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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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정확히 말하자면 이 책은 철학적으로 시를 읽는 게 아니라 철학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시를 끌어들였다고 보는 것이 옳다. 시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기 보다 저자가 설명하고자 하는 주제를 끌어내기 위한 에피타이저 정도의 역할을 한다고 해야할까. 본식은 당연히 철학 철학 철학이다. 그래서, 말랑말랑하게 시를 이야기할거라 생각하고 시작했던 나는 무척이나 힘겹게 책을 읽어야 했다. 사실 시가 아무리 말랑하다 한들 난 시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거기다 철학이라니. 난 철학이라면 알랭 드 보통으로 충분한 그런 얕은 여자란 말이다. 나 말고 다른 서평단 분들은 무척이나 이 책을 좋아하고 후하게 평해주셔서 주눅이 들었지만 내가 바로 무식한 대학생 독자의 전형이 아닐까, 철학을 모르는 데 이 책 사도 되겠냐 저울질하는 분들을 위해 눈물을 삼키며 리뷰를 남긴다.  

책은 총 스물 한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스물 한 개의 시와 스물 한 명의 시인과 스물 한 명의 철학자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시를 읊어주고 가볍게 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사유를 이어가다 본격적으로 철학 이야기로 접어드는 방식의 글쓰기를 채택하였다.본문 내용에 대한 하나의 예를 들어 보자면. 4.19를 쓴 김수영의 시에 저자는 푸코를 끌어들인다. 4.19가 실패한 건 우리가 미시적 권력을 전복하지 못하고 순응하는 태도를 유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렇게 시와 철학이 연결된다. 글 자체가 딱딱하지는 않다. 독자에 게 직접 말을 거는 듯한 문체로 서너 페이지의 짧은 글 속에 철학자의 책 한권에 담긴 핵심을 담아 내고 있으니 철학을 오래 공부한 내공이 느껴진다. 내가 힘들었던 건 글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의 사유하는 방식에 전혀 익숙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초심자로서 그것에 그리 흥미를 느끼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철학을 처음 시작하고 싶은 사람, 철학이 너무 궁금한 사람에게 적합하다. 저자는 매 장마다 자신이 끌어온 철학자에 대해 그리고 그 철학자의 저서에 대해 번역본 출판사와 출판연도까지 기재해 주는 다정한 사람이다. 스물 한 명의 철학자를 둘러보고 마음가는 철학자부터 파고 들어가면 좋지 않을까. 별점이 셋인건 나에게 맞지 않는 책이어서일 뿐이고 책으로만 보면 만듬새나 저자가 들인 노고의 면에선 딱히 흠 잡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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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2>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명의 2 : 심장에 남는 사람 명의 2
EBS 명의 제작팀 엮음 / 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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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절대 의사가 될 수 없는 사람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가졌던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동경. 사람을 살리고 타인을 도와주는 동시에 자아실현과 생계유지를 모두 가능케 하는 그 직업은 마치 꿈의 직업처럼 보였다. 국경과 인종과 언어를 넘어 타인을 도와줄 수 있는 직업은 그리 흔치 않다. 거기다 남을 돕는 동시에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해 주는 직업이라니! 기본적으로 남을 밟고 올라서야 제 입에 먹을 게 들어오는 자본주의 사회에선 정말 찾기 힘든 직업이 아닐까. 하지만 실제로 살아보면 그런 직업의 장점을 이용해 인생을 아름답게 사는 의사는 참 만나기 힘들다. 어차피 다 같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처지에 특정 직업에 돈을 넘어선 낭만적 이미지를 덧씌운다는 것 자체가 순진했던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의사들-존재하지 않는 줄 알았던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엔 그들이 보여주는 프로다운 모습에, 후반부엔 환자 하나하나에게 보이는 그들의 애정에 감동했다.  

