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의 태양 시칠리아의 달 내가 사랑한 이탈리아 2
우치다 요코 지음, 박승애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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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사 디 지노에 대한 호평을 듣고 아무런 의심없이 시리즈 도서인 이 책까지 2권을 한꺼번에 집으로 가져왔는데 까사 디 지노를 읽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책을 놓음. 혹시나 싶어 펼쳐본 이 책 역시 읽다가 한숨 쉬며 놓음. 단편소설 같은 에세이란 말이 이탈리아 생활의 이국적 분위기가 듬뿍 담긴 글이란 뜻인줄 알았는데 단편소설 쓰는 마음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한껏 담아 쓴 글로 정정해서 이해해야 할 듯. 물론 잘 쓰기만 한다면 에세이든 르뽀든 소설이든 뭔 상관이 있겠냐만 소설이 아닌 글을 소설처럼 써 놓으니 이 처럼 읽기에 고역인 글이 없다. 담백하고 깔끔해야 그 정수가 느껴지는 글이 에세이 인데 이 작가의 글은 어떻게든 재미있게 쓰려고 작위적인 것들을 덕지덕지 갖다 붙여서 글에서 기름이 흐르는 듯 하다. 일본 드라마 특유의 작위성과도 닮아 있다는 것이 내 느낌인데, 일본 배우들의 과장된 몸짓과 표정,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구태의연한 문어체 대사 등에 불편함을 느낀 이들이라면 이 책을 절대 보지 마세요. 글로 어떻게 작위성을 느끼죠? 라고 묻는다면, 아래는 글쓴이가 집 개축공사를 하며 주민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공사부터 시작한 상황.


1층 엘리베이트 문이 열리는데, 그 앞에 중년 여자 관리인이 우뚝 버티고 서 있었다.

"이것 봐요."

그녀가 통유리 관리실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엘리베이터를 그렇게 더럽히면 어떡해요."

관리인은 펑퍼짐한 허리에 양손을 올리고 기분 나쁘다는 듯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세 명이나 와서는 수상한 도구를 잔뜩 들고 올라가던데,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는 거예요?"

안 그래도 공사 양해 인사를 하러 내려온 참이라는 말을 꺼내려는 순간 폭탄이라도 터진 듯한 엄청난 폭음이 울리며 건물 전체가 흔들렸다. 불의의 기습을 당해 혼비백산한 관리인은 가슴을 움겨쥐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관리인은 주저앉은 채 뭔가 큰소리로 아우성을 쳤지만, 위에서 더 큰 소리가 이어지는 바람에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관리실 인터폰이 일제히 붉은 램프가 여기저기서 깜빡거렸다. 마치 갑작스러운 폭음에 놀라서 건물 전체가 미쳐버린것 같았다. 붉은 램프와 벨 소리로 시끄러운 관리실을 내버려둔 채 상점가로 달려갔다. 무조건 처음 눈에 띄는 제과점으로 뛰어들어가 한입 크기의 타르트와 케이크를 있는 대로 사 들고 급하게 돌아왔다. 오른손에 긴 자루걸레를 든 관리인이 현관문에 우뚝 서서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따위매수당할 줄 알아?" 


작가는 글로 읽어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저런 말도 안되는 단어와 대사를 써 넣으며 이 글이 에세이로서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일까? "그따위로 매수당할 줄 알아?"라니 전 세계 인구 중 일생에서 저 문장을 단 한 번이라도 말하고 죽는 이가 몇이나 될지 진지하게 궁금해진다. 문어체 대사를 떠나서도 글의 소재며 흐름에서도 작위성이 뚝뚝 떨어진다. 예를 들자면 저 공사를 하려던 집은 동네 바에서 처음 만난 교수가 만난 그 날에 당장 집을 같이 사자고 해서 샀다던가 하는. 물론 이 세상에 그렇게 말도 안되게 일어나는 일이 많다는 것을 나도 알지만, 설사 그녀에게 일어난 일이 큰 얼개로서 사실이라 할 지라도 이런 식의 서술과 작법으로는 그 진실성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힘들다. 결국 나는 이 에세이를 참고 참으며 끝까지 읽긴 하였지만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작위성에 몸부림치다 온 몸에 소오름이 돋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귀여니를 읽을 때도 이러지는 않았어요... 


