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세상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우리를 현혹하는 것들에 논리와 근거로 맞서는 힘
리처드 도킨스 외 30인 지음, 존 브록만 외 엮음, 김동광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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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람이라는 바다에서 헤엄치며 살아가는 것이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가미를 필요로 하듯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뇌를 필요로 한다. 바다가 소금물로 가득 차 있듯이, 사람의 바다는 언어처럼 배워야 할 무수히 많은 것들로 가득 차 있다. - 리처드 도킨스, 30

 

이 책을 저술한 학자들은 주로 영국 아니면 미국 출신이다. “사물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비과학적 설명으로는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웅장함과 영광이 있다는 마리안 스탬프 도킨스의 표현처럼 일부 저자는 마치 과학을 처음 접하는 어린이에게 이야기하는 듯한 과학계의 대중 친화적 면모를 보이기도 하나 그럼에도 대부분 저자들은 지나친 단순화를 경계하는 모습이다.

 

어떤 글은 표현의 명료함에 주목할 만하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진화론에 대한 겸손한 설명은 우리가 무성한 수목이 우거진 생명 나무에서 작고 늦게 피는, 궁극적으로는 일시적인 나뭇가지라는 결론을 내린다. 마이클 S. 가자니가는 잡음이 많은 데이터 집합에서 관계를 찾으려는 노력에서 평균과 통계 정보에 대한 잘못된 의존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편 앤 파우스토-스털링은 동물의 동성 결합에 대해 놀랍도록 독창적인 생각을 펼치기도 한다.

 

이처럼 이 책은 우리 시대의 가장 빛나는 사상가와 과학자들이 모여 각자의 분야와 관련된 글을 통해 우리의 지성에 도전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며, 동시에 과학의 세계를 지배하는 '핵심' 이슈에 대한 독자의 생각을 일깨워준다. 또한 자연 세계와 그 모순에 대한 생생한 담론을 제공하며, 학술적이면서도 일반 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수준의 접근성을 유지한다. 다양하고 활기찬 이 에세이집은 짧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읽을거리이다.


 

만약 내가 세상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설명하려는 이 에세이집을 좀 더 어렸을 때 읽었더라면, 시큰둥함을 넘어 약간의 거부감마저 유발하던 과학 수업, 특히 물리와 화학 과목에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과학 교과서는 실용적인 응용이나 그 배경이 되는 역사가 별로 없어 흥미를 끌어내기보다는 과학사적 사실 위주로 나열되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철학, 논리, 윤리와 함께 융합되어 제시되는 추세로 보아 과학을 과목별로 분리하여 학습한 것이 꼭 바람직한 현상만은 아닌 듯하다. 르네상스가 과학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더 깊은 이해를 위해 과학을 분야별로 나눈 것이기는 했지만, 과학은 항상 다른 학문과 함께 어우러져 작동하게 되어 있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각 에세이의 마지막에 과학자 또는 저자에 대한 짧은 약력이 소개되는 점은 마음에 든다. 이 약력에는 해당 저자가 쓴 다른 책의 제목이 포함되어 있으며 일반인을 위해 저술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서문에서 밝혔듯 이 에세이를 읽는 것은 옆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과학자들 사이의 대화를 엿듣는 상황과 비슷하다. 짧으면서도 주제 집중적인 에세이에는 각 과학자의 생애를 알 수 있는 세부 정보가 제공되며, 과학을 잘 알지 못하는 독자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서술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다뤄지는 주요 주제는 과학, 기원, 진화, 마음, 우주, 미래에 대한 생각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과학적 개념을 소개하는 것뿐만 아니라 과학자들이 어떻게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과학적 방법론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가설이 어떻게 설정되고 검증되는지, 그리고 새로운 발견이 기존 지식과 어떻게 통합되는지를 설명한다. 관찰과 실험, 논리적 추론을 바탕으로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과학적 사고방식의 필요성이 점차 커지면서, 우리에게는 주관적인 편견이나 감정보다는 객관적 증거에 근거하여 판단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복잡한 문제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도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현대 사회에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실과 허구를 구별하는 능력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또한 물리학, 생물학, 화학, 인류학 등 다양한 과학 분야를 아우르며 각 분야의 최신 연구와 이론을 소개한다. 과학의 다양한 측면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으며 각 분야 간의 연관성과 통합적인 관점을 배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우주의 기원에 대한 물리학적 논의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생물학적 논의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이러한 지식이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하는 식이다.

