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천천히 안녕
나카지마 교코 지음, 이수미 옮김 / 엔케이컨텐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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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는 남편의 칠순 생신에 맞춰 전 가족 동원령-세 자매-을 내린다. 요코의 남편 쇼헤이는 3년 전부터 기억을 망각하는 인지 증상, 알츠하이머형 인지증 상태를 겪기 시작했다. 방향 감각을 상실한다거나 정해진 목적지에 대한 기억들마저 서서히 잊게 되는 것이다. 단지 이러한 증상을 3년에서 5년 정도로 지연 시켜줄 의사의 약 처방이 전부였던 상황. 요코는 이런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며 세월의 무게보다 더한 엄중함을 느낄 뿐이다. 이렇게 쇼헤이 칠순을 맞아 어떤 결단이 내려질지, 자리에 모인 나나, 마리, 후미 세 자매의 눈과 귀는 초긴장 상태이다.

‘혹시 재산 상속이라도 있는 걸까?‘​

자매들은 미리 준비한 휴대폰을 부모님께 선물한다. GPS(전 지구적 위치 측정 시스템)가 탑재되어 쇼헤이가 길을 잃어도 언제 어디서든-지하는 예외-그를 찾을 수 있는 장치이다. 해결책은 있겠으나 늘 문제가 생겨난다. 마지막 시 창작 모임에 참석했던 쇼헤이는 길을 잃어 고라쿠엔 놀이공원에까지 발길이 닫는다. 거기서 어린 자매를 만나게 되는데 보호자 없이 회전목마를 탈 수 없었던 자매에겐 희망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흔쾌히 허락해 회전목마에 몸을 실은 할아버지와 손자뻘의 자매의 모습이 어두운 밤 조명과 함께 비친다. 저녁 무렵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은 없지 않았을까? 마음은 더욱 짠해진다

칠순 이후 쇼헤이와 요코, 후미는 미국에 거주하는 마리의 초청으로 아버지와 마지막이 될지 모를 여행을 떠난다. 쇼헤이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해변가를 달리는 차 안에서 그곳마저 자신이 어린 시절 자랐던 ‘시즈오카‘로 착각한다. 어린 시절 엄하게만 느껴졌던 마리의 아들 준과 그의 동생 다카시는 할아버지의 이러한 모습이 그저 낯설다. 마리의 남편 신은 장인, 장모가 와 계신 중간에 직원들과의 홈 파티 문제로 아내와 작은 언쟁을 벌인다. 결국 홈 파티는 진행되지만 신의 옛 연인이라 할 수 있는 ‘미치코‘라는 여인의 SNS 연락에 신은 당황한다. 그녀는 신의 회사 동료와 알고 지내던 사이로 파티에 꼭 참여하길 희망했고, 마침내 참석에 대한 허락을 받아낸다. 미치코 이 파티 자리에서 신의 장인, 장모가 25년 전 자신이 딱 한 번 본 신의 부모님인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알츠하이머형 인지증 상태를 겪고 있는 쇼레이는 익숙하게 자신이 가르친 제자를 만난 것처럼 미치코와 대화를 이어간다. 부인 요코는 미치코와 사위 신의 관계에 대해 걱정스러운 태도를 보이지만 이내 함구하고 만다. 바삐 흘러가는 시간들, 자신의 딸 마리가 사는 샌프란시스코 여행은 이렇게 바쁘면서도 천천히 마무리된다. 아직도 쇼헤이는 옛 기억과 현재의 상황을 오락가락하며 점점 깊어 가는 병에 속수무책이다.

그 이후 손자의 이름도, 시간이 흐르면 또 망각하게 되어 되묻는 쇼헤이. 그의 가장 절친이었던 나카무라의 죽음 앞에서도 엉뚱한 질문과 답변으로 지난 시절 자신의 동료들을 의아하게 만든다. 나카무라의 조사문 낭독을 부탁했던 동료들도 결국에는 ˝나카무라가 죽은 것조차 알지 못하는 친구에게 조사문 낭독은 무리다.˝라는 말을 남기며 걱정과 함께 씁쓸한 듯한 표정을 짓는다. 현실의 인식마저 흐릿해지는 쇼헤이에게 알츠하이머형 인지 상태는 과거의 기억만을 더욱 또렷하게 할 뿐이다. 일본은 그 이후 1,000년 만의 대규모 지진과 쓰나미로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발생하고 만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첫째 딸 마리는 요코에게 전화를 해 지진으로 인한 피해 상황 등을 확인한다. 다행히 지진의 피해가 없었으나 쇼헤이의 인지증 검사를 위해 반 년 전 예약해둔 대학 외래 진료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날이다. ‘가야 한다‘와 ‘가지 말아야 한다‘라는 딸과 엄마의 언쟁 속에 엄마는 딸의 신신당부를 듣고 마스크와 몸을 덮을 수 있는 옷 등을 입고 쇼헤이의 병원 진료에 동행한다. 다행스럽게 신약이 발명되었지만 마침 그 공장이 후쿠시마 지역에 있어 당분간 약이 출시되긴 어렵다는 약사의 말을 듣고 요코는 망연자실할 뿐이다.  상황은 알츠하이머형 인지 증상처럼 무엇이 정답이고 허상인지 모른 채 정처 없는 시간만 흘러갈 뿐이다.

