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난다면 살아난다
최은영 지음, 최정인 그림 / 우리교육 / 200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죽음을 다룬 어린이 책은 주로 남겨진 사람들의 아픔을 그린다. 상실의 고통을 나누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이 책은 죽음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대개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주인공이 누군가의 죽음을 감내하는 과정을 그리는데 반해 이 책은 딱히 누가 주인공이라고 꼬집어 말하기 힘들 정도로 여럿의 무게가 비슷하다. 그래도 굳이 주인공을 뽑으라고 한다면 근호와 동우라고 할 수 있다. 곧 죽음을 맞는 근호가 자신을 희생하고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주인공에 해당하는 인물이 죽음을 맞는다는 설정 자체가 기존의 동화와 다른 점이다. 

한 명은 가슴에 원망을 품고 삶에 별 의미를 두지 않았던 인물이고 또 다른 한 명은 너무 살고 싶지만 희망이 없어 보이는 인물이다. 그런 둘이 우연히 한 병원에 있게 되면서 동생 동우와 이상한 할머니를 매개로 둘을 둘러싼 가족이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도 약간 특이한 소재를 사용해서. 바로 혼과 이야기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산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도록 해주는 할머니를 등장시킨 것이다. 여기서 잠깐 영화 '사랑과 영혼'가 생각났다. 혼이 되어 돌아다니는 근호가 엄마 아빠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자신의 뜻을 알리기 위해 혹시 그 영화에서처럼 어떤 방법이 사용되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다행히 다른 방법을 썼다. 

근호네 가족은 함께 살지만 진정한 가족이라 할 수 없다. 언제나 못마땅하게 근호와 근호 엄마를 바라보는 할머니, 가정보다는 일이 우선이고 문제를 맞서 해결하기 보다는 회피하는 아빠, 오로지 공부만 강요하는 엄마, 거기다 자신의 생각은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기계처럼 공부만 하는 근호. 어쩜 이렇게 문제 종합선물세트 같은 구성원만 모아 놓았을까. 하긴 이 모든 것이 원인은 하나다. 서로 진정한 대화를 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깨닫게 된 계기가 바로 근호의 죽음이었다. 근호를 생각하면 얻는 것에 비해 잃은 것이 너무 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잠깐 물러나 생각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근호 가족이 화목하게 되었음은 물론이요, 형우가 새 심장을 받았고 다른 여러 사람이 장기를 받았으며 동우의 가족에게 희망을 주었다. 

살아 있을 때 열심히 살아야 하고 가능할 때 많이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이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기존의 죽음을 다룬 동화와는 확실히 다른 맛을 느꼈다. 다만 왜 결말에 가서는 모두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화목하게 잘 살았다고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 열린 결말이 당장은 답답하고 먹먹할지라도 오히려 현실성이 있어 보이는데 말이다. 혼이 되어 떠돌아다닌다는 설정의 허구성보다 근호의 온 가족이 너무 착하게 변한 것이 더 허구 같아 보이는 이유는 뭘까. 이렇게 약간의 불평을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수시로 훌쩍였고 괜찮은 책을 만났다는 뿌듯함은 여전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걸음 내딛다 보름달문고 33
은이정 글, 안희건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의외로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되는 집이 많은가 보다. 어린이 책에서 많이 다루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부모와 그로 인해 힘들어하는 아이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서로 소통이 안되는 것이다. 하긴 그게 어디 한 가정에서만 그런가. 현재 모든 곳에서 소통 부재를 탄식하는 걸 보면 가정이 작은 단위의 사회라는 말이 맞긴 맞나 보다. 가정에서부터 소통이 안되니 점차 단위가 큰 사회로 갈수록 그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리라. 이런 곳에서까지 이론을 확인하게 되다니 참 씁쓸하다. 

처음부터 소통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잠시 흥분했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가족끼리 소통이 안된다는 것이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힘든 것이며 또 얼마나 비합리적인 것인지 절로 깨닫게 된다. 희영이네 가족은 겉으로 보면 그냥 보통의 가정이다. 두 남매를 키우며 맞벌이 하는 부모님. 엄마는 직장에 다니지만 집에 오면 가정일에 충실하다. 사실 희영이 엄마가 회사에서 돌아올 때 장을 봐와서 바로 옷 갈아입고 저녁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뭔가 올라왔다. 똑같이 일을 하는데 누구는 집에 오자마자 밥 먹고 휴식을 취하는데, 왜 누구는 밥 하고 집안 일을 해야 하는 거지. 이건 뭐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과 똑같잖아. 하지만 현재 맞벌이 하는 집의 풍경이 대부분 이렇지 않을런지. 그나마 요즘은 남자들도 많이 깨달아서 함께 도와준다지만 아직도 남자는 '도와주는' 개념이지 '함께하는' 개념은 아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본다. 왜 희영이 엄마는 남편에게 그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걸까. 여기서는 전의 상황은 나오지 않고 그저 둘이 냉랭한 상태부터 시작을 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는데 남편이 들은 척도 하지 않은 건지 아니면 아예 시도도 하지 않은 건지 알 수 없다. 다만 희영이 엄마는 지금 몹시 불만이 가득찬 상태이며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에게 좋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엄마답게 아이들을 위해서 절대 이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들과 있을 때는 이야기하고 웃다가도 아빠가 들어오면 표정이 싹 바뀌고 말 한 마디 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모르긴 해도 아이들도 어느 정도 눈치 채는 것은 물론이요, 불안해서 눈치만 볼 것이다. 

