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철학 필독서 50 - 플라톤부터 마이클 샌델까지 2500년 철학 명저 50권을 한 권에 필독서 시리즈 2
톰 버틀러 보던 지음, 이시은 옮김 / 센시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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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톰 버틀러는 철학은 세상을 새롭게 보는 힘이라 정의하며, 이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크게 생각하고, 존재하고, 행위하고, 인식하는 네 가지로 제시한다. 지금 우리에게 철학 필독서가 필요한 이유와 함께 철학 연구의 목적은 사람들이 생각해온 바를 아는 것이 아니라 사물 그 자체의 진실을 아는 데에 두고 있다. 철학서 읽기는 잃을 것은 하나도 없고 얻을 것뿐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세상에는 많은 배울 거리가 있지만, 우리가 관심 가는 모든 분야를 널리 두루 읽을 시간은 매우 제한적이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도록 한 가지 예외를 만들어 낸 책이 있다. 이 책의 저자 톰 버틀러가 그 어려운 일을 해낸 덕분에 보상은 우리가 받게 되었다. 그가 저술한 경제, 정치, 자기 계발 등 50권 시리즈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은 독자들에게 해당 분야에 대한 훌륭한 개요를 제공한다. 독자들에게 더 많은 독서를 위한 안내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각 저자의 주요 내용을 식별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보드리야르, 시몬 드 보부아르, 베르그송, 다비드 봄, 노암 촘스키, 푸코, 마이클 샌델, 슬라보 지젝 등 이 책에 언급된 사상가들의 이름은 모두 오랫동안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 이들의 생각을 내 삶을 통해 제대로 체화해본 적은 없다고 고백한다. 고등학생 때는 시험 대비용으로 무조건 암기해야 했던 내용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졸업 이후 수십 년의 사회생활을 통해 생긴 정신력의 군살 그리고 향상된 대인 기술과 함께 그들의 철학이 무엇인지 몸으로 배운 이후 다시 접하게 되니 살짝 설레기까지 한다.

 

철학자들과 그들의 작품에는 거의 문외한이나, 들어 본 풍월은 있어서 노암 촘스키, 대니얼 카너먼, 마이클 샌델에게로 먼저 눈길이 향한다. 우선, 영어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접해보았을 변형생성문법 이론으로 유명한 노암 촘스키는 엄밀히 말해 철학자가 아니면서도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빅 브러더 정책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존경받는 뛰어난 언어학자다. 철학적 원론을 논하기보다는 철학적 정책이 현실 세계에서 실현되도록 앞장서는 모습이 실천하는 지식인의 표상이 아닌가 싶다.

 

우리 사회에서 진짜 권력은 정치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민간경제에 있습니다. 무엇을 생산하고, 얼마를 생산하고, 무엇을 소비하고, 투자를 어디에 하고, 누가 일자리를 가져가고, 누가 자원을 통제하는 등등의 중요한 결정을 민간경제가 하고 있는 겁니다. (134)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은 실제로 생각이 시스템 1과 시스템 2로 이원화되어 두 시스템이 개별적이면서도 서로 연계 및 상호작용한다고 설명하였으며, 심리학 연구가 우리의 사고 및 행동양식을 변화시키는 데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결론으로 강렬한 흥미를 일으키는 작품이다. 또한, 노력의 비교 격인 노오력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최근 명성을 얻은 마이클 샌델 교수의 공정하다는 착각은 우리 사회에 가져온 부정적 영향을 설득력 있게 펼쳐놓았다. 본래 능력주의라는 말은 1950년대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주창한 것으로, 능력이 있든 없든 능력주의가 오히려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할 것을 예견하였으며 실제 지금 우리는 그 병폐 속에 살고 있다. 단순한 경제인으로 살 것인지 아니면 시민 사회의 일원이 될 것인지를 다시 묻고 있어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우리는 정면의 책상 위에 램프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믿게 되는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애인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 있음을 어떻게 감지하는가? 길에서 거칠게 달려드는 자동차를 어떻게 의식도 하기 전에 가까스로 피하는가? 이런 이유는 아무리 추적해도 알아낼 수가 없다. 인상과 직관과 많은 결정을 만들어 내는 정신작용은 머릿속에서 조용히, 자신도 모르게 진행된다. (252)