뭐 이런식이다. 내 이탈리아 생활은 이런 기상천외한 생활로 가득 차 있어! 라고 주장하는 듯한 소재와 서술방식들로 쓰여진 이야기들. 한 점의 진실을 먼지 투성이 일상에서 주워내어 자신만의 시각으로 닦고 빛내는 것 그리고 그 반짝이는 진실을 조용히 타인에게 들려주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에세이라는 장르인데 이 에세이는 어머 호호호 이것도 내 일상 어머 호호호 저것도 내 일상 이것저것 다 갖다 던지는 느낌이다. 과하다. 이건 소설이라고 봐도 과한 수준이다. 일본에서 무슨 상을 받고 호평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 글이 아주 기본적인 수준도 못되는 졸작이 아님은 분명하다. 나름의 성의가 느껴지는 글임은 인정한다. 다만 이 과도함은 일본 드라마도 가끔 못 견뎌하는 내 취향은 아니라는 것. 거꾸로 일본 드라마 같은 그 작위성이 일본에서의 성공요인이었던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 나는 이 책으로 기겁한 마음을 줌파 라히리의 '지문조차 남기지 않는' 글로 정화하게 되는데...(언젠가 줌파 라히리 리뷰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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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2-12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라님, 줌파 리뷰 좀 빨리요.....(기다리고 있는 1人)

LAYLA 2015-02-12 17:42   좋아요 0 | URL
이런 투덜투덜 불만은 쉽지만 좋은 책에 대해 굳이 조악한 글로 좋다는 말의 숟가락을 하나 더 놓아야 하나 싶어져요. 어쨌든 그저 좋은 사람을 드디어 읽었는데 무척 무척 좋았습니다. 다락방님 말을 진작 듣지 않은 저를 스스로 구박하며~~!!!!

다락방 2015-02-12 18:06   좋아요 0 | URL
크- 라일라님도 그저 좋은 사람이 좋았다니. 아, 너무 좋습니다! 좋다좋다요!! ㅠㅠ

2015-02-12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12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13 0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14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14 1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18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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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소설이 주인공이 온몸으로 끌어안아야만 하는 것은 여자 주인공이 아니라 이 불안이다. 만약 춘향전처럼 만난 첫날에 사랑가 부르며 여주인공 옷고름 푸는, 참으로 명쾌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면, 자신이 조선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원망해야 만 할 것이다. 마찬가지다. 인간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구는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보다 구닥다리로 느껴지는 소설은 없다.

플롯과 캐릭터 같은 건 처음부터 직관적으로 멋진 것들을 떠오릴 수 있다고 해도 문장만은 제일 먼저 쓴 문장이 제일 안 좋다. 그래서 소설가에게 필요한 동사는 세가지다. 쓴다. 생각한다. 다시 쓴다.

법구경을 들춰보면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지 마라. 미운 사람과 만나지 마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사랑에서 근심이 생기고 사랑에서 두려움이 생긴다.

이윤기 선생의 여러 말씀 중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것 중에는 시장 아줌마들이 주고받는 일상의 대화가 소설가들의 문장보다 백배는 낫다는 말씀도 있었다. 선생이 시장에서 훔쳐들은 바에 따르면, 어떤 집의 아들이 자살하자 아줌마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가가 세상이 텅 비어 보였는갑다." 그러면서 선생은 책상에 앉아서 머리를 쥐어짜는 소설가들의 대사는 이런식이라며 예로 들었다. "그 아이가 삶의 허무를 견딜 수 없었나봐요" 라거나 "그 집 아들이 절망에 빠져 더이상 살기 싫었나봐요."라거나.

사람들은 악이 선만큼이나 대단한 것처럼 여기지만, 사실 악은 선의 결여일 뿐이다.

책꽃이에 꽃힌 세계문학전집을 마주하면 경외심을 느끼리라. 시간의 압력을 견디고 먼 미래까지 읽히는 작품은 그 정도, 서가 두어 개 정도에 불과하니까. 시간의 압력을 견딘 건 책의 내용 이전에 문장이다. 일단은 문장이 읽혀야 내용도 읽을 게 아닌가? 미래에도 읽을 수 있는 문장, 그게 바로 소설가가 써야 할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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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8 2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08 2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09 0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09 18: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5-02-09 0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일라님 왤케 오랜만??????? 잘 지내시죠?????

LAYLA 2015-02-09 18:37   좋아요 0 | URL
네 ㅋㅋ 어디 좀 다녀오느라... 잘 지내고 있습니다 ^^
 
인간의 굴레에서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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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여러분, 잘 돌봐주셔서 고마워요."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비극도 아니고 희극도 아니었다. 뭐라고 꼬집어 말하기 힘들었다. 다원적이고 다양하다고 할까. 눈물과 웃음이 있었다. 행복과 슬픔이 있었다. 지루하기도 하고, 재미나기도 하고, 무정하기도 했다. 보이는 그대로였다. 소란스럽고 격정적인가 하면 엄숙하기도 했다. 슬프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하찮기도 했다. 단순하면서 복잡했다. 기쁨이 있었고 절망이 있었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 여자에 대한 남자의 사랑이 있었다. 욕망이 무거운 발을 끌면서 병원의 방들을 지나갔다. 죄 있는 자와 죄 없는 자, 홀로 된 아내들과 비참한 아이들에게 벌 주면서. 술이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벗어날 길 없는 대가를 치르게 했다. 병원의 진찰실에서는 죽음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곳에서는 불쌍한 소녀를 공포와 수치로 몰아넣으며 생명의 탄생을 진단하기도 했다. 이곳에는 선도 악도 없었다. 사실만이 존재했다. 그것이 인생이었다.

