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https://blog.naver.com/modum40/221040472717 >

 

 

팔십년전거시아(八十年前渠是我)   80년 전에는 그가 나이더니

팔십년후아시거(八十年後我是渠)   80년 후에는 내가 그이구나

 

한 모습에서 과거와 현재를 함께보는 단구(短句)예요. 동시성의 통찰이라 평범한 듯 하면서도 비범해요. 지은이는 서산대사로 알려진 휴정(休靜, 1520-1604)이에요. 자신의 영정에 쓴 것으로, 85세에 입적했으니, 생애 말년에 쓴 것이에요.

 

휴정은 승병 지도자 - 임진왜란시 - 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의 진면목은 선승이었다는 점에 있어요. 그가 지은『선가귀감(禪家龜鑑)』은 지금도 중요한 선 입문서로 취급되죠. 그가 선에 정통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한 사례라고 할 거예요. 휴정은 선승이긴 했지만 '교(敎)' 또한 중시했어요. 그는 선을 말 없음을 통해 말 없음에 이르는 길로 보았고, 교를 말 있음을 통해 말 없음에 이르는 길로 보았어요. 자신의 영정에서 동시성의 통찰을 보인 것 처럼 수행에서도 동시성을 추구한 것이죠. 이는 그가 남긴 시편에서도 확인돼요.

 

 

사진은 휴정의「독파능엄(讀罷楞嚴, 능엄경을 읽은 후)」이란 시예요(독파를 보통은 '讀破'로 표기하는데, 인터넷 자료에는 '讀罷'로 나오더군요. 인터넷 자료를 따랐어요).

 

 

風靜花猶落   풍정화유락     바람 고요해도 꽃 떨어지고

鳥鳴山更幽   조명산경유     새 울어도 산 고요해

天共白雲曉   천공백운효     하늘은 백운과 함께 밝아오고

水和明月流   수화명월류     물은 명월과 함께 흐르네 

 

* 사진의 번역과 약간 다르게 번역했어요.

 

 

『능엄경(楞嚴經)』은 불성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번뇌가 사라진 자리가 곧 불성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번뇌 사르는 것을 주가르침으로 하는 경전이에요. 이를 바탕으로 시를 보면 내용 이해가 쉬울 것 같아요.

 

첫째 구에서, 바람이 고요하건만 꽃이 떨어진다고 했어요. 바람이 고요하지 않다면, 즉 바람이 몰아친다면 꽃이 떨어지는 것을 깊은 울림으로 받아 들이기 어려울 거예요. '바람부니 꽃이 떨어지는거야 당연하지!' 정도로 무심히 인식하겠지요. 그러나 꽃이 떨어질 상황이 아닌데, 즉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상태인데 꽃이 떨어진다면 깊은 울림으로 받아들일 거예요. '바람도 없는데 어떻게 꽃이 떨어지지?' 라며 유심히 인식하겠지요. 첫 구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 존재의 가치는 타 존재와의 관계를 통해 인식된다'는 점이에요. 둘째 구는 첫 구의 언급을, 소재를 바꾸어, 반복한 거예요.

 

셋째 구는 첫째 구와 둘째 구의 인식관으로 세상을 통찰한 모습이에요. 하늘과 백운은 함께 하기 불편한 존재예요. 하늘은 빛을 발산하려 하고 백운은 빛을 차단하려 하기 때문이죠. 이런 모순된 존재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공간이 바로 세상이에요. 재미있는건(?)  이런 모순된 존재가 서로에게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유미의하다는 점이에요. 하늘의 빛은 백운이 가리려 하기에 더 가치가 있고, 백운의 가림은 하늘이 빛이 드러나려 하기에 더 가치가 있기 때문이죠. 세상은 모순이 존재하지만 그 모순은 공멸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을 지향한다는 것이 휴정이 인식한 세계관이에요. 앞서 언급한 동시성의 통찰과 같은 맥락이지요. 넷째 구는 셋째 구의 내용을, 소재만 바꾸어, 반복한 거예요.

