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스완 - 회복과 재생을 촉진하는 새로운 경제
존 엘킹턴 지음, 정윤미 옮김 / 더난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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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갑작스레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우리의 삶에 지각변동이 일었다. 요식업과 여행, 관광산업을 비롯하여 특히 사람이 군집을 이뤄야 하는 모든 종류의 업종이 타격을 입었고, 소비 활동이 줄어들면서 생산을 멈춘 제조사들의 매출이 폭락하는 등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세계 경제가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위기를 맞는 것을 '블랙 스완(black swan)'이라 부른다. 이와 비슷한 경제 용어로 최근 그린 스완(green swan)이 등장했다. 지속가능성의 대부라는 별명을 지닌 이 책의 작가는 지금까지 관련 분야에서 20권을 책을 썼으며 지난 30년간 기업 책임 운동의 핵심으로 묘사된다. 그의 최신 저서인 이 책은 앞으로 인류가 살아남기 위한 자본주의의 변화를 모색한다. 그는 문제와 해결책을 검정, 회색, 녹색 3개의 색상으로 분류하고 식별한다.

 


블랙스완용어는 미국 뉴욕대 교수 나심 탈레브가 2007년 그의 저서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일찍이 찾아볼 수 없던 검은 백조가 호수에 나타나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것처럼 경제 영역에서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실제 일어나 세계 경제가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탈레브 교수가 그의 저서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2007년 미국의 초대형 주택담보대출 사업자들이 파산하면서 세계 금융위기를 초래한 사건)를 예측하면서 블랙 스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유명해졌는데, 이후 미국의 9·11테러,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코로나19로 인해 초래된 경제 위기에도 이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스완이라는 단어를 다음과 같이 색깔별로 구별하고 위기로 바꾸어 읽으면 더욱 이해하기 쉽다.

 

블랙 스완(black swan): 발생 확률이 매우 낮아서 예측하거나 대비하기 상당히 어려우며 일단 발생하면 경제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는 사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경제), 홀로코스트와 HIV 바이러스(사회), 곤충 멸종 사태와 세계 해양의 플라스틱 오염(환경) .

화이트 스완(white swan): 예측이 가능함에도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해 반복되는 위기 상황.

그레이 스완(gray swan):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나 위기 상황에 대해 적절한 대안이나 해결책을 찾지 못해 그러한 문제가 지속하는 상황.

그린 스완(green swan): 전 세계적 문제에 대한 체계적인 해결책이자 긍정적이며 기하급수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해결책. 초기 단계의 개념, 사고방식, 기술, 도전, 혁신 또는 궤적의 시작점이라는 점에서 선악의 방향성을 가르는 미운 오리 새끼 같은 개념. 휴대용 전화 기술과 인터넷 보급, 태양열과 풍력발전, 전기 자동차(경제), 의무 교육 시행과 백신 기술, 환경 보호, 사회적 기업, 성장 투자 중시(사회), 환경호르몬과 오염, 지속가능성, 순환 경제, 생체 모방(환경) .




그린 스완은 사회와 사람, 지구에 이로운 기술이며 미래로 갈수록 더 많은 사람에게 만족을 가져다줄 것이라 한다. 이따금 그린 스완이 블랙 스완으로 변하는 사례도 있다. 엔진 노킹 방지 기술이 처음 개발되었을 당시 무연 휘발유는 획기적인 발전이자 차량 연비 향상의 핵심으로 주목받았으나, 도심지 어린이들에게 납 중독을 일으키면서 블랙스완으로 판명되었다. 또 다른 예로는 안전성과 여러 유의미한 이점을 지닌 화학물질로 주목받던 클로로플루오로카본(CFC)의 일종인 프레온(Freon)이 있는데, 지구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준 유일한 유기체로 묘사됐다. 공교롭게도 이 두 가지는 유명한 화학자 토마스 미글리 주니어가 개발하여 100개 이상의 특허를 획득했으며, 그는 GM과 듀폰을 위해 일하기도 했다.