 

이 책은 단순한 정보 전달에 그치지 않고 과학 내에서의 다양한 견해와 논쟁을 소개하며, 과학이 단일한 진리가 아니라 끊임없는 탐구와 논의를 통해 발전하는 동적인 과정임을 보여준다. 독자들은 서로 다른 관점을 비교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함으로써 자신의 견해를 형성하고 심화시킬 수 있다. 과학적 배경이 없는 일반 독자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평이한 언어로 쓰였으며, 전문 용어를 최소화하고 일상적인 예시와 비유를 통해 복잡한 개념을 설명하고 과학에 대한 흥미를 높임으로써 독자들은 힘들이지 않고 과학적 사고방식을 자기 삶에 적용할 수 있다.

 

혹시라도 일부 독자들은 책의 구성이 다소 산만하다고 느낄지 모른다. 각 에세이가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전체적인 흐름이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또한, 무려 30년 전인 1995년에 출간된 책이므로 일부 내용은 현재의 과학적 발견이나 이론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최신 정보를 원하는 독자들은 이를 감안하여 읽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과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비판적 사고를 촉진하는 데 탁월한 자원을 제공하는 원천이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집필한 에세이를 통해 현대 과학의 핵심 개념과 논쟁을 접할 수 있으며 과학적 사고방식을 습득할 좋은 기회이다. 과학은 잘 모르지만, 호기심이 있다는 점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과학적으로 훌륭한 독자다.

 

#포레스트북스 #세상은어떻게작동하는가 #과학에세이 #과학적사고방식 #과학사 #리처드도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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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드 악타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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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야드 악타르(Ayad Akhtar)Homeland Elegies는 허구와 자전적 요소가 정교하게 결합된 작품으로, 미국 사회에서의 이민자 경험과 정체성의 혼란을 탐구하는 강렬한 서사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아야드는 파키스탄계 미국인 작가로서 그의 가족사와 개인적 경험을 통해 미국이라는 나라의 본질을 해부한다.

 

아야드의 아버지는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한 전형적인 이민자다. 그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파키스탄 출신의 심장병 전문의로, 1980년대 미국에서 성공을 거두며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깊이 동화된 인물이다. 교육과 노력으로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의 성공은 필연적으로 미국의 자본주의적 가치와 깊이 얽혀 있다. 미국을 기회의 땅으로 여겼으나 9/11 이후 미국 사회 곳곳에서 무슬림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노골적으로 깊어지면서 그는 자신이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한다는 현실을 깨닫는다. 아야드는 이러한 아버지의 세계관에 반발하며 문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모색한다. 하지만 그 역시 미국에서 완전한 소속감을 얻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민자라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줄 알았던 아메리칸 드림이 궁극적으로 특정 계층에게만 허용되는 특권임을 알게 된다.

 

아야드 역시 문학을 통해 작가로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의 정체성은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 주류에 속하지 못한다. 그는 엘리트 계층과 교류하며 미국 사회의 중심부에 진입했음에도 인종적 배경으로 인해 완전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경제적 성공이 반드시 사회적 통합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이민자의 현실을 보여준다.

 

소설은 아야드의 문학적 성장 과정뿐만 아니라, 인종차별, 경제적 불평등, 월스트리트의 부패, 그리고 미국 사회의 제도적 모순을 날카롭게 조명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다. 연애와 우정조차도 인종과 종교, 문화적 배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경험하며, 그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어떠한 이중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깨닫는다.

 

결국, 이 소설은 아야드가 미국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이 나라가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과정으로 마무리된다. 그는 아버지와의 갈등 속에서 미국이 제공하는 기회와 배제의 역설을 체험하며,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을 품게 된다.

