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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드 악타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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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야드 악타르(Ayad Akhtar)Homeland Elegies는 허구와 자전적 요소가 정교하게 결합된 작품으로, 미국 사회에서의 이민자 경험과 정체성의 혼란을 탐구하는 강렬한 서사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아야드는 파키스탄계 미국인 작가로서 그의 가족사와 개인적 경험을 통해 미국이라는 나라의 본질을 해부한다.

 

아야드의 아버지는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한 전형적인 이민자다. 그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파키스탄 출신의 심장병 전문의로, 1980년대 미국에서 성공을 거두며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깊이 동화된 인물이다. 교육과 노력으로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의 성공은 필연적으로 미국의 자본주의적 가치와 깊이 얽혀 있다. 미국을 기회의 땅으로 여겼으나 9/11 이후 미국 사회 곳곳에서 무슬림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노골적으로 깊어지면서 그는 자신이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한다는 현실을 깨닫는다. 아야드는 이러한 아버지의 세계관에 반발하며 문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모색한다. 하지만 그 역시 미국에서 완전한 소속감을 얻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민자라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줄 알았던 아메리칸 드림이 궁극적으로 특정 계층에게만 허용되는 특권임을 알게 된다.

 

아야드 역시 문학을 통해 작가로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의 정체성은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 주류에 속하지 못한다. 그는 엘리트 계층과 교류하며 미국 사회의 중심부에 진입했음에도 인종적 배경으로 인해 완전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경제적 성공이 반드시 사회적 통합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이민자의 현실을 보여준다.

 

소설은 아야드의 문학적 성장 과정뿐만 아니라, 인종차별, 경제적 불평등, 월스트리트의 부패, 그리고 미국 사회의 제도적 모순을 날카롭게 조명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다. 연애와 우정조차도 인종과 종교, 문화적 배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경험하며, 그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어떠한 이중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깨닫는다.

 

결국, 이 소설은 아야드가 미국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이 나라가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과정으로 마무리된다. 그는 아버지와의 갈등 속에서 미국이 제공하는 기회와 배제의 역설을 체험하며,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을 품게 된다.

 

소설은 이처럼 미국 사회에 내재한 인종적, 종교적 편견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아야드는 독실한 무슬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국 사회에서는 단지 외견상 무슬림이라는 이유만으로 특정한 정체성으로 규정된다. 개인의 자기인식과 사회적 규정 사이의 괴리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9/11 이후 미국에서 무슬림은 집단적으로 의심받고 배제당하는 경험을 했다. 아야드의 아버지는 의사로서 미국 사회에 기여한 바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파키스탄으로 돌아갈 것을 고려할 정도로 사회적 배척을 경험한다. 이로써 미국 사회가 내세우는 다문화주의와 포용성이 실질적으로 한계를 지닌다는 점을 폭로한다.

 

소설은 또한 미국식 자본주의의 모순을 깊이 탐색한다. 아야드는 월스트리트에서 금융 부정을 목격하며, 부의 축적이 도덕적 기준을 무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의 아버지 또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성공을 이루었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적 가치는 물질적 이익보다 뒷순위로 밀려난다. 이러한 현실은 미국 사회가 표방하는 가치(자유, 평등, 기회)와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방식 사이의 괴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국 경제 시스템이 이상적으로 포장된 기회의 땅이 아니라 구조적 불평등과 부패가 만연한 현실임을 강하게 비판한다.

 

소설의 또 다른 중요한 주제는 개인과 국가의 관계다. 아야드는 미국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이 나라가 자신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느낀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지만 그는 여전히 외부인으로 간주됨으로써 미국이 이민자들에게 제공하는 기회와 이들이 경험하는 배제 사이의 모순을 상징한다.

 

소설은 미국의 역사적 정체성이 자유와 포용을 기반으로 하지만, 동시에 특정 집단(백인 주류 계층)의 이익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작동해왔음을 강조한다. 이민자들은 미국 사회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혼란스러운 정체성과 협상하면서도 소속감의 위기를 겪는다.

 

이 소설이 흥미로운 이유는 미국 사회의 정체성과 모순을 이민자의 시선에서 예리하게 탐구하기 때문이다. 개인적 서사를 통해 미국 자본주의, 인종적 편견, 아메리칸 드림의 허구성을 철저히 해부하며, 이민자로서 경험하는 정체성의 복잡성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관찰자적 시점에서 미국을 이상화하지도, 완전히 부정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사랑과 배제, 기회와 불평등, 성공과 소외라는 상반된 요소들이 공존하는 나라로서의 미국을 조명한다. 이러한 접근은 미국 사회가 지닌 본질적인 모순을 드러내면서도 변화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궁극적으로 이 소설은 단순한 이민자 서사에 그치지 않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는 어디에 속하는가?’라는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독자는 저자와 함께 이러한 고민을 예리하고 진솔하게 마주하게 될 것이다.