 

인구가 수십억 명 수준으로 유지되는 한, 인류세는 계속된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 어느 시점부터 지구는 인류를 먹이고 인류가 초래하는 피해를 흡수하지 못할 것이다. 그 시점을 넘어서면 사악한 문제, 그레이 스완과 블랙 스완이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151)


저자는 특히 바다를 오염시키는 플라스틱 쓰레기와 미세플라스틱, 새로운 질병인 비만을 부르는 살인자 칼로리, 슈퍼버그 문제를 초래하는 항생제의 남용, 기온 급상승의 원인인 탄소 배출량, 심각한 증가세의 우주 쓰레기 등 다섯 가지를 지구 전체에 닥친 위협 상황이라 지적한다. 그가 지목하는 플라스틱 하나만 보아도 인류는 이미 위기 상태에 놓여있다. 휴대폰, 노트북, 포장재, 물병에 이르기까지 플라스틱 조각 하나하나가 엄청난 양의 오염물질을 배출하며 재활용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 매립 차원을 넘어 바다로 유입된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은 야생동물의 생존에 끔찍한 위협이 되며, 소금물과 자외선에 노출되면서 분해된 미세플라스틱은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태평양 환류 지대처럼 해류가 만나는 곳마다 이미 거대한 쓰레기 섬이 여럿 형성되었다. 세계보건기구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일부 생수 브랜드를 분석한 결과, 90% 이상 제품에 미세 플라스틱이 포함되어있으며, 가정용 수돗물은 물론 북극의 얼음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심지어는 인간 젖먹이의 생애 첫 영양분인 모유에서도 발견되어 경악스럽기 그지없다. 우리가 실제 이런 상황을 애써 외면하는 동안 지구의 건강은 계속 악화하고 있을 뿐이다.

 

저자는 이런 재앙적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며 이를 직접 나서서 해결할 당사자는 기업이라 말한다. 이는 기업이 존립하기 위한 이윤 창출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며, 이를 위해 미래 환경에 적응하는 기업 정신으로 퓨처 핏(Future Fit) 개념을 제시한다. 기업이 전 세계 경제의 엔진이며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업을 독려해 그들의 힘을 빌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변화에는 저항이 따르듯, 기업이 퓨처 핏 수준에 이르는 과정은 전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이에 저자는 기업들이 오랜 시간을 거쳐 내부적 스완(위기)을 극복해가는 다섯 개의 과정을 소개한다




거부(블랙스완 또는 그린 스완의 가능성 수용을 거부함. 삼성전자의 백혈병 발병 인정과 노동자 배상 과정), 책임감(여전히 현상에 중점을 두고 있는 FAANG), 복제(더 나은 변화를 위한 대승적 협력관계), 회복력(지역사회, 도시 및 운영 국가의 붕괴를 회복), 재생(모든 사람과 지구의 개선을 위해 모든 지속가능성 문제를 해결)이 그것이다. 단계가 좀 복잡해 보여도 저자가 말하는 접근법의 뉘앙스를 간단히 말하자면 미래형 기업 발굴에 전념하라는 것이다. 그는 능숙하게 개념을 설정하고 현재의 사고방식을 이야기한 다음 개념과 논리를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예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우리의 현재 환경이 미래와 직면할 때 기업과 정부 모두에게 미칠 수 있는 잠재적 영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가장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할 사항은 기업만 혼자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가 번영해야만 기업도 성공할 수 있고 그래야만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도록 지구를 보호하라고 기업에 요구할 수 있다. (251)


끝으로, 저자는 우리에게 기술의 빠른 진화는 흥미로우며 우리가 금세기에 직면하는 많은 중심 과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으므로 매우 희망적이라 말한다. 최근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후 재앙은 우리 모두를 두렵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음으로써, 궁극적으로 인류에게 닥친 위기를 해결할 사람은 바로 우리뿐이라는 결론을 거듭 확인하게 될 것이다.