 

위 시는 휴정이 『능엄경(楞嚴經)』을 읽고 난 뒤 지은 시예요. 번뇌와 불성의 깨우침을 주내용으로 하는 능엄경을 읽고 위와 같은 인식과 통찰의 모습을 보였다면, 그가 번뇌와 불성의 깨우침 상관 관계를 어떻게 인식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어요. "번뇌는 불성의 깨우침으로 가는 길이며, 불성의 깨우침은 번뇌로 부터 시작한다. 번뇌와 불성의 깨우침은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이다." 이런 인식을 했을 것으로 보여요.

 

낯선 한자를 두어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靜은 청(푸를 청)과 爭(다툴 쟁)의 합자예요. 분명하게 살펴본다는 의미예요. 선명한 색깔을 의미하는 靑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爭은 음을 담당하면서(쟁→정)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분명하게 살펴보려면 요란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로요. 靜은 보통 '고요하다'란 의미로 사용하는데, 이는 靑보다 爭의 의미를 강조하여 사용한 거예요. 고요할 정.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肅(정숙), 寂寞(적막)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幽는 山(뫼 산)과 幺(작을 요) 두 개가 합쳐진 글자예요. 작은 것은 그 자체도 알아보기 힘든데, 깊은 산 중에 들어 있어 더더욱 알아보기 힘들다는 의미예요. 정체가 모호하여 파악하기 힘들다는 의미의 '그윽하다'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그윽할 유.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靈(유령), 深山曲(심산유곡)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曉는 日(날 일)과 堯(높을 요)의 합자예요. 해가 뜨는 새벽이란 뜻이에요. 日로 뜻을 표현했어요. 堯는 음을 담당하면서(요→효)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새벽은 해가 높이 떠오르려는 시각이란 의미로요. 새벽 효. 曉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曉星(효성), 元曉(원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流는 氵(물 수)와 旒(깃발 류)의 줄임 글자가 합쳐진 거예요. 깃발이 펄럭이듯 물이 흘러간다는 의미지요. 旒의 줄임 글자는 음도 담당해요. 흐를 류. 流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流行(유행), 行雲流水(행운유수, 거리낌 없이 떠돎)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위 시에 보인 휴정의 동시성의 통찰이나 모순적인 존재의 공존 지향 세계관은 그만의 독특한 세계관이라고 보기 어려워요. 동양의 보편적인 가치관이라고 보는게 더 적확하죠. 오늘 날 세계에 기여할만 한 동양의 가치관을 꼽으라면 바로 이 동시성의 통찰과 모순적인 존재의 공존 지향 가치관이 아닐까 싶어요. 이런, 멀리까지 갈 것 없네요. 우리만 해도 당장 이런 가치관이 필요해 보이네요. 온갖 곳에 일방(一方) 생존의 상극(相克)이 난무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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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1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2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2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러가지 바쁘실 줄 알지만 연락이 없어서…."

 

 없는 살림이지만 그래도 아이들 어렸을 때 흔적을 남기고 싶어 거금 100만원을 주고 캠코더를 구입했어요. 그런데 촬영 중 실수로 캠코더를 바닥에 떨어트렸어요. 이후 재생시 화질이 깨지는 거예요. 수리 센터에 수선을 부탁했는데 영 연락이 오질 않아요. 할 수 없이 수리 센타에 전화를 걸어 먼저 정중하게 말을 꺼냈어요. 연락을 주지 않는데에는 그만한 사정이 있겠거니 생각한 것이죠.

 

 상대는 정중한 서두에 좀 당황한 것 같았어요. 보통은 다짜고짜 퉁명스런 말투로 짜증을 부리기 일쑤인데.

 

 "저희는 거금을 들여 샀는데, 제 때에 쓰지 못하면 사용의 의미가 없어서... 어려우셔도 이른 시일안에 수리를 좀 완료해 주실 수 있을런지요?"

 

 상대는 더더욱 어쩔 줄 몰라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더니 답변을 했어요. "사실은 저희가 고쳐 보려고 했는데... 잘 안돼서... 다른 제품으로 교환을 하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본사에서는 교환을 잘 해주지 않으려고 할 거예요. 그럴 때는 이런 식으로 적극 어필하세요."

 

수리  센터는 본사 산하일텐데 왜 반품 교환 요령까지 알려주는 걸까? 속으로, 의아했어요. 이후 수리 센터에서 먼저 본사에 잘 말했는지 본사에서는 전화가 오지 않았고 제품은 교환됐어요. 벌써 십 몇년 전 일이네요.

