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
모신 하미드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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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소 난해한 제목의 이 책은 언뜻 보면 자기계발서 같은데,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기계발서'의 형식을 차용한 '소설'이라고 한다. 21세기 소설의 진화는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가. 호기심을 안고 상하이 여행길에 가지고 갔다. 급속도로 성장한 상하이 같은 도시에 이처럼 잘 어울리는 책이 어디 있겠냐며...!


저자가 파키스탄인인데 그래서 그런지 이 자기계발서는 내가 흔히 알고 있는 자기 계발서와는 좀 다르다. 나에게 자기계발서란 시간을 아껴쓰라 채찍질하고 정글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면종복배의 스킬을 전수하는 책인데...이 책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을 한다.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가라' '교육을 받아라' 한국에서라면 60-70년대에나 쓸모있었을 조언이랄까? 즉, 이 책이 모티브로 삼고 있는 자기계발서란 한국이나 미국 같이 경제성장률이 둔화된 선진국에서 말하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지금도 연 6-7%씩 성장하는 개도국에서나 읽히는, 파키스탄에서나 읽히는 그런 종류의 자기계발서인 것이다. 나라의 이름은 한 번도 명시되지 않지만 인도나 파키스탄 쯤 되는 그런 나라를 배경으로, 자기계발서의 지침을 따르면 한 인간이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를 출생에서 부터 사망까지 그리고 있다. 

사실 이 책은 작품성의 측면에서는 그리 큰 찬사를 받을 건덕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서술이 치밀한 것도 아니고 문체가 아름다운 것도 아니며 서사가 흡입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개인적인 평이라면 이 책은 파키스탄 출신으로 미국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은 저자가 자신의 모든 장기를 이상적으로 조합하여 만들어낸 하나의 '성공적인 상품'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약한점은 최대한 숨기고(부족한 필력과 스토리 텔링) 자신의 강점은 최대한 부풀리고(개도국 사람들의 삶에 대한 지식) 자기계발서를 소설에 끌어들여 그걸 '실험적 형식'이라는 말로 버무린다. 

만약 이 소설의 배경이 21세기 미국이었다면 이렇게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요즘 자기계발서들은 단순히 열심히 살아라 메시지를 전파하는 수준을 넘어 '정신승리'를 내재화 하도록 속삭이는 철학서 수준이기에 그걸 소설과 조합시켜 재미있게 써낸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의 배경은 개도국이기에 자기계발서가 하는 말은 단순하고 명쾌하며 소설의 주인공의 인생도 아주 쉽게 전형화된다. 시골에서 가난하게 태어났으나 부모를 따라 도시로 이주하고 시작은 남의 집 종업원이었으나 기술을 배워 자기 사업을 시작하고... 소설이라고 써 놨으면 말도 안될 구멍 숭숭 난 글들이 '자기계발서'와 더해졌다는 이유로 다 용납이 된다. 이 인물은 자기계발서의 정신을 상징하는 하나의 캐릭터이니 이렇게 거칠게 일반화 되어도 된다는 것이다. 한국은 60-70년대가 너무 가까운 과거라서 이 소설을 읽으면 우리 부모 세대의 이야기쯤인거 같고 그래서 크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데(흔한 이야기) 이런 이야기가 미국인들에겐 아주 '이국적'으로 받아들여졌을거 같다. 하버드 로스쿨 까지 다닌 저자이니 소 뒷걸음질에 쥐 잡은 건 아닐거고 이런 포인트를 아주 영리하게 캐치하고 작품으로서 기획했으리라 생각한다.

책이 아주 재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마지막 장까지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힘은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의 작품(소설)으로 보자면 부족하고 소설이 던지는 메세지는 더 빈약하다. 저자가 파키스탄의 서민 출신이라면 영어로 글을 쓰지는 못했더라도 조금은 더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텐데, 교육도 미국에서 받고 커리어도 미국에서 쌓은 사람이 쓴 개도국의 이야기에 깊이가 있기는 힘든 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강남에서 초등학교만 마치고 조기유학 떠나서 평생 미국생활 한 한국인이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배경으로 소설을 쓴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기대와 달리 상하이 여행에 그리 큰 영감을 주지는 못했다. 무단횡단을 하고 새치기를 하고 영어는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인들 삶 이면에 있을 많은 스토리를 이 책을 지렛대 삼아 상상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아주 잘못된 기대였던 것이다. 가볍게 읽을 소설을 원한다면 권할 수 있다. 하지만 영리함으로 쓴 소설의 한계는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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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6-12-28 0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도국을 이용해서 영리하게 돈벌이가 될 책을 쓴 느낌입니다...말씀처럼 진정서을 느낄 수 없는 글 같습니다. 특별히 읽을 이유가 없네요..
여긴 인도계나 중국계가 아주 많은데, 요즘처럼 대륙에서 건너온 중국이민자들이 보기 싫었던 적도 없어요...-_-:: 마트나 어디나 시끄럽고 운전 막 하고, 마트에서 self-checkout 계산 후 물건 담고 있는데, 바로 뒤에서 자기 물건 찍기 시작하더라구요.. 언젠가 한번은 또 계산대에서 돈내고 돌아서는데 바로 뒤에 서있는 중국사람 때문에 넘어질 뻔하구요..-__-:::

