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무역,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거래>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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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거래 - 공정무역 따라 돌아본 13개 나라 공정한 사람들과의 4년간의 기록
박창순 외 지음 / 시대의창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름다운 가게에 드나들며 네팔이나 인도에서 가져왔다는 가죽파우치, 편지지 세트 등을 보기는 했지만 선뜻 손이 가지는 않았다. 제품의 질과 디자인에 비해서 너무 비싸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 '비싼 가격' 덕택에 나는 공정무역이 어느정도 시혜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잘못이해하고 있었다. 내가 그 물건을 구매함으로서 상당부분이 '기부'의 형태로 생산자들에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원가가 뻔한 상품이 이렇게 비싸게 팔릴 이유가 무엇인가? 이게 내 생각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공정무역상품의 비싼 가격은 유통망이 확충되지 않은 상태에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이지 일부러 생산자에게 큰 초과이윤을 지급하기 위해 산정된 가격은 아니란 것이다. 실제로 영국 등 공정무역 상품의 거래가 일반적으로 자리잡은 곳에서는 공정무역상품의 가격이 일반상품보다 더 저렴하기도 하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공정무역은 말 그대로 공정한 '무역'으로서 그동안 부당하게 착취되었던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방식의 무역이지 가진자가 못가진자를 위해 베푸는 호혜 혹은 자선행위가 아니란 것이다.
책은 총 17장으로 이루어져 저자가 공정무역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에서부터 공정무역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지금의 한국공정무역연합을 만들어 실제 공정무역을 실천하기까지 4년여에 걸친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주로 해외에서 보고 경험한 다양한 공정무역 사례, 선진국의 공정무역 시스템을 기술하고 있는데 그 하나하나의 경험이 모여 한국에 공정무역을 들여오는 발판이 되었다. 시간순으로 기술하다보니 국가별로 분류된 17개의 장에는 반복되는 국가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영국은 공정무역이 가장 발달한 나라이다 보니 여러차례 반복하여 방문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총3개의 장이 영국의 공정무역에 대해 설명하는데 할당되었다. 처음에는 이러한 방식이 너무 비효율적이라고 느껴졌다. 국가별로 일목요연하고 깔끔하게 정리해두었으면 더 나았으련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왜 이런 방식으로 편집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은 공정무역에 대해 전문적으로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저자역시 공정무역에 대해 전문교육을 받거나 시민활동가로 활동한 적이 없는 전직 방송국 PD이다. 착한마음으로 이 세계에 뛰어든 저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생각을 하며 지금에 이르렀는지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드러나는 것이 좋았다. 예를 들자면, 저자가 너무 이익을 따지는 공정무역사업가를 만나거나 대량생산시설을 갖춘 후진국의 공정무역공장을 방문하고서 실망하고 과연 이것이 바른 모습인가 자문하는 부분들이 참 좋았다. 나 역시 일반인으로서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착한 책을 읽으며 배운 것 중 하나는 그런 잇속을 챙기는 모습, 대량생산, 자본 결국 그런 것들이 바로 공정무역의 테두리를 결정하는 요소들이란 것이다. 사람들은 가치와 선의, 자발적 기부 등등의 활동이 제3세계를 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한 앞에서 이야기 한 저 큰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다. 공정무역 역시 마찬가지로, 소비자는 지불한 가격만큼의 효용을 얻기를 원하기에 자신이 공정무역 상품을 구매한다는심리적 만족감을 넘어서는 가격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질이 떨어지는 상품 역시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 이 책은 '공정무역'이 가지는 환상을 걷어내고 실제 현실에서 공정무역이 작동하는 시스템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선진국 사람들이 만든 후진국 생산자 교육 프로그램이 과연 정치적으로 옳은 것인지에 대한 저자의 의문 등 현실의 공정무역이 가지는 한계까지도 솔직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런 한계 속에서 어떻게 공정무역을 한국에 정착시킬 것이냐의 문제이다. 공정무역이란 소비자의 공정무역에 대한 바른 인식이 선행될 때에만 성공적으로 사회 내에서 뿌리 내릴 수 있는데 아직까지 한국 국민의 공정무역에 대한 인식도는 선진국 평균에 한참 모자라는 수준이다. 공정무역의 도입은 단순히 '착한'사회가 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공정무역은 '정당함'의 가치를 일상생활 속에서 실현시키는 행위이며 자본주의 체제의 폐혜를 개인의 실천으로 수정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자는 유통망 구축의 어려움, 자본의 부족함 등을 현실적 어려움으로 꼽는데 근본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의 의식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이 시민들을 조금 더 똑똑하게, 소비자를 조금 더 영리하게 만들어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공정무역이 한국에서도 자리잡고, 이 책이 초기의 어려움을 다룬 '기록'으로서 이야기 되는 순간이 빨리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