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무라카미 하루키.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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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에 관한 건 대개 레이먼드 챈들러에게 배웠어요. 챈들러는 그야말로 비유의 천재니까요. 가끔 아니다 싶을 때도 있지만, 좋은 건 말도 안 되게 좋죠. 비유란 의미성을 부각하기 위한 낙차라는 거죠. 그러니까 그 낙차의 폭을 혼자 어느 정도 감각적으로 설정하고 나면, 여기에 이게 있으니 여기서부터 낙차를 역산하면 대략 이쯤이다 하는 걸 눈대중으로 알 수 있어요. 역산하는 게 요령입니다. 여기서 쿵하고 적절한 낙차를 두면 독자는 눈이 확 뜨이겠지, 하는 식으로요. 독자를 졸게 만들 수는 없잖아요. 슬슬 깨워야겠다 싶을 때 적장한 비유를 가져오는 거죠. 문장에는 그런 서프라이즈가 필요해요. - P1

위대한 개츠비는 기본적으로 1인칭 소설입니다. 챈들러의 작품도 1인칭 소설이고, 호밀밭의 파수꾼도 1인칭 소설. 저는 원래 1인칭 소설을 무척 좋아하는데, 그런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다들 어느 시점에서 1인칭을 버리죠. 챈들러는 예외지만, 그건 시리즈물이라 도중에 스타일을 바꿀 수 없으니까요. 작가가 점점 3인칭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는 건 이야기가 진화해서 복합화, 중층화하는 과정의 숙명과도 같습니다. - P2

(리얼리티가 없을까봐 정보를 확실하고 구체적으로 쓰는 등 신경을 쓰면) 이야기가 재미없어지죠. 리듬이 죽어버리니까요. 늘 하는 말이지만, 뛰어난 퍼커션 연주자는 가장 중요한 음을 치지 않아요. 이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 P3

나는 지상에 있는 자아에는 전혀 흥미가 없다. 이를테면 저는 사소설 작가들이 쓰는, 일상적인 자아의 갈등 같은 것은 별로 읽고 싶지 않아요. 자신의 그런 부분도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고요. 물론 저 역시 무슨 일이 있으면 화를 내거나, 의기소침해지거나, 불쾌함을 느끼거나, 고민하거나 하지만, 그것을 생각하는 일에는 흥미가 없습니다. - P4

장편은 아무래도 장기전이다보니 잘되는 날과 별로 수확이 없는 날의 반복인데, 그래도 길게 잡고 돌아보면 결국에는 확실히 와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요는 스스로를 믿는 일이죠. 소설을 쓴다기보다, 부엌에서 굴튀김을 하나하나 튀기는 중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아요. - P5

데뷔 당시 문단에서 제일 싫었던 게 일종의 테마주의였어요. 이런 주제를 다뤘으니 이건 순문학이다, 깊이가 있다, 그런 말이 제일 싫었죠. 그래서 소재나 주제를 전부 걷어내고, 그럼에도 깊이 있고 무게 있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 P6

작가가 되려면 자신이 이거다 하고 정한 대상과 전면적으로 관계를 맺는 일, 그 코미트먼트의 깊이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코미트먼트의 방향성이나 내용응 ㄴ사람마다 다르지만 적어도 깊이는 꼭 필요해요. 깊이가 없으면, 나아가 그 깊이를 끝까지 짊어질 담력이 없으면 아무데도 갈 수 없어요. 나머지는 운입니다. 전 아마도 운이 좋았던 거라 생각해요. - P7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면 아 이렇게 시작하는 문장을 써볼까, 하죠. 스푸트니크의 연인의 첫 문장도 그랬어요. 쓴 뒤에는 반년이든 일 년이든 묵혀두면서 가끔 꺼내서 고치고, 조금씩 갈고 닦아서, 그게 내 안에 제대로 남는지 아닌지 기다립니다. 찰흙 덩어리를 벽에 던져서 달라붙는지 떨어지는지 확인하듯이, 물론 깨끗이 떨어져서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경우도 있고요. - P8

