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드엔딩은 취향이 아니라 - 서른둘, 나의 빌어먹을 유방암 이야기 삶과 이야기 3
니콜 슈타우딩거 지음,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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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두 번째 생일을 맞은 젊은 엄마 니콜은 샤워 중 가슴의 혹을 발견한다그녀의 사랑스러운 두 아이와 남편은 생일을 축하해주려 기다리고 있었다축하 인사를 받는 대신 바로 찾아간 병원에서 유방암 확진을 받는다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에도 불구하고 이 유쾌 발랄한 젊은 엄마는 암 덩어리에게 카를 자식이라는 별명을 지어주며 함께 지낼 마음의 준비를 한다.

 

분명 모든 여성에게 유방암 진단은 재앙임이 틀림없다여성성에 치명적인 훼손일 뿐 아니라 치료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게다가 만에 하나 잘못되는 경우 남편과 두 어린아이를 두고 가기에 서른둘이면 너무 이르다그러나 잘 정비된 의료체계로 독일 전국에 산재한 유방암센터와 의료진 그리고 낙담을 모르는 천성 덕분에 니콜은 5개월간의 화학요법과 방사능 치료만으로 무사히 완치된다완치 이후에도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처럼 유전적 재발 가능성을 우려하여 아예 가슴을 제거하기로 자발적으로 과감히 결정하고 실행에 옮긴다암에 걸리는 자체만으로도 정신줄 놓치기 십상인데도니콜은 무한 긍정의 힘과 노력으로 암을 극복해 나간다물론 가족과 친구들의 열렬한 응원과 도움이 암 치료에 큰 몫을 해낸다.


 

저자가 이 괴로운 질병과 싸우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는지 겪어보지 않은 독자들이라도 저자의 꼼꼼한 서술에 충분히 공감할 것 같다지금이야 다 지난 일이고 무사히 극복했음을 전제로 한 내용이라 하더라도저자의 글은 아름답고 유연하며 아무리 심각한 상황이라도 재치와 위트가 넘친다요컨대 병마와 싸워 이길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저자 자신의 유머와 긍정적인 성향이라 할 수 있다.

 

암의 발병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최근 급격한 환경 변화로 인한 호르몬의 교란이 가장 유력시되고 있다암 치료를 받다가 의사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방법을 설명하는 책자가 인기를 끌 정도로 암 환자의 숫자가 부쩍 늘고 있다발병율과 함께 완치율 역시 상승세라 우스갯소리로 이들은 암 환자가 아니라 경험자라 불리기도 한다필자 역시 암 환자의 가족이자 보호자로 힘든 시기를 보낸 경험이 있다암 투병하는 엄마갱년기가 찾아온 아빠 그리고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이라니 듣기만 해도 얼마나 암울한 상황인가저자의 경우 화학요법과 방사능 치료로 5개월을 보냈고 예방 차원에서 유방 절제술을 받았지만수술-방사선-화학요법-약물치료로 수년간 이어진 배우자와 일상을 돌아보기가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

 

화학치료를 받게 되면 암세포 뿐만 아니라 정상 세포도 공격을 받아 신체 부위 가운데 생성과 소멸의 주기가 가장 짧은 말단 세포즉 구강과 손톱 발톱 머리카락 입술 등이 먼저 영향을 받는다심신이 안정된 상태에서라면 전혀 아무렇지 않은 일이라도 막상 치료받는 환자의 입장이 되면 모든 것이 역전된다아주 사소한 일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며 불편을 겪는 환자를 곁에서 돌보기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가발을 구입하고병원 진료와 검사를 주기적으로 반복하며 매일 먹는 음식도 섬세하게 조절해야 한다환자 본인의 몸이 아파서이기도 하지만 가사와 육아의 상당 부분이 배우자의 몫으로 남는다.


 

환자의 고통을 집중적으로 함께하던 2년여는 정말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괴로울 때도 많았지만식구 가운데 누구도 환자 본인보다 더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버티곤 했다그렇게 힘겨운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발견한 것은 즐거움은 물론 괴로움도 함께한 가족의 소중함이었다암 경험자와 그 가족에게는 동병상련의 아픔을비 경험자에게는 공감의 여지를 주기에 충분한 어느 젊은 엄마의 유쾌한(?) 암 투병기는 가족과 함께한 아픔의 시간은 절대 헛되지 않았음을 일깨워준다.

