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따위를 삶의 보람으로 삼지 마라 - 나답게 살기 위해 일과 거리두기
이즈미야 간지 지음, 김윤경 옮김 / 북라이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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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삶의 방향성이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요즘 세대들을 타겟으로 하는 일반적인 정신승리류의 에세이에 비해서 상당히 진지한 책이기는 하다. 저자는 정신과 의사로 시니시즘에 젖은 많은 청년세대를 치료한 경험이 있으며, 이 문제의 원인에 대해 병리적 접근을 벗어나 사회경제적인 원인을 찾아나선다. 사실 여기까지는 상당히 독창적이고 사고의 흐름에 있어 탁월하다고 할만하다. 


저자는 경제성장이 고도화되어 성장률이 둔화되고 노동이 분절화되어 파편화된 현재의 상황에서는 이전세대가 추구하였던 '직업적 자아실현'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진단한다. 또한 젊은 세대들은 이런 현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에 '도전'이라던가 '패기' 가 젊은 세대의 미덕으로 간주되던 이전의 패러다임을 거부하고,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 아주 어린 나이부터 고민하기 시작한다고 설명한다.쉽게 말하자면, 어짜피 아둥바둥 일해봐야 40대 50대에 명퇴하고 별거없는 인생인데 왜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을 십대부터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노동은 선이고 노동이 미덕이며, 노동을 통한 자아실현이 최고선이라는 종교적.자본주의적 가치관이 전세계를 장악하고 있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답이 없는 고민 '어짜피 뻔한 인생인데 무슨 일을 해야 좋을까?'를 하는 것이고 이러한 쳇바퀴 모순 속에 많은 젊은이들이 무기력과 우울함에 사로잡힌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진단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그가 해결으로 제시하는 대안은 문제를 제기한 구조적/사회적 요인과 무관하게 개인 수준의 자발적 실천이라는 점이다. 그는 많은 성인들이 행동을 하기 전 본능적으로 행위의 경제적 득실을 따지며 가장 효율적인 선택만을 내리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이 재미가 없다고 말한다. 때로는 우연에 몸을 맡기고, 인생에 의미가 있는가 없는가를 고민하지 말고 내 스스로 인생에 의미를 둘 것인가 말 것인가 결정하는 주체가 되라 말한다. 이런 종류의 제안이 그리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지만. 거창했던 문제제기에 비해 용두사미격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또한 학문적으로 보자면, 원인을 구조로 상정하면 해결책 또한 그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동등한 수준에서 제안해야 의미가 있다. 문제는 구조인데 해결은 마음으로 하라니. 이건 무슨 소리인가. 


저자가 쓴 건 논문이 아니라 교양서라고 감안해서 이해를 해준다 할지라도, 최소한 자신이 자부하는 환자들의 치료 케이스들이라도 몇 가지 예를 들어 주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진단까지는 꽤 흥미로웠다. 이전에는 40대 이상이 하던 고민이 저연령화되어 이제는 십대부터 시작한다는 부분은 특히 좋았다. 이런 부분은 정신과 의사가 전문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부분이리라. 하지만 앞서 말한 부분들에서 남은 아쉬움은 어쩔 수 없으며, 이런 부분을 더 보완한다면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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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8-04-16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해결방법을 제기하는 책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쉬운 건 아니지만 어쨌든 대다수의 책들이 문제제기나 파악을 하는 정도까지는 잘 나가는데 그 다음 부분은 좀 많이 부족한 듯..

LAYLA 2018-04-16 00:53   좋아요 1 | URL
마르크스 같은 사람이 쉽게 나올수는 없겠지요. 이 저자는 열정은 넘치는데 의학도라 그런지 이런 종류의 논의를 탄탄하게 이어나가는 부분은 취약하다 싶더라구요. 마르크스 이야기가 나온 김에...저자는 마르크스의 분석에서 노동이 분업화된다는 부분은 차용하고 또 한 편으로는 마르크스 때문에 현대인들이 모든 행위에서 잉여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를 따지기 때문에 문제라고 하는데... 사석에서 하면 그럴듯한 말 같으나 이렇게 책으로 엮어두니 논리성이나 과학성은 무척이나 취약하다 싶네요. 최근 미국에서 나오는 조기은퇴하라, 하루 4시간만 일하라는 류의 책도 현실성이 떨어질거 같다는 인상인데 시간이 되면 읽어볼까 해요.

