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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합창단 - 세상을 바꾸는 불만쟁이들의 유쾌한 반란
김이혜연, 곽현지 지음 / 시대의창 / 2010년 1월
평점 :
책은 책인데 인문사회서적보다는 시민단체 활동자료집처럼 느껴진다. 책의 내용도 그렇거니와 진보일반의 목소리를 아우르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하나의 시민단체로서, 진보속에서도 더 세부적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진보에도 각양각색의 진보가 있을진데 희망제작소는 온건한 진보를 외치고 있고 그 온건진보를 현실화한 한 갈래가 바로 이 '불만합창단' 프로젝트 이다.
핀란드의 한 예술가 부부가 시작해 전세계로 확산된 '불만합창단'은 말 그대로 일상속의 불만을 노래하는 합창단을 만들고 대중앞에서 공연하는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가 의미를 가지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일상 속 사소한 불만들을 드러내고 타인과 교환하는 과정 그 자체가 진보이자 민주주의의 실현이라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약 150페이지 정도의 분량을 통해 국내에서 불만합창단 프로젝트가 기획되고 현실화 되기 까지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프로젝트 진행자들 조차 처음에는 불만합창단의 의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프로젝트에 대해 가장 많이 돌아오는 반응이 '좋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였기 때문이다. 모여서 노래를 만들고, 가사를 붙이고, 쌓여있던 불만을 터트리고, 재미는 있다. 맺혔던 걸 푸니까 속은 시원하겠다. 근데 그래서 뭐? 소 왓? 이에 고심하던 희망제작소 연구원은 이렇게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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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우리도 불만합창단을 꾸려본 경험이 없던 터라 불만합창단 이후에 대해서는 충분히 생각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니 반복되는 질문에 지극히 모범적인 답안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불만 합창단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목표이며, 내 이웃을 만나 서로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경험해보는 것,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학습하고 주민참여의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었느냐, 그리고 이거으로 충분히 의미있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불만합창 페스티벌을 끝내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불만합창단은 똑 떨어지게 정의내릴 수 없는 프로젝트였다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정의가 불가능하니 의미도 원하는 대로 붙일 수 없다. 요컨대 불만합창은 그 자체로 말랑말랑한 스펀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불만합창단을 만들어가는 과정 그 자체를 충분히 즐기는 데 의미를 둘 수도 있고, 일종의 새로운 민주주의를 실험해 본다는 것에서 만족을 구할 수도 있고, 또 이를 계기로 해서 뭔가 한 단계 진전된 형태의 '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쪽이든 좋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경직된 사고와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해야만 뭔가 벌어지고 있다는 진중함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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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설명은 일견 타당하고 실제 연구원으로서 프로젝트 진행과정에서 얻은 깨달음과 고민이 잘 녹아들어가 있다.....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쏘-왓'을 외치는 나의 마음일 뿐이다. 불만합창단이 시작된 핀란드나 퍼져나간 다른 나라들-덴마크,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 등-정치적 상황이 한국과 비교할 바가 아닌데 '우리는 너무 뭔가 있어보이는 것에만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작고 사소한 것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닐까?'하는 마음. 물론 나도 이런거 참 좋아한다. 작고 아기자기하고 일상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부여하는 것. 그치만 그치만 희망제작소쯤 되는 여력과 능력을 가진 곳에서는 굳이 이런 안전한 프로젝트가 아닌 좀 더 있어보이는 일을 해줘도 좋지 않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모르겠다. 나는 시민단체를 잘 모른다. 조심하고 가려가며 일했기에 이나마 성장할 수 있었던 거다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책 자체는 앞서 말했듯이 희망제작소 내 프로젝트 기획에서 수행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가 잘 설명되어 있어 시민단체에 관심많은 사람들에겐 유용할 듯 하다. 전반적 내용에 하나 더 첨언하자면, 연구원들 스스로가 잘 느끼고 있듯이 한 사람의 명망에 의지하는 시민단체로서의 단계를 벗어나기 위해 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문을 얻기 위해 찾아간 유럽의 시민단체는 정말 평범한 시민 다섯이 모여서 만든 조촐한 말 그대로 '시민'단체였는데 희망제작소 내에서 불만합창단은 박원순씨의 거의 반강제적 추진(농담쪼이긴 하였다만)으로 진행되었다는게 아이러니 했다. 한국에서 어떻게 불만합창단이 가능했냐고 놀라고 놀랬다던 불만합창단 원창시자가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는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한국의 힘은 지금까지 바로 이런 비민주.반민주적 추진력이었고 우리는 지금 그것을 '느린' 민주주의로 바꾸려 노력하고 있다. 가는 길에는 여러 경로가 있겠지만 목적지는 한결같이 같으므로 희망제작소도 어느 형태로든 점진적 변화를 필요로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느림보 민주주의가 한국사회 작은 부분에서나마 존재하는 그런 날을 꿈꾼다. 그리고 작은 변화 혹은 그 변화의 시작을 위해 고생하는 연구원 분들께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