 

#갈매나무출판사 #새드엔딩은취향이아니라 #암투병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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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읽었다 - 각 분야 전문가가 말하는 영역별 책읽기
이권우 외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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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새내기 시절 필수도 아니고 선택이라 학점에 부담 없던 어느 전공과목 강의 첫날이었다. 연세 지긋하신 교수님께서 자신과 과목에 대해 침을 튀겨가며 소개하신 후, 이번 학기 수업을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한다며 참고도서 목록을 나눠주셨다. A4용지 앞뒤 가득히 원서 제목과 저자명이 적혀 있었는데, 독서를 게을리하면 수업 따라잡기가 쉽지 않으리라 하셨다. 엄청난 양의 원서 목록에 숨이 막혀왔다. 그러나 매일같이 벌어진 민주화 시위에 참여하느라 어차피 수업을 따라잡지 못한 대신 최루탄 연기 속에서도 숨 쉬는 법을 익혔다. 1학기 중간고사만 겨우 치렀을 뿐, 그 해가 다 가도록 못 본 시험은 보고서로 대체되었다. 그 당시 배워두었으면 정말 좋았을 영역별 책 읽기 안내서를 30년도 더 지난 후 만났다.



이 책은 교양, 문학, 인문고전,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 각 분야의 현직 경희대학교 교수들이 신입생들을 주요 대상으로 한 책 읽기 길라잡이다. 분야마다 공통으로 책을 읽는 이유, 방법, 글을 쓰게 된 배경 및 추천 도서로 구성되어 꼭 대학생이 아니더라도 알아두면 유익할 내용을 제공한다.분야별로 읽는 법을 살펴보자.

 

1. 교양도서 읽는 법(이권우)

-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절박함, 새로운 앎에 대한 강렬한 갈망, 금기를 넘어 참된 것을 알고자 하는 청년의 도전 의식, 그리고 지금보다 더 나은 나 자신과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책을 읽게 만든다. 나의 경우 지금보다 더 나은 나 자신이 가장 강력한 책 읽는 동기가 아닌가 싶다.

- 책 읽기가 익숙하지 않다면 우선 자신감부터 갖춘 후 책 읽은 습관이 몸에 배게 하고 자신의 수준에 맞는 책을 고른다. 만약 생각보다 어렵다면 훑어보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책을 꾸준히 읽다 보면 책을 읽는 속도가 빨라진다.

- 본문을 읽기 전에 먼저 책 제목을 통해 전체 주제를 짐작하고, 책 뒷면에 있는 저자나 번역자의 글귀를 눈여겨본다. 서문을 읽으면 책의 주제와 관점, 저자의 필력을 알 수 있다. 번역서의 경우는 번역자의 후기가 큰 도움이 되며, 목차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으로 책의 내용을 요약할 수 있다.

본문을 읽을 때는 저자가 쓴 핵심 열쇳말을 어떤 의미로 썼는지 파악하고, 중요한 논증 구조를 찾아 해석하며 읽는다.

읽기를 마치면 책을 주제로 토론하고 글을 써본다. 토론을 전제로 하면 독서 방식이 달라지는데 내용을 생각하고 메모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내재화가 일어난다. 독후감 또는 서평을 쓰게 되면 읽는 이에서 쓰는 이로 전환하는 데 바탕 힘이 된다.

 

2. 문학도서 읽는 법(고봉준)

우리는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우리의 삶에 놓여있는 지점을 이해하는 경험을 한다.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타인의 삶이란 결국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의 또 다른 모습일 수밖에 없다. 감성 능력의 회복, 타인의 삶에 대한 경험, 그것들을 통해 의 삶을 성찰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 이것들이 바로 우리가 문학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p.63)

소설은 첫 문장에 집중하라. 작품이 겨냥하는 바를 발견하라

시는 이야기가 아니라 언어예술임을 이해하고 시에 형상화된 주관성을 상상하며 읽어라. 시를 읽을 때는 미리 정해진 규칙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경험에 비추어 읽는 것이다. , 시 읽기의 빈도를 늘림으로써 자기만의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 읽기는 말한 것을 통해 말하지 않은 것에 도달하는 일이다.