쇼헤이의 의미 없는 말은 점점 늘어나고 대화라는 소통은 어긋나기만 한다. 인지 저하 상태의 상황을 정확하고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는 장면들이 생생하게 그려질수록 마음 한구석의 짠한 감정이 가시지 않는다. 미국에서 마리가 보내 준 신약을 처음 받아들고 기뻐하는 요코는 약의 효능을 확인하기 위해 가장 정이 없던 막내딸 후미에게 전화를 해 아빠와 통화하길 권한다. 알 수 없는 단어의 조합이므로 연결되는 쇼헤이의 말이었지만, 딸 후미는 오랜 시간 통화를 이어간다. 아버지의 의미 없고 두서없는 말에 맞장구쳐주는 후미, 그저 냉정하고 당돌하기만 한 막내딸의 캐릭터에서 묻어나는 애잔한 감정이 상상하는 장면이다. 마침 후미는 또다시 사귄 중학 동창생과의 실연으로 괴로워하던 시기를 겪고 있었다. 그나마 의미 없는 대화였지만 그런 아버지와의 전화 통화가 작은 힘이 된 것일까? 반면 아버지 쇼헤이의 인지 증상은 안타까울 정도로 천천히 가족이라는 기억마저 지워가고 있다.

불운의 연속일지 쇼헤이를 돌보던 그의 부인 요코마저 망막박리(망막이 안구 내 벽으로부터 떨어져 들뜨게 되는 병적 상태)로 긴급수술과 입원을 하게 된다. 며칠간의 고통스러운 상황이지만 어디로 튈지 모를 막내 후미와 나나는 아버지 쇼헤이를 돌보며,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쇼헤이가 머물 요양 시설을 돌아본다. 아버지는 점점 더 기력을 잃어 가시며 집으로 돌아온 아내 요코는 그저 남편이 예전의 기억 그대로 남아 있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알츠하이머형 인지증에서 레비소체 단계로 더 악화돼가는 쇼헤이. 조금씩, 아주 천천히 가족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상황이 더욱 애절하고 간절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자매들은 아버지의 옛 시절 교장 훈시를 재현하며 과거를 떠올려본다.

‘롱 굿바이‘ ​

첫째 딸 마리의 막내 다카시가 며칠간 학교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카시 담임에게 듣게 되고, 다카시는 학교 교장 선생님께로 불려 간다. 무슨 이야기든 해보라는 다정한 교장 선생님 앞에서 다카시는 인지 장애로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교장 선생은 그저 그 이야기에 공감해 준다. 또한 언제든 무슨 일이 생기면 친구의 집이 아닌 자신의 집무실로 오라고 조언한다. 이러한 선생님의 모습이 사실 세 자매가 잊고 있던 아버지의 다정스러운 과거의 일부가 아니었을까? 다카시 또한 몇 번 보지 못한 할아버지의 솔직한 감정을 교장 선생님께 이야기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 한 사람의 기억 저장 창고마저 비워져만 간다. 가족이란 이름을 잊어가는 본인도 그렇지만 아버지라는 존재가 사라져가는 걸 겪어야 하는 딸과 남편을 잃어가는 부인의 심정도 찢어질 듯하다. 가족이란 끈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가정의 10년이 절절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함께 느끼고 공감할 때 더욱 사랑하고,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교훈, 알츠하이머로 아버지를 잃어가는 가족의 이야기 [조금씩, 천천히 안녕] 꼭 한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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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그리는 아이 - 뉴베리 상 수상작 상상놀이터 12
패트리샤 레일리 기프 지음, 원지인 옮김 / 보물창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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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묻어나는 향기가 그윽하다. 내용은 과연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마음을 그리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고 긍정과 안정적임이 생각들이 마음에 아로새겨지는 것 같다. 아이의 순수한 열정과 마음속 깊은 이야기가 담긴 '열네 가지'의 그림 속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렵고 힘겨운 시간들이 함께 하겠지만 주변을 느끼는 바라보는 홀리스의 정서가 궁금해진다. 그 나이에 맞게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으로 그려 갈 아이의 순수성이 포함될지, 어떤 역경을 그림으로 승화시키는 강인함이 풍겨지는 홀리스의 이야기가 그려질지는 책 속에 내용을 경험해보는 것이 가장 빠르다. 아이들과 이 책을 읽어가며 부모, 아이, 가족의 마음속 그림을 그려보자. 무엇이 삶에 더 소중한 가치로 입증될지에 대한 교훈을 더해 온기와 정감이 가득한 우리 가족의 마음 그림을 완성하는 시간이 함께 하길 바란다.