장편소설은 하나의 테마로는 절대 쓰지 못해요. 몇 가지 테마가 복합적으로 얽혀야 비로소 만들어지죠. 길면 길수록 그 요소가 많아야 하고요. 저의 출발점에는 최소 세 가지가 있었고, 세 가지가 있으면 삼각측량처럼 이야기가 입체적으로 나아가요. 그런데 구성 요소가 한두 개 뿐이면 어디선가 반드시 두꺼운 벽에 부딪히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요. 그러니까 몇 가지 포인트가 자기 안에 뚜렷이 존재함을 확인하기 전에는 장편을 시작할 수 없어요. 바람직한 세가지를 모으는 데는 또 그만한 시간이 걸리고요. 작가는 일 년이든 이 년이든 참을성 있게 가만히 기다려야 하죠. 이것이 집필을 시작할 수 있는 뚜렷한 포인트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일단 시작하면 하루에 열 장은 써야 합니다. 그러기를 일 년 쯤 줄기차게 계속해야 하고요. 중간에 망설여지거나 불확실한 부분이 있으면 도저히 나아갈 수 없어요. 그러니까 시작하기 전에 필요한 포인트가 내 안에 탄탄하게 설정됐음을 분명히 확인해야죠. - P9

2차대전 이후 일본도 그랬는데, 많은 독일인들은 전쟁이 끝난 뒤 자신들 피해자 입장에 놓으려고 했어요. 우리도 히틀러에게 속았고, 마음의 그림자를 빼앗겼고, 그 탓에 혹독하게 고생했다는 막연한 피해자 의식만 남죠. 일본에서도 그와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일본인은 전쟁의 피해자라는 의식이 강해서 자신들이 가해자라는 인식은 자꾸 뒷전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세부적인 사실이 이렇다저렇다 하는 문제로 도피하죠. 그런 것도 ‘나쁜 이야기‘가 낳은 일종의 뭐랄까, 휴요증이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결국 자신들도 속은 거라는 말로 이야기가 끝나버리는 면이 있죠. 천황도 나쁘지 않다, 국민도 나쁘지 않다, 나쁜 건 군부다, 하는 식으로, 그게 집합적 무의식의 무서운 면입니다. - P10

무엇보다 중요한 게 말투, 소설로 말하면 문체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신뢰감과 친밀감을 낳는 건 말투예요. 말투나 문체에 흡인력이 없으면 이야기가 성립하지 않죠. 물론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말투에 매력이 없으면 사람들은 귀기울여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보이스, 스타일, 말투를 매우 중요시하죠. 제 소슬은 너무 쉽게 읽힌다는 말을 곧잘 듣는데, 당연합니다. 그게 저의 스타일이니까. - P11

좋은 일은 이해하거나 설명하는 데 시간이 걸리거니와 귀찮고 따분한 경우가 많아요. 반면 ‘나쁜 이야기‘는 대체로 단순하고 인간 심리의 표층에 직접적으로 호소하죠. 논리가 생략되었으니 이야기가 쉽게 받아들여져요. 거친 말을 쓴 헤이트스피치가 논리적이고 훌륭한 연설보다 귀에 잘 들어오는 법이고. - P12

마감 같은 건 신경쓰지 않고 마음껏 시간을 들일 수 있는 환경부터 갖추어야 해요. 좀전에 말했듯이, 집필에 시간을 들이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집필 전에 시간을 가지는 것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제 경우는 번역 일을 하거나 가끔 에세이를 쓰면서 일 년이나 이 년쯤 느긋하게 기다려요. 그러면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제목과 그 밖의 몇 가지 포인트가 떠오르죠. 그리고 어느 날, 됐다, 지금이야. 지금부터 쓰기 시작해야 해. 싶은 스타팅 포인트가 찾아옵니다. 그때부터 천천히 쓰기 시작해여.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는 자 어서 가세요, 하고 누가 떠밀어도 갈 수가 없어요. 아무리 훌륭한 서퍼도 좋은 파도가 오지 않으면 탈 수 없어요. 바로 지금이다, 라는 적절한 포인트를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 P13

