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인류 - 인류학의 퓰리처상 ‘마거릿 미드상’ 수상작
마이클 크롤리 지음, 정아영 옮김 / 서해문집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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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주변에서 달리기는 취미를 넘어 하나의 생활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기록을 인증하고 루틴을 공유하며 함께 달릴 사람을 모으는 일이 낯설지 않고, 주말마다 크고 작은 대회가 열리며 도시의 리듬 자체가 달리기에 맞춰 움직이는 듯한 순간도 잦다. 이제 달리기는 왜 달리느냐보다 어떻게 오래, 더 잘, 더 즐겁게 달리느냐라는 지속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이 책은 이런 흐름을 흔히 기대하는 달리기 서적과는 다른 각도에서 비춘다. 훈련법이나 기록 향상 요령을 정리한 안내서가 아니라, 세계 장거리 달리기를 사실상 지배하는 에티오피아 선수들의 삶과 감각을 내부에서 관찰한 생생한 기록이다. 달리기를 기록의 언어가 아니라 문화의 언어로 읽게 만드는 책이다.

 

책의 출발점은 단순하다. 세계 주요 마라톤 대회에서 케냐와 에티오피아 선수들이 늘 선두를 차지하는데, 그 압도적 강세는 어디서 오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를 위해 저자 크롤리는 인류학자로서 15개월 동안 아디스아바바에 머물며 선수들과 함께 먹고 자고 훈련한다. 그는 연구자이면서 동시에 국제 수준의 러너이기에, 관찰자의 거리감과 달리는 몸의 감각을 함께 지닌 채 현장에 들어간다. 새벽 3시 도심 러닝부터 숲 훈련, 산지 캠프와 지역 대회까지 직접 몸을 보탠다. 이 책이 기록 향상서와 갈라지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독자는 숫자와 프로그램이 아니라 달리기가 한 사회 안에서 어떤 믿음과 규칙, 감각으로 구성되는지를 먼저 만나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잘 달리는 비결을 내심 기대하는 독자의 욕망을 교묘히 비껴간다는 것이다. 한국의 러너라면 페이스 전략, 심박 구간, 인터벌, 영양 관리 같은 과학적 용어에 익숙하다. 데이터 기반 훈련이 달리기 문화를 확장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크롤리가 마주한 에티오피아의 달리기는 그런 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힘들이 작동하고 있음을 느낀다고 말한다. 유럽에서는 운동 능력을 개인 내부의 잠재력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지만, 에티오피아에서 에너지는 사람들 사이를 흐르는 것으로 이해된다. 공유되고, 흘러 다니며, 때로는 빼앗길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인식은 곧 훈련 방식으로 이어진다. 혼자 달리기는 건강에 좋지만 변화는 함께 달릴 때 일어난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대열에서 선두를 번갈아 맡는 행위는 단순한 로테이션이 아니라 타인의 부담을 대신 짊어지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누군가의 발을 따른다는 말 역시 기술적 드래프팅을 넘어, 타인의 기세와 리듬을 받아 달리는 행위로 읽힌다. 달리기가 개인의 의지와 체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들의 언어로 구체화된다.