 

일반적으로 철학 서적은 오래된 고전 작품에 초점을 맞춘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이 책에 등장하는 작품들의 특징은 우선 최근 21세기 들어 세간에 유명해진 것이 꽤 많다는 점이다. 이로써 철학이 명백히 과거의 유산이라는 인상을 지우는 데 일조하고 있다. 또 다른 측면은 샘 해리스나 니콜라스 탈레브처럼 실제로 철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몇 명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철학자로 분류되어 그 집단에 포함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떠나 이런 점은 작가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성향으로 느껴진다. 저자의 글솜씨 자체도 훌륭하고 전반적인 내용이 아주 잘 요약되어 있어 이해하기 어려운 작가는 단 한 명도 없다. 작품 당 읽을 분량은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으며 꼭 필요한 내용 위주로 언급하여 좋은 균형감을 보인다.

 

서문에서 저자도 인정하듯 유일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바로 철학자들이 알파벳 순서로 나열된 구성이다. 연대순으로 나열되는 일반적인 조합보다는 주제별 목록을 선호하는 편이라, 작가가 나름 고전적 범주를 피하고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려 한 것으로 이해된다. 본문에서는 각각의 고전 작품에 유명한 인용구 한두 개가 인용되고, 이어 한 문장으로 된 저자 소개와 본문 끝의 더 알아보기 보너스 및 유사한 맥락에서 읽을 만한 다른 책들의 목록이 뒤따른다. 작품의 요약본은 저자의 간략한 전기를 포함하여 평균 일곱 장 분량으로 읽기에 매우 적절하다. 독자들이 단 몇 분의 여유만 할애하더라도 필독서 한 권을 알 수 있도록 이상적으로 구성되었다.

 

세상을 읽어내는 통찰력을 얻기에는 철학책이 제격이라 하나, 사실 단 한 권의 철학책이라도 제대로 읽어 자기 수준으로 내용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철학 분야에 관심이 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이 책이 안성맞춤이겠다. 모르긴 해도 책장에 보관해두고 다양한 세상일을 겪을 때마다 틈틈이 꺼내 읽는 방법이 매우 마땅할 것 같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대단히 괜찮은 철학 입문서이다. 책의 전체 길이와 일부 철학자들의 깊이로 보아 지금까지 가장 쉬운 철학 안내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가벼운 중급' 읽을거리라 하겠다. 철학자와 그의 대표 작품에 대해 최소한 들어본 척은 보장해줄 것이다. 독자에게는 아주 사소한 경험이 될지는 몰라도, 특정한 주요 작품에 중점을 두고 매우 광범위하고 즐거운 철학으로의 여정을 원한다면 훌륭한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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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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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철학 필독서 50 - 플라톤부터 마이클 샌델까지 2500년 철학 명저 50권을 한 권에 필독서 시리즈 2
톰 버틀러 보던 지음, 이시은 옮김 / 센시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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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주요 작품에 중점을 두고 매우 광범위하고 즐거운 철학으로의 여정을 원한다면 훌륭한 선택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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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 가성비의 시대가 불러온 콘텐츠 트렌드의 거대한 변화
이나다 도요시 지음, 황미숙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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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지하철로 출근하다 보면 심심찮게 다른 사람들이 쓰고 있는 스마트폰을 곁눈질하게 된다. 젊은 층일수록 웹툰이나 드라마를 보는 경우가 많은 듯한데, 특이한 것은 누구 할 것 없이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그러나 의외로 이 책의 저자가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발견한 빨리 감는콘텐츠 시청 습관은 크게 눈이 뜨이지 않는다. 실제 20대 초반의 자녀들에게 n배속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하느냐 물었더니 도리어 왜 그래야 하냐 되물으며 자신들은 강의 동영상 이외에는 정주행을 선호한다고 답한다.