 

#장편소설 #트럼프 #팍스아메리카나 #홈랜드엘레지 #미국사회 #아메리칸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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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드 악타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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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천국? 이라는 미국 사회의 현실과 역설을 짚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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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 세계사 미래의 역습 - 세상의 흐름을 결정할 혁신기술의 거대한 충격 17 10년 후 세계사 3
구정은.이지선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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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제목이 10년 후 세계사 미래의 역습이라 처음 보면 영화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이 바로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10년 후 세계사시리즈는 이미 세상에 나왔던 적이 있고, 이 책이 그 두 번째 작품이다. 두 작품은 완전히 다른 분야지만 역습이라는 단어가 주는 강렬한 느낌 덕분에 역사적·서사적 맥락에서 묘하게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이 영웅들의 패배와 제국의 강력한 반격을 상징한다면, 10년 후 세계사 미래의 역습역시 우리가 마주하게 될 미래의 도전과 변화를 경고하는 책이다.

 

역습이란 단순한 반격이 아니라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커다란 도전과 변화를 뜻한다.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에서는 반란군이 승리를 거둔 뒤 제국이 강력한 반격을 가하는 과정이 그려지는데, 이를 통해 희망이 무너지고 강대국의 힘이 다시 강화되는 모습이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반면 10년 후 세계사 미래의 역습에서 역습은 좀 다르다. 예측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세계가 변하면서, 인류가 기술·환경·정치적 도전에 맞닥뜨리는 모습을 뜻한다. 미래는 항상 발전과 진보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대비하지 않으면 오히려 위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역습이라는 개념이 적절하게 들어맞는다.

 

이 책이 다루는 주요 주제 중 하나는 기술 발전과 그에 따른 사회 변화다. 인공지능(AI)의 발전, 자동화 확산, 플랫폼 노동 증가 같은 흐름은 우리가 과연 새로운 미래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묻게 한다.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에서도 기술은 중요한 요소다. 제국군은 최첨단 전투 기술과 우주선을 활용해 반란군을 압도하고, 다스 베이더는 기계와 인간이 융합된 존재로 등장한다. 10년 후 세계사 미래의 역습도 인간과 기술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의 샘플북에서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류의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국가 간 패권 경쟁이 어떻게 흘러갈지, 그리고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의 위상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이렇게 세 가지 사안만 짧게 다뤄지고 있다. 여기에 몇 가지 더 생각해볼 문제를 덧붙여 정리해보겠다.

 

1. 기술 발전과 인류의 미래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류의 삶은 편리해졌고, 산업 전반에서 효율성이 극대화됐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고,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는 문제도 생겨났다. 자동화와 인공지능이 도입되면서 많은 노동자가 직장을 잃고 있고, 사회 변화도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 중이다.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고민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다.

 

산업혁명 시절에도 기계가 등장하면서 일자리가 줄었지만, 새로운 직업이 생기면서 노동 시장은 재편됐다. 그런데 21세기의 기술 혁신은 양상이 좀 다르다. 공장에서는 로봇이 인간 대신 정밀한 작업을 하고, 물류 산업에서는 자율주행차와 드론이 배송을 맡는다. 금융·고객 서비스 같은 분야도 AI가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심지어 예술과 언론까지 AI가 기사를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인간만의 고유한 창작 능력까지 위협받는 상황이다.

 

이렇게 일자리가 줄어들면 실업률이 상승하고 빈부격차가 심화된다. 과거에는 기술 변화에 적응할 시간이 주어졌지만, 지금은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중장년층은 물론이고 젊은 세대도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불안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기술을 거부할 수는 없으니 결국 인간이 기술과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부와 기업이 나서서 새로운 기술을 익힐 기회를 제공하고, 교육과 재훈련 프로그램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감성적인 일, 비판적 사고가 필요한 분야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술과 협력하며 인간의 가치를 극대화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기술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많은 일자리와 인간의 역할을 없애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변화에 적응해왔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올바른 정책과 준비만 있어야 사라지는 일자리 속에서도 인간만의 가치가 더욱 빛날 수 있다.