이제 2016년이 다 지나가네요....ㅎㅎ 서력기원이지만 곧 맞을 새해엔 더욱 좋은 일 가득하길 기원해요..

LAYLA 2016-12-31 00:58   좋아요 1 | URL
이달 초에 상해 여행을 했는데 겨우 3박 4일의 일정이지만 일정을 마칠 때 즈음엔 그 나라의 시민의식에 피곤해져서 어서 집에 가고 싶더라구요. 어떤 큰 트러블이 있었다기 보다는 마치 가랑비에 몸 젖듯이 영혼이 피곤해졌더랬지요. 대만이나 홍콩을 보면 이건 중국인의 문제가 아니라 발전속도의 문제일 뿐이라고 이해는 하지만 어쨌든 지금 당장 피곤한건 피곤한거니까요 흑흑 ㅠㅠ 이 책은 아주 라이트하게 읽어볼 만은 하지만 (개인적으론 미국 사람/평론가들은 이런거 좋아하는구나;;; 하고 알게 되었네요 ㅎㅎ) 책을 공수해서 읽으시는 transient 님께는 굳이 권해드리고 싶지 않네요. transient 님 올해 많이 감사하였고 내년도에 사업도 계획하신 대로 잘 풀리고 독서생활도 아름다운...그런 한 해 되길 바랍니다. 서재에서 계속 만나요~^^
 
나라는 여자 - 소녀가 어른이 되기까지 새로운 개인의 탄생
임경선 지음 / 마음산책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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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말 ‘글을 잘 쓰기 위한 비법은 쓰지 않는 것이다‘가 떠오른다. 좋은 에세이가 되기 위해선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가려야 한다. 용법에 맞지 않는 단어들의 남발은 의아할 정도. 작가의 재능이 아니라 기질로 쓰여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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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마오의 사하라 사막 생활기(신혼여행기) '사하라 이야기'가 2018년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란 소식을 듣고 너무나 신이 나서 책을 사러 알라딘에 접속했다. 국내에 출판된 싼마오의 책은 모두 사서 본가 어딘가에 있지만 서울에서 읽을 책도 사둬야겠다 싶어 접속한 것이었는데 두둥. 모든 책이 품절이다. 지난 10월 이후 입고 되지 않는 것을 보니 출판사가 문을 닫은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 지울수가 없다. 원래 1인 출판사라 이런 상황이 두려웠는데 드디어 그 날이 오고 만 것인가 ...ㅠㅠ 잽싸게 중고서점을 검색했지만 알라딘 중고는 하나도 없고, 혹시나 들른 강남 yes24 중고서점에서 사하라 이야기 한 권을 구할 수 있었다. 다른 책들도 다 구하고 싶지만 이 정도만 해도 선방이라 해야할듯. 


집에 와서 오랜만에 다시 쭈욱 책을 보는데 어머나. 원래도 좋은 번역이라 생각했었지만 다시 봐도 참 좋은 번역이고, 그냥 본인이 좋아하는 책을 출판하는 1인 출판사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번역자가 바로 그 1인 출판사 사장님이시고, 겨우 서른셋의 나이에 출판사를 차리고 책을 내고 번역자의 글을 쓰셨단 것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제가 오랫동안 팬이었습니다. 사장님. 막내집게는 내가 애정을 가진 단 하나의 출판사였다. 