이 대목은 한국의 달리기 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요즘 크루 러닝이 늘어나는 이유는 외로움을 덜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함께 뛰면 페이스가 안정되고, 쉽게 포기하지 않게 되며, 초보자도 달리기의 언어를 더 빨리 배운다는 경험이 널리 공유되고 있다. 기록보다 과정이 오래 남는 날의 충만함,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받쳐주는 집단적 리듬이 달리기에 재미를 붙인다는 사실을 많은 러너가 체감한다. (사실 신호가 꺼져가는 횡단보도조차 뛰어 건너지 않는 사람으로서 이런 표현을 하자니 참 멋쩍다) 이 책은 이런 경험을 단순한 동기부여가 아니라 문화적 실천으로 해석하며, 함께 달리기가 변화를 만들어내는 방식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환경을 대하는 태도도 인상적이다. 에티오피아 러너들에게 장소는 배경이 아니라 거의 동료에 가깝다. 특정 장소를 찾아가며 공기가 특별하다고 말하는데, 이는 고도나 산소 같은 물리적 조건이자 그곳의 분위기와 몸의 감각을 아우르는 표현이다. 그들은 일부러 험한 지형을 찾아 속도를 늦추기도 하고, 재미를 위해 그런 길을 택하기도 한다. 숲에서는 지그재그로 달리며 나무 아래를 숙여 지나가고, 선두가 울퉁불퉁한 땅을 고르기도 한다.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다라는 코치의 말은 이 책의 정서를 압축한다. 달리기는 숫자로 관리되기도 하지만 몸과 타인, 장소가 엮여 만들어지는 경험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 감각은 한국의 달리기 문화에서도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같은 거리를 달려도 강변, 도심, 트랙, 산책로는 전혀 다른 몸의 반응을 만든다. 대회 역시 코스가 곧 이야기이고 장소가 곧 경험이다. 이 책은 어디서 뛰느냐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달리기의 리듬과 태도를 형성하는 조건임을 설득한다.

 

또 하나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달리기는 과학인가, 예술인가이다. 데이터와 장비는 훈련을 분명 효율적으로 만들지만, 숫자가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에티오피아 러너들이 중시하는 것은 경험으로 체화된 감각과 몸이 먼저 아는 지식, 그리고 때로는 합리로 설명되지 않는 신앙에 가까운 믿음이다. 성적이 좋지 않았던 선수가 신은 내가 준비되었을 때를 안다고 말하는 장면은 승패와 기록 중심의 시각을 흔든다. 이는 한국의 달리기 문화가 기록과 인증에 지나치게 매달릴 때, 달리기가 삶을 확장하는 통로인지 아니면 소진의 장이 되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렇다고 에티오피아 러너들을 낭만화하지는 않는다. 순위에 들어 상당한 금전적 보상을 받는 성공하는 소수와 달리 다수는 흩어지고 멈춰 선다. 저자는 그 현실을 끝까지 정중하게 바라보며 하나의 정답으로 꿰어 맞추지 않는다. 달리기 역시 숫자와 원리로만 환원될 수 없다는 사실을 서사의 방식으로 보여주기에 이 책은 더욱 믿음직하다.

 

달리기 유행이 유행을 넘어 문화로 남기 위해서는 깊이가 필요하다. 기록과 감각, 혼자 달리기와 함께 달리기, 효율과 의미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 이 책은 그 균형의 방향을 조용히 가리킨다. 달리기는 개인의 성취이자 공동체의 리듬이며, 과학이자 설명되지 않는 믿음을 품은 행위다. 에티오피아 러너들의 세계는 그 복합성을 선명하게 비추는 거울이다.

 

흔히 공동체의 에너지는 개개인의 에너지를 합친 것보다 크다고 말한다. 에티오피아의 달리기 문화가 그랬다. 선수로서의 삶에 전적으로 헌신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이 있기에, 에티오피아 달리기의 최정상에 오른 선수들이 그토록 압도적 기량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서로의 발을 따라 뛰고, 모범을 보고 배우거나 직접 부딪히며 익히는 과정에서 최고 수준의 달리기를 가능케 하는 건, 관리와 규율은 물론 그 바탕에 있는 호기심과 모험심이었다.” (380)

 

결국 이 책은 동아프리카 선수들은 왜 강한가라는 질문에 시원스레 답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달리기를 이루는 몸, 관계, 장소, 믿음, 불확실성이 어떻게 얽혀 하나의 문화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더 빨라지기보다 더 깊게 달리는 법을 묻는 이 책은, 지금 우리의 달리기 열풍이 삶의 문화로 남기 위해 필요한 질문을 독자에게 조용히 건넨다. 답은 각자의 달리기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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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답할 때 교육은 무엇을 묻는가 - AI가 채우지 못한 교육의 영토
함영기 지음 / 에듀니티교육연구소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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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안내하는 실용서가 아니다. 인공지능이 너무도 능숙하게 답을 생산해 내는 시대에, 교육이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질문은 무엇인가를 묻는 사유의 기록이다. 그 질문은 미래 담론의 언어로 포장되지 않고, 교실이라는 구체적인 공간과 교사라는 현실의 자리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더욱 무게감이 느껴진다.