transient-guest 2018-04-17 0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 4시간 일하고 어쩌고는 제가 예전에 읽은 책 같습니다. 처음엔 혹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면 ‘나‘는 4시간 일하고 나머지는 노는 걸 설파하는 저자의 여가시간을 받쳐주는 건 또 다른 이들의 노동이더라구요. 뭔가 진리를 찾은 양 떠들지만 아직은 타인의 노동을 원동력으로 삼거나 아이템을 잘 잡은 무역중개의 경우가 아니면 먹고 사는데 필요한 만큼을 벌기 위해서는 여전히 8-10시간 이상의 노동이 요구되는 것 같습니다.ㅎㅎ
 
왕가위 - 영화에 매혹되는 순간
왕가위.존 파워스 지음, 성문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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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영화마다 꼭 되돌아오는 빠져나갈 수 없는 ‘사랑의 갈망‘, 더 심오하게는 ‘사랑의 상실‘이란 주제를 이때부터 추구하고 있었다. 왕가위 버전의 사랑의 갈망과 상실의 세상은 높친 기회, 부재중 연락, 지나치는 야간 지하철로 이루어진 우주다. 젊든 늙었든, 결혼했든 미혼이든,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그의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레너드 코헨의 노래 가사 ‘사랑에는 치료제가 없다‘는 게 사실임을 깨닫는다. ...이 주제에 집착하는 왕가위를 보고, 그가 몸소 사랑의 고통을 겪었기에 그런 작품이 나오는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허나 현실의 왕가위는 그의 아내 에스터와 행복한 결혼생활 중이고 최근 버클리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 과학도로 진학한 아들 칭도 두었다. 부부는 카오룽의 한 가게에서 청바지 판매원으로 만난 이후 쭉 함께였다. 당시 그는 19세 그녀는 17세. 거의 40년의 세월을 함께한 셈이다. 언젠가 내가 물었다.


"궁금해서 그러는데 어째서 불행한 사랑 이야기만 만드는 겁니까? 당신 사랑은 안 그러면서."

그가 잠시 생각한다. 그러다 마침내 대답한다.

"내 사랑이 안 그래서일지도 모르죠. 살아보지 못한 인생을 생각하는 게 훨씬 재밌잖아요. 실컷 상상할 수 있으니까."

왕가위처럼 장숙평도 상서로운 우연과 마술적 사고에 엄청난 믿음을 갖고 있다. ‘간절히 생각하면 바라던 게 결국은 찾아온다‘고 그는 주장한다.

"정말 옵니다. 아비정전때 옛날식 냉장고를 찾아다녔는데 정말 찾기 어려운 모델이었거든요. 그런데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했더니 우리 비서가 하나를 찾아냈어요 뭐든 마음속에 있다면 언젠가는 찾아오게 돼 있습니다. 해피 투게더 때는 아르헨티나에서 크리스와 함께 폭포를 촬영하러 갔는데 그 당시 폭포수가 정말 엄청난 양이었습니다. 찍은 걸 보여줬더니 환상적이라며 다들 만족해했죠. 나중에 왕가위가 폭포를 한 번 더 찍어왔으면 좋겠다고 해서 다시 갔더니 그때는 물이 거의 없었어요. 알고 보니 우리가 처음 폭포를 찍었을 때 그전 일주일 동안 계속 비가 왔다더군요. 그런 환상적인 장면을 얻은 건 순전히 운이 좋았던 거죠. 왕가위와 나는 항상 이 말을 믿어요. "받아들여라, 그럼 올 것이다."

중경삼림이 제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라는 말로 시작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근데 저 말만 하면 감독님은 어쩐지 불쾌해하는 것 같더라고요.

아뇨, 안 그런데?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서 혹시 후다닥 만든 작품이라 그러시나 하고.

글쎄요 전 그런 느낌 없는데. 사람들이 보통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를 말할 때 저는 그게 영화보다 말하는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걸 말해준다고 봐서(웃음)

우리가 알고 있는 화양연화의 아이디어 전체가(양조위의 캐릭터가 특히) 칸 영화제에 늦을 거 같단 이유로 180도 바뀌었다는 게 저는 살짝 불편한데요.

