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역 - 기차는 지나치지만 마음은 머무르는 곳 문원아이 28
홍종의 지음, 이민선 그림 / 도서출판 문원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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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이라는 말을 들으면 괜히 쓸쓸하면서도 뭔가 추억이 묻어나는 곳처럼 느껴진다. 아마 노래 가사나 이야기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데 거기에서 하나 같이 그런 이미지로 그리고 있기 때문은 아닐런지. 그렇기에 여행을 하다가 간이역을 만나면 괜히 가서 철로에 서서 이곳저곳을 말없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점점 시골에서 사는 아이들이 줄어들어서인지 요즘 동화의 배경은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게 훨씬 많다. 그리고 아이들의 고민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배경 설명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은 시골의 배경을 이야기하면서 그 곳의 아이들도 이야기하고 있다. 조금 있으면 사라져야 할 조그만 역인 반달역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특히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아가는 그림이의 천진하면서도 발랄한 모습은 가라앉은 시골의 모습에 활기를 준다. 그림이는 자신이 버려진 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죽지 않는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림이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어찌나 안타깝던지. 소박하면서도 애닲은 시골의 모습과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펼쳐지는 소박한 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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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롤리팝, 말괄량이 공부하기 보림어린이문고
딕 킹 스미스 글, 질 바튼 그림, 김영선 옮김 / 보림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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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로 시작하는 옛이야기 같지만 결코 옛이야기는 아닌 이야기. 그러나 왕과 왕비가 나오고 공주가 나오고 그림도 색이 없이 그려져서인지 자꾸 오래전에 나온 책이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그러나 역시 결코 에전에 나온 책이 아니라는 사실. 

전편 격인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읽으며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잔잔하고 편안한 읽을 거리를 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이 책도 역시나 대단한 사건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종일관 웃음짓게 만드는 책이다. 

대개의 책에서 절정이라고 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이 책은 과연 그 절정이 어디일까 싶을 정도로 잔잔하다. 그래서 편안한 느낌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그럼 약간 밋밋하다고도 볼 수 있을까.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꼭 그렇게 자극적인 절정(아예 절정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이 있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이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애완용 돼지인 롤리팝과 조니, 그리고 말괄량이지만 전편보다 아주 많이 착해지고 남을 배려할 줄 알게 된 페넬로페가 끈끈한 우정을 만들어가는 이야기에 새로운 한 명이 더 등장한다. 바로 마법사이자 가정교사인 콜리 콥. 마법사라고 해서 처음에는 모종의 흉계를 꾸미지 않을까 걱정했다. 이 책의 특징이 잔잔한 이야기라는 것을 깜빡하고 말이다. 오히려 콜리 콥은 아이들을 대변해 주는 인물이자 사건을 멋지게 해결하는 해결사다. 

그나저나 우리 강아지가 롤리팝처럼 그렇게 똑똑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원을 가꾸는 일처럼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은 고사하고 말이라도 알아들었으면 좋겠다. 어휴, 또 책 내용과는 전혀 다른 곳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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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생각하니? - 마음을 키워주는 책 2
이규경 글 그림 / 처음주니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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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고 내가 어린이 책에 대해 지나친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 이런 책도 참 좋네. 그런데 왜 전에는 이런 책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도 아이가 어느 정도 커서 짤막한 단상을 적은 책을 즐겨 읽는 것을 보고 문득 깨달았던 것은 아닌가 싶다. 아이들에게 자신만의 생각을 하라고 강조하면서도 플롯이 있는 것만 권해줬었다. 이처럼 짧은 생각을 읽으며 자기 안에 일어나는 무수한 생각을 느껴보는 것도 꽤 괜찮은 책 읽기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을 읽으니 오래 전에 읽었던 책들이 생각난다. 당시만 해도 감수성이 풍부했는지 안에 있는 내용 하나하나가 마치 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고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던 기억도 어렴풋이 난다. 지금이야 그 정도는 아니지만 때로는 맞장구를 치고 때로는 아차 싶기도 하다. 이러니 아이들은 어떨까. 아마도 부모가 부지런해라, 남 생각 좀 해라, 겸손해라라고 아무리 이야기해 봤자 그것은 모두 잔소리로만 들릴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짧은 글귀를 읽도록 하면 굳이 구구절절 길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가 스스로 느끼는 게 많을 테니까. 

