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와 비밀의 부채 1
리사 시 지음, 양선아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12월
구판절판


시댁에서는 그들의 발 모형을 보내왔다. 우리는 남편들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키가 큰지, 얼굴에 마마자국이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남편들의 발 크기만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우리는 어린 처녀들이었고 그 또래 처녀들처럼 충분히 낭만적이었다. 우리는 발 모양을 보고 장래 남편들에 대해 온갖 상상을 했다.-175쪽

야오족 사람들이 딸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은 다 거짓이었다.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나 또한 한 여인의 딸이었고 내 딸의 어미이기도 하니까.
그들의 말대로 딸들은 쓸모없을지도 모른다. 딸들은 웃자란 가지처럼 거추장스럽고, 쓸데없는 걱정거리이며, 다른 가족을 위해 기르는 자식일지도 모른다.
많은 어머니들은 주문을 걸듯 그렇게 독한 말을 스스로에게 되풀이한다. 딸을 위해 어떤 감정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사랑은 물론 동정, 가여움. 희생, 귀여움 등등의 그 어떤 감정도 배제하려 한다. 될 수 있드면 독하고 쌀쌀맞은 어미로 남기를 원한다. 그래야 멀리 남의 집으로 시집간 딸이 더 이상 친정 생각을 하며 눈물짓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아무리 사랑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친정식구들은 딸을 사랑하고 아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야 누슈로 쓴 여자의 은밀한 편지에 "나는 아버지 손 안의 진주였다" 같은 구절이 왜 그렇게 자주 등장하겠는가?
어쩌면 부모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애써 사랑하는 딸을 외면하고, 남들이 보는 앞에서 딸을 구박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다. 친정 부모들의 가슴 아픈 구박은 사랑을 빼앗기는 것이 두려워 사랑을 주지 않으려는 연약한 몸부림에 불과할 뿐이다.-1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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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정원 - 하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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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아는 문장 하나가 있어요. 뭐라고 했느냐 하면, 에에 그러니까....인간은 자신의 힘에 관한 지식을 획득해서 이들 힘을 사회적 힘으로 조직하고, 그러한 사회적 힘을 더이상 정치적 힘의 형태로 자신과 분리시키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해방을 실현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어쩐지 콧날이 시큰해지더니 자기도 모르게 눈 속이 뜨거워졌지요. 갑자기 그때 당신 생각이 났을까요. 그래그래,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고. 편지라도 써야 하는데. 나는 그에게 조용히 물었습니다.
그게 누구의 책인가요?
맑스라는 털보아저씨의 책입니다. 이때는 그가 청년으로 불리던 시기였지만요. 우리도 여기서 이제 겨우 시작이니까.
나는 얼른 붉어진 눈을 감추려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최루탄 때문에 언제나 학교에 갈 때마다 마스크를 쓰고 두 눈을 가리고도 눈두덩이 부어오를 정도로 울고 나오면서 그건 아무런 감정이 없는 상처 같은 것이었는데, 역시 사람의 말은 위대해요. 물론 나는 그 딱딱한 번역투의 문장이 시 같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건 당신이 사용하던 말투였기 때문이기도 해요.-18쪽

아줌마가 은결이를 덥석 안아다가 내 팔 사이에 넣어주었고 나는 뽀뽀를 해주었습니다. 은결이는 그 무렵에 엄마는 물론이고 맘마. 찌찌, 빠이빠이, 이뻐, 미워 따위의 간단한 낱말들을 한마디씩 종알거렸는데 내가 입을 맞추자마자 고개를 돌려 빰으로 내 입술을 뿌리치면서 이래요
엄마 미워
나는 한동안 은결이를 꼭 안고 서성였어요. 따뜻한 작은 가슴의 통통대는 박동이 느껴지면서 이것이 내 몸안에 있을 적의 일들이 생각났어요.-23쪽

오현우씨와는 어떤 관계입니까?
저 그냥.....친구인데요.
그는 빙긋 웃었어요.
애인입니까?
저어....그. 그래요.
관청이라든가 군에서 여자친구란 성립이 안되는 걸 잘 알아요. 그들에게는 아내면 아내, 애인이면 애인 외에는 정답이 따로 없으니까요. 아무개 애인이 면회 왔다더라는 말은 웃음 섞여 말이 되어도 여자친구?라는 알쏭달쏭한 말은 없는 셈이지요.-30쪽

공연히 그러지들 마라, 느이들 나 포섭할려구 그러는 거 모를 줄 알았니?
진작에 포섭된 게 아니고예? 저두 오선배 얘긴 많이 들었심더.
나는 갑자기 짜증이 났다.
뭐야아, 그딴 소리가 어딨어? 오니 아니 내 앞에서 허튼 소리 하지 말어. 야 송가야, 니가 입 싸게 놀렸어?
송영태나 최미경도 내 돌변한 태도에 당황한 모양이었다. 송이 연신 손을 내저으며 재빠르게 설명했다.
아냐, 그건 오해야 윤희씨. 유신 때부터 지금까지 변혁운동의 모델들을 검토하다 보면 오선배 사건은 언제나 빠짐없이 거론이 되어 있어. 다만 여기서 모임을 가지게 되면서 윤희씨 얘기가 덧붙여진 거야.
제가 잘못했심더. 그렇다꼬 저희가 좋아하는 선배님들을 뒷전에서 비양거리고 할 사람들은 아니라예. 그 반댑니더. 언니, 화 풀으소 고마.
나는 소주를 벌컷 들이켜고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송영태가 술이 깨버렸는지 말짱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말을 꺼냈다.
한형, 노여움을 풀어. 모두가 당하는 고통을 두고 냉소할 사람은 우리들 중에 아무도 없어. 미경이 후배가 가볍게 얘길 꺼낸 건 잘못이지만 이제 시작이라 워낙 니편 내편이 분명해서 그래. 서툴고 덕 익은 것두 이쁘잖아.-45쪽

