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엽 감는 새 3 - 새잡이꾼 편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문학사상사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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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이었지만, 나는 난로에 불을 붙이는 일조차 가끔씩 잊었다. 그것이 진짜 추위인지 혹은 내 속에 있는 추위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곧잘 온도게를 보고 정말로 춥다는 게 납득이 되면 난로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난로에 불을 피워 아무리 방을 따뜻하게 해도 체감 온도로 느끼는 추위가 가시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아니, 오히려 나는 그렇게 개미처럼 한눈도 팔지 않고 일을 함으로써 점점 `참다운 자신`에게 가까이 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조차 드는 거에요. 뭐라고 할까요,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중심에 다가가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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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 지나고까지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0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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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를 읽으면서도 느낀 바이지만 나쓰메 소세키는 연애소설을 쓰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보통의 연애소설이 해피엔딩 로맨스의 집중하고, 그 서사를 위해 각각의 캐릭터는 개성을 깎아 서사에 딱 들어맞는 블록처럼 규격화 된다면 소세키의 소설은 한 인간의 삶의 대하는 자세가 연애에 있어서는 어떻게 발현되고 그 모순을 어떻게 이겨내는가(혹은 그 모순에 어떻게 굴복하는가)를 그려내기에 일반적인 연애소설과는 달리 캐릭터가 살아있고 그 캐릭터가 어느 방향으로 걸어갈지는 마지막 장까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춘분 지나고까지는 액자식 구성으로 2개의 이야기를 하는데 하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의 이상을 접은채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취업을 하려고 노력하는 한 청년의 이야기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앞의 청년의 친구로, 집안의 재산이 어느정도 있어 굳이 직업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청년의 썸 이야기이다. 독자에 따라 2가지 이야기 중 어느것에 더 깊이 감응하느냐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두 가지 모두 아주 흥미로우며 어찌 이리 이질적인 이야기를 한 권의 소설속에 그 만의 방식으로 담아낼 수 있는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래도 굳이 이야기를 보태자면 두번째 청년의 썸 이야기가 더 아름다운 문체로 쓰여져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 이야기라서 어쩔수 없는 것일까. 예민한 성미와 자아로 인해 세상일과 거리를 두고 한량으로 살아가는 청년에게는 어릴적부터 결혼 이야기가 오가는 사촌 여동생이 있다. 사실 모든 것에 회의적인 그는 사촌 여동생과의 결혼도 굳이 해야할 이유를 찾지 못해 주저하기만 하고 그러던 차에 사촌 여동생의 주위에 다른 남자가 나타나면서 '질투'라는 감정을 느끼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 가족들이 모두 함께한 휴가지에서 그 남자와 함께 있는 여동생을 보고 자신의 속에서 일어나는 격렬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청년은 퉁명스럽게 휴가지를 떠나버리고, 집으로 향하는 기차 속에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다.


'나는 강한 자극으로 가득 찬 소설을 읽을 수도 없을 만큼 약한 남자다. 강한 자극으로 가득 찬 소설을 실행하는 일은 더더욱 할 수 없는 남자다. 나는 자신의 기분이 소설이 되려는 순간 놀라서 도쿄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므로 기차 안에서 나는 반은 승자였고 반은 패자였다. 비교적 승객이 적은 이등칸 안에서 나는 스스로 쓰기 시작해서 스스로 찢어버린 듯한 이 소설의 뒷부분을 이리저리 상상했다. 거기에는 바다가 있고 달이 있고 물가가 있었다. 젊은 남자의 그림자와 젊은 여자의 그림자가 있었다. 처음에는 남자가 격해져서 여자가 울었다. 나중에는 여자가 격해져서 남자가 달랬다. 결국에는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조용한 모래 위를 걸었다. 또는 액자가 있고 다다미가 있고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그곳에서 젊은 남자 둘이 의미 없는 언쟁을 벌였다. 점차 뜨거운 피가 올라와 볼이 붉어졌고 결국 두 사람다 자신의 인격을 손상시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마지막에는 일어나 서로 주먹을 휘둘렀다 .'