 

2. 4 동맹 체제

 

21세기 디지털 경제에서 반도체는 국가 간 경쟁과 협력의 핵심 자원이다. 그 중심에 미국이 주도하는 4 동맹(Chip 4 Alliance)’이 있다. 4 동맹은 미국·일본·대만·한국이 참여하는 반도체 공급망 협력체로,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안정성을 강화하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반도체는 스마트폰, 자동차, AI, 5G 같은 거의 모든 첨단 산업에 필수적이다. 하지만 최근 공급망 불안, ·중 기술 경쟁, 팬데믹으로 인한 반도체 부족 사태가 발생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주요 반도체 생산국 간 협력이 더욱 필요해졌다. 4 동맹은 단순한 경제 협력을 넘어 국가 안보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은 반도체 설계와 첨단 기술을, 한국과 대만은 제조 기술을, 일본은 반도체 소재와 장비를 담당하며, 이 협력을 통해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려 한다. 하지만 각국의 이해관계가 달라서 조율해야 할 문제도 많고, 무엇보다 한 울타리 안에서 기본적인 입장 차이가 있다.

반도체 설계와 연구개발(R&D)에서 강점을 보유한 미국은 동맹을 통해 첨단 반도체 기술을 보호하고 중국의 반도체 산업 발전을 견제하려 한다. 반도체 소재 및 장비 부문에서 강점을 가진 일본은 칩4 동맹을 통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공급망을 안정화하려 한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제조) 업체인 TSMC를 보유한 대만은 중국과의 지정학적 갈등 속에서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안보 및 경제적 이점을 확보하고자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보유한 한국은 반도체 생산 강국으로,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고려하면서도 미국과의 협력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만큼 칩4 동맹 참여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3. 세계가 중국과 충돌하는 이유

 

중국은 경제·군사·기술 면에서 빠르게 성장하면서 세계적으로 많은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세계의 공장이라 불릴 정도로 제조업 강국이지만, 기술 절취 논란, 불공정 무역 문제 등으로 미국과 서방 국가들과의 마찰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대표적인 예다. 미국은 중국이 정부 주도로 시장을 왜곡한다고 보고 있고, 이에 따라 관세 부과, 기술 제재 등으로 강력히 대응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이를 내정 간섭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갈등이 크다. 서방 국가들이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데 반해 중국은 일당 독재 체제를 유지하며 홍콩·대만 문제, 신장 위구르 인권 탄압 문제 등에서 국제적으로 비판받고 있다. 군사적으로도 중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며 미국과 대립하고 있다.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대만과의 갈등, 인도와의 국경 분쟁 등도 지속적인 갈등의 원인이다. 체급으로 보아 미국에 가장 만만한 상대이기는 하나, 과연 미국을 견제할만한 수준이 될는지는 글쎄올시다인 것이다.

 

4. 결론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에서 반란군은 제국의 강력한 반격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싸움을 준비한다. 10년 후 세계사 미래의 역습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미래의 도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변화에 대비하지 않으면 미래는 우리에게 가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적응해왔고, 이번에도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설 것이다. 먼 길 나서는 이에게 이 책이 썩 괜찮은 길라잡이가 되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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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 나를 살리기도 망치기도 하는 머릿속 독재자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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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원서 제목 Incognito'익명으로', '가명으로', '신분을 숨기고'라는 뜻의 영어 단어로 라틴어 incognitus(알려지지 않은, 미지의)에서 유래했다. 인간의 의식이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보다 훨씬 깊고 복잡한 무의식적 과정에 의해 형성된다는 주제를 탐구하며, 우리의 사고와 행동이 의식적으로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메커니즘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제목을 사용했다. 저자는 시각적 착시와 기묘한 사례 연구를 능숙하게 엮어 독자의 관심을 사로잡는 동시에 도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는 왜 특정한 행동을 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무의식의 심층을 탐구한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신경과학 부교수인 저자는 대중 과학 서적을 집필하는 인기 학자다. 이 책에서는 뇌의 작동 방식을 흥미롭게 파헤칠 뿐만 아니라, 도덕성, 심리학, 그리고 뇌 연구의 역사까지 아우르며 폭넓은 내용을 다루고 있어 책장을 넘길수록 이야기 삼매경에 자연스럽게 빠져든다. 그는 특유의 친숙한 태도를 유지하는 한편 과학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지 않으면서 복잡한 개념을 쉽게 소화할 수 있도록 풀어낸다. 책에 삽입된 시각적 착시와 도표는 독자의 흥미를 끌고, 각 장에서 다루는 원리를 효과적으로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이 책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의식이다. 일반적으로 의식은 난해하고 신비로운 개념으로 여겨지지만, 이를 강조하기보다 뇌의 다른 프로세스에 주목하며 의식의 중요성을 새롭게 조명한다. 책에서 소개하는 여러 사례 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인 것은 1966년 텍사스 대학교에서 총기로 13명을 살해한 찰스 휘트먼의 이야기다. 이 희대의 사건 내용을 읽다 보면 그 무차별한 잔혹함에 누구나 본능적으로 혐오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자는 휘트먼을 단순히 악인으로 치부하기보다는 뇌 부검 결과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휘트먼의 편도체를 압박하고 있던 거대한 종양이 극단적인 분노 폭발을 일으킨 원인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비난의 대상이 범인이어야 할지 아니면 종양이어야 할지에 대한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만약 종양이 없었다면 13명의 목숨이 온전했을까? 그는 이처럼 윤리적 딜레마를 제시하며 교도소 시스템의 본질을 정면으로 다룬다. 수감자의 행동을 수정할 가능성을 고려하여 진정한 정의와 재활이 왜 필요한지 설명하며, 독자에게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안겨준다.