 

기본적으로 저자의 시각에 깊이 공감한다. 인공지능을 경계의 대상으로만 보지도 않고, 반대로 만능의 해결사로 떠받들지도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학교 현장에서 인공지능의 도입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영어 교사인 나 역시 시대의 변화에 맞춰 AI 기반 영어 학습 프로그램, 자동 첨삭, 생성형 작문 도구를 수업과 평가에서 부분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학생 개별 수준에 맞는 연습 문제를 제시할 수 있고, 반복 학습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효과가 있다. 교사에게도 수행평가 채점이나 세부능력 특기사항 초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도움을 준다.

 

그러나 그 변화의 속도 앞에서 나는 늘 뒤따라가는 위치에 서 있다. 불과 몇 년 전 코로나 시국에 비대면 수업을 위해 줌과 구글 클래스를 배우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새로운 연수가 끝날 즈음이면 또 다른 기술이 등장하고, 익숙해질 만하면 다시 다음 단계가 요구되는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대입 진학을 앞둔 학생들의 영어 과목을 맡아 해마다 바뀌는 교재에 적응해야 하고,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으로 여러 과목을 동시에 준비해야 하는 현실까지 더해지면서 수업 준비의 피로도는 분명히 높아졌다.

 

이 책은 그러한 교사의 불안과 피로를 외면하지 않는다. “이러한 변화의 최전선에 선 이들은 교사들이다라는 문장은 단순한 진단이 아니라, 오랜 시간 교단을 지켜 온 사람에 대한 이해에서 나온 말처럼 느껴진다. 평생 자기의 경험과 축적된 수업 감각으로 아이들과 호흡해 온 교사에게 인공지능은 혁신인 동시에 위협이다. 실제로 수업 시간에 학생이 나보다 먼저 AI에게 질문하고, 더 빠르고 친절한 답을 들고 오는 장면을 여러 차례 마주했다. 그 순간 교사의 말은 느려지고, 설명은 비효율적으로 느껴진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답을 제공하는 존재가 아니라 배움이 일어나는 시간을 지키는 존재로서 교사의 자리를 다시 묻는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교육의 중심이다. 인공지능은 오답의 패턴을 분석할 수는 있어도, 학생이 답을 적지 못한 채 멈칫거리는 이유까지 이해하지는 못한다. 영어 문장을 쓰다 말고 연필을 내려놓는 침묵, 발표를 앞두고 시선을 피하는 불안, 정답은 맞혔지만 이유를 설명할 자신감이 없어 고개를 숙이는 학생의 마음은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는다. 학습을 포기하게 되는 순간의 심정, 그리고 그런 학생을 바라보는 교사의 안타까움까지 인공지능이 대신 헤아릴 수는 없다. 영어를 포기한 학생들이 여전히 다수인 교실에서 그런 장면을 수없이 지켜봐 온 교사에게, 이 책은 교육의 본질이 여전히 관계와 기다림에 있음을 교사에게 다시 돌려준다.

 

특히 33화에서 언급한 정답을 주는 AI, 질문을 잃은 교실이라는 문제의식은 지금 영어 수업의 현실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생성형 AI는 언제든 유창하고 세련된 영어 문장을 만들어 낸다. 학생들은 더 이상 서툰 문장을 붙잡고 씨름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 편리함의 이면에는, 틀린 문장을 고치며 배우던 시간과 어색한 표현을 두고 웃음이 오가던 교실의 풍경이 사라질 위험도 함께 존재한다. 사람은 원래 실수를 반복하며 배운다. 틀리고, 고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배움은 서서히 단단해진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기다림의 교육학은 느린 교실을 미화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배움이 실제로 일어나는 시간을 지키기 위한 분명한 선언이다.

