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만 읽고 다음 권 살지 결정하려고 1권 사 놓고 몇 달 묵히다 2월부터 천천히 한 챕터씩 읽었다. 산개하는 바늘 요새 에피소드부터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뭔가가 있더니 후반부는 이틀 만에 다 읽었고 이미 2권 결제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진입 장벽이 높기는 하다. 세계관부터 워낙 생소한 개념이 많아 솔직히 흐린 눈으로 대충 넘겼다;; 원래 나는 책 읽다가 모르는 게 나오면 다 사전 찾고 납득이 가야 하는데 사전을 찾아도 이해가 안 가니 속도가 영 붙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나 편한 대로 역법을 판타지에서 마법진 정도로 생각하기로;;;; 안내서는 아직도 나 혼자 힘으로 읽자며 오기로 읽지 않았습니다...
캐릭터들의 건조한 티키타카가 재밌다. 체리스는 제다오를 상관이라고 모셔야지 생각만 하고 말만 하면 저러는데 현실 남매 같은 건조함 때문에 더 웃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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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라고 내가 말했지 않나.” 제다오가 분통을 터트리며 말했다.
체리스도 결국 저항을 포기한 채 자리에 누웠고,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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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죠? 설마 계획이 부족하신 건가요? 항상 만반의 준비가 돼 있으신 줄 알았는데요.”
“좀 어울려주게.”
불안하긴 하지만, 그 정도라면… “뭐부터 할까요?”

생동하는 문화들끼리 서로 맞부딪치며 만들어내는 잡음 앞에서, 깔끔하게 정리되어 나열된 기록들이 얼마나 부질없어지는지 체리스는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 켈 사령부에서 정리한 까마귀 향연의 도시 기록 정보를 열람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자신의 고향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정보로 기록된 모습을 목격했다. 각각의 정보는 물론 전부 사실이었지만, 그 기록 목록은 까마귀 떼가 소용돌이치며 하늘로 날아오를 때 어떤 소리를 들을 수 있는지, 피어오른 흙먼지가 그려내는 신비로운 궤적이 어떤 인상을 주는지 전혀 담아내지 못했다.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당신의 진정한 적은 누굴까?

"시간의 흐름엔 누구나 휩쓸릴 수밖에 없지."

칠두정 시민 한 사람과 이단 시민 한 사람은 서로 다른 가치를 지녔는가? 그렇다. 서로 같은 한 명이라 할지라도, 동등한 가치로 봐선 안 된다. 그러나 체리스는 의심을 멈출 수가 없었다. 정말 문제가 없는 걸까?

증명이란 에세이와 같아서, 초고부터 걸작을 내놓길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던 한 선배가 떠올랐다. 그러나 일말의 우아함 정도는 처음부터 담고 있어야 한다는 욕심은 쉽사리 억눌러지지 않았다.

우주는 죽음을 연료 삼아 돌아간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경이로운 기계 장치도 엔트로피로의 전환을 멈출 수는 없다.

등롱꾼 이단 한 명의 생명은 칠두정부 한 명의 생명과 동등한 값어치를 지닌다. 적군의 목숨은 결코 우리 병사의 목숨보다 못하지 않다. 이 간단한 수식을 그녀는 지금에야 비로소 이해했다.

역법 전쟁은 마음을 다루는 싸움이다.
적절한 숫자를 적절한 마음에 대입한다면, 숫자는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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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대체 뭐지. 끊을 수가 없다. 나갈 수가 없음. 어제 저녁 먹고 잠깐만 읽어야지 한 게 새벽 1시고 벌써 반이나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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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참. 페니!”
달러구트가 밖으로 나가려는 페니를 불러 세웠다.
“네?”
“환영 인사를 빼먹었구나. 우리 가게에서 일하게 된 걸 진심으로 축하하고 환영한다. 이곳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구나.”

첫 출근부터 완판 기념 조기 퇴근이라니... 게다가 부서도 희망 지원한 대로 됨. 페이까지 좋고 꿈의 직장이다. 인사치레라도 첫날 입사 환영한다는 말 해주는 사람이 있는 직장에 다니면 매일 출근길이 마음 가벼울 듯. 저런 직장 자체가 드물어서 꼭 내가 저 말 들은 거처럼 읽다가 괜히 울컥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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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우리 남편은 활활 타는 난로 앞에서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먹는 걸 좋아해.”
by 웨더 아주머니

웨더님 나랑 잘 통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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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떠올리기 싫은 시절이 있잖아요. 그걸 떠올리지 않고 사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요?”
by 막심

“이미 지나온 이상,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랍니다.”
by 달러구트

트라우마에 관한 상반된 둘의 견해가 재미있었다.
막심은 정작 자기가 악몽 제작자지만 사람들에게 괜히 안 좋은 기억을 떠안기는 게 아닌지 고민이 많다. 달러구트는 막심이 만드는 꿈이 세상에 꼭 필요하다고 격려한다.
일단 나는 꾸고 싶지 않아...😂 그게 내게 아무것도 아니려면 내 안에서 그 일이 지나간 일이어야 하는데 아직도 날 할퀴는 기억이라;;
여러분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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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익명의 손님께서 당신에게 보낸 꿈」 읽다가 정신 차리고 보니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어서 당황... 사람들 울었다는 구간이 여기구나. 나도 울 ○○○ 보고 싶어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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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구트 님.”
“왜 그러니?”
“전 이 일이 참 좋아요.”
“나도 참 좋단다.” 