 

그분과 통화할 당시 읽고 있던 책이 있었어요. 데일 카네기의 인간 관계론. 핵심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라는 것인데 통화중에 그것을 활용했더니 생각잖은 좋은 결과를 얻은 거예요.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분들이 감정 노동에 시달린다고 하죠? 예전에는 서비스를 하는 분들이 외려 고객에게 상전 노릇을 했는데 지금은 역전된 느낌이에요. 예전도 좋지 않지만 지금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아요. 상호간 예절있는 있는 말투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지 갑을 관계가 되어 횡포를 부리는 것은 눈쌀을 찌푸리게 해요.

 

사진은 '겸수익 만초손(謙受益 滿招損)'이라고 읽어요. '겸손은 이익을 받고, 오만은 손해를 부른다'는 뜻이에요. 『명심보감(明心寶鑑)』의 한 구절이죠. 겸손과 오만중 어느 것이 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좋게 만드는 것인지는 이익과 손해를 거론하지 않아도 잘 알수 있지만 굳이 이익과 손해의 관점에서 겸손과 오만을 말한 것은 피부에 와닿는 교훈을 주기 위해 그런 것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겸손'과 '위선'의 구분이에요(오만은 어차피 자신의 직정(直情)을 표현한 것이니까 거론한 필요가 없구요). 상대에 대한 분노가 지글지글한데 겉으로 야들야들하게 대한다면 그건 위선이 아닐까 싶어요. 이 경우 겸손은 '이익'의 관점에서 택한 '위선'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정말(!)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고 말을 하는 것, 그것이 진짜 '겸손'이죠. 카네기도 그런 점을 강조해요.

 

낯선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謙은 言(말씀 언)과 兼(겸할 겸)의 합자예요. 겸손하다란 뜻이에요. 言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겸손한 행동이 우선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말씨'이기에 言을 사용했어요. 兼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내가 상대에게 겸손하게 대하면 상대도 내게 겸손하게 대한다는 의미로요. 겸손할 겸. 謙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謙遜(겸손), 謙讓(겸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損은 扌(手의 약자, 손 수)와 員(수효 원)의 합자예요. 덜어낸다는 뜻이에요. 扌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員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물건을 덜어내면 그 수효가 줄어든다는 의미로요. 덜 손. 損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損害(손해), 損失(손실)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그렇게 바꾼 캠코더는 이제 퇴물이 되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디카를 넘어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니 캠코더는 자연스럽게 손을 떠나더군요. 촬영해 놓은 테잎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고….

 

사진은 http://ushg.co.kr/board/bbs/board.php?bo_table=qna&wr_id=614  에서 얻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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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 출처: http://ushg.co.kr/board/bbs/board.php?bo_table=qna&wr_id=614

 

 

척벽비보 촌음시경(尺璧非寶 寸陰是競). 지름 한 자의 구슬, 결코 보배가 아니라네. 토끼 꽁지같은 시간, 이것이 진정 보배일세.

 

 

'천자문'의 한 구절이에요(의역 했어요). 초등학교 시절 이 구절을 읽고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안됐어요. 그 때는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요. '나도 과연 어른이 될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이 의미를 조금 이해할 듯 싶어요.

 

 

옛 글을 읽다보면 '시간을 소중히 하라'는 내용을 많이 만나요. 왜 시간을 소중히 하라고 했을까요? 기본적으로 수명이 짧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조선조만 해도 평균 수명이 50을 넘기 힘들었다고 하니 그 이전 시대는 더 짧았겠지요. 이 짧은 삶에서 사회적 성취까지 이뤄야 하니 '시간을 소중히 하라'는 말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평균 수명 70을 상회하는 지금은 시간을 함부로 대해도 될까요? 그렇지는 않겠지요. 다만 시간의 의미를 강조하는 연령대가 달라져야 할 것 같아요. 옛날에는 유소년기의 시간을 소중히 다뤄야 했지만 지금은 노년기의 시간을 소중히 다뤄야 하는.