 

일단은 약간의 낭패감부터 맛본다. 젊은 층이라고 해서 모두가 유행에 민감하지는 않을 수 있음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적어도 일본인 저자의 시각으로 볼 때 일본에서는 매우 일반화된 현상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난 것일까? 저자는 매우 다양한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영상 플랫폼에서 기술적으로 빨리 감기 기능이 제공되기에 가능해 졌고,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콘텐츠를 일일이 감상할 여유가 없으며, 정액제로 구독하기 때문에 가능해진 관행이며, 마음에 드는 강렬한 장면만을 모아 보는 게 피곤한 감정 읽기보다 훨씬 편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집중력 없이 대충 보았다 하더라도 한 번 더 보면 그만이고, 영상을 보고 싶다가 아닌 알고 싶다는 자극을 충족하면 또 그만이다. 이들 소비층은 특정 감독이나 작가의 팬이라기보다는 작품의 내용에만 치중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누구의 작품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작품을 올바로 이해하는 정석적인 접근법 보다는 잘못 해석하는 것조차도 관객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개인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기기가 스마트폰 하나로 다 해결되어 그 편리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실제 인터넷에만 연결되면 불가능한 일이 손에 꼽힌다. 음식 주문이나 식당 예약부터 항공기 이용과 여권 발급에 이르기까지 거의 무소불위다. 모든 것이 편리하니 굳이 불편을 감수해야 할 필요성마저 무뎌진다. 깊고 좁은 전문성에서 넓고 얕은 대중성으로 시대의 척도가 이동하고 있다. 이 같은 현대적 소비 성향은 리퀴드 소비로 지칭되며 세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소비되는 기간이 짧고 다음 소비로 금방 이동하며 둘째, 액세스 베이스로 대여나 공유처럼 물건을 소유하지 않으며 셋째, 같은 정도의 기능을 얻는다면 물질을 덜 소비한다.

 

각각의 특징에 대하여 아마도 저자는 일본인들의 속성을 잘 발견해 낸 듯한데, 과연 한국의 소비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다. 세계적인 사조라고 해서 반드시 우리 경우와 일치한다는 법은 없을 테지만, 어쨌든 빨리 감기라는 추세의 핵심은 매우 잘 짚어내고 있다. 예컨대 콘텐츠를 구독하거나 소비하는 추세는 분명히 인정할 만하지만, 타인과의 대화에 끼기 위하여 시간을 아껴 시험공부 하듯 콘텐츠를 소비한다는 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영상물 시청을 빨리 감고 건너뛰는 습관이 현대사회에 나타난 이유로 영상 작품의 과다 공급, 바쁜 현대인의 시간 가성비 지향성, 모든 것을 대사로 설명해주는 영상 작품의 증가를 들고 있다. 또한, 원인의 배경으로는 영상 공급 미디어의 다양화 및 증가, SNS로 공감을 강요당하고 개성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위기의식, 그리고 얕은 감상이 많아지면서 알기 쉬운 것이 추구되는 흐름을 들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에는 일찍이 2000년대 인터넷이 등장하면서부터 서서히 기술적 토양이 준비되어 온 셈이다.

