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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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는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자신이 홀리스 로맥스에게 끌리는 이유를 깨달았다. 로맥스의 거만한 태도, 달변, 유쾌한 신랄함 속에서 스토너는 비록 조금 일그러지기는 했어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는, 친구 데이비드 매스터스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데이브와 그랬던 것처럼 로맥스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이런 마음을 스스로 인정한 뒤에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젊은 시절의 어색함과 서투름은 아직 남아 있는 반면, 어쩌면 우정을 쌓는 데 도움이 되었을 솔직함과 열정은 사라져버린 탓이었다. 그는 자신의 소망이 불가능한 것이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이 그를 슬프게 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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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어디에도 없었던 방법으로
테라오 겐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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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발뮤다 제품에 대한 극찬이 쏟아지며 국내시장에서도 엄청난 매출을 올리고 있는데 나는 소비자로서 무척 황당한 일을 겪었었다. 발뮤다 토스터를 구매해서 사용해보니 스팀분사력이 신통치 않아 AS를 신청하였는데, 한국지사에서는 감히 발뮤다 제품에 이상이 있을리가 없다는 식의 태도로 응대를 한 것이다. "저희도 토스터 사무실에서 쓰는데 잘 쓰고 있는데요?" 담당직원의 형편없는 응대에 결국 한국지사를 담당하는 분에게까지 항의가 올라갔고, 그 분은 정말로 제품이 문제가 없다며 원한다면 내가 택배로 반품시킨 제품과 새제품을 우리집으로 가져와 동일 환경에서 테스트를 해주겠다고 하였다. 그러시라고 했더니 정작 우리집에는 새제품만 가지고 오셨고. 더 이상 머리 아프기 싫어 새제품 성능을 확인하고 그 제품으로 교환을 받은 뒤 해당 컴플레인은 종료하였다. 그런데 그 모델, 몇 년뒤에 무상리콜 실시하더라. 실제로 제품에 문제가 있었고 피해고객이 나 혼자만이 아니었던거다. 죽은 빵도 살린다는 명목으로 비슷한 제품에 비해 몇 배의 가격을 받고 품질도 신통치 않으니 나는 그 이후로 늘 "죽은빵을 살리기 위해 수십만원짜리 토스터기를 사느니 그냥 살아있는 빵 바로 사서 먹으면 됩니다." 라고 말하고 다닌다. 나는 지금도 발뮤다는 과대평가되었다고 확신한다. 그럼에도 그 창업자의 글을 읽은 건 워낙 평이 좋았기 때문인데...인간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은 여기에도 적용이 될 것 같다. 여러 후기의 극찬을 믿고 토스터기 사서 그 고생을 하고는 또 같은 실수를 하다니. 글이 아주 엉망인것은 아닌데 글쎄, 아무것도 없이 무대뽀로 도전하여 발뮤다의 성공을 만들었다는 스토리라인이 가지는 설득력이 그리 강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업은 이런 사람이 하는구나 싶은 감상은 있었지만, 내가 독자로서 굳이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스티브 잡스가 초기에 제품을 만들때 완전무결한 미의식에 집착하여 보이지 않는 내부나 회로디자인에도 관여하였단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게 읽었었는데, 이 책은 그런 종류의 내용(브랜드의 방향성과 철학 등)보다는 발뮤다 창립자의 개인적 삶의 여정과 어떻게 발뮤다를 성공시켰는지 일본만화같은 감성의 성장과정에 더 방점을 찍는다. 솔직히 발뮤다 창립초기에 돈이 없어서 고생했다는 이야기 보다는 디자인이나 제품에 관한 이야기에 더 관심이 있었던지라 실망이 컸던거 같다. 특히나, 실제로 디자인에 관심을 먼저 가진 건 아내였음에도, 아내는 내조와 서포트만 하다 육아하느라 이제는 회사에도 나오지 않는 현실에 대해 태평하게 아내의 바람을 자신이 이어받았다는 소리를 하는 부분은 최악이었다. 안 좋은 책까지는 아니지만 소문만큼 좋지는 않은, 딱 발뮤다 같은 책이었다. 

