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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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당시는 그저 인생의 입구에서 얼쩡거린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자신에게는 이제 부족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까지 드는 순간이 분명하게 있었다. 물론 얄팍한 착각이었다. - P10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게 보였다. 히사히코는 행복해 보였다. 아무리 부모 자식 사이라도 각기 전혀 다른 인생을 살면서 서로에게 응어리 없이만족하는 얼굴을보여줄 수있는시간이 얼마나 될까. - P167

나이를 먹었다고 주변을 정리하고 예금 통장이랑 눈싸움을 벌이면서 겁내며 살면 재미없죠. 이 집도 당신이 손을 봐줘서 이렇게 밝고 쾌적하게 되살아났잖아요. 비용 때문에 벌벌 떨지 않고 관리를 제대로 해주는 게 중요한 일이에요. 늙었다고 한탄해봤자 뭐가 되겠어요.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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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미스터 최 - 사노 요코가 한국의 벗에게 보낸 40년간의 편지
사노 요코.최정호 지음, 요시카와 나기 옮김 / 남해의봄날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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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사노 요코의 통통 튀는 글이 참 좋다 생각했는데 사노 요코의 다른 책들을 더 읽고나서 보니 이 책은 사노 요코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미스터 최를 향한 그녀의 시선 그리고 그에게 마음 놓고 모든 걸 터놓을 수 있었던 '관계'에 대한 책이란 생각이 든다. 둘이 편지를 주고 받은 시간이 수십년인데 전반이나 후반이나 편지의 결이 크게 다르지 않아, 사노 요코란 사람은 나이와 관계없이 평생 개성 넘치고 기운 넘치고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이구나 싶었는데 다른 책을 보니 그렇지가 않더라. 그러니 이 책은, 젊은 시절 만나 소녀처럼 자신을 마음껏 터 놓을 수 있었던 상대에게, 평생에 걸쳐 그 자유로움과 편안함과 신뢰를 담아 자신의 본질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었던 편지들이랄까. 세상 모든 사람이 그런 친구를 만나는 건 아닐테다. 그런데 세상은 넓으니까, 스치고 스치고 스치다보면 가끔 그런 사람이 있기도 하더라.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고 지금도 닮은 구석이 없지만 앞으로의 인생길에서도 접점은 별로 없을 사람이지만 아 이 사람에겐 무슨 얘기를 해도 되겠구나 날 judge하지 않고 따뜻하게 들어주겠구나 날 응원해주겠구나. 사람의 영혼이 블럭 조각처럼 생겨먹었다면, 너와 나의 조각이 딱 맞는 그런 사람이 존재하기도 하더라는 것. 사노 요코가 죽기 전 10년간 쓴 책들을 보면 자신의 건망증과 노화에 대한 걱정, 치매걸린 엄마를 요양원에 넣은 것에 대해 '버린 것'이라 말하는 자책감 등 아무리 씩씩하다 하여도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느껴지는 글이 많은데(단 하나 대단한 점은 자식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점) 몸이 아파 편지가 끊어지기까지도 미스터 최에게만은 늘 밝은 이야기 사랑스러운 이야기만 적는다. 그러려고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럴수밖에 없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현실이 고단해도 그 사람 앞에선 기운이 나고 무슨 말이든 밝게 경쾌하게 술술 흘러나오게 되니까. 글도 좋지만 미스터 최와 사노 요코의 관계가 가지는 힘은 다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기에, 나는 이 책을 사노 요코의 베스트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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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좋아 - 요코씨의 기타가루이자와 일기, 제3회 고바야시 히데오상 수상작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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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몇 살이 되면 어른이 되는 걸까. 혼란스럽기는 아홉살 때보다 더하고 바닥은 더 깊어질 뿐이었다. 인간은 조금도 똑똑해지지 않는다. 그렇게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똑똑한 녀석은 태어났을 때부터 똑똑하다. 바보는 태생이 바보고,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바보가 아니게 ㅗ디는 것은 아니다. 바보는 똑똑한 놈이 경험하지 않는 바보의 인생을 계속해서 되풀이한다. 마흔이든 쉰이든 아홉 살 때와 다르지 않은 후회와 기쁨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바보의 인생을 사는 쪽이 더 재미있을지도 모른다고. - P15

우리는 가서 보고, "오오-"하고 합창을 했다. 식탁 위로 그야말로 꿈같은 등이 아련히 빛나고 있었다. 유리도 금속도 모두 반짝반짝 하고, 투명하게 조각한 유리에서는 달콤한 빛이 흘러 나왔다. 조명등에도 상품과 하품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등이었다. 나는 유리코 씨를 대신해서 기뻐했다. 조명등은 여기서 새로이 환생하여 인생을 다시 출발하는 아름다운 젊은 여자가 된 것 같았다. 그 등 아래서 일곱 명이 저녁식사를 했다. 모두 때때로 위를 올려다보며, "이게 어울리는 집은, 일본에서 여기뿐일 거야"라든가, "이 집의 품격이 이거 하나로 바뀌었어."라며. 아름다운 것이 모든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마치 모두의 뱃속에 그 등이 켜지고 그것이 빛을 발하여 모두의 얼굴이 안에서부터 빛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주 와서 이 빛 아래서 밥을 먹고 싶다고 우리 모두는 생각했다. - P45

