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 - 상 을유세계문학전집 85
볼레스와프 프루스 지음, 정병권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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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배경은 19세기 폴란드이고 주인공은 상인 보쿨스키 그리고 귀족의 딸 이자벨라이다.보쿨스키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입에 풀칠할 길이 없어 돈 많은 과부와 결혼한다. 그 과부가 죽고 난 뒤에 별다른 꿈도 포부도 없이 아내가 남긴 상점을 꾸려가다 어느날 우연히 귀족의 딸 이자벨라를 보고 첫눈에 반하고 만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할 방법을 미친듯이 생각한다. 천대받는 '상인'인 그가 고귀한 귀족 아가씨의 곁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한 대상인이 되는 것 뿐. 그래서 그는 목숨을 걸고 모든 재산을 정리하여 전쟁터로 떠난다. 그리고 군수사업에 뛰어들어 보통사람은 꿈도 꾸지못할 큰 돈을 벌어 귀향하는데...


단순한 사랑이야기라 하기엔 당시 몰락해가는 귀족들의 허위의식, 신흥 자본가 계급의 도약,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죽어라 고생하며 사는 폴란드 민중의 삶이 촘촘히 그려져 있어서 대하소설과 같은 느낌이 난다. 물론 그렇다 하여도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이자벨라를 향한 보쿨스키의 사랑이다. 그는 이제 귀족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사업가가 되었지만 혼자인 순간이 오면 어떻게 이자벨라의 사랑을 얻을 수 있을지 전전긍긍하고 그녀의 미소와 말 한마디에 온갖 의미를 부여한다. 마흔다섯에 열다섯 소년처럼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가 그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모습은 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만의 방식이란, 이자벨라의 아버지와 포커를 치면 일부러 져주고 이자벨라가 어려운 형편 때문에 은식기를 시장에 내놓으면 모른척 일부러 고가에 사들이고 그녀의 교양 수준에 맞추기 위해서 남몰래 영어를 배우는 것 그리고 가끔 그녀의 냉당함에 그녀를 미워하게 될 때면 '나는 그 사람에게 죽을 때까지 고마워해야 할 거야. 내가 그 사람에게 미치지 않았다면 재산도 모으지 못했을 것이고, 가게 계산대 뒤에서 썩어 가고 있었을테니...'라고 정신승리하며 다시 그녀에 대한 애정을 회복하는 것. 


보통 소설속에서 어떤 목적을 위해 신분상승을 이룬 남자 캐릭터는 차가운 경우가 많은데 보쿨스키는 인간적인 따뜻함을 간직한, 명석하고 도덕적인 사람이다. 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도 운의 도움은 받았지만 부정한 짓은 절대 저지르지 않는다. 돈을 번 다음 어려운 사람을 보면 주저하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창녀들에게는 직업교육을 제공한다. 보수적인 동네 사람들은 그가 창녀를 가까이 한다는 것만으로 온갖 입방아를 찧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이처럼 밝은 사람이 경박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 앞에 어떤 갈피도 잡지 못한 채 미친 사람처럼 번뇌하고 회의한다는 것이 소설의 포인트일 것이다. 계급사회가 무너지고 전쟁의 위기감이 전 유럽을 위협하는 19세기 후반, 바르샤바의 마지막 로맨티스트 보쿨스키는 과연 자신의 사랑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폴란드 작가의 소설은 읽어본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 작품을 통해 폴란드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구글 맵으로 바르샤바의 모습도 찾아 보았다. 독자들은 알테다. 지도로 그 곳을 찾아본다는 건 그만큼 그 문학 작품이 생생했다는 것, 사실과 관계없이 이미 내 가슴 속에서 소설의 주인공들은 바르샤바의 거리를 걸어다니고 있다는 것. 무려 1200페이지를 통해 작가가 하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는 이 책이 내가 아는 세상에 양감을 더해주었단 생각이 들었다. 문학작품을 통해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는 것이 이런 의미였구나 하고 실감할 수 있었달까. 많은 책을 읽었지만 그런 실감을 준 작품은 이 작품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멋진 작품.


* 인형이 폴란드에서 수차례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하여 구글로 찾아본 보쿨스키의 모습.

