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질이 버티 2 - 벼룩! 꼬질이 버티 2
앨런 맥도널드 글, 데이비드 로버츠 그림, 고정아 옮김 /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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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깔깔 웃어보았다. 전편을 읽으며 아이가 좋아하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대로다. 어른이 보기에는 조금 엽기적인데 아이들은 오히려 그것 때문에 좋아한다. 오죽하면 다음 권도 전부 사달란다.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벼룩 이야기는 어찌나 재미있던지 안에서 공부를 하건 말건 소리내서 웃었다. 강아지를 키우고 있기에 더 공감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버티가 동물병원에 가기 싫어하는(다른 가족도 마찬가지다. 모두 회피하는 바람에 결국 버티가 데려가게 되었다.) 위퍼를 데리고 가기 위해 벌이는 잔꾀는 기발하다. 아니, 너무 재미있다. 인라인을 타고 소시지를 매단 시장가방을 끌고 가는 것까지는 그럴 듯했는데 동네 개들이 모두 그 뒤를 따라가는 바람에 소동이 일었다. 물론 그것 때문에 이야기는 더욱 재미있어졌다. 

용기 있는 사람놀이를 하다가 결국 말썽을 부린 이야기며 의도는 좋았으나 결론적으로 다른 사람을 곤경에 처하게 한 이야기는 재미있다기 보다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이럴 때 보면 아무리 아이 입장에서 책을 읽으려 해도 어쩔 수 없는 어른이라는 것을 느낀다. 만약 어린이라면 그 대목에서 다른 걱정은 하지 않고 오로지 재미만 느낄 테니까. 이렇게 말썽부리고 엽기적인 일을 저질러도 버티를 미워할 수 없다. 그것은 작가가 버티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바꿔 말하면 어린이에 대한 애정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여하튼 우리 아이는 이 시리즈의 확실한 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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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비밀 정원 레인보우 북클럽 12
T. H. 화이트 지음, 김영선 옮김, 신윤화 그림 / 을파소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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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다. 정말 길다.(그러나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 보다는 훨씬 짧다. 그런데도 왜 이리 길게 느껴졌을까. 물리적인 길이가 아니라 심리적인 길이라고 말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글씨 크기도 작은데다가 설명이 어찌나 많은지 대화체가 나오면 반가울 정도였다.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는 <비밀의 화원>처럼 몰래 정원을 발견하고 가꾸는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마리아가 정원을 몰래 가꾸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 과정이나 기타 사건들은 전혀 다르다. 한 마디로 예상했던 내용과는 일치하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시종일관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모티브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거기서 나왔던 소인국 사람인 릴리퍼트인들이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아니, 그것이 주된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님을 모두 잃고 가정 교사와 목사에게 학대 아닌 학대를 받으며 지내는 마리아가 어느 날 우연히 호수 안에 있는 섬에 가면서 일이 생긴다. 마리아가 15센티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소인국 사람들과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과 나중에는 서로에게 도움을 주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이 그려진다. 때로는 설명이 지나치게 많아서 곤욕스럽기도 했다. 요즘의 책은 묘사를 많이 하지 않기 때문에 더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이 1946년에 씌어졌다고 하니 그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과 결부시킨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그것을 알고 있었다면 책을 읽는데 훨씬 재미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비록 묘사와 설명이 많아서 책장을 넘기는데 힘들었다손 치더라도 이 책의 가장 큰 묘미는 바로 풍자다. <걸리버 여행기> 자체도 풍자가 많은 책인데 거기에 이 작가가 풍자를 더 넣었으니 오죽할까. 릴리퍼트 왕국이 이웃나라와 전쟁을 한 원인이 '달걀을 깨는 방법'때문이란다. 객관적으로 보면 말도 안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 그러한 일이 없으라는 법도 없다. 당시에는 커다란 문제처럼 보이지만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 말이다. 목사와 브라운 양이 서로 마리아를 도망치게 했다고 상대를 의심하다가 못된 진실한 마음을 서로 알아채고 신뢰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또 어떤가. 다른 사람의 말은 듣지도 않고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주지사며, 아는 것이 많을지라도 그것을 이용하는 방법을 모르고 거창하게 말을 하는 교수 등 모든 인물이 풍자의 대상이 된다. 간혹 말장난(풍자와 별개로)에 너무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그리고 시대를 생각하면 이 책이 지금도 사랑받는 이유를 알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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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개의 바둑돌 파랑새 사과문고 67
김종렬 지음, 최정인 그림 / 파랑새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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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 다닐 때 바둑부에 들었었다. 집에서 누가 바둑을 두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바둑을 배우고 싶었다. 그러나 기억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 선생님도 특별히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 같다. 하긴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었을까. 아마도 오목만 두지 않았을까 싶다. 배우고 싶지만 기회가 되지 않았던 바둑. 남편은 바둑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가끔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내 성격 상 그걸 배웠다가는 집안 일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바둑만 둘 것 같아 아예 접었다. 

그런 바둑이 주로 나오는 동화. 간혹 동화를 읽다가 거기에 나오는 바둑 설명을 뚫어져라 보며 이해하려 애쓰기도 했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주노와 함께 바둑을 배우는 입장이 된 것처럼 말이다. 동화책에서 바둑을 소재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특이한 책이다. 바둑은 그저 학원 종류의 하나로만 인식될 뿐인데 여기서는 바둑이 가족을 이해하는 매개체가 된다. 게다가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이야기하며 그것을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바둑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노는 아주 평범한 가정의 아이다. 엄마는 잔소리가 많고 알뜰하게 살림하는 전형적인 현모양처에 아빠는 회사를 열심히 다닌다. 그러나 회사를 지나치게 열심히 다니는 것이 문제다. 보통의 아버지처럼 아들과 놀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은 그런 아빠가 바로 주노의 아빠다. 그래서 아빠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도 그다지 슬픈 줄도 모른다. 오히려 슬픔에 빠진 엄마 때문에 슬프다. 그러다가 아빠의 영혼으로부터 바둑을 배우며 아빠를 이해하게 되고 아빠의 부재가 슬픔으로 다가온다. 