한형, 날 어떻게 생각해?
보통 때 같으면 초전박살이라고 아예 그런 분위기를 잡지도 못하게 우악스런 욕이나 농담으로 입을 막았을 텐데 아까부터 그의 얼굴이 너무 진지해서 차마 그러지를 못했다. 그냥 잔잔하게 웃는 표정을 짓자. 나는 공연히 차림표가 붙은 더러운 벽을 올려다보며 되물었다.
그래 어떻게 생각할 거 같니?
그랬더니 이 녀석이 갑자기 탁자를 세게 두드렸다.
내가 먼저 물었잖아?
허, 기가 막혀서 이젠 성질까지 부리네 하는 얼굴로 쳇, 하는 입시늉을 하면서 나는 고개를 돌리고 딴청을 해 보였다.
너 고거 먹고 벌써 취했니?
우리가 만난 지 일년 거의 되어가지...
혼자서 입속으로 중얼중얼하더니 송영태가 불쑥 말했다.
나, 한형한테 정들었다.
점점 유행가조루 나올 거야? 것보다 한형소리 좀 뺄 수 없어?
너 좋아한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정말 그 친구라도 없었으면 진학하고 나서 얼마나 생소하고 심드렁한 시간이 되었을까를 생각했다. 나는 일부러 어긋나게 말해버렸다.
인마, 나두 널 좋아해 .하지만 너하구 그 이상은 절대루 안할 거니까 두 눈에 라이트 꺼라 응?
나 먼저 간다.
하더니 영태는 벌떡 일어나 계산하고 국밥집 밖으로 휭하니 나가버렸다.-99쪽

어깨동무를 하고 거리를 질주하다 위협사격에 쓰러지는 그런 순진무구한 장면말고 행정부 청사를 접수한 혁명위원회가 스스로의 의결기구를 무장으로 지키는 장면 따위는 이젠 없다. 아마 점점 그런 가능성은 사라져가리라. 끊임없는 토론과 언제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설득과 뜨뜻미지근한 합의와 지루한 기다림 끝에 약간의 진전이 있거나 그것마저 시간이 지나면서 왜곡될 거야. 그래 기껏 조합이 아니면 선거를 하게 되겠지. 엉망으로 헝클어진 실타래의 시초를 찾을 수도 없이 방금 놓쳐버린 실 끝이라도 잡게 되면 다행일 거야. 이 실끝을 붙잡고 씨름하다 보면 모두 어슷비슷해질걸. 다시는 출발점을 향하여 돌이킬 수도 없이. 제도를 부숴버리는 동안에 그것을 부수는 제도가 만들어지겠지. 누구나 언제든 투쟁하는 전사로 남아 있지는 않는다. 혁명위원회도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아내는 아이를 낳거나 식량배급이 늦는다고 투덜대고 좀 일찍 들어올 수 없냐고 바가지를 긁고 생활비가 거덜이 났다고 하소연하고. 식구들은 모두들 끊임없이 먹어대고 마셔대고 싸우다가 성교도 하고 잠들고 아침에 일어나 새옷으로 갈아입고 출근하고 다시 토론해야 한다. 그가 출발했던 땅에서 이제는 아득한 미래로 날아간 하늘 사이에는 무한 천공이 입을 벌리고 있다. 혁명이라고. 그건 정지된 섬광이야. 오현우처럼 유혜되거나 그의 아우들같이 바리케이드 앞에서 연발사격에 쓰러지지 않는 한 그는 출퇴근하는 토론자로 기진맥진 살아가게 될 테니까.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혁명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환멸에 치를 떨게 된다 할지라도 피부를 찌르는 듯한 전율로 나는 살아 있다고 중얼거리게 하는 사업. -109쪽

나는 어둡지만 눈에 익은 오솔길을 올라 집으로 돌아왔다. 내려올 때 켜두었던 형광등 불빛으로 방문이 하얗게 밝혀져 있다. 밖에서 보면 격자 창살이 더욱 선명했다. 누군가 저 방안에 있는 것 같고 내 발걸음 소리를 듣고 그림자와 함께 방문이 열릴 것만 같았다. 이제 와요? 하는 목소리와 그네의 어두운 실루엣이 툇마루 위로 나타날 것이다. 나는 신을 벅소 툇마루에 올라 방문을 열고는 안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다. 방안에 들어서지 않고 마루에 털퍼덕 주저앉아 봄밤을 수놓고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봐, 별똥이 진다. 또 누가 세상을 떠나는가보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고즈넉하게 들려왔다. 어딘가 살아 있다 하더라도 같은 장소에서 함께 있었던 사라므이 부재는 거기 남은 한사람까지도 존재하지 않게 만든다. -126쪽