"한 번 성공해보면, 다음에도 반드시 성공할 거야!" 이건 어머니가 자주 하던 말인데, 지금도 나 자신에게 반복해서 들려주는 말이다. 살다보니 요행수로 들어맞은 일도 당시의 조건만 갖춰진다면, 다시 성공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았다. - P1

류가사키에서는 내가 속할 곳이 없다고 느꼈다. 그러나 최소한의 짐을 가지고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마음이 불편한 도 없다. 이 여행이야말로 내가 있어야 할 자리이기 때문이다. 원래 그랬던 게 아닐까? 어떤 장소나 집단에 정착해서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라고 생각하는게 틀렸던 건지도 모른다. 변화가 많고 불안정해도 여행이,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는 인생이, 우리의 자리인 것이다. 오히려 소속이나 직업 같은 것들이야말로 불안정한 것이 아닌가? 몸뚱이 하나와 발을 딛고 서 있을 지면만 있다면 인간은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여행을 통해 그 사실을 온몸으로 배웠다. - P2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디자인한 형태를 아직 세상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적ㅇ도 오늘까지는. 내 아내가 돼버린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아내는 지금껏 나의 활동을 뒷받침해줬고, 몇 년 전까지 회사 일을 함께했다. 더구나 육아에 발을 내딛게 되면서부터는 디자인 작업을 할 시간이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아내가 가지고 있던 바람은 형태가 있는 물건을 이 세상에 남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바람을 내 가 이어받았는지도 모른다고 내 멋대로 생각할 때가 있다. - P3

꿈이 끝났다는 건 가능성을 잃었을 때가 아니다. 애초에 우리는 가능성을 잃을 수 없으니까. 꿈은 그것의 주인이 열정을 잃었을 때에야 비로소 끝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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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01-02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사업은 그런 사람들이 하는 것 같아요.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여행의 이유 (바캉스 에디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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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한 두 꼭지는 아주 신났다. 경쾌했다. 김영하를 아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국내에서 에세이스트로서의 역량을 꼽는다면, 역시 김영하에 견줄 사람이 없긴 하지. 그런 생각을 하며 독자로서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중반부를 넘어서고부터는... 여행보다는 김영하의 내적인 고뇌나 탐색 자아성찰 등에 더 무게가 실리고 글도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게 아니라 땅을 파고 들어가는 느낌이다. 과연 김영하는 이 글을 신이 나서 썼을까? 이 경력에 돈이 궁한 것도 아닐테니 쥐어짠 글은 아닐거라 생각하지만 과연 작가가 신이나서 술술 써내려간 글이 맞는지 의문스러운 꼭지들. 물론 모든 글이 그렇게 쉽게 쓰여져야 하는 건 아니지만, 여행에 대해 쓴 에세이라면 더군다나 '바캉스 에디션'이라는 깜찍한 꼬릿말도 달려 있다면 독자가 기대하는 건 작가가 쓰고 싶어서 쓴 글이지 땅을 파며 만들어 낸 글은 아니지 않을까. 그렇게, 정말 좋은 한국 에세이를 읽고 싶었던 바람은 다시 한 번 쓰러진다. 에세이는 쉬운 장르인듯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한 권으로서 완결성을 가지는 멋진 한국 에세이를 찾지 못했다. 아쉬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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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01-02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땅을 파고 들어가는 느낌!!! 하튼 레일라님 짱이야!!!ㅎㅎㅎㅎㅎㅎㅎㅎ

어쩄든 혹시 한 권으로서 완결성을 가지는 멋진 한국 에세이를 찾으시거든 꼭 글을 올려주세요. 저는 그런 것을 구분하는 능력부족이라;;;;;;
 

기말고사를 친 날 친한 동기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 나갔다. 다들 맥주 한 잔 하고 기분이 좋을때 즈음 한국인 여자 동생 하나가 중국계 교포 남자애 하나를 붙잡고 갑자기 내 나이 이야기를 꺼냈다.

"레일라는 너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지에지에(누나)라고 불러야 해"

그러자 영국에서 학부를 마친, 나보다 대충 열살쯤은 어릴 그 남자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닌데? 레일라는 나랑 나이 같아. 그리고 나에겐 메이메이(여동생)야."

그이가 나에게 그 어떤 사심도 없음은 오감과 육감으로 잘 알고 있고,
피시함의 관점에선 저 대답에 꺼림칙한 구석이 있을지라도
젠틀맨의 매너로서 응대하는게 너무 귀엽다 싶었다.

그리고 다음 날, 국경을 넘어 나보다 다섯살쯤 어린 지난 남자친구를 만났다.
몇 년만에 만나는 거라, 그리고 최근 공부하느라 내 얼굴이 많이 상했다 느끼고 있었기에 나이든 티가 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부끄럽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그 사람에게 어리광부리는 마음이 남아있는 나는 이런 말이 듣고 싶다 생각했다.

'넌 나이 들어도 예쁘구나.'

같이 차를 마시고 아름다운 그 도시의 야경이 보이는 음악당 계단에 앉았다. 습도 높은 미지근한 밤바람이 불어왔고 노란 불빛이 그 사람의 얼굴을 비추었다. 내가 그에게 빠진 그 순간들처럼, 여전히 그 사람의 눈코입은 단정하고 진지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무얼 할거냐는 물음에 내가 답했다.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아. 그래서 문제야."

아직도 예쁘다는 소리나 기대하고 있던 나에게 그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말을 꺼냈다.