하지만 그런 일은 늘상 일어나는 걸요. 누구든 영화를 만들면 스토리가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일이 진행되는 내내 선택지가 나타납니다. 이 인물은 이걸 할 건가 아님 저걸 할 건가? 그리고 그런 선택 하나하나가 나중에 더 많은 다른 선택으로 이어지고요. 가능성은 끝도 없이 불어납니다. 그중 몇 가지를 시도해보죠. 하지만 가능성 하나한마다 가격표가 붙어 있고, "한번 해보자"는 말만큼 이 업계에서 비싼 말도 없습니다. 최종적으로 손에 남는 건 지금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그러나 원했던 게 아닐 수도 있는 한 편의 영화인 거죠. 영화를 만든다는 게 사람들에게 당신이 가진 담배를 깊이 들이마셔보라며 내미는 행위와 비슷합니다. 그렇게 들이마신 부분이 화면에 담긴 것들이죠. 나머진 그냥 재일 뿐입니다.

평범한 일반인을 찍을 때조차도, 감독님은 그들에게 빛을 부여해서 그들이 실제보다 훨씬 잘나 보입니다.

저는 제 영화 속 인물들을 좋아합니다. 자기 영화 속인물들을 좋아하면 그들을 보는 시각도 다정해지죠. 저는 영화를 보면 감독이 그 영화 속 배우를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보입니다. 다 드러나요. 턱이 두 겹으로 찍히고 조명을 못 받고 그런 게 아니라, 그보다 훨씬 포괄적인 어떤 것입니다. 즉, 다정함이 없다는 것. 저는 캐릭터들과 함께 있고 싶지 그들 위에 군림하고 싶진 않아요.

그 말씀인즉, 아름다움을 잘 포착하는 실력은 애정에서 우러나온다?

영화 속 아름다움은 시각적으로 어떻게 보이느냐 이상의 문젭니다. 좋은 영화는 보고 난 뒤에 남는 맛이 있어야 해요. 어떤 한 장면일 수도 있고 한 줄의 대사일 수도 있고 그냥 어떤 한 순간도 좋고요. 뭐가 됐든 관객에게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남는 게 있어야 합니다.

이 시나리오를 쓰시는 데 그렇게 오래 걸렸다는 게 웃겼어요. 왜냐하면 해피 투게더를 생각할 때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아파트, 폭포, 가죽재킷을 입은 장국영, 불행해 보이는 양조위 표정, 그런 것들이거든요. 행동이 기억에 남는다는 거죠. 대사라고 해봤자 기억에 남는 건 양조위가 장첸의 녹음기에 한 말입니다. 우리 귀에는 사실상 들리지도 않았지만.

그 말은 칭찬이라 생각하겠습니다. 사실 최고의 대사는 두드러지지 않는 대삽니다. 개인적인 선언 같은 게 아니라 그 배역한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와야 하는 그런 말들이죠. 그게 다 제가 티비 방송 출신이라 그렇습니다. 티비는 대사와 플롯이 전부 다라서. 하지만 영화는 대사와 플롯에 대한 게 아니죠. 영화는 행동에 대한 겁니다. 우리는 사람의 말보다 행동을 통해 그 사람을 많이 알게 됩니다. 말에는 거짓에 포함될 수 있으니까요. 양조위가 연기하는 인물은 자기가 좋은 사람인듯 말하지만 실상은 장국영의 여권을 숨겨놓고 안 주잖아요.

저는 이 책이 쉽게 굴러갈 거라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만.

빔 벤더스가 자기 책을 두고 한 말 같은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하려 했던 도전은 ‘묘사가 불가능한 경력을 묘사하려는 시도‘였다고. 저는 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거든. 사람들이 재즈를 두고 ‘꼭 물어봐야겠다면 결국 영영 모를 것이다‘라고 하는 것처럼요. 개인적인 이야기도 역시 좋아하지 않아요. 이건 영화 이야기 하자는 것보다 명분이 더 없어. 영화를 만든 30년 가까운 세월을 300페이지 책 한권과 맞바꾼다는 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발상인지. 이 책을 수락한 건 딱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어요. 제 아들이 올해 스물한 살이 됩니다. 소년 시절을 뒤로 하고 성인이 되는 거죠. 아들과 아들이 보낸 유년기에, 왕가위의 의미는 부재나 다름없었습니다. 처음엔 제 직업적 경력이 만들어낸 스펙터클에 그 애를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아서 보호하려 했던 거였지만, 나중엔 그 애 자신이 사람들의 시선을 원하지 않더라구요. 제 영화 중에서 그 애는 일대종사와 화양연화 밖에 안 봤습니다.