공안수든 시국사범이든 간첩조작사건이든 이른바 집시법 사건이든 가리지 않고 머릿속의 사상을 바꿀 것을 끈질기게 강요했다. 요즈음 뱃속을 관찰하는 투시기가 나온 것처럼 머리에다 대고 비추어보면 붉고 푸른 색깔이 판명되는 기계라도 발명해야 할 판이었다. 내가 빨갱이인지 퍼랭이인지는 나도 잘 몰랐다. 나는 이 땅에서 무력으로 양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잡은 일분 군부와 그에 붙어서 온갖 이권과 특혜를 누려온 독점자본을 반대했다. 유신시대와 오월의 학살을 겪으면서 나와 타자를 알게 되고 여러번의 좌절감에 시달린 젊은이들은 북쪽이 타자가 아니라는 너무도 뻔한 사실에 눈을 떴다. 육십년대에는 가지고만 있어도 사형이라던 문건들이 바다 밖에서 들어왔는데 숨을 죽이고 그런 자료들을 접하기 시작한 게 팔십년대 초반의 일이다. 동우가 그런 자료들을 모으고 내부 문건에 반영했던 것은 좌편향이었을까. 내가 줄곧 감옥에 있으면서 세상이 바뀌어갔던 길을 돌이켜보면 그런 따위는 차츰 보편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갔다. 세월은 저절로 균형을 잡아간다. 그것 봐라, 별일도 아니었잖아.-127쪽

그는 분명히 과학을 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환경공학 계통이어서 지혜가 있는 기계쟁이처럼 보였거든요. 사람의 일에 관한 잡지식이 제법 많은 듯했어요. 여기서의 쓰레기나 산업폐기물의 처리과정을 연구한다던가 그랬어요. 하지만 내가 그맘때의 한국에서 보았던 친구들처럼 급진적이진 않았어요.이야기를 조용조용 유머러스하게 진행하고 다분히 상식적이었습니다. 나는 소싯적부터 그런 남자를 처음 보았거든요. 물론 정서는 안정되어 있었고. 그는 어려서부터 중산층 집안에서 햇빛과 바람이 잘 드나드는 창가에 놓인 관엽식물처럼 파란없이 자란 게 분명해요. -223쪽

이선생은 셔츠바람에 가슴까지 올라오는 앞치마를 두르고 오븐 앞에서 씨름하고 있었어요.
뭘 하는 거예요?
내가 그의 등뒤로 다가서며 물었더니 그가 나를 가볍게 밀어냈어요. 어허, 여자가 부엌에 들어오면 안되는데....
반대말놀이 하는 건가요?
신유교라구 아시는지.
그는 나에게 식탁을 가리켰습니다
거기 앉으세요. 오늘 메뉴는.......참, 양고기 먹어봤어요?
그럼요, 향료와 양념을 많이 쳐야 할 텐데.
.....
나는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햄과 멜론을 곁들인 스페인풍의 전채도 ?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쌉싸름한 맛이 감도는 트로켄류의 화이트와인을 마셨는데 이선생이 한장의 잎을 돌돌 말아서 가느다란 실로 묶은 원뿔 모양의 담배를 주었어요. 한모금 빠니까 연기가 좀 독하기는 했지만 향긋하고 구수한 원래의 풀잎냄새가 나서 쌉쌀한 술맛과 잘 어울렸지요
이거 담배 맞죠?
터키 상점에서 팔아요. 파키스탄 거라구 그러던데
씨가보다 훨씬 토속적인데요
이런 광경이 영화장면에라두 보이면 나는 귀밑에 소름이 돋아서 딴청을 부릴걸. 생각해보면 그것두 과장이었어요. 시시한 멋 좀 부린들 어때. 내일이면 모든 조명과 장치를 표백시켜버리는 한낮의 태양이 뜰 텐데.
저 동네가 왜 좋죠?
나는 잎담배로 벽에 걸린 부처님을 지시했어요.
중생일체란 소리가 근사하고 폭력이 없잖소
세계를 단순히 해석하는 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에요
그걸 누가 해석하는데. 사람들은 자기 사는 동안의 생을 통해서 계절에 의미를 붙이고 그러지요. 세상은 그 누구와 상관없이 저 혼자 있는 거요.-225쪽

유월이 되어 날씨가 변덕이 심해졌을 때 나는 몹시 앓았어요. 앍으면서도 나는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에 나는 주변에 변화가 일어날 때마다 벼락같이 병이 찾아와 탈진하도록 앓고 일어나곤 했거든요. 어린아이들은 한번씩 앓을 때마다 몸도 마음도 성숙해가는 법이지만 어른인 나는 어쩌면 노화와 쇠락으로 가는 게 아닌지.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봄비가 감미롭게 새싹을 키우는 것과 가을비가 땅속 깊은 뿌리를 든든히 해주는 것과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나는 마음속의 저 깊은 곳으로 더 아래로 내려갔으면 했어요.-230쪽

알코올을 조금 줄이세요. 식사를 빼먹지 말구요.
그래 알고 있어. 처음엔 난방비를 줄이려고 저녁마다 잘 때만 마셨는데 차츰 양이 늘어나는 거야. 그런데 그 남자친구 이야기 좀 해줄래요?
나도 아직 잘 몰라요. 나이는 마흔 셋, 이혼했고, 아들이 하나 있고.
오, 그건 관청 서류에 나오는 기록 아냐?
나는 맥없이 웃었습니다.
무슨 얘기를 해요?
내 느낌으로는 서로 호감이 있는 것 같은데...
그걸 마리가 어떻게 알아요?
그네는 주름잡힌 자기 콧장등을 검지로 콕콕 찍어 보였죠.
여기서 알지. 나는 깊은 밤 어둠속에서도 병 속에 보드카가 들었는지 쉬납스인지 꼬냑인지 다 알아요. 술처럼 사랑에는 남다른 향기가 있는거야.
마리는 슈테판이 요양원으로 가버린 뒤에 다른 남자가 없었어요?
왜......몇번 있었지. 가끔 만나던 평범한 의사도 있었고 가난한 연극 연출가도 있었고 마지막이 언제쯤이었는지 모르겠네.
그가 요양원에서 아직 살아 있었을 때의 일인가요?
물론이야. 그건 전혀 다른 거야. 유니는 지금 감옥의 남자를 생각하고 있군. 잠잘 때를 생각해봐. 온 밤내 같은 줄거리의 꿈을 꾸게 되지는 않아. 깨고 나면 몇 장면만 또렷하게 남곤 하지. 아무도 그 ?을 미리 예상할 수는 없어요. 생이 어떤 결말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것들이 서로 끼여들지 않고는 어떤 대목이 중요했는가를 모르고 죽게 될 거야.
카밀레차에 넣은 스카치 탓이었는지 눈꺼풀이 무거워지면서 졸음이 왔어요. 마리가 내 이불깃을 여며주었지요.
늘 같은 끔을 꿀 수도 없고 그것마저 전부가 아니야. 잘 자요.-231쪽