✨일도 좋고 사장님도 좋고 인간 관계 스트레스 없는 꿈의 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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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아이에게 선물 안 주시는 그분이 5장에 나와요. 이 소설이 안 맞는 분도 5장은 꼭 읽어 보세요.




"아, 참. 페니!"
달러구트가 밖으로 나가려는 페니를 불러 세웠다.
"네?"
"환영 인사를 빼먹었구나. 우리 가게에서 일하게 된 걸 진심으로 축하하고 환영한다. 이곳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구나."

"나랑 우리 남편은 활활 타는 난로 앞에서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먹는 걸 좋아해."
by 웨더 아주머니

사람은 누구나 떠올리기 싫은 시절이 있잖아요. 그걸 떠올리지 않고 사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요?
by 막심

이미 지나온 이상,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랍니다.
by 달러구트

과거의 어렵고 힘든 일 뒤에는, 그걸 이겨냈던 자신의 모습도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
by 달러구트

"달러구트 님."
"왜 그러니?"
"전 이 일이 참 좋아요."
"나도 참 좋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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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사 크리스티 덕끼리 난롯가에 모여 앉아 실컷 수다 떨은 기분. 왠지 이런 덕톡회가 떠올랐다. 애거사 크리스티 덕톡은 역시 눈 내리는 겨울 산장에서 하고 한 명 두 명 잠이 들어 마지막은 그리고 아무도 깨어 있는 사람이 없었다로 끝나는 것이다.
「겨울은 곧 끝납니다」 단편이 너무 재밌다. 렁수이퉁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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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를 한참 진행하고 범인에 대한 확신이 섰을 때,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전부 같은 공간으로 불러놓고 탐정이 차근차근 진상을 밝히며 모두가 보는 앞에서 범인을 지목하는 설정은 ‘푸아로 피날레’라고 불린다.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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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가 자신의 작품들 중 가장 싫어하는 책은 「블루 트레인의 수수께끼」다.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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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사 크리스티는 15년 동안 메리 웨스트매콧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채 발표한 소설들 모두 호평받았다는 것에 크게 만족스러워했다.

31쪽
- P22

자신만의 해석을 구축하는 이론적 작업은 엄청난 창조력을 요구한다. 모든 창조는 망상적이다. (중략) 몽상과 망상이 사람 수만큼 존재한다면 해석 역시 그만큼 다양할 수밖에 없다. - P70

그 나무는 길가에 우뚝 서 있었어. 작은 묘목에서 커다란 나무로 커 가면서 몇십 년의 비바람을 거치고 혹서와 혹한의 갈마듦을 지나며, 아이가 어른이 되고 젊은이가 노인이 되고 노인의 세대가 새로운 세대로 바뀌는 삶의 다양한 모습과 강산의 변천을 모두 지켜봤겠지. 그런데 이제는 그저 귀한 나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람들 손에 생명의 걸음을 멈추게 된 거야. 나는 머릿속으로 저 나무가 내게 남겨준 기억을 열심히 회상해보려고 했지만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었어. 그렇게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

-『미스테리아』 32호 단편 「겨울은 곧 끝납니다」에서 - P189

‘좋아한다’라는 감정은 요란하고 화려하고 커다란 순간 때문이 아니라 보통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을 작은 부분에서 시작된단다. 그의 생각은 내게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상냥함을 느끼게 했고, 그 시절이든 지금이든 그런 상냥함은 보기 드문 것이지. 의지하고 싶고 보호하고 싶고 마음을 기울이고 싶게 하는 것이야. 아쉽게도 어느 시대든 그런 상냥함은 지나치게 연약하단다. 시대의 운명에 농락당하면서 필사적으로 살아갈 뿐인 우리에게 그런 상냥함을 지킬 여유가 어디 있겠니.

-『미스테리아』 32호 단편 「겨울은 곧 끝납니다」에서 - P190

"좋은 사람이 오래 살면,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더 많아질 거고, 그러면 좋은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기지 않는 법은 없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미스테리아』 32호 단편 「겨울은 곧 끝납니다」에서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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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하게 기억나요. 어릴 때 잠깐 다닌 피아노 학원에서 이 책을 처음 만났죠. 정식으로 출간된 게 아니라서 그때는 제목이 흑나비(...)였어요. 나중에는 이 책을 읽으려고 학원에 다녔던 것 같아요. 레슨이 끝나도 집에 가지 않고 몇 시간씩 읽다가 저녁때가 다 되어 마지못해 학원을 나섰어요. 앞권이 없어서 두 왕녀가 나오는 데부터 읽었으니 그걸 어떻게 중간에 끊겠습니까...? 읽은 사람들은 절절하게 알 것... 전자책 나오고 요 사흘 광기에 휩싸여 49권 전체를 정독했어요. 그리고는 너무나 놀랐던 것입니다. 사쿠라코지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있었음을. 으응...? 이런 애가 나왔었나...? 잠깐 스쳐가는 인연인가 보다 방심했더니만 뒤에 다시 나와서 또 놀라고... 시오리조차 기억하는데 어떻게 사쿠라코지는 완전히 잊어 버린 걸까. 그때 나는 알았어요. 내가 이 책 내용을 아유미 중심으로 기억하고 있음을. 아유미는 지금 봐도 너무 멋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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