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FAANG으로 빵빵하게 공부하는 비즈니스 영어
최숙원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Listen carefully and choose the correct answer”.

 

이거 어디서 숱하게 들어 본 지시어 아닌가요? 학교 영어 회화 시간이든, 공인어학 시험이든 그동안 우리는 주어진 질문을 듣고 역시 주어진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객관식 듣기 시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정답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전제하에 재주껏 잘 듣고 정답을 고르면 되는 시험이었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 책을 살펴보면서 시중에 나온 여타 교재들과는 조금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맨땅에 박치기하듯, 먼저 주어진 표현에 익숙해질 때까지 영어 텍스트를 반복하여 읽어 문자정보를 입수합니다. 그다음 익힌 내용을 불러와 작문으로 문자정보를 활성화하고, 이를 읽을 때 입에서 나오는 음성정보와 결합한 후 눈으로는 한국어 번역을 보며 익혔던 영어 문장을 다시 적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요?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네 가지 학습법을 동시에 적용하여 학습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게 저자의 의도라는 뜻입니다.

 

저자는 세계적 5대 기업인 Facebook, Amazon, Apple, Netflix, Google의 이름 앞글자를 묶어 책 제목을 FAANG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세계 시가총액 기준 10위안에 들며 기존의 하드웨어 제조 시대를 마감하고 플랫폼 시대를 선도하는 거대 기업들입니다. 제시된 예문들을 잘 읽어보면 이들에 대한 실용적인 정보도 제법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회사별로 5개의 챕터로 구성되었으며 한 회사에 50개씩 250개의 예시문을, 그리고 예문 10개마다 5개의 듣고 쓰는 연습 문장을 제공하였습니다. 각 회사의 최고 경영진이 운영 실적을 보고하는 Earnings Call 혹은 Conference Call에서 사용되는 용어들로 구성되었으며, 이들은 실제로 원어민 실무자들이 현장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거나 높은 수준입니다.

 

이 책의 부록으로 영어 학습을 위해 출판사의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음성파일을 내려받도록 구성되었습니다. 50분 분량으로 회사별 5개의 파일로 나뉘었으며 비교적 정확하고 또렷한 미국 표준발음의 남자 성우가 예문을 읽어줍니다. 50문장씩 묶어서 읽어주기 때문에 예문별로 듣고 적는 연습을 하려면 디지털 기기의 작동/중지 기능을 수동으로 반복해야 하는 약간의 수고로움은 있습니다.


이 책에 제시된 비즈니스 용어를 업무상 접하는 환경의 독자라면 매우 적절한 영어 학습교재로 보이며, 각자의 업무 영역 특성에 따라 주어진 예문을 적절히 응용해도 좋겠습니다.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과 듣고 완성하는 영작문학습법 그리고 유명 기업들의 컨퍼런스 콜 내용을 통하여 국제 비즈니스 분야의 상식을 넓히고 수준급 영어 사용 능력도 향상할 좋은 기회를 얻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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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방어 - 우리 몸을 지키는 면역의 놀라운 비밀
맷 릭텔 지음, 홍경탁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일단 세 가지를 경험하게 된다. 면역학의 역사와 기초를 이해하고, 무너진 면역체계의 위험성을 깨우치며, 마음이 따뜻한 괜찮은 의사를 알게 된다. 대부분 내용은 의학적 발견에 대한 과학적 설명과 복잡한 임상 치료법으로 가득하지만, 분량과 비교하면 의외로 쉽게 읽을 수 있다. 퓰리처상 수상 언론인이자 작가인 저자는 독자들이 어려운 개념을 이해하기 쉽도록 정성을 기울여 설명한다. 그는 스포츠, 전쟁, 경찰 등 설명에 도움이 될만한 것은 무엇이든 가져와 적절한 은유와 직유를 사용하여 복잡한 생각을 단순하게 설명함으로써 일반 독자들이 점차 이해의 폭을 넓혀나가도록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

가독성을 높이는 동시에 독자에게 이 책은 의학전문 학술서가 아닌, 궁극적으로 면역 및 자가 면역 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 관한 내용임을 상기시키고자 저자는 제이슨, 린다, 메러디스, 밥 네 명 환자들의 치료 여정을 나누어 담아내고 있다. 그는 또한 산뜻한 유머를 자유로이 구사하면서 이 분야에 대한 그의 개인적이고 깊이 있는 관심을 자연스레 드러낸다. 면역학 분야가 닭 한 마리로부터 유래된 것일 수도 있다는 유머에 거부감을 느낄 독자는 거의 없지 싶다.

