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시민들
백민석 지음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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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사진작가인 저자가 홀로 여행을 떠난다. 서툰 영어조차도 전혀 통하지 않는 눈과 불곰과 보드카의 나라 러시아로 그것도 무려 3개월 동안. 주요 이동 수단은 일주일씩이나 걸린다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다. 중간 기착지에 내려 하루 이틀 묵으며 동네를 구경하고 모스크바에는 장기 체류한다. 전체 여행 기간은 3개월 가량.


여행은 금전적 여유나 계획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떠날 수 있는 용기라고 했다.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용기도 부러운데 무려 혼자다. 짝을 이루어 둘이 떠나면 서로 챙겨주고 도와주겠지만, 저자는 자기 마음과 함께하는 여행이라 말한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안내서 대신 여행 수필을 쓰며 자신에게 너그러워지고 용서하는 일을 익히는 행복을 누리기로 한다. 혼자라서 관광객인지 여행자인지 조금은 애매한 처지이지만 여행의 한계를 잘 알고 있으므로 최대한 관광객이고자 한다.


러시아는 내륙 철도가 잘 발달한 나라다. 육상권 지배자가 곧 해상권을 지배한다는 정치 수뇌부의 신념에서 촘촘한 철도망으로 내륙을 연결한 것으로 알고 있다. 유독 한국인들에게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일종의 환상적 존재인데 아쉽게도 저자의 이동 경로 정보가 없어 지도를 첨부해 보았다. 이 책은 항공기로 모스크바에 내린 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들렀다가 열차를 타고 이르쿠츠크까지 왕복하며 촬영하고 남긴 사진과 글이다.


저자가 촬영한 사진에는 거의 예외 없이 사람이 있다. 책 제목 ’러시아의 시민들‘처럼 다양한 러시아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사람이 없으면 하다못해 도심지 길거리에 그 흔하다는 동상이라도 등장한다. 물론 현지인들에게 사전 양해를 구했으며 우리가 흔히 사진 찍을 때처럼 무릎을 굽히면 그들도 따라서 무릎을 굽히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는 얘기는 흥미롭다. 촬영에 응한 러시아 시민들의 표정은 대개 밝은 편인데 무작정 접대용 미소를 띠지는 않는다. 서구인 특유의 오만함이나 과장된 웃음과 달리 매우 순박하면서도 기품이 있어 보인다.


이들은 또 민족주의자는 아니지만, 혁명을 겪었던 나라의 국민으로서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살아있다고 한다. 어렵던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도 의료와 교육은 거의 무료였고 물가는 낮아도 안정적이었던 때문으로 보인다. 대체로 러시아인들은 자신을 자유국가의 자유로운 민족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규제하는 모든 법규와 법률을 내려다보는 경향이 있다. 신체에 위해가 되지 않는 한 까다롭게 굴지 않아 공중질서 의식이 느긋해 보인다. 사회주의 혁명으로 서구와 단절된 채 70여 년을 보내어 그런지, 우리나라처럼 잘 먹고 잘사는 서구식 목표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화려하고 부티 나지는 않지만 높은 수준의 정신세계를 가진 그들 특유의 민족적 자부심이 엿보인다. 세계적인 대문호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세계가 곧 이들의 국민적 성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보아도 좋겠다.