 

3. 인문고전 읽는 법(전호근)

사전을 옆에 두고 읽어라. 밑줄을 긋고 자기 생각을 적거나 감상을 적어두면 다음에 읽을 때 더 쉽고 재미있다.

반복해서 읽고 필사하고 머릿속에 기억하라. 정말 간절하게 내용을 알고 싶다면 암기하라.

눈으로만 읽지 말고 입으로 소리 내어 읽어라. 큰 소리가 아니더라도 buzzing은 과학적으로 효과가 입증된 읽기 방법이다.

입을 넘어 몸으로 읽어라. 몸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기억한다.

책을 덮고 탄식하거나 눈물 흘릴 줄 알아야 한다. 마치 바늘에 찔리고 잠이 확 깨는 정도라야 글에서 감흥을 받은 것이다.

나를 성찰하며 읽어라. 윤봉길 의사와 매국노 이완용 모두 논어를 읽었지만, 성찰의 여부는 애국과 매국으로 드러났다.

멋진 문장을 찾아라. 대개 첫 문장에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자료형 고전은 빠르게 읽어라. 그 자체로 읽는 재미는 없지만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한 밑거름이 된다.

비판하면서 읽어라. 공인된 견해를 읽을 때조차 나를 지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읽었으면 읽은 대로 실천하라. 위대한 고전은 그 자체로 위대한 것이 아니라 읽는 이가 위대해져야 비로소 위대한 고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좋은 벗을 찾아 함께 읽어라. 적어도 살만한 인생이 될 것이다.

좋은 스승을 찾아 배워라. 어려운 고전을 혼자 읽지 말고 전문가나 교육기관을 이용하자.

 

4. 사회과학도서 읽는 법(이병주)

좋은 사회과학 책들은 고유명사의 유일함과 보통명사의 공통됨을 동시에 담고 있으며, 고유명사로서의 삶과 보통명사로서의 삶을 사회적 삶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어준다.

현상(경험)과 본질(사회관계). 자연과학이 자연법칙을 캐낸다면, 사회과학은 사회현상의 근간이 되는 사회관계를 캐낸다.

저자의 입장과 질문 파악하기. 사회과학자의 입장에 따라 질문이 달라지고 보아야 할 범위가 달라지며 사회과학 지식과 문제해결 방식이 달라진다.

개념과 개념화 과정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기. 책을 읽는 이유는 비판적으로 질문하기 위함이다.

사회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과정으로 이해하기. 사회과학은 어떤 주제를 다루든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으로 다룬다.

사회과학 책의 내용을 구체적인 장면으로 그려보기. 사회는 비결정적이기 때문에 실천의 질문을 독자에게 열어놓으며 사회학적 상상력을 정치적 상상력으로 발전시키라고 요구한다.



 

5. 자연과학도서 읽는 법(전중환)

* 이해(문법 단계 독서)

객관적 해설서 vs 저자의 이론서. 과학교양서를 고를 때는 특정 과학 분야를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입문, 객관적인 입장에서 상세히 설명하는 해설, 과학자가 자신의 독창적인 이론이나 관점을 주장하는 총설의 단계로 높아지는 수준을 고려한다.

개요를 읽은 다음 독서에 몰입하라. 책 내용의 이해를 돕는 보조 자료를 활용하면 효율적이다.

번역서라면 번역자와 한국어판 제목을 확인하라. 번역서의 제목이 원제와 달라진 경우 바뀐 제목이 오히려 독자의 이해를 방해할 수 있다.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어도 끝까지 읽어라. 과학책은 본래 첫 번째 독서가 어려운 게 정설이니 재독에 삼독할 각오로 읽어라.

* 평가(논리 단계 독서)

핵심 주제를 짧은 한 단락으로 직접 정리하라. 지나치게 단순한 요약으로는 책의 핵심 주제를 충분히 소화하기 어렵다.

독자가 요약한 핵심 주제가 저자의 것과 상당히 다를 수 있다.

