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습관 - 하버드,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세계 엘리트들의 공통된 9가지 습관
오카다 아키토 지음, 이정미 옮김 / 더퀘스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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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개봉하여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쿵푸 팬더’를 기억하시리라. 절대 고수 우그웨이 대사부의 예언에 따라 낙점되긴 했으나 용의 전사가 되기에는 터무니없는 몸매와 아둔한 신경을 지닌 주인공 포는 사부들로부터 온갖 멸시와 냉대를 당하면서도 쿵푸에 대한 무한한 사랑, 자신의 존재에 대한 굳은 믿음, 그리고 용의 전사로 예정된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 성공적인 변신의 근원을 전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 배움의 방식 또는 습관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배움의 습관으로 운명이 바뀐 것은 비단 포의 경우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을 배움의 길로 들어서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절실함에서 오는 동기부여라고 믿어왔고 앞으로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을 것 같다. 용의 전사가 되어야 할 이유와 분명한 목표를 깨우친 포의 경우, 들숨과 날숨의 호흡처럼 배움의 수단과 방법을 자연스레 익힌 것으로 표현된다. 텅 빈 용문서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세상 난관을 헤쳐갈 비법은 결국 자신의 내면에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아직도 어딘가에 그 비법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 믿으며 애써 찾아 헤매고 있지는 않은가?

저자는 하버드,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출신의 세계적 석학들에게서 9가지 공통된 배움의 습관을 발견했으며 이 책을 통해 이토록 다양하고 검증된 학습법을 제시한다는 자부심을 지녔다. 그는 잘 배우기 위해 모두가 수재나 우등생이 될 필요는 없으며, 다만 연습을 꾸준히 반복하면 습관이 되고 이 습관이 곧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생활의 달인’과 같은 TV 프로그램을 통해 반복과 꾸준함의 결과가 우리 삶 곳곳에서 대단한 위력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저자 역시 30년 이상 내공을 다져온 배움의 습관으로 인생이 달라진 산 증인이기에 이 책을 계기로 잘 배우는 법을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이 책에 제시된 ‘잘 배우는 방법’은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방식이 대부분이며 자칫하면 싫증 나게 들릴지도 모른다. 어떤 분야든 성공하는 방법은 많아도 자신만의 방식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 요는 배움으로부터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초심자일수록 오래도록 꾸준히 배움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저자는 배움이라는 행위야말로 인생의 모든 일에서 기초이며, 배움이 지식을 머릿속에 주입해 인위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다만 적극적으로 즐겁게 배우는 방법을 모를 뿐이며, 배움 자체는 들이쉼(지식의 획득)과 내쉼(지식의 표출)처럼 자연스러운 호흡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많은 이들이 배움의 방법을 바꿈으로써 더 깊이 있고, 더 널리 쓰이며 중요한 기본을 익혀 어떤 방면으로든 적용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지식이 모든 사회활동에서 비약적으로 중요해지는 21세기를 지식기반사회라 부른다. Volatility(변동성), Uncertainty(불확실성), Complexity(복잡성), Ambiguity(모호함)의 머리글자를 딴 두문자어(頭文字語)로 흔히 흔히 VUCA 상황으로 비유된다. 미래 세대에는 지금까지 익힌 지식과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며 필수적인 핵심 능력(key competence)이 요구된다. 변화에 대응하고, 다문화와 다언어 사회에서 소통을 통해 협력하며, 비판적인 관점에서 생각하고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당장 코앞에 닥친 나의 현실을 배움의 모델로 삼아보자. 아마도 곧 닥칠 은퇴 이후에는 무엇으로 생계를 이으며 어떻게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것인가가 현재로서는 던질 수 있는 가장 진지한 질문이겠다. 지금까지 배우고 익혀 누군가를 가르칠 줄 아는 재주가 있긴 하나, 인생 2모작 시기에도 여전히 같은 일을 이어가리라는 보장은 없다. 새로운 분야에 적응하고 그에 필요한 새로운 정보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나만의 체계적인 배움의 틀이 필요하다. 그래서 늘 하던 생각이지만, 골프나 배드민턴 같은 회전운동은 자세가 절반인 것처럼 배움 역시 그러하다고 본다. 다행히도 인간의 학습능력은 꽤 끈질겨서 나이가 들어도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젊은 세대에 비해 뒤처지는 학습 속도는 업무상 경륜과 폭넓은 이해력으로 만회해볼 만하다.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인공지능이 미처 감당할 수 없는 ‘인간다움’을 지녔을 뿐 아니라, 운 좋게도 배우는 방법을 상세히 기술한 이 안내서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이제 저자가 제시하는 배움의 질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습관들을 간단히 살펴보자.