나는 그 남자와 여러번 잤어요. 그의 목소리와 까칠한 면도자리와 뻣뻣한 살갗을 기억해요. 그의 상식적이고 안정된 정서가 얼마나 편안했는지 몰라요. 그리고 따뜻하잖아요. 열정이 도대체 무슨 독감 따위인지 이제는 기억조차 없지만, 바람부는 날 어느 언덕 위에서 오리나무 같은 데 기대어 서면 좋잖아요. 작별할 때 한맺힌 핏물도 내게 덮어씌우지 않고 조용히 한걸음 물러서는 그림자같이요. 아버지의 감 이야기에 나오는 색시처럼 내색 않고 같은 선에 서서 넉넉한 시선으로 한 방향을 바라보아주는 아낙이 되고 싶었지요. 그렇지만 헤어지진 말고 오랜 같이 살 수 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을.-249쪽

나는 언젠가 친구를 비판하면서, 우리는 그 시대에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우리는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 라고 절망적으로 외쳤던 적이 있어요. 그렇지만 요새 와서 나는 이 말을 수정할 작정입니다. 지상에서 어느 때에나 사람들은 사랑을 했어요. 세상에 드러나는 모양이 시대마다 다르기는 했어도. 물살에 씻기어 닳아지고 부서지는 돌멩이처럼 일상에 시달리는 벗들을 보면서 나는 그들이 회한에 잠기지 않기를 바래요. 지금 그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 풍요로운 인생의 깊이를 존중하라고. 그리고 더욱 성숙한 사랑으로 지난날과 미래를 껴안게 될 것을 기대하구 있어요.-3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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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정원 - 상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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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언제나 아잇적에 보았던 인물을 어른이 되어 만나면 누구나 실망하게 되는지. 미래가 확정되지 않은 데서 오는 욕망의 어두운 그림자가 전혀 담기지 않은 아이의 영리함이며 순진함이며가 그야말로 덧없이 사라지고, 성인이 되면서 어느 결에 좀 피로한 듯한 교활함이 살갗에 실리는 것이다. -76쪽

윤희에게
처음 여기 오던 밤에 나는 뺑끼통 위에 올라서서 먼 어둠속 허공에 몇점씩 빛나는 별을 보았소. 별인 줄 알았다가 산동네 가난한 창에서 보내는 불빛임을 이튿날에사 알아보았소. 초저녁에는 산허리에 불빛이 가득하더니 밤이 깊고 새벽이 가까울수록 한점 두점 사라져 저만큼 하나, 다시 저어만큼 하나씩. 그제사 창이 다시 별이 되는 연유를 새겨봅니다. 잠들지 못한 마음 별이 되는 지금, 내 것도 저기서는 별이 되겠지요.-78쪽

나는 아직도 아버지의 청춘이 깃들인 사진 두 장을 간직하고 있어요. 하나는 동경 유학시절의 모습인데 사각모에 망또를 걸치고 있어요. 누렇게 퇴색한 옛날 사진의 인물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어른스럽고 무슨 현자처럼 은근한 권위가 있어 보이는 걸까. 아버지는 그 시절에 고작 칸트나 헤겔 또는 호이어바흐에서 이 사진을 찍을 무렵에야 막 엥겔스와 맑스로 넘어갔을 텐데. 칸다의 고서점 골목에서 문고판 '자본'이나 '선언'을 찾아 읽었겠지요. -83쪽

다음달에 같이 유학갈 거야.
그는 자기 약혼녀에 관해서 성의를 가지고 설명을 했어요. 뭐 빤하잖아요. 멜로영화에 많이 나오는 줄거리. 흔하다는 건 바로 당대 생화르이 반영이라면서요? 장래를 촉망받는 가난한 젊은이와 부잣집 따님의 결혼이며 유학이며 그리고 과거와의 결별.

고마웠어
나는 그를 잠시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리곤 나직하게 물었지요.
뭐가요.....?
나한테 잘해줘서.
나는 정말 진지하게 말했어요.
형, 씩씩하게 잘살아.
이렇게 우리의 영화 한편이 끝났습니다. 내가 이런 얘길 세세하게 적어놓는 건 그 시대의 꿈입네 야망이네 성공이네 하며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던 인생의 시시함에 대해서 다시 확인하고 싶어서에요.-137쪽

너두 아버지 원망을 많이 했지 않니.
네, 어려서는 그랬어요. 아무것두 몰랐으니까. 아버지 같은 사람들을 악마처럼 생각했거든요.
너희들이 책도 많이 읽고 세계사도 알게 되고 할 때까지 나두 아무말 않고 기다려운 셈이로구나. 그래...세계는 끊임없이 변해갈 테지. 우리두 그런 변화의 먼지 같은 일부분이었다.
아버지는 말을 하다가 피로해졌는지 점점 가늘어지고 목소리가 낮아지면서 이내 잠에 곯아떨어지곤 ?지요.
이건 우리의 세계가 아니야.
네 ? 아버지, 뭐라구요?
너의 길을 걸어라, 세상이 어떻게 떠들든지...
어딜 가신다구요?
가야지...
그러고는 그냥 잠으로 빠져드는 거였죠. -146쪽