은유의 경우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공유하는 특성에 주의하라. 저자의 의도를 잘못 드러낸 은유는 오히려 내용 이해에 걸림돌이 된다.

저자가 제시하는 증거가 가설이나 이론을 잘 뒷받침하는지 살펴보라. 독자의 이러한 시도 그 자체만으로도 책의 핵심 주제를 깊이 있게 소화할 수 있다.

* 의견표현(수사 단계 독서)

같은 주제를 다루는 책을 비교하며 읽는 syntopical 독서법을 활용하면 최고의 모범 답안을 독자 스스로 파악하는 효과를 얻는다.

 

6. 예술도서 읽는 법(윤민희)

* 읽기 전 선정 기준과 유형 살피기

제목과 목차 훑어보기

유형 분류하기

* 예술도서 읽기

- 다양한 영상 정보 접하기

목차 보면서 책읽기

쪼개 읽기

이미지를 보면서 책읽기

용어사전 참고하기

최신판 읽기

육하원칙으로 도서 및 작품 분석하기

도서 및 작품의 키워드 찾기

사조, 대표 작가, 대표 작품 찾기

작품을 감상할 때 기본적으로 개인적 반응, 제작 연도, 의도된 전시 장소, 작품 보존, 제목을 살펴보기



 

이상 여섯 가지 분야의 책 읽는 법을 살펴보니 평이하고 익살스운 설명으로 과학도서가 가장 과학적으로다가오는 반면, 아쉽게도 예술도서는 가장 멀리 느껴진다. 생활 수준의 지표가 되는 예술이 반드시 고차원적이어야 할 이유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진중하게 예술을 느끼고 이해하는 성향은 아닌 때문인 듯하다. 30년 전의 상황과 달리 대학의 문턱에서 제대로 된 책 읽기 안내서를 접하고 무슨 책을 어떻게 읽을지 도움을 얻을 수 있는 후배들이 내심 부러운 한편, 모처럼 책을 가까이하게 된 요즈음 이렇게라도 길잡이를 만나게 되니 다행이다. 아무리 효험이 좋은 방법이라도 결국은 실천이 중요함을 다시 일깨운다. 이제라도 분야별 책 읽기 요령을 바탕으로 기존의 독서 방법을 차분히 돌아보며 자신만의 책 읽는 방법을 계속 고민해야 할 것 같다. (2021-04-18)

 

#독서에세이 #나는이렇게읽었다 #책읽기안내서 #분야별독서법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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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읽었다 - 각 분야 전문가가 말하는 영역별 책읽기
이권우 외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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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독서 방법을 차분히 돌아보며 자신만의 책 읽는 방법을 고민하게 만드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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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인류 - 메타버스 시대, 게임 지능을 장착하라
김상균 지음 / 몽스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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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과 요즘 아이들

새 학년 새 학기 첫 시간 학생들에게 돌아가면서 자신을 소개해보도록 했더니 재미있는 현상이 관찰된다. 열에 아홉은 꼭 자신이 좋아하는 온라인 게임을 언급하면서 게임에서 만나자는 말로 인사를 맺는다. 이미 학교에서도 친구이지만 게임 속에서는 새로운 모습의 인물로 나타나 또다시 친구 관계를 맺는다. 같은 남자이고 게임이라면 어릴 때부터 해보았기 때문에 이 녀석들의 게임 세계관을 이해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요즘 자신들이 즐기고 있는 게임의 할아버지 격인 프로그램을 언급하면 귀를 쫑긋 세우고 대단한 관심을 보인다. 그러면서 스스럼없이 게임 친구의 영역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적어도 이들과 대화의 연결고리를 유지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아이들은 게임을 하면서 모험심을 채우고, 인공 지능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운다. AI 융합 교육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지 않아도 이들은 이미 다양한 게임을 통해 인공 지능의 세상에 살고 있다. 컴퓨터가 아예 없던 시절을 살던 아날로그 세대와 태어난 직후부터 스마트폰을 쓰며 자란 디지털 세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자란 경험을 가진 아이들이 산업 현장에서 인공 지능을 설계한다면 세상은 또 달라질 수 있다. 배워서 익히는 게 아니라 경험을 통해 습득한 지식은 적응력이 높기 때문이다. 다만 19세기 건물에서 20세기 교사들이 21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 현장에서는 이를 어떻게 응용 도입할 수 있을지 이래저래 고민만 깊어진다.