 

 

소중히 다뤄야 할 노년기의 시간에 가장 유의미한 행위는 무엇일까요? 공부 아닐까 싶어요. 젊은 날의 공부는 생존을 위해 어쩔수 없이 해야하는 고역이었지만 노년의 공부는 생존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즐기며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공자는 "공부가 즐거워 세월가는 줄 몰랐다"고 고백한 적이 있어요.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노년의 즐거운 행위 중 공부가 으뜸일 수 있다는 주장은 그리 무리한 주장은 아니예요. ^ ^

 

 

사진은 '백천동도해 하시부서귀 소장불노력 노대도상비(百川東到海 何時復西歸 少壯不努力 老大徒傷悲)'라고 읽어요. '모든 물줄기 동으로 동으로 바다에 이르나니/ 어느 때 제자리로 온단 말가/ 젊은 날 노력하지 않으면/ 나이들어 후회감만 남으리'라는 뜻이에요(의역했어요). '다시 오지 않을 시간, 소중히 아껴 열심히 노력하라'는 의미지요. 젊은 이들에게 주는 교훈이겠죠? 이 글을 지금 상황에 맞춘다면 이렇게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백천집도해 하기유장귀 소장불식취 노대경흠상(百川集到海 何其悠長歸 少壯不識趣 老大竟欽賞). 모든 물줄기 모여 모여 바다에 이르나니/ 어찌도 그리 유장하게 귀착되는지/ 젊은 날엔 그 맛을 느끼지 못했나니/ 노년에사 그 맛을 느끼네. (운과 평측은 맞추지 못했네요 ㅠ ㅠ)

 

 

낯선 서너 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到는 至(이를 지)와 刂(刀의 변형, 칼 도)의 합자예요. 이르다란 뜻에요. 至로 뜻을 표현했어요. 刂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칼이 예리하여 조금만 접촉해도 그 흔적이 남을 수 있듯, 그같이 가고자 하는 곳에 틀림없이 이르렀다란 의미로요. 이를 도. 到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到着(도착), 到達(도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歸는 시집가다란 의미예요. 止(그칠 지)와 帚(婦의 약자, 아내 부)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여인이 시집가면 아내가 되기에 帚를, 또 시집을 가면 안정된 처소를 얻기에 이 뜻을 지닌 止로 '시집가다'란 의미를 표현했어요. 나머지는 음을 담당해요. 이 글자의 일반적 의미인 '돌아가다(돌아오다)'란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돌아갈(올) 귀. 歸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歸鄕(귀향), 歸國(귀국)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壯은 士(선비 사)와 爿(조각 장)의 합자예요. 몸과 마음이 장대하다란 의미예요. 士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爿은 음을 담당해요. 장할 장. 壯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壯士(장사), 壯大(장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傷은 人(사람 인)과 昜(볕 양)의 합자예요. 남에게 받거나 남에게 입힌 상처란 의미예요. 人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昜은 음을 담당하면서(양→상)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양은 겉으로 드러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는데, 상처는 겉으로 잘 드러나 보인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해 주고 있는 것이지요. 상처 상. 傷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傷痕(상흔), 外傷(외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悲는 心(마음 심)과 非(아닐 비)의 합자예요. 생각하던 것과 어긋나거나 이치에 맞지 않아 마음이 상했다는 의미예요. 슬플 비. 悲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悲慘(비참), 悲哀(비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노년기의 가장 보람있는 일이 공부라고 했지만, 젊은 날 공부와 담을 쌓고 지내던 분들에겐 분명 쉽지 않은 일일 거예요. 이렇게 보면 노년기의 가장 보람있는 일이 공부라는 주장은 분명 한계가 있어요. 그러나 또 분명한 건 노년의 공부가 돈도 별반 들지 않고 의미있는 일이란 거예요. 젊은 날 공부와 담을 쌓고 지내던 분들이 공부의 즐거움을 느끼려면 본인도 노력을 해야 겠지만 뭔가 정책적으로도 배려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냥 평생 학습관 같은 곳에 강좌 개설하고 듣고 싶은 사람 듣게 하는 것만으로는 미흡하지 않은가 싶은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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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학(道學)과 절의(節義) 그리고 문장(文章) 삼박자를 고루 갖춘 분이 있었던가? 아쉽게도 어느 하나나 둘이 뛰어나면 나머지가 부족했다. 그러나 하늘이 이 나라에도 그러한 인물이 태어나도록 마음을 쓰셔 드디어 그 인물의 출현을 보게 되었다. 그가 누구인가? 바로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선생이시다(國朝人物道學節義文章忒有品差 其兼有而不偏者無幾矣 天佑我東 鍾生河西金先生 則殆庶幾焉)."