내가 생각하는 모습과 거의 일치해서 놀랍고 만족스러웠다. 강한 의지와 불안함으로 인한 신경질이 묻어나는 얼굴 그리고 비싼 고급 외투와 모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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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숲으로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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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줄거리도 없이 여자 셋이 아무말 대잔치 하는데 그게 힐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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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숲으로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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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 돌아가고 싶어진 적 있어?
-물론 있지~ 잡지에서 맛있어 보이는 음식점을 발견했을 때나 밤늦게까지 영업하는 책방이 그리워질 때, 백화점 지하를 하릴없이 돌아다니고 싶어질 때도 있고 주변 사람들이 귀찮은 날도 있어. 그리고 또 애인을 찾고 싶지만...도시에 있는 너나 마유미도 싱글이니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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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 하 을유세계문학전집 86
볼레스와프 프루스 지음, 정병권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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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 대해서라고요? 그러나 저를 몰랐잖아요?
-알고 있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아가씨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몇백 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자주 듭니다. 누군가에 대해 자나 깨나생각하면 시간이 엄청나게 길어집니다.

어리석은 계집애들. 그들은 생각하겠지, 부자 남편도 잡고, 잘생긴 애인도 생겨서 소원을 이루었다고...어리석은 것들. 그들은 모라. 늙은 남편도 빈털터리 애인도 곧 싫증이 나고, 조만간 진실한 사람을 사귀고 싶을 때가 온다는 것을. 그럴 때 그녀가 불행하게도 그런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겠나? 팔아 버렸던 매력을 혹은 스타르스키 같은 사람으로 오염된 마음을,,,? 한번 생각해 봐요. 그들은 사람들을 알기 전에 틀림없이 비슷한 길을 가게 된다는 것을. 그전에 아주 고결한 사람을 마나게 되더라도 그녀는 그런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늙은 부자나 무례한 건달을 택하겠지. 그런 결혼에서 인생을 허송하다가 언젠가 다시 시작하고 싶어질 때에는 이미 너무 늦었거나 또는 가망 없는 일이지. 내가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남자들이 그런 인형 같은 여자들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이지.

이그나치 제츠키 이 늙은 바보! 너는 상상하고 있나 나폴레옹의 후손이 권좌에 오르고 보쿨스키가 능력이 있기 때문에 특별한 일을 하게 되고 또한 그가 정직하기 때문에 행복하게 되리라고? 이 나귀 머리처럼 미련한 친구야. 생각하고 있나, 못된 사람들이 당분간은 잘되고, 정직한 사람들이 잘못되어도, 결국에는 못된 사람들은 수치스럽게 되고, 정직한 사람들은 명예롭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상상하는 거야? 그렇다면 너는 바보 같은 상상을 하고 잇는 거야! 세상에 질서는 엇ㅂ어. 정의도 없고. 있는 것은 투쟁이야. 그 싸움에서 좋은 사람들이 이기면 좋은 거고, 나쁜 사람들이 이기면 나쁜 거지. 좋은 사람들만 보호하는 어떤 강력한 힘이 존재한다고 상상하지는 마라. 인간들은 나뭇잎 같은 거야. 바람이 불어서 잔디 위에 떨어지면 잔디 위에 누워 있는 거고, 바람이 진흙탕 위에 떨어뜨리면 진흙탕에 처박히는 거지.

-또 들은 것이 있어. 보쿨스키가 청혼했다면서...
-그래, 말해 줄게. 그가 청혼했어! 나를 볼 때마다 청혼해. 나를 보면서, 나를 안 보면서, 말하면서, 말이 없으면서...

그 재산은 내가 일해서 번 것이 아니라, 이겨서 번 것이지요. 모험적인 도박사처럼 판돈을 배로 늘려 가면서 10여 차례 이긴 것이지요. 내가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나는 절대로 위조 카드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죠.