 

이 책의 독창성은 내용뿐 아니라 형식에서도 드러난다. 저자는 장미라고 이름 붙인 인공지능과 실제로 대화하며 글을 써 내려간다. 인공지능의 제안을 그대로 수용하기보다 때로는 거부하고 수정하며 자신의 언어를 끝까지 밀고 간다. 이 과정은 단순한 실험이 아니라 하나의 메시지다. 인공지능과 함께 일하되 판단과 선택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있어야 한다는 점을 서사적으로 증명한다. 이는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 그리고 AI가 맺어야 할 관계에 대한 하나의 모델처럼 읽힌다.

 

50대 교사로서 나는 여전히 새로운 기술 앞에서 서툴다. 연수 자료를 따라가다 보면 내가 가르치는 사람인지 배우는 사람인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며, 느리게 따라가는 교사의 역할이 분명히 남아 있음을 느낀다. 모든 기능을 완벽히 익히는 사람이 아니라, 속도를 조절하고 질문의 방향을 잡아 주는 안내자로서의 역할이다. 인공지능 도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그 도입의 이유와 방식에 대해 끝까지 묻는 사람으로 남는 일이다.

 

저자의 교육 전문가로서의 깊은 이해와 통찰이 돋보이는 이 책은 미래 교육의 청사진이나 인공지능 활용 팁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교사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던져야 할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가르치는가, 이 교실에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인공지능이 점점 더 많은 답을 내놓는 시대일수록, 그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교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 책은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한다. 이 책을 덮으며, 나 역시 느리게 걷더라도 그 질문만은 끝까지 붙들고 있는 교사로 남고 싶다고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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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 세상의 모든 변화를 결정하는 인구의 경제학
딘 스피어스.마이클 제루소 지음, 노승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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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은 우리가 오랫동안 너무도 당연하게 믿어 온 인구 이야기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세계 인구가 계속 늘어서 언젠가 100억 명을 넘을 거라는 통념 대신, 머지않아 정점을 찍고 빠르게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유는 단순하지만 충격은 가볍지 않다. 전 세계 출산율이 점점 인구수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아래로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저자들의 계산은 놀라울 만큼 직관적이다. 만약 전 세계 평균 출산율이 유럽처럼 여성 한 명당 1.5명 수준으로 떨어진다면 한 세대 뒤 태어나는 아이 수는 지금의 연간 약 13,200만 명에서 9,900만 명으로 약 25% 줄어든다. 이 흐름이 일곱 세대만 이어져도 세계 인구는 지금보다 약 87% 감소한다. 이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이면 인류의 80%는 이미 태어났고, 앞으로 태어날 사람은 약 300억 명뿐이라는, 거의 멸종에 가까운 결론에 도달한다.

 

이 이야기가 너무 과장되게 들린다면 저자들은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보라고 말한다. 지금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2 이상이 출산율이 낮은 나라에서 살고 있고, 4분의 1은 출산율이 1.25도 안 되는 국가에 살고 있다. 한 번 출산율이 1.9 아래로 떨어진 나라는 다시 올라오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이런 현상은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세계 평균 출산율이 이미 유지선 아래로 내려갔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추정치일 뿐이라 하더라도 이 흐름의 방향만큼은 가볍게 넘길 수 없다.

 

82억 명이 넘는 인류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인구 과잉이라는 말에 익숙하다. 기후위기 뉴스와 꽉 막힌 출근길을 떠올리면 인구 증가는 부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대비해야 할 위험은 인구 과잉이 아니라 급격한 감소. 지난 200년 동안 태어나는 신생아 수는 장기적으로 줄어들어 왔고 이미 절반이 넘는 나라에서 출산율은 유지선 아래로 내려갔다. 그동안은 사망률, 특히 영아 사망률이 크게 낮아지면서 인구가 계속 늘었지만 이 흐름도 언젠가는 정점을 찍고 급격한 하락으로 바뀔 수 있다. 원서 제목에 들어간 스파이크(spike)’는 바로 이 최고점과 그 뒤에 이어질 급락을 뜻한다.

