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배는 지옥행 동화 보물창고 21
야마나카 히사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임수진 그림 / 보물창고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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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를 잘못 휘두르는 바람에 새로 산 텔레비전을 구멍내고 꿈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가즈야를 보니 그 심정을 알 것 같다. 정말 상황이 안 좋을 때는 꿈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바란 적이 많이 있었다. 얼마나 절망적이었으면 그랬을까. 그런데 만약 내가 가즈야 부모라도 펄펄 뛰었을 것이라는데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200만원을 주고 새로 산 텔레비전 화면에 구멍을 뚫어 놓았으니 당연하지. 그냥 동화인데도 내가 괜히 아깝다. 너무 책 속에 빠졌나보다.

마코토가 그림 그리러 가자는 제안에 탈출구를 찾은 듯 항구로 나갔다가 이상한 아저씨를 만나고, 마코토가 그 아저씨를 기절시키는 바람에 둘은 얼떨결에 도망을 친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이상한 아저씨가 있는 배로 도망을 칠 게 뭐람. 가즈야가 처음에 텔레비전을 부순 후 가출을 결심하고 사 놓은 음료수로 간신히 목을 축인다. 이렇듯 여기서는 사소한 행동도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나중에 알고 보면 다 뜻이 있고 이유가 있는 것들이다. 

그림을 잘 못그리는 가즈야가 항구에 있는 배를 아무렇게나 막 색칠할 때부터 뭔가 일은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화 나면 앞뒤 생각없이 충동적인 행동을 하는 마코토도 한몫을 단단히 했다. 그럼으로써 둘은 똑같은 신세가 된 것이다. 마코토는 가즈야에게 자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며 미안해 하지만 가즈야도 어차피 큰 문제를 안고 있었기에 마코토를 탓하지 않는다.

그렇게 타고 있던 배에서 결국은 발각되었다가 선장, 이마무라 선원과 함께 탈출하기까지 숨막히는 모험이 펼쳐진다. 보험 사기극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개인적인 복수를 하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려 했던 선장이 가즈야와 마코토 덕분에 삶을 선택하기도 한다. 

끝까지 이야기 속에 괜한 소품은 등장하지 않는데도 전혀 억지스럽지 않다. 다만 가즈야가 총을 잡고 꼭 한번 쏴보고 싶었다고 생각하며 쏘는 장면은 어른으로서 괜한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물론 방어하기 위해,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할지라도 요즘 아이들은 그런 게임을 하며 진짜로 총을 잡아보고 싶다고 느끼는 것이 사실임을 감안하면 괜한 불안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린이 책에서 지나치게 어린이 취급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이런 식의 표현을 두려워하니 나도 어쩔 수 없는 이 시대의 어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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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달타냥 창비아동문고 242
김리리 지음, 이승현 그림 / 창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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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난히 개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눈에 많이 띈다. 게다가 읽는 도중 보신탕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마침 얼마전에 초복이 지난 터라 불편한 사람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사실 소나 돼지도 고기를 얻기 위해 사육하는 가축인데 유독 개는 그런 동물과는 레벨이 다르게 취급된다. 우리 아이들도 보신탕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러면서 어떻게 이렇게 귀여운 강아지를...이라며 말끝을 흐린다. 하긴 키우고 있는 강아지를 사정상 시골에 며칠 두기로 했는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 보고싶다고 노래를 하다시피 하는 아이들이니 말 다했지.

우연히 개의 이름을 지어준 관계로 개와 특별한 인연이 된 슬픈 눈 민호. 학교에서 친구들과 교류하지도 않고 자기 안에 갇혀 사는 민호는 친구들이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격리시키는 것 같아 보인다. 자신의 아픔을 들키고 싶지 않고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은 걱정도 없고 행복해 보이는데 자신만 불행한 것 같아서 그런 것이겠지.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미운 아빠를 향해 당당하게 말 한 마디 못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자기 안으로 더욱 숨는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달타냥이라고 자신이 이름 붙여준 개를 키우게 되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먼저 친구의 존재를 의식했다는 점이다. 물론 민호도 아빠가 술을 먹고 엄마를 때리기 전까지는 친구들과 잘 노는 평범한 아이였다. 그러나 아빠가 변한 후부터는 철저히 혼자가 되고 만다. 하지만 달타냥을 키우면서 장만이와 삼총사가 될 정도로 친하게 지내며 각자의 사정을 조금씩 이야기하면서 이 세상에서 자기만 불행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렇지. 모든 사람에게는 얼마간의 시련이 있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어린 민호가 알기에는 아직 벅찼을지도 모른다.