대다수 러시아인의 생활상은 서구 유럽인들과 비교해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지만, 이들의 민족성과 관습이 여타 국가들과 비교해 다소 음습한 악당의 이미지(?)를 지니는 것은 러시아만의 특이한 역사, 특히 한때 세계를 이념으로 양분하던 냉전 시대와 소련의 붕괴 이후 경제 위기를 겪었고 현재는 세계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로 발돋움하는 등 격변기를 겪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현재 40대 이상의 러시아 국민은 소비에트 연방 시절 공산주의 교육을 받고 격변기를 지나온 사람들이다. 비록 90년대 초 민주주의로 돌아섰지만 공산주의의 종주국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며 살았던 러시아인들의 성향은 여타 유럽국가에서 민주주의 교육을 받아온 국민과 비교해 색다른 국민성을 지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저자가 촬영한 수많은 사진 자료를 통해 러시아를 조금 엿볼 수 있어 좋았다. 한편으로 저자가 목표한 대상이 러시아 시민들이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직접 이용했던 이동 수단인 횡단 열차, 매일 접해야 했던 현지 음식, 학교나 도서관처럼 실제 시민들이 이용하는 공중 시설의 모습, 그리고 피곤하고 지친 관광객의 모습으로 한 장쯤은 찍었을 법한 그 흔한 저자의 셀카를 볼 수 없었던 점은 살짝 아쉽다.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낯설고 물선 이국인들의 모습을 바라본들 우리는 별다른 감흥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가 보고 들은 내용을 곁들인 수십 장의 사진으로 색다른 간접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행안내서라기보다 수필로 다가오는 이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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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시선
김태현 지음 / 교육과실천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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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문득 한 가지를 결심하고 실행하여 완수한 지 두 달쯤 지났다. 바로 책 100권 읽고 서평 쓰기였다. 일단 일을 벌여놓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자신이 대견스럽긴 했다. 이런 추세라면 더 높은 목표를 세워도 해 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한 가지 놓친 것을 이제야 발견한다. 100권의 독서와 서평이라는 목표 달성에 집중한 나머지, 스스로 만족할 만한 목적은 이루지 못한 것 같다. 어디를 향할 것인가 방향과 무엇을 할 것인가 목표는 옳게 정했지만 어떤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볼 것인지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다 교사의 시선이라는 책 제목에 시선이 머물렀다.


 

저자는 반갑게도 동종업계 종사자, 즉 현직 고등학교 교사이자 작가이다. 이미 수업과 삶에서 나를 만나자는 두 권의 전작을 냈는데, 수업 이야기는 다분히 기술적 측면의 내용이 많았고 삶의 이야기는 교사의 몸 챙김과 마음 챙김을 말하고 있다. 눈길 닿는 곳에 마음이 있어서일까? 수업과 삶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말들을 보태 세 번째 내어놓은 책의 주제가 교사의 시선이다.



 

방학과 신분보장이라는 세간의 부러움을 뒤로한 채 이 책에 등장하는 80여 편의 회화와 조각품 그리고 직접 찍은 사진을 통해 독자는 매일 반복되는 감정노동을 통해 주위로부터 매일 상처받는 교사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1) 단순히 바라만 보는 게 아니라, 그림이 말하는 상황과 배경 속에 교사의 현재를 겹쳐 투영함으로써 피사체와 별반 다를 바 없이 관찰당하는(?) 처지를 깊이 들여다본다.(2) 작품을 만들어 낸 예술가들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통해 교사들이 겪는 아픔을 공유하고 위로의 손길을 건넨다.(3) 비슷한 처지의 다수가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자는 생각을 실제 책방을 열고 학교 현장에서 드러내지 못했던 재주와 끼를 풀어내는 장소로 구현한다.(4) 수업 내용은 바로 선 교사 자신의 삶이어야 하고 그를 말할 수 있는 담대함의 필요성을 제시한다.(5) 마지막으로 학습자를 환대하는 마음과 그럴 수 있는 용기를 담아 수업을 설계하자고 말한다.(6)

 


교사를 일컬어 천직, 혹은 전문직이라고들 한다지만 사실 그에 걸맞지 않은 처우를 받는지도 모른 채 자신을 잃어가며 타성에 젖어 무기력하다. 군사부일체는 이미 옛말이고 밟지도 말라던 스승의 그림자는 이미 지워졌다. 학생, 학부모, 교사가 교육의 세 주체라면서 교권은 늘 인권과 학습권보다 뒷전이다. 그나마 공립 학교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 보호라도 받고 단체의 목소리라도 낼 수 있지만, 사립 학교는 소리 내면 잡아먹히는 약육강식의 정글이다.



 