면역학 초창기에는 돌파구라는 명칭이 딱히 어울리지 않았겠지만, 저자는 이 분야의 주류를 이루는 흐름으로 독자를 서서히 이끌어 나간다. 조류 독감, 흑사병, 소아마비, 루푸스, HIV/AIDS, 천연두, 류마티스 관절염, 암 등 16세기부터 등장하여 치료법이 알려지기 시작한 질병과 그 극복의 역사를 되짚어준다. 또한, 개별적인 과학적 발견이 다른 과학자들과 연결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무수한 학문 분야와 다국적 과학자들의 놀라운 다양성을 강조한다. 유명인사들의 행적을 묘사하기보다는 되도록 그들의 아이디어, 업적 및 해당 분야와의 연관성을 이해하기 쉽도록 인터뷰 발췌문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 책은 오늘날 가장 위대한 면역학적 진전을 이루어낸 긴 역사 속 시간 여행으로 독자들을 안내하면서 그간 제시되었던 기본적인 질문의 답을 알려준다. 알레르기의 원인; 기생충, 바이러스, 박테리아의 차이점; 우리가 아프거나 다쳤을 때 염증이나 열이 발생하는 이유; 항체의 정의; 자가면역의 작동법; 미생물의 정체와 건강 유지에 미치는 역할 등이 그 좋은 사례이며, 산더미처럼 쏟아져나오는 면역체계 강화 제품들의 선전 문구가 과연 믿을만한지를 묻기도 한다.

또한, 집단에 대비된 개념으로서의 개체별 면역체계의 실패와 성공, 쇠약해지는 자가면역체계의 유지 관리 방법, 건강 유지에 필요한 요소 등 평소 우리가 궁금해했던 질문에 해답을 제시한다. 스트레스와 가공식품 소비를 줄이고, 금연과 항생제 과다 사용을 자제하며 수면 시간을 늘리라는 권고는 익숙하다 못해 지겨울 수도 있겠다. 인간 역시 자연계의 일부로서 미생물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강박적으로 세균을 방어할 필요가 없으며, 실제 우리의 건강을 유지하려면 더 많은 흙과 세균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한편 청결 이외에도 정상적인 면역체계 유지를 위해 저자는 건강한 수면을 언급한다. 청결 유지를 위해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집을 유지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우리가 조절하기 가장 쉬운 약품인 수면은 다소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피로감이 사라질 때까지 취하는 것이 좋다. 누구나 겪어봐서 알겠지만, 하룻밤 푹 자고 나면 월등히 나아진 성능의 면역체계가 간밤의 피로감을 날려버리기 마련이다. 세상에 장수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면역학 분야의 과학에 관한 입문서 그 이상이다. 면역 및 자가면역 질환과 장애를 앓고 있는 네 환자의 투병기인 동시에, 이들과 유사한 환자들의 치료를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여러 세대에 걸쳐 노력해 온 의료인들의 인도적인 이야기이다. 면역체계의 역습에 직면한 독자들이 이 책을 접한다면 그동안 견뎌온 신체적, 감정적 시련을 검증받을 좋은 기회라 여길 것이고, 아울러 질병을 더 깊이 널리 이해하고 희망적인 미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어 줄 것이다. 인체에 미치는 해로움이나 치유능력에 관심을 둔 교양있는 독자들 또한 이 근사한 면역학 이야기에 매료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몸을 지키는 면역은 어쩌면 최근의 화두인 뇌과학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의료혜택과 건강 상식의 보급으로 평균수명은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늘어난 수명 대부분을 침대에 누워 지내게 된다면 목숨을 부지하는 것 외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예일대 면역학 분야의 선구자인 루슬란 메지토프의 말처럼 우리는 불멸의 삶을 원하는 게 아니라, 다만 나이 들어도 건강하고 싶을 뿐이다. 인간다운 삶을 지탱해주는 건강을 위해,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면역학 기초교양 강좌에 독자들을 초대하는 바이다. 우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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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말합니다
박소연 지음 / 더퀘스트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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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회사 아침 회의에서 멀쩡하게 얘기를 주고받던 중, 정전으로 화면이 꺼지는 텔레비전처럼 나도 모르게 앉은 채로 정신을 잃었습니다. 누가 보면 마치 회의가 지루해서 졸고 있는 줄 알았을 겁니다. 1분쯤 지나 정신을 차려 보니 바로 위 직급의 상사가 쯧쯧 혀를 차며 비웃듯 이렇게 말합니다. “도대체 그런 형편없는 체력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 꼭 동생 같아서 아끼는 마음에 한 소리랍니다. 글쎄요, 친동생이라면 어디가 아픈지부터 물어봤겠죠.