먼저,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가지고 있던 기존의 개념을 수정해야겠다. 보통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이 명의들이 그 명의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의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순수한 탐구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의사는 과학자와 무척 닮았다고 볼 수 있다. 명의 중 많은 이가 외국으로 나가 기술(수술기법)을 배우고 한국에 소개함으로써 한국의학의 발전을 선두했더 이들이다. '어떻게 하면 이걸 고칠 수 있을까?' 그들의 지난 커리어는 이 끊임없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한다. 의사가 특수한 지식을 이용해 환자를 돌본다고 할 때 그 지식이란 '축적된' 지식이라고만 생각했지(대학.인턴.레지던트 십몇년 동안 습득한 것들) 이렇게 능동적으로 축적되고 수정되는 지식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나로선 의사란 직업에 대해 많은 것을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두번째로 이 책을 읽으며 놀란 점은, 그 과학적 탐구성이란 것이 결국은 '어떻게 하면 환자를 더 살릴 수 있을까'란 생각 즉,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사고방식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명의는 그 두가지 요건-과학적 탐구심과 인간에 대한 애정-을 모두 갖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명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설날마저 환자를 보러 나가는 남편에게 아내가 '가족이 먼저야 일이 먼저야?' 따졌더니, 환자는 아픈 사람이니 환자가 더 중요하다고 했던 한 의사. 아내로선 무척 섭섭했던 일이었지만 언제나 환자의 입장에 설 수 밖에 없는 나로선 그런 생각을 하는 의사가 있다는 것 만으로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다.   

이 책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읽힐 수 있는데 가장 일반적인 것이 지금까지 내가 감상한 것처럼 '의사'라는 직업에 집중해서 읽는 방법일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이 책을 직업선택의 교본으로 삼는 것. 이 책은 그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선 언제나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함을 잘 보여준다. 명의들은 돈을 벌고 싶어서나 높은 지위를 가지고 싶어서 의사가 된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이 하는 일을 보면 돈 벌자고 이 일을 하진 못하겠단 소리가 절로 나오니 말이다. 환자를 고치는 과정에서 이들이 보이는 성의와 세심함, 그들의 고통과 환자가 나을 때 보이는 순수한 기쁨의 장면들은 나로 하여금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하나의 지침이 되어 주었다. 그렇다. 이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마지막 방법으론 최소한의 의학적 교양을 쌓기 위해서 읽는 방법이다. 이 책을 읽으며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던지!  

   
  자궁내막암은 자궁 내부의 점막에 암이 생기는 것이다. 주로 출산 경험이 없는 여성이나 젊은 시절 생리 불순이 심했던 여성들이 잘 걸린다고 한다. 생리 불순이 심했던 여성에게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배란이 되면 황체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생리가 나오게 되는데 배란이 잘 안 되는 경우 황체호르몬은 나오지 ㅇ낳고 에스트로겐이라는 호르몬만 나오면서 내막이 점점 두꺼워지고 그게 암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자궁내막암은 주로 폐경기 이후에 발생한다.  
   

쉽게 넘기는 생리 불순의 위험에 대해 이렇게 배운것 뿐만 아니라 잦은 유산으로 고통받는 드라마 여주인공이 왜 임신하면 침대에 누워서 한 발짝도 밖으로 나오지 않는지에 대해서 그냥 '안전하려고'정도로만 이해했던 나는 이제 자궁경부를 묶어주는 수술을 통해 습관성 유산을 방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 대부분의 수술에서 이용되는 로봇을 이용한 수술법(개복하지 않고 1-2센티 정도만 절제한 후 기계를 삽입하여 스크린을 보며 하는 수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살다 보면 무슨 일 생길지 모르니, 거기에 이제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도 계시니 좋은 책 읽으며 의학상식도 쌓을 수 있어 유익했다. 

마지막으로, 단 하나의 단점을 지적하자면 책이 급하게 나오느라 그런지 단번에 이해가 가지 않는 문장이나 오타가 무지하게 많다는 것이다. 문법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불쾌하고 거슬렸던 문장도 하나 있었는데 이는 144페이지에 나오는 자궁을 적출한 여성들을 지칭한 '빈궁마마'란 표현이었다. 빌어다 쓰는 표현이긴 했지만 심히 불쾌하였다.   

88쪽 심방이 혈액을 쫘주지 못하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짜주지 못하겠단 말인가? 내가 모르는 단어인가 싶어서 검색해봤는데 못찾겠음

162쪽 자궁경부암에 대한 설명이 '생기는 자궁의 입구인 자궁경부에 생기는 암'으로 되어 있음 

310쪽 마지막 줄 끊임없이 최신 술기를 배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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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0-04-04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8쪽 - '심방이 혈액을 쏴주지 못하고'가 아닐까, 추측해봅니다만...
저는 책으로는 안읽었지만 시간이 될때마다 TV에서 열심히 보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였답니다. 명의는 뛰어난 의술과 학문적 탐구심, 그리고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의사라는 말씀에 공감해요.
 
