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 배우는 만화 돌베개 그래픽노블 & 논픽션 시리즈 만화경
핑크복어 지음 / 돌베개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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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배우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이 책 보면서 더는 미루지 말자고 마음먹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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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수많은 이야기로 이루어진 존재다. 기억이란 우리가 살아온 모든 순간들을 공평하게 축적해놓은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애써 선별한 순간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서사이다. 설령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건들을 경험하더라도 우리가 똑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특정 순간들을 선별하는 기준은 각자 다르며, 그것은 우리의 인격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우리들 각자는 우리의 주의를 사로잡는 세부 사항들을 인식하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들을 기억하며, 그 결과 구축된 이야기들은 우리의 인격을 형성한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에서

고고학은 물리학처럼 정밀한 과학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 기반을 물리학에 두고 있다. 우리가 과거를 연구할 수 있는 것은 물리법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주의 상태를 충분히 자세하게 검토한다면, 한순간 이전의 상태를 추정할 수 있다. 각 순간은 가차 없이 그 직전의 순간을 대체하고, 가차 없이 다음 순간으로 이어지면서 인과의 사슬을 형성한다.
우주 창조와 마찬가지로 인과의 사슬로 고정되지 않은 또 다른 범주의 사건들, 자유의지에 의한 행동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유의지는 일종의 기적이다. 진정한 선택을 하는 경우 우리는 물리법칙의 작용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결과를 일으킨다. 자유의지에 의한 모든 행동은, 우주 창조와 마찬가지로, 제1원인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옴팔로스」에서

"하지만 분명, 선택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내리는 모든 결정은 당신 성격의 일부가 되고, 당신이라는 사람을 형성하니까요. 게다가 당신은 이 세계에 있는 당신의 행동만 변화시키고 있는 게 아닙니다. 미래에 분기할 당신의 모든 버전들에게도 그런 변화를 심어주고 있는 거예요. 더 나은 사람이 됨으로써, 당신은 미래에 분기될 더 많은 평행세계에도 더 나은 버전의 당신들이 살고 있을 가능성을 보장하고 있는 겁니다."

더 나은 버전의 냇. "고맙습니다." 냇이 말했다. "바로 그걸 찾고 있었어요.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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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누군가를 떠밀 때 거기엔 아무런 법칙도 이유도 없기 마련이다.

-「143번 버스의 여자」에서

내가 하루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셈을 해본다. 일곱 시간은 잠을 자고, 나머지 열일곱 시간 중에 최소 아홉 시간은 회사에서 보낸다. 씻고 먹는 기본적인 행위에 드는 두세 시간, 준비와 이동에 드는 한 시간을 빼면 남는 건 네 시간 남짓이다. 주로 저녁을 먹고 잠들기 전까지의 시간.

-「시간과 물건」에서

타이밍을 놓친 분노만큼 해로운 게 없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학창 시절의 몇몇 기억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에서

노래는 시간을 저장한다. 어떤 시기를 다시 복기하고 싶다면, 그 시기에 자주 들었던 노래를 들으면 된다. 노래는 그 노래를 들었던 시간과 공간 같은 환경적 조건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어떤 시절에 열심히 들었던 노래는 영원히 그 시절을 그대로 담아둔다.

-「노래가 저장하는 것」에서

그 순간, 눈앞에서 불이 번쩍 들어왔다. 주홍색 전구였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웬 남자가 택시 바로 앞에서 불을 켠 참이었다. 남자의 발밑으로는 수많은 과일 박스가 쌓여 있었다. 내가 탄 택시가 청과시장 골목을 지나는 중이었다.

어렴풋이 보이는 먼 천막에서부터 바로 옆 가게까지 불이 차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택시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길이 밝아져, 내 주위로 작은 빛들이 모여드는 것만 같았다. 어둡던 거리에 불이 켜지자 난전에 나와 있는 과일 궤짝들과 상인들의 윤곽이 드러났다. 마침내 온통 낮처럼 환하게 시야가 밝아졌다. 그 순간 하늘에서 그 장면을 내려다봤다면, 청과시장은 작은 빛의 섬처럼 보였을 것이다.

-「야경과 안정감」에서

작은 과일가게에서 저마다 밝힌 불빛이, 환대의 빛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바보 같아도 괜찮아, 걱정하지 마. 어딘가에선 따뜻한 것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한겨울 밤중에 맞닥뜨린 불빛의 행렬은 내게 엄청난 위안이 됐다. 매일 바닥을 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밑바닥에도 아름답고 반가운 순간들이 있었다.

-「야경과 안정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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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 있으면 〈푸른 밤〉 풍경이 떠오를 때가 있다. 보통 잠드는 시간이 열두시 전후, 〈푸른 밤〉 방송이 시작되던 무렵이라 그런 걸까. 기억이 시간에 반응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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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자주 선곡했고 항상 따라 불렀던 노래는 스티비 원더의 〈리본 인 더 스카이〉. 짧지 않은 노래지만 순식간에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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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세상이 곤히 잠드는 시간, 적당히 피곤하면서도 평화로운 새벽 한시 사십분의 스튜디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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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열두시, 오늘도 어김없이 같은 시간이 찾아온다. 잠이 오지 않을 땐 가끔 상상해본다. 스튜디오 문이 열리고 모자를 푹 눌러쓴 디제이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들어와 의자에 털썩 앉는 모습을. 익숙한 음악에 맞춰 오프닝을 시작할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지켜왔던 것처럼.

나의 첫번째 디제이는 그렇게, 어디선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작고 아늑한 스튜디오 안에서만큼은 영원히.

-「푸른 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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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천천히, 시간이 가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그저 말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시간들이란. 비록 무의미하고 쓸모없을지라도 우리 머릿속을 맴도는 작은 물고기들에 대해 털어놓을 수 있는 시간들이란, 얼마나 소중했는지.

-「잃어버린 대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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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지 않고, 아니 어쩌면 지쳐서 나가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하는 것. 청춘의 감수성과 재능이 노동자적 근면성으로 대체되는 순간. 그 순간을 겪어낸 사람들을 존경하고 또 좋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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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는 지속될 때 빛을 발한다. 이 명제는 ‘보통의 존재’들뿐 아니라, 보통을 넘어선 특별한 존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이다. 오로지 지속될 때만이, 행위는 그 자신도 모르게 모습을 바꾸어가며 진화한다. 그러니 그 어떤 작은 가능성이라도 기대한다면,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다. 오늘도 내일도 계속해서 한다. 계속 한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매일매일 한 음 한 음을 쌓을 것이고, 글을 쓰고 싶다면 아무도 보지 않는 보잘것없는 일기나마 계속 써나갈 것이다.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나가는 것처럼.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에서

가끔은 이 되풀이의 습관 덕분에 아프지 않고 살아간다고 느낄 때도 있다. 속절없이 힘들거나 속상할 때조차, 끊임없이 해내야만 하는 일이 있다는 것. 매일 쳐내도 내일이 되면 새로 날아오는 내 몫의 하루가 있다는 사실.

-「나의 중력」에서

덜 기쁘게 살아도 좋으니 덜 슬플 수 있다면 좋겠다.

-「감정 계약서」에서

매일 울고 있으면 그게 이상한 줄도 모르게 된다.

-「눈물 냄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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