 

이 책의 흥미로운 핵심은 우리가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이 사실상 착각이라는 점에 있다. 우리의 뇌는 현실을 하나의 연속적인 흐름으로 경험하도록 해주지만 사실은 단순한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것이 단순히 눈을 통한 수동적 정보 입력이 아니라 뇌가 능동적으로 구성한 이미지라는 점을 수많은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예컨대 시속 145km로 날아오는 공을 치는 타자나 멀리서 떨어지는 공을 정확하게 잡아내는 외야수는 이 과정에서 의식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뇌가 경험을 바탕으로 비행 궤도를 예측하고 복잡한 물리 방정식을 무의식적으로 계산해 움직인다.


저자는 다양한 착시 효과와 사례 연구를 활용해 이러한 뇌의 작용을 증명한다. 대표적으로 유명한 '얼굴-꽃병 착시'를 비롯한 여러 시각적 착시 실험을 소개하며, 감각 대체(sensory substitution) 기술을 통해 뇌의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준다. 시각 장애인은 비디오 카메라에서 받은 신호를 등을 비롯한 신체의 다른 부위나 심지어 혀를 통해 감지하면서 시각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뇌가 특정 감각 기관에 종속되지 않으며, 다양한 입력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실을 재구성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뇌가 해석한 정보를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


그는 또한 단순한 분석에서 나아가, 이러한 신경과학적 연구가 실질적인 사회적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텍사스의 베일러 의과대학에서 신경과학 및 법률 연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그는 뇌 손상이 인간의 행동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연구한다. 범죄 행동을 포함한 인간의 비행이 뇌 화학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보고 현재의 법체계가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도덕적 책임을 묻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범죄자의 행동을 생물학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이런 논지를 접한 독자들은 그가 인간의 자유의지와 도덕적 선택을 유전자, 호르몬, 신경 반응 같은 생물학적 요인으로 환원시키는 환원주의자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환원주의자가 아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우화적 접근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칼라하리 사막의 한 부족민이 우연히 라디오를 발견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다이얼을 돌려 소리와 음악을 끌어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원래 녹음된 후 전파를 통해 전달된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경 회로와 신호 전달에 대해 아무리 연구해도 인간 경험의 본질을 단순한 생물학적 과정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인체는 분자와 단백질, 뉴런에 묶여 있다"고 단언하면서도 인간을 단순히 이러한 요소들의 집합으로만 설명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결국, 그의 연구는 과학과 인문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고전적인 도덕 우화가 복잡한 신경과학 연구보다 더 깊은 깨달음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문화와 대중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이 책이 다소 낯설지도 모른다. 과학적 배경지식보다는 영화배우 멜 깁슨을 알고 있거나 영화 트루먼 쇼를 본 경험이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일례로 야구 경기에서 타자의 무의식이 통제권을 가질 때 홈런 확률이 높아지는 반면, 의식적으로 타격을 조절하려 들면 오히려 방해되는 경우를 설명한다. 이런 비유 덕분에 독자는 개념을 쉽게 이해하고 정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따금 일부러 유머를 의식한 농담이나 부차적인 내용 때문에 과학적 논점이 흐려지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신경과학의 세계를 깊이 탐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안내자다. 저자는 야심 차게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기존의 질문보다 더 많은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때때로 책의 흐름이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독자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하고 배울 기회를 얻는다. 책을 읽은 다음 누군가는 매일 스도쿠를 풀며 인지 예비 능력을 키우려 들 수도 있겠고, 또 다른 누군가는 책에서 소개한 착시 현상을 활용해 자신의 시각적 수용체를 실험해 볼 수도 있겠다. 어떤 방식이든, 이 책은 독자에게 값진 통찰을 선사할 것이다.

