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셨다
데즈카 오사무 지음, 정윤아 옮김 / 누림 / 2006년 10월
품절


내가 결정적으로 만화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어머니의 충고 덕택이었다. 사실 어릴적부터 의사를 꿈꾸어 왔었고 또 한편으로는 만화를 그리고도 싶었다. 이 두 갈래길에서 진로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될 순간이 왔을 때, 나는 어머니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동경에 가서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 하지만 여기 남아서 의사를 계속하고 싶기도 해요"
어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내게 되물었다
"네가 정말 좋아하는 건 어느 쪽이니?"
"만화예요"
"만화가 그렇게 좋다면 동경에 가서 만화가가 되거라."
오랜 대화가 필요치 않았다. 그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라는 말 뿐이셨다.-115쪽

인간이 동물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아프리카나 동남 아시아의 정글에 사는 사람들은 지금 우리들처럼 삶에 대한 미련이나 번뇌가 그리 강하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자손에게 남길 유산도 없었을 것이고 유가족이라고 해도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았던 만큼 그 의미도 희박했을 것이다. 맹수의 공격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면 '내가 죽게 되는구나'정도로 단순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만큼 그들에게 생명은 원초적이면서도 간단명료한 이미지인 것이다.-122쪽

평화를 향유하면서도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한 채 막연한 불안감을 갖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전쟁과 같은 혼란 속에서 인간은 희망적이고 밝은 미래를 간절히 원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삶에 대한 애착'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172쪽

카츠사이는 '아기에게 감사하자'라는 색다른 신념을 가지고 있는데 그는 늘 입버릇처럼 그 운동을 사회에 확산시키고싶다고 말하곤 한다. 내가 어째서 아기에게 감사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카츠사이는아기는 우리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우리가 죽은 후 아기는 세계의 주인공이 될 것이고 그들은 다음 세대를 책임질 귀중한 인재들이라는 설명이다. 이를테면 아기는 미래에서 온 '미래인'인 셈이다. 미래인은 우리보다 훨씬 뛰어날 것이라는 새악으로 아기를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보다 한 발 앞서 있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그들의 변화된 모습을 감싸 안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이 두 팔을 벌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일 때 아이들도 어른을 진심으로 존경할 수 있을 것이다.-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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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드림~ 2007-03-07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읽었어요. 알라딘에 오랜만에 들어왔더니 아는 분들이 별로 없네요.
레일라님 반가워요.^^(ㅎㅎ 친한척?)
 
도쿄 로망 산뽀 - 한국인이 찾아내서 일본인도 놀란 도쿄의 문화 아지트 30군데
유종국 지음, 이미라 사진 / 디자인하우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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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지트 30 곳. 이라는 조그마한 부제보다는 도쿄 로망 산뽀 에 관심을 두고 골랐기에 생각보다 너무 스타일리시한 책의 구성과 내용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대충 산보하기 좋은 한적하고 고즈넉한 도쿄의 숨은 곳 서른 곳을 소개해 주는 책이려니 싶었는데 유명한 그래픽 디자이너를 소개하는 가 하면 요지 야마모토가 튀어나오고 이세이 미야케가 수시로 언급된다. 주문하고 3달을 기다려야 완제품을 받을 수 있는 수제화 샵이 소개되고 일본의 유명 플라와 아티스트가 꽃 장식을 하고 프랑스에서 텍스타일 공부한 아티스트가 쿠션을 연출하는 카페가 명소라고 말하고 있다.