 

저자가 콘텐츠를 시청하는 습관을 주제로 최근 인류의 생활 양상에 변화를 가져온 원인을 날카롭게 파헤친 데 대해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한편, 이는 단지 일본만의 현상이 아닐 것이라 여겨진다. 우리나라에서도 누군가는 해 주었으면 싶은 연구 주제이기도 하다. 비록 대동소이한 결과가 예측되기는 하지만 그 차이는 매우 흥미로울 것 같다. 일본과 달리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지도 않고 개인의 취향을 쉽게 무시하지도 않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가 변수로 작용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망해 본다. 이 책을 통해 시간 가성비를 정의로 받아들이는 Z세대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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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에 관한 생각 - 영장류학자의 눈으로 본 젠더
프란스 드 발 지음, 이충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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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프란스 드 발은 평생 유인원, 원숭이, 그리고 영장류 집단과 함께 일해온 영장류 동물학자이다. 자신의 연구 외에도 그는 끊임없이 다른 영장류 학자들과 교류하고 있으며, 전 세계 다양한 서식지를 연구한 결과물을 대중과 함께 나누고 있다. 그는 모든 종류의 영장류들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았고,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그들의 성격, 능력, 활동, 약점, 문화를 발견한다. 영장류는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그들을 연구한 이 책을 읽음으로써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영장류가 다른 많은 종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정보와 가짜 뉴스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진실을 알려주고자 이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우리 인간종은 다른 영장류에 비해 언어와 몇 가지 다른 지적 이점을 갖추고 있지만, 사회 정서적으로는 철저하게 영장류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우리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할 점은 자연은 항상 틀리는 법이 없으며,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동물들이 현재의 능력과 재능에 따라 환경과 군집에 적응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의 눈에 비친 그들의 차이점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예컨대 일부 과학자들은 침팬지들의 공격성을 심하게 비난하는 한편 보노보의 여성성을 비웃기 좋아한다. 이것은 인간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자연이 성별에 따라 차이를 부여한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경향은 젊은 수컷에게는 왕성한 에너지와 거친 주거 환경으로, 젊은 암컷에게는 인형, 유아, 아기 돌보기에 대한 이끌림 등으로 나타난다. 이 전형적인 성별 차이는 쥐, , 코끼리에서 고래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포유류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뚜렷한 성별 차이조차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성별은 적어도 인간들 사이에서 성에 대한 일종의 문화적 중첩이다. 일반적으로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은 모든 사람에게 양도와 교환이 불가능한 측면이다. 성역할(gender)은 문화적으로 할당되지만, 타고난 성(sex)은 양식으로 할당된다. 그들은 선택할 수도 없고, 비이성적이지도 않고, 치료로도 되돌릴 수 없다. 몸속에 숨은 성 정체성을 발견하더라도 그것을 자연적으로 극복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며 약물과 수술 등의 외압을 겪어야 한다. 미국만 해도 인구의 약 1%, 즉 최대 2백만 명의 인구가 이 트라우마를 겪는다. 가장 큰 어려움은 이것이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사람의 게놈은 성적 지향성을 말해주지 않는다.

 

저자는 침팬지를 대상으로 한 장난감 실험에서 어린 수컷들은 항상 밀고 끌 수 있는 바퀴 달린 장난감을 선택하는 반면, 어린 암컷들은 들고, 껴안고, 돌볼 수 있는 인형을 선택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심지어 어떤 어린 침팬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만의 상상 속 장난감을 발명하고 가지고 노는 것이 관찰된다. 이것이 상상력을 지닌 영장류에게 비정상적인 행동은 아니다.

 

저자는 인간의 아기들이 부모가 원하는 어떤 성별로도 성형될 수 있는 빈 서판(tabula rasa)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어 한다. 지속적인 훈련, 디프로그래밍, 호르몬 치료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없으며, 그와는 다르게 믿었던 사람들의 사례로부터 많은 증거를 확보했다. 아이들에게 성별 선호도에 따른 장난감을 강요하거나 성별을 의식한 장난감은 부적절하다고 말한다. 그는 장난감 가게의 성별 구분법이 사라지고,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을 존중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염원한다.

