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지막으로 존을 만나러 프린스턴에 갔을 때, 나는 그와 오랫동안 산책을 했다. 그의 목소리가 작아서 놓친 말들이 많았는데, 연로한 그에게 자꾸 다시 말해달라고 부탁할 수가 없었다. 이제 그는 이 세상에 없다. 나는 더 이상 질문을 할 수도 없고 내 생각을 이야기할 수도 없다. 그의 생각이 옳은 것 같다고 말할 수도 없고, 그의 생각이 내 평생의 연구를 이끌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가 양자중력의 미스터리에 가장 먼저 근접한 사람이었다는 내 생각을 말할 수도 없다. 이제 그는 지금 이곳에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의 시간이다. 기억과 추억, 부재의 고통, 그것이다.

그렇다고 고통을 유발하는 것이 부재는 아니다. 고통은 애정과 사랑에서 시작된다. 애정이 없으면, 사랑이 없으면 부재의 고통도 없을 것이다. 결국 부재의 고통도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성장하는 것이므로 선하고 아름답다.

-「08 관계의 동역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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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저는 그것이 사람이었든 물고기였든 혹은 네시였어도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그가 저한테 한 번 더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저는 집에 가서 엄마를 돌보며 필사적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실뿐이에요. 다음에는 정말 이런 일이 있으려야 있을 수도 없겠지만, 또다시 물에 빠진다면 인어 왕자를 두 번 만나는 행운이란 없을 테니 열심히 두 팔을 휘저어 나갈 거예요. 헤엄쳐야지 별수 있나요. 어쩌면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없는 물이기도 하고.

-「프롤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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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률 20%라면 공급률 80%라는 뜻일까?;; 얼마 전에 읽은 한국 책방 에세이에서는 출판 쪽에 인맥이 없는 경우 공급률 90%인 곳도 있다고 하던데 (너무 충격) 독서 인구가 많은 일본도 저런 식이면 책 팔아 먹고살수 있을까? 먹먹하고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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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진심으로 회사를 그만두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회사를 그만두면 편해진다. 모두 끝난다. 이 동네에 오지 않아도 된다. 자영업자에게든 회사원에게든 프리랜서에게든 먹고사는 것의 지리멸렬함과 딜레마는 아주 공평하게 찾아오는구나. 이시이 씨의 다정한 말에 책을 읽다 눈물이 핑 돌았다. 씁쓸하면서도 위로 받은 기분.



책방에서 매출과 경영을 양립시키는 적정 재고란 어느 정도일까? 신간은 이익률 20퍼센트라는 경이로운 박리다매여서 책장의 회전율을 데이터화하거나 적극적인 이벤트를 개최하는 작업 등을 해서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그 책방에 어울리는 책의 양」에서

스마트폰은 나도 가지고 있다. 무척 편리하고 없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찻집에서도 전철 안에서도 잠깐 틈이 있으면 대개 책을 펼친다. 내가 괴짜라 시류에 반발하거나 소수파의 우월감을 느끼려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에게는 아는 이가 없는 카페에서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350엔 정도의 커피를 천천히 마시면서 책을 읽는 시간이 하루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시간이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책은 어디로 갔나」에서

최근 몇 년 사이 책을 읽는 사람이나 책을 사는 사람이 줄었는데, 책을 만들고 팔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나는 현상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민 아티스트 시대니 국민 평론가 시대니 하는 말들이 분분했는데 지금은 국민 미디어시대인 것 같다. 당연한 일이지만, 누구든 쉽게 미디어 놀이를 하기 쉬운 사회 관계망 서비스 등이 많이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편리한 가게에 없는 것」에서

가케쇼보 후기 5년간 나는 잠을 자도 깨어나도 매일 즐겁지 않았다. 원인이 무엇일까. 첫째는 돈, 나머지는 개인적인 것.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얽매여 있었다. 이제는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진심으로 가게를 그만두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게를 그만두면 편해진다. 모두 끝난다. 사쿄구에 오지 않아도 된다. 잡지에 실렸을 때의 처신 등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런 생각을 하니 우선 해방감에 빠졌다. 어딘가 전혀 알지 못하는 지역으로 이사해서 전혀 다른 직업을 고르고 정사원으로 월급을 받으며 정시퇴근 후 시간이나 주말 여가를 자신의 취미 시간으로 마음껏 쓰자고 진지하게 그려 보았다.

-「가케쇼보의 미래」에서

매달 주어진 일에 종사하면 정해진 금액을 받을 수 있다니 회사원이 부러웠다. 인간관계만 참으면 된다고 마음을 굳혔다. 그래도 그건 상상 속의 회사원이다. 실제로는 지금 생활보다 힘든 문제가 또 생겨나겠지. 일이란 기본적으로 인간관계다. 이전에 나도 회사원을 해 봤는데 좋은 인간관계의 직장운은 없었다. 그런 것을 정말 다시 견뎌 낼 수 있을까?

-「가케쇼보의 미래」에서

나는 이시이 씨에게 가게를 접으려 한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리고 자학적으로 어느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생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시이 씨는 그러냐며 술을 들이켠 후,
"그러면 나도 소설로 먹고살 수 없어지면 같은 편의점에서 함께 일하지, 뭐. 나랑 야마시타가 일하는 편의점이면 정말 재미있는 편의점이 될 거야" 하고 말했다.
항상 처음으로 돌아갈 각오가 이 사람에게도 있다는 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그의 다정한 말에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다.

-「가케쇼보의 미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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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 배우는 만화 돌베개 그래픽노블 & 논픽션 시리즈 만화경
핑크복어 지음 / 돌베개 / 2020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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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배우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이 책 보면서 더는 미루지 말자고 마음먹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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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수많은 이야기로 이루어진 존재다. 기억이란 우리가 살아온 모든 순간들을 공평하게 축적해놓은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애써 선별한 순간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서사이다. 설령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건들을 경험하더라도 우리가 똑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특정 순간들을 선별하는 기준은 각자 다르며, 그것은 우리의 인격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우리들 각자는 우리의 주의를 사로잡는 세부 사항들을 인식하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들을 기억하며, 그 결과 구축된 이야기들은 우리의 인격을 형성한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에서

고고학은 물리학처럼 정밀한 과학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 기반을 물리학에 두고 있다. 우리가 과거를 연구할 수 있는 것은 물리법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주의 상태를 충분히 자세하게 검토한다면, 한순간 이전의 상태를 추정할 수 있다. 각 순간은 가차 없이 그 직전의 순간을 대체하고, 가차 없이 다음 순간으로 이어지면서 인과의 사슬을 형성한다.
우주 창조와 마찬가지로 인과의 사슬로 고정되지 않은 또 다른 범주의 사건들, 자유의지에 의한 행동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유의지는 일종의 기적이다. 진정한 선택을 하는 경우 우리는 물리법칙의 작용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결과를 일으킨다. 자유의지에 의한 모든 행동은, 우주 창조와 마찬가지로, 제1원인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옴팔로스」에서

"하지만 분명, 선택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내리는 모든 결정은 당신 성격의 일부가 되고, 당신이라는 사람을 형성하니까요. 게다가 당신은 이 세계에 있는 당신의 행동만 변화시키고 있는 게 아닙니다. 미래에 분기할 당신의 모든 버전들에게도 그런 변화를 심어주고 있는 거예요. 더 나은 사람이 됨으로써, 당신은 미래에 분기될 더 많은 평행세계에도 더 나은 버전의 당신들이 살고 있을 가능성을 보장하고 있는 겁니다."

더 나은 버전의 냇. "고맙습니다." 냇이 말했다. "바로 그걸 찾고 있었어요.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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