이야기는 두 가지 상황으로 전개된다. 조시 아줌마와의 만남과 스티븐과 그의 아버지, 친절한 이지 아줌마와의 에피소드이다. 우선 스티븐과의 첫 만남에서 홀리스는 자신의 나이를 속여 그에게 소개했지만 난생처음 오빠가 생겼다는 설렘이 있었던 걸까? 마음으로 그리고 싶었던 스티븐의 모습을 그리지 못한 것 같다. 고 솔직한 고백을 한다.

서서히 일상이 쌓여가면 추억이 여물어 가는 것이다. 홀리스에게 조시 아줌마와의 드라이브와 바닷가 여행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항상 버림받던 삶을 상상했던 홀리스에게 조시 아줌마와의 일상은 어떤 기대치가 주어질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느껴지는 기분은 홀리스의 미래를 상상하게 한다. 작품 제목처럼 온전히 마음을 그리는 아이로 독자의 기억에 남을지 끊임없이 고통스럽고 아픔을 겪으며 생체기 가득한 아이의 삶으로 흘러갈지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홀리스는 풍경이나 상황, 느낌을 꾸준히 종이 위에 그리는 상상을 한다. 조시 아줌마와의 외출에서도, 스티븐과 아저씨, 자신을 딸처럼 여기는 이지 아줌마와의 만남에서도 말이다. 홀리스가 과거에 어떤 아픔과 이별을 겪었는지 확실히 모를지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달콤한 초코렛 같은 부드러움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다. 어느 날은 극장에서 만난 조시 아줌마의 사촌 여동생 베아트리스가 홀리스가 머물고 있는 조시 아줌마 집에 찾아왔다. 저녁 식사를 하며 홀리스가 그린 그림에 감탄을 하고 만다. 한 살이란 어리디 어린 나이에 버려진 슬픔이 그림으로 승화된 것일까? 홀리스의 그림은 베아트리가 40년간 그림 지도를 하며 가르친 아이들 중 가장 탁월하며 독보적이었던 것이다. 스티븐 아저씨가 생각하는 홀리스의 작품에 대한 의견도 마찬가지였다. 위탁 가정을 전전하는 홀리스였지만 그녀의 그림만은 타고난 재능이었다. 눈으로 보아온 것을 하얀 종이 위에 그대로 재현 해낼 수 있는 능력......