세상이 정말 좋은 것들에게 1등의 자리를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지금까지 너무나도 뼈저리게 경험해 왔지만 이런 일을 또 접하니 마음이 막 착찹해지는 것. 싼마오의 수필은 국내에 출판된 에세이 모두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들만한 좋은 책이었지만 결국 이렇게 조용히 사라지게 된 것이다. 대형 출판사에서 나왔더라면 달랐을까? 그건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이 책이 요즘 트렌디한 표지와 얇은 두께로 출시되는 일본 여류 작가들의 에세이들 보다 9.5배쯤 낫다는 것에는 그렇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다나베 세이코 여사라 할지라도 에세이의 영역에서는 싼마오의 압승인 것이다. 레베루가 달라버려...! 나 같은 소수의 독자들에게 깊고 진한 사랑을 받았다지만 살아남는 것이 미덕인 이 냉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2달째 재입고 되지 않는 싼 마오의 책들은 너무 가슴이 아프다. 세상은 좋은 걸 몰라주고, 나는 운 좋게 좋은 걸 알아봤지만, 나 같은 사람이 알아봐야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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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3 01: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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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3 12: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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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2 1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4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인의 초상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7
헨리 제임스 지음, 최경도 옮김 / 민음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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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번역. ‘방문객인 오스먼드는 그녀를 위축시켜 긴장에 싸이게 했고, 상대방이 그에 대한 인상을 스스로 느끼는 것보다 그로부터 인상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면이 있었다.‘ 이런 문장이 천 페이지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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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중위의 여자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32
존 파울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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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 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읽어내는데에는 적잖은 인내가 필요하다. 아무리 존 파울스의 지성미 넘치는 글이라 할지라도 600페이지는 쉬운 분량이 아니다. 학부생 때 김영하가 자신의 에세이에서 이 책을 언급한 것을 보고 호기심으로 시작했다가 하숙방에서 졸린 눈으로 부득부득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몇 페이지를 볼 때 잠이 확 깨며 온 몸에 소름이 돋았던 기억도. 그 기억 하나로 다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사실 열린책들에서 페이퍼백 절판시킬 때 서점을 돌며 사둔 1권짜리 프랑스 중위의 여자가 집에 있었거든...(지금은 2권으로 분권되었다) 저걸 사뒀으니 한번은 읽는게 책에 대한 도리가 아니겠냐며. 


대략 7-8년 전과는 세상이 달라졌고, 나 역시 달라졌기 때문에 그런지 소설을 생각보다는 덜 지루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한량 귀족 찰스와 동네의 창녀 쯤으로 업신여김 받는 사라의 사랑은(빅토리아 시대에는 고상하게 그런 여자를 '동정'한다고 말한다) 지금 보니 꽤나 도발적이고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다. (*이하는 스포일러가 너무 많습니다) 원래 이 소설이 포스트 모더니즘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인정받긴 했지만 다시 보니 충격적인 클리셰 파괴가 더 눈에 잘 보인달까? 원래 부잣집 도련님과 가난한 여자의 사랑이란 모름지기 남자가 여자의 미모에 눈이 멀어 매달리고 구애하고 처녀성을 빼앗고 그래서 여자를 신데렐라로 만들거나 아니면 여자 인생 말아먹거나 둘 중 하나인데 이 소설은 두 남녀가 첫눈에 호기심을 느꼈다는 암시는 있지만 어쨌든 계속 들이대는 건 여자 주인공 '사라'이다. 이미 약혼녀가 있고 체면을 중시하는 남자 주인공 찰스는 어떻게든 이 여자를 떼내려고 하지만 사라는 집요하고 치밀하게, 연기까지 해 가며 찰스를 궁지로 몰고 자신에게 오도록 꼬신다. 가장 압권은, 사라가 눈물을 머금으며 자신이 사실 프랑스 중위와 사랑에 빠졌었고 그와 동침했지만 그는 결혼 약속을 저버리고 달아난 사기꾼이었다고, 자신이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게 도와달라고 애처로운 사연을 털어놓는데 그런 그녀를 믿고 도와주다 사랑에 빠진 찰스가 순간의 정욕(?)을 참지 못해 동침을 하고 보니 사라는 사실 처녀였던 것. 여기서부터 소름이 돋는다. 빅토리안 시대의 여자 주인공이 자신의 목적, 그것도 돈 같은 세속적 목적이 아니라 개인적인 정복감 성취감 등을 위해 서슴치 않고 자신의 순결에 대해 거짓말을 줄줄 늘어놓는다는 건 내가 지금껏 목도한 작가의 상상력 중 가장 대단한 것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첫날밤으로 완전히 사라에게 홀린 찰스는 자신의 모든 인생을 버리고 그녀와 함께 하겠다 다짐하지만 그녀는 종적을 감추어 버린다. 빅토리안 시대의 곤 걸이라는 건 내가 붙인 은유적 제목이 아니다. 정말로 소설 속의 그녀는 사라져 버린다. ... 그런 사라를 못 잊어 마음의 병을 얻은 찰스는 파혼하고 숙부의 유산도 받지 못하게 되고 넋이 나간 사람이 되어 유럽을 몇 년이나 유랑하는데 (빅토리안 시대에 귀족의 브로큰 허트란 무엇인가...) 런던에서 사라와 비슷한 여자를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어 부리나케 영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녀가 혹시 달아날까 조바심 내며 조심조심 찾아간 곳에서 드디어 그녀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도대체 이 여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왜 나를 유혹하고 왜 나를 버린 것일까. 