얘, 글쎄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 무렵이 되면 자기 잘못을 정확히 알게 되고 또 자신을 용서하게 되더구나. 나는 절대로 그때를 후회하진 않겠다. 그렇지만 그런 길밖에 없었을까 하구 생각해볼 때가 많아. 그래, 세상에서 지어낸 삼라만상은 부처님 말씀처럼 세상이 지닌 한계만큼의 꼴로 나타나게 마련이지. 내 동료들이 꿈꾸었던 세상은 그저 허공중에 빛나는 별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양쪽을 보니까 서로 거울을 맞대놓은 듯이 그저 사람살이의 좌우가 바뀐데 지나지 않았어. 싸우는 동안에 서로를 닮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사람세상의 이 미완은 멋있지 않니? 미처 해내기 전에 같은 무렵에 살던 모두가 죽어버리니까. 불교에서 그걸 뭐라고 하더라. 백년 후에는 현재 세상에 살고 있던 모두가 존재하지 않는댄다. 그맘때 사람들은 모두가 새사람들이지. 그렇게 거듭된단다. -147쪽

아버지, 요새는 땡감이 없대요. 카바이드인가 뭔가로 아예 떪은 감을 연시로 만든다던데 뭐.
응, 그래야 상품이 되겠구나. 촌에는 있겠지.
요즘은 애들두 그런 건 안 먹을 거예요.
아버지는 단감을 손에 쥐었다 놓았다하면서 들여다보았어요.
아버지, 감을 잡수시려는 게 아니라 감상하려구 그러시죠?
왜, 그러면 안된다던? 가을이 보이잖니.-152쪽

갑자기 엄청난 무렵감이 나를 엄습했다. 동우는 자리를 잘 잡았는지. 도대체 한줌도 안되는 젊은것들인 우리는 이 아리따운 순정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인지.-186쪽

경자라는 아가씨가 또 있었는데 얼굴이 둥글넓적하고 눈이 가늘고 몸매도 뚱뚱했다. 처음 인사할 때 어찌나 얼굴이 빨개지던지 양쪽 귀에 꽃이 피는 것 같았다.-190쪽

아마도 형사들인 것 같던데 서울까지 날 따라왔었어요. 박형이 무슨 말 없었어요?
순옥이가 잠시 생각해보더니 말했다
박씨 오빠 말은 별루 들어보지 못했어요. 근데 명순이가 어제 그랬어요. 오씨가 아무래도 막일할 사람 같지 않다구요. 말투나 얼굴이나 이 동네 올 사람이 아니더라구 그랬어요. 그건 저두 그렇게 생각했어요. 우리 봉제공장에서두 그런 일이 있었거든요. 여자대학생이 몰래 취업했다가 잡혀간 적이 있어서.
가슴에 무엇인간 묵직한 덩어리가 치미는 것만 같았다. 아아, 나는 아직도 한참이나 먼 거리에 뒤처져 있는 것이다. 지식인 냄새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는데 눈에 뜨거운 물기가 고였ㄷ. 그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인 채로 말을 끊었다. 순옥이가 물었다.
무엇때문에 그런 일을 하죠? 남들은 공부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국민학교두 못 마치구 일하러 서울로 오는데
댁에 부모님들이나 순옥씨하구 친구들은 열심히 일하는데두 왜 못살죠?
그야 .........가난해서 그렇지요.
왜 가난한가요?
첨부터 가진 게 없었으니까요.
열심히 일하면 어떻게든 저축도 하고 밑천에 생겨야 하잖아요?
배우지 못했으니까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없으니 그렇잖아요.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이 없어두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잘 살수 있는 세상이면 좋지 않겠습니까?
순옥은 말문이 막힌 듯 잠깐 침묵했다.
나도 그렇고 내 친구들도 그런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순옥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어요. 그건.......너무 어려운 일이에요.-200쪽

우리는 함께 일어섰다. 박은 다시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오형아, 자네가 이해해라. 요새 말야 불온분자 신고하면 쌀배급을 주거든.
얼마나 주는데....
한 세 말쯤 줄거야
나는 다시 눈시울이 확 뜨거워졌다.
됐지 뭐, 쌀 서말이면 한식구 살 만하겠지. -204쪽

봄은 그야말로 덧없이 가버렸다. 그와 만난 지 석달이 넘었을 무렵에야 우리는 서로 익숙해졌다. 아가도 태어난 지 백일이 되면 한사람의 목숨으로 받아들여주고 기도를 하여도 백일이 되면 하늘을 움직일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는 우리만의 독특한 세계를 창조했다. -210쪽

뭣 땜에 사는지 모르겠어.
하고 나서 혜순은 두 손을 내리고 물기로 얼룩진 얼굴을 쳐들며 나에게 말했다.
형, 우리 이젠 그만두자. 지들 천년만년 해처먹으라고!
나와 최도 둘 다 눈알이 벌게져 있었다. 우리는 쫓기듯이 천을 들치며 국밥집에서 나왔고 등뒤에서 혜순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신 나타나지 말구...형, 잘 가.
그리고 나는 그네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정자도 건이가 징역을 살던 긴 세월 동안에 취직도 다시 했고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노동자와 결혼을 했다. 안산에서 산다던가. 사는 조건이 지식인 나부랭이들보다 훨씬 열악했던 그들은 잊혀지고 저희 혼자서들 감당하며 고난을 견디었지만 나중에는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어느 누군들 잊을 수 있으랴. 그들의 넉넉한 따뜻함과 시대 속에서 잊혀지고야 말 익명에도 당당했던 청춘을.-212쪽