 

#경제경영 #그린스완 #지구환경 #기후재앙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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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스완 - 회복과 재생을 촉진하는 새로운 경제
존 엘킹턴 지음, 정윤미 옮김 / 더난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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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재앙으로 일대 위기를 맞은 자본주의에게 갈 길을 제시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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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 글쓰기 수업 - 논픽션 스토리텔링의 모든 것
잭 하트 지음, 정세라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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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다. 한 장짜리 메모를 적든, 일기를 쓰든, 동화나 에세이를 쓰든, 전공 분야 책을 쓰든, 하다못해 SNS에 올릴 내용을 업데이트하든 작문이라는 예술은 참으로 난해하다. 그러나 대개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제시해주는 해결책은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글쓰기 기술을 연마하려면 좋은 안내서가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모든 글쓰기 안내서가 모든 이의 글쓰기를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떤 스타일의 안내서인가가 중요하다. 또한, 글쓰기 초심자일수록 안내서에 의존하다 보면 그 자체로 글쓰기 작업을 구속받게 된다. 미국 작가 포스터 월리스의 주장처럼 초보 작가라면 지루할 정도로 독창적이지 못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최근까지 접했던 글쓰기, 편집, 출판에 관한 서적들이 주로 정보나 전략적 선택 또는 전반적 흐름을 소개하는 것이었다면, 서술식 논픽션 글쓰기에 관한 한 이 책은 언급한 것 이외에도 읽는 재미를 더한 최고의 안내서라 하겠다.

인간의 뇌에는 스토리를 추구하는 본성이 각인되어 있다.

- 대니얼 스미스, 진화인류학자

이 책의 저자이자 작가인 잭 하트는 오레곤 대학교 언론학 교수이자 지난 25년간 유명 신문사인 ‘오레곤’에서 편집장, 편집 교육자, 그리고 글쓰기 코치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서술식 글쓰기와 특별 기고문 수상자들을 포함하여 4명의 퓰리처상 최종 후보들을 키워낸 저력 있는 인물이다. 또한, 2001년 퓰리처 공공서비스 부문과 2006년 뉴스 속보 부문에서 퓰리처상을 받은 경력과 더불어 논픽션 분야의 권위자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독자에게 다가가는 가장 중요한 힘은 틀을 짜는 능력에서 나온다.

- 리처드 로즈, 퓰리처상 수상 논픽션 작가

이 책의 부제처럼, 서술식 논픽션이란 무엇인가? 논픽션은 소설과 같이 지어낸 이야기(허구)가 아니라는 뜻이므로 철저히 사실에 입각한 실화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나 논픽션은 누가, 무엇을, 어디서, 언제, 왜 그런지에 대한 전통적 신문 기고 방식으로 쓰이지 않기 때문에 좁은 범위의 글쓰기로 인식된다. 그런데도 소설처럼 읽히는 특징이 있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인간적인 본능에 충실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일례로 어떤 작가는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나야 하는 퇴거민과 같은 미국 도시의 빈곤 문제를 다루기 위해 몇 달 동안 가난한 노동자 계급의 삶으로 들어가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기도 한다. 결국, 서술식 논픽션은 실화와 진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의 창의적인 글쓰기이다.

작가의 일이란 결국 인간의 캐릭터

그리고 인간의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다.

- 리처드 프레스턴, 베스트셀러 작가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면 특히 독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독서를 좋아하지 않으면 좋은 작가가 될 수 없다. 저자는 ‘글쓰기란 독서에 대한 우월한 헌신’에서 나온다는 주장에 동의하며 ‘어떻게 하면 나쁜 글을 쓰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과 함께 결국 ‘좋은 작가는 헌신적인 독자’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저자의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독서 없이 좋은 작가가 되기는 불가능하다는 적나라한 진실은 피할 수 없다. 글쓰기 연습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소설가 릭 리오든의 인용구로 충분하다. "글쓰기는 운동과 같다. 연습하지 않으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

 

1984, 동물농장 등으로 유명한 작가 조지 오웰의 글쓰기에 대한 5가지 규칙은 마음에 새겨둘 만하다.

1. 동등하다는 뜻의 ‘어깨를 나란히 하다‘, 약점을 뜻하는 ’아킬레스건‘ 같은 진부한 비유법은 삼간다.

2. purchase 대신 buy처럼 길고 어려운 단어 대신 쉽고 짧은 단어를 사용한다.

