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탐험 - 너머의 세계를 탐하다
앤드루 레이더 지음, 민청기 옮김 / 소소의책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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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탐험의 길로 나서게 만드는 가장 큰 힘은 호기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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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탐험 - 너머의 세계를 탐하다
앤드루 레이더 지음, 민청기 옮김 / 소소의책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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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서 동굴로, 다시 동굴에서 들판으로 나온 인간의 역사를 시작으로 탐험은 중요하면서도 경이로운 행위였다. 탐험은 또한 오랫동안 대중의 일관된 관심사로서 우리가 역사와 과학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늘 일깨워준다. 초기 폴리네시아인들이 망망대해를 건너 남아메리카에 도달하였고, 로마인들이 중국을 여행하였으며, 심지어 흑사병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던 14세기에도 인류는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 인도, 중국, 인도네시아를 횡단하였다는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치면서, 저자는 고대와 중세 세계의 사람들이 그들 이전의 세대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음을 상기시킴으로써 우리를 탐험의 역사로 안내한다. 그뿐만 아니라, 해상 탐험의 선구자였던 바이킹이 우연하게도 균형 잡힌 식단으로 당시 선원들에게 치명적인 괴혈병에 걸리지 않았으며,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후 장거리 항해에 보편적으로 반영된 것과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풍성하다. 무엇보다 일부 서구인 특유의 편협하고 일방적인 서구 위주 세계관에서 벗어나 동양의 확장과 탐험까지 포괄하고 있어 저자의 열린 마음과 학문적 내공을 가늠할 수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끝없이 전진하게 한 원동력은 세상의 끝과 그 너머에 있는 거대한 바다에 가려는 열망이었다. (70)

 

이 책은 탐험의 역사를 통하여 인류의 탐험 욕구가 인류에게 어떤 진전을 이루게 하였는지, 그리고 미지의 우주 세계로 인류를 어떻게 데려갈 것인지를 진지하게 살펴본다. 화성 이주 계획 스페이스X를 총괄하는 저자가 쓴 이 책의 제목은 무미건조한 과학 논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호모 사피엔스 종족이 이룬 업적에 대한 경외감으로 가득하다. 범죄 스릴러 장르도 아닌 것이 400여 쪽을 순식간에 읽어나가는 재미가 여간 아니다. 또한, 저자는 인류 탐험의 시대를 고전 세계사, 유럽의 발흥, 과학의 발전, 그리고 우주여행의 미래로 분류하였다. 그리스인들의 성장과 그들이 세계에 미친 영향,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야기, 탐험 강국이었던 중국의 흥망성쇠와 그 영향 등 흥미로운 소재들이 놀라운 속도로 펼쳐진다. 우주여행의 미래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저자가 이 분야에서 현존하는 최고 권위자이기 때문에 가능하며, 쉽고 재미있게 쓰여 과학에 전문가가 아닌 독자라도 누구든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향신료는 한마디로 위세를 자랑하는 수단이었다. 그것을 보면 세상의 변두리였던 중세 유럽의 삶이 얼마나 단조로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유럽의 귀족들은 외국에서 온 음식을 먹으면서 찬란했던 시절, 그러니까 그리스인과 로마인이 호화롭게 생활하면서 아시아의 제국을 짓밟고 세계무대에 승자로 우뚝 섰던 시절의 기억을 잠시나마 떠올렸던 것이다. (137)