-아 그 말 은 맞지 않아요 보쿨스키 씨. 우리는 당신에게 호의적이었고 당신을 존중했소.
- 존중....! 공작님께서는 제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존중이 어디에 근거하고 당신들 사이에서 나에게 어떤 위치를 보장하는지? 사스탈스키씨, 니빈스키씨 심지어 한 번도 일해 본 적이 없고 돈이 어디서 나는지 알 수 없는 스타르스키 씨가 당신들의 존중 정도에서 나보다 열 단계 높지요. 제가 하려는 말은,,외국 뜨내기는 누구나 쉽게 당신들 살롱에 들어갈 수 있지요. 그러나 제 경우는 어땠습니까. 저에게 맡긴 돈에 대해 15퍼센트 이자를 지불하고 그곳에 입장할 수 있었잖습니까! 제가 아니라 그들이, 그 사람들이 당신들의 존중을 누렸고 공평하지 않은 특혜를 가졌습니다. 그 사람들 하나하나는 우리 가게에서 심부름하는 아이보다도 가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만일 그 금속을 발견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발견하게 되면 그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 아닌가...? ... 그럼 어떤가? 최악의 경우에도 나는 발견을 위해 노력한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인 것이다. 그런 일에는 가치 있는 용도가 없는 재산과, 목표 없는 삶을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여기 방구석에서 시간을 낭비하거나 혹은 카드놀이로 멍청하게 시간을 죽이는 것보다는 전례 없는 명성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나은 일 아니겠는가?

그 사람은 지금까지 이성적으로 행동하면서 산 적이 없어요. 점원일 때에는 발명가와 대학을 생각했고, 대학에 들어갔을 때에는 정치 놀음을 시작했지요. 나중에는 돈 버는 대신 학자가 되었고, 빈손으로 바르샤바로 돌아왔지요. 민첼 부인이 아니었으면 아마 그는 굶어 죽었을 겁니다. 드디어 그는 돈을 벌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상인으로 번 것이 아니라, 몇 년 전부터 바람둥이로 소문난 여자의 숭배자로서 번 것이지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그는 돈과 여자를 가지게 되자, 두 가지 모두를 버렸어요. 지금 그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어요? 당신이 현명하다면 말해 보세요. 바보, 완벽한 바보! 현실에 없는 것을 끊임없이 찾는 순수한 폴란드 피의 낭만주의자...

당신도 전형적인 낭만주의자입니다. 다만 어리석은 일을 저지를 기회가 적었을 뿐이지요.

낭만주의자들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 의미 없는 일이지요. 오늘날의 세계는 그들에게 맞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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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초상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7
헨리 제임스 지음, 최경도 옮김 / 민음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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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고전이 시대를 관통해 호소력을 가지는 작품이라는 의미라면 이 작품은 유효기간 임박의 고전이라고 평해야 하지 않을지. 원래 헨리 제임스에 대해서는 그 명성에 비해 다소 미심쩍은 작가라는 평을 하고 있었는데 여인의 초상을 통해 그간의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오히려 내가 불편함을 여긴 지점을 명확하게 짚어낼 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여성혐오' 이다. 미소지니라는 용어가 보편화 되기 이전에는 그러한 개념 자체를 몰랐기에 헨리 제임스의 소설을 읽으며 느껴지는 거부감을 꼬집어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그가 남성작가이기에 여성 캐릭터를 타자화 시킨다고 느꼈고, 그래서 그의 여자 주인공들은 늘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소설의 서사 역시 핍진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느꼈다. 


가령 예를 들자면 그의 작품 데이지 밀러는 자유분방 천진난만하고 인생에 대해 낭만적 전망을 간직한 젊은 미국여성이 주인공인데 그녀는 바로 그 자유로운 기질 때문에 밤 산책을 하던 중 모기에 물려 말라리아에로 죽고 만다. 뭐지? 산책 하고 싶으면 밤이라도 튀어 나가는 여자는 죽어 마땅하다는 것인가? 워싱턴 스퀘어의 경우에는 상속받을 재산은 많으나 못생긴 여자가 주인공인데 이 여자는 자신에게 구애하는 남자를 만나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못난 내 딸에게 구애하는 남자는 재산을 노린 놈팽이일것이 틀림없다'며 끝끝내 결혼을 반대한 나머지 결혼을 포기하게 되고, 그렇게 노처녀로 늙어 죽게 된다. 소설을 읽을 당시엔 그것이 당시 현실의 반영일 것이라고 어느정도 이해를 해보려 했으나 새디스트가 쓴 괴랄한 작품을 본 것만 같은 불편함을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못생긴 여자를 사랑할 이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고 여자는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는 굳건한 믿음 없이는 저런 작품이 나오기 어려울 것임을 어느정도는 직관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리라. 