"넌 아직도 어려. 뭐가 걱정이니?"

작년, 자전거를 타고 일본열도를 달린 그 친구는 여행길에 동행을 만나 열흘정도 같이 다녔다 한다. 동행은 네덜란드 출신의 중년남성으로, 서로의 일정상 헤어질 때에서 나이를 물어보았는데 아무리 많아봐야 60쯤일거라 생각했던 그 남성은 사실 70대였다고 한다.

"70살인 사람도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위해 자전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어. 넌 아직도 한참 어려. 하고 싶은 건 다 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들었더라면 정말 아무 의미도 없었을 말인데 나보다 어린 사람이 저리 말하니 마음이 흔들렸다. 혹은 그 사람의 톤에서 아직도 남아있는 애정을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불어오는 바람이 달콤했다.

나이와 상관없이 지멋대로 살고 있는 요즈음, 세상이 여자의 나이에 덧씌운 편견과 고정관념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느낀다. 그런 사람도 있긴 하였다. "누나 운동 열심히 하네요. 역시 몸매 비결이 있었어. 여자들은 30넘으면 20대한테 안 지려고 운동 열심히 하는거 같아요." 많은 여성들이 나이듦을 무서워하는건, 나이 하나로 인해 저런 말도 안되는 평가를 당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일테다. 하지만 직접 당해보니 저런 평가는 나에게 아무런 상처를 주지 못했다. 어리고 잘생기고 매너좋고 스윗한 연하남들과 예의바른 교류를 하고 서로에게 지지를 보내기만도 바쁘기 때문이다. 나도 기대하지 못했던 인생의 베네핏패키지. 한국이 아니라서 가능한 마법같은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쨌단 말인가. 내 인생의 행복은 내가 긁어모아 챙기면 그만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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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01-02 0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에요!!! 레일라 님보다 두배나 나이가 더 많은 제가 들어도 의미 있어요!!! 저도 70살이 되면 자전거를 타고 세계 여행은 못 가도 일본 여행은 하고 싶네요!!!! 멋지다!! 레일라님도 옛 남친도 , 젊은 그 친구도, 70세에 자건거로 세계 여행을 하는 그 사람도.... 새해부터 좋은 에너지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중국에 와서 열살쯤은 어린 학부 갓 졸업한 아이들과 공부를 하며, 중국 애들은 왜 이리 어른스럽대. 하고 많이 놀랐다. 이야기 들어보니 어린시절부터 당원이 되려면 품행이 방정해야 하고 등등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것, 자신의 평판이 중요한 사회인게 한 요인인듯 하고 문화적으로도 이기적으로 얕게 굴어서는 안된다는 무언의 묵계 같은 것이 있는듯 하다. 


처음에 중국 친구들 하나둘 알아갈 때 친구의 친구를 이야기하며 "그 친구는 믿을만한 친구야." "같이 일하면 그 친구와는 믿을수 있어" 등등의 말이 자주 나오길래 무척 신선하다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그 친구 재미있는 친구야"라거나 "그 친구 나랑 친해" 라거나 "그 친구 똑똑해" 정도까지는 한다쳐도 "믿을수 있는 친구야"라는 평은 들어본 적이 없는거 같은데... 어쨌든 나는 그 믿을 수 있다는 좋은 평판을 가진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같이 조모임도 하며 순조롭게 중국 친구들의 서클 속에 한 발을 들여놓았다. 


조모임을 해보니 그들의 좋은 평판에는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일의 핵심을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일을 쳐내는 능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아무리 스트레스 받고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배설하거나, 다른 조원에게 일을 미루거나, 일을 적게하는 조원을 탓하거나 무시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나도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대학시절에 조모임하며 개차반짓 많이 했던거 같던데 이 아이들이 보여주는 여러모로 어른스러운 모습에 많이 감탄하였고, 나도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지 하고 열심히 일을 해왔다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유명 밀크티 브랜드의 오퍼레이션을 분석해 개선점을 찾고 해당 솔루션의 기대이익까지 수치로 산출해야 하는 나름 규모가 큰 과제였다.밀크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마치 운명처럼 로맨틱하게 느껴지기까지 한 과제였다.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아주 신났다. 밀크티 매장 찾아가 주방의 동선과 기기목록을 확인하고, 포스기 돌려보며 일별 매출 확인하고, 밀크티 쩐쭈 조리시간과 스탁아웃이 생기는 이유등을 심층 인터뷰하고. 문제는 후반부로 갈수록 적용해야 하는 통계.수식이 너무 복잡해졌고(케이스가 아니라 실제 사업장 상황이다 보니 변수가 너무 많음) 이 과정에서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중국친구들은 중국어로 수식과 관련된 작업을 하고 나는 PPT 작업을 맡게 되었다.