제가 그리고 싶은 주인공은 기본적으로는 보통 사람입니다. 보통의 생활감각을 가진 사람. 하지만 여러 면에서 아직 자유로운 처지인 사람. 누구든 일정 나이 이상이 되면 여러 현실적인 문제가 따라붙죠. 그래도 삼십대 중반이면 아직 인생의 중간 지대에 머물고 있어요. 아마도 제게는 이야기의 물길 안내인 같은 사람이 주인공으로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가 오십대, 육십대라면 인생의 굴레 같은 게 딸려오니까 아무래도 움직임이 둔해지죠. 더는 젊지 않지만 아직 중년의 영역에 들어서지도 않았고, 어느 정도 자아가 형성되어 있지만 완전히 굳지 않았고, 확신도 약해요. 어디로 나아갈지도 자유. 그렇게 ‘어디로도 기울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를 저는 소설적으로 필요로 하는 거겠죠. - P14

왜 독자가 따라와주는지 아세요? 제가 소설을 쓰고 독자가 읽어주는 관계가 현재 신용거래로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사십 년 가까이 소설을 써오면서, 독자가 절대 손해 보게 하진 않았으니까요. - P15

점술가를 예로 들면, 그 사람들이 원래부터 어떤 특별한 능력을 지닌 건 아마 사실일 겁니다. 그래도 직업으로 삼는다면, 누가 상담하러 와서 답을 해줘야 할 때 메시지가 전혀 내려오지 않으면 장사가 안 되겠죠. 문제는 여기서 자발성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매번 적절하게 벼락이 떨어져주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작은 속임수 같은 걸 쓰는 사이 나름의 영업 테크닉이 생겨요. 그래도 소설가는 마감만 없으면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대로 소설을 쓰고 말할 수 있어요. 벼락맞기를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늘 하는 말이 작가는 자발적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젊을 때는 마감이 닥쳐오는데 머릿속은 텅 비고 아이디어 하나 없이 막막한 상황에서도 책상 앞에 앉아 막무가내로 쓰다보면 무언가 찾아오곤 해요. 찌릿찌릿하면서. 그렇게 어찌어찌 넘어갈 수 있어요. 하지만 언젠가는 마감이 코앞에 닥쳐왔는데 아무것도 찾아오지 않는 날이 오죠. 벼락이 저절로 떨어져주지 않아요. 그래도 마감이 있으니 - P16

어떻게든 이야기를 쥐어짜내 써버립니다. 이건 대단히 위험하고 불성실한 일이고, 계속 그러다가 망해가는 작가를 적잖이 봐왔어요. 다들 젊을 때야 소설 따위 마감이 닥쳐서 쓰면 된다고 말하죠. 그런데 어떤 시점부터 그게 잘 안됩니다. 물론 벼락 맞는 빈도가 낮아도 다른 능력으로 보완할 수 있고 그 방법도 여러가지겠지만, 그런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소설 쓰기는 불가능할테죠. 아무리 좋은 문장을 쓰더라도 소설은 쓰지 못해요. 설령 쓴다 해도 읽어줄 사람이 없고요. 이것도 늘 하는 말인데, 머리가 너무 좋은 사람은 소설을 쓸 수 없어요. 그런 소설은 구조가 빤히 들여다보일 때가 많아요. 읽어도 솔직히 재미있지 않고, 이성이 우세하니 일방통행의 진술이 되어버리죠. 평론가야 칭찬하지만 독자가 생기지 않아요. 물론 너무 바보여도 쓸 수 없고. - P17

장편소설은 최종적으로는 긍정적인 것을 남겨야 한다고 그때 생각했어요. 설령 비극적 엔딩일지라도 다음 단계로 탄탄하게 연결되어야 합니다. 장편소설을 쓰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읽는 일도 엄청난 작업이잖아요. 그 엄청난 작업을 해낸 사람을 위한 일종의 보상이라고 할까, 그런 것이 아무래도 필요합니다. 꼭 해피엔드여야 한다는 말도 아닙니다. 그래도 역시, 사람들이 이 세계에서 계속 살아가리라는 일종의 신뢰감 같은 것이 독자의 마음속에 생겨납니다. 살아남는 것 혹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 그건 이야기의 아주 중요한 요소죠. 적어도 어느 정도 길이가 있는 픽션에는. - P18