윤희는 손을 놀리면서 무심한 듯한 투로 말했다.
나 신문 봤어요.
길뫼에서 이런 살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우리는 외부세계를 안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에 합의를 보았다. 나는 가끔씩 라디오의 뉴스를 듣고 있었지만 배달하는 이가 규칙적으로 집을 방문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마음에 걸렸기 때문에 신문은 구독하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어딘가 조금 답답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라디오 뉴스를 듣는 일도 번거롭고 부담스런 노릇이 되어서 그마저 듣지 않으니 차츰 편해졌다.
학교에서 우연히 봤는데........
하는 수 없이 나도 말했다.
나두 봤어. 읍내 중국집에 짜장면 먹으로 갔다가.
그럴 줄 알았어요. 그럼 왜 나한테 말 안했어요?
그대가 걱정하실까봐.-252쪽

그래요, 사는 일에는 에누리가 없지요. 이제 와 생각해보면 어떤 시련이나 고통이든 끌어안고 겪는 이에게만 꼭 그만큼 삶은 자기의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을 차례 차례로 내놓거든요.-2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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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드림~ 2007-03-20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문장들이 많네요. 문체가 안정적이고 흡인력이 있어요.^^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마광수 지음 / 해냄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마광수 교수야 워낙에 유명하니 대충 어떤 사람인진 알고 있었지만 그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앙드레 김 하면 그의 어깨가 부푼 하얀 양복을 떠올리듯 마광수 하면 야한소설과 긴 손톱을 떠올리는 정도의 수준이랄까. 그리고 크게 알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소설이 야해서, 그로 인한 여러가지 문제들로 그가 유명해졌다고 하지만 난 애초에 그의 소설이 그리 야하리라 생각지 않았다. 그보다 야한 글이나 야한 동영상은 구하려고 하기만 하면 웹상에 넘쳐난다. 그랬던 내가 그의 에세이를 읽게 된 건 인터뷰집 '금지를 금지하라'를 읽고 그의 사상과 가치관에 흥미를 느껴서이다. 먼저 표지가 안이쁘다. 표지를 처음 보고 '이게 뭐야 정말 구리네'하고 누가 만들었나 습관적으로 책날개 펼쳐서 확인했더니 '표지그림:마광수'라고 찍혀있었다. 그의 그림세계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이건 정말 구렸다. 인터넷 게임에 나올듯한 캐릭터랄까..책의 초반부는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데 중반부를 지나면서는 읽는게 힘들었다. 일단 이 책은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는 제목에 걸맞게 '자유'와 관련된 마광수 교수의 에세이를 다루고 있는 듯한데 원고가 91년도 2001년도 심지어 그가 대학시절에 쓴 글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그 순서가 뒤죽박죽이라-분명 거기에도 어떤 의도가 있겠지만- 나로서는 좀 난잡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그 뒤죽박죽과 함께 비슷비슷한 논조와 내용의 에세이가 자꾸 반복되어서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대충 반복되는 내용이라면 '일본에서 내 소설은 야한 축에도 끼지 못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교수라는 나의 위치때문에 마녀사냥을 당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문화적 촌티를 벗어야 한다.' '성에 대한 이중적 가치관을 바꿔야 한다'는 류의 이야기들이다. 즉 그가 재판과정에서 느낀 답답함과 울분 억울함등을 많이 다루고 있는데 그렇다고 그의 글빨이 그리 대단한것도 아니라서 (국문학과 교수라서 기대했는데 의외였다) 자꾸 반복되는 '그소리가 그소리'인 에세이들은 마치 작가가 독자들에게 징징거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좋은 내용이 80퍼센트이고 반복되는 내용이 20퍼센트라고 하면 '20퍼센트 쯤이야' 싶지만 나로서는 상당한 고역이었다.  자유.라는 큰 주제 밑에서 에세이가 어떤 통일성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런 답답한 느낌이라면 좀 얇게 좋은 양질의 에세이만 싣는 것이 나았을거 같다는 생각.

이 책을 보면서 마광수 교수에 대한 호감이 많이 깍여나갔다. 역시 인터뷰만으로 어떤 사람에 대한 호불호를 결정하는건 무리였다. 그의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사상은 꽤나 매력적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그런 사상과 마초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지 촘 신기하지만 (그는 유별나리만치 진보적인 사람이니까) 하여튼 그는 마초적이고 외모지상주의적이다. 나도 장동건 좋아하고 잘생긴 남자 좋아라 하지만 마광수 교수의 노골적인 외모지상주의는 잔인한 구석이 있다. 슬픈 구석도 있다. 진보적이라고 하면, 지식인이라고 하면, 똑똑하다고 하면 흔히 사람들은 외모는 별 게 아니고 내면이 중요하니 어쩌니 하는데 자유를 외치며 한편으론 아름답고 야한것이 좋다고 스스럼 없이 말하는 그의 그런 모습이 진정 야해보인다.

 

못생긴 여자가 여권 운동하는 것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그 여자가 남자에 대해 적개심을 표시할 땐

더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못생긴 남자가 윤리. 도덕 부르짖으며 퇴폐문화 척결운동 하는 것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그 남자가 성 자체에 대해 적개심을 표시할 땐

더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못생긴 여자들과 못생긴 남자들을 한데 모아

자기네들끼리 남녀평동하고 도덕 재무장하고

고상한 정신적 사랑만 하고 퇴폐문화 없애고

야한 여자. 야한 남자에 대해 실컷 성토하게 하면

 

그것 참 가관일 거야

그것 참 재미있을 거야

그것 참 슬픈 풍경일 거야

 

마초적인 부분이야 너무 많다.

