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가문의 수치 중학년을 위한 한뼘도서관 9
아르노 카트린 지음, 한지선 그림, 김주경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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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무척 재미있다. 가문의 영광이 아니라 수치라니. 게다가 표지그림은 또 얼마나 웃기던지. 처음에 그림만 보고는 주인공이 여자라고 생각했다. 레이스가 달리고 퍼프가 달린 옷은 여자가 입는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다. 외국 동화에서 왕자들이 이런 옷을 입는다는 걸 깜빡했다. 어쨌든 주인공 마르탱은 이제 막 열한 살 생일이 지났으니 우리 나이로 하면 열두 살, 딸과 똑같은 나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아이들의 행동을 딸 친구들과 견주어 가며 읽었다. 

도대체 뭣 때문에 스스로를 가문의 수치라고 생각하는 걸까. 알고 봤더니 열한 살 씩이나 되었는데도 사랑하는 사람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보통 아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룰 때는 뭔가 은근하게 감추기도 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가기도 하는데 이건 뭐랄까, 굉장히 통통 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경쾌하면서도 진지할 만한 것은 다 들어 있다. 게다가 마르탱은 이 시기 아이들이 그렇듯 어떤 사실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해 버린다. 예를 들면 삼촌이 다른 나라로 떠난 것은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텐데도 마르탱이 보기에는 결혼을 못해서 아마존 같은 곳으로 쫓겨 난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주위 식구들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지도 않고 혼자 자의적으로 판단해서 별별 걱정을 다 한다.

그래도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하고 친구의 마음을 배려하는 모습이 예쁘다. 우연히 가장 친한 친구가 같은 여자 친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우정을 지키기 위해 사랑을 포기하니 말이다. 초등 저학년들이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사랑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뭣한 반면 마르탱의 사랑은 풋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사랑이다. 그렇다고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의 어른들을 흉내낸 사랑도 아닌 그야말로 풋풋하고 싱그러운, 이성에 대한 사랑이라기 보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은 그런 사랑이다. 그래서 마르탱이 처음 찾아 온 사랑을 포기하는 결말임에도 책을 덮고 나서 훈훈함이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확실히 사춘기 아이들이 이성으로서 사랑하고 고민하는 여타의 이야기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래서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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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아이들 책읽는 가족 59
이금이 지음, 김재홍 그림 / 푸른책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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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에 나온 책을 다시 펴낸 책이다. 그런데 어째 책 속의 상황은 지금이나 10년 전이나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더 안 좋아졌는지도 모른다. 모두 떠나서 이제 젊은 사람들은 하나도 없고 아이 구경도 하기 힘든 시골. 내 고향도 시골인데 이제 막 환갑 넘으신 분들이 가장 어린 축에 들기 때문에 동네 궂은 일을 도맡아 할 정도다.

작가가 시골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썼다거나 어떤 사명감에 사로잡혀 농촌의 현실을 알려주기 위해 썼다면 이처럼 담담하게 그려내진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계절별로 나뉘어진 단편들을 읽어가면서 어린시절이 오버랩되기도 했고 현재의 시골 모습이 겹쳐지기도 했다. 물론 이 책에서처럼 그렇게 외진 동네는 아니라지만 놓여있는 상황은 비슷하다. 다행인 것은 내 고향동네는 농사를 짓겠다고 남아 있는 총각은 없어서 결혼하기 힘든 사람은 없는 점이라고나 할까. 이 얼마나 역설적이란 말인가. 모두 떠나는 농촌을 안타까워 하면서도 남아서 힘들게 생활하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라니...

만약 사람들이 놓여 있는 현실은 보지 않고 풍경만 본다면 굉장히 아름답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계절별로 변하는 산과 들, 그 속에서 남들과 어울려 자기가 취할 수 있는 만큼만 얻으며 생활하는 모습. 그러나 그 이면에는 농사 지어서는 생활의 여유를 누릴 수도 없고 그러기에 마음의 여유까지 잃어버리는 각박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학생이 있는 집이라면 더 좋은 교육환경을 찾아 대부분 떠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떠나간 사람을 동경한다. 간혹 상진이처럼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그건 아주 보기 드문 일일 뿐이다.