 

소설은 이처럼 미국 사회에 내재한 인종적, 종교적 편견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아야드는 독실한 무슬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국 사회에서는 단지 외견상 무슬림이라는 이유만으로 특정한 정체성으로 규정된다. 개인의 자기인식과 사회적 규정 사이의 괴리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9/11 이후 미국에서 무슬림은 집단적으로 의심받고 배제당하는 경험을 했다. 아야드의 아버지는 의사로서 미국 사회에 기여한 바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파키스탄으로 돌아갈 것을 고려할 정도로 사회적 배척을 경험한다. 이로써 미국 사회가 내세우는 다문화주의와 포용성이 실질적으로 한계를 지닌다는 점을 폭로한다.

 

소설은 또한 미국식 자본주의의 모순을 깊이 탐색한다. 아야드는 월스트리트에서 금융 부정을 목격하며, 부의 축적이 도덕적 기준을 무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의 아버지 또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성공을 이루었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적 가치는 물질적 이익보다 뒷순위로 밀려난다. 이러한 현실은 미국 사회가 표방하는 가치(자유, 평등, 기회)와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방식 사이의 괴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국 경제 시스템이 이상적으로 포장된 기회의 땅이 아니라 구조적 불평등과 부패가 만연한 현실임을 강하게 비판한다.

 

소설의 또 다른 중요한 주제는 개인과 국가의 관계다. 아야드는 미국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이 나라가 자신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느낀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지만 그는 여전히 외부인으로 간주됨으로써 미국이 이민자들에게 제공하는 기회와 이들이 경험하는 배제 사이의 모순을 상징한다.

 

소설은 미국의 역사적 정체성이 자유와 포용을 기반으로 하지만, 동시에 특정 집단(백인 주류 계층)의 이익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작동해왔음을 강조한다. 이민자들은 미국 사회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혼란스러운 정체성과 협상하면서도 소속감의 위기를 겪는다.

 

이 소설이 흥미로운 이유는 미국 사회의 정체성과 모순을 이민자의 시선에서 예리하게 탐구하기 때문이다. 개인적 서사를 통해 미국 자본주의, 인종적 편견, 아메리칸 드림의 허구성을 철저히 해부하며, 이민자로서 경험하는 정체성의 복잡성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관찰자적 시점에서 미국을 이상화하지도, 완전히 부정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사랑과 배제, 기회와 불평등, 성공과 소외라는 상반된 요소들이 공존하는 나라로서의 미국을 조명한다. 이러한 접근은 미국 사회가 지닌 본질적인 모순을 드러내면서도 변화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궁극적으로 이 소설은 단순한 이민자 서사에 그치지 않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는 어디에 속하는가?’라는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독자는 저자와 함께 이러한 고민을 예리하고 진솔하게 마주하게 될 것이다.

 

#장편소설 #트럼프 #팍스아메리카나 #홈랜드엘레지 #미국사회 #아메리칸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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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드 악타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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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천국? 이라는 미국 사회의 현실과 역설을 짚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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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 세계사 미래의 역습 - 세상의 흐름을 결정할 혁신기술의 거대한 충격 17 10년 후 세계사 3
구정은.이지선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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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제목이 10년 후 세계사 미래의 역습이라 처음 보면 영화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이 바로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10년 후 세계사시리즈는 이미 세상에 나왔던 적이 있고, 이 책이 그 두 번째 작품이다. 두 작품은 완전히 다른 분야지만 역습이라는 단어가 주는 강렬한 느낌 덕분에 역사적·서사적 맥락에서 묘하게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이 영웅들의 패배와 제국의 강력한 반격을 상징한다면, 10년 후 세계사 미래의 역습역시 우리가 마주하게 될 미래의 도전과 변화를 경고하는 책이다.

 

역습이란 단순한 반격이 아니라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커다란 도전과 변화를 뜻한다.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에서는 반란군이 승리를 거둔 뒤 제국이 강력한 반격을 가하는 과정이 그려지는데, 이를 통해 희망이 무너지고 강대국의 힘이 다시 강화되는 모습이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반면 10년 후 세계사 미래의 역습에서 역습은 좀 다르다. 예측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세계가 변하면서, 인류가 기술·환경·정치적 도전에 맞닥뜨리는 모습을 뜻한다. 미래는 항상 발전과 진보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대비하지 않으면 오히려 위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역습이라는 개념이 적절하게 들어맞는다.