한 사람이 인생에서 정말 진심으로 신뢰할 수 있는, 혹은 감명받을 수 있는 소설은 몇 편 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은 그걸 몇 번이고 읽음 찬찬히 곱씹죠. 소설을 쓰는 사람이건 쓰지 않는 사람이건, 자신에게 정말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소설은 평생 대여섯 권 정도 만나지 않을까요. 많아야 열 권 남짓일까. 그리고 결국 그 몇 안 되는 책이 우리정신의 대들보가 되어줍니다. 소설가의 경우는 그 스트럭처를 몇 번이고 반복하고, 바꿔 말하고 풀어 말하면서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자기 소설에 편입해갑니다. - P19

보르헤스가 어느날 시를 써서 친구에게 읽어줬더니 자네 오 년 전도 완전히 똑같은 시를 썼어, 라는 지적을 받습니다. 보르헤스는 전에 그런 시를 썼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거죠. 이에 보르헤스는 말합니다. 시인이 쓰고 싶어하는 이야기는 평생 대여섯 가지밖에 없어. 우린 그걸 다른 형태로 반복할 뿐이지. 듣고 보면 정말 그렇다 싶어요. 결국 우리는 대여섯가지 패턴을 죽을 때까지 반복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고. 다만 몇 년 단위로 반복하는 사이 형태나 질은 점점 변해가죠. 넓이와 깊이도 달라지고요. - P20

문장을 어떻게 쓰는가 하는 규범은 제 생각에 기본적으로 두 가지뿐이에요. 하나는 고리키의 ‘밑바닥에서‘에서 거지와 순례자의 대화. "내 말 듣고 있는거야?"하고 한 사람이 말하니까, 다른 사람이 "나 귀머거리 아니야"라고 답해요. 지금은 거지니 귀머거리니 하는 차별용어를 쓰면 안되지만 그 시절에는 아니었어요. 전 이 책을 학창시절에 읽었는데 보통 같으면 "내 말 듣고 있는거야?""듣고 있어"로 끝날 대화죠. 그런데 그러면 드라마가 안 되는 겁니다. "귀머거리 아니야"라고 대답하니까 주고받는 말 속에 역동감이 생겨요. 단순하지만 아주 중요한 기본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못하는 작가가 세상에는 많거든요. 저는 항상 그 사실을 의식합니다. - P21

또 하나는 비요. 챈들러가 쓴 비유 중에 "내가 잠 못 이루는 밤은 뚱뚱한 우편배달부만큼 드물다"라는 게 있어요. 예전에도 몇 번 예로 든 문장인데, 만약 "내가 잠 못 이루는 밤은 드물다"라고만 하면 독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죠. 예사롭게 휙 읽고 지나갑니다. 그런데 "내가 잠 못 이루는 밤은 뚱뚱한 우편배달부만큼 드물다"하면 "호오!" 싶잖아요. 그러고 보니 뚱뚱한 우편배달부는 본 적 없는데, 하고. 그게 살아 있는 문장입니다. 이렇게 반응이 생겨나고 움직임이 생겨나죠. 귀머거리 아니야, 와 뚱뚱한 우편배달부, 이 두가지가 제 글쓰기 요령입니다. 그 요령만 알면 제법 좋은 문장을 쓸 수 있을 거에요. - P22

말의 울림은 중요합니다. 구체적이고 피지컬한 울림. 설령 소리내지 않고 눈으로만 보더라도 울림이 있어야 해요. 작가는 눈으로 울림을 들어야 합니다. 글을 쓰고, 다시 읽어보고, 소리내는 대신 눈으로 울림을 느낀다. 이게 굉장히 중요해요. 저는 항상 음악에서 글쓰는 법을 배운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눈으로 보고 울림을 느끼고 그 울림이 더 아름답게 울리게끔 바로잡아가는 작업을 중요시해요. 마침표, 쉼표도 리듬이잖아요. 그런 게 무척 중요해요. - P23