책이 참 이쁘다. 마치 잡지를 보는 듯하다. 사진도 참 이쁘다. 그런데 위의 설명들에서 대충 감이 오듯이 좀 부담스럽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30곳의 아지트는 무언가 독특하고 고급스럽단 인상이 강했다. 실용서라기 보다는 작가의 수필집같은 성격이 강해서 (문화 아지트 30군데중 몇군데를 아티스트로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요지 야마모토. 어디어디의 요지 야마모토 샵. 이 아니라 그냥 요지 야마모토 그 자체를 문화 아지트라고 소개한다 ^^) 위치 정도는 알수 있지만 어느정도 예산이 소요되는지의 정보는 수록되어있지 않은데, 이 부담스러운 장소에 과연 얼마만큼 돈이 들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선뜻 덤벼들어가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비싸 보였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이런 것에 좀 어려움을 느낀다. 신촌에 산지 꽤 되었는데도 홍대앞에 잘 가지 않는데 ( 미술관 가는 건 좋아하지만 ) 바로, 현대미술이라던가 전위적인 것이라던가 그런 것이 어렵고 특히 요즘의 핫.한 장소라고 라이센스 패션잡지에서 떠받들어 소개하는 그 문화 아지트란 곳에 뭔가 이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조용하게 혼자 즐기는 걸 좋아하는데, 독특하고 유니크하다는 그 일부 장소들은 도무지 내가 소리없이 섞여들어가기 어려운 곳들로만 보인다. 자기들이 독특하다고 생각하는 그들만의 장소처럼 보인다고 해야 할까. 같은 한국에서도 그런 장소를 부러 피하는 나에게 일본의 문화 아지트라니. 어리버리하게 관광 가이드 책자 들고서 돌아다니는 수준의 나에게는 무척이나 두려운 곳들이다. 하루종일 관광하고 지치고 땀에 찌든 몸으로 정통 재즈 바에 간다는 건.........?아트샵을 간다는 건.......?

한마디로 이 책은 도쿄관광 웬만큼 해본, 그래서 이젠 볼 게 별로 없는 사람들에겐 참 유용할거 같다. 덧붙여 독특한거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그런데 나처럼 그냥 남들이 보고 좋다고 하는 대중적인 것에도 감동하고 그냥 일상적인것 좋아하고 (난 그냥 공원에 가만히 앉아서 사람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행복하다) 아직도 도쿄에 볼것 많이 남은 사람 에게 꼭 필요한 책은 아닌듯하다.

꼭, 일반인(?)들이 범접하기 어려운 곳만 소개된건 아니다.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커피숍 '라이온', 아오야마 북센터, 미니전차등은 여행 중간 중간 찾아가보고 싶은 마음이 든 쉬운^^장소이다. 

별점이 4개인건 도쿄 로망 산뽀. 로서의 성격보다는 저자의 문화적 감수성을 엿볼수 있었던 점에서이다. (실용서로서보다는 그냥 한 개인의 글. 수필 정도의 성격으로서.)

가보고 싶은 장소보다는 에..이건 부담스러워서 패스. 하는 곳이 더 많았지만 (갤러리아 명품관도 부담스러운데 요지 야마모토 샵이라니 패스패스 ㅋㅋㅋㅋㅋ) 그래서 간접경험하는 기분이 더 극대화되었다. 이쁜 편집, 풍부한 사진자료가 간접경험이 더욱 생생하도록 도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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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07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사진이 스타일리쉬하다거나 좋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인상적인 비주얼이 있는 예쁜 책이라기보다는 도쿄를 많이 가 보신 분들이 조금 다른 정보를 얻기 위해 보시면 좋을 듯..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마광수 지음 / 해냄 / 2005년 6월
품절


나는 신념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한 개인의 신념이 올바른 방향으로 쓰여지는 수도 있겠으나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애국적 신념은 독일을 전쟁의 참화 속으로 몰고 갔고, 중세기의 성직자들이 가졌던 성스러운 신념은 무고한 여인들을 마녀로 몰아 불태워 죽이는 데 기여했다. 한 개인의 신념 때문에 스스로 파멸을 자초하는 수도 있다. 1978년 미국의 사이비 종교인 인민사원 의 8백여 명이나 되는 신도들이 미쳐 버린 교주의 신념 때문에 교주의 명령에 따라 집단자삭을 한 것이 좋은 예다.
신념과 비슷한 말로 '희망'이란 것이 있다. 마음속에 강렬한 희망이 있으면 그것이 실제로 성취될 수 있다고 학교에서는 가르친다. 신념을 가져라. 야망을 가져라. 희망을 가져라. 이런 말들은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 조회시간에 교장선생님들이 단골로 사용하시곤 했던 훈화 주제였다. -60쪽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인생이란 그렇게 간단한 방정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신념과 희망. 거기다가 노력이 덧붙여지면 성공은 반드시 보장된다고 하는데 실제로 인생을 살아나가다 보면 아무리 신념이 있고 거기에 노력이 따라도 실패하는 수가 더 많다. 필연보다는 우연에 의해서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이 바로 우리의 운명인 것 같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강한 신념과 희망을 가지고 사는 것보다는 아예 적당한 체념과 달관된 관조의 자세를 견지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가 이 험한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있어 더욱 필요한 삶의 자세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대개의 우울증이나 무기력증은 강력한 신념을 가지고 추진했던 일이 실패로 끝났을 때 닥쳐오는 강한 어탈감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신념이 자칫하면 마음의 집착이나 욕심으로 발전할 수 있고 그것이 결국 우리 인생을 망치고 만다고 하는것을 일찍부터 주장한 이들이 바로 석가 예수등의 성인이다. 석가나 예수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마음의 집착으로부터의 탈피나 작위적 의도로부터의 탈피가 될 것 같다.-61쪽