파리지앵 - 한 디자이너가 그린 파리지앵의 일상과 속살
이화열 지음 / 마음산책 / 2007년 8월
품절


몇 년 전에 우연히 프랑스 텔레비전에서 우리나라 <가요 톱10> 같은 프로를 본 적이 있었다. 그날 넘버원을 차지한 가수는 플로랑 파니라는 남자 가수였는데 몇 년 동안 활동을 쉬다가 새로운 신곡을 가지고 인기 정상에 오른 날이었다. 플로랑 파니는 사회자와 인터뷰를 하고 나서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무대 위로 올라갔다. 반주가 흘러나오자 방청석에 있던 젊은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마 동방신기를 보고 소리를 지르는 우리나라 아이들과 비슷했을 것이다) 바로 그때 노래를 부르려던 플로랑 파니는 눈이 아주 똥그래지면서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 왜 그래? 눈을 떠. 소리 지르지 마. 사랑은 그런 게 아니야. 나를 쳐다 보란 말야. 그렇게 쇠를 악, 악 지르는 건 사랑이 아니라고!"-36쪽

세상의 끝에서도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익숙함보다는 생경함 속에서 자유를 느끼는 사람들 말이다. -92쪽

"네 인생에 후회는 없니?" 내가 물었다.
"난 한번도 지름길로 달려가본 적이 없어. 목적지를 향해 가면서 돌아가든 천천히 가든 그런 것은 상관하지 않아. 죽기 전에 자신과 근접한 모습을 발견 하고, 내가 걸어온 길이 단지 잘못된 길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면, 난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 거야."-105쪽

그녀가 바람 피우는 루이즈의 아빠를 조용히 내쫓은 것은 8년 전의 일이다.
"만약에 혼자 살기 두려워서 그냥 같이 삶을 선택했다면 내 자신에게 부끄러웠을 거야. 사랑은 시작할 수도 있고 끝날 수도 있어. 하지만 그 다음의 선택은 철저하게 자유로운 선택이야. 난 내 선택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해"
정신적인 자유로움을 선택하고 그 자유로움만큼의 현실적 무게를 감당하는 소피의 선택이 있는가 하면, 물질적인 안락함을 위해서 어느 정도의 정신적인 자유로움을 포기하는 선택도 있다.-162쪽

이혼율이 50퍼센트에 이르는 프랑스에서 소피와 루이즈처럼 변형된 핵가족의 개념은 사회 시스템을 바꾸기도 하고 소비문화를 바꾸기도 한다. 이것은 감상이나 상처, 마음의 불치병이 아니라 현실이다. 몽후즈의 유명한 의사 부인이자 엄청난 교육열로 다른 부모의 기를 죽게 만드는 빠스깔은 아주 명료하게 말한다.
"나의 교육 목표는 내 딸들이 이혼을 해도 혼자 독립해서 잘살 수 있는 기능적 직업 교육이야. 사랑이라는 것은 절대 밥을 먹여주지 않을뿐더러,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없기 때문에 같이 사는 것은 구걸만큼 치욕스러운 일이지"
빠스깔은 '교육이란 행복을 위해서, 행복은 독립을 위해서'라는 명쾌한 결론을 가지고 아주 노련한 솜씨로 아이 셋을 키운다. 모든 것이 너무나 명쾌해서 감상주의가 발붙일 틈이 없을 정도다. 그래도 소피가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좌파적 감수성이 살아 있다.
"난 주어진 가치에 나를 끼워맞추고 싶지 않아. 혼자 산다는 것, 그리고 프리랜서로서 일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위한 만족감을 스스로 찾는다는 명제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되거든. 난 남이 내게 던져준 모럴을 잡으려고 달려가지는 않을거야. 결혼이든 일이든 나 -163쪽

자신이 가치를 스스로 찾는 것이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해"
소피가 그 많은 일들을 해내면서도 지치거나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는 데는 아마 이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164쪽

대학입학 자격시험에 두 번이나 떨어져 대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그가 다른 회사의 디자이늘 자문해주고, 이젠 어디에 명함을 내밀어도 빠지지 않는 디자인 작업으로 포트폴리오가 꽉 차 있다 필립은 자신에게 재능이 있는지 고민하느라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열정과 논리, 그리고 빠른 속도로 경험을 축적한다. -1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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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0-03-04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오늘 '일생에 한번쯤은 파리지앵처럼'을 봤어요. 재미있었지만, 그게 다였어요.
라일라님이 밑줄을 보니까 이 책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나는, 따라쟁이 ^^

LAYLA 2010-03-04 22:49   좋아요 0 | URL
저는 로렌초의 시종님 따라서 읽는 거에요 ㅋㅋ 책 기차놀이 같네요 ㅋㅋㅋ 이 책 좋았어요. 진짜 파리지앵-들이 나와요. 부러운 사람들...