오늘까지 끝내기로 한 PPT.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아무리 자료를 들여다 봐도 무슨말인지 모르겠다. 눈뜨자 마자 기숙사 책상에 앉아,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해가 넘어갈 때까지 보고 또 보았다. 생각해보니 마지막으로 PPT를 만든게 한 5년은 된 것 같다. 이해가 안되는 수식이며 숫자들을 하루종일 보고 있자니 머리가 아픈데, 중국 친구들에게 징징거리는 짓은 절대로 못하겠다. 결국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조원들이 잡아준 대략의 개요를 따라 얼개를 완성하고 밤 10시가 다 되어서 조원들에게 발송하였다. 쪽팔리긴 하는데, 여기서 더 이상 잘 할 능력이 없어서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It is good enough"

"It is perfect what you have done"

"@ will solve it. Don't worry"


니가 봐도 내가 봐도 아직 갈 길이 먼데 중국친구들이 첫마디로 저리 말해주니 갑자기 눈물이 찔끔 났다. 다 때려치고 한국 가고 싶다고 광광거리던 마음이 갑자기 사그라든다. 우선 침대에 누워 뜨거웠던 머리 좀 식히고, 하루종일 샌드위치 하나만 먹었던지라 배달앱으로 밀크티 한 잔 주문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 사장님에게 메시지가 왔다.


- 쩐쭈가 다 떨어졌는데 타로볼로 바꿔서 보내도 될까요?


나는 쩐쭈만 먹어봐서 타로볼을 먹어본 적이 없다.


- 没办法 어쩔수 없네요. 타로볼이랑 제가 주문한 차랑 맛있어요? (어울려요?란 말을 하고 싶은데 정확한 중국어를 몰라 말이 되는대로...) 


- 아주 잘 어울려요. 큰 사이즈로 업그레이드 해드릴게요. 어때요?

- 좋아요. 


필요한 대화는 여기까지였지만, 아까의 눈물 찔끔 때문인지 나에게는 나누어야 할 혹은 내보내야 할 친절함이 눈가에 혹은 입가에 혹은 손가락 끝에 매달려 있었다. 나는 사장님에게 다시 메시지를 보내었다. 


- 오늘 쩐쭈 다 파신거 보니 장사가 잘 되었나 보네요. 

- 왜냐면 끓여야 해서요, 늦은 시간에는 쩐쭈나 타로나 재고가 없는 경우가 많아요.


잘 알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가 그 문제를 해결하는 최적의 재고레벨과 조리타이밍을 계산해내는 것이었으니까. 곧 밀크티가 배달되었고 나는 마지막 메세지를 보내었다.


- 밀크티 정말 맛있네요. 고맙습니다 사장님.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맛있었다. 이 도시에 와서 맛보는 가장 맛있는 밀크티였다. 흐르지도 않고 그냥 찔끔하던 반방울의 눈물인데 오늘따라 그 눈물이 무척이나 무겁고 진하게 느껴진다. 눈물은 반방울이어도 거기에 담긴게 많아서 그렇겠지. 이 곳을 언제 떠날지 모르지만 있는 동안은 어쨌든 최선을 다해보기로, 이런 작고 따뜻한 순간들은 예쁘게 꺾어 소중히 보관해 두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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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3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nalei 2019-05-05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생일입니다.
겪고보니 조금씩 무뎌지기는 하지만 아직은 그런건 모를겁니다.
그 언제가 되더라도 축하받을 이유가 충분히 있을 날입니다.
서로 공간이 다르고 시간이 달라도 이어진 끈은 그대로입니다.
올해도, 생일 축하합니다.

라로 2020-01-02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i-Fang? 암튼 저도 간호학과에 친한 중국인이 3명인데 나이는 제 딸정도인데 아이들이 정말 속이 깊어요. 저도 그 아이들 보면서 많이 배웁니다. 그런데 저는 중국 사람들을 그전에는 공산당 사람들,,, 뭐이런 (아시죠? 제 세대는 그런 의식화가 잘 되어서;;;) 암튼 그렇게 생각하고 좀 무시하는 경향이 제 안에 있었는데 좀 놀랐어요. 생각이 굉장히 오픈이 되고 성차별 그런 것도 없고 오히려 여성상위,,뭐 그런 느낌? ㅎㅎㅎㅎㅎㅎㅎㅎ 물론 동양적인 사고방식이 없지않아 있지만 제가 자라면서 느꼈던 한국에 비하면 사고 방식이 훨씬 객관적이고 이성적인,,,,중국인들 이제는 좋아해요. 그런데 저는 중국어를 너무 배우고 싶은데 엄두도 못내요. 레일라 님의 눈물 찔끔은 레일라 님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고 계신지가 느껴져서 저도 눈물이 찔끔 나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