 

저자들의 핵심 주장은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사람이 많을수록 아이디어도 많아진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번영은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낸 창의성과 문제 해결 능력이 쌓인 결과이며, 저자들은 이를 궁극의 재생 가능 자원이라고 부른다. 인구가 빠르게 줄어드는 사회에서는 기술 발전, 제도 개선, 의학 연구, 환경 복원의 속도 자체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다음 세대는 지금보다 더 나쁜 환경에서 살게 될 위험이 커진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인구 감소가 아니라 안정이며, 그 출발점은 사람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사회다.

 

여기서 책은 또 하나의 흔한 생각에 의문을 던진다. “인구가 줄면 기후에도 도움되지 않을까?”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인구 감소 효과가 나타날 즈음이면 이미 늦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지금 인구와 정점 인구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총량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인구가 줄면 대기 중 탄소를 제거하고 질병을 치료하고 망가진 생태계를 복원할 사람과 역량도 함께 줄어든다. 사람이 많을수록 생기는 아이디어와 노동, 그리고 축적된 혁신이 줄어들면 더 나은 삶을 만들어내는 동력도 약해진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아이를 덜 낳게 되었을까. 문화적, 경제적, 사회적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겠지만 이 책이 제시하는 설명은 비교적 단순하다. 삶이 풍요로워지고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아이를 키우는 데 따르는 기회비용이 커졌다는 것이다. 그만큼 아이를 낳는 일은 점점 덜 매력적인 선택이 되었다. 예전과 달리 아이가 없거나 적게 낳아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길이 많아졌고, 특히 Z세대는 이를 가장 분명하게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인구를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안정시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단순히 지원금을 더 주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아이 키우는 일이 사회, 문화, 경제, 의료 전반에서 자연스럽게 뒷받침되는 구조 자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모가 되는 일이 끝없는 고통이 아니라 기쁨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사회의 틀을 바꾸자는 제안이다. 다만 이 책은 이런 해법의 한계도 솔직하게 인정한다. 강제로 출산을 늘리려는 정책은 효과가 없었고, 미온적인 장려 정책 역시 출산율을 눈에 띄게 끌어올린 사례는 많지 않다. “더 큰 꿈을 꾸자고 말하지만 부모가 아이에게 쓰는 시간이 다른 목표와 욕망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어떻게 해도 하루는 여전히 24시간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교적 구체적인 대안으로 강조하는 것이 아버지의 더 적극적인 참여. 남성이 육아에 더 많은 시간을 쓰면 여성의 부담이 줄고 출산 의향도 높아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만능 해법은 아니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아버지의 육아 시간은 크게 늘었지만 가족 규모는 오히려 더 작아졌다는 연구도 많다. 결국 예산이나 제도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 즉 사람들의 가치관과 우선순위, 삶의 목표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 더 큰 원인일 수 있다.

 

출산율 하락이 구조적인 흐름일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민 확대나 자동화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이런 방법들은 인구 감소 속도를 늦출 수는 있지만, 태어나는 아이 수가 줄어드는 흐름 자체를 뒤집지는 못한다. 이 책이 목표로 삼는 것은 인구를 다시 늘리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수준에서 안정시키는 것이다. 그러려면 아이를 낳고 키우는 선택이 지나친 개인적 희생이 되지 않도록 사회 전체가 비용과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여기까지 오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 한국 사회에 주는 의미

이 책의 문제의식은 한국에서 가장 극단적인 모습으로 현실이 되어 있다. 한국의 초저출산은 단순한 인구 문제를 넘어 이 책이 경고하는 급감 이후의 세계를 이미 앞서 겪고 있는 사례에 가깝다. 출산율 0.x 라는 숫자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거의 모든 면에서 불리한 선택이 되어 버린 사회의 균형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책의 시선으로 보면 한국의 문제는 아이를 낳지 않는 세대가 아니라, 아이를 낳는 순간 삶의 선택지가 급격히 줄어드는 구조 자체가 문제다. 긴 노동시간, 경력 단절, 과도한 교육 경쟁, 불안정한 주거 환경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가 되는 순간 삶의 가능성이 한꺼번에 좁아지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이는 책이 말하는 핵심 충돌, 즉 부모 역할이 다른 삶의 목표를 잠식해 버리는 문제가 가장 극단적으로 굳어져 있는 사례다.