스트럭처는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거의 의식하지 않아요. 그럴 필요도 없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자기 안에 이미 갖춰져 있어야 하니까요.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유의 골격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 형태가 어디서 생겨나느냐 하면, 주로 지금껏 자신이 읽어온 소설,그리고 써온 소설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이미 자기안에 자명하게 존재하는 것이징. 그러니까 새삼 생각할 일이 없어요. 대신 문체를 생각해야죠. 그리고 문체가 이끌어내는 이야기를. - P24

장편소설은 "좋아 해보는거야!"가 아니라 "뭐 한 번 해볼까"에 깝게, 가벼운 기분으로 시험 삼아 써보면서 시작해요. 그러면 이야기가 자연히 뻗어나가고, 이윽고 본격적으로 소설 깊숙이 들어가게 되죠.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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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하여 마카롱 에디션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안지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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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죽으면 그걸 여기 행해일지에 적어두거든. 그리고 오데사에서 군 감독에게 등본을 넘기면, 그 사람이 읍이든 어디로든 그걸 보내주게 되어 있어."

이런 대화들이 구세프의 마음을 옥죈다.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갈망이 그를 괴롭힌다. 물을 마셔보지만 시원치 않고, 고향 생각을 해보지만 소용이 없고, 영햐의 날씨를 상상해 보지만 그 역시 아니다... - P68

인생은 아무런 유익도 만족도 없이 지나가 버렸다. 담배 한 모금 빨아들일 시간도 없이 헛되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앞을 보면 이미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뒤를 보아도 마찬가지다. 거기에는 손해, 소름이 끼칠 만큼 끔찍한 손해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왜 인간은 이런 상실과 손해 없이는 살지 못하는 걸까? 도대체 왜 자작나무 숲과 소나무 숲을 베어버린 것일까? 왜 헛되이 농장을 놀리는 걸까? 왜 사람들은 항상 불필요한 일만 하는걸까? 왜 야코프는 평생 욕하고 투덜대고 주먹을 휘두르고 위협하며 아내를 모욕했을까? 이렇게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필요가 있어 방금 전 유대인을 겁주고 모욕한 것일까? 도대체 왜 사람들은 서루서루 편안히 살도록 내버려 두지를 못하는 걸까? 그로 인한 손해가 이렇게 큰데도 말이다! 얼마나 무서운 손실인가! 증오와 미움이 없다면 사람들은 서로에게서 엄청난 유익을 얻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 P140

그는 집으로 돌아오며 죽음은 유익만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아도 되고,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며, 사람들을 모욕하지 않아도 된다. 무덤 속에서는 1년이 아니라 수백, 수천 년을 살게되니 만일 이 이익을 다 계산해 보면 아마 엄청날 것이다. 인간은 삶에서는 손해만을, 죽음에서는 이익만을 얻는 것이다. 물론 온당하지만, 어쨌든 서글프고 고통스러운 생각이다. 도대체 왜 이 세상에는 단 한 번 주어진 인생이 아무런 유익 없이 흘러간다는, 이토록 이상한 질서가 존재하는 걸까? - P141

원래 본성이 고독해서 조개나 달팽이처럼 자기 껍질 속으로 기어들려는 사람들이 세상에 제법 많거든요. 어쩌면 이건 격세유전 현상인지도 모르죠. 인간의 조상이 아직 사회적인 동물이 아니고, 외롭게 자기 굴에 살던 때로의 회귀라고나 할까요. - P148