 

이 책이 다루는 주요 주제 중 하나는 기술 발전과 그에 따른 사회 변화다. 인공지능(AI)의 발전, 자동화 확산, 플랫폼 노동 증가 같은 흐름은 우리가 과연 새로운 미래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묻게 한다.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에서도 기술은 중요한 요소다. 제국군은 최첨단 전투 기술과 우주선을 활용해 반란군을 압도하고, 다스 베이더는 기계와 인간이 융합된 존재로 등장한다. 10년 후 세계사 미래의 역습도 인간과 기술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의 샘플북에서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류의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국가 간 패권 경쟁이 어떻게 흘러갈지, 그리고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의 위상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이렇게 세 가지 사안만 짧게 다뤄지고 있다. 여기에 몇 가지 더 생각해볼 문제를 덧붙여 정리해보겠다.

 

1. 기술 발전과 인류의 미래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류의 삶은 편리해졌고, 산업 전반에서 효율성이 극대화됐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고,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는 문제도 생겨났다. 자동화와 인공지능이 도입되면서 많은 노동자가 직장을 잃고 있고, 사회 변화도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 중이다.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고민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다.

 

산업혁명 시절에도 기계가 등장하면서 일자리가 줄었지만, 새로운 직업이 생기면서 노동 시장은 재편됐다. 그런데 21세기의 기술 혁신은 양상이 좀 다르다. 공장에서는 로봇이 인간 대신 정밀한 작업을 하고, 물류 산업에서는 자율주행차와 드론이 배송을 맡는다. 금융·고객 서비스 같은 분야도 AI가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심지어 예술과 언론까지 AI가 기사를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인간만의 고유한 창작 능력까지 위협받는 상황이다.

 

이렇게 일자리가 줄어들면 실업률이 상승하고 빈부격차가 심화된다. 과거에는 기술 변화에 적응할 시간이 주어졌지만, 지금은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중장년층은 물론이고 젊은 세대도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불안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기술을 거부할 수는 없으니 결국 인간이 기술과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부와 기업이 나서서 새로운 기술을 익힐 기회를 제공하고, 교육과 재훈련 프로그램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감성적인 일, 비판적 사고가 필요한 분야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술과 협력하며 인간의 가치를 극대화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기술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많은 일자리와 인간의 역할을 없애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변화에 적응해왔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올바른 정책과 준비만 있어야 사라지는 일자리 속에서도 인간만의 가치가 더욱 빛날 수 있다.

 

2. 4 동맹 체제

 

21세기 디지털 경제에서 반도체는 국가 간 경쟁과 협력의 핵심 자원이다. 그 중심에 미국이 주도하는 4 동맹(Chip 4 Alliance)’이 있다. 4 동맹은 미국·일본·대만·한국이 참여하는 반도체 공급망 협력체로,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안정성을 강화하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반도체는 스마트폰, 자동차, AI, 5G 같은 거의 모든 첨단 산업에 필수적이다. 하지만 최근 공급망 불안, ·중 기술 경쟁, 팬데믹으로 인한 반도체 부족 사태가 발생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주요 반도체 생산국 간 협력이 더욱 필요해졌다. 4 동맹은 단순한 경제 협력을 넘어 국가 안보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은 반도체 설계와 첨단 기술을, 한국과 대만은 제조 기술을, 일본은 반도체 소재와 장비를 담당하며, 이 협력을 통해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려 한다. 하지만 각국의 이해관계가 달라서 조율해야 할 문제도 많고, 무엇보다 한 울타리 안에서 기본적인 입장 차이가 있다.