올바른 신념은 우리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품격 중의 하나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판단력에 대한 끝없는 회의와 모색 끝에 얻어지는, 먼 앞날을 투시할 수 이쓴 ㄴ올바른 역사의식과 가치관에 의한 결단으로서의 신념이 아니고서는 실상 무작정의 신념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그렇게 되면 신념은 독선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선비정신은 그 지조와 절개로 역사발전에 큰 공헌을 한 것이 사실이나 극단적이고 편협한 신념 때문에 가능성을 확대시키지 못하고 정체상태에 머물고 만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세상이 깨끗하면 나와서 벼슬을 살고 세상이 더러우면 산속에 들어가 숨어버린다는 식의 은둔주의적 사고방식은 곧 명분위주의 현실도피적이고 소극적인 사람들만을 올바르고 꼿꼿한 인간으로 보게끔 만들어놓았다. 그러다 보니 선비나 지식인들은 반드시 야당적이어야 하고 적극적으로 현실참여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되며 항상 비판적이어야 한다는 무슨 통념 같은 것이 형성된 것이 같다. -156쪽

그릇된 신념을 갖는 것보다는 아예 신념이 없는 편이 차라리 낫다. 돌이켜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지진 화재 홍수등 천재지변으로 인한 피해보다도 훨씬 더 참혹한 피해가, 인간의 그것도 아주 우수하고 탁월한 인간의 신념 때문에 빚어졌다. 역사상의 큰 전쟁들은 모두 몇몇 통치자들과 우수한 지도자와 지식인드르이 애국적 대의 명분이나 종교적 신념 때문에 수행되었으며 중세기 암흑시대의 성직자들은 성스러운 신념을 가지고 진리를 말하는 갈릴레오를 단죄했고 수많은 여인들을 마녀라는 죄목으로 화형에 처했던 것이다. 신념이 폭력화하여 횡포를 부릴 때 그 피해는 이루 형언할 수 없으리만큼 크다.
맹자는 소오어지자 위기착야 라고 말한 바 있다. 참된 지혜를 가진 사람이 미워하고 꺼리는 것은 천착이라는 뜻이니, 한 가지 신념만을 고집하여 파고드는 것은 군자가 취할 올바른 학문의 방도가 못된다는 의미이다. 서양의 학문이 형이상학을 중심으로 하는 외곬의 분석과 천착에 전념하는 것이었다면, 동양의 학문적 전통은 폭넓은 식견을 바탕으로 하는 전인적인격의 함양에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이 한마디로 간파할 수 있다. -159쪽

섹스는 창조와 생산, 그리고 행복의 원동력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역사는 계속 섹스의 긍정적 기능을 무시해 왔고 주로 부정적 기능만을 집중저긍로 조명하여 사회구성원들을 성적 죄의식에 빠져들도록 만들었다. 다시 말해서 주로 생식적 기능으로서의 섹스만을 일종의 필요악으로 인정하여 쾌락으로서의 섹스를 죄악시하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섹스를 도덕적. 윤리적 측면에서만 접근하여 생각하면 필연적으로 부정적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기득권 지배층에 의해 선전된 도덕과 윤리는 다부?금욕주의적 측면에 치중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금욕주의적 인식이 강할 때 반드시 복종의 미덕이 생겨나고 인내심의 함양이 최고의 덕목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소수의 지배계층은 이성우월주의에 입각한 엘리트 독재를 합법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79쪽