 

- 게임에 대한 선입견 또는 편견?

게임을 좋아하거나 할 줄 아는 사람들은 타인의 게임 분야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게임 세상이라는 대화의 소재를 공유한다. 반대로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들일수록 부정적인 시각을 갖는다. 상대를 모르면 두렵고 두려우면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무지를 정당화하는 게 사람 마음이다. 그러면서 게임은 발전에 대한 욕구가 없는 게으른 사람들,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하는 소일거리라고 말한다. 자신이 모르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두려움의 대상을 배척하는 인간의 본능을 들키고 싶지 않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방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러한 멸시와 천대 속에서도 게임을 계속하는 이유는 게임이 욕망을 실현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욕구를 이해는 하지만 자연히 학교 현장이니 학습권 보호를 위해 마냥 내버려 두면 안 되겠다는 딜레마에 빠지기도 한다.

게임의 폭력성 또한 부정적 시각에서 많은 지적을 받는 부분이다. 그러나 개인의 내재된 폭력성이 게임 안에서 소비된다는, 다시 말해 게임을 하는 동안 스트레스가 해소돼 실제 사회에서 안 좋은 쪽으로 분출될 수도 있는 나쁜 에너지가 상쇄된다는 긍정적인 시각에 공감한다. 한편, 학생들이 어릴수록 프로 게이머와 게임 스트리머가 진로 방향의 대세인데, 학업성적으로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인문계 고교에서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에 맞추어 이들의 진로를 상담해주기에는 현실적으로 역부족이다.



 

- 메타버스의 세계

4차 산업혁명은 이미 진행 중이며 세상은 메타버스로 넘어가고 있다. 현실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가공’, ‘추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가 합쳐진 메타버스metaverse는 가상 현실보다 진보된 개념의 3차원 가상 세계로, 경제 활동이 일어나고 사회적 활동이 이뤄지는 온라인 공간이다. 이미 익숙해진 사이버스페이스는 1세대 인터넷과 2세대 스마트폰 시대를 거쳐 3세대인 메타버스로 확장되고 있으며,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의 머릿말을 합친 GAFA가 세 번째 온라인 물결인 메타버스 시대를 이끄는 주류 기업들이다. 이들의 등장으로 노동의 종말과 노동 시장에서의 도태가 걱정되기는 하지만, 메타버스 시대를 맞아 오히려 인공 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기회이기도 하다.

메타버스를 자세히 구분하자면 첫째, 포켓몬고 게임처럼 메타버스가 현실의 공간과 상황에 가상의 이미지와 스토리 등을 덧입힌 현실 기반의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방식의 증강현실Augmented Rality. 둘째,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처럼 자신의 삶에 관한 다양한 경험과 정보를 기록하고 저장하며 공유하는 세상을 뜻하는 라이프로깅Life Logging. 셋째, 각종 지도 서비스와 길 찾기, 음식 배달 앱처럼 메타버스가 현실 세계의 모습과 정보, 구조 등을 가져다 복사하듯 만든 세상인 거울 세상Mirror World. 넷째, 가상세계 현실과는 다른 공간과 시대적 문화적 배경, 등장인물, 사회 제도 등을 디자인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메타버스로 구성된다.



 