3. 단어 개수를 줄일 수만 있다면, 항상 줄인다.

4. 수동적 표현보다 능동적 표현을 활용한다. (그는 개에게 물렸다. vs. 개가 그를 물었다)

5. 외국어 문구, 전문 용어 대신 쉽고 보편적인 단어를 쓴다.

 

스토리는 모두 똑같은 것 같지만

저마다 다르다는 점에서 눈송이를 닮았다.

존 프랭클린, 퓰리처상 두 차례 수상

이 책은 서술식 논픽션을 쓰는데 사용될 수 있는 다양한 구조를 묘사하는 가장 도움이 되는 특징들로 구성되었으며 특히 글쓰기의 접근법과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백과사전식 구성으로 독자가 원하는 특정한 영역으로 바로 이동하여 구체적인 조언을 구할 수 있으며, 관점, 목소리와 스타일, 캐릭터 개발, 대화, 이야기 서술, 설명적 서사 등의 주제로 수상 경력이 있는 출판 작품에서 가져온 예들로 가득하다. 특히, 이 책은 크게 서술과 설명이라는 두 관점에서의 논픽션 글쓰기를 다룬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단편소설, 짧은 문구 등 다양한 논픽션 유형에 대해 요약된 논점을 제공하며 글쓰기와 윤리적 측면 등의 쟁점도 논의한다. 저자가 인용한 많은 사례에서 보듯 수준급 예문들이 대거 등장한다. 가독성이 좋아 책 두께에 비해 빨리 읽히는 속도도 괜찮다. 가볍게 읽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아 주제와 딱 들어맞는다. 오랜 세월 한 분야에서 갈고 닦은 저자의 실력과 명성이 곳곳에서 드러남으로써 자신이 하는 일에 정통한 저자의 글임을 확인할 수 있다. 방대한 주제 영역과 분량도 놀랍거니와 저자의 조언을 나의 글쓰기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런 일이 있었든가, 그렇지 않든가 둘 중 하나다.

테드 코노버, 스토리텔링의 대가

마지막으로, 이 책은 흥미롭고 매력적인 구성과 함께 창작 논픽션을 시작하거나 개선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조언으로 가득 차 있다. 간결하면서도 깊은 느낌을 주기 위해 책 전반에 걸쳐 저자가 제시하는 예시문들은 각 주제의 개념이 잘 떠오르도록 의도된 것으로 보이는데, 상당히 마음에 든다. 글쓰기의 초기 아이디어부터 이들이 생명력 있는 작품으로 살아난 배경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있다. 궁극적으로 이 책은 주로 논픽션 작가와 언론인에게 최적화되어있다. 비단 직업적 글쓰기가 아니더라도 창의적이거나 서술적인 논픽션 글쓰기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해 드린다. 

#퓰리처글쓰기수업_참여완료 #현대지성 #글쓰기책추천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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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가 말할 때 - 법의학이 밝혀낸 삶의 마지막 순간들
클라아스 부쉬만 지음, 박은결 옮김 / 웨일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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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가 된 사람의 한쪽 발이 지하철 선로에서 발견된다. 발의 주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남녀가 데이트를 즐기고 난 후 멀쩡하던 젊은 여성이 목숨을 잃는다. 그녀는 왜 갑자기 죽었을까. 숨진 아내를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수백 킬로나 멀리 옮기던 남자는 무엇을 숨기려 했던 것일까. 이들의 사망 원인은 비극적인 사고, 폭력적인 사건 그리고 질병 등 여러 가지다. 법의학자인 저자는 시신들의 몸에 남겨진 흔적을 바탕으로 사망 원인을 추적한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법의학자 경력 가운데 가장 극적이며 감동적인 사건들에 얽힌 사연을 들려준다.