다가온 21세기의 삶의 유형은 받느시 섹스 중심으로 변화될 것이 틀림없다. 이미 이데올로기 (또는 이성)중심의 살므이 유형이 개인적 쾌락(또는 행복) 중심의 삶의 유형으로 바뀌어가는 징후들이 우리 사회에도 나타나고 있다. 아직은 경제 정치 복지 등의 면에서 선진국의 패턴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빵과 이성 중심의 가치관이 겉으로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지만 만약에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대열에 끼게 된다면 과거의 가치관은 곧바로 섹스와 감성중심의 가치관으로 뒤바뀔 것이다. 선진국형의 삶과 문화란 식욕중심의 문화가 아니라 성욕 중심의 문화에 다름 아니기 대무닝다. 말하자면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에서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른 돼지가 낫다'로 사회 구성원의 가치관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빵이 부족한 상태에서 빵의 부족상태를 억지로 자위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이상적 인간형으로 내세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빵의 여유가 생기고 나면 배고픈 소크라테스는 무의미한 인간형이 되어버리고 일단 배부른 돼지의 행복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에 가서는 배부른 소크라테스를 지향하게 되고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추구하는 행복은 성 또는 성욕의 대리배설로서의 섹스문화를 통해서 달성되게 되는 것이다.-180쪽

대개의 문학작품들은 모두 겉으로 내세우는 주제와 속으로 숨어있는 주제를 각각 다르게 가지고 있다. 예컨대 춘향전의 표면 주제는 춘향의 절개와 사회악타파인데 이면주제는 결혼을 통한 신분상승욕구이다. 곧 춘향전은 신데렐라 스토리인 것이다. 흥부전의 표면 주제는 권선징악인데, 이면 주제는 부에대한 끝없는 욕망과 추구이다. 삼국지의 표면 주제는 충성과 의리이지만 이면 주제는 권력획득에의 의지와 잔인한 장면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사디즘적 쾌락의 추구이다. 삼국지과 왜 그토록 재미있는가 생각해볼 때 독자들이 주인공드르이 의리와 충성심에 감동되어 재미를 느낀다고는 볼 수 없다. 그것은 겉으로 내세우는 도덕주의적 위장일 뿐이다 . 내심 독자들은 삼국지의 각종 전쟁 장면에서 (특히 적벽대전 부분) 보여주는 대량 살상을 통하여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금병매도 마찬가지. 표면 주제는 여자를 너무 밝히면 망한다 지만 이면 주제는 다양한 성생활의 즐거움 이다. 그래서 금병매의 대부분은 변태적 성애의 묘사로 가득 차 있다. -193쪽

또한 유명한 연애소설의 경우 대개의 여주인공들은 젊은 나에에 불치의 병이나 사고로 죽는다. 춘희의 마르그리트 마농 레스코의 마농, 개선문의 조앙 마두가 그렇다. 또 내가 무척 감명 깊게 읽은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의 캐서린도 그렇다. 왜 그럴까? 물론 영원한 사랑, 죽음을 초월한 사랑을 보여주려 했다고 작가는 말하겠지만 사실 작가의 마음속에서는 그 여자를 진짜 죽여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너무 오래가는 사랑은 권태와 짜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마누라가 죽으면 남편은 변소에 가서 웃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그만큼이나 권태는 지겨운 것이고 아무리 예쁜 여자라도 늙으면 심통 사납게 되어버릴 뿐이므로 여주인공이 싱싱할 때 죽여버려야만 독자들의 잠재의식 깊숙이 진짜 감동 진짜 쾌감을 주 룻 이? 물론 이건 남자 위주의 이야기다. 그러나 여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윤동주 시인이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는 그가 젊은 나이에 요절해 버려서 그렇다. 늙어서 추할 꼴 보이는 것보다 영원한 청년 윤동주가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194쪽