 

유인원은 인간 못지않게 본능적이지만 본능 역시 학습이 필요하다. 영장류는 상대를 평가하고, 성격을 가정하고, 필요에 따라 상대를 조종하는 오랜 학습 과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인간만큼 계산적이고 정치적이다. 예컨대 모성애의 모든 복잡하고 어려운 측면은 선천적인 것이 아닌 학습의 결과이다. 나이 든 암컷들은 어린 암컷들이 유능한 엄마가 되도록 훈련하며, 공동체는 이들을 돕는다. 저자는 무리와 격리되어 성장함으로써 자연히 유능한 돌보미가 되지 못했던 침팬지의 예를 들면서, 출산과 육아 과정도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빠 침팬지의 경우, 새끼의 출생은 그들의 옥시토신 수치를 증가시키고 테스토스테론을 감소시켜 육아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 실험 결과, 암컷과 한 방에 있을 때 수컷은 암컷에게 거의 전적으로 양육을 맡기지만, 암컷이 없는 상태의 새끼들과 함께 있을 때는 수컷이 양육 의무를 자동으로 대신하게 된다. 저자는 이것이 우리 종의 생물학적 특성의 일부분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의 세계에서도 일상적으로 속임수가 일어난다. 질투, 권력 암투, 훈련, 양육, 자리매김, 그리고 섹스가 있으며 순서는 상관없다. 콩고강 건너에 사는 침팬지의 사촌인 보노보는 훨씬 덜 호전적인 사회로 진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침팬지가 싸우는 곳에서 보노보는 짝짓기를 한다. 이들은 비교적 주의 깊고, 책임감이 있으며, 공동으로 양육하고, 위계적이다. 바람기가 더 많고 짝짓기에 훨씬 더 적극적이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침팬지 무리는 알파 수컷이 이끄는 반면 보노보 무리는 알파 암컷이 이끈다. 알파 수컷이 젊고, 강하고, 모험심이 많다면 알파 암컷은 나이가 많고, 현명하고, 인기가 있다. 알파 수컷이 언제 전복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위협적으로 무리를 통치하는 반면, 알파 암컷은 암수 모두에게 완전한 존경을 받으며, 평생 우두머리 노릇을 한다. 무리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느냐, 아니면 동맹을 맺느냐 극명한 방법상의 차이를 보인다.

 

포유동물들 사이의 성의 진정한 기능에 대해, 저자는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아는 유일한 존재는 인간이라고 말한다. 유인원, 고양이, 고래, 설치류 중 어느 종도 그것이 알을 수정시키는 정자를 옮겨 임신과 신생아 출산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알지 못한다. 인간조차도 이 과정을 알고 후대에 교육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짝짓기의 일차적 의미는 집단의 번식을 위한 추진력이다. 만약 동물이 그 추진력을 가지고 있다면, 매번 의식적으로 성관계를 하려 노력할지도 모른다.

 

보노보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짝짓기는 집단 전체를 위한 것이다. 결과야 어떻든 보노보는 하루에도 수없이 갖은 방법으로 섹스를 하는 것으로 가장 유명하다. 의도적인 생식 이외의 모든 성행위를 억제하려는 것은 오직 인간의 종교뿐이다. 동물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저자는 섹슈얼리티가 다른 영역에서는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 헌신과 분노로 지켜지는 금단의 열매라고 말한다.

 