여인의 초상에는 데이지 밀러와 유사하게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간직한 여자 주인공 '이사벨' 이 등장한다. 이사벨은 상속받을 재산이 거의 없는 처지이지만 세상 다른 여자들처럼 결혼을 통해 경제적 안정을 얻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결혼이 자신을 속박하는 굴레가 될까봐 유망한 미래를 가진 미국 자본가나 소작농이 수천명이나 되는 영국귀족의 프로포즈를 거절한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그런 흠 없는 혼처를 내치냐는 주변의 타박에 그녀는 답한다.


"나 자신을 속박하지 않겠다는 소원에는 어떤 잘못도 없다고 생각해. 난 결혼을 통해 인생을 시작하고 싶지 않아. 여자가 할 수 있는 다른 일들도 많으니까."


그리고 그녀 주변의 남자들은 이런 그녀의 모습에 오히려 더 끌리고 안달하게 된다. 그녀의 명민함과 개성에 반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독자들이 방심한 사이사이 이사벨이 그닥 비범하지 않은 '어쩔 수 없는 여자 1'일 뿐임을 묘사하는 서술을 끼워넣는다. 


그녀는 영리하고 너그러웠으며, 고상하고 자유로운 성격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어떻게 할 셈인가? 이런 질문은 잘못되었다. 여성 대부분이 이런 질문을 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대부분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아한 모습으로, 다소간 수동적인 자세로, 남자가 들어와 어떤 운명을 제시해주길 기다리기 마련이다. 


이사벨이 스스로 자신은 남들과 다른 인생을 살고 싶다 생각하고, 주변인들도 그녀의 개성을 사랑하지만, 뭐 그래봐야 그 시대의 여자가 가진 한계는 벗어나지 못하고 운명 타령하며 백일몽이나 꾼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독자들은 다소 혼란을 느낀다. 지금까지 이사벨이 결혼이나 꿈꾸는 다른 여자들과 달리 얼마나 명석한지를 지난하게 서술하다가 왜 갑자기 이제와서 이런 문장이 튀어나오는 것일까. 이사벨은 시대를 넘어서고자 하는 똑똑한 여성인가? 아니면 헛똑똑이 맹탕 입만 살아있는 여성인가? 나는 그런 혼란을 딛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내 나름으로 이해했다. "아무리 똑똑하다고 하는 여자라도, 아무리 똑똑하다고 칭송받는 여자라도, 알고보면 헛똑똑이다." 


헨리 제임스의 지난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여주인공 이사벨의 운명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전혀 예상치 않은 숙부의 유산을 상속받게 된 것이다. 그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그녀의 상속은 숙부의 아들이자 이사벨의 사촌인 랠프에 의해 결정된다. 이사벨을 흠모하지만 건강이 약해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랠프는 그녀에게 구애하는 대신 아버지에게 자기몫의 유산 절반을 이사벨에게 상속해달라고 부탁한다. 이사벨이 꿈꾸는 대로 유럽을 여행하며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평생 사치하며 살아도 죽을때까지 쓸 수 있는 거액의 유산이다.


- 너 좋을 대로 하자꾸나. 그런데 그게 좋은 일인지 의문이구나. 넌 그 아이의 돛에 바람을 불어넣고 싶다고 하는데, 너무 많이 불어넣는 것 아니냐?
- 순풍에 돛을 달고 항해하는 걸 보고 싶은걸요!
- 단지 네 즐거움을 위해서로구나
- 즐거움이죠. 커다란 즐거움이 될 거예요.
- 글쎄, 난 모르겠다. 요즘 젊은이들은 내가 젊었을 때와 사뭇 달라. 나는 젊었을 때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면 그저 보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거든. 그런데 넌 내게 없었던 망설임이 있고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걸 생각하는구나. 그러니까 이사벨은 자유인이 되고 싶어 하고, 그 아이가 부자가 되면 돈 때문에 결혼하지는 않을 거라는 뜻이지. 그렇게 할 아이라고 생각하니?
- 그럼요. 하지만 이사벨은 과거 어느 때보다 돈이 없어요. 그녀의 아버지가 돈을 낭비하는 습성 때문에 모두 써 버렸대요. 지금 그녀가 먹을 거라고는 성찬에서 남은 빵 부스러기뿐이고, 남은 재산이 얼마나 변변찮은지도 모른대요.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실제로 유산을 상속받는 것 외에는 자발적 근로로 돈을 벌기 어려웠던 것이 그 시대 여성의 현실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후에 숙부가 왜 자신에게 유산을 남겼을까 궁금해하는 이사벨과 랠프의 대화는 작가의 의도가 단순한 시대반영에 그치지 않는다는 암시를 준다.