수년만에 만나 이제라도 함께 하자고 말하는 찰스에게 그녀는 매우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전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그 이유는 첫째...제 과거 때문이에요. 전 고독에 길들여졌어요.저는 늘 제가 고독을 혐오 한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고독을 너무나 쉽게 피할 수 있는 세계에서 살고 있어요. 그러자 제가 고독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전 누구하고도 인생을 같이하고 싶지 않아요. 지금 이대로 있고 싶어요. 아무리 친절한 남편, 아무리 너그러운 남편이라도 남편은 결혼 생활에서 제가 다른 여자, 아내로서 적당한 여자가 되기를 기대할 거예요. 전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요." 존 파울스의 소설은 기존 전통소설의 전형적인 플롯을 파괴했다는 점에서 큰 인정을 받는다는데 이 대사 하나하나도 정말 너무 예쁘지 않나요? 지금까지 사라 이 미친년이라고 욕하던 나도 이 순간에는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에 감동해서 거의 울 지경이 된다. 존 파울즈는 신내림이라도 받은걸까. 어찌 20년대에 태어난 남성이 여성의 타자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이런 대사를 써낼 수 있는걸까. 나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남자 주인공 찰스는 빅토리안 시대의 전형적인 인물을 맡고 있기 때문에 사라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되묻는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당신은 여성이 창조된 목적을 거부할 수는 없소. 당신 말대로라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여자들이 이 세상에 태어난단 말이오?" 그리자 사라는 답한다. "당신은 이해하지 못해요. 그건 물론 당신 잘못이 아니죠. 당신은 정말 친절한 분이세요. 하지만 저를 이해할 수는 없어요."(You do not understand. It is not your fault. You are very kind. But I am not to be understood.)


최근의 페미니즘 열풍 덕택에 이 책을 보는 나의 감상이 더욱 풍부해졌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사라의 주체성에 대해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사라는 여자에게 꼭 남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라는 귀족 남자의 돈이나 작위에 큰 관심이 없다. 사라는 찰스와 결혼해 팔자 고치기 보다는 그냥 혼자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대로 살고자 한다. 이것은 이 소설 전체의 커다란 덫이고 이 사회에 던지는 큰 물음이다. 우리는 이런 중세시대의 여성상에 대해 '상상'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600페이지 내내 줄곧 물어왔던 것이다. 도대체 이 여자는 왜 이런 행동을 하는걸까 하고...마지막에 가서 그녀는 한 마디로 정리한다 "난 원래 그런 여자야. 나를 이해할 생각은 하지마" 이 지점에서 우리는 사라라는 캐릭터의 급진성에 유쾌한 충격을 받고 조금 더 나아가서는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된다. 사라 같은 여성은 상상하지 못하는 '내'가 바로 사라가 존재하기 힘든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찰스는 어찌 되었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최소한 사라의 아름다움을 포착할 정도의 지적인 직관을 가지고 있었음은 감안할때 가슴은 상처받았다 하더라도 조금은 이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그것에 의미를 두지 않았을까 싶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사라" 쯤이랄까. 사라는 자신의 마음은 결코 그에게 주지 않았지만 인간이 존재하는 데에는 누군가의 무엇이 되기 위함보다 더 큰 목적이 있음을 -내 인생 내 멋대로 살기 위해-, 그리고 여자라 하더라도 예외는 아님을 그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찰스가 비관에 빠지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은 존 파울즈의 마지막 서술로 짐작할 수 있다. '인생이란 결코 하나의 상징이 아니며, 수수께끼 놀이는 한 번 틀렸다고 해서 끝장이 나는 것도 아니고, 인생은 하나의 얼굴로만 사는 것도 아니며, 주사위를 한 번 던져서 원하는 눈이 나오지 않았다 해도 체념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그는 이미 깨닫기 시작했다.' 그렇다. 이런 소설은 널리 읽혀야 한다. 600페이지를 견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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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12-08 0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한 십년쯤 전이었나, 이거 엄청 재미없게 읽은 기억이 나는데... 다시 읽으면 확 다르게 다가오겠네요. 이 책은 아마도 팔지 않은 것 같으니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LAYLA 2016-12-08 20:4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락방님
엄청 재미없게 읽은 기억->백푸로 정확하실 겁니다 껄껄
사실 다시 봐도 인내심이 필요하긴 했어요
그렇지만 번역자 분이 고생하며 열심히 하신거 같다는...그런 생각을 했답니다 흑흑 락방님에게도 새로운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재독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

자강 2016-12-08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시작하기가 두려워지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