필립은 관념주의에 대해 얼마간 경멸감을 품고 있었다. 그는 삶에 대해 늘 열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여태껏 만난 관념주의는 대체로 삶으로부터의 비겁한 도피처럼 여겨졌다. 관념주의자는, 번잡한 인간 세계를 견디지 못하고, 그곳에서 몸을 빼낸다. 싸울 힘이 없는 그는 삶의 투쟁을 비속하게 여긴다. 그는 자만심이 강하며, 남들이 자기를 스스로 평가하는 만큼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에, 남들을 경멸함으로써 위안을 삼는다. 필립이 보기에, 그 전형은 헤이워드였다. 잘생기고, 게으르며, 이제 너무 살이 찐데다 대머리가 되어가고 있는데, 아직도 옛 미모의 흔적을 간직하면서 확실치는 않지만 언젠가는 굉장한 일을 하고 말겠노라는 뜻을 아직도 그럴싸하게 떠들어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허풍 뒤에는 길거리의 천박한 연애와 위스키밖에 없었다.

한번은 템즈 강에 뛰어들어 죽으려는 사람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건져내 이리로 실어왔죠. 그런데 열흘 뒤에 보니까 그때 마신 강물 때문에 장티푸스에 걸려 버리고 말았어요. 그야, 죽었죠. 그런데 이걸 자살로 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이상한 사람들이에요, 자살하려는 사람들 말이죠. 또 한 사람이 생각나는데, 이 사람은 일자리를 잃은 데다가 마누라도 죽어버리자 옷가지를 전당포에 잡히고 권총을 한 자루 샀어요. 그런데 그만 실수를 해서 한쪽 눈만 다치고 죽진 않았죠. 그런데 말예요, 한쪽 눈을 날리고 얼굴 한쪽도 날아갔는데 이 사람이 내린 결론은 글쎄, 이 세상이 알고 보니 그리 허악한 데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곤 그 뒤로 잘 살았죠. 내가 그 동안 겪어본 바로는요, 사랑 때문에 죽는 사람은 생각만큼 없어요. 다 소설가들이 지어내는 이야기죠. 자살은 주로 돈 때문에 해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필립은 동방의 어떤 임금 얘기가 생각났다. 인간의 역사를 알고 싶었던 이 임금은 한 현자를 시켜 오백 권의 책을 가져오게 했다. 나라 일로 바빴던 왕은 책들을 간단히 요약해 오라고 했다. 이십 년 뒤, 현자가 돌아와 오십 권으로 줄인 역사책을 내어놓았다. 하지만 임금은 이제 너무 늙어 그 수많은 묵직한 책을 도저히 읽을 수 없어 그것을 다시 줄여오도록 명령했다. 또 이십 년이 흘렀다. 늙어 백발이 된 현자가 임금이 원한 지식을 한 권의 책으로 줄여 가지고 왔다. 하지만 임금은 병상에 누워 죽어가고 있었다. 한 권의 책마저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현자는 임금에게 사람의 역사를 단 한 줄로 줄여 말해 주었다. 그것은 이러했다. 사람은 태어나서, 고생하다, 죽는다. 인생에는 아무런 뜻이 없었다.

사람의 삶에 무슨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태어난다거나 태어나지 않는다거나, 산다거나 죽는다거나 하는 것은 조금도 중요한 일이 아니다. 삶도 무의미하고 죽음도 무의미하다. 필립은 벅찬 기쁨을 느꼈다. 소년 시절, 신을 믿어야 한다는 무거운 신앙의 짐을 벗어버렸을 때 느꼈던 것과 같은 기쁨이었다. 이제 책임이라는 마지막 짐까지도 벗어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되는 셈이었다. 자기 존재의 무의미함이 오히려 힘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제까지 자기를 박해한다고만 생각했던 잔혹한 운명과 갑자기 대등해진 느낌이 들었다. 인생이 무의미하다면, 세상도 잔혹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무엇을 하고 안하고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실패라는 것도 중요하지 않고 성공 역시 의미가 없다.

필립은 끝없는 노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들에게 삶은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저 계절의 변화를 받아들이듯 받아들여야 하는 어떤 것이리라. 이 모두가 헛된 것이려니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필립으로서는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보이는 것마다, 생각되는 것마다 그 믿음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었다. 분노가 치밀어올랐지만, 그것은 즐거운 분노였다. 삶이 무의미하다면 그것을 별로 두려워할 것도 없을 테니까. 필립은 이상한 힘을 느끼며 삶과 마주하였다.