관찰하기: 인간은 정보 수집의 85%를 시각기관에서 얻음. 대상을 자연 상태 그대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실제로는 매우 어려움.

경청하기: 입은 하나이고 귀는 두 개인 이유는 자신이 말하는 것보다 타인의 말을 배로 잘 들어야 하기 때문. 듣기만 잘해도 상대방의 공감과 신뢰를 얻으며 자기 성장의 촉진제 역할을 함.

생각하기: 논리적 사고력은 소통의 핵심이며 문제 해결의 단서.

모방하기: 흉내 내기는 지식 획득의 본질적 기법. 피카소의 예술 세계는 완전한 무로부터의 창조가 아닌, 기존 예술의 정수를 잘 융합한 결과임.

기록하기: 기록은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를 생각하는 ‘사고 정리 전략’의 하나. 손글씨는 전자기기와는 다른 형태의 신호로 두뇌를 자극함.

의견제시: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동양권 국가들이 약한 부분. 글로벌 사회에서는 소극적 태도라 보여 환영받지 못함. 상대방과 더 좋은 관계를 형성하려면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함.

질문하기: 자신의 관심사에 대한 타인의 의견을 듣고 이해하는 중요한 소통 기술. 최고의 답변은 최고의 질문에서 나옴.

비판하기: 비판은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고 서로 더 잘 이해 하는 칭찬받을 행위. 구태의연한 방식이나 생각보다는 새로운 시점을 명확한 근거로 표현하고 수용하는 기술이 필요함.

퍼포먼스: 연극적 요소를 도입한 학습법, 발표와 토론을 위한 표현력을 의미. 인풋을 효과적인 아웃풋으로 이끌기 위함이며 연기를 통해 표정, 목소리, 몸짓 등의 감정 표현을 풍부하게 하고 타인과 협동하는 능력을 배움.

이들 습관 가운데 모방하기의 대표적인 적용 사례가 바로 팝송으로 영어 배우기이다. 가령 비틀즈의 <Love Me Do>를 선택했다면 ‘가사 없이 듣기-가사 보며 듣기-가사 보며 따라부르기-가사 없이 따라부르기 순서로 연습하기’로 진행하며 실제 학교 현장에서도 흔히 쓰이는 방법이다. 이는 시험 합격과 승진 등 목표 달성을 위한 도구적 동기부여보다는 배우는 과정 자체가 즐거움이 되는 종합적 동기부여가 언어 습득에 더 도움 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자가 분석, 제시하는 배움의 습관은 대부분 세계 유수 대학들이 실제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에 적용된 내용을 바탕으로 하며, 그가 직접 학습자로서 경험해보았거나 교습자로서 수업에서 그 효능이 입증된 것이라 신빙성이 매우 높다. 때로는 그런 세밀한 방법까지 동원할 필요가 있을까 싶긴 하지만, 긍정적인 효과를 거둔다고 하니 우리네 학교 수업 방식에도 최대한 도입되기를 바라본다.

