원하는 데 있다. 편리함 때문에 비대면으로 줄여 온 만남과 대화가 사실은 뇌와 몸이 버티는 데 필요한 최소치였을 수 있음을 상기시키며 독자에게 묻는다. ‘오늘 내 뇌에게 얼마나 건강한 사회적 식단을 먹였는가?’ 그 질문이 불편하게 다가온다면 그 불편함 자체가 관계를 다시 점검하라는 신호일 수 있다. 결국 핵심은 ‘더 많이’가 아니라 ‘더 건강하게 연결되는 방식’을 찾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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