 

 

우암 송시열이 지은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 선생의 신도비문 첫머리예요(의미 전달에 중점을 두고 의역했어요). 신도비에 과장이 들어가는것을 십분 감안한다 해도 "하늘이 이 나라에도 그러한 인물이 태어나도록 마음을 쓰셔" 운운은 대단한 상찬(賞讚)이 아닐 수 없어요. 전하기론 이 부분 때문에 김인후 선생의 명성이 더 치솟게 됐다고 해요.

 

 

김인후 선생은 중종의 뒤를 이은 인종의 세자 시절 스승이었어요. 스승과 제자 사이 나이 차이는 6살 밖에 되지 않았어요. 둘은 의기가 상통했고, 정치 혁신에 대한 열망이 컸어요. 인종이 등극 후 기묘사화로 숙청당한 조광조 등을 신원한 것은 그 한 예이죠.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종은 등극한지 9개월이 채 못되어 세상을 뜨고 말아요. 인종의 승하는 김인후에겐 더할 나위없는 큰 충격이었어요. 새로운 정치의 원동력이 상실되었기 때문이죠. 당시 조정은 인종의 계모인 문정왕후와 그의 친동생(윤원형)이 권력을 장악한 상황이었고 후계자로 지목된 명종은 나어린(12살) 군주였으니 새로운 정치를 기대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죠(실제 얼마 안있다 을사사화가 발생하죠). 이런 절망적 상황에 놓이자 선생은 벼슬을 내놓고 은둔을 택해요. 선생은 인종의 기일이면 매번 산속에 들어가 크게 통곡하고 내려왔다 해요. 인종의 조사(早死)에 대한 아쉬움과 불의(不義)의 시대에 대한 개탄 그리고 자신의 불우(不遇)한 처지를 슬퍼했던 거지요.

 

 

사진은 선생의 '致詩謝西齋(치시사서재, 시를 올리고 서제를 떠나다)'란 시예요.

 

 

散漫松間影   산만송간영    솔 숲 사이 그림자 어른 거리고

玲瓏氷下泉   영롱빙하천    얼음 아래 물 수정처럼 맑아라

尊傾調急管   준경조급관    술잔 기울이니 조급한 피리 소리 느슨해    

月側罷淸筵   월측파청연    달 이울어 맑은 모임 파해라

醉舞沿溪曲   취무연계곡    시냇물 굽이 따라 취하여 건들건들

狂歌遶樹邊   광가요수변    나무 주변 맴돌며 고성도 질러보네

歸來興不盡   귀래흥부진    돌아갈 참이건만 여흥이 식지 않아

嘯詠謝諸賢   소영사제현    콧노래 흥얼대며 인사를 드리네

 

 

고아(高雅)한 모임에 참석했다 떠나며 지은 시인듯 해요. 고아한 모임이라 그랬을까요? '취무(醉舞)'와 '광가(狂歌)'라는 말을 쓰고 있음에도 시 전체에서 느껴지는 풍모는 결코 이백류의 광달(狂達)한 풍모가 아니예요. 이는 취무와 광가에 어울리지 않는 '영롱(玲瓏)' '조(調)' '제현(諸賢)' 등의 시어 사용에서 빚어진 엇박자 때문이에요. 고의로 이런 엇박자를 낸 것일까요? 그런 것 같진 않아요. 시인의 의식이 자연스럽게 빚어낸 결과로 보여요. 여기서 송시열이 언급한 도학과 절의라는 말을 상기하면 좋을 듯 싶어요.

 

도학를 탐구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중용의 삶을 지향한다는 거예요. 중용의 삶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과불급(過不及)이죠. 시에서 '취무'와 '광가'를 등장시키는 한편 '영롱'과 '조'와 '제현' 등을 등장시킨 것은 바로 과불급을 조절하는 도학자의 의식이 발동된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요. 절의의 관점에서도 이 엇박자를 바라볼 수 있어요. 선생은 시대와의 불화로 은거를 택했어요. 자신의 절의를 지키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선생은 도사나 선사가 아니예요. 사(士)예요. 사의 은거는 결코 도사나 선사와 같을 수 없어요. 사의 은거는. 더구나 고명한 사의 은거는, 또 하나의 사회 참여 행위이지 도사나 선사처럼 세상을 버리는게 아니거든요. 그것은 불의의 시대를 고발하는 한 증표지요. 이 시가 초일(超逸)한 듯 하면서도 그렇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런 사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여요.