알파 수컷의 암컷에 대한 지배적인 소유권에도 불구하고, 암컷들은 다수의 파트너를 가지고 있다. 새끼가 태어나면, 많은 수컷은 최근 몇 달 동안 암컷과 가까이 지냈기 때문에 자신이 아빠일지도 모른다고 느낀다. 이는 수컷이 잠재적 경쟁자가 될지 모를 영아 살해를 방지하고 다른 수컷이 곁에 있을 때 흥분을 진정시키는 장점이 있다. 이는 암컷에게 훌륭하면서도 매우 위험한 전략이다. 왜냐하면 다른 수컷과 함께 있는 순간을 알파 수컷에게 들킨다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 사회에서 강간과 같은 매우 구체적인 행동이 유전되기에는 인간 종이 너무 느슨하게 프로그램되어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강간은 상황의 결과이며 인간 남성에게 내재한 본성이 아니므로 남자들을 잠재적 강간범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자연 선택이 강간을 선호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남성은 자신을 성적 포식자로 만드는 유전자 코드를 가져야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게다가, 강간범들은 그들의 유전자를 퍼뜨리려고 해야 할 터인데, 이 역시 그렇지 않다. 강간은 이제 일반적으로 생식이 아닌 폭력 행위로 평가된다. 그리고 말할 필요도 없이, 동성애자 강간은 분명히 생식의 범위를 벗어난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이 모든 질문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들의 조상들을 방문할 것이고, 요술 거울이 말해주지 않는 한두 가지 요령을 배울 것이다. 성과 성별은 엄연히 다르면서도 한편으로 평등하다. 이들은 삶에서 맡아야 할 특정한 역할을 가지고 있으므로 유연성이 매우 제한되거나 역할이 중첩되기도 한다. , 그럼 성과 성별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 저자가 이처럼 다루기 까다롭고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다룬 데 대해 우선 찬사를 보낸다. 이 책에서 다루는 가장 중요한 발견물 세 가지를 추려본다.

 

첫째, 신중한 정량 분석의 결과 유인원 무리는 생각처럼 수컷이 이끄는 것이 아니며 암컷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암컷과 수컷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한다. 수컷은 체격이 크고 힘이 세 물리적 우위를 차지하는 반면 암컷은 정치적으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닌다.

 

둘째, 알파 수컷은 가장 크고 강하지만 예상과 달리 가장 비열하지 않다. 오히려 알파 수컷은 음식을 나누어 먹는 관대함과 친구나 친척을 편애하지 않는 공평함을 보여준다.

 

셋째, 과거 우리의 유인원 조상대한 대중적인 설명은 공격적이고 크고 시끄러운 수컷이 특징인 침팬지 사회에 치중되었으며, 평화로운 암컷이 주도하는 보노보 사회를 무시해왔다. 인간은 이들 두 집단과 거의 동등하게 가까운 사이이며, 진화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잘못 이해하도록 이끌어온 오류 가운데 하나이다.

 

성은 생물학에 의해 주도된다. 거의 예외 없이 우리는 한 가지 성으로 태어나며, 성별 사이에 논란의 여지가 없고 잘 확립된 해부학적, 생리학적, 호르몬적 차이를 가지고 있다. 반면, 성별은 더 복잡하고, 심리적이고 사회적이다. 성별은 한 성별 또는 다른 성별과 동일시하는 주관적 경험이나 성별이 사회에서 채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회적 역할과 행동을 모두 지칭할 수 있다. 흥미로운 질문은 성 역할과 경험이 생물학 대 문화(유전학 대 환경)에 의해 어느 정도 형성되는지이다. 여기에 논란의 여지가 있고, 어느 한쪽의 상대적 영향력을 평가하는 것은 대부분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다. 우리가 아마도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어느 방향으로든 극단적인 견해를 밝히는 사람들은 거의 확실히 틀렸다는 것이다. 우리의 행동이 전적으로 생물학적 판단을 따르지는 않는다. 그들은 주로 생물학으로 유리한 사회 역학을 합법화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행동도 완전히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며, 각 성의 선천적 선호에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선천적인 차이점들은 무엇이며, 문화가 아닌 생물학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본질적으로 어떤 행동이 선천적이며 생물학에 의해 주도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데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으며 이러한 영향을 무시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첫 번째는 행동적 보편성을 찾기 위해 다양한 인간 문화를 비교하는 것이다(문화인류학). 두 번째는 아직 문명화되지 않은 유아와 어린이의 행동을 연구하는 것이다(발달 심리학). 세 번째는 인간의 행동을 우리의 가장 가까운 진화적 사촌인 침팬지와 보노보(영장류 동물학)와 비교하는 것이다. 이들 행동 평가 방법을 탐구함으로써, 어떤 요소들이 문화적 변형에 더 저항적으로 보이는지 알 수 있다. 저자는 분명히 세 번째 접근법을 선호하지만, 이 책에서 그는 위에 언급한 세 가지 방법을 어느 정도 활용하며, 동시에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생물학이 주도하는 성별들 사이에 사실 몇 가지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꽤 설득력 있게 증명하고 있다.