사람은 모두 자기 위주로 생각을 한다. 물론 나도 그렇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정말 백화점 구경을 했다는 것(<꿈을 빼앗는 백화점>에서)만으로도 다른 아이들의 부러움을 살까. 요즘에도 그런 아이들이 있을까, 얼핏 이해가 안 간다. 뭐, 10년 전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쉽게 공감이 안 간다. 아직도 난 현실을 제대로 모르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 이야기에서 은주가 백화점엘 갔다가 오면서 느끼는 감정이 초등학생의 감정치고는 너무 어른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또한 친구에게 빌린 돈으로 산 머리핀을 눈 속으로 집어던지는 것은 지나친 행동이 아니었나 싶다. 거기서 머리핀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물욕이나 허영심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버림으로써 자신의 행동이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차라리 부모님께 솔직하게 이야기하거나 머리핀을 보면서 마음 불편해 하는 것이 더 어린애답지 않았을까. 그냥 읽고 느끼면 될 것을 가지고 분석하려드는 이 성향이 또 도졌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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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순아 노올자 신나는 책읽기 14
이상권 지음, 정지윤 그림 / 창비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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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목을 보고 옛 아이들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금순이라는, 요즘 같으면 절대 지어주지 않을 것 같은 이름과 '놀자'를 길게 발음하면서 담 너머 친구를 부르는 모습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용은 전혀 의외의 상황을 다룬다.

치매는 모든 사람을 불안에 떨게 하는 병이다. 호전되는 경우가 거의 없이 점점 심해지기만 하고 가족 모두를 힘들게 하는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그런 병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비롯해서 본인이 그런 병에 걸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이것이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라고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건 말 뿐이고 아직까지도 모든 것을 가족이 짊어져야 하는 문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힘든 일을 감내해야 하는 연우 가족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책은, 그러나 시종일관 웃음을 머금게 한다. 분명 할머니 때문에 온 가족이 힘들고 까딱 하다가는 가족 간 문제로까지도 번질 수 있는 일이 벌어지건만 독자는 그 마저도 경쾌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왜 그럴까. 분명 다른 책에서도 치매를 다루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거기서는 무겁고 답답한 느낌이 떠나질 않았던 것에 비하면 뭔가 이상하다. 그래서 곰곰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연우가 바라보는 할머니 모습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만약 엄마나 아빠의 모습을 많이 비췄더라면-아무리 마음 좋은 사람이라도 치매 환자를 돌보는 것은 힘든 일이기에-좋은 모습 보다는 안 좋은 모습이 많이 잡혔을 것이다. 그러면 독자도 결코 마음 편하게 읽지는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독자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등장인물에 대입하며 읽으니까.

치매로 인해 어린 아이가 되어 온 가족에게 놀아달라고 시도 때도 없이 졸라대는 할머니를 위해 연우 가족은 서로 돌아가며 할머니와 놀아준다. 그러나 다른 가족은 모두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시간만 때우려 들지만 연우는 진심으로 할머니와 놀아준다. 자신이 어렸을 때 놀아달라고 하면 아무도 놀아주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기꺼이 놀아주었기 때문이란다. 초등 저학년이 그런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잠시 의문이 들긴 하지만 또 아예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어쨌든 연우는 그런 할머니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조금씩 들려준다. 사실 처음엔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지어서 해 줄 수가 있을까, 작가가 너무 앞서간 것은 아닐까 의심했지만 알고 보니 할머니가 연우에게 해 줬던 이야기를 이제는 연우가 할머니에게 다시 들려주는 것이었다. 할머니에게 금순이라며 친구처럼 대하는 모습이 천진스러우면서도 어쩐지 짠하다.

대부분의 치매를 다루는 책들이 마지막에는 결국 노인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잘 해 나갈 거라는 암시를 주며 끝낸다. 그러면 오죽 좋겠냐만...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책도 해피엔딩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할머니가 이제 가족들을 그만 힘들게 할 것이라는 말이 뭔가를 암시할 뿐이다. 그 와중에도 할머니의 마지막 말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지금까지 혹 할머니가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안타까움을 한번에 날려버리는 대화였다. 어쩌면 그래서 이 책이 더욱 경쾌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힘들고 어려운 주제를 다루고 있어도 작가는 재치를 결코 잊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뭔가 가슴에 싸한 아픔을 남기는데도 소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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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둘 하나
최나미 지음, 정문주 그림 / 사계절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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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도록이면 아이들에게 간섭하지 않으려 애쓴다. 공부도 스스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니 시험기간이라도 별로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딱 한 가지에서 부딪친다. 바로 친구문제. 특히 고학년이 되면서 서서히 부모보다는 친구에게 더 마음을 열고 오로지 친구와의 시간을 갖기 위해 기를 쓰는 모습을 보며 한편으론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론 서운하고 화가 난다. 그래서 괜한 감정싸움을 하곤 한다.

이 책을 딸이 먼저 보았다. 나는 읽지 않은 상태에서 어땠냐고 물으니 '딱 내 얘기네.'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읽어 보니 정말 딸 얘기다. 한창 모든 촛점이 친구에게만 향해 있는 나이의 여자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니 딸의 말이 정확한 셈이다.