 

그래서 이 책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은 출산을 장려하자는 구호가 아니다. “왜 아이를 안 낳느냐가 아니라, “아이를 낳아도 삶이 무너지지 않는 사회를 우리는 한 번이라도 제대로 설계해 본 적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을 내놓지 못하는 한, 출산율 숫자를 잠시 흔들 수는 있어도 어떤 지원 정책도 흐름 자체를 바꾸기는 어렵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한국은 이 책의 결론을 가장 냉정하게 증명하고 있는 시험대다. 인구 감소는 저절로 멈출 리도 없고 공포만으로 해결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분명하다. 아이를 낳는 일이 개인의 희생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감당하는 자연스러운 삶의 경로가 되도록 돌봄과 노동, 교육과 시간을 근본적으로 다시 짜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상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말한다.

 

#경제학 #인구경제학 #인구학 #인구데이터 #인구는거짓말하지않는다 #리뷰어스북클럽 #인구절벽 #초저출산사회 #인구절벽 #인구야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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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 세상의 모든 변화를 결정하는 인구의 경제학
딘 스피어스.마이클 제루소 지음, 노승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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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저 출산율의 첨병인 우리나라에 많은 시사점을 주는 책. 우리 인구 이러다 다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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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동물이다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전대호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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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이름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 이유를 떠올려 보니, 전작 어두운 시대에도 도덕은 진보한다를 통해 이미 한 차례 만난 적이 있었다. 이 책은 인간이 과연 동물인가라는 흔하지만 매우 오래된 질문으로 시작한다. 인간은 신체적으로 보면 분명 동물과 다르지 않은 존재이다. 그러나 동시에 생각하고, 판단하고, 세상을 이해하려 애쓰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인간의 마음, 즉 정신은 도대체 어디에 속하는 것이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저자는 이 질문을 철학자들만의 난해한 사유 실험으로 남겨 두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는데 책임감은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현실, 자연이 훼손되는 상황,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극단적 갈등과 같은 동시대의 문제들과 이 질문을 밀접하게 연결한다. 결국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자연 속에서 어떤 존재인지부터 다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출발점이다.

 