개 달타냥의 시선과 민호의 시선이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방식(그러나 외국동화에서 사용한 이러한 방식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바다 아이>라는 책이 그런 구성이었는데 거기서는 끝까지 독자들도 상황을 전부 알지 못하도록 구성해 놓은 반면 여기서는 독자가 모든 상황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긴박감은 좀 덜한 편이다.)을 취하고 있어서 민호의 마음이었다가 다시 달타냥의 입장을 반복하게 된다.

마지막 부분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시청자의 입김에 의해 결론이 변경가능한 드라마였다면 달타냥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처음에는 그런 운명을 만든 작가가 원망스러웠으나 마지막에 민호 아빠가 다치고 왜 다쳤는지 알게 되었을 때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이해했다. 겁많고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달타냥은 어쩌면 민호 자신의 모습 아니었을까. 마찬가지로 악의에 가득 차 있고 복수심에 이글거리는 달타냥의 형인 태풍의 모습은 아내에 대한 원망과 자신의 무기력함에 길을 잃은 민호 아빠 자신 아닐까. 그렇다면 달타냥과 태풍의 죽음은 민호와 아빠의 나쁜 면이 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아니 그러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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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터널 1 - 도망쳐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올라프 프리체 지음, 바바라 코르투에스 그림, 송소민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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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저녁을 먹는데 둘째가 미래에는 시간여행이 가능할 것 같냐고 물어본다. 글쎄...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아이가 그 질문을 하는 동시에 머릿속에서 이 책이 스치고 지나갔다. 특히 릴리와 마그누스가 비밀 터널을 통과하는 장면이 마치 영화를 본 듯 생생히 떠오른다. 분명 글로 읽은 것인데.

가능할지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아이들 책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때로는 과학적 근거를 들이대며 그럴 듯하게 풀어나가기도 하지만 대개는 판타지라는 형식을 빌어 시간여행을 하는 구성이다. 예전에는 시간여행을 떠난 당사자는 전적으로 제3자가 되어 개입하지 못하는 방식이었는데 요즘에는 직접 당시 생활에 뛰어들어 바꾸기도 하고 아슬아슬한 위기 상황을 맞기도 한다. 아마도 책에 몰입하기 쉬운 구조는 후자가 아닐까싶다.

이 책도 후자의 방식을 취한다. 무척 똑똑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지만 사고 때문에 휠체어에 타고 있어서 직접 시간 여행을 못하는 알베르트(처음에는 알베르트가 함께 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으나 조금 읽다보면 왜 알베르트는 못 가는지 이해가 되고 안심이 된다.), 겉모습만 여자일 뿐 전혀 여자같지 않은, 아니 여자이길 거부하는 릴리, 매사에 조심성이 너무 많고(이건 어쩌면 항상 재수 없는 경우를 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겁도 많지만 친구들을 엄청 아끼는 마그누스의 뜻하지 않은 시간 여행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우연히 터널로 들어갔다가 진짜 시간여행을 하고 돌아온 릴리와 마그누스는 다음에는 더 철저히 준비해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만나 그가 설계했던 비행기에 대해 직접 물어보고자 한다. 물론 마그누스는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버틴다. 하지만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두려움보다 훨씬 앞서기에 마지막 순간에 합류한다. 다른 두 친구는 마그누스가 그러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그것까지 준비해 둔 상태다.

터널을 빠져 나와 과거로 갔을 때 만나는 장면이나 알베르트의 집 지하실을 묘사하는 부분이 참 서정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아이들이 여름 방학을 해서 함께 모여 있는 것을 상상하면 곧 다가올 아이들의 진짜 방학이 나도 모르게 연결되어 마치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아무래도 시기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나보다. 그나저나 셋이 다음엔 어떤 시간여행을 하게 될까 궁금하네. 참,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비행기 설계도만 그려 놓고 진짜로 만들었는지 어쨌는지 궁금해서 떠난 여행이었는데 아이들은 직접 만들어보았다고 결론을 내린다. 릴리와 마그누스와 함께 말이다.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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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 온 e메일 반달문고 8
웬디 오어 지음, 케리 밀라드 그림, 조은수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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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생활을 꿈꾸지 않을까. 무인도에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자급자족하며 문명과 떨어진 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 너무 작지도, 너무 크지도 않고 무서운 동물이 나올 염려도 없는 그런 곳을 나는 자주 꿈꾼다. 특히 세파에 시달려서 힘들고 지칠 때면 그런 생각을 종종 한다. 다만 바다 주변에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어 바닷물이 깊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도 함께(워낙 물을 무서워하는 관계로).