희영이도 그런 상태에서 돌파구를 찾다가 우연히 엄마의 일기장을 보면서 소녀 시절 엄마를 만난다. 그리고 그것이 해결의 실마리가 된다. 그동안 엄마에게 자신의 속마음 뿐만 아니라 의견도 제대로 얘기하지 않던 희영이가 갑자기 엄마를 위로하고 조언을 한다는 부분이 너무 앞서간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소통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아주 바람직한 방향이었다. 엄마가 딸에게 용기를 주고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딸로 인해 엄마가 진정한 자신을 찾고 모두가 행복을 향해 가는 것을 보며 잠시 헷갈렸다. 대개 주인공에 대입하며 읽는데 이 책은 희영이에 대입하다가 잠깐 엄마로 옮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영이가 엄마를 보며 자신도 성장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아이들은 줄곧 희영이에게 대입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른이기 때문에 희영이 엄마에게 대입했나 보다.  

어쨌든 소통은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두 가지 큰 줄기가 함께 간다. 하나는 재준이에 대한 희영이의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엄마와 아빠의 문제다. 두 가지가 별로 연결고리도 없는데 서로 섞이는 듯하다가 나중에 엄마 문제로 넘어가면서 재준이 문제는 뒤로 밀려난다. 그러다 마지막에 결국 엄마 문제가 해결되고 나자 다시 재준이 문제가 다시 떠오른다. 한편으론 한 가지 이야기에만 너무 매달리면 단조롭게 느껴지기에 이처럼 주제는 같지만 소재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이야기가 있는 게 재미있을 것도 같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야기가 분산되고 읽고 나면 어느 하나에 빠지기가 쉽지 않은 단점도 있는 듯하다. 그것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은 작가의 몫일 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학교에 귀신이 산대요! - 저학년 중앙문고 93
헬레나 브로스 지음, 크리스텔 뢴스 그림, 최정근 옮김 /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지금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학교마다 괴담 한 두 가지씩은 꼭 있었다. 특히 학교는 공동묘지를 없애고 만든 경우가 많아서 더 그랬을 것이다. 또 화장실이 재래식이라 더 무서웠을 테고. 그런데 요즘 아이들에게도 그런 이야기가 있을까. 아이에게 들었던 것 같기도 한데 예전과는 많이 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처럼 학교에 귀신이 산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아 학교라는 공간은 예나 지금이나 어느 정도 공포를 갖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시종일관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 내일이면 초등학생이 되는 시리와 로바는 얼마나 설렐까. 곧 싫어할 것이 틀림없는 수학과 글쓰기 등 모든 것이 기대되니 말이다. 이미 학교를 다니고 있는 비케의 형 알렉스를 따라 학교를 둘러보는데 알렉스는 계속 겁을 준다. 뭐, 원래 남자아이들은 짖궂은 법이니까. 

그런데 문제는 동생들을 놀리던 알렉스마저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과학실에 귀신이 산다고 놀리던 차에 때마침 거기서 해골을 보게 되었으니 오죽 놀랐을까. 결국 과학 기자재를 보고 오해한 것으로 밝혀졌고 시리와 로바, 비케는 즐겁게 학교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책을 읽으며 종종 내용보다는 그 나라의 환경에 감탄하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한다. 이 책도 그렇다. 하긴 복지가 잘 되어있고 교육도 이상적이라는 스웨덴이니 오죽할까만 그래도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학교 가기 전에 미리 급식도 먹어보고 선생님이 다정하게 환영하는 모습이나 교장 선생님이 돌아다니며 입학 축하 선물(그것도 아이스크림)을 주는 모습을 보면 우리 아이들도 부러워하지 않을까. 우리의 초등학교 입학식과 너무 대조적인 모습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난 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들에게 학교란 즐거운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내용과는 상관없는 이런 것에 더 끌리는지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용서해, 테오 어린이작가정신 저학년문고 17
질 티보 글, 주느비에브 코테 그림, 이정주 옮김 / 어린이작가정신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의 이름이 낯설지 않다. 작가소개를 보니 <마티유의 까만색 세상>을 쓴 사람이란다. 시각 장애인이 세상을 보는 방법에 대한 책이었지, 아마. 그럼 이 책은 무엇에 관한 내용일까. 이 작가의 또 다른 책인 <네 잘못이 아니야, 나탈리>라는 책도 평범한 이야기는 아니지 않은가. 은연중에 다른 사람이 외면하거나 부담스러워하는 소재를 다루는 작가라는 생각이 자리잡았던 터라 이 책도 일반적인 아이들의 행동을 다룬 책은 아닐거라 짐작했다. 