반도체 설계와 연구개발(R&D)에서 강점을 보유한 미국은 동맹을 통해 첨단 반도체 기술을 보호하고 중국의 반도체 산업 발전을 견제하려 한다. 반도체 소재 및 장비 부문에서 강점을 가진 일본은 칩4 동맹을 통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공급망을 안정화하려 한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제조) 업체인 TSMC를 보유한 대만은 중국과의 지정학적 갈등 속에서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안보 및 경제적 이점을 확보하고자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보유한 한국은 반도체 생산 강국으로,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고려하면서도 미국과의 협력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만큼 칩4 동맹 참여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3. 세계가 중국과 충돌하는 이유

 

중국은 경제·군사·기술 면에서 빠르게 성장하면서 세계적으로 많은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세계의 공장이라 불릴 정도로 제조업 강국이지만, 기술 절취 논란, 불공정 무역 문제 등으로 미국과 서방 국가들과의 마찰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대표적인 예다. 미국은 중국이 정부 주도로 시장을 왜곡한다고 보고 있고, 이에 따라 관세 부과, 기술 제재 등으로 강력히 대응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이를 내정 간섭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갈등이 크다. 서방 국가들이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데 반해 중국은 일당 독재 체제를 유지하며 홍콩·대만 문제, 신장 위구르 인권 탄압 문제 등에서 국제적으로 비판받고 있다. 군사적으로도 중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며 미국과 대립하고 있다.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대만과의 갈등, 인도와의 국경 분쟁 등도 지속적인 갈등의 원인이다. 체급으로 보아 미국에 가장 만만한 상대이기는 하나, 과연 미국을 견제할만한 수준이 될는지는 글쎄올시다인 것이다.

 

4. 결론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에서 반란군은 제국의 강력한 반격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싸움을 준비한다. 10년 후 세계사 미래의 역습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미래의 도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변화에 대비하지 않으면 미래는 우리에게 가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적응해왔고, 이번에도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설 것이다. 먼 길 나서는 이에게 이 책이 썩 괜찮은 길라잡이가 되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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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 나를 살리기도 망치기도 하는 머릿속 독재자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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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원서 제목 Incognito'익명으로', '가명으로', '신분을 숨기고'라는 뜻의 영어 단어로 라틴어 incognitus(알려지지 않은, 미지의)에서 유래했다. 인간의 의식이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보다 훨씬 깊고 복잡한 무의식적 과정에 의해 형성된다는 주제를 탐구하며, 우리의 사고와 행동이 의식적으로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메커니즘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제목을 사용했다. 저자는 시각적 착시와 기묘한 사례 연구를 능숙하게 엮어 독자의 관심을 사로잡는 동시에 도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는 왜 특정한 행동을 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무의식의 심층을 탐구한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신경과학 부교수인 저자는 대중 과학 서적을 집필하는 인기 학자다. 이 책에서는 뇌의 작동 방식을 흥미롭게 파헤칠 뿐만 아니라, 도덕성, 심리학, 그리고 뇌 연구의 역사까지 아우르며 폭넓은 내용을 다루고 있어 책장을 넘길수록 이야기 삼매경에 자연스럽게 빠져든다. 그는 특유의 친숙한 태도를 유지하는 한편 과학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지 않으면서 복잡한 개념을 쉽게 소화할 수 있도록 풀어낸다. 책에 삽입된 시각적 착시와 도표는 독자의 흥미를 끌고, 각 장에서 다루는 원리를 효과적으로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이 책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의식이다. 일반적으로 의식은 난해하고 신비로운 개념으로 여겨지지만, 이를 강조하기보다 뇌의 다른 프로세스에 주목하며 의식의 중요성을 새롭게 조명한다. 책에서 소개하는 여러 사례 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인 것은 1966년 텍사스 대학교에서 총기로 13명을 살해한 찰스 휘트먼의 이야기다. 이 희대의 사건 내용을 읽다 보면 그 무차별한 잔혹함에 누구나 본능적으로 혐오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자는 휘트먼을 단순히 악인으로 치부하기보다는 뇌 부검 결과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휘트먼의 편도체를 압박하고 있던 거대한 종양이 극단적인 분노 폭발을 일으킨 원인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비난의 대상이 범인이어야 할지 아니면 종양이어야 할지에 대한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만약 종양이 없었다면 13명의 목숨이 온전했을까? 그는 이처럼 윤리적 딜레마를 제시하며 교도소 시스템의 본질을 정면으로 다룬다. 수감자의 행동을 수정할 가능성을 고려하여 진정한 정의와 재활이 왜 필요한지 설명하며, 독자에게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안겨준다.