끝으로, 저자는 배우는 행위가 학습자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노래 또는 악기 연주가 되기를 바라며, 궁극적으로 배움의 습관이 우리의 인생을 바꿔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 물론 그가 제시하는 배움의 틀을 자신에게 잘 맞추고 연마하여 학습 습관과 인간관계, 그리고 인생이 바뀌는 노력은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경천동지할 인생의 변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책을 통해 최소한 배움의 자신감을 얻고 독자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다면 밑져야 본전 아닐까? 배움에 목말랐거나, 공부할 의지는 있어도 효과적인 방법을 몰랐거나, 진전없는 공부에 지쳐 신선한 자극을 원하거나, 공부 좀 해 둘 걸 하며 후회하고 있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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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있는 미국
김태용 지음 / 지식과감성#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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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촌뜨기가 머리에 털 나고 처음 미국 땅을 밟던 2016년 여름, 시애틀 공항에서 일어난 일이다. 출국 수속 중 급한(?) 일을 보느라 일행에게 가방을 봐달라고 부탁했는데, 서로 미루느라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약 10분 정도 통로에 방치된 상태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덩그러니 놓인 가방 옆에 자동소총을 든 공항 경비대원이 서 있고 웬 탐지견이 내 가방 주위를 킁킁대고 있는 게 아닌가. 가방 주인을 알아본 그가 그 가방이 당신 것이냐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이건 폭탄 테러를 예방하기 위한 의례적 절차이니 너무 개의치 말라고 한다. 어깨를 으쓱하며 가방을 경호해 주어서 고맙다고 농담을 건넸더니 눈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떴다. 순간, 테러에 극히 민감해하는 강대국의 역설적인 현실과 냉방도 시원찮고 비좁아 인천 공항에 비하면 시골 버스 터미널 같은 시애틀 공항이 겹쳐 보이면서, 미국도 별거 없네 싶었다.

 

미국, 그러면 무엇이 먼저 연상되시는가? 21세기를 사는 지금, 미국 사회를 서부 개척시대의 연장선에 놓고 보면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다민족 이민자들로 구성되어 사회질서 유지를 위한 엄격한 법치가 엄격히 적용되므로 공권력이 막강하고, 인디언과 야생동물 그리고 무법자들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총기 소지가 자연스러운 일이며, 계약제로 고용되어 박봉에 시달리는 교사들은 으레 부업을 뛰어야 하고, 부와 명예를 쌓는 일은 개인의 업적이라 자기 할 탓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라는 점 등. 그러나 모든 나라의 문화에는 달의 뒷면처럼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있다. 한국에 사는 우리가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현지인들이 살면서 체감하는 것 사이의 간격은 분명히 존재하며, 반드시 겪어보아야 할 만한 일도 많을 것이고 설령 그렇더라도 체감의 정도에는 개인차가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이해의 틈을 좁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2년간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미국 생활을 겪고 언론사에 투고했던 소소한 이야기들을 엮어낸 것이다. 관광이나 일시적 방문이 아닌, 유학생 신분으로 장기 체류했던 경험을 살려 미국의 사회와 문화를 조금 더 들여다보고 느낀 바를 공유하고 있다. 학술적으로 외국 문물에 접근하는 방식보다는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적은 공개 일기장 형식으로, 한 시간이면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 책 제목에 언급된 별일은 우리네 문화라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을 만한 일이 미국에서는 별일처럼 일어난다는 뉘앙스로 읽힌다. 예컨대, 전국총기협회(NRA)의 로비 여파로 인구보다 많아져 수거하지도 못할 수준으로 4억 정 이상 보급된 총기와 관련 사고로 골치를 썩인다든지, 아동 유괴 및 납치사건이 벌어지면 국가 재난 수준으로 대처하여 실시간으로 대국민 문자를 발송한다든지, 쓰레기를 분리 배출하여 처리하는 것보다 땅속에 파묻는 비용이 덜 든다며 마구잡이 매립으로 미국이 지구 환경오염 1위라는 오명을 숨긴다는 사실 등이 그러하다.