어느 사이 조시 아줌마의 건망증은 심해 가고 홀리스를 조시 아줌마에게 보낸 겨자녀란 여인은 홀리스가 입양될 가정을 다시 찾아낸다. 조시 아줌마와 짧았지만 강렬했던 추억과 스티븐, 이지 아줌마 아저씨 가족과 헤어진다는 것도 홀리스에겐 또 하나의 상처였다. 스티븐 가족도 그녀가 자신의 가족이 되길 희망했다. 우선 겨자녀가 소개한 가족을 만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 가족을 만나기 전날 밤 홀리스와 조시 아줌마는 어딘가 먼 곳으로 떠나길 약속하고, 야반도주와 같이 어딘가로 차를 몰아 달려간다. 그곳은 홀리스가 잠시 머물던 스티븐 가족의 강가 오두막이었다. 여기서 조시 아줌마와 크리스마스를 맞는 홀리스. 이렇게 이야기는 스티븐가와 함께 생활하며 딸이 되길 원했던 그들의 가족 이야기와 교차된다. 결말 또한 어떻게 흘러갈지, 책을 읽어갈수록 위탁 가정생활을 전전하던 홀리스에 대한 짠함이 느껴진다. 거칠고 예의 없는 아이로만 바라보던 주변의 시선을 피해 먼저 버림받기 전 위탁 가정을 먼저 떠났던 홀리스의 심정이 이해되었다. 좋은 사람과 좋은 일이 생겨도 그 앞에 다가서는 편견이란 벽이 늘 홀리스의 마음을 쓰리게 한 것은 아닐까? 예술적 기질을 타고난 그림 실력으로 그러한 혼란스러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인지 저하 증상이 더욱더 심해지는 조시 아줌마는 계속 그녀의 동생 베아트리스를 찾는다. 스티븐은 크리스마스 즈음 자신의 오두막에 홀리스가 있는 것을 예감한 듯 찾아와 만남을 갖는다. 왠지 판타지스럽게 보석빛깔이 감도는 느낌이랄까? 하얀 눈 풍경이 절로 상상된다. 일전에 있었던 트럭 사고에 대한 서로의 미안함이 상충될 상황에서 스티븐은 다시 한번 홀리스가 자신의 가족이 되었으면 하는 희망도 내비친다. 조시 아줌마와 관계, 그리고 홀리스를 쥐 잡듯 찾는 겨자녀와 그녀가 가족이 되길 애타게 바라는 스티븐가의 사람 둔 사이에서 어떤 마무리로 결말이 지어질지 이야기의 흐름이 더욱 흥미진진하게 흘러간다. 아픔을 겪으며 자랄 수밖에 없었던 홀리스에게 그녀에 대한 관심과 행복마저도 이제 짐처럼 느껴질 수 있다. 겉은 세 보여도 속은 여린 사람이 많다. 그러한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주고, 사랑해 주는 마음을 배우게 해주는 아이와 어른을 위한 성장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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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고 싶은가 제도를 바꿔라
강효백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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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조선 시대 수많은 삼정승 육조판서들보다 정도전, 조광조, 이이, 김육, 정약용 등을 존경하는가? 그들은 제도 개혁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혁신과 개혁, 안주와 안정 중 독자 여러분은 어느 쪽에 저울추의 무게를 두겠는가? 21대 국회가 개원되었다. 이번 21대 국회는 초선 의원들의 수가 20대 국회보다 많다고 한다. 상징적인 면을 비롯해 과연 그들이 새로운 세상, 국민을 위한 심복으로 초심에 다짐한 바른 소리를 낼지도 의문이다. 의문부터 시작한다는 것이 조금 안타까운 노릇이지만 정치권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이 작품에서 언급한 저자의 희망사항에 맞는 정치, 개혁, 제도 변화의 원동력이 되길 기대한다. 이 작품이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도 세상이 올바르게 돌아갈 수 있을 제도 개혁의 모멘텀으로 대표성을 띨 안내서가 되리라고 확신한다.

[아주경제] 칼럼에 게재된 내용이 바탕 된 작품이므로 독자의 책 읽기 또한 현실적 관점에서 접한 주제들로 정리돼 있어 보다 빠른 이해의 폭을 제공한다. 공수처 법 처리 문제를 국내외 사례와 비교하는 첫 장. 항상 정권이 새로 들어설 때마다 가장 큰 이슈가 되는 개헌 문제가 기본 주제로 정리된 2장. 사법과 입법, 행정부 각각의 입장과 해설을 통해 방향성을 알아볼 수 있다. 끝으로 최근 사회문제로 붉어졌던 미투 사태와 코로나19를 비롯한 영수증 복권, 지폐 인물들의 사례를 담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다방면을 분석해 준다. 잘못된 것들을 바라만 보며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냉철함이 더해진 논평으로 눈과 마음을 집중시키는 작품이다. 뭔가 삶에 있어 해묵은 감정과 답답함이 있는 당신, 현재 당면한 문제에 대한 명확한 사례를 바탕으로 해법을 제시한다. 우리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에 청량제 같은 해설이 필요한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제 정말 변화가 필요한 시대이다. 지난 10여 년간 묵혀 두었던 갈등의 고리, 지역 이기주의 등을 제도의 개혁으로 하나 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할 때이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가 제도를 바꿔라.'

현실에만 안주하는 시민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다. 고인 물이 시간이 지나면 썩어가는 것처럼 화끈한 변신이 필요할 때는 시대의 전환이 필수이다. 각 장에서 느끼는 사회문제에 따른 감정과 상황은 독자마다 다를 수 있다. 각자 고민하고 생각하는 방향에 맞게 변화를 모색하는 것은 개개인의 자유이다. 지금 이 순간 한 사람의 독자이자 시민으로서 변화에 반응하는 올바른 제도 개혁, 결단의 때가 온 것을 잊지 말자.

'나의 영화를 만드는 데 밑바탕인 상상력과 창의력은 독서에서 나온다.'