-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이모부님이 내게 그토록 많은 돈을 남기시려고 했던 것을 알고 있었어?
- 이사벨, 내가 알았든 몰랐든 무슨 문제겠어? 아버지는 고집이 센 분이셨는데.
- 왜 그런 일을 하셨을까?
- 칭찬하는 차원쯤 되겠지.
- 무엇에 대한 칭찬?
- 네가 너무나 아름답게 살아 준 것에 대한 칭찬.


세상에... 너무나 아름답게 살아 준 것에 대한 칭찬이라니. 이사벨은 남자 주인공들이 관람하는 인형극의 인형쯤 되는 것일까? 구시대엔 저 대사가 낭만적으로 들렸을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여성숭배도 여성혐오라고 인지하는 21세기엔 저 대사가 너무 크리피하다.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이다. "니가 뭔데 날 기특해해?;;;;" 


그리고 이후 이사벨의 인생은 처참하게 망가져 간다. 유산을 상속받아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을 할 이유가 전혀 없어진 이사벨은 자유로이 세상을 보고 난 뒤 재산은 없지만 취향은 고상한 미국인 홀아비를 만나 사랑이라고 믿고 결혼하는데, 알고 보니 그녀의 지참금을 노린 사기꾼이었던 것이다. 사기꾼 남편은 결혼한 뒤 그녀의 영혼이 말라가도록 억압한다. 세속의 잣대를 들이대며 순종적인 아내, 생각없는 아내, 복종하는 아내가 될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녀의 재산은 펑펑 써재끼며. 


길고도 긴 서사를 통해 헨리 제임스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너무나 명확하다. "자유분방한 여자들은 가벼운 호기심과 발랄함만 가지고 있을 뿐이지 실제로 자신의 인생을 내실있게 꾸려갈 능력은 부족하다.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와 사기꾼도 구분할 줄 모른다" 이쯤되면 헨리 제임스가 똑똑한 여자에게 차인 다음 그 앙심으로 남은 생을 작품생활에 바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이다... 


소설의 말미, 이사벨은 궁지에 몰린다. 남편이 계획적으로 자신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어리석은 자신을 혐오하는 동시에 사회적으론 결혼생활이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해야 하고, 실제 가정 생활에서는 자신을 순종적으로 길들이려는 남편과 맞서야 한다. 갈등은 임종이 임박한 사촌 랠프에게 가봐야 겠다는 이사벨을 남편이 막으면서 폭발한다. 외간남자와 오래 있는 것이 법도에 어긋난다는 남편의 주장에 이사벨은 최악의 결말을 감수하고 집을 떠나는 것이다. 결국 그녀는 랠프의 임종을 지키지만 마지막 문제가 남는다. 지금의 남편과 이혼하여 자신의 실패를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남편에게 돌아가 시들어가는 삶을 지속할 것인가. 소설 속 인물들은 당연히 그녀가 이혼을 택할 것이라 생각한다. 결혼 전 이사벨의 캐릭터를 떠올려본다면 이혼을 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이사벨은 인생의 풍파에 지쳤고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이 와중에 옛날에 자신에게 구애하던 미국인 자본가는 자유로운 그 나라의 풍습답게 그녀에게 이혼하라고 종용한다. 자신에게 다시 오라는 말이다. 