저자가 일찍이 외국어를 익히고 해당 국가를 방문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설정하여 실행했다는 점은 가히 본받을 만하다. 특별한 이해관계는 없지만, 저자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한국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평범한 사람의 일상생활에도 속속들이 배어있음을 실감한다. 밥벌이로 영어를 공부하면서도 용기가 없어 평생 미국을 방문할 생각조차 않던 필자마저도 우연찮은 기회에 3주 일정으로 서부 지역을 다녀올 정도이니. 특히 미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저자가 설정한 16개의 화제와 겹치는 다수의 경험을 하였기에 더욱 실감이 난다. 한국이라면 거의 하지 않을 행동이지만 실제 미국인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고 고맙다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겨우 몇 주 머물렀을 뿐인데 한국에 돌아와서 문을 잡아주는 새로운 습관이 들었다. 가히 본받을 만한 외국 문화의 긍정적인 영향이라 하겠다.

 


끝으로, 아담하고 얇은 소책자에 16개나 되는 일화를 담아내느라 내용이 비교적 짧고 간단한 편이나, 175쪽에 불과한 분량에도 90개의 미주를 달아주는 등 저자가 다양한 매체와 자료를 통해 이질적인 문화를 열심히 들여다보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잘 모르거나, 관광이든 사업이든 방문을 목전에 두고 있거나, 미국 현지 생활에 관심을 둔 독자라면 잠시 짬을 내어 읽어두면 좋겠다. 더욱 풍성하고 속 깊은 미국 체류 경험담이 책으로 나올지, 혹시 누가 알겠는가?

 

#사회학 #별일있는미국 #미국문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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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있는 미국
김태용 지음 / 지식과감성#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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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 다녀와 봤어요?
- 아뇨~!
- 안 다녀와 봤으면 말을 말어.
누군가의 경험담은 늘 새롭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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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대한 사색 - 무한한 우주 속 인간의 위치
앨런 라이트먼 지음, 송근아 옮김 / 아이콤마(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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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생명의 시작은 무엇이며 자아 의식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우연의 일치일지는 모르겠으나 나이가 들수록 이런 거대한 질문으로 삶의 의미를 묻는 책을 점점 더 자주 접하게 된다. 좀 더 시야를 넓혀 무한한 우주 속 인간의 위치를 묻는 이 책은 우주에 대한 서정적이고 읽어볼 만한 토론 거리를 제시한다. 다른 많은 과학 입문서와는 달리, 이 책은 어떤 현상에 대한 설명보다는 의도적으로 저자의 생각을 담으려 한다. 우주와 인간에 대한 흥미로운 생각들을 일반적인 용어로 탐구할 뿐이다. 저자는 매일 별의 먼지와 열역학 법칙을 다루는 과학자이자, 해먹에 누워 별을 곰곰이 생각하는 물리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저서는 대부분 명성을 얻었으며 이 책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전작 "메인의 섬에서 별을 찾아서"에 이어 이 책에서는 우주 공간에 떠 있는 먼지만도 못한 인간의 위치를 다시 돌아본다. 과학과 인간다움을 선사 받은 우리는 또다시 우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에 관하여
우리가 다른 인간들에게 부여하는 초월적이고, 비물질적이며, 오래가는 자질들은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컴퓨터로 만들어진 세계와 같은 착각이다. 우리 인류가 마음속에 문화 자본을 축적했다는 사실은 분명 대단한 성취이자 업적이다. 인류는 세상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과학이론의 토대를 세웠고, 아름답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그림과 음악, 문학을 창조하였으며 사회 전반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는 법규 체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런 훌륭한 장치들도 인간의 마음을 벗어나서는 본질적인 가치가 없어진다. 인간의 모든 의식과 생각, 즉 정신이란 분해되고 용해될 운명에 놓인 원자의 집합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존재와 의식은 항상 무에 가까워지고 있다.

