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꿈이 너무 많아 다림창작동화 5
김리리 지음, 한지예 그림 / 다림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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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고 나서 어디선가 본 듯한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어 찾아보니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한 팀이 되어 펴낸 많은 책 중 한 권이 책꽂이에 있었다. 그 책을 보더니 이제 6학년인 큰 아이가 자기가 엄청 많이 읽었던 책이란다. 그랬나? 난 몰랐는데. 이슬비 이야기 두 번째인 그 책(<멋진 누나가 될 거야>)이 누나인 자신과 똑같아서 그랬나보다. 그러더니 이 책도 냉큼 집어든다. 그날 저녁 난 모처럼 둘째에게 책을 읽어주는 인심을 썼다.

아이들이 지금도 가끔 내게 물어본다. 엄만 어렸을 때 꿈이 뭐였냐고. 그리고 지금도 꿈이 있냐고. 물론 어렸을 때 특별한 나만의 꿈을 챙기지는 않았다. 그냥 주위에서 하는 이야기나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남에게 이야기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글쎄. 있지만 멀고 힘든 길 같아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다음엔 내가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둘째는 가끔 바뀌긴 하지만 과학자라 하고 큰 아이는 수없이 바뀌어서 작가라고 하는데 아직도 바뀔 가능성이 농후하다.

2학년짜리에게 꿈이라는 게 무슨 의미일까. 그들의 미래를 준비하는 꿈이라기 보다는 아직은 많은 꿈을 꾸며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아가는 시기라고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그러기에 슬비도 보는 것마다 혹 하는 것일 게다. 우리 아이도 한때는 미용사가 꿈이었던 적도 있다. 한때는 콘도에서 청소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한 적도 있다. 그때 남편이 얼마나 애를 뭐라고 했던지... 아마 슬비 엄마도 그때의 남편과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러기에 속물처럼 보이지만 충분히 이해가 된다.

슬비 엄마의 모습을 보면 요즘 엄마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물론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솔직히 드러내 놓았느냐 아니면 속으론 그래도 겉으로는 꾹 참고 있느냐의 차이일 뿐 마음 속으로는 모두 똑같을 것이다.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하면서 이것저것 따지고 남의 눈을 의식하는 게 바로 어른들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순수했던 아이들도 차차 커가면서 그런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도 슬비는 엄마가 써 준 글짓기가 마음에 걸려 결국은 몰래 자신이 직접 써서 내는 올바른 마음을 갖고 있으니 다행이다.

흔히 저학년 동화가 고학년 동화보다 쓰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저학년 대상 동화는 자칫하면 유치하고 억지스러운 면이 겉으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현실을 은근히 꼬집으면서도 억지스럽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를 경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저학년 동화에서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며 빗나간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면 자칫 가치관에 혼란이 생길 수 있기에 올바른(흔히 말하는 도덕적인) 결론이어야 한단다. 그러나 그럴 경우 까딱하면 의도가 뻔히 드러나 도덕 교과서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중간 지점을 잘 택했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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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스와 떠난 여행 즐거운 동화 여행 11
L. S. 매튜스 지음, 고진옥 옮김, 이주연 그림 / 가문비(어린이가문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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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강아지를 키운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우리 강아지를 보고 아는 집 아이가 너무 졸라서 그 집도 결국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다. 그런데 그 집 큰 아이가 중학생이 되자 강아지에 신경쓸 여유가 없을 것 같아 다른 사람에게 주기로 했단다. 당연히 아이들은 반대했지만 상황을 잘 설명해서 간신히 동의를 얻어놓았는데 그만 강아지가 먹으면 안 되는 닭뼈를 먹는 바람에 수술을 했다고 한다. 그 엄마는 별로 키우고 싶어하지 않던 강아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술실에서 나오는 강아지를 보며 엄청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설마... 그렇지만 요즘 우리 강아지 하는 행동을 보면 조금 이해되기도 한다. 식구들이 외출을 하려고 준비만 해도 두고 갈까봐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며 자식 버리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자기가 키우던 애완동물을 버리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다.