"가급적 당신의 인생을 지켜야 돼요. 일부분을 잃었다는 이유만으로 전체까지 잃어선 안 돼요. 겉으로 보이는 상황,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 세상의 형편없고 우둔한 짓거리 따위를 걱정하는 건 당신 자신에 대한 모독입니다. "


맞는 말이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멋대가리 없는 로보트 같던 이 미국인 자본가 캐릭터가 그래도 좀 괜찮은 구석도 있다고 느꼈다. 멋은 없지만 끝까지 가는 순정은 간직한 인물이라 생각했다. 이사벨의 주위를 맴돌던 그 많은 남자들 중 결국 맺어지는 사람은 이 남자인가? 싶었다. 그가 억지로 이사벨에게 키스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21세기 말로는 성추행이라고 하는데, 그는 이사벨의 의사와 전혀 관계없이 자신의 감정에 취해 키스를 한다. 놀란 이사벨은 그를 피해 달아나고 곧 남편에게 돌아가게 된다. 그것이 이 긴 소설의 결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비극적 결말' 이라고 한다. 고통스러운 결혼생활로 돌아간 이사벨을 생각한다면 분명 비극적 결말이다. 친구라 믿었던 이에게마저 배신당한 이사벨이 인생에 대한 희망적인 전망은 모두 잃어버리고 무기력하고 비관적인 인물로 변질되었음을 결말은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비극적 결말이나 새드 엔딩은 그 자체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 세상풍파에 찌들려 냉소적으로 변하는 소설 속 주인공이야 어디 한 둘이던가. 중요한 것은 작가가 그런 캐릭터를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냐는 것이다. 바닥을 치는 마지막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캐릭터을 그려냄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에 빛을 비추는 작가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헨리 제임스가 말하고 싶었던 건 그런 긍정적인 종류의 이야기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가 설파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똑똑한 여자라도 올바른 결정을 내릴 능력이 없으며 결국 그러다가 시집 잘 못 가면 인생 망하는 것입니다.'에 가깝지 않은지. 평론가들은 '삶의 시련을 겪으며 성숙해 가는 이사벨의 캐릭터를 통해 살아 움직이는 한 인간의 초상을 그려내며...'라고 운운하는데 글쎄, 정서적 폭력을 행하는 남편 밑으로 굽히고 들어가는 여자의 모습이 한 인간으로서의 성장인가? 그녀의 영혼과 인격은 성장한 것이 아니라 그냥 손상되었을 뿐이다.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되었을 뿐이다. 


헨리 제임스와 비슷한 시기에 거의 비슷한 소재(미국 상류층 여성)로 활동한 여성작가 이디스 워튼이 그려낸 여성은 몰락의 길을 걷더라도 동물적 생존본능은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진흙탕에 빠지면 힘껏 발버둥 친다. 하지만 헨리 제임스의 여성들은 발버둥도 치지 않는다. 최소한의 동물적 본능까지 거세해버린, 남성들이 그려낸 인위적 여성상이기 때문이다. 그런 인형 같은 여자의 인생을 난도질하여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헨리 제임스에게 나는 불쾌함을 느낀다. 역시 그는 새디스트였어... 


나는 이 소설의 결말에 대해 며칠간 생각하였다. 정말로 이사벨은 지옥같은 결혼생활로 돌아간 것일까? 자신의 선택이 실수였음을 인정할 용기가 없어서 남은 생을 모두 저당잡혀 온순한 아내로 길들여졌을 것인가? 작가는 그것을 바랬겠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 자본가의 키스는 이사벨에게 상처를 줬지만 그것이 그녀가 인생을 포기하게 만들만큼 큰 타격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이사벨이 처녀시절 간직했던 독립심을 되살리는 매개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남편을 떠난다 하더라도 다시 다른 남자를 만나거나 남자에게 기대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렬하게 깨닫게 해주는 매개. 이사벨은 남편에게로 돌아갔다. 결혼생활을 지속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혼장을 던지기 위하여. 다른 남자의 도움을 받거나, 재혼에 대한 확답을 받은 다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혼자 스스로 서는 삶을 위해 그녀는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남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사벨의 모습이다. 이것이 여성독자가 생각하는 '성숙'의 모습이다. 작가는 그러고 싶지 않았던 것 같지만 나는 이렇게라도 그녀에게 마지막 숨을 불어넣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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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2-21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표지는 이디스 워튼의 <기쁨의 집>과 같은 표지 아닌가요? ㅎㅎㅎㅎ 아닌가?

LAYLA 2018-02-22 03:09   좋아요 0 | URL
맞아요!! ㅎㅎ 펭귄에서 나온 기쁨의 집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데요 이 책은 읽자마자 곁에 두고 싶지도 않아 중고책방에 팔아버렸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