우리 인생을 한 번 돌아보세요. 힘 있는 자들의 뻔뻔함과 게으름, 약한 사람들의 무지와 야만성, 주위를 가득 채운 상상하기도 힘든 가난, 비좁음, 장애, 방탕, 위선, 거짓...그런데도 모든 집과 거리는 고요하고 평안하죠. 도시에 사는 5만 인구 중 단 한명도 이런 현실 때문에 비명을 지르거나 큰 소리로 흥분하지 않으니까요. 음식을 사러 시장에 가고 낮에는 먹고 밤에는 자고 쓸데없는 소리들을 지껄이고 결혼을 하고 늙어가고 죽은 친적들을 순순히 묘지에 묻어주는 사람들만 보일 뿐이에요.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어요. 삶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일들은 어딘가 무대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무대 위는 고요하고 평온하죠. 그저 말 없는 통계만이 몇 명이 미쳤고, 몇 양동이의 술을 마셔치웠고, 몇 명의 어린이가 영양실주로 죽었다며 저항하고 있죠. 어쩌면 분명 그래야 하는건지도 모르겠어요.행복한 사람이 평안한 건 불행한 사람들이 말없이 자기 짐을 지는 덕분이라는게 명백하니까요 - P182

외롭게 사는 사람들은 항상 그 영혼 속에 기꺼이 이야기하고 싶은 무언가를 품고 사는 법이다. 도시의 독신남들이 단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사우나나 레스토랑을 다니고, 때로 목욕탕 일꾼이나 종업원들에게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시골의 독신남들은 보통 손님들 앞에서 자기의 영혼을 쏟아놓는 법이다. 더욱이 창밖으로 잿빛 하늘과 비에 젖은 나무들까지 보이지, 이런 날씨에는 마땅히 갈 곳도 없어 그저 이야기를 하고 그걸 듣는 것 외에 다른 할 일도 없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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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하여 - 작가가 된다는 것에 관한 여섯 번의 강의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박설영 옮김 / 프시케의숲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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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5백명이 몰려들 만큼 거액의 상금이 걸린 시 쓰기 대회를 개최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들을 한데 모으면 전형적인 캐나다 시인을 발견하게 될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시 5백 ㅍㄴ을 모두 읽고 나서 깨닫게 되는 사실은 한 세 사람 정도가 뭘 좀 할 줄 안다는 것, 그러니까 시를 전문적으로 쓸 줄 안다는 것이다. 이 세사람이 지나가고 나면, 운율은 그럴 듯하나 핵심적인 은유 하나 없는 2백 편의 시와, 운율이 있다 해도 절뚝거리는 3백 편의 시를 만나게 된다. 이 수많은 시들 사이에 광인이 쓴, 재치 있고 기묘하나 모골이 송연해지는 서너 편의 시들도 끼여 있다. - 제임스 리니 - P28

대개 작가들의 어린 시절은 그들의 천직과 남다른 연관성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들 생각하는데, 실제로 그들의 어린 시절을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보통은 책과 고독이 함께합니다. - P35

작가는 사람들이 변호사나 치과의사가 되겠다고 선택하는 처럼 내가 택한 일도, 내가 택할 법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1956년 축구장을 가로질러 하교하던 중에 그냥 갑자기 그렇게 된 거였어요. 머릿속으로 시를 쓴 뒤 종이에 옮겨 적었는데 그때부터 오로지 글을 쓰고 싶다는 것 외엔 아무 생각도 안 났어요. 내가 쓴 시가 훌륭한지 어떤지도 몰랐지요. 하지만 알았대도 아마 신경 쓰지 않았을 겁니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경험이었으니까요. - P43

모든 작가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방금 전에 읽ㅆ던 그 책의 작가를 절대 실제로 만날 수 없으니까요. 글을 쓰고 출간을 하기까지는 엄청난 시간이 걸립니다. 출간할 때가 되면 책을 썼던 그 사람은 이미 다른 사람이 되고 없지요. - P71

많은 논평가들이 말하듯, 문학 작품은 각 세대의 독자들이 새로운 의미를 찾고 새로이 발견하면서 재창조됩니다. 그러므로 인쇄된 책은 악보와 같습니다. 그 자체가 음악은 아니지만 음악가가 연주할 때, 즉 ‘해석할 때‘ 음악이 되는 악보지요. 텍스트를 읽는 행위는 음악을 연주하면서 동시에 듣는 것과 비슷해요. 이때 독자는 고유한 통역가가 됩니다. 그럼에도 책은 물질적으로 실재하기에 영원하다는 환상을 심어줍니다. ‘환상‘이라고 한 건 불에 탈 수도, 영원히 분실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책들이 그래왔지요. - P87

첫 소설의 반응이 썩 좋지 않았던 작가가 두 번째 소설을 발표할 때 겪는 일들에 대해는 익히 들어 알 겁니다. 에이전트가 이렇게 한숨을 짓지요. "이게 첫 소설이었으면 팔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죠." 여기서의 교훈은 이겁니다. 출판사도 도박을 하지만 기회는 오지 한 번뿐이라는 것. ...요즘 상황은 이렇습니다.