흔히 세계사라고 하면 우리는 르네상스 초기까지 유럽이 동양과 비교해 기술적으로 앞서 있었고 밖으로 나가 경쟁적으로 세계를 정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고전적인 이야기를 머리에 떠올린다. 그러나 저자는 이 시대 유럽 부흥의 원인은 각국의 기업에서 얻은 자원과 지식에 있었음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1400년 당시 중국은 의심할 여지 없는 세계 최고의 경제 및 군사 강국이었지만, 정화 원정대 이후 외국의 영향이 자국의 문화를 바꿀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고립주의로 돌아섰다. 공교롭게도 중국이 무역로 탐사와 패권 장악을 중단했던 바로 그 시기에 초기 제국주의 유럽 국가들이 그 공백을 메우기 시작한 것이라 말한다. 탐험과 기술 사이의 상승효과는 이 책에 반복되는 주제로, 수 세기 전의 탐험가들이나 오늘날의 선구적인 우주 탐험가들 모두에게서 공통으로 발견된다. 인류는 미지의 것을 탐험하면서도 찾고 있던 것을 늘 발견하지는 못한 대신, 미래의 탐험 방향과 같이 역사의 흐름을 바꿀 급진적인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곧 탐험이 본질적으로 바람직하고 유익하며 심지어 인류의 미래에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통찰을 보여주는 저자의 역사와 과학에 대한 깊은 이해는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과학자의 수준을 넘어선다. 그뿐 아니라 언어에 대한 깊은 이해와 구성 능력은 어쩌면 예상치 못한 즐거움일 수도 있다. 문화와 사회 사이의 연관성을 보여주기 위해 매우 높은 수준의 분석적 정교함으로 탐험의 역사는 물론 영어 어원의 역사를 파헤친다. 공성 전투 시 적의 성 밑을 파 들어간대서 유래한 undermine, 진나라를 일컫다가 중국을 뜻하게 된 china, 슬라브 민족을 노예로 삼았던 흑역사의 slave,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의 이름을 딴 Philippines, 이 외에도 한때 세계 해상 무역을 장악했던 네덜란드의 영향으로 지금도 널리 쓰이는 booze(), boss(상관), coleslaw(양배추 초절임), cookie(과자), cruise(순항), decoy(미끼), dope(약물), kink(괴짜), spooky(으스스한), Yankee(미국 북부인) 등이 좋은 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 유럽인보다 훨씬 행복했다. 유럽인이 많이 찾는 잉여물이나 문명의 이기를 전혀 접해보지 못해서 그런 것들의 효용을 몰랐기 때문이다. 불평등이란 것을 몰랐기에 아주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물질적 풍요는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우리는 현대 문명의 이기에서 행복을 찾기보다는 이웃과 비교하면서 우리가 가장 높은 곳에 있지 못하는 것을 불평한다. (255)

 

궁극적으로 저자는 로봇이 잠재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찾을 수 있는 투기적 미래, 심지어 우리의 가장 가까운 별에 도달할 수 있는 우주선을 가질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달과 화성에 식민지를 가질 수 있는 미래로 우리를 안내한다.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한다면 돌파구는 따라오지 않는다면서, 어떻게 우주를 탐사할 것인가를 구체적 기술적으로 설명한다. 미지의 것을 탐험하도록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은 인류의 특징이자 잠재된 본능이다. 아직 지구에 대해 미처 알려지지 않은 것들도 수없이 많지만, 우리는 별들을 올려다보며 저 우주 밖에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오랜 시간과 천문학적 액수의 재원,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실패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실패가 인류의 탐험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실패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가르쳐주었고 우리는 실패를 통해 배워왔다. 저자는 이러한 이유만으로도 미지의 세계를 계속 탐구해야 할 당위성을 강조한다.

 

장거리 항해를 통해 얻는 이익이 없다면 장거리 항해용 선박은 결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발전하려면 한계를 초월해야 한다. (319)

 

이 책이 주는 근사한 선물 중 하나는, 거의 모든 쪽마다 최대 3개씩 달려 온갖 종류의 특이한 정보를 제공하는 각주이다. 세계 최초로 유인 우주 비행의 공로를 인정받은 유리 가가린이 비상시를 제외하고는 늘 잠겨 있어 실제로는 조종 장치에 손도 대지 않았으며, 저장 기술의 발달로 등장한 통조림이 초기에는 따개가 없어 망치와 끌로 열어야 했다는 식이다. 이 책에 언급된 주제들을 좀 더 깊이 공부하고 싶다면 부록에 제시된 참고문헌을 통해 자세히 살펴볼 수도 있다. 인간을 탐험의 길로 나서게 만드는 가장 큰 힘은 호기심에 있음을 상기하며, 인류 역사와 천문학, 우주과학 분야는 물론 스타워즈나 스타트렉을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독자라면 절대 이 책을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우리라.


