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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임응식 - 카메라로 진실을 말하다 ㅣ 예술가 이야기 3
권태균 지음 / 나무숲 / 2006년 9월
평점 :
어떤 중학생 중에 장래희망이 사진가라며 DSLR 카메라를 사기 위해 용돈을 모으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구체적인 장래희망을 정하지 않았거나 대충 장난처럼 이야기하던 것에 비해 정말 진지하고 똑 부러지게 이야기해서 특히 기억에 남는다. 비록 다른 아이들이 (이유는 모르겠지만) 딱히 좋아하지 않는 아이라는 느낌을 받았지만 내 기억 속에는 속이 깊은 아이로 남아있다. 이 책을 보고 그 학생이 생각났다. 만약 내가 좀 아는 사이였다면 이 책을 선물로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냥 스치듯이 만난 학생이었기에 그냥 마음으로만 생각하고 있다.
한때는 작은 디카가 유행이다시피 하더니 요즘에는 약간은 전문가적인 냄새가 풍기는 DSLR 카메라가 (속된 말로)대세다. 그러고 보면 이제 사진은 누구나가 즐기는 레저가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프로는 아니어도 아마추어로 활동하는 사람도 많으니까. 문득 작년 겨울에 눈 오는 날 융건릉엘 간 기억이 난다. 융건릉의 백설이 하도 유명하다기에 나가는 길에 잠깐 들러볼 요량으로 디카를 들고 갔다. 그런데 주차 관리하시는 분이 사진 찍으러 왔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카메라가 안 보여서'라고 말씀하신다. 내 카메라는 가방 안에 있건만.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를 안에 들어가서야 알았다. 많은 사람들, 아니 모든 사람들이 커다란 렌즈를 낀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슨 동호회에서 온 듯했다. 거기서 얼른 사진만 몇 장 찍고 도망치듯 나왔다. 그만큼 이제는 사진 찍는다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자 때로는 예술로 여겨질 정도로 정성을 쏟는다는 방증일 것이다. 대신 예술로 여기면서도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예술이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예술이라 생각한다고나 할까.
그런데 임응식이 사진을 예술이라고 생각할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콧방귀를 뀌었단다. 그저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찍는 것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일 게다. 그러나 임응식은 그러거나 말거나 렌즈에 수많은 사실들을 담아냄으로써 단순히 찍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려주었단다. 임응식은 부산에서 일제강점기부터 활동을 했는데 그 당시는 사진을 찍을 때조차도 허가를 받아야 했다고 한다. 특히 높은 건물에 올라가서 찍는 사진은 더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은 다른 책(경성, 사진에 박히다)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어쨌든 창작의 자유를 침해받는 것을 참지 못하는 임응식은 마음대로 촬영을 하다가 유치장에 갇히기도 했단다. 결국 그것을 피해 강릉으로 이사를 갔으나 그곳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중국으로 떠나기도 한다.
그렇게 오로지 사진만을 한평생의 업으로 삼고 죽기 직전까지 셔터를 눌렀다는 임응식. 그의 사진을 보고 있자니 시대를 기록하고 진실을 담은 예술이어야 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특히 전쟁의 폐허를 찍은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술가들의 사진을 보니 마치 알고 있었던 사람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사진이 얼마나 예술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그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그냥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느껴진다. 여하튼 사진가들에게 임응식은 아마도 추앙받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그의 삶에 대해 이렇게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