 

아침 일찍 열린 거래처 기술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업무상 필요하니 듣기는 하는데 문과 출신이라 어려운 기술용어는 외국어나 한가지입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움직이느라 긴장이 풀리면서 덥고 답답하고 어둑한 강당 구석에서 잠시 졸고 말았습니다. 이를 지켜보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사장님이 조용히 저를 불러내 이렇게 말합니다. “자네 미친 거 아니야 어떻게 거래처 직원들 다 보는데 졸음이 오나? 만약 나한테 권총이 있었다면 바로 쏴 죽였을 거야!” 그에게는 직원의 상태보다 거래처의 눈에 비치는 대표의 체면이 더 중요했을 겁니다. 사장님이 졸았더라도 거래가 끊기거나 회사가 망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저는 기면증 환자였습니다. 수면이 발작처럼 아무 때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 특징인데 회의나 강의 도중, 심지어는 운전이나 시험 중에도 발생합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수면 호르몬의 교란이 원인이며 결국 약물치료를 받고 나았습니다. 미련하게도 모든 잘못은 본인에게 있으며 대오각성하라는 직장 상사들의 틈바구니에서 꼬박 5년을 버티다 결국 이직하고 말았습니다.

 

20대와 30대 초반 젊은 날 대부분을 차지하면서도 가장 많은 추억과 상처를 남겨 준 직장생활 기억의 일부입니다. 물리적으로 힘들었던 기억은 차라리 고생했던 추억으로 남지만, 직장 상사들이 놀린 세 치 혀끝에서 시작된 상처의 기억은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당시는 마땅히 대응하는 방법을 잘 모르던 새내기 사원이기도 하였고, 소심한 성격상 바보같이 웃어넘기고 말기가 일쑤였습니다. 정도만 다르다 뿐 이건 마치 내 이야기 아닌가 착각할 분들, 적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힘든 직장생활 얘기에서 책으로 돌아와 봅니다. 저자의 나이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관찰력과 통찰로 펴낸 이 책은 가히 일터에서 필요한 올바른 언어생활 안내서이며, 최근 필자가 읽은 자기계발 서적 가운데 가장 실용적이고 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교범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오가는 업무용 언어는 일상 언어와는 사뭇 다르기는 하지만 특별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무심히 넘길만한 부분입니다. 저자는 단순히 말 잘한다는 수준을 넘어서서 일상과는 다른 언어생활의 중심을 꿰뚫는 규칙 또는 지침을 제시하고 있으며, 직장인이라면 반드시 배워둘 필요가 있을 뿐 아니라 사용 범위를 좀 더 확대하여 일상에서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어 보입니다.

 

대체 일상 언어와 일의 언어는 무엇이 다른 걸까요? 저자가 말하는 일상 언어는 첫째, 머릿 속 생각을 혼선 없이 명확하게 전달하는 단순하고 정확한 소통이 핵심이며 둘째, 논리와 감성을 적절히 활용하여 상대방으로부터 양질의 언어 선택을 끌어내는 능력이 중요하며 셋째, 감정적으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영역의 골디락스, 즉 중간 온도의 관계 언어가 기본이며 마지막으로 부서원이 존중받고 합리적이라고 느끼는 리더의 언어를 구사하라고 합니다. 정확성과 단순함 그리고 우아함을 가지고 말하는 일의 언어는 조금만 배우면 누구나 잘할 수 있다면서, 가장 비중 있는 네 가지 분야 즉 정확성을 높이는 소통법, 설득법, 일의 관계 맺기 및 밀레니얼 세대 통솔법을 제시합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지난 세월 겪었던 직장생활을 떠올렸습니다. 만일 그때 내가 이 책을 접했더라면 좀 더 슬기로운 언어사용으로 상처받지 않고 대처할 수 있었으리라는 일말의 후회가 종종 밀려왔습니다. 당시에도 시중에 이러한 종류의 서적은 분명 나와 있었을 겁니다만, 돌이켜보건대 세상 물정에 어둡고 하루하루 살기에 급급하여 주위를 둘러볼 마음의 여유도 없었을 겁니다. 또한, 분명 누군가는 질적인 조언을 해 주었을 것이 분명한데 그것을 마음에 담아 둘 그릇이 못 되어서였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당시 모자라고 실수투성이인 신입사원에게 가혹한 말 대신 격려의 공치사 한 마디만 해 주었다면 그 회사는 말도 잘하고 일도 제법 하는 괜찮은 인재를 거둘 수도 있었을 거라는 믿음으로 자신을 위로해 봅니다.

