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 솜씨를 구걸하다

 

임걸(林杰, 831847)*

 

칠석 푸른 별빛 가득한 밤하늘을 바라보니,

견우직녀 오작교를 건너고 있네.

집집마다 밝은 달 바라보며 바느질 솜씨 달라고 기원하네.

셀 수 없는 붉은 비단실이 바늘귀를 지나가네.

 

 

 

 

 

乞巧

 

七夕今宵看碧宵

牽牛織女渡河橋

家家乞巧望秋月

穿盡紅絲幾萬條

 

 

* 임걸은 당나라 후기의 시인으로 복건 출신이다. 어릴 적부터 총명하여 여섯 살 때 이미 부와 시를 쓸 줄 알았는데 붓만 들었다 하면 바로 문장이 되었다고 한다. 서예에도 조예가 깊었으나 17세로 요절했다. 이 때문에 전당시에 수록된 그의 시는 단 두 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 시는 칠석에 민간에서 직녀를 향해 바느질을 잘하게 해 달라고 기원하던 풍습을 절묘하게 묘사한 것이다. 이 풍습은 당송 시대에 아주 성행했다(바늘에 실을 꿰어 달을 향해 찔러 넣는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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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아래, 얼음 아래의 사람

   月下氷人(월하빙인)

 

당나라 때의 기이한 소설 속유괴록(또는 속현괴록)에 보면 위고라는 청년이 송성의 달빛 아래에서 책을 읽고 있는 노인을 만나 지금 송성 밖 채소 파는 노파가 안고 있는 젖먹이가 자신의 짝이 될 것이라는 황당한 예언을 듣는다. 물론 위고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14년 뒤 자신의 아내가 된 태수의 딸로부터 들은 기이한 인연에 대한 이야기에서 노인의 예언이 사실이 되었음을 알고는 놀란다.

 

진서에는 색담이라는 용한 점쟁이 이야기가 나온다. 색담은 얼음 위에 서 있는데 얼음 아래의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영호책의 꿈을 혼사에 관한 꿈이라 해몽했다. 색담의 해몽대로 영호책은 이듬해 봄 결혼을 했다.

 

이 두 가지 신이한 이야기에서 월하빙인이란 단어가 나왔다. 중매쟁이란 뜻이다. 우리는 흔히 매파(媒婆), 뚜쟁이, 마담 뚜 등으로 비하의 의미를 담고 말하기도 한다. 성업 중인 결혼 중개소의 이름으로 월하빙인을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속유괴록(續幽怪錄), 진서(晉書)

 

 

 

 

 

중국사의 오늘 :

1981630

황하에 전장 5.7킬로미터의 가장 긴 철교, 제남 황하 철교가 개통되었다. 이 철교는 1949년 신중국 건국 후 세워진 열세 번째 철교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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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인지 보리인지 가릴 줄 모른다.

    菽麥不辨(숙맥불변)

 

좌전성공 18(기원전 573)의 일이다. ()나라 귀족들 사이에 정쟁이 벌어졌다. 권신들은 진 여공(厲公)을 죽이고 양공(襄公)의 증손인 14세의 주자(周子)라는 어린애를 국군으로 세웠다. 실권을 장악한 자들은 주변의 반대를 무마하기 위해 주자는 총명하고 재질이 뛰어난 반면 그 형은 아둔해서 임금이 될 수 없다며 여론을 조작하고 선전했다. 그러면서 주자의 형은 콩과 보리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다고 했다. 우리가 흔히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에게 쓰는 쑥맥이란 단어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당초 아주 부정적인 의미로 정치적 선전에 동원되었던 숙맥불변이 우리나라에 와서는 쑥맥’(표준어는 숙맥)으로 변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의미도 한층 누그러져 그저 어리숙한 사람, 그것도 주로 남자에 대해 쓰는 단어가 되었다. 그것도 마치 우리말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으니 말과 단어의 생명력에 감탄하게 된다.

 

좌전

 

 

 

 

 

중국사의 오늘 :

1900629

청 정부에서 외국 공사들에게 일주일 전 발생했던 의화단의 외국 공사관 공격이 강압에 의한 것이라며 양해를 구했다. 의화단 사건은 서태후(자희태후)가 의화단을 이용하여 자신을 지지하지 않고 광서제를 지지하는 외국 열강들을 공격했다가 열강들의 반응이 격렬하자 서둘러 물러선 것이다.