 

낯선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은 月(肉의 변형, 고기 육)과 㪔(나눌 산)의 합자예요. 잡다한 고기란 뜻이에요. 月로 뜻을 표현했어요. 㪔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여기저기서 토막난 것이 모인 잡다한 고기란 뜻으로요. 일반적으로 '흩어지다'란 뜻으로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흩어질 산. 散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解散(해산), 散亂(산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氵(水의 변형, 물 수)와 曼(길 만)의 합자예요. 물길이 광대하다란 의미예요. 氵로 뜻을 표현했어요. 曼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광대한 물길은 그 길이도 길다란 의미로요. 일반적으로 '질펀하다'란 뜻으로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질퍼할 만. 漫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漫畵(만화), 漫步(만보, 한가히 거니는 걸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王(玉의 변형, 구슬 옥)과 令(아름다울 령)의 합자예요. 옥소리란 의미예요. 王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令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듣기에 아름다운[좋은] 소리가 옥소리란 의미로요. 옥소리 령. 玲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玲玲(영령, 옥이 울리는 소리), 玲玎(영정, 옥석이 울리는 소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酋(술 유)와 寸(手의 변형, 손 수)의 합자예요. 공손히 받들어야 할[寸] 술잔[酋]이란 의미예요. 지금 술잔 이란 의미는 樽으로 표기하고, 尊은 주로 '높이다'란 의미로 사용해요. 위 시에서는 술잔이란 의미로 사용했어요. 술잔 준. 높일 존. 尊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尊敬(존경), 尊嚴(존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調는 言(말씀 언)과 周(두루 주)의 합자예요. 의사가 잘 소통되어 화목하다란 의미예요. 言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周는 음을 담당하면서(주→조)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화목하여 사이가 긴밀하다란 의미로요. 일반적으로 '고르다'란 뜻으로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고를 조. 調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調和(조화), 調節(조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罒(그물 망)과 能(능할 능)의 합자예요. 법망에 걸린 유능한 이를 관대하게 용서해 준다는 의미예요. 일반적으로 '파하다'란 의미로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파할 파. 罷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罷業(파업), 罷免(파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竹(대 죽)과 延(길 연)의 합자예요. 긴 대자리란 의미예요. '대'를 빼고 '자리' 혹은 '잔치'란 뜻으로 많이 사용해요. 자리 연. 筵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壽筵(수연), 經筵(경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沿은 氵(水의 변형, 물 수)와 㕣(산속의 늪 연)의 합자예요. 물가를 따라 (내려) 간다는 의미예요. 물따라 갈 연. 沿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沿革(연혁), 沿岸(연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辶(걸을 착)과 堯(繞의 약자, 두를 요)의 합자예요. 에워싼다는 의미예요. 에워쌀 요. 遶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環遶(환요, 둥글게 에워 쌈), 圍遶(위요, 빙 둘러 앉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辶(걸을 착)과 自(부터 자)와 方(旁의 약자, 두루 방)의 합자예요. 자기가 있는 곳으로부터 걸어서 이를만한 곳, 즉 멀지 않은 주변 지역이란 의미예요. 가 변. 邊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周邊(주변), 邊塞(변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口(입 구)와 肅(엄숙할 숙)의 합자예요. 나즈막하게[肅] 입으로 가락있는 소리를 낸다는 의미예요. 휘파람 소. 嘯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虎嘯(호소, 범이 으르렁 거림. 영웅이 세력을 떨쳐 활약함을 비유), 嘯兇(소흉, 악한 무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言(말씀 언)과 者(놈 자)의 합자예요. 여러 대상[者]을 일컫는 말[言]이란 의미예요. 모두 제. 諸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諸君(제군), 諸般(제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시 한편을 가지고 침소봉대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선생의 삶에 맞춰 견강부회한 것 같은 생각도 들구요. 시를 감상할 때 선입견을 배제하는게 중요한데 왠지 그와 반대로 시를 감상한 것 같은 느낌이….