 

 

The limits of my language is the limits of my world.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이다.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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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2020-05-26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리뷰 감사합니다.
 
공룡 사냥꾼 - 집착과 욕망 그리고 지구 최고의 전리품을 얻기 위한 모험
페이지 윌리엄스 지음, 전행선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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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법정 소송에서 피고인이 공룡이라면, 십중팔구 언론에서는 난리를 피울 것이다. 2013년 미국 정부 대 티라노사우루스 바타르 두개골로 알려진 사건에서 언론은 저마다 밀수된 공룡 뼈를 다루려 앞을 다투었다. 타르보사우루스 바타르(Tarbosaurus baatar)는 공룡의 시대가 끝날 무렵 백악기 말기에 몽골의 습한 범람원을 누비던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의 가까운 친척이었다. 고생물학자 팀에 의해 발굴된 타르보사우루스 두개골 일부는 운 좋게도 박물관으로 옮겨져 연구와 공개 전시용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중앙아시아에서 불법으로 수출되어 공공연한 화석 암거래 시장으로 흘러 들어간 일부는 이베이에서 열리는 보석 광물 전시회에서 개인 딜러를 통해 직거래 되거나 경매를 통해 판매된다.


 

뉴요커기고가이자 이 책의 저자인 페이지 윌리엄스는 문제의 타르보사우루스를 구입, 준비, 판매를 시도한 에릭 프로코피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 유골이 어떻게 몽골에서 빠져나왔으며 궁극적으로 어떻게 몽골로 되돌아갔는지를 밝힌다. 한편 고생물학, 민족주의, 그리고 자본주의가 충돌할 때 생겨날 수 있는 복잡한 양상을 상세하면서도 도드라지게 그려내면서, 자연물인 화석이 어떻게 국가적 문화유산 또는 탐욕스러운 수집 대상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세상에 공룡 화석에 매료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작가의 논픽션 데뷔작 '공룡 사냥꾼'은 화석을 사냥하거나 수집하는 사람들 모두 흥미를 느낄만한 폭발물 상자나 다름없다. 철저한 조사와 풍부한 주석을 갖춘 이 매혹적인 책에서 화석 애호가들은 지금까지의 자연사 애호가들과 마찬가지로 유난히 한 가지 영역에만 집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자연사 박물관의 고생물학자 마크 노렐의 말처럼 구석구석 온통 화석으로 뒤덮여 있는 집에 가보니 식기세척기에도 삼엽충이 들어 있다고 할 정도로 이들의 관심과 집착은 상상 이상이다.

 

화석을 사냥하는 동기는 무엇일까. 단지 오래되었기 때문인가. 대개 공룡 화석은 2억 년 이상 된 것인데, 너무 희귀하고 찾기 어려워서일까. 희귀성으로 말하자면 지구 행성에 존재했던 모든 동물 종의 1% 미만의 유해가 화석화되었다고 추정된다. 인간이 기록한 역사보다 먼저 존재했던 생명체들의 기원에 대한 실마리를 과학자들이 발견하였기 때문일까. 지금까지 확인된 모든 새로운 종은 자연사 지식을 종합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아니면 화석이 매우 수익성 높은 사업이기 때문일까? 1997라는 별명을 가진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의 화석은 무려 836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저자가 지적하듯 화석 광()들은 일반적으로 고생물학자, 수집가, 상업적 사냥꾼의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들의 개인적 성향은 셋 가운데 어느 집단을 향하느냐에 달려 있다.