글을 쓰고 이문을 남기는 사람이 살아남아 다른 날 또 글을 쓸 수 있다. - P105

시나 소설을 예술로 만드는 가치는 시장 교환 영역에서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가치는 작동 방식이 완전히 다른, 재능의 영역에서 나오지요. 재능은 무게를 재서 측정할 수도, 돈을 주고 살 수도 없습니다. 기대하고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 재능은 주어지는 것이며, 그 외에 다른 식으론 얻지 못합니다. 재능을 달라고 기도할 순 있지만, 그렇다고 기도에 꼭 응답을 받는 건 아닙니다. 소설을 창작할 땐 1할의 영감과 9할의 노력이 필요하다지만, 작품이 예술로서 살아남으려면 그 1할의 영감이 무조건 있어야 합니다. - P110

아름다운 것에서 아름다운 의미를 찾는 사람은 교양 있는 사람이다. -오스카 와일드 - P125

종류를 막론하고 예술은 수양입니다. 기술이면서 종교적 의미의 수양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수양 과정에서 기다림의 기도, 영적인 비움, 자아의 부정, 이 모든 것이 나름의 역할을 하지요. - P146

누구도 작가만큼 작가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개인으로서든 직업군으로든 가장 악랄하고 경멸스러운 작가의 초상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작가들이 직접 쓴 책이지요. 하지만 누구도 작가만큼 작가를 사랑하지도 않아요. - P147

여성 작가들은 낭만주의 시대에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으며 천재라는 메달을 별로 걸어본 적도 없습니다. 사실 천재라는 단어와 여성이라는 단어는 영어에서 보통 어울려 다니지 않아요. 남성 천재들이 하는 기이한 행동을 여성이 하면 보통 미쳤다는 꼬리표가 붙거든요. 심지어 재능있는, 대단한 같은 단어들도 마찬가지예요. - P151

"작가가 되려면 고생을 해야 하나요?" 작가 지망생들은 습처럼 이렇게 묻습니다. 그러면 나는 "고생은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답합니다. "좋든 싫든 고생은 절로 하게 될 테니까요" - P161

무명인에서 유명인으로 바뀌는 데는 트라우마가 동반돼요. 무명인 작가가 투명성이란 망토를 벗어던지고 가시성이라는 망토를 걸치는 과정에서요. 메릴린 먼로가 말했지요. "다른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무명인은 유명인이 될 수 없다." - P193

사회적 성공을 거두면 물질적인 소득이 생기므로 썩 나쁘지 않습니다. 직업적 성공을 거두면 동료 예술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으므로 전반적으로 괜찮아요. 그렇지만 대중적 성공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인간적 공감으로 성공한 자들은 예술가로서 파멸할 수도 있습니다. "고통받는 인류의 고귀한 마음을 이용하고 그것이 얼마나 큰 돈벌이가 되는지 알아낸 사람들은 가혹한 논평에도, 동료들의 경멸에도, 다수의 무관심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 P196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의 마음을 좀처럼 떠나지 않습니다. 인간이 죽으면 완전히 사라진다고 여기는 사회는 거의 없습니다. 망자에 대해 공공연히 언급하는 것을 금하는 사회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사라졌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지요. - P223

이야기는 암흑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영감이 떠오르는 것을 섬광에 비유하는 것이지요. 내러티브 속으로, 내러티브의 과정 속으로 들어가는 건 어두운 길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누구도 한 치 앞을 볼 수 없어요.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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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3-08 2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벌써 읽으셨군요!!!