언젠가 에베레스트를 올려다보고 그 성스러움에 압도되어 과연 자연은 신들과 함께 있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 신성한 것 앞에서 사람은 그저 엎드릴 뿐이다. 신은 인간의 작은 마음에 기쁨과 경건한 마음이 일어나게 하는 기적을 일으켜 인간이 자연을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친다. 이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게, 저 산들은 언제나 신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런데 저 신성한 것에 오르려 하는, 두려움을 모르는 바보가 있다. 신성한 것을 흙 묻은 발로 더럽히는, 인간으로서의 감수성을 잃은 바보들이 있다. 나는 에베레스트를 올려다보다가 속이 메슥메슥함을 느꼈다. 에베레스트가 더러운 인간에게 강간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산에 오르는가?‘라는 질문에 ‘거기 산이 있으니까‘라고 답한 걸 듣고 사람들은 멋져, 하고 생각하겠지. 그러면 ‘왜 강간했나?‘ ‘거기 여자가 있으니까‘가 멋진 말로 들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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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요가 - 흐름에 몸을 맡기며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는 것 아무튼 시리즈 21
박상아 지음 / 위고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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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게시글 보는 정도의 느낌이라면 읽을만 하지만 책으로서의 완결성 있는 의미있는 콘텐츠를 바란다면 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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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미스터 최 - 사노 요코가 한국의 벗에게 보낸 40년간의 편지
사노 요코.최정호 지음, 요시카와 나기 옮김 / 남해의봄날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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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집 근처에 살던 사이 좋은 중년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이 죽기 전에 나는 네 옆을 떠나고 싶지 않으니 죽으면 마당에 묻어 달라고 했대요. 부인은 그 말대로 마당에 묻었지만 그건 볍률 위반이라고 합니다. 묘지 이외의 장소에 매장해서는 안 된대요. 법률은 무정합니다. - P46

아기가 나온 순간 저는 곧 그를 사랑습니다. 그리고 쪼글쪼글한 아기가 벌써 유달리 씩씩하고 잘 생기고 남자답고 장하고 상냥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게 느껴져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가 여든 살이 되었을 때 어떻게 외로움을 달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그때 저는 이 세상에 없으니-다시 울었습니다. - P66

부인이 아주 훌륭하세요. 아이 두 명과 욕심 많고 까다로운 남편이 있는데도 예술에 매진하고 계시니까요. 부디 되도록 큰 욕심을 가지고 부인을 도와주세요. - P78

저는 아홉 살 아이의 어미라서 여행도 못 가요. 시끄러운 도쿄 한복판에서 그림을 그려야 하고 사과 같은 것도 사야 해서 차를 몰고 서둘러 집에 가요. 많이 바쁘지 않을 때는 돈도 없는데 500엔을 내고 고속도로를 타요. 고속도로는 빌딩과 빌딩 사이에 스파게티처럼 뻗어 있어요. 너저분한 회색 경치가 계속되는데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 고속도로가 숲 속에 들어가요. 그러면 그 숲 저쪽에 나지막한 산과 노을로 물든 하늘이 보이는데 그럴 때 저는 여행 떠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 한순간을 위해, 저는 500엔을 내요. 그 순간이 깨진 유리병에서 떨어져 나온 유리조각처럼 위태로워서 저는 먼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됩니다. 그것으로 울고 싶은 기분이 완벽해져요. 항상 진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미스터 최는 이해 못 하실 거예요. 그 순간, 저는 세계 어디든 갈 수 있어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쓸쓸하게 느껴지는 동남아시아의 미남 청년을 상대로 바람을 피워요. - P81

낯선, 아니면 낯익은 남자들과 아름다운 또는 아름답지 않은 강의 다리를 건너고, 불결한 거리를, 안개가 자욱이 낀 오래된 거리를 걷습니다. 고속도로가 다시 회색 빌딩을 달리게 되면 여행은 끝이에요. 언제든 ‘그 그리운 베를린‘이나 브뤼헐의 그림이 있는 미술관을 찾을 수 있는 미스터 최의 여행에 비해서 제 여행은 얼마나 불운한지. 아니, 진짜가 아니니 불운하다는 표현조차 쓸 수 없는 여행을, 저는 결코 포기하지 않아요. 이래도 저는 사는 것의 천재일까요? - P82

요즘은 인생에 행운도 불운도 없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어떤 기질을 타고날지가 중요한데, 이것만은 운이 좌우합니다. ‘행복‘은 상황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행복‘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찾아와요. 그리고 ‘행복‘은 자각이 없는 사람에게만 찾아오고 사물을 깊이 추구하려는 사람에게 찾아오지 않아요. 미스터 최, 당신에게는 결코 ‘행복‘이 찾아오지 않을 거예요. 몇 번 태어나도 고뇌하는 영혼이 될 거에요. 비록 남이 부러워하는 상황에 있어도, 부귀와 명성과 명예와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아들이 있어도, 당신은 결코 만족하지 못해요. - P93

이봐요, 미스터 최. 독일에 있을 때 저는 깨달았어요. 왜 독일이 철학자를 많이 배출하는지를.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 그 문제를 생각한 거예요. 이탈리아 사람들을 보세요.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지 않고도 잘 알고 있어요. - P103

결론을 말씀드리면, 모든 사랑은 환상 위에 성립합니다. 큰 환상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내부에서 그것을 더 거대한 환상으로 키울 능력이 있어요. 문득 제정신이 들어서는 안 돼요. - P120

진정한 국제 친선은 나라와 나라가 하는 게 아니라 개인과 개인이, 욕하면서 같이 술을 마시고 밥을 먹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 명이 한 명을 담당하면 충분할 것 같아요.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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