아름다워서 멈추게 된다. 아름다운 그림 앞에 발길이 멈추는 것처럼, 소세키만의 아름다운 문장에 놀라서 글을 더 읽어나가지 못하고 몇 번이나 맴돌며 읽고 또 읽어보게 된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은 소세키 밖에 없다. 미문을 쓰는 작가는 많다지만 '거기에는 바다가 있고 달이 있고 물가가 있었다.'이런 평범한 단어의 평범한 조합으로 시보다 더 시 같은 소설을 쓰는 작가는 소세키 밖에 없는 것이다. 언제나 실망이 없고 그의 소설을 읽을 수 있음에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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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 지나고까지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0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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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 파도가 부서지면서 밀려가는 식으로 이렇게 깔끔하지 못하게 늘어지기만 하는 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사실 나는 자연파 작가도 아니고 상징파 작가도 아니다. 요즘 자주 들리는 신낭만파 작가는 더더욱 아니다. 나는 이들 주의를 드높이 표방하며 남의 주의를 끌 만큼 내 작품이 고정된 색을 지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없다. 또 그런 자신은 불필요한 것이다. 나는 그저 나라는 신념을 갖고 있을 뿐이다.

다가와, 자네 정말 못 마시나? 이상하군. 술도 못 마시는 주제에 모험을 사랑하다니. 모든 모험은 술로 시작하는 거네. 그리고 여자로 끝나지.

글쎄, 나중에 생각해보면 모든 게 재미있기도 하고 또 모든 게 시시하기도 해서 나야 잘 분간이 안 되지.

이보게, 교육은 일종의 권리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뭐 완전히 속박이네. 아무리 학교를 졸업해도 먹고사는 게 힘들다면 그게 무슨 권리라고 할 수 있겠나? 그렇다고 지위는 아무래도 좋으니까 멋대로 무슨 짓을 해도 상관 없느냐 하면 또 그런 것도 아니니 말일세. 지독하게 사람을 속박하네. 교육이 말이야.

나는 어떤 의미에서도 가문을 떨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더럽히지 않을 만큼의 식견을 머리에 넣어둘 뿐이다.

지요코의 말이나 행동이 때로 맹렬하게 보이는 것은 그녀가 여자답지 않고 거칠고 막된 점을 안에 숨기고 있어서가 아니라 너무나도 여자답고 상냥한 감정을 전후 사정을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지요코가 갖고 있는 선악과 시비의 분별은 학문이나 경험으로부터 거의 독립해 있다. 그저 상대를 향해 직감적으로 타오를 뿐이다. 그러므로 상대는 경우에 따라 벼락을 맞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지요코의 반응이 강하고 격렬한 것은 가슴속에서 순수한 덩어리가 한꺼번에 다량으로 튀어나온다는 의미지, 가시나 독이나 부식제 같은 것을 내뿜거나 끼얹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설사 아무리 격하게 화를 낼 때도 나는 지요코가 내 마음을 깨끗이 씻어준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경우가 지금까지 여러 차례 있었다는 것이 그 증거다. 드물게는 고상한 사람을 만났다는 느낌마저 들었을 정도다. 나는 세상 앞에 홀로 서서 지요코야말로 모든 여자 중에서 가장 여성스러운 여자라고 변호해주고 싶을 정도다.

나는 또 감정이라는 자신의 무게로 넘어질 것 같은 지요코를, 운명의 아이러니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인이라며 깊이 동정한다. 아니, 때에 따라서는 지요코 때문에 전율한다.

나도 남자인지라 앞으로 어떤 여자와 격렬한 사랑에 빠지지 말란 법도 없다. 하지만 나는 단언한다. 만약 그 사랑과 같은 정도의 격렬한 경쟁을 해야 원하는 사람을 얻을 수 있다면 나는 어떤 고통과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손을 품속에 넣은 채 초연히 연인을 버릴 생각이다. 남자답지 못하다고, 용기가 부족하다고, 의지가 박약하다고 남들이 평한다면 그런 평은 얼마든지 감내할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고달픈 경쟁을 하지 않으면 내 사람이 되기 힘들 만큼 어디로 가도 좋은 여자라면 그렇게 고달픈 경쟁을 할 가치가 없는 여자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여자를 억지로 안는 기쁨보다는 상대의 사랑을 자유의 들판에 놓아주었을 때의 남자다운 기분으로 내 실연의 상처를 쓸쓸하게 지켜보는 것이 양심에 비추어 훨씬 더 만족스럽다고 생각한다.