#세계사 #인간의탐험 #우주개발 #스페이스X #화성이주계획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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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 기술 빅뱅이 뒤바꿀 일의 표준과 기회
대니얼 서스킨드 지음, 김정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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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오랜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돌아보면 우리 인류는 항상 기술의 발전으로 일자리가 없어질 것을 걱정해왔다.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 제조업자들이 앞다투어 기계를 도입해 대량생산을 시작하자, 자동화로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운 사람들이 기계를 부수는 러다이어트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실제 미국 뉴욕의 거리를 메우고 다니던 마차와 말들은 대량생산된 포드 차량으로 대체되었다. 신기술로 인해 또 다른 새로운 산업이 나타나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이번엔 다르다면서 곧 큰 재앙이 도래할 것처럼 우려한다. 최근 IT 기술의 발달로 등장한 인공 지능이라는 신기술은 인류의 새로운 걱정거리로 등장했다. 과연 우리 인간의 일자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저자는 앞으로 우리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체계적으로 분석하면서, 먼저 그간 인간의 노동이 기계의 자동화에 잠식됐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노동에 대한 수요는 계속 존재하였고 왜 일자리 부족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는지를 설명한다. 자동화의 초창기에는 인간이 밀려나지만 다른 영역에서 보완 작용이 일어나 걱정과는 다르게 노동의 수요가 증가하였는데 그 이유는 첫째 생산성의 향상, 둘째 기술 진보로 인한 파이 자체의 확장, 셋째 탈바꿈 효과 때문이었다. 기술의 진보가 인류에게 위협적이긴 했지만, 동반자이자 친구이기도 했다. 걱정과 달리 인간의 노동을 찾는 수요는 늘 충분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무렵 그리고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지금까지의 공식은 들어맞지 않게 된다.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 이러한 기술을 다룰 줄 아는 고숙련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였고, 어렵고 힘든 일은 기계가 하는 한편 단순 노동자의 수요도 함께 증가한다. 예컨대 저임금을 받는 간병인, 청소부, 정원사, 웨이터 등의 직업군과 고임금을 받는 전문직과 관리직 수요는 늘어났지만, 중간 임금을 받는 생산직 노동자와 판매원 등은 줄어들게 되었다. 고임금 고숙련 일자리는 대체로 독창성과 판단력을 요구하는 틀에 박히지 않은 업무라 쉽게 기계로 대체되지 않으며, 저임금 일자리는 대개 손기술이 필요해 자동화가 어렵거나 자동화로 대체하는 비용이 더 크기 때문에 수요가 계속 존재하는 것이다. 문제는 중간층이라 볼 수 있는 생산직과 사무직 노동자의 일자리로 상당 부분 기계로 교체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은 대체로 여기까지이다.

그렇다면 인공 지능 시대에는 무엇이 달라질까? 최초의 인공 지능은 인간의 뇌를 본떠 기계를 구축하고자 하였고 두뇌의 실제 구조를 그대로 복제해 인공신경망을 만들고자 했지만 실패하고 만다. 최근 주목받는 인공 지능은 과거와는 개념이 좀 다르다. 인간이 지능적으로 수행하는 과제들을 전혀 다른 접근 방법으로 완수한다. 인간 두뇌의 작동원리와는 무관한 컴퓨터 연산 기능을 통해 인간처럼 생각하진 않지만, 인간이 생각한 것과 다름없는 결과물을 창출해낸다. 인공 지능이 출시되면 사라질 직업의 순위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직업들이 아예 사라지거나 한 번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공 지능은 개별적인 좁은 영역의 업무를 아주 강력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변호사의 경우 고객 상담과 법정 변론, 사례 찾기, 계약서 검토 등이 주요 업무라면 계약서 검토는 인공 지능에 맡기고 다른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흔한 오해와는 달리 인공 지능은 직업 자체가 아닌 업무를 대체하는 것이다.