 

개인에게 팔려나간 화석은 사실상 과학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박탈감을 선사한다. 박물관 같은 공공 기관에 맡겨진 표본들은 고생물학자들이 두고두고 반복 연구할 수 있는 소중한 자연사 사료가 되지만, 개인이 소장하는 화석에는 영구히 관리해야 하는 공공재와 동등한 의무를 지울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몽골 등 많은 나라에서는 허가 없이 과학적으로 중요한 화석을 발굴하거나 수출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38세의 에릭 프로코피는 지구 저편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불운한 주인공 같다. 독자의 눈에 비친 그는 재정적 위기에 처한 아버지이자 남편이며 화석 사냥꾼이다.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경제 개념이 적고 검소함을 모르던 주인공 부부는 늘 위태롭던 재정 상황을 겨우 수습하며 살던 중 유명 경매장에서 사냥꾼 인생 최고의 화석을 처분하여 수백만 달러의 이득이 예상되자 마치 화석을 가득 실은 선사시대 보물선의 선주라도 되는 듯 기뻐했다. 하지만 그는 화석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세 집단의 욕망이 충돌하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만 했으며, 충돌의 결과로 감옥에 갇힌 자신을 발견할 뿐이었다. 그는 지정학, 자본주의, 민족주의의 열정을 구실로 한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가 되었고 그의 독특한 개인적 이력과 고지식한 인간성은 비극적 영웅에 어울리는 소재가 되었다.

 

프로코피는 1990년대 소년 시절 고향 플로리다의 강에서 상어 이빨 따위의 원시 시대 기념품을 줍기 위해 다이빙을 시작했다. 그는 플로리다 자연사 박물관의 카탈로그 제작자로 일하다가 고가의 화석 경매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2006년 몽골에서 발굴된 공룡 두개골의 일부를 사들인 후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에게 상당한 이윤을 남기고 되팔았다. 그러나 이후 발굴작업과 더 많은 화석 수입을 목표로 몽골에 도착하였을 때 자신이 밀수 혐의를 받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세계적으로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대부분 국가는 화석 수집과 밀거래를 규제하는 법률이 전혀 없고 있더라도 매우 느슨했다. 화석연료나 귀금속 보석류에 비하면 공룡의 유골은 이렇다 할 돈벌이는 되지 못했다. 당시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심지어 미국의 관련 법률조차도 완전하지 못하여 사유재산권을 우선하여 인정하고 마는 데 그쳤으므로, 프로코피는 상당히 합리적으로 법적 문제에 대한 자신의 무지를 주장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모르고 한 일이니 선처의 여지가 있지 않겠냐는 반론에 힘을 얻었고, 실제 미국 법정에서도 사상 초유의 재판이라 선례가 없었으므로 그는 가혹한 처벌을 면할 수 있었다.

 

저자는 고생물학과 화석 사냥에 관한 역사적 맥락을 좀 더 조명하기 위해 프로코피의 이야기에서 한 발짝 물러선다. 이 작품이 전지적 작가 시점의 소설이라기보다는 공룡 밀수 사건을 추적한 보고서로 읽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저자는 특히 화석 사업에 뛰어든 주요 참가자들의 신상을 작성했는데, 많은 등장인물의 배경 설명으로 시작하는 모든 일화의 결말은 공룡 밀수 사건의 재판 으로 수렴된다. 방대한 자료 조사와 풍부한 고증에 비해 그 흔한 공룡 표본의 사진이나 신문 기사, 도표나 그림 같은 시각 보조 자료가 전혀 없는 점은 옥에 티다.

 

20세기 중반 고생물학적 발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화석 산업은 큰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화석 산업과 관련한 중국, 몽골, 러시아, 미국 등의 정부 당국과 기관뿐만 아니라 국내외 정치인들의 관심 사항, 동향, 참여 동기 등이 드러난다. 전대미문의 공룡 밀수 사건, 그칠 줄 모르는 자본의 탐욕, 이익을 위해 번복되는 믿음 등을 다룬 세부적인 묘사는 강렬한 흥미를 자아낸다. 저자는 인류가 존재하기도 수백만 년 전에 죽은 유골을 개인 또는 정부 기관이 합법이라는 명목으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하는 진지한 질문거리를 제시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밀반입된 타르보사우루스는 결국 몽골로 반환된다. 줄거리의 핵심은 프로코피라는 인물의 일대기이지만, 몽골 고생물학자 볼로르 민진이 타르보사우루스를 자국으로 데려와 고생물학 연구와 교육을 다시 시작하려는 시도는 우리에게 신선한 영감을 준다. 그녀는 타르보사우루스의 판매에 대해 경종을 울렸고, 그녀가 설립한 비영리 몽골 공룡 연구소와 함께 밀반출된 수많은 공룡 유골이 송환되도록 힘을 보탰다. 매년 여름, 그녀는 40피트 높이의 이동 박물관에서 몽골의 시골을 여행하는 팀을 이끌고 공룡들을 그녀의 동료 몽골인들에게 직접 데려가 보여준다. 그러나 밀수입된 공룡 판매에 들어간 액수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지원금으로 기초교육과 연구를 진행하는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몽골의 화석이 공룡 진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히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화석 대부분이 몽골이 아닌 외국의 고생물학자 팀과 상업적 화석 사냥꾼에 의해 발굴된 점은 매우 안타깝다. 이렇게 밀반입된 타르보사우루스의 이야기는 외국의 고생물학자들에게 몇 가지 불편한 의문을 제기한다. 외견상 상업적 이득을 목표로 하지 않았던 그들의 노력이 결과적으로는 민주주의를 빙자한 또 다른 형태의 서구 열강 식민주의의 발현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또한, 화석 연구자들이 상대적으로 빈약한 몽골 학계의 연구능력과 공공 활동을 위한 역량을 키우도록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 미국과 관계가 소원해지고 경제 기반도 부실한 중앙아시아의 일개 국가를 위해 과연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는가를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공룡은 과학으로 가는 관문이고, 과학은 기술로, 기술은 미래로 가는 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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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 『죽음의 수용소에서』빅터 프랭클과의 대화
이시형.박상미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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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은 즐거움을 추구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엔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더 더하는 욕심이 발동하면 행복도 멀리 달아납니다. 이게 행복의 역설입니다. (p.78)