혹시 그 애가 나머지를 볼 날이 오면 저는 그 영화들을 자기 형제와 누이로 맞아주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어떤 면에선 아들도. 그 영화들도 함께 자란 셈이니까. 그리고 어떤 형제와 누이들이 그런 것처럼 어떤 아이는 잘되고 또 어떤 아이는 잘 안되고, 일부는 뒤늦게 좋은 결실을 보기도 하고 그런 거죠. 이 모든 형제 누이들의 공통점을 혹시 이 책이 그 애에게 알려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인생을 살면서-뭐든 대담한 시도를 하려면- 한 번쯤 해야 하는 이 말 한마디에서 태어났다고. 그래, 한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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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따위를 삶의 보람으로 삼지 마라 - 나답게 살기 위해 일과 거리두기
이즈미야 간지 지음, 김윤경 옮김 / 북라이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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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기의 위기는 대개 중년기인 40대 후반에서 60대 전반 무렵에 찾아오는데, 최근에는 이러한 고뇌가 20대 젊은 층에서도 일어나는 저연령화 현상을 보인다. 드물게는 10대 후반에 발생한 경우도 보았다.

...한 가지 원인은 사회적 자기실현이 현실과 동떨어져있다는 데 있다. 현대의 젊은 세대는 정보화의 발달로 인해 어른들이 겉으로 연기하는 ‘사회적 자신, 즉‘역할적 자신‘이 그 무대 뒤에서 얼마나 공허한지를 상당히 이른 나이부터 알 수 있는 환경에서 삵 있다. 따라서 옛날 세대처럼 현실에서 낙관적이고 희망에 찬 장래의 모습을 그린다거나 천진하게 꿈을 향해 나아가기 힘들다.

...이렇게 현대의 젊은 세대는 청년기의 위기를 건너뛰고 바로 중년기의 위기와 다름없는 고민과 마주한다. 그들에게는 장래에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까 하는 사회적 자기실현에 대한 고민보다 한층 더 깊은 곳에 자리한 ‘살아가는 일의 의미를 추구한다‘는 실존적인 굶주림이 오히려 절실한 문제가 되었다.

어른들은 ‘왜 일해야만 하는가?‘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당장 어떻게든 그럴싸한 말을 해주고 싶지만 내심 대답이 궁해진다. 자신은 그런 의문을 품은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 어른들이 고작 한다는 말은 "사치스러운 고민이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했어" "사람이니까 일하는 게 당연하지" 등 궁색한 답변뿐이다. 하지만 이는 ‘애 일해야만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아닐 뿐만 아니라 헝그리 모티베이션으로 살아온 인간의 정지된 사고를 여실히 드러낼 뿐 전혀 설득력이 없다.

루터는 성서에 자주 등장하는 소명이라는 개념을 일에 종사하는 것은 모두 소명이다 라고까지 확대해석하고 이것을 천직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이미 신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실현이라는 명목으로 본연의 나에 어울리는 직업을 찾는데 힘을 쏟고 있다.