로렌초의시종 2010-03-05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라일라님 이 책 읽으셨군요ㅎㅎ 정말 빨리 구해 읽으셨네요~ 전 예~전에 사다놓고 아직까지 책등만 어루만지고 가끔 들춰만 보고 있답니다. 언젠가 정말 파리에 가고 싶어서 몸부림치고 싶은 날이 온다면 읽게 되겠죠. 그 도시의 삶은 한국의 그것처럼 경박하게 바뀌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나저나 이 책이 품절상태였군요. 몰랐어요.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셨나요?

LAYLA 2010-03-05 03:04   좋아요 0 | URL
네 신간이 아니라서 책장에서 고이 앉아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후훟ㅎ후후후 로렌초의 시종님이 아껴 읽으실만한 책이었어요. 파리 냄새만 맡거나. 파리지앵인 척 하거나 하는 책들하곤 다르더군요. ^^
 
에펠탑 없는 파리 - 프랑스 파리 뒷골목 이야기
신이현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품절


남아 있는 그의 집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모차르트 거리에 있는 자신의 신접살림을 차리기 위해 지은 집이다. 이 집을 보기 전까지 나는 모서리가 둥그스름하게 처리된 애매모호한 가구와 온통 꽃과 식물로 새겨진 장식품들, 아르누보라 칭하는 것들에 별로 호감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이 집은 트집을 잡기에는 너무 완벽하다. 돌로 만든 집인데도 비누로 빚은 것처럼 물 흐르는 듯한 부드러운 볼륨으로 지어졌다. '미친 작은 성'이 의도적으로 곡선을 넣은 실험적인 패기가 넘치는 집이라면, 이 집은 곡선으로 된 건축 미학의 절정을 보여준다. 집 전체가 살짝 내쉰 한숨에 흔들리는 푸딩 덩어리 같다. 거실의 창문은 암탉이 품은 달걀처럼 포근하며 꼭대기 모서리에 있는 하녀방의 지붕은 소녀의 모자를 얹어둔 것처럼 귀엽고 우아하다. 어디 하나 억지스럽지 않게 흘러가는 곡선들이 그윽함을 자아낸다. 결혼을 앞둔 건축가의 마음이 그토록 애틋했던 것일까.-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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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 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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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라는 게 뭘까요
아무도 없는 세상에 나 홀로 있다가 아무도 없는 세상에 둘이서만 있게 되는 게 연애입니다. 그래서 연애를 해도 외롭지 않게 되는 건 아니지요. 아무도 없는 세상에 기껏해야 한 사람이 더 생기는 것에 불과하니까. -68쪽

늙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나이를 먹으면 많은 욕구들이 사그라들어 젊어서는 가져보지 못한 안정감을 갖게되는데 그 욕구라는 것이 왜 사그라드는가를 생각해보면 또 서글프다. 젊어 생리적으로 왕성히 생성되던 호르몬이 줄어든 탓에 성욕을 비롯한 다른 많은 욕구들이 동반하여 줄어들고, 따라서 젊은 활기를 잃어버린 대가로 화분을 가꾸거나 읽지 않던 책에 손이 가곤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이미 그 시기에 들어선 사람으로서 그 안정감이 주는 장점과 위력을 잘 알고 있다. 다만 그 시기가 너무 빨리 온다는 것이다. -75쪽

생각해보면 살아가면서 내가 정말 사랑해야 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뿐입니다. 만약 내가 직접 고를 수 있었다면 나는 내 얼굴을 이렇게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고 , 내 몸, 내 키, 내 머리와 재능, 우리집, 내 나라, 그 어떤 것도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했을 겁니다.뿐입니까. 나의 성별 또한 내가 택한 것이 아니며 나의 이웃, 나의 가족, 친척, 친구 등 어느 것 하나 내 의지대로 고른 것은 없죠. 인생이라는 게임이 왜 이렇게 모순되고 불공평한지 38년을 살아왔지만 아직 잘 모릅니다. 다만 분명한 건 인생이란 사랑할 대상을 골라서 사랑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 뿐. -96쪽

저는 하루하루가 희망으로 넘쳐흐른다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로 의아한 생각이 들어요. 희망이란 절망 속에서 생기는 것인데 저렇게 희망만이 가득한 사람의 희망이란 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190쪽

품 안의 애인


헤어지는 게 잘하는 것인지는 헤어져봐야 안다.
그게 문제다.-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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