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한 올 허용할 틈이 없다.

   間不容髮(간불용발)

 

 

한나라 때 사람 매승(枚乘)오왕에게 드리는 말씀(上書諫吳王)이라는 글에 보면 하늘과의 관계를 끊으면 다시는 연결할 수 없고, 깊은 연못에 빠지면 다시 나올 수 없습니다. 나오고 못 나오고는 머리카락 한 올 허용할 틈이 없습니다는 대목이 있다. ‘간불용발은 시간이 긴박하고 정세가 위급함을 가리키며, 때로는 전혀 흠이나 파탄이 없음을 비유하기도 한다. 송나라 때 정치가 왕안석(王安石)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글이나 시의 격식을 갖추는 데 엄격하여 머리카락 한 올 허용할 틈이 없었다고 한다. 후자의 의미에서는 선녀(하늘)가 지은 옷에는 바느질 흔적이 없다는 뜻의 천의무봉(天衣無縫)이란 성어와 일맥상통한다. 사기』 「장이진여열전(張耳陳餘列傳)에도 장군께서는 시간을 잃지 마십시오. 시간은 쉬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비슷한 뜻이다. 그래서 간불용식’(間不容息)으로도 쓴다.

 

상서간오왕(上書諫吳王)

 

 

 

 

 

중국사의 오늘 :

1980621

전장 1,300킬로미터에 이르는 상해 - 홍콩 직항 항공 노선이 개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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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성의 동문

   夷門(이문)

 

전국 시대 위()나라의 수도 대량(大梁)의 성문 중 동문은 이문이라 불렸다. 이 이문을 관리하는 사람은 후영(侯嬴)이었는데, 말하자면 강호의 고수와 같은 존재였다. 위나라의 권력자 위 공자 무기(無忌)는 이 후영을 자신의 상객으로 모시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수레를 몰고 후영을 찾아갔다. 이때 위 공자는 수레의 왼쪽 자리를 비워 놓은 채 후영을 기다렸다. 여기서 허좌이대’(虛左以待)라는 유명한 고사성어가 나왔다. 글자 그대로 왼쪽을 비워 놓고 (사람을) 모시다란 뜻이다. 귀한 사람을 모시거나 대접할 때 취하는 극진한 예절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문의 문지기 후영은 죽음으로 위 공자를 도왔다. 훗날 이문은 의로운 선비를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고, 의미가 확대되어 은혜를 알고 이를 갚는 의로운 사람 또는 신의를 비유하는 말이 되었다.

 

사기』 「위공자열전

 

 

 

 

 

중국사의 오늘 :

38620(동한 광무제 건무 144월 신사)

공자의 후손 공지(孔志)를 포성후(褒成侯)에 봉했다. 역사적으로 유가를 국책 이념으로 받든 것은 한 문제 때 시작되었고, 공자의 후예에게 작위를 준 것은 서한 평제 때 시작되어 거의 모든 왕조가 이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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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색 염료는 남초()에서 채취하지만 그 색은 남초보다 푸르다.

  靑出於藍(청출어람)

 

청출어람은 후천적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훌륭한 성어로 정착했는데, 당초 순자도 배워야만 진보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성어는 다시 학생이 선생을, 후배가 선배를, 후손이 조상을 뛰어넘는 경우로까지 의미가 확대되었다.

북사』(北史) 「이밀전을 보면 후위 시대 때 이밀(李謐)이라는 인물과 관련하여 이 성어가 등장한다. 이밀은 공번(孔璠)을 스승으로 삼아 학업에 정진했는데 몇 년 뒤에는 스승의 학문을 넘어섰다. 이에 동창들은 이밀을 두고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이 덜 푸르니 스승이 어찌 항상 스승일까 보냐라고들 했다. 당서(唐書) 유학전(儒學傳)에는 개문달(蓋文達)이란 인재를 두고 보항(寶抗)이란 자가 순자』 「권학의 구절을 인용하여 얼음은 물이 얼어서 그렇게 되었지만 물보다 더 차다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빙한어수’(氷寒於水)란 성어가 탄생했고, 청출어람과 함께 붙여서 사용하기도 했다. 창조는 입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청출어람은 물론 홍출어람 할 수 있는 사회적 인식과 기반이 전제되어야 한다.

 

순자』 「권학(勸學)

 

 

 

 

 

중국사의 오늘 :

1842619

영국군이 아편전쟁 중에 상해를 공격하여 대대적인 약탈을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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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hkoh 2013-06-23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출어람..... 좋은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겠지만 혹 잘못 이해될까 걱정도 되는군요.

김영수 2013-06-24 0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무슨 걱정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창의력을 끌어내려면
홍출어람도 가능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드린 말씀입니다.
 

장작을 등에 진 채 책을 읽다.

   負薪讀書(부신독서)

 

서한 시대 관리였던 주매신은 젊어서 너무 가난하여 땔나무를 해다가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책을 좋아했던 주매신은 다른 일은 하지 않고 늘 땔나무를 지고 나르면서 틈틈이 공부를 했다. 고생을 견디다 못한 아내는 주매신 곁을 떠났다(훗날 관리로 출세한 주매신은 자신의 곁을 떠난 아내에게 모욕을 주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었다). 이 일화는 언제 어디서든지 부지런히 공부하라는 고사지만 때로는 때를 만나지 못한 가난한 생활을 가리키기도 한다. 또는 이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성공하라는 격려의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부신대신 부초’(負樵)로 쓰기도 하지만 뜻은 매한가지다. 이 고사는 중국에서 아동들에게 문자(文字)를 가르치는 데 사용했던 대표적인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삼자경(三字經)에 수록되어 있는 유명한 고사의 하나다.

 

한서』 「주매신전(朱買臣傳)

 

 

* 주매신

 

 

 

 

 

 

중국사의 오늘 :

828618(당 문종 대화 25월 정해)

문종이 환관을 공주들에게 보내 복장 등을 단속했다. 지나친 치장이나 좁고 짧은 복장을 하지 말라는 것이 주요 단속 내용이었다. 당나라 때는 북방 민족의 풍조가 널리 퍼져 중원 왕조의 전통적 복장에도 영향을 적지 않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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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을 잘라 약에 섞다.

   剪須和藥(전수화약)

 

고구려 정벌에도 참전한 바 있는 당나라 때의 명신 이적에 대한 당 태종의 신임은 대단했다고 한다. 이정(李靖)과 함께 당나라 무장의 쌍벽을 이루었는데, 태종은 나라의 큰일을 그에게 위임할 정도였다. 그런 이적이 갑작스럽게 병이 났다. 의사는 수염을 태운 재를 약으로 쓰면 치료할 수 있다는 희한한 처방을 내렸다. 그러자 태종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수염을 잘라 약으로 쓰도록 했다. ‘전수화약은 훗날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자기 몸처럼 아끼는 의미의 성어로 정착했다. 전국 시대 위나라의 명장 오기는 부상당한 병사의 피고름을 자기 입으로 빠는 함혈연창’(含血吮瘡)이란 고사성어를 남겼고, 한나라 초기의 명장 이광(李廣)은 부하 병사들이 먼저 마시고 입기 전에 자신이 먼저 마시고 먹는 법이 없었던 명장이었다. 역사상 아랫사람을 자기 몸처럼 아낀 리더 치고 실패한 리더는 거의 없었다.

 

신당서』 「이적전(李勣傳)

 

 

* 이적

 

 

 

 

 

 

중국사의 오늘 :

1900617

8국 연합군이 중국 대고(大沽) 포대를 강점했다. 이로써 연합군은 중국을 대거 공격하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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