그동안 틀에 박히지 않는 업무는 기계의 습격에도 괜찮았다. 이는 암묵적 지식, 즉 인간이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지식을 기초로 한 일인데 명확한 설명이 어렵다 보니 자동화 분야에서 비켜나 있었다. 피부과 전문의가 피부 반점과 암을 구별해 내듯 경험과 지식이 충분해야 가능한 전문적 영역이 그러하다. 전문성도 경험도 심지어 감도 없는 인공 지능은 그러나 수십만 개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유사성을 찾아내어 인간과 같은 결과를 보여준다. 흔히 인공 지능은 창의적 판단을 수행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인간과는 전혀 다른 수행 방식으로, 갑작스러운 혁명이 아니라 진화처럼 서서히 꾸준하게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그 속도는 나라마다 다르고 인건비 수준과 도입 비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또 다른 요인은 인공 지능의 적용 대상이다. 미국인 대다수는 알고리즘을 이용해 가석방을 결정하거나 입사지원서를 선별하고, 소비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재무 점수를 매기는 데 반대한다. 영국에서 구글의 딥마인드가 병원과 손잡고 환자 160만 명의 기록에 접근하는 계약을 맺자 국민은 불안해한다. 한편 중국은 2030년까지 AI 선도주자가 되겠다며 나서고 있으며 러시아도 같은 취지로 말한다. 중국의 인건비가 많이 오르자 시진핑은 로봇 혁명을 주문하고 있는데 중국 시민들은 저항할 꿈도 못 꿀 것이고 만일 그렇더라도 수용될 것 같지는 않다. 저자는 인공 지능 시대가 도래하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일자리가 신기술로 대체되기는 해도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어려울 것으로 예측한다. 즉, 대체하는 힘이 보완하는 힘을 압도하여 영원히 이런 흐름으로 진행될 것이라 말한다.

몇십 년 동안 거의 세계 모든 지역에서 소득 불평등이 커졌지만, 속도는 달랐다. 발전 수준이 비슷한 국가들 사이에서도 불평등 수준이 무척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불평등을 형성하는 데 국가 정책과 제도가 무척 중요하다는 점을 뚜렷이 드러낸다. 그러므로 소득 불평등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205쪽)

기술의 인간 업무 잠식에도 불구하고 인간 노동의 수요가 증가했던 현상은 이렇게 변모된다. 첫 번째, 기계가 사람을 밀어내자 사람은 자동화되지 않는 분야에 집중함으로써 생산성이 더 높아졌던 생산성 효과는 인간 노동자가 기계보다 더 나은 조건일 때만 가능한 이야기다. 오로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는 인공 지능에 의해 계속 잠식되고 있다. 두 번째, 경제 파이가 더 커지고 소득이 높아져 노동 수요가 커진다는 파이 확대 효과는 소득 증가가 상품 수요로 이어지더라도 상품을 꼭 노동으로만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니므로 반드시 노동 수요 확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세 번째 파이 탈바꿈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파이는 농업에서 제조업으로, 다시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바뀌어왔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아직 예상하지 못하는 새로운 산업 시대가 열릴 것이다. 100년 전 농부들이 의료, 금융, IT, 여가 분야 산업에서 이렇게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리라 상상이나 했겠는가?

하지만 지금 한창 주목받는 신기술은 사람이 거의 필요 없다. 2006년 유튜브가 2조 원에 팔릴 당시 임직원은 고작 16명이었고 2012년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1조 원에 매입했을 당시 임직원은 겨우 13명이었다. 신산업의 고용 창출 효과는 기껏해야 0.5%뿐이다. 저자는 이처럼 일이 서서히 줄어들지만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기술의 단기 영향은 과대평가하면서 장기 영향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음을 경고하면서, 인간의 노동을 찾는 수요가 한순간에 무너지리라는 두려움이 팽배해 있음을 지적한다. 한 가지 분명한 기정사실은 당분간 인간이 맡을 일은 충분한 편이지만, 앞으로 수십 년간 장기적으로는 노동 수요가 충분치 않으리라는 점이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에게 일이 삶의 의미를 얻는 원천인 까닭은, 일 자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인생 대부분을 일에 쏟아붓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실제로 하는 일에서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만약 인생을 마음껏 다르게 보낼 수 있다면, 우리는 다른 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것이다. (326쪽)

