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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귀, 선덕 여왕을 꿈꾸다 ㅣ 푸른도서관 27
강숙인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1월
평점 :
문득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과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냥 선덕 여왕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만 알고 있는데 마침 얼마전에 그에 대한 책을 읽었고, 또 신라에 관한 책을 읽었다. 그러면서 그 당시 역사에 대해 조금은 윤곽이 드러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기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한다. 그러면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지식이 조금씩 연결되는 것을 느끼자 마치 당시 역사를 꽤나 알고 있는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니 역시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동시에 조금 아는 걸 가지고 꽤나 아는 척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많이 아는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을 의심하고 모르는 부분에 대해 더 알아보려 노력할 텐데. 역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이다.
선덕 여왕에 대해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가 있다. 지귀에 대한 이야기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단순히 한 인물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당시 사회적 상황을 고려해서 인물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왜 지귀가 선덕을 만나고 싶어했는지를 묻고 또 물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바로 이 이야기겠지. 단순히 사랑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뒤에 더 큰 이야기가 있을 것이고 대의명분에 따라 움직이는, 신라를 이야기하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인 화랑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고 작가는 생각했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정치가 있는 곳이면 서로 견제하는 세력이 있기 마련이고 때로는 한쪽이 큰 화를 당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 틀에 지귀라는 인물을 올려놓고 그의 번민과 인간적 고뇌를 잘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시대적 상황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구나, 이런 일이 있을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은 역사동화를 읽으면서 무수히 갖는 생각이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를 마주했을 때 나는 절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한다. 아마도 이것은 작가만의 능력인가 보다.
주로 무거운 배경을 동화로 엮어내는 작가라서 처음엔 다소 분위기가 무겁고 비장하며 가라앉았다는 생각에 경쾌한 어떤 것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왕과 그 주변 신하들이니 분위기가 무거운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뒤로 갈수록 점점 인물에 빠져들어서 차분하게 읽게 된다. 작가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지배층 이야기던데 피지배층을 등장인물로 다룬 역사동화를 만나고 싶어진다. 과연 어떻게, 어떤 목소리로 이야기를 풀어갈지 궁금하다. 절대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여전히 담담하면서도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들려주지 않을까. 이 책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