- 스티븐 스필버그

많은 제도 개혁과 시스템의 문제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저자의 발언과 더불어 21세기 세대들에게 필요한 독서 문화 확산에 대해서도 주장한다. 경제적인 발전은 세계 10위권이지만 자살률, 독서 인구 감소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라니 부끄러울 따름이다. 이는 바로 미래 성장률 및 글로벌 경쟁력과 직결된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책을 읽으며 토론 문화를 키우고 창의성 증진의 기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우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의 흐름에 주체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밑거름이 독서임을 생각하게 해준다. 핀란드나 유대인의 독서 교육 사례를 들고 있지만 우리 문화에 맞는 독서법이 필요하다. 저자는 의정부 도서관, 서점의 멤버십 포인트제, 출판사, 도서관, 서점이 중심이 된 사회기반시설(SOC) 확충을 제안한다. 어릴 때부터 독서가 생활이 되는 습관은 이러한 인프라를 비롯해 부모의 노력도 필요하다.

가벼운 독서 문화 이야기지만 작은 것부터 제도 개혁의 실천이 공수처, 개헌. 각종 불법 범죄 사례의 개혁 드라이브에 초석이 될 것이다. 통쾌하고 시원한 저자의 제안에 만족스러운 책 읽기가 되길 다시 한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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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오늘은 처음이니까
김은주 지음 / SISO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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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하루의 날, 오늘이란 시간이 주어진다. 그 오늘을 어떻게 활용하고 의미있게 보내느냐의 정답은 개개인의 해결 과제이기도 하다. 하루의 긍정적 시작과 끝맺음을 위해 저자는 어떠한 노력을 했을까? 문학 소녀였던 그녀가 25년 직장맘으로 살아오며 알알이 새긴 별과 같은 글들, 작은 우주인으로 살아가는 저자의 글에서 위로 받고 미소까지 덤으로 받아갈 수 있는 작품이 되었으면 한다.

‘누구에게나 오늘은 처음이니까‘

문학 소녀의 꿈을 키웠던 저자의 청춘 시절답게 작품과 책의 색채에서도 순수함, 신선함이 묻어난다. 풀빛 희망 이야기, 무지갯빛 일상 이야기, 보석빛 인생 이야기, 노을빛 지혜 이야기등 일상의 감정에서 묻어나는 지혜와 경험이 감성적으로 작품에 묻어 나온다. 왠지 사계절의 의미 변화와 인간이 한 평생 살아오며 느낀 수많은 감정들의 집합소, 그러한 대표성을 띄는 작품들이 정감 넘치게 정리되어 있다 할 수 있다. 내 마음의 지혜로운 보석 상자처럼 저자의 글귀를 간직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나이와 상관없는 삶이라는 무게는 청춘일때도 중년이 되어서도 변함없을 것이란 생각을 갖게 한다. 청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느낀 행복과 즐거움의 감정들이 독자의 마음을 애잔함과 동시에 긍정의 희망도 전달한다. 인생으로 점철되는 시와 에세이 형식의 작품 한 페이지마다 묻어나는 삶의 지혜를 얻을 수도 있다.

‘내 능력껏 열심히만 하면 되고,
그 일들 속에서 작은 행복이나 기쁨이 존재한다면 당신은 최고의 정상에 있는 것이다.‘​

성공을 바라며 남들과 비교한다. 작가의 글처럼 내 안에서 최선을 다하다보면 그 안에서 만족하는 성과를 충분히 발휘함에도 꼭 일을 수행하다보면 나 아닌 타인과의 속도를 비교한다. 내가 열심히해서 얻는 행복과 기쁨이 최고란 생각으로 살아가면 어떨까? 작가의 말에 용기 하루가 추가된다.
여러분은 위로받고 싶은 시기에 어떠한 방법을 동원하는가?

‘정말 힘든 하루인데
얘기할 누군가도
위로받을 그 무엇도 없다면
위로의 글이 철철 넘치는 책을 읽어보자.‘​

옛 시절을 떠올린다면 뒷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다. 기분을 다스리려 친구들과 동료들과 진하게 술 한잔을 하거나 뒷담화를 일삼던 때가 있었다. 평소엔 뒷담화를 제일 싫어했는데 아주 가끔 알코올의 힘을 빌려서까지 그런 상황에 동참하고 오히려 힘듬을 더욱 부추긴 기억이 있다. 이제는 책을 가까이하지만 이 글을 읽으니 그러지 못했던 그 시절이 떠오르며 지금도 책을 읽고 있음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이 작품은 독자의 과거와 현재, 일상적이지만 가장 소중한 지금 이 순간을 밝혀주는 작품같다.