존도 그런 경우다. 형이 아파서 강아지를 키울 수 없다는 것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보호소에 맡기고 싶지 않은 심정, 이해가 간다. 보호소에 맡긴다는 것은 강아지 입장에서 보면 버림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처음에 쥐라고 생각될 정도로 작은 강아지라서 짓게 된 이름 마우스. 강아지에게 마우스라니 이름이 참 재미있다. 하긴 고양이에게 '개'라는 이름을 지어주는 사람도 있긴 하더구만. 어쨌든 마우스는 그냥 어쩌다 키우게 된 강아지라기 보다 돌아가신 아빠를 대신해서 식구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귀한 존재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식구들이 조금씩 현실을 받아들이고 삶의 희망을 찾아갔으며 상실의 아픔을 잊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다시 그런 마우스를 보내야 하다니... 그건 아픈 형에게도 신체적으로 도움은 될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엄마 몰래 먼 길을 갈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 책은 존의 여행기라고 해도 될 정도로 존이 마우스를 데리고 먼 곳에 있는 삼촌집에 가는 과정이 주를 이룬다. 엄마 몰래 떠나느라 돈이 얼마 없어서 중간까지만 기차를 타고 가고 그 후에는 걸어가며 겪는 여러 가지 일들. 어딘지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모험에 대한 갈증을 풀어줄 수는 있을 것이다. 가는 곳마다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금방 친해지고 그 집에서 잠까지 자게 되는 것이 지금 우리 현실과 비추어 볼 때 터무니 없는 이야기로 치부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각박한 현실이 그런 것이겠지. 시대적 배경을 짐작할 수 없는 내용 못지 않게 그림도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만화가 생각난다. 중간에 들어 있는 삽화는 그런대로 괜찮은데 표지 그림은 글쎄... 좀 더 고민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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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명화를 찾아라 수학추리동화 1
카린 테르시에 글, 루드밀라 피프첸코 그림, 곽노경 옮김, 정연숙 감수 / 주니어김영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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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추리동화라? 예전에 한동안 수학동화가 유행하긴 했다. 그건 그림책 판형이며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거였는데 이건 두꺼운 동화다. 워낙 추리물을 좋아하기에 얼른 집어들었다. 그런데 한 장을 읽고 두 장을 읽는데, 지금까지 보던 책과는 뭔가가 다르다. 한 단원(?)을 읽을 때마다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래서 답에 해당하는 번호로 가서 내용을 읽으면 된다. 처음엔 종이에 계산을 해가며 열심히 풀었다. 어떤 것은 대충 짐작으로 맞추기도 한다.  

그렇게 2장까지 잘 읽어 나갔다. 3장도 잘 읽었다. 그런데 내용이 조금 이상했다. 왜 갑자기 라파엘이 카지노엘 갔을까. 또 갑자기 경찰이 나타나 광대에게 수갑을 채웠다고 하질 않나 정말 이상했다. 그래서 3장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럼 틀린 답을 따라 간 걸까. 사실 한 문제가 나오면 대개 3가지 경우로 나뉘어지도록 되어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럼 완전히 순서가 다르게 이야기를 읽게 되는 것일 수도 있겠거니 하며 하나씩 하나씩 모두를 따라가봤더니 다행히 틀린 답일 경우는 다시 돌아가라고 해준다. 그렇다면 왜 이야기를 잘못 읽었을까? 

알고 봤더니 중간에 두어 페이지를 빼먹고 읽었던 것이다. 그러니 엉뚱한 순서로 갈 수밖에. 이야기가 앞뒤가 맞지 않아 혼자 열심히 추리해 가며 읽었는데 알고 봤더니 빼먹고 읽었다니. 아마도 그 때 잠깐 졸았던 것 같다. 어휴, 이 책은 졸거나 한눈 팔다가 읽으면 엄청 헤맨다. 수학 문제 풀기 싫다고 대충 넘어가도 절대 안 된다. 만약 답을 모르겠으면 하나하나 찾아가 보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책 읽는 시간이 다 다른 것이구나. 수학문제를 술술 풀면 금방 읽을 것이고 몰라서 왔다갔다 하다보면 거의 두 배는 걸릴 테니까. 구성이 참 독특하다. 짜임새가 있거나 이야기 구성이 탄탄한 것은 아니지만 문제를 풀면서 범인이 누구인지도 추측하는 재미를 톡톡히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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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엄질과 풀쩍이 초록학급문고 1
장주식 지음, 이소현 그림 / 재미마주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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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봄이다.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도 지났으니 이제 조금 있으면 개구리알을 볼 수도 있고 조금 더 있으면 개구리 소리도 들을 수 있겠지. 시골에서 자랐기에 봄날 저녁에 논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소리를 들을 때의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도 가끔 시골에 가면 그 소리가 너무 좋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올챙이를 잡아다가 커다란 대야에 놓고 한참을 구경하곤 한다. 물론 돌아올 때는 모두 원래 있던 곳에 풀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요즘은 농약을 하도 많이 줘서 논에서 함께 살았던 생명체들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뛰엄질과 풀쩍이 부부도 논에 알을 낳았지만 농약 때문에 실패를 했다. 어떤 올챙이들은 막 깨어났다가 기계에 깔려 죽기도 하고 화학비료 때문에 죽기도 한다. 뛰엄질과 풀쩍이도 논에서 계속 지내려고 하지만 먹을 것도 없고 약 때문에 몸이 가렵기도 해서 무작정 그곳을 떠난다. 한참을 가다가 결국 다정이네 마당에 있는 작은 연못(실은 고무 함지다.)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곳에서도 물론 모든 것이 잘 풀린 것은 아니다. 뱀을 만나기도 하고 무서운 물고기가 들어 있어 두려움에 떨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약을 주지 않아 먹을 것이 많고 언제나 신선한 물이 있다는 점이 그들을 머물게 한다. 결국 다정이네가 가짜 연못이 아니라 진짜 연못을 파면서 그들의 앞날은 희망으로 가득찬다. 그들이 정착하기까지는 결코 쉬운 여정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이 걸렸고 많은 위험도 따랐다. 하지만 그래도 오염되지 않은 곳을 만났다는 것 자체로도 그들에게는 행운이다.