노인은 죽음의 공포와 싸우고 있었다. 누구나 한번은 이 공포를 겪어야 하리라고 필립은 생각했다. 정말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잔인한 고통을 겪게 하는 신을 믿는다! 필립은 한번도 백부를 사랑해 본 적이 없었다. 지난 이 년 동안은 날마다 백부가 죽기를 바랬다. 그런데 막상 닥치고 보니 가슴에서 솟구치는 연민을 어쩔 수 없었다. 사람이 짐승이 아니기 때문에 치러야 하는 대가가 정말 얼마나 큰가!

<이마에 땀을 흘려 일용할 양식을 얻으리라>
이 말은 인간에게 내린 저주라기보다 생존을 감수할 수 있도록 해주는 향유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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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3 2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 지방의 관습 아카넷 한국연구재단총서 학술명저번역 568
이디스 워튼 지음, 정혜옥.손영희 옮김 / 아카넷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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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미국인은 여자들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해도 된다고 `허락하는`일은 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의무적인 미덕이란 게 많지 않거든요."
보언의 친구가 이 말에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부부가 그렇게 따로 논다면 결혼이라는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가 미국인들에게 왜 아직도 존속하죠?"
"오, 결혼은 아직 쓸모가 있어요. 결혼을 하지 않으면 이혼을 할 수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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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굴레에서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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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우구스투스는 지구가 납작하고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믿었네.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사람은 자기 시대가 믿는 것을 믿는다는 말이지.

필립은 인생의 나그네가 현실을 제대로 받아들이려면 그전에 메마르고 험준한 세상을 얼마나 넓게 돌아다녀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젊음이 행복하다는 것은 환상이며 그것은 젊음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환상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자기들이 비참하다는 것을 안다. 그들의 머리에는 끊임없이 주입되어 온 진실없는 이상들만 가득 차 있어 현실을 접촉할 때마다 멍들고 상처받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어떤 공모의 희생자처럼 보인다. 선택해서 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언제나 이상적인 책들, 그리고 망각의 장밋빛 아지랑이를 통해 과거를 돌아보는 나이든 사람들의 대화, 이 두가지가 공모하여 젊은이들로 항금 비현실적인 삶을 꿈꾸게 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자기가 읽은 모든 것, 자기가 들으 모든 것이 거짓말투성이라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여야 한다. 그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그것은 인생의 십자가에 그들을 때려박는 못이 된다. 이상한 것은 쓰라린 환멸을 경험한 사람들이, 이번에는 무의식적으로 저마다, 억제할 수 없는 내부의 어떤 큰 힘에 의해 그 환멸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헤이워드를 사귄 것은 필립에게 최악의 일이었다. 헤이워드는 자신의 눈으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만사를 문학적인 분위기를 통해서만 보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성실하다고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험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관능을 낭만적 감정이라고 잘못 알았고, 우유부단을 예술적 기질로 잘못 알았으며, 게으름을 철학적인 초연함이라고 잘못 알았다. 그의 정신은 속물적으로 세련을 추구하였으며, 따라서 모든 것을 감상의 금빛 안개 속에서 실물 크기보다 약간 크게, 흐릿한 윤곽으로 보았다. 거짓말을 하면서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누가 거짓말을 한다고 지적하면 거짓말은 아름답다고 말했다. 그는 관념주의자였다.

-그래 자넨 여자들을 어떻게 낚았나
로슨이 골을 내며 말했다.
-별로 어려울 것 없어, 이 사람아.
플래너건이 말했다.
-곧 바로 부딪치면 돼. 문제는 떼내는 일이야. 그건 요령이 필요하지.

세상에서 가장 굴욕스러운 일은 말이지, 먹고 사는 걱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일이야. 난 돈을 멸시하는 사람들을 보면 경멸감밖에 들지 않네. 그런 자들은 위선자가 아니면 바보야. 돈이란 제 육감과 같아. 그게 없이는 다른 오감을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지. 적정한 수입이 없으면 인생의 가능성 가운데 절반은 막혀버리네. 딱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한푼 벌면 한푼이상 쓰지 않아야 한다는 거야. 예술가에겐 가난이 제일 좋은 채찍이 된다는 말들을 하잖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가난의 쓰라림을 직접 겪어보지 못해서 그래. 가난이 사람을 얼마나 천하게 만드는지 몰라. 사람을 끝없이 비굴하게 만드네. 사람의 날개를 꺾어버리고, 암처럼 사람의 영혼을 좀먹어 들어가지.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적어도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 방해받지 않고 일을 할 수 있고, 너그럽고 솔직할 수 있을 정도, 그리고 독립적으로 살 수 있을 정도는 있어야지. 나는 말이야, 글을 쓰건 그림을 그리건 예술하는 사람이 먹고 사는 일을 자기 예술에만 의존한다면 그런 사람을 정말 가련하게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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