중년 남성들 가운데 발기부전이나 조루증 등으로 고민하는 이들은 대개 근사한 마누라를 둔 사람이거나 마누라가 대학교수등 여류명사거나 또는 돈 많은 집 따링거나 할 때 남편은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성적 기능을 상실해 버리기 쉽다. .....아무리 남녀평등이 부르짖어지고 있는 민주 사회라고 해도 사람은 자연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 자연은 남성들이 여성을 지배하도록 만들어놓았다. 왜냐하면 남성이 성적으로 기고만장해야만 좋은 정자가 여성에게 주입되어 좋은 씨앗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졸여성보다 고졸여성들이 오히려 사랑에 대해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잇다. 그들은 사랑하는 남자를 위한 모성애적 내조와 관능적 치장에 인색하지 않다. 그러나 대졸여성, 특히 대학원 이상의 학력을 가진 여성일수록 눈만 높아지고 여류 명사가 되고자 하는 허욕만 강해져.......

좋은 부분이 많은 책이었다. 밑줄긋기도 많았고. 하지만 그만큼 꺼려지는 부분도 많은 책이었다. 한 사람의 가치관이 이런 조합으로 이뤄질 수도 있구나. 라는 느낌. 그리고 그런 조합으로 전개되는 에세이를 보는 것도 초금은 신선했다. 보통사람.의 논리구조로는 튀어나올 수 없는 그만의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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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3-12 0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 마광수 교수.. 국문학계에서는 취급도 안 하게 된지 오래인 것 같습니다.. ^^;;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개정판
홍세화 지음 / 창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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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정당제 및 인권 향상을 위한 활동을 벌이다가 이른바 반혁명죄로 기소되어 7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꾸바의 어느 수학교수를 위한 탄원문에서, 빠리 과학아카데미의 원장은 피델 까스트로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던졌는데, 나에게도 의미심장하게 와닿았다. 그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권력을 잡았을 때 그 많은 사람들이 품었단 찬란했던 희망을. 당신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자유롭고자 하는 사람을 제거함으로써 '자유'를 없앨 수 없다는 것을. 인간의 역사란 다름아니라 '자유'를 쟁취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인류가 나타나기까지 수억년의 시간이 필요했으며 또 하나의 인간이 탄생하기 위하여 아홉 달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인간을 죽이는 데는 단 한순간으로 족하며 또한 아주 간단한 족쇄로 그 인간의 존엄성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인간이 모두 똑같이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평등 개념이 창안되어야 했던 것이며, 인간이 모두 같은 이데올로기를 갖지 않기 때문에 인권개념이 창안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21세기의 벽두에 단지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감옥에 집어넣는 행위는 완전히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그 행위는 인간의 가장 나쁜 재앙 중의 하나입니다. -209쪽

사람이 미래를 모르고 살면 불안하긴 하나 위험하지는 않단다. 아니, 미래를 모르고 사는 것이 오히려 축복일 수도 있단다. 그러나 과거를 모르고 사는 것은 몹시 위험한 일이란다. 그것이 개인의 과거이든 민족의 과거이든....-226쪽

옛날에 서당선생이 삼형제를 가르쳤겠다. 어는 라 서당선생은 삼형제에게 차례대로 장래희망을 말해보라고 했겠다. 맏형이 말하기를 나는 커서 정승이 되고 싶다고 하니 선생이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그럼 그렇지 하고 칭찬했겠다. 둘째형이 말하기를 나는 커서 장군이 되고 싶다고 했겠다. 이 말에 서당선생은 역시 흡족한 표정을 짓고 그럼 그렇지 사내 대장부는 포부가 커야지 했겠다. 막내에게 물으니 잠깐 생각하더니 저는 장래희망은 그만두고 개똥 세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했겠다. 표정이 언짢아진 서당선생이 그건 왜?하고 당연히 물을 수밖에. 막내 말하기를, 나보다도 글 읽기를 싫어하는 맏형이 정승이 되겠다고 큰 소리를 치니 개똥 한 개를 먹이고 싶고 또 나보다도 겁쟁이인 둘째형이 장군이 되겠다고 큰 소리치니 개똥 한 개를 먹이고 싶고..여기까지 말한 막내가 우물쭈물하니 서당선생이 일그러진 얼굴로 버럭 소리를 질렀겠다. 그럼 마지막 한 개는 ? 하고.-237쪽

삐라를 뿌렸던 장소에 다시 돌아가는 일은 금지되었으나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던 나는 10분쯤 뒤에 현장에 가보았었다. 우리들이 뿌린 삐라는 그대로 보도에 흩어져 있었고 누구 한 사람 읽어보겠다고 집어들려고 하지 않았다. 어쩌다 집어든 사람은 잠깐 일별하더니 뜨거운 감자라도 만졌다는 듯 곧 팽개쳤다. 유신체제에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말을 했다가는 바로 잡혀가는 시대였다. 사람들은 압도되어 있었고 또 서로 불신하고 있었다. 그만큼 증오 이데올로기는 바로 공포였고 또 그 그물망은 아주 촘촘했다. 보도에 흩어져있는 삐라를 물끄러미 바라보자니 내 마음은 당시의 공기처럼 무거워졌다. 사람들이 흥미없어 길바닥에 내버린 광고지를 밟고 지나가듯 우리들이 뿌린 삐라를 밟고 지나갈 땐 흡사 내 가슴을 밟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처연한 기분이 되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젊은이 하나가 삐라 한 장을 슬쩍 집어들어 읽지도 않은 채 뛰더니 막 떠나려는 버스에 올라타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뛰면서 삐라를 슬쩍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는 그것이 삐라인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젊은이가 너무 고마웠다. 그런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어도 우리의 행동에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설사 그런 사람이 없다 해도 우리는 계속 삐라를 뿌렸을 것이다. 그 행동 자체로 우리에겐 이미 큰 의미가 있었다.-265쪽