바둑이라면 질색을 했던 주노가 결국 바둑의 묘미를 알게 되고 더불어 아빠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는 설정이 자칫 뻔하다는 생각도 든다. 주노의 입을 통해 들었던 아빠의 평소 행동은 그렇게 쉽게 이해받을 것이 못된다. 모든 것의 우선순위는 바둑이다. 그래서 툭 하면 주노와의 약속도 잊는다. 그런데도 주노는 밤마다 아빠(의 영혼)에게 바둑을 배우며 결국 아빠를 이해하다니. 핏줄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면 5학년짜리 아이에게 어른의 이해심을 기대한 것이던가. 어른인 나는 충분히 주노를 이해하고 아빠를 이해하지만 과연 책을 읽는 진짜 독자인 어린이들은 둘을 이해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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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 두 동무 반달문고 26
임어진 지음, 김용철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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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색이나 그림이 참 친근하다. 게다가 제목에 '보리밭'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어 웬지 구수한 느낌이 난다. 요즘은 일부러 찾아가야 볼 수 있는 것이 보리 아니던가. 그렇다면 배경이 현대가 아니라 적어도 요즘 아이들이 옛날이라고 하는 그런 시대가아닐까. 하지만 제목을 보고 느꼈던 그런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게다가 세 편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 각각 독특한 소재를 다룬다. 

특히 마지막 이야기의 주인공 이름이 예쁘다. 봉지 빈. 이름에 '빈'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면 어딘지 무게감이 느껴졌던 평소의 생각이 반영되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이름이 태어난 과정을 보면 참 어이없다. 아니, 작가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감탄사가 절로 난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빈 봉지를 가지고 이런 이름을 만들다니. 그리고 너무 흔해서 물건이라고 여겨지지도 않는 까만 봉지에 생명을 불어 넣어 이야기를 만드는 재치에 놀랐다. 작가의 목소리가 강하게 드러나는 것이 약간 거슬리긴 하지만. 작가란 어느 것도 하찮게 바라보지 않는 따스한 마음을 가지고 있나 보다.  

그러고 보니 두 번째 이야기이자 표제작도 따스한 이야기다. 과거와 현실을 교묘히 결합한 판타지를 차용하면서도 그 판타지가 제삿밥을 먹으러 온 혼백으로 설정함으로써 판타지로 느끼지 못하겠다. 마침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즈음에 이 이야기를 읽어서인지 다소 작위적이고 과장된 이야기인데도 거기에 신경쓰기 보다 전쟁을 겪었던 우리 현실에 더 마음이 갔다. 전쟁을 그저 책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현재도 영향을 받고 있으며,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나머지 한 이야기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이웃을 어떻게 바라보며 어떻게 소통하는지 보여준다. 솔직히 우리 아이들도 이웃의 개념이 없다. 아이들이 커서 이사를 와서 사귈 기회도 필요도 못 느꼈으니 그럴 수밖에. 알고 보면 주변에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이 분명 있을 텐데. 그들에게 거창한 도움을 주는 것보다 따스한 말 한 마디, 꽃 한 송이(용이와 석이처럼)를 건네는 것이 더 소중한지도 모르겠다. 점점 더 각박해지는 세상살이를 하는 아이들이 따스한 이야기 세 편을 만나 조금이라도 따스한 마음을 전달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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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꽃을 피웠어요 - 정일근 시인의 우리 곁의 이야기 2 좋은 그림동화 18
정일근 지음, 정혜정 그림 / 가교(가교출판)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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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다. 실용적인 면에서 보자면 꽃다발은 그야말로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의 내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물론 어느 순간부터 꽃다발 보다는 실용적인 선물이 더 좋아지긴 했지만 가끔 꽃을 사다가 꽂아 놓기도 한다.  

그런데 나무에서 꺾어 놓은 것보다 직접 나무에 있는 꽃을 보는 게 훨씬 아름답다. 특히 집에서 직접 키우는 나무가 꽃을 피웠다면 더 감동적이겠지. 그것도 처음으로 꽃을 피웠다면 말이다. 이른 봄이면 먼저 꽃 소식을 전해주는 꽃 중 하나인 목련. 하지만 봄에 꽃이 지고 나면 목련나무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봄에 잠깐 꽃을 피우고 나머지 여름과 가을은 그저 커다란 잎만 있으니 별로 주목 받지 못한다. 하긴 봄에 피는 꽃들이 대부분 그렇긴 하다. 

하나 집으로 강아지 두나와 함께 이사를 왔지만 모두로부터 소외되었다고 느끼는 목련나무가 꽃을 피우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 잔잔하게, 때로는 처절하게 그려진다. 아직 어린 나무였기 때문에 꽃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심지어 자신이 꽃을 피우는 나무라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결국 별을 나무에 얹어 놓은 것 같은 꽃을 피웠다. 그동안 마음고생도 많이 했지만 이제 나무는 행복하겠지. 그토록 바라던 꽃을 피웠으니까. 그다지 특별하거나(사실 처음부터 결말이 예상됐다.) 흡인력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짤막한 문장은 마치 시를 읽는 듯했다. 

중간에 매화와 나비가 나오는 그림은 옛그림을 보는 듯하다. 동양화로 그려진 동백꽃과 참새도 그렇고. 괜히 푸근하다고나 할까. 그런데 사람과 강아지는 그림 작가만의 개성을 살렸어도 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좀 더 진지한 고민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전체적인 바탕도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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