 

 

여담 둘. 사진은  https://blog.naver.com/ldv1004/221091240335 에서 인용했어요. 낙관 부분은 '녹김인후선생시일수 소석 송형일(錄金麟厚先生詩一首 素石 宋亨日, 김인후 선생의 시  한 수를 쓰다. 소석 송형일)이라고 읽어요. 추사휘호대회에서 높은 상을 받은 작품이더군요. 시의 정서와 글씨체가 잘 어울리는 것 같긴 한데 글씨에 너무 힘이 없다는 느낌이 들어요. 작품도 훔쳐(?) 쓰는 주제에 객적은 품평까지 해서 혹 작가분의 노여움을 사는 건 아닌지…. (작가님, 혹 이 글을 보신다면 너그럽게 이해해 주세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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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아침마다 만나는 태권도장 관장. 한 아파트에 살고 반상회에서도 자주 만나는 사이였어요. 그런데 참 인사성이 없었어요. 인사를 먼저하는 법은 절대 없고, 인사를 해도 잘 받지 않았어요. 얼굴은 늘 우거지상이었고. '왜 그럴까,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나?' 속으로 이리저리 궁리를 해봤지만 아무리 궁리를 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결론을 내렸어요: "운동(만) 해 무식해서 그런거다!"

 

운동(만) 한 사람들은 무식하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이 편견이 틀리지 않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어요. 운동(만) 한 사람들이 무식하다는 편견은 하루 아침에 형성된 것 같지 않아요. 어렸을 때 부터 주위 어른들한테 익숙하게 들었고, 학창 시절 주변 학우들에게서 실제 그런 면모를 확인했어요. 이런 편견은 사회생활을 통해 더 강화됐어요. 운동 좀 한다는 사람들은 대개 말이 거칠고 문제를 논리적으로 풀기보다는 힘을 앞세워 풀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정말 운동하는 사람들은 무식할까요? 무식이 단지 아는 것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지만 '무식 = 머리 나쁨'을 의미한다면 이는 잘못된 상식이라고 해요. 운동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머리가 좋고 사교성도 우수하다고 해요. 미국 대학 입시에서 고교시절 운동 (선수) 한 학생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이렇게 보면 운동 좀 한다는 사람들이 말이 거칠고 힘을 앞세워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은 꼭 실제로 말이 거칠고 힘을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그것이 문제를 푸는데 유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러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무식한 자의 우둔한 방법이라기 보다 머리좋은 자의 약삭빠른 방법이라고 볼 수도 있는 거지요. 어쩌면 저 태권도장 관장의 무례도 자신의 우월성(?)을 확보하기 위한 약삭빠른 행위였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만일 운동 하는 사람이 겉으로 드러내는 행동도 예의바르고 말투도 공손하며 논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어떨까요?

 

사진은 '영도매화용법묘 춘생도리예림향(詠到梅花樁法妙 春生桃李藝林香)'이라고 읽어요. '매화 꽃 노래하듯 권법 오묘하고, 도리화 핀 봄날처럼 도장 향기롭네'라고 풀이해요. 영춘권(詠春拳)의 '영'과 '춘'을 가지고 이 권법의 특징과 수련생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렸어요. 영춘권은 견자단 주연의 영화 엽문을 통해 잘 알려졌죠. 특이하게 여성이 창안한 권법으로 보폭이 짧고 다이나믹한 손놀림이 특징인 권법이죠. 엽문(葉問, 1893 -1972)을 통해 널리 전파된 무술로 액션 스타 이소룡도 그에게 배웠다고 전하죠.

 

엽문은, 영화에도 나오지만, 본래 자신의 수련을 위해서 영춘권을 익혔을 뿐 제자들을 가르칠 생각은 없었다고 해요. 대륙이 공산화되자 거처를 홍콩으로 옮기고 부득이 생계 수단으로 제자들을 받기 시작했다는군요. 인터넷에서 그에 관한 내용을 찾아보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그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았다고 해요. 또 가르칠 적에는 '재미(흥미)'를 중시하여 제자들의 재미 수준에 맞춰 개별 지도를 해줬다고 하더군요. 흡사 공자(孔子)의 교수법을 연상시키는 이런 지도 방법은 그가 지도한 것이 학문이 아니라 무예란 점에서 더욱 흥미로워요. 무예 지도하면 으레 '강압'을 연상하는데 그의 지도는 이런 것과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죠. 영화 '엽문'에서도 보면 그가 제자들을 억지로 가르치기 보다는 자발성에 기초해서 따라오도록 지도하거나 제자들에게 인격의 수양을 강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억지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실제 그러했던 것 같아요.