아론이 살고 있는 곳이 바로 내가 꿈꾸던 그런 곳이다. 작은 오두막이 있고 조금만 올라가면 냇가도 있고 무서운 동물은 전혀 없으며 이미 있는 동물은 친구가 되었으니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전화도 되고 인터넷도 되니 금상첨화다. 맨날 똑같은 모습만 보며 지루해할 정도로 작지도 않고 그렇다고 거대한 섬도 아닌 적당한 크기의 섬에서 아빠와 단둘이 살고 있는 아론은 어쩌면 많은 사람이 꿈꾸는 이상향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작가가 분명 이 섬은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이야기했건만 읽으면서 자꾸 이런 섬이 진짜로 있는 양 부러워하게 된다.

사고로 아내를 잃고 혼자 딸을 키우며 그야말로 자연과 함께 사는 잭은 바다로 플랑크톤을 연구하러 떠났다가 폭풍을 만나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자 혼자 남은 아론이 섬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이 주를 이룬다. 특히 모험 소설가인 알렉스 로버와의 이메일을 통해 조언을 듣고 소통을 하면서 아론은 지혜롭게 헤쳐나간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람이라고는 아빠 외에 생필품을 전달해 주는 아저씨 밖에 보지 못한 아론이 알렉스를 보기 전에 어떻게 생겼을지, 어떻게 이야기를 나눠야할지 몰라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세상과 단절되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알렉스가 남자인줄 알았는데 결국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심한 배신감에 단절을 결심했다가 결국 자신도 본의 아니게 알렉스를 속였다는 것을 깨닫고는 소통을 재개하는 것을 보며 비록 아이지만 마음만은 어른 못지 않다는 것도 느낀다. 어른이든 아이든 그런 역지사지의 마음이 참 중요한데 말이다. 모험 소설가답지 않게 소극적이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던 알렉스 로버가 아론을 위해 밖으로 뛰쳐 나오는 용기를 내면서 아론과 잭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특히 마지막에 셋이 결국은 섬에 머무르면서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환상적인 삶이 이어질 것임을 암시한다. 과연 영화에서는 이런 것들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분명 아이들 영화일텐데 내가 더 기다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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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내일은 희망 뉴베리 수상작 시리즈 (주니어김영사) 6
조앤 바우어 지음, 고은광순 옮김, 정다이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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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읽을 때면 문화와 가치관의 차이를 확연히 느낀다. 그냥 느끼는 것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과연 우리나라였다면 어른들이 호프를 어떻게 바라볼까. 아니, 먼저 호프의 엄마를 탓하겠지. 어떻게 엄마라는 사람이 그럴 수가 있느냐라며. 거기다가 호프의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그 상황을 용납하지 않고 미리 삐딱하게 바라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하나의 선입견이 작용한다. 식당 종업원을 천직으로 알고 있는 호프의 엄마를 보면서 그게 무슨 대단한 직업이라고 아이까지 책임지지 않으며 자신의 일만을 선택했을까하는 점이다. 그러나 책을 덮을 때 즈음이면 호프 엄마를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된다. 독자는 호프의 눈으로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이므로 그것은 호프가 엄마를 이해했다는 뜻이기도 할 게다.

음식 만드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이모와 함께 살면서 자연스럽게 식당일을 함께 하게 된 호프-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식당일이라고 하면 하찮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서비스를 중시하는 업종이라고 할 수 있다.-는 어쩌면 자신의 삶을 희망이 없는 것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이 이름도 스스로 호프라고 바꾼 것이리라. 흔히 말하듯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는데(실제로 청소년들도 이 말을 얼마나 들었는지 그게 무슨 큰 무기인 양 툭 하면 그 말을 사용한다.) 아마 호프도 내면에서는 엄청난 혼란이 있었을 것이다. 왜 엄마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것일까. 아빠는 누구일까. 만약 이모마저 떠난다면 어떻게 될까하는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있었겠지. 솔직히 나도 엄마의 입장이지만 호프의 엄마가 몇 년에 한 번씩 찾아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남을 대하듯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걸 보며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나중에야 알았다. 다만 표현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을.

전혀 낯선 자그마한 도시로 이사를 와서 식당에서 일을 하며 겪게 되는 많은 사건들이 어찌보면 호프의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필이면 식당 주인이 백혈병에 걸린 것이라든지 그 몸으로 시장 선거에 출마한 것이라든지 결국은 이모와 결혼한 것까지 그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호프가 자신을 받아들이고 엄마를 이해하고 이모를 엄마로 여기기 위한 장치였다는 생각도 든다. 호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정치적,사회적인 문제도 나오지만 거기에 초점이 맞춰지기 보다는 호프 내면의 성장과 세상과의 소통에 초점이 맞춰진다. 자기의 길을 가면서도 최고의 종업원이 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며 호프는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고 있구나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다면 호프의 모습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적용시켜 볼 수 있을까. 지금 우리의 현실로서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해 버릴 수많은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물론 그 목소리 중 하나는 내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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