- 게임의 순기능

저자는 또한, 게임 전공자답게 게임의 순기능을 역설한다. 게임을 통해 발생 가능한 상황을 예측하고 함께 고민해 행동 규칙을 만들어 본 경험으로 재난에 훨씬 잘 대처할 것으로 예측한다. 인류 역사에 게임이 없었다면 규칙을 정하고 행동 규범을 정리하는 일에 인류는 지금보다 서툴렀을 것이고 상상력도 물론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게임을 만들고 즐기는 과정에 상상력이 총동원되기 때문이며, 게임 세계는 곧 현실과 연결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게임을 지속시키는 임무-되먹임-보상체계는 거의 모든 게임의 기초적인 구조이다. 뇌 과학적 측면에서 뇌는 지배-자극-균형을 갈망하는 한편 스토리텔링 측면에서는 탐험-소통-성취 과정에 매력을 느낀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타인과 소통하면서 인간은 성장을 경험하며, 능력이든 사회적 인정이든 이러한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낀다. 어른이 되어서도 게임을 찾는 이유는 어떤 이유로든 성취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더 많은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자신의 노력에 대해 인정을 받았을 때라고 하니, 마냥 부정적으로 바라볼 일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예컨대 비디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새로운 과제에 더욱 잘 적응한다고 한다. 비디오 게임이 주변의 변화를 더 빨리 감지하도록 두뇌를 훈련시키고, 인공 지능과 협력하는 방법을 알려주며, 게임을 하면서 서로 돕는 능력이 향상되며, 게임에서 받은 긍정적인 에너지와 집중력이 일상의 어려운 과제를 풀어나가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일종의 생각의 지도인 메타 인지는 자신이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에 대해 아는 것인데, 놀랍게도 게임을 하다 보면 메타적인 시각이 게임 안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고 한다.

 

- 게임 같은 현실, 현실 같은 게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한 기업들이 프로 게이머 구단을 거느리며 e-스포츠 대회에 출전한다. 게임 대회로 인한 부가가치는 상상 이상이다. 장래 희망이 프로 게이머라는 아이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게임은 산업 현장도 바꾸고 있다. 제조업체의 조립공정에 투입되는 신입사원을 곁에 두고 일일이 가르치는 대신 튜토리얼 가상 현실로 마치 어린아이가 블록 쌓기를 배우듯 일주일 걸릴 일을 단 두어 시간에 마친다. 일터는 게임이 되고 작업자는 게임의 플레이어가 된다. 외국의 어느 로봇 제조기업을 인수한 우리나라 자동차 제조업체가 제작한 광고에는 최신 유행 음악에 맞추어 마치 사람처럼 움직이는 로봇 댄스팀이 등장하는데, 박자에 맞추어 움직일 뿐 아니라 심지어는 사람이 도저히 해낼 수 없는 동작도 자유로이 선보인다. 드라마 웨스트 월드에서는 스스로 학습 능력을 갖춘 로봇에게 자아가 생겨나 새로운 인간종으로 등장한다. 드라마인 줄 뻔히 알면서도 가까운 미래에 실제 일어날 가능성을 생각하면 기분이 오싹하다. 게임을 단순한 놀이나 시간 죽이기로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먼 길을 너무나 빨리 와 버린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는 과연 게임 같은 세상에 얼마나 잘 적응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게임과 더불어 성장하기

마지막으로 저자는 게임의 형식을 수업에 도입하는 데 적극적으로 찬성하면서, 비록 학업성적 위주로 서열이 정해지는 학교이지만 누군가는 학생들에게 잘하는 것이 다 다를 뿐이라는 얘기를 해 달라고 말한다. 그래야 공부 못하는 아이도 자신감을 가지고 자기 인생을 살 수 있고, 공부 잘하는 아이도 편향된 엘리트 의식으로 타인을 지배하려는 생각을 버리게 된다고 가슴 따뜻한 교육자로서 학생들에 대한 애정을 전하고 있다.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백 수십 권의 책을 읽고 서평을 써낼 수 있었던 개인적 경험과 같이, 게임에 쏟아붓던 열정과 관심을 발전적인 특정 주제로 돌려 상당한 성과를 거두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교육자라면 학생들의 성장 동력을 어느 방향으로 잡아주느냐에 따라 매우 의미 있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디지털 시대를 향한 변화의 변곡점을 게임이라는 핵심어로 살펴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일독을 권해드린다.

 

사족 : 이 책에 등장하는 최신 게임 용어가 제법 많은데, 공부하지 않는 학생들을 위해 게임용 영어만 따로 모아 단어장을 만들었다는 모 선생님의 일화처럼 부록으로 게임 용어 설명을 곁들였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2021.04.15.)




#미래예측 #게임인류 #인공지능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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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인류 - 메타버스 시대, 게임 지능을 장착하라
김상균 지음 / 몽스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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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를 향한 변화의 변곡점을 게임이라는 핵심어로 살펴보는 좋은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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