 

대련(對聯) 중앙에 있는 이는 엽문인데, 짐작컨대, 말년의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모습이 무척 평온해 보여요. 전혀 무도인같지 않고 오랫동안 수양을 해 온 도인처럼 보여요(이런, 무도인도 도인이긴 하네요). 이 사진 한 장으로도 그가 제자들을 어떻게 지도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영춘권이 널리 퍼지게 된 건 영춘권 자체가 훌륭해서라기 보다 엽문의 훌륭한 인품과 능숙한 지도 방법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낯선 자 두 자만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樁은 木(나무 목)과 舂(찧을 용)의 합자예요. 말뚝이란 뜻이에요. 木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舂은 음을 담당하면서(용→장)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위에서 아래로 찧을 때 잘 박히는 것이 말뚝이란 의미로요. 말뚝 장. 위 대련에서는 '치다'란 뜻으로 사용됐는데, 이는 의 의미를 부연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칠 용.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定(장정, 확고하게 정함), 法(용법, 치는 방법)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藝는 본래 埶로 표기했어요. 埶은 坴(언덕 륙)과 丮(잡을 극)의 합자예요. 손에 씨앗을 쥐고[丮] 여러 땅에다[坴] 심는다는 의미예요. 이 글자의 일반적 의미인 '재주'는 여기서 연역된 거예요. 씨앗을 심는 행위가 결실을 위한 초보 행위이듯이 재주란 일을 성사시키기 위한 토대란 의미로요. 재주 예. 藝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藝術(예술), 技藝(기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태권도장 관장과 헤어진 지는 벌써 10년이 돼가요. 그 이는 지금도 여전히 그런 모습인지 궁금해요. 만일 그가 엽문같은 좋은 스승한테 배웠어도 그런 모습을 취했을까 생각해 봐요. 무도만큼 스승의 영향을 깊게 받는 분야가 없기에(대부분 일대일 지도니까요) 그의 그런 무례한 태도는 스승의 영향도 크지 않았을까 싶어요. 부디 그가 가르치는 제자들에게는 그가 밟은 전철(?)을 답습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여담 둘. 대련 해석에 확신이 없어요. 영춘권의 특징과 수련장의 모습을 담았을 것으로 짐작하고 풀이는 했는데 왠지 자신이 없네요. 사진은 처(妻)가 자신의 페이스 북에서 얻었다며 준 것이에요. 글을 쓰는데 아내의 도움이 큽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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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7-12-09 0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만) 한 사람이 다 그렇지는 않겠고, 아마도 인사할 줄 모르는 그 관장님 개인 품성이 문제겠지요.^^
오늘도 나를 돌아볼 계기가 된 좋은 글 감사해요~♥

찔레꽃 2017-12-10 12:17   좋아요 0 | URL
그렇겠죠? ^ ^

무심 2017-12-09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 관장님은 무도라기보다는 무술을 배운 듯싶습니다. 저도 전에는 운동만 하는 사람들을 무시햇었는데 요즈음은 달라졌습니다. 예를 들어 ‘강호동‘은 그야말로 운동만 한 사람인데 얼마나 머리가 좋습니까! 그의 개그감각이라든가 언어감각은 웬만한 개그맨을 뛰어넘습니다.
저는 영춘권 같은 여성적인 운동을 높이 쳐줍니다. 여성적인 운동은 우리 몸을 부드럽게 해 주고 그 결과 ‘혈행‘을 원할하게 해 줍니다. 혈행이 원할하면 고혈압이라든가 당뇨 같은 성인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사람의 건강은 절대적으로 혈행에 달려 있습니다. 걷기나 자전거 타기, 수영 같은 ‘우리 몸을 부드럽게 해 주는 운동‘을 저는 ‘혈행 운동‘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따라서 축구나 복싱 같은 격한 운동은 건강에 안 좋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찔레꽃 2017-12-10 12:18   좋아요 0 | URL
‘술‘과 ‘도‘는 글자 한 자 차이인데, 경지는 하늘과 땅 사이인 것 같습니다. 무심 선생님만의 건강법을 갖고 계시군요. 부럽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