 

저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인생의 멘토인 이시형 박사님과 교정 시설에서 제2의 인생 상담 전문의로 활약하는 박상미 박사가 만나 삶의 의미를 논합니다. 이들은 의미치료, 즉 로고테라피로 일컫는 새로운 정신치료 요법을 이끌고 있습니다. 의미치료의 요체인 로고스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다채로운 용어로 정의됩니다.


 

로고스는 모든 생명체에 비장된 마지막 본성의 발로입니다. 역경, 가혹한 상황에서 추악한 행동을 하는 자와 거룩한 성자처럼 행동하는 자가 있는데 이것이 인간 본래의 모습입니다. 인간 정신의 기원, 영혼, 논리, 정신, 우주 법칙, 신의 의미, 위대한 힘입니다. 모든 걸 지배하는 우주의 힘, 신의 이념. 어떤 일도 로고스가 나타나야 가능하고 우리 개인은 로고스가 피우는 작은 불꽃일 뿐입니다. 우리 본래의 모습이 바로 로고스이며, 자기 속에 잠들고 있는 그 힘을 자각하고 이를 믿고, 거기에 자기를 맡기고 살면 로고스가 작용하여 위대한 일이 이루어집니다. 어떤 비참한 상황에도 인간은 사랑하는 자의 정신적 상을 그려 스스로를 충족시킬 수 있으며 그와의 정신적 교류에 의해 로고스에 도달, 불러 깨울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전체 3부로 구성되었으며 책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처음 만나게 된 과정과 이시형 박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준 로고스의 발견을 통해 인생을 재해석해보고(1), 박상미 박사가 말하는 새로운 형식의 정신치료 요법인 로고테라피(의미치료)의 실전적 정의와 상담 실례를 제시하며(2) 두 공저자가 묻고 답하는 대화 형식으로 풀어주는 의미치료의 실생활 적용사례를 보여줍니다(3).


의미치료는 기본적으로 로고스의 생명 에너지를 깨우는 데 있는데, 우리가 행복을 일부러 찾아가겠다며 욕심을 부리기 때문에 저절로 찾아드는 행복을 맞이하지 못하며, 자신을 긍정하는 기본적인 인생 철학의 부재로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정신과 질환이 있는 환자라고 해서 적극적인 대증요법으로 치료하기보다는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아내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합니다. 특히 의미치료 대화록으로 명명된 3부는 두 공저자의 내담자와 의사가 나누는 대화체 형식으로 구성되어 마치 상담 현장을 보고 있는 듯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이 책은 수동적으로 삶에 기대지 말고 삶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적극적으로 답을 찾아 나서다 보면 이전과는 사뭇 다른 재미난 인생을 살 것이라 말합니다. 우리는 아흔을 넘긴 어느 노 의사가 일흔에 써 놓은 책을 보며 그때는 너무 철이 없었다고 말하는 역설과 어안렌즈처럼 인생을 관통하는 통찰과 지혜를 통해, 자신이 주체인 삶과 스스로 인생의 주인공 자리를 유지할 힘을 얻어 성숙하고 농익어가는 과정을 즐기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내 삶의 의미를 찾는 남녀노소 구별 없이 모든 독자분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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