그리고 읽고 나서 역시 내 짐작이 맞았다는 걸 확인했다. 예전에 살던 앞동네에서 교통사고가 있었다. 커다란 트럭이 후진을 하는데 그 뒤에 아이가 신발끈을 묶고 있었고(하필이면 거기서), 그 사람은 아이를 보지 못했고 결국 사고가 났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죽은 아이와 그 아이의 부모도 안 됐지만 그 운전수가 어찌나 안됐던지. 누구의 잘못을 탓하기 전에 먼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도 그런 사고에 대한 이야기며 용서에 대한 이야기다. 

형을 사고로 잃어버린 테오는 깊은 슬픔에 잠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아저씨, 형을 죽게 만든 아저씨가 너무 밉다. 어찌 안 그럴까. 가족은 모두 사고 이후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한다. 그래서 중반까지 슬픔에 쌓인 가족의 무거운 이야기가 이어진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서로 각자의 슬픔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다.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다. 

그러나 나중에 사고를 낸 아저씨의 집을 찾아가 여자 아이가 하는 이야기는 가슴 찡하다. "우리 아빠도 오빠의 형을 죽게 했다는 것 때문에 죽어가고 있어. 오빠가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면 죽은 사람은 모두 네 명이야."라는 말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다른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충분하고 정확하다. 결국 테오도 아저씨를 미워한다고 해서 슬픔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아니, 오히려 아저씨를 마음 속으로 용서하고 나니까 슬픔이 줄어든 것 같다고 한다. 

그 후로도 테오 가족은 형을 생각하고 슬픔에 잠기기도 하지만 이제 슬픔에서 서서히 벗어나 평범하게 살기 시작한다. 물론 가끔 형을 생각하면 보고 싶고 슬프지만 이제는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고 현실을 인정한다. 화가 나는 마음과 용서하게 되는 과정을 긴 설명없이 적절한 대화와 기분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만나 상대방을 이해하는 부분이 마음을 찡하게 만든다. 진정한 용서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이 책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사고로 상실을 경험한 모든 이가 읽어도 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설공주와 마법사 모린 사계절 중학년문고 14
임태희 지음, 김령언 그림 / 사계절 / 200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는 말한다. 비록 백설공주가 나오지만 주인공은 결코 아니라고. 그렇다면 마법사 모린이 주인공일까. 이쯤되면 모린이 옛이야기 속에 나오는, 백성공주와 대립된 어떤 인물일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모린은 단지 주인공 아이의 이름일 뿐이다. 외국 이름 같아서 현실의 인물이 아니라 어떤 이야기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로 생각했던 것이다. 

모린의 반은 학예회 때 부모님을 초청해서 백성공주 연극을 하기로 했다. 거기서 모린은 백설공주의 엄마인 왕비 역을 맡았다. 드디어 공연하는 날, 모린은 엄마를 기다리지만 공연 시작 시간이 되었는데도 엄마가 오시지 않는다. 모린은 온 신경을 거기에 쓰느라 무대에 나갈 때부터 실수연발이다. 게다가 거울을 바라보며 말을 해야하는데 엉뚱한 말을 하고 만다. 그리고 이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현실의 모린이 마법사 모린으로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되었으며 환상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가 된다. 

그렇게 환상 세계로 들어간 모린은 파루시챠의 왕비라는 것을 깨닫는다. 대개의 이야기가 그렇듯 얼떨결에 환상 세계로 들어가면 다른 사람들이 본인의 정체를 알려주곤 한다. 처음엔 재미있게 지냈으나 왕이 전쟁에서 돌아와 모린에게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태도를 보이자 왕관을 버리고 그곳을 떠난다. 거추장스런 옷은 잘라 편하게 만들고 멋진 구두는 벗어버린 채. 이것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자하는 의지를 표현한 것일 게다. 또 그 와중에도 거울 속의 남자를 두고 갈 수가 없다며 거울을 챙기는 것으로 보아 남의 아픔을 지나치지 못하고 함께 아파할 줄 아는 순수한 마음도 갖고 있다. 

이처럼 모린은 환상 속에서 모든 일을 주체적으로 해결한다.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애쓰며 때로는 가지고 있는 온갖 정보와 지식을 사용할 줄도 안다. 그렇다면 현실의 모린은 어떨까. 엄마가 안 보이자 초조해하고 상심하는 것으로 보아 그다지 용감한 편은 아닌가 보다. 그러나 환상 속에서 스스로 일을 멋지게 해결하고 돌아온 모린은 이제 예전의 모린이 아니라 마법사인 모린 페르소나가 되었다. 그러니까 늦게 온 엄마를 이해하는 것이리라. 그것도 작가의 눈높이가 아닌 모린의 눈높이에서 말이다. 환상 세계에 빠져 있다 돌아온 모린이 꿈을 꾼 것이라거나 혼자만의 상상이었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작가는 모린의 환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적절히 인정함으로써 둘을 충족시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