교사들은 뭔가를 배워야 할 이유도 의지도 없이 교사만큼이나 무기력하게 책상에 엎어져 있는 아이들을 일으키기에는 너무 지쳐있다. 가정에서 부모도 손을 못 대는 아이들을 학교에서는 더더욱 어찌할 도리가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이 책은 쉬운 글로 쓰였지만 쉽게 읽히지 않는다. 교직과 관련 있는 독자라면, 특히나 독자 자신이 교사라면 진솔하고 꾸밈없는 저자의 글에 그래 이건 바로 내 이야기잖아라며 이따금 농도 짙은 감정이입이 일어나 울컥해지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아픔과 상처를 드러내어 공유하는 민망함을 뒤로하고, 마침내 저자는 이를 극복하며 일어섰던 경험을 말하고 있다. 아마도 교사로서 가장 힘든 점이라면, 교사의 책임과 권한에 대한 마땅한 규정이나 범위가 매우 추상적임에도 불구하고 요구받는 잣대의 기준이 매우 구체적이라는 것일 텐데, 저자는 이렇게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시선을 두어 마음을 함께 나누고 있다. 그 아픔에 공감한 결과가 소소한 책방이요 연구 공동체일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파편화된 교사들의 마음을 한 데 묶어 연대할 필요성을 깨닫는다. 함께 하면 멀리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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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엘리트를 위한 서양미술사 - 미술의 눈으로 세상을 읽는다
기무라 다이지 지음, 황소연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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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비록 생업은 국영수 주요(?) 과목과 관련 있지만, 가장 비중 있게 인생을 풍요롭게 해 주는 것은 음악 미술 체육을 포함한 예체능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도 예체능이 학교에서 배우는 학과목에서조차 소외당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성인이 되어 사회에 진출한 이후의 삶을 돌아보면 결국 좋아하는 예체능 분야를 찾아가게 됨을 발견한다. 시간과 노력과 금전을 투자하여 영어 연설 모임에 나가고, 장거리 자전거를 즐기고 드럼을 배우기도 했다. 그러나 우연인지 미술 쪽으로는 자녀의 미술 학원 간판만 열심히 구경해 봤을 뿐이다.



 

이 책의 제목은 기업의 최고 경영인을 연상시키는 비즈니스 엘리트를 지칭하고 있다. 비록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통 모르는 미술계인 것 같지만 음악과 체육처럼 미술 역시 사람의 생각을 표현한 결과물이기에 꼭 소수 계층만을 위한 전유물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대신 교양인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미술 상식선에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우선 책의 구성을 보자. 총천연색 그림 자료를 담은 미술 교양서답게 고급스러운 재질의 종이에 색상과 미적 감각을 더한 편집으로 디자인이 매우 산뜻하다. 본문의 소단원 제목을 진한 글자로 처리하여 시선이 집중되며 그림 자료마다 설명을 달아 가독성을 높였다. 미술 교과서에서 자주 보았던 그림들을 많이 실어 친근감을 준다. 그림 자체에 대한 설명도 좋지만 그림이 나오게 된 역사적 배경을 충실하게 제공하여 마치 술술 읽히는 옛날 이야기책 같다. 특히 정확한 연도별 도표로 역사적 사건의 발생 시기가 미술사에 미친 영향을 소상히 알려주어 시대 변천과 미술 사조의 연계성을 파악하는데 매우 유익하다.



 

서양 미술사 전공자답게 저자는 시대별 특징을 시기별로 나누어 소개한다. 인간의 아름다운 육체를 절대자가 보시기에도 좋았더라는 표현으로 집약되는, 서양 미술 정신세계의 바탕을 이루는 그리스 신화와 그리스도교의 중심 세계관을 시작으로 로마제국과 프랑스 고딕 양식을 다루고(1), 유럽 도시의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발흥하여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 아닌 인간 본연의 모습에 시선을 돌린 르네상스 시대부터 베네치아, 바로크, 네덜란드의 회화를 중점적으로 들여다보며(2), 당시 주변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낙후되었던 프랑스가 유럽의 미술 대국으로 올라서게 된 배경과 고전주의, 로코코,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작품들을 설명하며(3) 산업혁명을 맞아 변모된 문화가 사실주의, 바르비종파, 인상주의 등의 근대 미술 및 미국 중심의 현대 미술에 끼친 영향을 살펴본다(4).



 

그림 뒤에 숨겨진 역사적 배경을 알고 난 뒤 그림을 읽을 줄 알게 되면전에 없던 새로운 안목을 지니게 되는데, 이는 미술과 역사를 함께 공부한 저자의 주된 저술 의도이기도 하다. 예컨대 현대의 광고기술을 능가하는 안목으로 미술 작품을 홍보 자료로 적극 활용한 나폴레옹의 사례가 그렇다. 고대 로마 장군처럼 국왕이 아닌 황제칭호를 사용하던 그는 재임 시절 고대 로마 황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고 부단히 애썼다고 한다. 이미 황제가 되기 전부터 미술품 자체보다 선전 미술의 파급력을 정확히 꿰뚫어 본 권력자로서 건축이나 미술의 힘을 정권, 권력과 결부시켜 자신의 이미지 홍보와 제국의 선전 도구로 활용했다. 특히 예전의 모 회사 양주병에 사용되기도 했던, 국가원수의 상징인 백마와 그 앞다리를 힘차게 들어 올리며 돌격 명령을 내리는 장면으로 유명한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보나파르트작품은 황제의 이미지를 선전하기 위한 초상화이지만, 실제로는 산길이 험해 노새를 타고 고개를 넘었다는 것이다. 또한, 그림 아랫부분의 바위에는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원정길에 나섰던 고대의 영웅들인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과 서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샤를마뉴의 이름을 새기도록 하였다니 과연 권력욕의 화신다운 행적이다.