먼저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사용하는 동물이라는 개념부터 다시 검토한다. 우리는 흔히 인간은 동물이지만 특별한 점도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가브리엘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동물이라는 범주 자체가 이미 인간이 만들어낸 분류라고 지적한다. 즉 인간과 동물의 세계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이 과연 타당한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몸을 바라보며 자연과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 사실을 불편하고 낯설게 받아들인다. 이 어색함을 정리하기 위해 우리는 동물적인 것이라는 이름을 붙여 그것을 떼어 놓으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저자는 내 안의 동물성을 분리해 따로 바라보려는 시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이미 생명의 세계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을 자연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곧바로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인간을 자연의 바깥에 세워 두고 자연을 정복하거나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태도 자체가 위험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지구를 마음껏 사용해도 되는 자원 창고로 여기는 생각이 깔려 있다면, 자연은 점점 언제든 이용 가능한 대상으로만 인식된다. 그 결과 자원을 무분별하게 소비하고, 살아 있는 세계 전체를 인간의 의지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영화 아바타에서 판도라 행성을 착취의 대상으로 여기는 RDA(Resource Development Administration)라는 초국적 자원 개발 기업을 생각해보라.) 저자가 보기에 이는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 인간이 자신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분리된 사고의 결과이다. 자연을 외부의 물건처럼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그 자연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대가는 감염병, 생태계 붕괴, 기후 위기와 같은 형태로 되돌아온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책에서 또 하나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주제는 비이성적인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여야 한다고 말하지만, 저자는 인간이 본능이나 감정, 편견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이러한 요소들은 과거의 생존 환경 속에서 형성된 장치로서 위기 상황에서 빠르게 반응하도록 돕는 역할을 해 왔다. 문제는 이러한 비이성적 요소가 언제든 다시 표면으로 드러날 수 있으며 실제로 누군가가 이를 이용해 사람들을 조종할 수 있다는 점이다. 포퓰리스트나 극단주의자, 음모론을 퍼뜨리는 이들뿐 아니라 광고나 홍보와 같은 영역에서도 인간의 감정과 편견을 자극하는 기술은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저자가 보기에 인간 사회에는 애초부터 비이성적인 요소가 섞여 있다. 그렇다면 도덕적 진보란 비이성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이해하고 그것이 악용되지 않도록 대비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과학에 대한 저자의 시선 역시 인상적이다. 거짓 정보와 가짜뉴스가 넘쳐나는 시대에 과학을 믿자라는 구호는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 역시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학은 하나의 통일된 정답 체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방법과 관점을 지닌 여러 학문이 각자의 방식으로 세계를 탐구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은 단수라기보다 복수에 가깝고, 더 중요한 것은 과학이 하나의 태도라는 점이다. 과학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검증하며, 지금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음을 인정하는 데서 힘을 얻는다. 따라서 과학이 말했으니 따르라는 식의 권위주의는 오히려 과학 정신과 어긋난다. 소크라테스를 예로 들며, 진정한 지성은 모든 것을 안다고 주장하는 태도가 아니라 자신이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논의는 자연의 복잡성에 대한 인식으로 확장된다. 자연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며,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과학적 모델은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단순화된 지도와 같다. 지도는 유용하지만 그 자체가 현실 전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종종 이 지도를 현실 그 자체로 착각하고 이제는 다 알았다고 믿는다. 그 결과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지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자연을 바꾸기 시작한다. 비료와 농약의 과도한 사용, 무분별한 벌목, 하천 정비, 과도한 개발과 끝없는 소비는 이러한 착각의 산물이다. 저자는 이 방식이 곤충 감소, 항생제 내성균의 확산, 숲과 강의 약화, 그리고 궁극적으로 기후 위기로 이어졌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윤리, 즉 조심함과 겸손, 배려를 중심에 둔 윤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욕망을 내려놓을수록 오히려 더 책임감 있는 행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간을 시장 속에서 이익만을 계산하는 존재로 보는 시각 또한 강하게 비판한다. 인간을 결국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존재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인간의 모습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혼자 존재할 수 없으며, 사회 속에서 타인과 함께 살아가며 형성된 존재이다. 우리가 누리는 문명, 즉 과학과 도시, 도로와 농업은 어느 한 개인의 힘만으로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다. 수많은 사람의 협력과 연대가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 따라서 저자가 강조하는 핵심은 인간다움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일 때 비로소 성립한다는 점이다. 이 관점에서 도덕은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공동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토대이다. 인간을 효율과 이익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설명은 인간을 지나치게 속물적으로 만드는 해석이라는 것이다.

 

양심과 도덕에 대해서도 저자는 이상화된 관점을 취하지 않는다. 양심이 있다고 해서 언제나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양심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고, 망설이게 하며, 자신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이 중요하다. 그 불편함이 있기에 우리는 섣불리 밀어붙이지 않고, 한 번 더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접하는 뉴스 속 사건들 또한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인간은 신이 아니며, 모든 것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할 때, 그 결과는 더 큰 문제로 되돌아온다.

 

결국 이 책을 통해 드러나는 저자의 결론은 비교적 분명하다. 인간과 자연을 단순히 구분하고 인간을 위에, 자연을 아래에 두는 사고방식은 위험하다. 과학을 절대적 정답을 제시하는 권위로 환원하는 태도 또한 위험하다. 기술 발전을 도덕과 분리한 채 가능하니 실행하면 된다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습관은 더욱 위험하다. 저자가 말하는 도덕적 진보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 안에 속한 존재임을 제대로 인정하고 그에 걸맞게 기술과 사회를 보다 신중하고 책임감 있게 다루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 주인이 아니라 생명의 세계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이며, 그렇기에 더 겸손하게 사고하고 더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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