요즘 사람들은 참으로 오래 산다. 일흔을 넘기는 게 이젠 보통이 되었다. 77세의 정주영 ㅆ기 대통령이 되어보겠다고 설친 정도니 정말 평균 수명이 늘어간 것을 실감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꼭 나무랄 수만은 없다. 어쨌든 오래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원칙대로라면 오래오래 살아야만 좋은 문학작품이 나올 수 있다. 여간 천재적인 두뇌를 갖고 있지 않는 한, 오래라도 살고 봐야 기나긴 경험의 축적에 힘Ÿ恃?훌륭한 작품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절해야만 변절하지 않을 수 있다는 공식은 앞으로 없어져버려야 한다. 요절하지 ㅇ낳고 오래오래 살아남더라도 꿋꿋한 기개로 애초의 지조를 지켜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육체는 늙어가더라도 마음만은 언제나 청춘인 채로 있을 수가 있다. 젊어서는 낭만주의자였다가 늙어서는 리얼리스트로 변해버리는 것도 정도는 아닌 것이다. 나는 내가 지금 자식도 없이 혼자 살아간다는 데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나는 지금 낭만적 연애에의 꿈에 부풀어 있다. 그리고 내 생각이 10대 때부터 야했고 또 지금까지도 야하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느낀다.-239쪽

늙으면 다들 보수주의자가 된다. 아니 늙지 않더라도 35세만 넘으면 다들 보수주의자가 된다. 이런 와중에서 내가 아직도 철부지 낭만정신, 철부지 자유주의 정신이나마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어찌나 다행스럽게 생각되는지 모른다. 문학가는 적어도 늙어 죽을 때까지 낭만주의 정신 (낭만주의 정신은 혁명정신이요, 저항정신이다)을 유지해야 하고 그래서 언제나 윤리적으로도 진보주의자, 정치적으로도 혁신주의자여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자식도 없는 홀몸이라서 야한 얘기를 거침없이 지껄여 댈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앞으로 결혼을 하고 자식을 갖게 된다 하더라도 절대로 변절하지 않겠다. 예전에는 자식을 핑계 삼아 (자식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이유로)변절하는 이들도 많았고 단지 아버지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목에다 힘을 주고 보수윤리를 표방하는 이들도 많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겉늙게 하고 추레하게 하고 치사스럽게 만든 것은 다 자식과 가족이라는 굴레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식은 자식이고 나는 나다. 석가는 아버지와 자식 그리고 나라마자 버리고 나와 홀로서기를 감행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식이나 가족을 핑계로 서서히 추하게 변해가는 자신을 변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석가처럼 아예 출가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젊은 의지를 평생동안 지켜나가도록 노력해야만 하는 것이다.-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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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로망 산뽀 - 한국인이 찾아내서 일본인도 놀란 도쿄의 문화 아지트 30군데
유종국 지음, 이미라 사진 / 디자인하우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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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동기'라면, 해서는 안 되는 거란 무엇 하나 없어-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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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랄라 하우스
김영하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8월
구판절판


'사람 도리'를 하며 무난하게 사는 사람들도 필요하지만 남이 하지 ㅇ낳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도 이 세상 어딘가에 그 쓰임이 있을 것이다. 가끔 주변에서 자기 아이가 왕따가 될까봐 지나치게 전전긍긍하는 부모들을 보게 된다. 그렇지만 고립된 개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꼭 불행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수도 한때는 홀로 광야에서 배회하는 그 사회의 왕따였다. 그분은 중요한 결정을 앞둔 순간마다 제자들과 군중을 물리치고 언덕으로 올라가 기꺼이 혼자가 되었다. 역사는 말없는 다수의 것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 고독한 개인들의 몫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53쪽

우리는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인생의 버스는 항상 엉뚱한 곳에 우리를 내려놓는다.-187쪽

속독 완독 통독 등 가지가지 독서법이 있으나 독서에 드는 비용의 경중에 따라 분류할 수도 있다. 가장 사치스런 독서법을 먼저 소개한다. 이른바 '현장독서법'이라 부를 수 있을 이 방법은 어지간한 살림살이의 독자들은 선뜻 실행에 옮기기 어려울 정도로 돈이 많이 든다. 쉽게 말해 이 독서법은 특정한 책을 골라 그것에 어울릴 만한 장소 (대체로 작품의 배경)에 가서 읽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읽으러 작품의 배경이 된 영국 요크셔로 가 바람 부는 언덕에 앉아 책장을 넘기는 것이다. 에베레스트 등반을 둘러싼 인간들의 탐욕과 그로 인한 좌절을 실감나게 묘사한 존 크라가우어의 걸작 논픽션 <희박한 공기 속으로>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읽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눈내리는 일본의 니가타현에서 읽으면 좋을 것이다.