우주관에 대하여
우리는 시간의 대혼란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을 느끼는 동시에 그 흐름을 알고 있다. 우리는 공허의 일부가 아니며 양자 진공의 변동도 아니다. 언젠가 육신의 원자가 흙과 공중으로 흩어지면 우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살아 있고 지금 이 순간을 느끼고 있다. 책상 위에 올린 손이 보이고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따사로운 볕에 태양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창밖을 내다보면 해안가로 이어지는 소나무 오솔길이 보인다. 우리는 우주에서 온 물질일 뿐만 아니라 정확히는 별에서 만들어진 물질의 결합체다. 우리 신체를 구성하는 원자는 별들의 핵반응에서 하나씩 만들어진 후 우주로 던져졌다. 수백만 년 동안 소용돌이치고 응축되어 행성으로, 단세포 생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우리 인간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말 그대로 우주의 일부분이다. 유기체와 무기체 두 가지 물질로 우주가 구성되었다는 널리 퍼진 믿음과는 반대로, 우주에는 단 한 가지 종류의 물질만이 존재한다. 바위, , 공기, 나무, 인간 등 모두 같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의식에 대하여
우리의 사고와 감정, 자아 인식, 그리고 나다움의 느낌은 너무나 압도적이고 독특하며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들은 완전히 물질적인 원자와 분자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를 비롯한 다른 생명체들이 그저 물질에 불과할 수 있다니, 불가능한 얘기로 들린다. 그러나 무기체로부터 생명을 창조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하고 있는 합성 생물학자들에게는 공식의 기본값에 불과하다.




저자의 초기 작품 <메인의 섬에서 별을 찾아서>와 매우 비슷하게, 이 책은 무거운 주제에 대해 상대적으로가벼운 읽을거리이다. '빅뱅 이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로부터 '무에 관하여', '불멸', '기적', '생명체는 정말 특별한가?' 17개 주제로 구성돼 있다. 요점은 이 책이 어떤 식으로든 기술 과학 서적이 아니라, 소설가이자 수필가로 전향한 이론 물리학자 개인의 사색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저자는 정말 구체적으로 인생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앞서 언급한 거대한 질문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저자의 개성적인 통찰과 명상은 매혹적이고 위로가 된다.


저자의 필력은 소재만 과학일 뿐, 여느 문필가보다 부드럽고 매력적이다. 특히, 부활절 달걀처럼 이 글의 곳곳에 숨겨진 다채로운 직유는 과학적 사고방식의 이해를 돕는다. 예컨대 태양과 같은 거대질량이 트램펄린 위에 볼링공처럼 가라앉을 때 그 아래 매트를 접는 것처럼 공간을 구부린다고 설명함으로써 공간과 시간의 기하학은 질량과 에너지의 영향을 받는다는 예시를 통해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훨씬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일상적인 소재를 이용한 비교는 과학을 잘 모르는 필자에게 큰 도움을 준다.




그의 전작들은 주로 무한의 본질, 우주의 기원, 비생명체로부터 생명을 창조하는 프로젝트 그리고 의식의 의미 등을 다룬다. 빅뱅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묻는 질문에서 저자는 우주 기원의 양자 안개 속에서 인과관계가 녹아내릴 수 있다'는 시각에서 인과관계가 반드시 존재해야 하느냐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는 '우주 생물중심주의'에서 '우리의 우주에서의 삶은 프라이팬 속의 섬광, 우주 속의 시공간이 펼쳐지는 순간'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존재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묻는다. 우주에 인류를 제외한 다른 생명체가 거의 없을 거라는 생각은 우리에게 다른 생명체와 이루 말할 수 없는 교감을 염원하게 한다. 저자는 다른 지적인 존재들 역시 과학과 예술을 창조하여 우주적 존재의 파노라마를 기록하려 시도하며, 이러한 열정을 공유할 것이라 말한다. 복잡한 과학적 개념을 쉽게 설명하면서 감동적인 산문을 만드는 저자의 능력은 희귀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이 책은 우주의 범위와 그것을 이해하는 우리의 한계에 대해 궁금증을 유발하고 이해하는 즐거움을 준다. 이론 물리학에서는 확답을 거의 주지 않지만,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저자의 말처럼, 하늘을 올려다보고 자유라는 마음의 사치를 마음껏 누리면 될 테니까.

 

#과학 #이론물리학 #천체물리 #모든것의시작과끝에대한사색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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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대한 사색 - 무한한 우주 속 인간의 위치
앨런 라이트먼 지음, 송근아 옮김 / 아이콤마(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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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 물리학자, 천체 우주학자의 필력 넘치는, 거대 질문에 화답하는 철학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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