지요코는 때로 천하에 단 한 사람인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나는 나아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해서는 눈을 딱 감고 과감하게 나아가볼까 하는 생각을 하는 중에 그녀는 순식간에 내 손에서 벗어나 생판 남이나 다름없는 표정을 짓곤 했다. 내가 가마쿠라에서 보낸 이틀 동안 이미 이런 밀물이나 썰물이 두세 차례 있었다. 어떤 때는 자신의 의지로 이 변화를 지배하면서 일부러 다가오기도 하고 또 일부러 물러나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희미한 의혹마저 내 가슴에 일게 했다. 그뿐이 아니다. 나는 지요코의 엄행을 한 가지 의미로 해석하고 또 그 직후에 똑같은 것을 완전히 반대되는 의미로 해석하고는 사실 어느 쪽이 옳은지 몰라 공연히 화가 치밀었던 일도 적지 않았다.

나는 강한 자극으로 가득 찬 소설을 읽을 수도 없을 만큼 약한 남자다. 강한 자극으로 가득 찬 소설을 실행하는 일은 더더욱 할 수 없는 남자다. 나는 자신의 기분이 소설이 되려는 순간 놀라서 도쿄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므로 기차 안에서 나는 반은 승자였고 반은 패자였다. 비교적 승객이 적은 이등칸 안에서 나는 스스로 쓰기 시작해서 스스로 찢어버린 듯한 이 소설의 뒷부분을 이리저리 상상했다. 거기에는 바다가 있고 달이 있고 물가가 있었다. 젊은 남자의 그림자와 젊은 여자의 그림자가 있었다. 처음에는 남자가 격해져서 여자가 울었다. 나중에는 여자가 격해져서 남자가 달랬다. 결국에는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조용한 모래 위를 걸었다. 또는 액자가 있고 다다미가 있고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그곳에서 젊은 남자 둘이 의미 없는 언쟁을 벌였다. 점차 뜨거운 피가 올라와 볼이 붉어졌고 결국 두 사람다 자신의 인격을 손상시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마지막에는 일어나 서로 주먹을 휘둘렀다 .

고백하자면 나는 고등교육을 받은 증거로 오늘날까지 내 머리가 남보다 복잡하게 작동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그 작동에 지쳤다. 무슨 업보로 이렇게까지 일을 잘게 쪼개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걸까 생각하니 한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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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의 핀볼 - 무라카미 하루키 자전적 소설, 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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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때 뭘 했어요?
-여자에게 빠져 있었지.

1969년, 우리의 해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헤어졌어
-행복했나요?
-멀리서 보면 대개는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거든.

쥐는 눈 앞에 늘어서 있는 여섯 개의 빈 맥주병을 바라보았다. 병 사이로 제이의 뒷모스이 보였다. 지금이 은퇴할 적당한 시기일지도 모른다고 쥐는 생각했다. 이 술집에서 처음으로 맥주를 마신 것은 열여덟 살 때였다. 수천 병의 맥주, 수천 개의 감자튀김, 주크박스에 있는 수천 장의 레코드. 모든 것이 마치 작은 배에 밀려드는 파도처럼 왔다가는 사라져갔다. 나는 이제 맥주를 마실 만큼 충분히 마신 게 아닐까? 물론 서른이 되든 마흔이 되든 맥주는 얼마든지 마실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마시는 맥주만은 다르다고 그는 생각한다. 스물다섯 살, 은퇴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나이다. 감각이 있는 인간이라면 대학을 나와서 은행의 대부계에서라도 일하고 있을 나이다.

테네시 윌리엄스는 이렇게 썼다. 과거와 현재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 미래에 대해서는 `아마도`이다, 라고. 그러나 우리가 걸어온 암흑을 되돌아볼 때, 거기에 있는 것 역시 불확실한 `아마도` 뿐인 것 같았다. 우리가 확실하게 지각할 수 있는 건 현재라는 한순간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조차도 우리의 몸을 그냥 스쳐 지나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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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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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하는 일이 있어도 되는 것 아닌가?"

사람에게는
못하는 일과
하고 싶지 않은 일
하려고 했다가 실패한 일
그것도 역시,
그 사람을 만드는 거죠.
잘하는 일만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에요.


열정.
그리고 센스.

중학교 때 선생님이 이런 얘길 한 적 있습니다.

"누구라도 책 한권쯤은 쓸 수 있다. 자기 인생을 쓰면 되니까. 별 것 아냐. 두 권째를 쓰는 사람이 프로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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