 

서양 역사를 돌아보면 미술은 왕족과 귀족의 필수 교양이었음을 알게 된다. 오늘날 미술 교과서에 등장하는 작품들은 대개 당대의 권력자를 위해 맞춤 제작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미술이 지식과 교양을 갖춘 당대 사회 지도층이 이끌던 문화이고 서양의 지식인들 사이에 단단히 뿌리내린 문화 자본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미술은 눈 호강시키는 감성이 아니라 이성으로 읽는 예술 영역으로, 시대별 미술의 의미,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가치관 및 경제 상황을 이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미술사에 대한 이해는 세계적 수준의 문화와 교양의 표준에 다가가는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2,500년을 압축한 서양 미술사 특강을 들으니 공자님 말씀이 새삼스럽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가이위사의(可以僞師矣) : 이미 배운 내용을 잘 익히고 새로운 것들을 계속 알아간다면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될 수 있다.”

 


#미술사 #비즈니스엘리트를위한서양미술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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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의 힘 - 시파워와 랜드파워의 세계사
김동기 지음 / 아카넷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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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에 속지 마라, 일본놈 잊지 말고 되놈(중국) 되(다시) 나온다, 조선사람, 조심하자’

이 책을 읽고 나니 우리나라 해방 이후 혼란하던 정국에 유행했다던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나라 이름에 자연스레 이어지는 동사와 두운(頭韻)이 기막히게 어울린다. 가사의 핵심은 결국 외세의 위협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립 자강을 이루자는 데 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이 와중에도 계란판 원자재 생산으로 국내 판매 부수 1위라는 모 신문사의 기사에서는 쉼표 하나를 없애 ‘조선사람들이여, 그러니 이제 조심합시다.’라는 의미를 마치 제삼자가 말하는 양 ‘조선사람을 경계하자’로 오도하고 있다. ‘일본놈 일어난다’라고 가사를 고치는 참으로 꼼꼼하고 정갈한 수법으로 이웃 섬나라의 대변지 역할에 충실하니 그들의 눈물이 나는 노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각설하고, 어릴 적 세계에 우리나라를 둘러싼 여러 이웃 국가들이 있으며 좋든 싫든 그들로부터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게 된 이래로 우리는 왜 늘 ‘선진국’ 따라잡기와 흉내 내기에 바빴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세계 음악계를 주도하는 BTS와 수준급 코로나 방역 덕택에 우리가 바로 선진국임을 체감하는 요즘이다. 문화 대국으로서 국뽕 차오르는 희열감을 애써 감추자니 좀 아쉽지만,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가 겪어야 했던 격동의 근현대사가 사실은 민주-공산 이념의 대립이 아닌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에 기인함을 주제로 삼고 있다.


이 책은 지정학 정립에 이바지한 이론가와 전략가를 소개하면서 국가적 관점의 지정학 역사를 짚어본다. 이들이 주장하는 지정학은 자국의 이익 관철에 몰입한 이론적 배경이며 평화로운 공존 따위와는 거리가 먼 ‘보이지 않는 무기’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 책의 부제인 시파워(See Power), 랜드파워(Land Power)는 지정학 용어로 보이는데, 마땅한 해석이 없는지 저자는 이를 외래어 고유명사처럼 사용한다. 저자는 고전 지정학자 4인을 필두로 그들의 지론을 이어받은 유력 정계 인사들의 행적을 연이어 소개한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미국의 알프레드 마한은 해상을 제패하면서 해가 지지 않는 영국의 위상을 분석한 1890년대 두 권의 저서로 일약 유명인사가 된다. 그의 책은 식민지 확장과 제국주의 경쟁 시대를 맞아 미국의 군비 확장론자들에 강력한 영감을 선사한다. 훗날 대통령이 된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해군력을 확장하고 미국의 영향력을 키워 마한의 전략을 실현하였으며 이어 세계 2차대전의 추축국인 독일과 일본에도 영토확장의 야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편 영국의 헬퍼드 매킨더는 드넓은 영토를 지닌 러시아가 철도망으로 내륙을 촘촘히 연결하는 것을 보고 지배적인 육상력은 곧 지배적인 해상력으로 발전될 것을 예견한다. 유라시아 북부와 중앙을 세계 정치의 중심으로 간주한 그는 소련이 전쟁에 이기면 지구 최대의 육상력 지배자가 될 것을 우려했는데 이는 2차대전 후 시작된 냉전체제에서 소련 봉쇄의 정당성을 제공한다.