환경과 생태가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 하나의 노력으로 될 문제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논에 농약을 주고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것만을 무조건 비난할 수 있을까. 무농약으로 지은 벌레 구멍이 숭숭 난 농산물을 시장에 내놓으면 아무도 찾지 않는다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이것은 논점에서 빗나간 이야기고, 다시 이 책으로 돌아와서 이 책은 재미마주에서 초록학급문고라는 이름으로 내 놓은 첫 번째 책이란다. 그래서인지 표지도 초록색이다. 또한 두꺼운 장정이 아닌 얇은 표지를 사용했다. 그런 것은 모두 좋았으나 이야기가 지나치게 늘어진 느낌이었다. 커다란 사건이 있다가 해결되는 것만이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상황을 계속 나열하면서 설명을 길게 해서 지루한 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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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품에 안고 - 우리들의 할머니 이야기 즐거운 동화 여행 10
표시정 지음, 강승원 그림 / 가문비(어린이가문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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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 할머니는 그다지 살갑거나 애틋한 정이 생각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유일하게 계셨던 외할머니는 워낙 무뚝뚝하신 분이라 그런 정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참 다행스럽게도 외할머니의 정을 듬뿍 받고 자란다. 대개 커갈수록 할머니 집에 가는 걸 내켜하지 않는다는데 우리 아이들은 아직도 두어 주만 안 가도 가자고 난리다. 물론 그 이유가 꼭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고 싶어서는 아니라지만 딸 말에 의하면 우리집은 삭막한데 할머니집은 편안하단다. 며칠 전에는 또 할머니가 자기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충격적인 발언까지 한 적이 있다. 그 이면에는 할머니와 자기가 텔레비전 취향이 비슷한 원인이 있긴 하지만 내 엄마를 내 아이들이 좋아한다니 기분이 좋다.

오늘날의 할머니, 우리들의 할머니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는 할머니와 관련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자식을 애지중지 키웠지만 나몰라라 훌쩍 외국으로 떠나 버린 아들. 그 아들을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 정신까지 놓아버린 할머니 이야기는 어쩜 그럴 수 있을까 싶지만 현실에서 자주 마주치는 이야기다. 또한 시골에서 살다가 자식을 따라 도시로 오지만 평생을 부지런하게 살던 습관 때문에 동동 거리며 작은 일거리라도 '만드는' 엄마와의 충돌, 그렇지만 결국 엄마의 사랑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딸을 보며 효도란 별 게 아닌데 하는 죄책감마저 든다. 

가족으로서의 할머니든 이웃의 할머니든 할머니와 관련된 이야기라서 그런지 하나같이 잔잔하며 푸근하다. 그렇다고 현실을 무시하면서까지 무조건 웃어른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고집을은 부리지는 않는다(이사 가는 날). 어쩌면 그래서 마음이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이사 가는 날'에서 할머니가 가장 아끼는 거울을 면경을 두고 온 사실을 알고 오던 길을 돌려서 갔더라면 글쎄, 현실과 동떨어진, 이중적인 아들 며느리의 모습에 '이건 이야기일 뿐이야'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자식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혹 내가 그런 자식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되돌아보았다. 자주 간다는 핑계로 전화도 안 하는 무심한 딸... 그런데 나머지 이야기는 전부 '우리들의 할머니 이야기'라는 부제에 맞게 할머니가 등장하고 그들과의 관계를 다루지만 마지막 이야기는 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작가의 말에서는 할머니가 아닌 엄마를 주제로 잡았으니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표지의 부제와는 안 어울린다. 이야기 자체는 감동적일지 모르겠으나 다른 이야기들과 어우러지지 못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지나치게 단선적으로 생각하는 내 사고의 경직성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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