 

#RHKorea #무의식 #뇌과학 #인지과학 #한달한권할만한데 #온라인독서모임 #데이비드이글먼 #두뇌회로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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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 - 중세부터 현재까지 혼자의 시간을 지키려는 노력들
데이비드 빈센트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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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데이비드 빈센트가 저술하고 한국어로 번역된 이 책은 '프라이버시'(사생활 또는 사적 자유)라는 개념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탐구한다. 그는 프라이버시가 단순히 현대 사회에서 법적 또는 기술적 문제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문화적·정치적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해 온 개념임을 강조한다. 또한, 이 책은 개인주의가 비교적 일찍 발달하고 자리 잡은 유럽인의 시각에서 서술되었으므로 동양 사회와의 근본적인 배경 차이를 염두에 두고 읽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때때로 옛날에는사람들이 사생활을 필요로 하지도, 원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몰랐을 것이라는 다소 막연한 주장과 마주하곤 한다. 중세 시대 사람들은 모두 같은 침대에서 자고, 같은 화장실을 사용하며, 같은 식탁에서 식사했고, 이러한 생활 방식 외에는 다른 대안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적어도 17세기 무렵까지는 사생활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가정하는 셈이다.

 

그러나 영국의 극작가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의 희극을 보면 이러한 가정이 얼마나 부정확한지 알 수 있다. 초서의 이야기에는 은밀한 행위, 닫힌 창문, 남편이나 관리, 도덕주의자들의 감시를 피하려는 시도가 곳곳에 등장한다. 이러한 잘못된 가정을 바로잡으며, 중세부터 시작해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촉발된 디지털 소통과 국가 감시에 대한 현대적 논란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사생활의 개념과 그 실천 방식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설명한다.

 

저자는 프라이버시 개념을 크게 세 가지 축에서 고찰한다. 첫째는 물리적 공간의 프라이버시로서 가정과 개인적 생활의 보호 문제이고, 둘째는 정보와 소통에서의 프라이버시로서 통신 기술의 발전과 함께 변화해 온 비밀 유지와 검열의 문제이며, 셋째는 법적·정치적 차원에서의 프라이버시로서 정부와 사회가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거나 침해해온 역사적 사례를 제시한다.

 

프라이버시는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화해 왔다. 17~18세기에는 사적 공간 개념이 귀족과 상류층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산업혁명 이후 도시화와 함께 일반 대중에게도 프라이버시 개념이 확대되었다. 20세기에는 법적 보호가 강화되었으며, 21세기 디지털 환경에서는 개인정보 보호와 감시 문제로 논의가 확장되고 있다. 특히 19세기 산업혁명과 도시화 과정에서 프라이버시 개념이 크게 변화했으며, 20세기 들어서는 법적·기술적 요소가 결합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논의가 이루어졌다는 점을 강조한다.

 

프라이버시의 개념은 근대 이전에도 존재했으나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방식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중세 시대에는 개인의 생활이 공동체 속에 깊숙이 녹아 있었으며, 현대적인 의미의 사적 공간 개념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17~18세기에 들어서면서 개인의 사적 영역을 보호하려는 인식이 확대되었으며 법률과 건축 양식, 가정생활의 변화 속에서 구체화되었다.

 

산업혁명은 프라이버시 개념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도시화와 공장 시스템의 확대로 인해 많은 사람이 좁은 주거 공간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개인적인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 이 시기에는 신문과 대중매체가 발전하면서 공인(公人)과 사인(私人)의 구분이 더욱 명확해지는 동시에, 사생활 침해 문제도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이 책은 사생활의 역사를 단순한 선형적 발전 과정으로 설명하는 대신, 시대별로 사생활 개념이 얼마나 급격히 변화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어떤 시대에는 사생활 개념이 점진적으로 발전했지만, 특정한 순간에는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 공적·사적 공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뒤바꾸기도 했다.