독일의 카를 하우스호퍼는 과거 독일 땅이면서 독일인의 피가 흐르는 유럽 동쪽을 의미하며 나치즘의 주요 이론적 바탕이 되는 레벤스라움(Lebensraum)을 주창하고 옥중의 아돌프 히틀러에게 사사했으나, 그가 러시아와 그 위성국으로 이를 잘못 이해하고 전선을 동서 양쪽으로 확장한 탓에 나치는 몰락하고 만다.

미국의 니콜라스 스파이크먼은 세계 정치의 핵심을 유라시아 대륙 해안지역으로 보고 림랜드(rimland)라 불렀으며 러시아 서쪽, 유럽 대륙, 북아프리카, 중국, 동아시아 등을 포함했다. 2차대전 후 소련 봉쇄정책이 주류일 당시는 매킨더의 이론이 지배적이었으나, 소련의 몰락으로 중국이 부상한 이후 림랜드 지배자가 유라시아에 이어 세계를 지배할 것으로 내다본 그의 이론이 재조명을 받게 된다.

이상 4인의 고전지정학자 이외에도 저자는 미 국방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를 나치와의 연관성으로 한때 용어 사용이 기피 대상이었던 지정학을 부활시킨 인물로 묘사한다. 또한, 일명 ‘그랜드 체스판’을 통해 미국 단일 체제를 분석하여 미국의 새로운 역할을 주문한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정통 기독교를 승계한 러시아만이 인류를 구제할 수 있다는 메시아주의로 서양 문명의 지배로부터 세계를 해방하겠다는 러시아의 알렉산더 두긴, 근대 유럽인들에 의한 식민지화의 역사를 밝히고 세계의 모순과 왜곡을 찾아 그 시정 방향을 제시한다면서 지정학을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사상전의 도구로 전락시킨 일본의 코마키 사네시게, 균형 잡힌 미중 관계를 구축하기에 유리한 전략적 상호 신뢰를 쌓고자 서진을 주장하며 일대일로 전략을 기초한 중국의 왕지스 등을 소개한다.


본디 지정학은 19세기 말 여왕의 나라 대영제국과 차르의 나라 러시아 제국 간 양강대립 시기에 정립된 이래 여러 강국의 영토확장과 자원확보를 위한 국정운영의 초석이 되었다. 이는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은 물론 러시아-중앙아시아-동부 유럽 일대를 포함하는 거대한 세계도 중심인 심장지대(Heart Land)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 제국을 건설한다는 개념으로, 오늘날 미국을 비롯한 북남미 대륙은 주변부에 고립된 거대한 섬으로 치부된다. 대서양과 태평양 양쪽에서 협공을 당하는 모양새에 놓이는 미국의 처지에서는 서유럽(독일)과 극동아시아(한국, 일본)에 꽂아놓은 미군을 철수시킬 수 없다. 이들은 미국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핵심인 동시에 협공의 위기에 놓인 본토를 방어할 최전선 병력이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은 중국을 경제적 이익과 미국적 가치에 근본적 위협을 가하는 주된 경쟁자로 선언하였다. 중국의 인권유린, 기술 탈취, 군사 팽창, 무역 갈등, 미국 중간선거 개입 의혹, 남중국해 문제, 위구르족 이슬람교도 탄압 등 그 이유는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있다. 그러나 정작 미국은 유엔인권이사회, 유네스코,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하고 주요 동맹국들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무역 전쟁을 선포하는 등 일방적 이기주의로 고립을 자처하고 있다. 미군 철수 비용을 부담하라며 영원한 혈맹이라는 한국을 협박하기도 한다. ‘우리가 먼저 세계의 본보기가 되자’라던 미국 우선주의는 ‘우리부터 주도권을 선점하자’로 변질되었다. 트럼프가 선택한 길은 오로지 자국의 이익만 추구한다며 자국민으로부터 악당 수퍼파워로 비난받는다. 미국의 국제적 지위가 흔들리는 틈을 타 중국은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 차이나머니를 뿌려대며 ‘신 조공외교’ 추진에 여념이 없다.