진정한 자아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본인에 의해 창출되는 ‘새로운 자신‘으로 완전히 개념이 바뀌었다는 점은 참으로 이상한 현싱이다. 게다가 많은 사람이 일 찾기를 통해 자아를 찾을 수 있다고 믿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진정한 자아가 자신의 내면이 아니라 바깥쪽에 갖춰져 있고, 그래서 이미 사회에 마련된 ‘직업‘에 연결함으로써 자아가 실현된다는 사고방식은 확실히 사람들을 끝없는 자아찾기, 즉 일 찾기의 미로로 몰아넣고 있다.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지정한 자신을 밖에서 찾고 있다는 점과 그것을 직업이라는 좁은 범주에 맞춰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에 준비되어 있는 일의 대다수가 노동이라고 불리며 보람이 적고 단편화되어 있는 오늘날, 기존의 선택지 안에서 끊없이 ‘직업 찾기‘에 매달려 헤매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때로는 자신의 마음=몸이 내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직업이나 활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창출하는 것도 좋고, 어딘가에 이상적인 직업이 준비되어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자신의 자질에 맞고 더 어울리는 직업으로 진로를 변경해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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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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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에 실린 호평을 보고 집어든 책인데 읽는 동안 그리고 완독을 한 이후에도 '왜?'란 의문이 들었다. 한국이 청소년 문학 불모지라서 이 정도 완성도가 최상급으로 분류되는 것일까? 가장 큰 불만은 책에 등장하는 청소년 캐릭터가 전부 전혀 청소년답지 않다는 것이다. 어른이 만들어낸 타자화된 청소년 캐릭터들이 연기를 하는 느낌이다. 그만큼 전형적이고 생기없고 지루하다. 서사도 그리 인상적이지 않다. 나중에 저자가 극작과 출신에 시나리오 작업을 오래 했다는 걸 보고서, 아. 그래서 그랬구나. 싶었다. 이 이야기를 텔레비전 단막극이나 영화로 만든다면 그렇게 거슬리지 않았을거 같다. 거긴 원래 과장된 캐릭터들의 무대이니까. 온순한 결말, 누구나 다 아는 결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자리이니까. 하지만 책의 형태로는, 굳이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나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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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18-04-10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라님. 담담하게. 늘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이 자리에서 볼 수 있길 바라요. 아, 계속 읽고 있구나. 쓰고 있구나. 살아내고 있구나. :)
 
부모와 다른 아이들 1
앤드류 솔로몬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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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대만에 가서 여행하며 알게 되었던 친구를 다시 만났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상처를 주고 받을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 친구가 이러는 거다. "아프리카 여행하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죽을 뻔한 적이 있었는데 아프다가 깨어나니까 애를 가져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승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죽음 직적에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고 싶다는 동물적 본능 때문이든 뭐든, 그 순간에 나는 내가 이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확신이 생겼다. 부모가 우리에게 상처를 준 것은 맞다. 하지만 네 자신을 봐라. 넌 정상이고 꽤 괜찮은 사람으로 자랐다. 인간은 생각보다 강하다. 그리고 나는 네가 좋은 엄마가 될 거라고 확신해' 이런 말을 하며 친구가 권해준 것이 바로 이 책. 한국 와서 실물을 보고 좀 놀랐다. 800권짜리 책이 2권. 레퍼러가 100페이지쯤 된다고 해도 무척 방대한 책이다. 


저자는 사람의 정체성을 부모로 부터 물려받는 '수직정 정체성'과 부모와 달리 독립적으로 타고나는 '수평적 정체성'으로 개념화 하고 수평적 정체성을 카테고리화 하여 부모와 어떤 문제를 겪고 어떤 인생을 살게 되는지를 십여년에 걸쳐 연구했다. 수평정 정체성은 장애, 성적지향, 범죄, 신동 등. 사실 책을 읽으며 나는 친구가 말한 그런 종류의 '감화'를 경험하지 못하였다. 그 친구는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혹은 내가 얼마나 부모로서 강인해질 수 있는지 등을 자극받길 바랬던 것일텐데 되려 나는 책을 읽을수록 더 부모로서 자신이 없어졌다. 아이가 자폐와 정신분열으로 평생 회복의 가능성이 없고 벽에 똥칠을 할 때 나는 견딜 수 있을 것인가? 강간으로 임신된 아이가 태어나 그 아이를 볼 때마다 강간의 경험이 떠오른다면 나는 그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신동이라서 내 인생 모두 뒤로 미루고 하루종일 서포트 해줘야 하는 아이가 내 자식이라면 나는 그 아이를 지원하는 것으로 내 인생의 보람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 모든 대답에 나는 책장을 넘기며 속으로 노, 라고 답했다. 