여기서 우리는 일의 본질과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은 삶을 지탱할 수입을 벌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원대한 목적을 제공하고 삶의 체계와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현존 수렵 채집인과 문명사회 남성의 하루 평균 노동 시간을 비교해 본 결과 이들의 노동량이 놀랍도록 적었다고 한다. 이는 곧 인간은 삶에서 노동으로 정의되지 않는 성취감을 충분히 느낄 줄 안다는 의미이다. 일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비참함을 안겨주었다. 산업혁명 시대에 미친 듯이 일하던 공장 노동자들은 깊은 성취감을 느꼈을까? 야근과 휴일 근무를 하면서 진정한 성취감을 느낄 직장인이 얼마나 될까? 이제는 일이 삶의 의미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실제 인류의 지적 수준을 한층 도약시킨 것은 일하지 않고 마음껏 예술 과학 문화 철학을 틈틈이 익힌 사람들이었다. 일을 통해 목적의식을 찾는 것보다 여가를 이용해 성공한 삶을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저자는 그래서 이러한 조건에 부합하는 교육이 가능해야 하고, 조건적 기본소득을 제공하고 자본을 분배하며 노동을 지원하는 큰 정부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내가 주장하는 큰 정부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계획경제주의자들이 시도했다가 실패한 대로 정부를 이용해 파이의 크기를 키우자는 것이 아니라, 정부를 이용해 모든 사람이 파이를 나눠 갖도록 보장하자는 것이다. 달리 말해 큰 정부가 맡을 역할은 생산이 아니라 분배다. (238쪽)

결론적으로 산업혁명 이후 노동의 시대를 지나온 덕분에 향후 100년 동안 어느 때보다 더 부유해지는 대신 우리는 세 가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첫째, 경제적 번영을 사회의 모든 구성원과 나누어 불평등을 해소해야 하고 둘째, 이런 번영을 불러온 기술을 통제할 수 있는 정치적 힘을 결정해야 하며 셋째, 이런 번영 덕분에 노동 없이도 그럭저럭 살아가는 데 그치지 않고 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들은 물론 쉽지도 않거니와 해결되기도 어려운 문제이지만, 지금 세대와 앞으로 살아갈 모두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로봇과 AI가 우리 일을 떠맡을까 불안하고, 소득 불평등 심화가 우려되고, 아이들의 장래 진로가 걱정스럽고, 교육 시스템의 현재와 미래가 미덥지 않은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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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말하고 싶은 것들 - 인간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
김경훈 지음 / 시공아트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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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어 즉석에서 현상하는 폴라로이드가 최첨단 사진기 1순위에 올라 있던 대학 새내기 시절, 필자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라이카 필름 카메라를 들고 학교로 향했습니다. 주위에서 쏟아지는 부러움의 시선 세례를 즐기며 서로 모델이 되겠다고 나서는 여학우들 가운데 마음에 드는 한 친구를 간택한 뒤, 어깨너머 배운 구도법에 따라 열심히 셔터를 눌러대며 따사로운 5월 어느 봄날 오후를 보냈습니다. 무사히 촬영은 마쳤지만, 안타깝게도 그 여학우에게 나의 마음과 더불어 사진을 전해주지는 못했습니다. 이 얼치기 사진사가 필름을 회수하던 중 실수로 빛에 노출하는 바람에 반나절의 수고를 허사로 만들고 말았던 겁니다. 이 일로 여자 사람의 시선이 작렬하는 자외선보다 더 따가울 수 있음을 배웠으니 그래도 아주 허탕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사실 사진이 전하는 메시지에 필름에 반사된 햇빛보다 더 강렬한 관심이 생긴 것은 이보다 더 어릴 적이었습니다. 모아 둔 용돈 백 원을 저축하려고 동네 마을금고를 찾았던 코흘리개 필자는 영업장에 비치된 LIFE 사진집을 우연히 꺼내 들었는데, 그 책이 하필이면 종군 기자들이 찍은 전쟁특별판이었습니다. 고통에 찬 기이한 모양으로 시커멓게 불에 타다 만 시체와 떨어져 나간 자신의 피투성이 왼팔을 오른손에 쥔 채 넋 나간 얼굴로 봉합수술을 기다리는 야전병원 대기실의 군인처럼 전쟁의 참상을 담은 사진들을 처음 접하느라 영업시간이 끝나도록 구경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이 책의 32쪽과 88쪽에 등장하는 두 장의 월남전 사진 역시 그때 처음 보았던 기억이 너무나도 선명합니다.