 

도입부의 역사 기록은 특히 흥미로우며, 우리가 흔히 아는 사생활 개념에 대한 역사적 가정을 무너뜨린다. 17세기까지도 다목적으로 사용되는 방이 많았고 방 한 칸이 여러 기능을 수행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와 동시에 사적인 공간과 개인적인 영역에 대한 필요성이 점차 발달했다. 특히 침실의 중요성이 점차 커졌고 침대를 개인적인 공간으로 인식하면서 이에 대한 지출이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는 18세기와 19세기를 거쳐 20세기식 사생활 개념으로 발전해 나갔다. 세기마다, 그리고 한 세기 내에서도 사생활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연관된 개념은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했다.

 

그러나 과거에도 현재와 똑같이 한 가지 변함없는 사실이 있었다. 사생활은 돈이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는 점이다. 충분한 재산이 있다면 편지를 보관할 가구, 손님과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개인 방이나 정원, 하인들을 위한 별도의 숙소, 자녀들을 위한 개별 방, 두꺼운 벽 등을 마련할 수 있었다. 물론, 실내 화장실과 욕실이 있어 개인적인 위생 활동도 방해받지 않고 수행할 수 있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실내 화장실을 갖춘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사치가 아니었다.

 

사생활의 역사에서 명확한 단절점 중 하나는 1960년대 중반부터 사생활이 종말을 맞이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1969년경부터 이미 사생활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선언이 있었는데, 이는 현대 도시 생활에서 감시 기술이 향상하면서 비롯된 현상이었다. 저자는 현대 사례들을 활용하여 정체성이 더 이상 사적이고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개방되고 접근 가능한 대상으로 간주되는 경향을 탐구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사생활 개념은 단순하지 않으며 다양한 모순과 복잡성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에게 당신 집 주변 다섯 가구에서 가정폭력이 정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면 이를 알 수 있다고 확신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에 대해 단 6%만이 그렇다고 답했는데, 이는 감시가 반드시 안전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특정한 형태의 사적 공간은 여전히 침투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스노든, 페이스북, 그리고 디지털 소통 방식에 대한 강력한 논의를 제시하면서 인터넷이 조직화되고 중앙집중화되어 있다는 믿음에 대해 설득력 있는 반론을 제기한다. 그는 감시의 거미줄 중심에 모든 것을 아우르는 단일한 지성이 존재한다는 신화를 지적한다. 이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빅 아더(Big Other)’ 개념을 연상시킨다.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감시하는 전지적 존재가 있다고 상상하며 행동을 조정하는데, 스노든이 NSA를 푸코적 판옵티콘(panopticon)’이라고 언급한 것은 이러한 가정을 정확히 보여준다. , 모든 정보를 수집하는 전지적 감시의 눈이 우리의 삶을 매순간 들여다본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한 현실을 보여주는데, 사생활의 문제는 과거에도 마찬가지로 복합적이었다는 점이다. 15세기부터 존재했던 서간 불안(epistolary anxiety)’, 즉 개인적인 편지나 글이 잘못된 사람의 손에 들어갈 것을 두려워하는 감정을 언급한다. 결국, 소통이란 언제나 우리 통제 밖에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의 논지는 예상치 못한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는 사생활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왜곡된것이라고 주장한다. 다층적인 디지털 소통과 무수한 메시지와 정보의 범람 속에서, 여전히 개인 간의 사적인 접촉 방식은 존재하며 이는 국가의 감시 시스템이나 NSA, 타인의 시선 등에 의해 노출되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방식으로 사적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사생활은 여전히 사생활로 남아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책은 프라이버시의 역사적 변화를 잘 정리하고 있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첫째, 현대 디지털 환경에서의 프라이버시 문제를 다루는 부분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인터넷과 데이터 보호 문제를 언급하면서도 최근의 AI 기술 발전과 그에 따른 프라이버시 위협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논의를 제공하지 않는다. 예컨대 대규모 데이터 수집과 알고리즘을 통한 개인정보 활용 문제, 국가 차원의 감시 시스템 확대 등이 현대 프라이버시 논쟁에서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비교적 간략하게 다뤄진다. 둘째, 프라이버시 개념의 변화가 주로 서구 중심의 역사적 사례를 통해 설명되기 때문에, 아시아나 다른 지역의 프라이버시 개념 변화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 하지만 사생활의 역사적 흐름을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유익한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특히 사생활이 시대적 변화 속에서 재구성되는 방식을 분석함으로써 현재와 미래의 프라이버시 문제를 고민하는 데 중요한 역사적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주로 영국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되었지만, 사생활의 역사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므로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읽어볼 것을 추천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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