내가 이 책에서 찾은 의미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한 재고보다는 삶의 다양성에 대한 배움에 더 가깝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보통 사람이 상상하기도 힘든 아주 특수한 상황의 자녀를 가질 때 인간이 보이는 모습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모습이 우리가 그들을 타자화하여 만들어 낸 스테레오 타입과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배움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이 불쌍하다 생각하고 그런 자녀를 가진 부모에게도 안쓰러운 시선을 던지지만 그들은 병원에서 다른 장애를 가진 아이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한다. '우리 애가 쟤보다는 낫지.' 우리는 장애가 불행이기에 장애를 가진 부모들이 정상아를 낳기를 바랄거라 믿지만 상당히 많은 장애인 부모들은 자식들도 자기와 같은 장애를 가지기를 바란다고 한다.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거에요." 신동을 자식으로 낳는 건 다운증후군이나 청각장애아를 낳는것보다 훨씬 좋은 일일것 같지만, 아이에 맞추어 부모의 인생을 갈아넣어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별반 다를바가 없다. 오히려 더 어려울 수 있다. 자식에게 결핍이 있다면 부모는 무조건적으로 그들을 사랑하면 되지만 자식이 신동이라면 사랑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의 재능을 키우기 위해 부모역시 전문적인 수준의 해당분야 지식을 쌓고 자식을 이끌어줄 선생을 찾아 전세계를 돌아 다녀야 한다. 자녀와의 관계도 외줄타기처럼 어렵다. 자식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게 엄격한 훈련을 하다가 자칫 아이가 엇나가거나 관계가 망가질 수 있고 반대로 아이가 혼자 인생을 헤쳐나가도록 자유롭게 내버려두면 재능을 발현할 때를 놓친 아이는 뒤늦게 부모를 원망한다. '왜 내 재능을 방임했나요!' 세상의 단순한 생각과는 달리 신동을 낳는 것은 장애아를 낳는 것 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힘든 일이다. 


책 속의 부모들은 자신과 너무나도 다른 아이들(far from trees)에게 대체적으로 애정을 보이고 많은 경우는 죽는 날까지 어떻게든 그 아이들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들 나름의 지원을 한다. 인간의 존엄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그들이 자식을 평생 사랑한다는 부분보다도 그들이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볼 때 후회를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장애아를 낳고, 자식들 병원비를 내느라 홈리스가 되고, 자식이 죽은 다음에 장학재단을 설립해 같은 처지의 아이들을 돕고, 혹은 늙어서도 제 앞가림 하지 못해 평생 부모가 자식을 걱정해야 함에도 그들은 자식이 있어서 자신의 삶이 더 풍요로웠다고 말한다. 자신의 몫을 했다는 실감이 있다는 말일테다. 그것이 유전자의 확률게임에서 패한 자의 정신승리라 할지라도, 그들의 인터뷰를 읽으며 그들의 영혼에는 신이 비추는 햇살이 내리쬐고 있을거라 생각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부모로서의 역할에 대한 자신감이 더욱 없어졌지만 저자는 오히려 부모로서의 역할에 자신감이 생겨 아이를 갖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용감히 기형검사도 하지 않고 아이를 출산한다. 많은 부모들을 보며, 어차피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아이를 사랑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책은 성경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신성에 대해 막연히 감이 있는 사람에게는 와닿을 책 하지만 나처럼 신성과 모성에 대해 메마르고 메마른 사람에겐 영적으로 와닿는 부분은 없는 그냥 좋은 책. 어쨌든 이 책이 좋은 책임은 부정할 수 없다. 번역에 대해서는 참 실망스러웠지만 우리가 아는 삶의 모습을 더욱 입체적으로 살려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모르는 실제의 삶이란 이런 것이란 점에서, 이 책을 읽고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부분들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되었다는 점에 감사한다. 그러니 이런 것이다. '트렌스젠더'라는 챕터를 보면 트렌스젠더들의 사망률이 일반인에 비해 수배나 높다는 것을 알수 있다. 성전환 전에는 정체성 위기로 자살을 하고 성전환을 한 다음에는 혐오범죄의 타겟이 되기 때문이다. 트렌스젠더에 대해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막연히 조금은 불편한 존재로 생각하던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게이로 추측되는 한 연예인이 SNS에서 자신의 성적 지향을 '대놓고'드러내며, '나댄다'고 비웃는 인터넷 게시물에 이런 댓글을 달았다.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비난받거나 비웃음 당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케이스를 조사한 것이기에 한국과는 상황이 다른 점이 많지만 저자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국적과 인종 세대를 뛰어넘는 것이기에 한국의 독자들도 충분히 의미있는 무언가를 이 책에서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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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4 0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