 

이 책의 흥미로운 핵심은 우리가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이 사실상 착각이라는 점에 있다. 우리의 뇌는 현실을 하나의 연속적인 흐름으로 경험하도록 해주지만 사실은 단순한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것이 단순히 눈을 통한 수동적 정보 입력이 아니라 뇌가 능동적으로 구성한 이미지라는 점을 수많은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예컨대 시속 145km로 날아오는 공을 치는 타자나 멀리서 떨어지는 공을 정확하게 잡아내는 외야수는 이 과정에서 의식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뇌가 경험을 바탕으로 비행 궤도를 예측하고 복잡한 물리 방정식을 무의식적으로 계산해 움직인다.


저자는 다양한 착시 효과와 사례 연구를 활용해 이러한 뇌의 작용을 증명한다. 대표적으로 유명한 '얼굴-꽃병 착시'를 비롯한 여러 시각적 착시 실험을 소개하며, 감각 대체(sensory substitution) 기술을 통해 뇌의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준다. 시각 장애인은 비디오 카메라에서 받은 신호를 등을 비롯한 신체의 다른 부위나 심지어 혀를 통해 감지하면서 시각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뇌가 특정 감각 기관에 종속되지 않으며, 다양한 입력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실을 재구성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뇌가 해석한 정보를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


그는 또한 단순한 분석에서 나아가, 이러한 신경과학적 연구가 실질적인 사회적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텍사스의 베일러 의과대학에서 신경과학 및 법률 연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그는 뇌 손상이 인간의 행동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연구한다. 범죄 행동을 포함한 인간의 비행이 뇌 화학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보고 현재의 법체계가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도덕적 책임을 묻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범죄자의 행동을 생물학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이런 논지를 접한 독자들은 그가 인간의 자유의지와 도덕적 선택을 유전자, 호르몬, 신경 반응 같은 생물학적 요인으로 환원시키는 환원주의자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환원주의자가 아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우화적 접근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칼라하리 사막의 한 부족민이 우연히 라디오를 발견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다이얼을 돌려 소리와 음악을 끌어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원래 녹음된 후 전파를 통해 전달된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경 회로와 신호 전달에 대해 아무리 연구해도 인간 경험의 본질을 단순한 생물학적 과정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인체는 분자와 단백질, 뉴런에 묶여 있다"고 단언하면서도 인간을 단순히 이러한 요소들의 집합으로만 설명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결국, 그의 연구는 과학과 인문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고전적인 도덕 우화가 복잡한 신경과학 연구보다 더 깊은 깨달음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문화와 대중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이 책이 다소 낯설지도 모른다. 과학적 배경지식보다는 영화배우 멜 깁슨을 알고 있거나 영화 트루먼 쇼를 본 경험이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일례로 야구 경기에서 타자의 무의식이 통제권을 가질 때 홈런 확률이 높아지는 반면, 의식적으로 타격을 조절하려 들면 오히려 방해되는 경우를 설명한다. 이런 비유 덕분에 독자는 개념을 쉽게 이해하고 정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따금 일부러 유머를 의식한 농담이나 부차적인 내용 때문에 과학적 논점이 흐려지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신경과학의 세계를 깊이 탐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안내자다. 저자는 야심 차게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기존의 질문보다 더 많은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때때로 책의 흐름이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독자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하고 배울 기회를 얻는다. 책을 읽은 다음 누군가는 매일 스도쿠를 풀며 인지 예비 능력을 키우려 들 수도 있겠고, 또 다른 누군가는 책에서 소개한 착시 현상을 활용해 자신의 시각적 수용체를 실험해 볼 수도 있겠다. 어떤 방식이든, 이 책은 독자에게 값진 통찰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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