지정학상 중국발 육상력과 미국발 해상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한반도는 이미 세계열강의 각축장이 되어 충돌한 바 있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념 대립으로 포장된 대리전쟁을 겪기도 했지만 사실 한국은 태생적으로 지정학의 덫을 깔고 앉은 형국이다. 김일성의 남침을 승인하고 지원한 스탈린의 의도는 철저한 지정학적 계산의 결과이며 사회주의 종식을 선언한 러시아에 와서도 이러한 욕구는 변하지 않았다.

남북 분단의 원인이기도 한 미국의 전략적 목표는 동아시아의 강력한 통제력 유지일 뿐, 한반도의 평화가 아니다. 이는 북한의 종전 선언 요구에 응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남북한 통일로 북한의 위협이 사라지면 미국의 존재감 역시 사라지고 대신 중국에게 유리한 상황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중국에게 한국은 미국의 전초기지인 셈이고 북한은 중국의 뒤뜰이자 완충지대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는 곧 미중간의 첨예한 갈등 고조를 의미한다. 따라서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도, 전쟁도, 혼란도 원하지 않는다. 동북공정에 이어 한복과 김치가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억지를 부리는 것도 결국은 미국에 대항하는 수단이다.

일본은 한반도의 통일을 ‘일본의 심장을 겨누는 단도’로 생각한다. 한반도가 분열과 혼란으로 일본의 심장을 겨누지 못하도록 약화시키거나 통제하는 것이 곧 그들의 핵심 이익이 된다. 다행히도 해방 이후 살아남은 친일파가 득세하여 정치 경제 교육 기업 등 여러모로 일본의 이익을 도와주고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러시아에게 북한은 안보 관점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소련 붕괴 이후 동아시아 지역의 영향력이 크게 줄었다. 한반도 통일 이후에도 안보 위협이 크지 않으면서 에너지 자원 수출 등 경제적으로 반사 이익을 취할 방법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미국, 중국, 일본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원할 이유가 없다. 우리의 분단 상태가 그들에게는 오히려 균형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런 여건에서 한국은 적대적 분단을 해소하고 평화 체제를 정립함으로써 주변 강대국들의 한반도 전략 수립에 근본적인 제약을 주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강대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 지정학을 앞세운 전략으로 한반도를 압박하고 있는데 왜 우리는 아직도 이념적 반목과 역사의 질곡에 갇혀 있는지 질타하면서, 우리에게 최선의 이익은 무엇인가를 인식하고 이를 위해 남북한의 관계를 새로이 할 것을 주장한다. 지금까지 당하고만 살던 약소국 인식에서 벗어나, 오히려 주변 국가들의 향후 행보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 한국의 위상을 새롭게 자리매김할 때다.


#지정학의힘 #아카넷 #한반도국제정세 #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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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우주를 알아야 할 시간
이광식 지음 / 메이트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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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이지천명(五十而地天命) 이란 논어의 한 구절로, 천명이란 인생의 의미 외에도 넓게는 삼라만상을 지배하는 우주의 섭리나 원리 또는 보편적인 가치임을 예로 들면서, 저자는 사람이 백 세 인생에서 절반쯤 살았다면 이제는 천명을 알 때도 되었다고 말한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도 필자는 우리가 지구라는 별에 발을 딛고 매일 아웅다웅하며 살고 있지만, 광대한 우주의 크기에 비하면 바람 속의 먼지만도 못한 존재이니 인류가 아무리 만물의 영장이라 해도 사실은 그리 겸손하지 못한 표현이라 생각하곤 했다.