매일 시체 앞에 서는 직업을 가진 저자는 한때 구급대원이었고 지금은 법의학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다. 저 부검 대상의 사망 시기는 언제일까, 자연사 또는 사고사, 그도 아니라면 타살? 그는 매일 이러한 질문을 마음에 품으며 사망 사건의 수사에 결정적인 조언을 제공한다. 그는 직업상 시도 때도 없이 경찰과 함께 시체들을 조사하기 위해 해부실을 떠나 현장으로 출동해야 한다. 이 작품처럼 실제 발생했던 사망 사건을 다루는 문학 분야는 트루 크라임(True Crime) 장르로 구분되며, 반드시 종결된 사건 내용이 포함되기에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첫째, 실존 인물과 구체적인 지역 이름이 등장한다. 실제 발생했던 범죄사례를 다루어 제공되는 정보량이 상당하며 각본 없는 드라마처럼 극적인 전개가 이어진다. 사망자의 성장 배경과 사망 직전까지의 상황이 박진감 넘치게 묘사되어 몰입도가 엄청나다.


둘째, 시대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장르는 사건이 발생한 공간적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여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한국과는 너무나 판이한 독일이라는 국가의 민낯을 마주할 기회이기도 하다.


셋째, 사건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추리소설처럼 깔끔하고 시원한 결말은 보기 드문 대신, 방대한 이력의 축적으로 심오함마저 선사한다. 범죄라는 게 사실 갖가지 어이없는 시행착오의 연속이고, 수사와 체포 과정 역시 수많은 무명의 경찰력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구체성과 불완전성이야말로 독자의 상상력을 더욱 부추기는 요소이기도 하다.


넷째, 재판 결과의 극적 반전이다. 이 장르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재판 과정을 다루고 있다. 실정법상의 범죄를 다루는 만큼 현실 세계의 범죄를 재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 과정에서 새로이 드러나는 사실과 증거, 검사와 변호사의 불꽃 튀는 공방, 죄수의 자백 또는 무죄 주장, 사건 관계자의 극에 달한 감정, 이를 둘러싼 언론의 취재 경쟁 등이 또 다른 생생한 이야깃거리가 된다. 따라서 이 책은 모든 트루 크라임 팬들의 독서 목록에 올라야 할 것이다.




현장 출동과 해부실에서의 부검 이외에도 법률의학자의 업무는 매우 다양하다. 죽은 사람만을 대상으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는 검진 방법과 결과의 법정 증언뿐 아니라, 소위 예술적 오류라 불리는 동료들이 간과한 실수를 인정하고 폭로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또한, 충분한 증거가 없어 소송이 중지되는 일도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해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객관적이고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려 노력하는 한편, 법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좌절하는 법도 없다. 그의 표현처럼 모든 사건이 늘 잔인하고 혼란스럽기만 한 것은 아닌 때문이다.

 

얼마나 큰 나무였는지는 쓰러져 봐야 알 수 있다는 말처럼, 한 사람의 생애가 얼마나 가치 있고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는 사후에 더 잘 드러난다. 이 책에 실린 흥미로운 법의학 사례 열두 편을 통해 우리는 삶이란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상기하는 한편, 어떤 죽음을 맞이하느냐에 따라 가장 덧없고 허무한 것일 수도 있음을 체감한다. 일상적으로 죽음을 마주해야 하는 저자의 눈을 통해 우리는 사회 환경이 개인의 삶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결국, 그것은 마치 삶의 방식이라는 변수가 죽음이라는 상수로 수렴하는 방정식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이 책이 감성적이라는 사치를 덜어내고 법의학자의 직업 세계에 대한 에누리 없는 현실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의 따뜻한 인간성과 친절함, 그리고 농담을 곁들인 상당량의 정보를 적절한 긴장으로 이어가기도 한다. 전문지식을 곁들인 단순한 사실 보고서에 더하여 경험상 어떤 것도 꾸며질 수 없는 날것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일단 이 책을 손에 들게 되면 두 시간짜리 쉼 없는 정주행이 예상되니 일독하실 분들은 반드시 머그잔 가득한 커피와 푹신한 소파부터 찾으시길 바란다.

 

#인문에세이 #죽은자가말할 때 #법의학 #트루크라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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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가 말할 때 - 법의학이 밝혀낸 삶의 마지막 순간들
클라아스 부쉬만 지음, 박은결 옮김 / 웨일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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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를 법의학자의 세계로 안내하는 사건 보고서 그 이상의 통찰력을 제공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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