세 편이 들어있는데 두 편은 정확히 주제가 모아진다. 모두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는데 한 친구만 그러질 않아서 오히려 자신이 그 친구에게 악착같이 다가갔으나 결국 자기 기준에 따라 친구를 내치는 이야기 <수호천사>. 어찌보면 친구란 생각을 서로 주고 받아야 하는 것이건만 자혜와 선우 사이에는 그 기본적인 원칙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위태위태 한 것이 바로 일방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혜도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만 했고 자신만 이해받으려고 했으니까. 상대를 조금만 생각했더라면 선우의 상황과 마음을 읽으려 노력했을 것이다. 하긴 요즘 아이들 대부분이 남 보다는 나를 우선으로 생각하니 어찌보면 자혜의 모습이 바로 현재의 대다수 아이들 모습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지막에 선우를 이해했다는 점이라고나 할까. 약간 억지스러운 상황이긴 하지만.

마지막 이야기 <셋 둘 하나>는 정말 요즘 아이들의 상황과 마음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자기 기준에 의해 친구를 사귀고 모두 자기와 같은 마음을 갖기를 원하지만 정작 그들은 서로 자신만을 이해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특히 외톨이 친구를 자신들의 무리로 받아들였을 때는 더욱 더. 셋이 하나라고 생각했고 나중에는 넷이 하나라고 생각했으나 알고 보니 셋과 하나였고 더 알고 보니 하나 하나 하나였다는 이야기는 그 시절을 객관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작가이기에 가능한 결론이었을 것이다. 아마 이 이야기를 읽으며 모든 이야기에 공감을 하는 이유는 나도 그런 시절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 그리고 두려운 두 번째 이야기. 만약 나에게 이 또래의 아이가 없다면 객관적이며 모범적인 대답을 해 줬을 것이다. 아이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으니 그냥 지켜봐 줘라라고. 그러나 이미 같은 또래 딸이 있는 엄마로서 그처럼 냉혹한 이야기는 차마 못하겠다. 그래도 어떻게든 '사회'에 합류하면 안될까. 어차피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아주 뛰어나지 않을 바에는 평범한 것이 최선인데. 이렇듯 효주 아빠가 하는 말이 바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음을 알고 깜짝 놀란다. 이게 바로 '사회화'된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란 것일까. 그나저나 내 딸도 만만찮은 성격인데 이걸 읽고 따라하는 것은 아니겠지. 이제는 별별 걱정을 다한다.

그나저나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으로 어떤 판단을 한다는 것이 부질없는 것임을 알지만 초등고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책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책이 다르다는 것을 확연히 느낀다. 비록 나이는 한 두 살 차이라지만 풀어가는 방식도 다르고 취급하는 문제도 다르다. 이래서 다 '때'가 있는 것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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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 익사이팅북스 (Exciting Books) 38
사이토 에미 지음, 신은주 옮김, 오오시마 타에코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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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얼마나 기쁘고 반가운지 모른다. 또한 남편과 이야기할 때도 서로 의견이 같으면 싸울 일도 없고 화목한 가정을 이룰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만약 모든 것에서 의견이 같고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 분명 장점 보다는 단점이 더 많지 않을까. 서로 반대되는 사람도 있어야 발전이 있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일종의 정반합의 원리라고나 할까. 이런 것들을 어른이 되고나서 생각했는데 아이들의 세계를 비추는 이런 책이 있다니. 확실히 요즘 아이들은 많은 간접경험으로 인해 시행착오를 줄일 기회가 충분히 있는 셈이다. 

어른인 나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나와 관심사가 같은 사람만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메이도 그렇다. 자신과 관심사가 같은 것은 하나도 없고 성격도 판이하게 달라서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다가 우연히 전한 온 친구 마유가 자신과 똑같은 걸 좋아하고 성격도 비슷해서 단번에 단짝이 된다. 그러나 같은 것이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면 상대방이 내 마음을 먼저 어루만져 주길 바라는데 상대도 똑같은 마음을 갖고 있다면... 그러면 둘은 평행선을 달리게 되다가 결국은 서서히 멀어지게 될 것이다. 

마유와 메이도 그런 과정을 겪으며 서로 자기만의 길을 찾는다. 다행이다. 그러면서 전에는 생각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 나츠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화가 났지만 알고 보니 그런 성격도 좋은 면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서로 상대방의 결점을 메워주는 역할을 한다고나 할까. 그제서야 메이는 마유가 자신과 똑같지 않음을 깨닫는 것이다. 분명 처음에는 자신과 똑같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비록 아이들의 마음을 빌어서 이야기하고 있다지만 이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어디에도 나와 똑같은 사람은 없다. 그건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나 우린 종종 그걸 잊는다. 그러면서 혼자 괴로워한다. 나와 의견이 비슷한 사람만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럼 이 책을 읽어보시라. 비록 어린이책이지만 얻는 것은 만만치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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