빠리지앵들은 일년에 한두 번씩 연례행사처럼 치러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지하철 파업이 그것이다. 빠리의 지하철노조는 다른 사업체 노조와 마찬가지로 복수노조이다. 그 정치적 성향에 따라 사회당에 가까운 '프랑스민주노동동맹' 공산당에 가까운 '노동총동맹'그리고 '노동자의 힙'과 가톨릭계의 '프랑스기독노동자동맹'등으로 다양하고 또 비노조원도 있다. 이와같은 노조의 구조도 똘레랑스 사회의 특징이라 하 룻 있다. 이들 각 노조들의 파업참가 여부에 따라 파업의 심각성이 결정되는데 전 노조가 파업을 결의하고 비노조원까지 합세하면 지하철 전체가 완전히 정지하여 빠리 시내의 교통은 완전 마비상태에 이른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는 시가지가 온통 자동차와 사람들로 메워지고 합승을 제의하거나 요구하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택시 합승도 있게된다. 이런 기현상에 웃고 즐거운 표정을 짓는 여유를 보이기도 하지만 모통 30분이면 가능한 출근 시간이 두세 시간씩 걸려 시간 허비와 불편으로 불만의 소리가 당연히 나오게 된다. 그런데 이 불평들 사이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꼭 들어있다 "우리 이용자가 불편을 겪는다고 지하철 노동자의 파업권을 제한하는 데 동의하면 언젠가 그 제한의 목소리가 바로 우리에게도 닥칠 것이다"-305쪽

미떼랑 프랑스 대통령은 자신의 철학은 "인간이 인간을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도저히 용납하지 않는다"고 피력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도 유독 극우파들은 사형제도를 다시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이와 관련하여 나는 아주 흥미있는 발견을 하였다. 즉 '인간을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유아의 낙태수술에는 결사코 반대한다는 사실이었다. 반대로 '인간을 합법적으로 죽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낙태수술에는 찬동하고 있었는데, 이 겹모순의 해답은 결국 '개인과 사회의 관계'그리고 '사회의 책임'등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서 찾아질 것이다. -208쪽

난 능력도 부족하겠지만 처음부터 꼭 학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진 않았아요. 물론 아쉬움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후회는 하지 ㅇ낳아요. 내가 학위를 받는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일 뿐이니까.-131쪽

나의 아내는 가게의 점원이 되어 일할 수 있었다. 주로 일본인과 한국인 관고아객을 대상으로 화장품 등의 선물용품을 면세하여 파는 가게인데 이런 가게의 주인은 거의 유태인들이었다. 아내의 일이 주로 한국 관광객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었으므로 주인이 나의 문제를 알면 좋아할 것 같지 않았다. 나의 문제를 감추어야 했고 우리의 특이한 노동허가증을 보일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한참 동안 정식채용이 될 수 없어 봉급도 박했고 사회보장 혜택도 받을 수 없었다. 아내의 벌이만으로 생활이 아니라 생존도 어려웠다. 아직 철없던 때 맏딸 수현이가 "왜 우유 안 사?" 하고 붇던 일이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다. 우리는 그때 우유를 안 산 게 아니었다. 그런 때였었다. 김지하 선배가 인편에 난초 그림 열 점을 보내주었던 것은. 나는 한 점도 간직하지 못하고 모두 팔았다.-65쪽

나는 집에 돌아와 첫날의 수입을 찬찬히 세보았다. 768프랑이었다. 다시 한번 더 세보았다, 역시 768프랑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나은 편이었다. 계산을 맞춰보니 일주일에 7일을 계속 일한다면 1500프랑 정도, 그리고 한 달에 6.7천 프랑의 순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은 초보자라 손님이 별로 없는 택시정류장에서 손님을 기다린다든지 하는 착오도 있을 테니, 조금 시간이 지나 경험을 쌓게 되면 더 나아질 수 있으리라는 자신도 생겼다. 그러나 일주일에 7일을 계속 일하게끔 몸이 견뎌줄 수 있을지 하는 걱정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피로한 몸으로 새벽 5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으나 쉽게 잠 못 이루고 온갖 상념에 젖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자문하고 있었다. "과연 책을 읽을 시간이 있을까? 논문 쓰는 것은 포기했다고 해도 책은 읽어야 할 텐데..." 잠을 청했다. 날이 벌써 훤하게 밝아 있었다.-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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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드림~ 2007-03-12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세화는 이리봐도 저리봐도 천상 '학자풍'인 사람이죠?
그래서 어쩔땐 '참 순진하구나' 그렇게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209페이지의 편지글은 앙드레 말로의 [인간조건]을 생각나게 하기도 하네요.
거기에 주인공의 아버지가 이와 비슷한 말을 하거든요.

LAYLA 2007-03-12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진...아직 세상에 안나가봐서 잘 모르겠지만 택시일 하고 잠들기 전에 책 읽어야 할텐데 하고 걱정하는게 아마도 순진.하다고 불리는 그런거겠죠? 근데 그게 너무 좋더라구요. 막 눈물났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