 

* 처형된 의화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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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을 구걸하다.

   乞骸骨(걸해골)

 

걸해골은 해골을 돌려달라고 간청한다는 뜻이다. 자리에서 물러나 은퇴하고 싶을 때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다. 간곡한 사직(辭職)의 의지를 비유하는 말이라고 보면 된다. 초한 쟁패 때 항우는 진평의 이간계에 빠져 책사 범증을 의심하기에 이른다. 이에 범증은 천하의 대세가 이미 유방 쪽으로 기울었음을 직감하고는 해골을 내려주시면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겠다며 사직을 요청했다. 여기서 해골을 내리다사해골’(賜骸骨)이란 표현이 나왔고, 이것이 걸해골로 변한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던 범증은 화를 견디지 못하고 도중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항우에게 해골을 내려달라고 청한 것이 말 그대로 해골이 된 것이다. 범증의 예에서만 보면 걸해골죽기를 간청한다는 뜻이 더 가까워 보인다. 봉건 체제에서 신하의 몸은 임금과 사직에 바친 것이라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러니 해골을 돌려달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충직한 선비의 결기가 느껴지는 말이다.

 

사기7 항우본기

 

 

* 범증

 

 

 

 

 

 

중국사의 오늘 :

202628(동한 헌제 건안 7년 경술)

동한 말기 최고 가문 출신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원소(袁紹)200년 관도(官渡) 전투에서 조조에게 패한 이래 병으로 앓다가 죽었다.

 

1840628, 중국과 영국의 아편전쟁이 정식으로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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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8 2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28 2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김영수 2013-07-01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어깨가 무겁습니다.
제 글은 알라딘 외에 블로그가 있으니까
오셔서 한번 둘러보시기 바랍니다.(네이버 블로그이고 '김영수의 사기 세계'입니다.)
제 강연 스케줄 등도 다 블로그에 게시하니까
있을 때 꼭 오시기 바랍니다.
매년 봄 가을로 표준협회와 함께 '김영수의 사기경영'이라는
강의를 12주씩 합니다.
가을 학기는 9월 둘째 주 화요일 시작되고
그 전에 공개 강의가 한 번 있을 예정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집 주소 알려주시면 책 한 권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또
 

두꺼운 얼굴

   强顔(강안)

 

서한 시대 유향(劉向)이 편집한 옛 이야기책인 신서에 보면 전국 시대 제나라의 추녀 무염(無鹽) 이야기가 나온다. 무염은 너무 못생겨 남자들이 외면한 탓에 출가할 나이를 훌쩍 넘겼다. 하지만 지혜로웠던 무염은 제나라 선왕(宣王)을 찾아가 국정에 대해 충고하여 선왕의 왕비가 된다. 당시 무염이 궁을 찾아 왕을 뵙기를 청하자 대신들은 모두 낄낄거렸고, 그중 한 대신은 그 여자 정말 천하에 낯짝 두꺼운 여자일세라며 비아냥거렸다. 여기서 강안이란 단어가 나왔다. 얼굴이 너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뜻으로 후안무치(厚顔無恥)와 상통한다.

 

그런데 20세기 초 중국이 유렵 열강들에게 침탈을 당하고 있을 때 이종오(李宗吾)란 학자는 중국이 이렇게 약해진 것은 유교의 체면 문화 때문이라면서 두꺼운 낯짝, 검은 심장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후흑학’(厚黑學)을 주장하여 큰 반응을 얻은 바 있다. 얼굴이 못생겼다고 그냥 포기하고 주저앉았더라면 무염은 그저 추녀의 하나로 이름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녀의 강안이 있었기에 그나마 제나라 선왕 때는 정치와 문화가 활기를 찾았다.

 

신서(新序)

 

 

* 무염과 제 선왕

 

 

 

 

 

 

중국사의 오늘 :

1154627(남송 고종 소흥 24, 금 해릉왕 정원 25월 정묘)

금나라가 교초고(交鈔庫)를 설치하여 교초, 즉 지폐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금나라는 요와 송의 동전을 사용하다가 이로부터 동전과 지폐를 함께 사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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