‘가끔은 사소하고 작은거라도
내가 좋은 이유를 적어보자.
적다보면 의외로 꽤 많은 좋은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막상 적으려보니 쉽지 않을 것 같다. 낯간지럽기도하고, 무엇일까 고민도 된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것이 흔히 제3자가 나를 어떤 때 어떤 모습으로 칭찬해주는지 기억해보는 것이다.
웃는 모습이 멋지다거나, 부지런하다거나, 친절하다거나, 이러한 것들이 내가 좋은 이유일 수 있다. 반면 내가 싫은 이유는 다양하지 않을까? 잘 잊는다거나(그러면 메모 습관 기르기), 실수가 잦다거나(그럼 실수한 것에선 더 꼼꼼해지기) 이런 이유를 떠올려 보면 이것도 내 안의 좋은점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의외로 꽤 많은 좋은점을 발견하는 긍정 효과를 얻었으면 한다.

우리의 삶은 여러 단계로 구별되어진다. 날씨도 맑은 날, 비오는 날, 구름 낀 날 등 다채로운 것이 날씨의 변화이자 구분법이다. 나이를 먹어감은 나이가 들면 조금씩 찾아오는 무게감이지만 날씨의 변화처럼 상황에 따른 아름다움이 있다. 저자 또한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25년간의 직장맘 생활을 하며 어느덧 50대에 접어 들었다고 한다. 바쁘게 살아오며 열심히 살아온 인생이다. 저자의 글에서 표현한 것처럼 떠오르는 태양의 빗줄기도 아름답지만 사실 노을지는 석양이 예술이자 가장 큰 아름다움임을 우린 알고 있다. 40대 중반을 접어드는 내 입장에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더 크게 다가올 만족감, 아름다운 마무리에 더 큰 의미를 두게 된다.
저자의 글처럼 시간이 흐르지만 좀 더 긍정적인 일상의 삶으로 주변을 돌아보고 나 다운 삶, 누구에게나 찾아 올 오늘의 찬란함을 누리고 싶다. 작은 우주인 김은주 작가의 글 속에서 개개인의 작은 우주, 오늘이라는 처음의 설렘을 누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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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친일파 - 반일 종족주의 거짓을 파헤친다
호사카 유지 지음 / 봄이아트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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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새빨간 거짓말의 향연으로 독자들의 억장을 무너트린다. 세월호 1기 특조위 황전원 위원의 조사 방해 시인마저 세월호 모든 진상 조사는 마무리되었다고 이해 불가한 해설을 하는 반일 종족주의의 일부 저자들. 특조위 당사자마저 조작 및 미해결 문제에 대한 시인을 하는 지금, 어떠한 시대 인식으로 비논리적인 언행을 일삼고 계신지 그 자체도 몹시 궁금하고 작은 혐오감마저 느끼게 한다. 이제 시작인 것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마음속 깊이 박힐 분노의 강노가 어디까지 거세질지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이래서 역사는 지속적으로 연구되어야 하고 객관적 진실은 무지의 주관적 판단을 녹여낼 수 있는 용광로와 같아야 함을 깨닫게 해준다.

이 책은 총 3부로 간결하게 구성돼 있지만 분노에 대한 강도는 거세다. 제1부 강제징용 문제에서 드러난 '노예근성' 당니 탄광에서 일어났던 상황과 노무관리 실태, 조선인 노동자들에 대한 정황 등을 정리해 준다.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이었는지 반일 종족주의의 비논리적 행태를 알기 쉽고 조리 있게 반박해 준다.

2부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최전선 성 노예 제도. 요즘 정의연 사태도 그러하지만 한일 관계에 있어 첨예한 대립과 울분이 가시지 않는 과거의 아픈 역사이다. 위안부 사건에 대한 은폐와 왜곡이 얼마나 범법적인 행위인지, 거짓되고 와전, 과장된 정보가 많은 이들의 심장을 찢어지고 타들어가게 하는지 분명히 그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3부 일제 강점의 거짓된 분석과 자기 합리화. 제대로 된 사료 조사와 역사적 증거에 맞게 문제를 파악하고 역사 인식에 대해 대응하는지, 일제 강점의 문제 제기를 올바른 법적 판단 증거물 확인으로 억지스러운 조작에 유연히 대처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본질이 무엇인지? 겉핥기의 폐해가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투명하고 객관적인 역사 인식의 시작을 배우고, 미래 대한민국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키워가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한다.