-198쪽

이 독서법엔 때도 중요하다. 작품을 먼저 정하고 가야 할 곳과 시기를 정하는 것이니 세계의 계절과 기후 동향에도 민감해져야 한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미안이야기는 로마에서 읽고 바다의 도시이야기는 베니스에서 읽으면 좋을 것이다. 이왕 그 아름다운 도시까지 가느데 여행가방에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 죽다 도 끼워넣도록 하자.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독서법은 돈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 생각이 있는 사람은 돈과 시간이 없고 여유가 있는 사람은 이상하게 이런 독서법에 별 관심이 없다. 조금 돈이 덜 드는 독서법은, 이왕 가기로 한 목적지가 배경인 책을 들고 가는 것이다. 크리스토프 바타이유의 다다를 수 없는 나라 를 들고 베트남에 간다면 중부 고원지방의 서늘한 바람을 책 속에서 맛볼 수 있겠고 교토로 가실 분들은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가 간사이 지방의 고온다습한 공기와 잘 어울릴 터이다. -198쪽

마지막으로 가장 저렴한 (그러면서도 가격대 성능비가 꽤 우수한)독서법은, 이미 눈치빠른 분들은 짐작하셨겠지만, 집에서 위에 말한 모든 책들을 쌓아놓고 한권 한권 읽어가면서 남루한 우리의 일상을 베네스 교토 이스탄불 요크셔 히말라야로 바꾸어버리는 것이다. 돈이 별로 들지 ㅇ낳을 뿐 아니라 테러와 범죄, 풍토병과 과로의 위험도 없다. 그렇다고 감동이 반드시 '현장독서법'에 뒤지라는 법도 없다(어쩌면 더 강할 수도!)-190쪽

그 와중에도 지난 주말에는 경주에 꽃놀이를 다녀왔습니다. 허무주의를 조장하는 분분한 벚꽃잎들 때문에 벚꽃금지법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헛된 망상을 하기도 했습니다.-222쪽

한달 전 작가님 강연 듣고 감동받은 문창과 학생입니다. 작가들은 눌변이 많던 데 작가님은 말씀도 잘하시고 키도 크고 몸도 좋고 손은 어찌나 하얗던지...제가 그때 첫 질문 했는데 인간 김영하에 대해..2세 계획은 없냐는 당돌한 질문도..그때 작가님은 "나는 호사취미도 없고 영화도 여행도 음악도 별로다. 2세도 갖지 않겠다. 고양이 키우면서 살겠다. 24시간 소설만 생각한다. 이번 생은 소설에 모든 걸 걸겠다" 말씀하셨죠.-263쪽

그러나 우주에는 지구와 안드로메다 성운만 있는 건 아니다. 그 사이에도 그 너머에도 수많은 별자리와 행성과 소혹성들이 나름의 빛을 발하고 있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선 엔진과 연료가 필요하다. 독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독서에도 일정한 훈련과 의식적인 노력이 분명히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분명한 대가를 받는다. 소설은 춤과 같아서 처음에도 즐겁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더 큰 즐거움을 준다. 아는 작가가 많아지고 출판사나 번역자에 따라 책을 고르는 요령들을 터득해감에 따라 취향은 분명해지고 만족감도 커진다.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책을 사야 할 지 알 수 없던 대형서점이 자기 방 서재처럼 친숙해지는 순간이 온다. 동시에 소설을 읽는 목적도 달라진다. 감정이입을 통한 즉자적 수준의 감동보다는 텍스트 자체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형태로 바뀐다. <중략>
소설 역시, 그래 이건 내 얘기야, 라는 단계에서, 이건 내 얘기가 아니지만 새롭고 탁월해, 라는 단계로 전이할 수 있다. 그 단계의 즐거움이 이전 단계의 즐거움에 비해 월등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대단히 독특한 기쁨이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단계로 전이하는 과정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마치 초보 운전자들처럼, 바이엘을 배우는 피아노학원생처럼,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소설의 초보다. 따라서 훈련이 필요하다. 독서도 피아노와 같은 하나의 숙련된 기능이다.'
*앤디뽕님의 밑줄긋기를 붙여넣기 하였다-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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