가끔 사람들과 만나서 실컷 이야기하다가 집에 돌아와서는 괜한 말을 했다고 후회하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과시하기 위해 필요없는 말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나를 포장하기 위해 '척'하기도 한다. 그러고는 꼭 후회한다. 그래서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쓸데 없는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서 문제다. 문득 '아무 뜻도 없는 빈말을 자꾸 하니 내 인격만 손상된다'는 글을 보니 그 생각이 났다. 아무래도 아이보다 내가 더 자주 들춰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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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노니는 집 - 제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30
이영서 지음, 김동성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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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주변 사람 몇몇은 나중에 작은 도서관을 꾸미고 싶다고 한다. 물론 나도 집에 있는 책을 그냥 우리만 보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에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들과 나눌 계획이다. 하지만 당장은 어렵고 '언젠가는'이라는 불확실한 미래형을 쓰곤 한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 이런 책은 무작정 읽으려고 하는 게 우리네 특징이다. 먼 발치서 보았을 때는 현대가 배경일 거라 생각해서 도서관과 연관된 이야기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표지의 서고는 현대가 아니다. 그럼 이덕무와 비슷한 사람들의 이야기일까. 

필사라는 직업이 있던 시절. 그러니까 인쇄기로 책을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일일이 베껴야 했던 시대에 그 일을 천직으로 알고 행복해하던 사람이 있다. 홀로 아들 장이를 키우면서 힘들게 필사를 하면서도 나중에 작은 책방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사는 진정한 장인이다. 그러나 장이 아버지는 천주학 책을 필사했다는 죄로 매를 맞고 한참을 앓은 후에 저세상으로 떠난다. 홀로 남은 장이는 책방 주인인 최 서쾌가 돌본다. 아마도 끝까지 혼자 모든 죄를 뒤집어 썼던 장이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에 그랬을 것이다. 

장이가 책방에서 책을 주문한 사람들에게 전달해주는 심부름을 하는데 그 중에는 보통의 양반들과는 다른 사람도 만난다. 신분제가 확고했던 시절, 자기와 동일한 신분이 아니면 제대로 말도 하지 않고 의견을 묻는 일은 더더욱 하지 않았던 시절에 장이는 홍 교리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면서 장이는 인간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었으며 아울러 자신감도 얻었을 것이다. 만약 홍 교리 같은 사람이 주변에 없었다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보내는 세월이 훨씬 많지 않았을까. 하긴 그만큼 귀한 인연이기에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그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 했던 것일 게다. 

조선 후기 천주교를 박해하던 시기 서울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듯 지명이 상세하다. 그래서 가끔은 픽션이 아니라는 착각마저 들었다. 일러두기에서 분명하게 작가의 상상에 의해 창작되었다고 밝히고 있는데도 말이다. 또한 당시 생활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시선이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 아니라 양반의 모습과 기생의 모습, 그리고 중인의 모습도 조금씩 그려내고 있다. 처음에는 그들의 삶을 다 이해하기 때문에 치우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장이의 입장에서는 굳이 그들의 삶의 면면을 다 이해할 필요가 없고 그들의 고민을 알 수가 없기에 그렇게 그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동화는 역사적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에 주인공의 시선을 중심에 두기보다 사건에 중심을 둬서 자칫 작가의 목소리가 드러내기 쉽다. 그래서 가끔은 주인공 아이의 나이에 맞지 않게 울분을 토로하기도 하고 깊이 있는 견해를 표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시종일관 장이의 시선에서 머물고 있다. 그래서 어른이라면 불의를 못 참고 꼭 시시비비를 가리고 마는데 반해 여기서는 장이의 선에서 이해하지 못할 것은 그냥 넘겨버린다. 그것이 아무리 해명이 필요한 사건일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왜 그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을까 답답해 하다가 나중에서야 진짜 아이들 눈에 맞춰서 딱 그 만큼만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답다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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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의 달콤한 □□ 보름달문고 26
이민혜 지음, 오정택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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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내 손에 들어오면 일단 날짜와 아이들 이름을 써 놓는다. 다른 사람들과 돌려보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누구 책인지 쉽게 구분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 책을 받아놓고 며칠 후에 읽으려고 겉표지를 넘기는 순간 아무런 표시가 없다. 오자마자 날짜를 써 놓는데 왜 이 책만 빠졌을까라고 혼자 구시렁대며 써 넣었다. 그리고 책을 읽다가 잠깐 일이 있어 책갈피를 끼워 놓았다가 다시 집어 들었다. 그런데 전에 읽었던 내용이 아니다. 왜 그러지? 순간 당황해서 뒤집어 보니 거기에도 똑같은 제목이 눈에 띈다. 아차, 그렇지. 이 책은 양쪽으로 읽게 되어 있었지. 분명 알고 있었는데도 잠시 깜빡했던 것이다. 물론 날짜도 전에 써 놓았는데 반대쪽을 펼치는 바람에 안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날짜가 양쪽에 모두 씌어졌다. 