 

사진만이 가지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고유한 속성은 찰나의 순간을 영원히 남긴다는 것입니다. 사진에 찍힌 뒤 현실 속의 피사체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하거나 소멸되어 가지만, 사진 속에 정지된 채로 담긴 피사체들의 이야기는 변함없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25)

 

이 책은 23개의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한 사진과 함께 풀어놓는 이야기보따리로, 저자가 찍었던 사진을 비롯하여 인화지 너머에 가려진 진실을 밝히며 세간에 알려진 오해를 풀어보는 1, 월남 전쟁과 흑백 갈등, 미국의 대공황과 우리나라의 80년대 민주화 시위 등 사회 변혁을 초래했던 사건들을 다룬 2, 달 착륙 우주인과 아인슈타인 박사, 냉전 시대의 정치인 등 역사 속 인물들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야사를 공개하는 3, 그리고 작고한 어느 유명 사진작가가 사진으로 남긴 개인사를 통해 사진이 눈으로 읽을 수 있는 일종의 언어임을 역설하는 4부로 구성되었습니다.

 


우리의 카메라는 최소한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기록하고 이것을 세상에 고발하는 인류의 눈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 당신이 꼭 사진기자일 필요도 없습니다. 사회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고 싶다는 보통 사람으로서의 강한 의지를 가진 당신의 손에 카메라가 쥐어진다면, 그것이 바로 권력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무기일 수 있습니다. (129)

 

열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장면이 다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에 더 믿음의 우선순위를 두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그것이 바로 진실이라고 확신하기까지 하지요. 그래서 사진이 말하고 싶은 것을 오해하고 심지어는 악의적으로 왜곡된 형태로 전파되는 파급효과는 매우 파괴적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중남미 난민들의 미국 국경 밀입국 현장에서 그들과 함께하던 순간에 찍은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자 역시 그러한 진실 왜곡의 희생자였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도입부에 그 사건을 먼저 배치한 것만 보아도 그가 목숨 걸고 밝혔던 진실을 부정당했을 때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비록 사진이 많은 것을 보여주긴 하지만 진실은 언제나 인간의 시선 너머에 숨어있음을 통찰한 듯, 저자는 사진이 찍힌 정황과 배경을 담담한 목소리로 설명하며 등장인물들의 사후 근황을 들려주기도 합니다.



 

사진 한 장이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한 정답을 제시해줄 수도 없고 사회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힘도 없지만, 사진을 보는 이들에게 우리 사회의 문제를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 제임스 나처웨이 (295)

 

사진이 전달하는 이야기의 힘을 주제로 삼고 있지만, 어찌 보면 이 책은 사진에 설명을 곁들인 근사한 근현대사 교과서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비극적인 면모와는 딴판으로 이러한 상황을 세계에 알리려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던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의 중요성을 입증할 뿐 아니라, 해결되지 않는 아프리카의 기근 문제가 사실은 가뭄 이외에도 인간의 탐욕과 정책의 미비에 있음을 고발하는 보도의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짧지만 강렬한 언어, 비유, 은유, 상징으로 이루어진 시처럼 사진은 사진만의 독특한 느낌과 여운으로 우리를 매료시킵니다. (280)

 

마지막으로 저자는 좋은 사진을 위한 첫 단계 중 하나는 좋은 소재 찾기가 사실이지만 피사체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단순히 자극적이고 눈에 띄는 소재를 찾아 카메라의 렌즈를 들이대는 행위는 삼가야 함을 역설합니다. 그의 당부처럼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며, 진실은 언제나 우리의 시선 너머에서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사진 #사진이말하고싶은것들 #시공아트 #서평단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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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말하고 싶은 것들 - 인간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
김경훈 지음 / 시공아트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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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언제나 우리의 시선 너머에서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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