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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 달 / 2009년 11월
평점 :
이 책의 저자를 5집 발매 기념 콘서트에서 딱 한번 봤었다. 2년도 더 전의 일이다. 그리곤 질려버려서 다시는 보고 싶단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질린다'- 그게 그렇게 기다리고 바라던 사람의 노래를 듣고 난 뒤의 감상이었다. 그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저는요...너무도 평범한 사람이라서요...제가 만든 음악을 다른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낮게 평가한다고 생각하면...미쳐버릴거 같아요."
그가 가진 보통의 인간의 몸은 이런 성미를 이겨내지 못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끊어지지 않고 어떻게 어떻게 이어지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허약하였던 그의 목소리에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아이돌 팬이었다면 "오빠 아니에요!!!! 오빠 노래 짱이에요!!!"이러면서 팬들이 실신 좀 해줘야 할 상황인데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니 장내가 숙연해졌다. 재능을 가진 자의 고통을 고작 5만원 내고 즐기고 있다는 죄책감이 나를 엄습했다. 공연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리가 없었다. 막간을 이용해 관객들에게 소개된 음반제작과정을 찍은 영상물은 마음을 더 번잡하게 만들었다. 끝까지 날카로워진 그의 신경에 눈치보는 멤버들, 수시로 삐-소리내며 짤리는 목소리들, 원하는 걸 얻지 못해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한층 더 깊은 불편함을 가져다 줬을 뿐. 누군가가 몸을 해치며 만든 작품을 내가 너무 쉽게 듣고 있다는 죄책감. 그의 독기에 질려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던 나는 그 어지러운 마음으로 공연이 끝날 때까지 서 있었다. 노래가 노래인지 아닌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던 거 같다. - -----그리고 5집 음반은 그의 성미에 차지 않아 결국 5집 발매 기념 콘서트를 하고서도 반년인가 지나서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책의 시작은 이렇다.
모든 것은 어느날, 자신이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섬뜩한 자각을 하게 된 어떤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런 사람이 스스로를 보통의 존재라고 우기면 나 같은 사람은 어쩌란 건가!! 하며 읽었는데 신기하게도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사실 어느 누구나 다 그렇지 않을까. 조금씩은. 결코 보통의 존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살기 위해서 보통의 존재라고 스스로를 억누르고 윽박지르고 그렇게 사는거. 이 사람에 비하면 난 정말 평범하기 그지 없단 생각에 주눅들어 시작했지만 그렇게 겁먹고 읽을 책은 아니었다. 이 세상에 보통의 존재는 존재할 수 없는거고, 그래서 조금 더 재능 가진 사람이 나머지를 위로하고 그렇게 사는거라고 생각하면 몸 해치며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그를 무서워할 일이 아니다. 그에게 고마워할 일이지. 글쓰기가 좋다고 그러던데 보통의 존재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보통스럽지 않은 존재들을 위한 글들 앞으로도 많이 써줬음 좋겠다. 그게 조금 덜 보통스러운 사람의 의무이다. 재능을 가진 사람의 의무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