LAYLA 2021-03-15 03:25   좋아요 0 | URL
좋은 평을 보고 얼른 사서 읽었는데 저에게는 좀 어려웠어요^^;;;!!!
 
도어
서보 머그더 지음, 김보국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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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알고 있지만 그때에는 알지 못했다. 애정은 온화하고 규정된 틀에 맞게, 또한 분명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누구를 대신해서도 그 애정의 형태를 내가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 P118

알아두세요, 인간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앟고, 거의 죽을 정도로만 된다는 것을요. 나중에는, 다시 한 번 더 바보가 될 수 있다면, 완전한 바보가 될 수 있다면 하고 바랄 정도로 자신이 겪은 것으로 인해 현명해지죠. - P208

글을 쓰고 싶었지만, 창조는 지식의 은혜로운 결과일 뿐이기에 그것이 제대로 되려면 그 많은 모든 을 갖추어야 했다. 흥분과 평온함, 내보적은 고요와 달기도 하고 쓰기도 한 긴장된 감정들이 있어야 했지만, 내게는 그런 요소들이 부족했다. - P322

에메렌츠에게 그냥 보통의 삶은 필요 없어요. 에메렌츠에게는 그녀 자신만의 삶 필요한데, 것은 벌써 없어져버린 거죠. - P326

그도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전혀 다른 외국 돈으로 셈을 ㅆ던 것이다. 에메렌츠의 사전에 있는 단어들은, 오물, 소동, 추문, 길거리 코미디, 부끄러움이었고, 총경의 사전에는 법, 질서, 해결, 인간적 유대, 효율적인 일처리가 있었다. 두 개의 단어장에 적힌 내용은 모두 사실이었으나, 각각 다른 언어로 되어 있을 뿐이었다. -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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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3-08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레일라님의 별이 5개나!!! 무조건 읽고 싶어요.^^;;;;;;

LAYLA 2021-03-15 03:26   좋아요 0 | URL
라로님 지금까지 번역 잘 된 폴란드 문학을 본 적이 없기도 하지만...읽는동안 많이 힘들었어요 ㅎㅎㅎ 그래도 다 읽고 나서 인정할 수 밖에 없는게 대가의 글솜씨라고 생각합니다만 술술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은 아니었어요^^;;
 

어둡고 깜깜한 그곳은 밤인것 같기도 했고 수묵화로 그린 세상인것 같기도 했다. 무당은 왕의 명령에 따라 액운을 물리칠 사당을 디자인하였다. 그녀는 두개의 사당을 디자인했다. 하나는 왕을 위한 것으로 바다를 바라보는 높고 평평한 땅에 만들었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위한 것으로 파도가 들이쳐 벼랑 밑으로 쑥 들어간 지형에 체스판 같은 형태로 말과 장기들이 서 있는 사당이었다. 건물이 세워진 것은 아니기에 사당이라기 보단 기도와 제사를 드리는 장소라는 말이 더 적합했다. 무당의 사당은 늘 파도가 들이쳐 반쯤은 잠겨있었다. 어느날 왕은 무당의 힘이 신통치 않다며 그녀를 내쫓았다. 무당은 쫓겨나며, 내 사당을 왕을 위해 썼어야 했다고 소리를 질렀다. 원래 파도가 늘 들이치는 험한 땅의 기운이 더 좋은데, 왕의 사당은 번듯한 곳에 지어야 해서 험한 땅에 왕의 사당을 지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많은 시간이 지났다. 여전히 세상은 회색빛이었다. 무당의 사당은 제국이 사라지고 그 시절의 사람이 모두 죽은 뒤에도 살아남았다. 요즘 사람들은 발전된 건축기술로 파도가 들이치는 바로 그 곳에 건물을 짓고 카페를 열었다. 사람들은 등받이도 없는 불편한 의자에 앉아서 바깥의 풍경을 보며 커피를 마셨다. 무당의 사당에 파도가 밀려오고, 말과 장기들이 파도를 맞고, 그 물이 다시 거품을 일으키며 쓸려나가는 그 무섭고 기괴한 풍경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고 커피를 마시고선 훌쩍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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