 

우리는 별에서 몸을 받아 태어난 별의 자녀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메이드 인 스타. 만약 별의 죽음이 없었다면, 죽으면서 아낌없이 제 몸을 우주로 내놓지 않았다면 여러분이나 나, 그 어떤 인류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나와 별, 나와 우주의 관계다. (85)



 

2100년 전 고대 로마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는 세계는 항상 존재해온 것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선가 생성되어 이어진 것이고, 계속 변하고 있으며 이 변화는 점점 복잡해지는 양상임을 밝혀냈다. 이렇듯 우리는 철들어 세상을 배우고 우주의 오묘한 삼라만상이 있음을 깨달으면서 라는 존재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게 된다. , 우주는 어떻게 생겨났으며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주 속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묻는 큰 질문이다. 만약 이 시대보다 앞서 태어났고 지금 우리가 아는 만큼 우주의 신비를 깨우치지 못하고 살았을 것이라 상상해보면, 오늘 이 순간 큰 질문에 답을 제시하는 이 책을 접하며 우리의 존재 의식에 대한 외연을 넓힐 수 있음을 무척 다행으로 생각한다.

 

우주가 이해 가능하고 법칙을 따른다는 사실은 경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조화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는 신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 아인슈타인



 

구약성경의 창세기 도입부에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하매 빛이 있었다고 말한다. 흥미롭게도 이 책에서는 하나님의 그 말씀이 바로 수소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수소는 어디서 온 걸까? 아름다운 불꽃놀이와 대폭발로 시작된 우주의 잿더미 위에서 우주가 창조되었다며 르메트르 신부의 빅뱅 이론에 사실상 공감한 아인슈타인의 표현처럼, 수소는 가장 원시적 형태의 가스였으며 실제 행성 핵의 연료이기도 하다. 결국, 우주의 생성과 소멸은 이 우주 연료의 거듭되는 생성-소멸이며 만물의 근원인 셈이다.



 

우주는 이 시간에도 계속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 더 깊은 우주를 들여다보고 우주의 나이를 가르쳐 준 허블의 업적, 별이 빛나는 이유와 사람처럼 생로병사를 겪는다는 유기체설 등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굉장히 알차고 다양한 내용을 배울 수 있다. 바다에서 온 인류의 신체 구성 역시 우주의 별들이 사라지며 뿌려놓은 원소들의 재결합이라는 점도 매우 흥미롭다. 결국, 우리가 거의 매 순간 의식조차 하지 않고 살지만 모든 사람은 저마다 영혼을 지닌 하나의 소우주라는 지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곧 다른 우주와의 만남이라니 이 얼마나 황홀하고 가슴 뛰는 얘기인가.

 

우주에서 생명이란 언젠가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우울한 사실은 변함없겠지만, 그래도 하나의 위안은 있다. 자연이 인간에게 베푼 자비라고나 할까, 우주의 종말이 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나기 때문에 고작 찰나를 사는 인간의 운명과 연결 짓는다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이라는 점이다. (274)



 

창세기의 기록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유일하게 교황으로부터 종교와 과학에 대한 개별적인 인정을 받아 낸 르메트르 신부의 존재감을 새삼 돌아보면서, 원래도 범신론적 입장이었지만 종교는 필요 때문에 인류가 만들어낸 창작품이며 도덕률 또는 생활 철학의 도구여야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무리 좋은 대의명분이라도 결국은 세태에 찌들고 타락한 일부 종교로 인해 인류가 서로를 증오하고 해치는 모양새는 마냥 꼴사납고 도무지 무의미해 보인다.

 

별이 남긴 물질에서 몸을 일으킨 인간이, 내가, 스스로를 자각하는 존재로서 자신이 태어난 고향인 물질의 대향연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기적이요 우주의 대서사시가 아니고 무엇이랴! (276)



 

풍부한 사진 자료와 보너스 상식을 곁들인 컬러판 고급 양장인쇄와 약방의 감초처럼 유명 과학자들의 금쪽같은 격언을 곁들여 8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각각 우주의 탄생, 성장, 구성 요소, 크기, , 블랙홀, 태양계, 지구와 달을 각각 다루고 있다. 천문학 전문 출판인으로서 이미 교양 수준을 넘어선 전작들을 통해 세간에 명성을 얻은 저자는 이 책을 재치 있는 표현과 호기심을 자극하고 흥미를 돋우는 내용으로 채워 매우 훌륭한 천문학 입문서 또는 모든 연령층에 적합한 교양서로 손색이 없다. 우주와 나의 관계가 무엇인가를 깨우치도록 도와주는 이 책을 통해 복잡다단한 세상을 좀 더 멀리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 여유와 통찰을 얻어보시기 바란다.

 

#자기계발 #50우주를알아야할시간 #천문학 #지구과학 #과학철학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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