검증은 풍부할수록 좋다. 역사도 다양한 시각과 연구 과제의 분석을 통해 가장 합리적인 결론에 이르는 것을 추천한다. 그 답을 이 작품에서 찾을 수 있으면 좋겠으나 그것이 어렵더라도 시작을 함께 일으켜 나갔으면 한다. 그만큼 성실하고 객관적 논(평) 해(설)를 통해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이 작품을 완성했다.

일제 시대 탄광 강제 징용부터 문제의 발단은 시작된다. 반일 종족주의를 먼저 읽어보지 않은 상황에서 결론짓기 힘드나 낙성대 경제 연구소 이우연 연구원은 일본 우파의 주장처럼 '자발적인 탄광 업무 지원이었다.', '일본인들과의 차별은 없었다.', '더 좋은 대우를 받았다.'라는 식으로 주장한다. 반면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 미이케 탄광의 과거 역사적 사실과 자료 증거 등을 통해 탄광 노동력은 주로 죄수 노동자, 2차 세계대전 하의 중국인과 조선인 강제 노동, 전후 외국인 포로를 노동력으로 동원한 근거 자료를 소개한다. 이처럼 이우연은 역사적 사실에 침묵하는 내용으로만 독자들을 설득시키려 한 것이다. 엄청나게 많은 강제 징용자의 경험담과 증언이 도처에 깔려 있고 이것이 자발적이라기보다 강제적인 목적에 의해 자행된 만행임에도 말이다.

'생활은 대단히 자유로웠습니다. 밤새워 화투를 쳐 잠을 설친다거나, 근무가 끝나면 시내로 나가 과음하고 다음날 출근을 못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조선 여인이 있는 소위 '특별 위안소'라는 곳에서 월급을 모두 탕진할 정도로 그들은 자유로웠습니다.'

반일 종족주의 이우연 글의 일부이다. 조선인 광부들의 생활이 자유로웠다고 주장한다. 또한 군함도에서 18세 조선인 위안부가 인생을 비관해 목숨을 끊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내용을 가볍게 적어 넘기는 것에 화를 금할 수 없다고 호사카 유지 교수는 말한다. 휴가는 있었을지언정, 어찌 이렇게 자유로웠을까? 잦은 폭행과 폭언이 있었다는 기록과 상반되는 것들이라 어이 없을 뿐이다. 그럼 그간 방송된 기록들과 증언이 날조된 것인지 이우연에게 되묻고 싶다. 호사카 유지 교수의 이야기처럼 이우연이 말하려는 속내가 더욱 궁금하다.

'미군의 포로 심문 보고서를 보면 먼저 조선 여성들이 부상병을 위해 간호사와 비슷한 일을 하거나 병사들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한다고만 듣고 모집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호사카 유지 교수가 이러한 증거 자료를 제시해도 이영훈 낙성대 경제 연구소 이사장은 위안부는 기존 기생이나, 관련 직종에 종사하던 이들이었으며 대부분 무지하고 교육을 받지 옷했다는 심문 보고서만의 내용을 발췌한다. 취업 사기로 인해 결국 강제 위안부가 된 조선 여인들은 매춘을 강요 당한다. 여기에 이영훈은 조선시대 '공창제'를 논하며 그 시대의 연장이라는 반인륜적, 반역사적 내용을 책에 담는다.

심문 보고서를 짜깁기해

'그녀들의 생활은 비교적 사치스러웠다. 식료와 물자를 구입할 수 있는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녀들의 생활은 좋았다.'

심문 보고서의 원본을 보지 못한 입장이지만, 정확한 근거와 자료가 종합된 것인지 의문투성이다. 호사카 유지 교수의 분석처럼 미군 심문 보고서의 여러 문장들을 가져와 일본인 관계자-포주 혹은 일부 위안부-들의 말을 마치 미군이 정확히 조사한 후 정리한 문장처럼 짜깁기했다니, 애초에 이러한 사전 정황을 모르는 이는 내용을 사실로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심문 보고서라는 원본이 아니라 이영훈의 내용 짜깁기와 정리로 역사를 절대 왜곡할 수 없음을 실감하게 하는 내용이다. 그저 책을 읽는 독자들은 울분을 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영훈은 "위안부들 역시 전쟁 특수를 이용하여 한몫의 인생을 개척한 사람들"이었다고 하면서......'