동화책에서 이런 형식이 있었던가. 그림책에서는 간혹 보았던 형태지만 동화책에서는 본 기억이 없다. 동일 시간대 동일 장소에서의 일을 여러 명이 각자의 시선에서 교대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있어도, 이처럼 완전히 두 개의 이야기가 한 권에서 펼쳐지는 동화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난 책을 읽을 때 작가 소개부터 지은이의 말까지 꼼꼼히 읽는 편이다. 그러나 간혹 작가 소개를 먼저 읽으면 책에 대한 내용보다 작가에 대한 이미지가 먼저 생기는 것 같아 일부러 안 읽는 경우도 있다. 이 책도 괜히 내용 먼저 보고 싶었다. 그런데 흔히 있는 글쓴이의 말이 없다. 공교롭게도 지혜의 이야기먼저 읽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양한 환경의 주인공을 배경으로 하는 동화를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의 아이들은 또 다르게 다가온다. 그나마 일진이의 경우는 그래도 지혜보다는 훨씬 나은 편에 속한다. 비록 부모들 때문에 자신의 속마음을 숨긴 채 남의 눈치를 보는 것이 습관으로 굳어졌다 해도 지혜처럼 마음의 상처가 심한 것은 아닐 테니까. 처음에 지혜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당황했다. 부모에게 학대 받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는 방치된 상태로 있는 지혜의 경우, 정말 이런 부모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 그런 아이들이 있고 심지어는 더한 환경에 처한 아이들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단지 동화 속 이야기라고 간단히 치부하기 힘들고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픈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혜의 부모는 미성숙한 어른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지혜를 괴롭히는 것이라기 보다 자신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할 지 몰라 자기 안에 쌓여 있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은 아닐런지.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지혜 엄마가 자신의 현재 모습을 깨닫고 자존감을 회복했을 때 지혜에게 딸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대화를 했던 것일 게다. 하지만 그간 딸에게 했던 행동과 비교할 때 너무 급격하게 변한 것 같다. 또한 갑자기 지혜 아버지도 지혜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보인다는 설정이 억지스럽다. 그리고 그들이 각자의 마음을 내비쳤음에도 서로 융화하지 못한 채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아갈 것이라는 암시에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이란 그렇게 명쾌하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에 어쩌면 그것이 더 현실적인지도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지혜의 가족이 갑자기 속마음을 내비친 것은 아마도 그동안 모든 것을 배척하려고만 했던 지혜가 일진이와의 소통으로 어느 정도 타인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했기에 엄마와 아빠가 자신들의 속마음을 내비친 것일 게다. 

그럼 일진이 부모는 성숙한 어른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역시나 그렇지 않다. 그런데 솔직히 일진이 엄마의 행동을 따라가다가 문득 나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고 놀랐다. 어른=성숙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지만 그래도 나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드러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나마 일진이는 건강한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부모의 이혼으로 충격을 받긴 했어도 새아빠거 더없이 좋은 분이기에 지혜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졌던 것은 아닐런지. 지혜의 입장에서 서술될 때는 정의파로 보였던 일진이가 실은 남의 눈치를 보느라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얼떨결에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약간 김이 새기도 했다. 만약 일진이 이야기 먼저 읽었더라면 일진이가 멋있고 괜찮은 녀석이라는 선입견을 갖지 않고 읽었을 텐데.  

지혜가 가장 열악한 환경이라서 그런지 지혜에 대한 기억이 가장 크게 남는다. 하지만 지혜 부모에 대한 문제까지 해결하려 했기 때문인지 오히려 지혜 문제가 분산되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지혜의 문제는 분명 그들의 부모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데 그 연결고리가 약했다는 생각도 든다. 아니면 내가 지혜 문제를 부모들에게 전가하기 위한 구실을 찾고 있었는데, 명확하게 판결을 내려주지 않아서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 한 명으로 인해 이후의 삶이 완전히 바뀌리라고 낙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혜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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