 

첫째, 저자는 현재 우리의 정치적, 도덕적 실패를 정당화하거나 여성 혐오에 관여하기 위해 생물학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에게 생물학적 경향이나 선호가 사회의 특정 부분에 불공평한 불이익을 줄 때 이러한 경향이 우리의 생물학적 경향이나 선호도를 무시할 수 있고, 종종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생물학의 포로가 아니며, 우리의 철학적 차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생물학을 사용할 수 없으며, 또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특히 한 성별이 다른 성별에 대한 예속과 관련될 때는 더욱 그렇다.

 

둘째, 그는 영장류 행동에 대한 최근의 이해는 특히 보노보에서 여성들에게 더 두드러진 역할을 보여주며, 남성 우위의 인간 문화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대체로 사회적 구성이라고 지적한다. 침팬지가 남성 지배적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음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여성 지배적이고, 평화롭고, 성적으로 자유로운 보노보들과 그만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때 이 집단을 인간 행동의 본보기로 삼아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다.

 

셋째, 저자는 자신을 페미니스트이지만 전형적이지 않은 유형이라고 묘사한다. 여성들은 남성들이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일을, 그리고 어떤 직업에서는 남성들보다 더 잘하며 동등한 기회와 급여를 줘야 하지만, 그것이 일부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이 추측하듯 남자들이 본질적으로 사악하고 열등하거나 혹은 서열이 낮아서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백인 남성이 사회에서 지위나 지위를 잃는 것을 걱정하지는 않지만, 남성이든 여성이든 한 성이 본질적으로 다른 성보다 우월하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결국, 남성과 여성이 서로 존중하고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고, 삶을 흥미롭게 만드는 성별 간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결론을 내린다.

 

비록 이 책이 성과 성별에 대한 우리의 다양한 질문에 만족스러운 답을 제공하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우리 동물 사촌들의 재미있고, 따뜻하고, 때로는 가슴 아픈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유산과 수유 부족으로 깊은 우울증을 겪고, 무리로부터 뒤처진 암컷 침팬지에게 젖 먹이는 법을 가르친 결과 성공적이고 헌신적인 엄마가 되게 하였다. 그는 또한 아무 연고가 없는 암컷들의 2차 자매결연이 보노보 사회를 어떻게 지배하는지 보여준다. 보노보와 침팬지의 알파 암컷 지도력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물리적 권력과 정치적 권력의 차이를 새롭게 상기시킨다. 그리고 이성애자는 0점을 주고 동성애자는 6점을 주는 킨제이 성적 지향 척도에 대한 독자의 견해가 어떻든 간에, 모든 보노보가 완벽한 3점을 받으리라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끝으로, 이 책의 묘미는 한번 읽게 되면 우리 종족을 더 이상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는 볼 수 없다는 데 있다. 우리의 행동이 얼마나 유전적, 호르몬적, 문화적으로 추동됐는지를 알게 되고, 우리의 현재 지식 상태를 생각하면 이해 불가능할 정도로 거대한 자연의 질서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점은 분명하며, 충분히 용감한 독자라면 밑천이 마르지 않는 토론의 소재로 두 팔 들어 환영해줄 것 같다

 

#과학 #차이에관한생각 #프란시스드발 #세종 #영장류동물학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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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에 관한 생각 - 영장류학자의 눈으로 본 젠더
프란스 드 발 지음, 이충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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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이든 여성이든 한 성이 본질적으로 다른 성에 대하여 우월하다는 오해는 넣어두길 권하는 흥미로운 연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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