어찌 감히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일본 탄광의 조선인 노동자를 감시했던 '나야'라는 직책이 있었던 것처럼 조선인 위안부들에겐 '일본인 포주'들의 끊임없는 감시가 있었다. 강제적인 매춘 행위와 빚이라는 압박이 그녀들을 하룻밤 제대로 잘 수 없는 공포감에 휩싸이게 했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이러한 정황 속에 조선인 위안부들이 자유롭고, 넉넉한 생활을 했으며, 이를 누렸다고 당연한 듯 이야기하는 이영훈의 억지스런 말에 넋을 잃고 만다. 무엇이 사실이고 거짓인지 사리분별마저 흐려진 것일까? 호사카 유지 교수의 인용처럼 반일 종족주의를 비판하기에 앞서 그들이 친일 종족주의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할 판이다.

왜 그들은 일본 우파 논리에 급급해 거짓된 내용을 자기들 딴엔 사실이라는 허울로 포장하는 것일까? 당시 왜 가부장적 권위자인 아버지에 의해 딸을 기생집으로 팔았다거나, 강제 연행이 아닌 자발적인 '위안부'였다는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를 내세우는 것일까? 이런 거짓된 내용이 당연스럽다는 것으로 결론 내 [반일 종족주의]란 책을 읽는 독자들을 혼란케 한 것도 커다란 문제이며, 역사 왜곡의 오점이란 생각을 갖게 한다. 수없이 비난하고 분통을 터뜨려도 모자랄 일이다.

여기서 실제 증언으로 나타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셨던 문옥주의 증언이다. 조선인 친구의 집에 놀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일본군 헌병에게 연행되는 그녀는 며칠 뒤 북부 만주의 동안성이었다. 여기서 매일 20~30명의 일본인 병사들을 상대해야 했다.라는 증언이다. 반면 이영훈은 당시 문옥주는 오빠의 승낙하게 주선업자에 끌려갔다는 거짓된 정보를 주장한다. 이에 따른 합당한 증거 제시 없이 진실을 매도하고 있다고 호사카 유지 교수는 역설한다. 늘 이런 식의 일본 우파 논리와 허황된 증거와 허상뿐인 말로 위안부 피해 사례마저 지나치게 왜곡해 가고 있다. 객관적 실체 없이 학자라는 신분을 망각한 채 자신들이 진정한 애국인 것처럼 치장하는 그들, 그런 허황된 정황들로 실체를 덮어 버리려는 것들이 친일이 아닐지 오히려 반문하고 싶다.

현재 가장 첨예한 대립이자 문제인 독도 영유권에 대한 잘못된 정보의 나열이 그들의 또 다른 과오란 생각을 하며 이야기를 꺼내 본다. 이영훈은 [세종실록지리지] 1454년 간행되었으나 책에는 1451년이라고 썼으며, 일본이 독도를 분법 편입한 시기도 1년이 빠른 1904년이라고 잘못 정리하고 있다고 한다. 호사카 유지는 이를 독도에 관한 '무지'라고 언급한다. 기본적인 연도로부터 실수가 이어지는 판에 더 세부적인 내용의 설명은 얼마나 더 신뢰가 가지 않을지 읽어 보지 않아도 파악이 될 듯하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이 작품 이전에 두 권의 독도 관련 서적을 출간했다. 그만큼 많은 사료와 증거를 통해 울릉도와 독도의 관계, 조선을 비롯해 삼국시대부터의 독도라는 우산도의 의미와 지리적 위치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억지와 같은 비논리와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자료 조사-세종실록지리지, 숙종실록, 동국문헌비고, 태정과 지령문 등-와 역사적 사실이 독자들의 명확한 판단력을 가능케 하는 책의 내용이다. 언론에서도 보는 것처럼 일본 우파의 억지 주장과 동일한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들의 행태, 다시금 반성의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닌지 개인적 견해를 더해본다.

위안부 문제 합의를 비롯한 거짓 정보와 짜깁기식 정리는 그 해당 당사자들에겐 어떠한 아픔보다 크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공분(公憤)을 살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 한일 문제에 풀리지 않은 굵은 쇠밧줄은 현재 진행형의 상태이다.

당시 상황이었지만 고종의 윤허 및 황제의 옥쇄가 없었던 일제 강점기의 시작으로부터 불법적으로 자행되어온 각종 억압과 만행, 일제강점 후반기 강제징용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사죄 없이 정부 간의 합의 혹은 입막음을 위한 금전적 해결로 그간 찢어질 대로 찢어진 몸과 마음의 상처를 부여잡으며 항변했던 이들의 아픔을 치유할 수 없을 것이다. 저자의 바람처럼 진실과 허황된 거짓 사이에 무엇이 필요한 시대인지 이를 분별할 줄 아는 눈이 절실한 때이다. 이 책을 읽고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동공이 확대되는 격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좀 더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하리라 여겨진다. 진실은 머지않아 거짓과 사실 사이에서 밝혀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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