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거두고 보존하다.

   兼收幷蓄(겸수병축)

 

송나라 때 성리학 집대성자 주자(朱子)가 올린 글 중에 나오는 구절이다. 주자는 이 글에서 소인이 나오면 군자는 물러날 수밖에 없고, 군자와 가까워지면 소인은 멀어질 수밖에 없으니 함께 거두고 보존하여 서로 해로움을 주지 않을 수는 없다고 했다. 군자와 소인은 함께할 수 없다는 말이다. 고지식한 계급관과 당파성에 입각하여 인간을 군자 부류와 소인 부류로 나누는 군자소인론을 지금에 와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런 봉건적 기준을 배제하고 이 대목을 음미하면 정말이지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부류가 우리 주위에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더욱이 공교롭게 이런 부류들이 내세우는 사람과 사물에 대한 판단 기준이란 것이 봉건 시대 계급관과 당파성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욕(私慾)으로 오염된 채 말이다. ‘겸수병축겸수병채’(兼收幷采), ‘구수병축’(俱收幷蓄)으로도 쓰며, 각종 서로 다른 내용의 사물을 받아들이고 보존한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기유의상봉사(己酉擬上封事)

 

* 주자(주희)

 

 

 

 

 

 

중국사의 오늘 :

195775

인민일보에 마인초(馬寅初)신인구론이 발표되었다. 마인초는 이 글에서 인구가 큰 자원이긴 하지만 동시에 큰 부담이므로 맹목적으로 증가를 주장해서는 안 되고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인구 억제 주장은 신맬더스 인구론이란 오해와 정치권에 의한 박해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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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책 2013-07-05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의 좋은 글을 매일 읽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곳 서재에 쓰신 글들은 며칠 전부터 거꾸로 거슬러가며 읽다가 방금 전에 1월의 첫 글까지 모두 읽게 되었네요. 읽으면서 너무나 좋은 말들이 많아서 배울 점이 많아서 유익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기 읽기를 좋아하는 제 친구에게도 이곳의 글에 대해 알려주었더니, 이에 대해 서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기와 자치통감과 같은 일부 책들에 대해서만 일부 읽어본 적이 있을 뿐 아는 것이 별로 없었는데, 다행히 제가 관심을 가진 분야에 대해 이렇게 좋은 글을 써 주시고 계신다니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며칠 전에는 다른 곳의 블로그가 있다고 직접 설명해 주셨는데도 이곳의 글을 읽느라 찾아보지 못했는데, 이제 그곳의 좋은 글들도 읽으러 가보려고 합니다. 즐겨찾기를 해서 보기 좋게 꺼내두었으니 자주 와서 읽고 삶의 좋은 교훈으로 삼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김영수 2013-07-08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매일매일 올리려니까 부담이 여간 아닙니다.
좋은 지적 부탁드립니다.
 

준마는 늘 멍청한 자들이 탄다.

   駿馬每駄癡漢走(준마매태치한주)

 

중국 명나라 때 사람 사조제(謝肇淛)가 지은 수필집 오잡조에 인용된 당인(唐寅)의 시 가운데 한 대목이다. 명나라 시대 최고의 재주꾼이었던 당인의 시 전문을 소개하면 이렇다.

 

준마는 늘 멍청한 자들을 태우고 달리며, 잘난 아내는 늘 못난 남편과 짝이 되어 산다네. 세상 불공평한 일들 하늘이 지었네 아니네 하지 말라.”

 

당인은 과거에서 억울하게 부정에 연루되어 자격을 박탈당한 뒤 술과 예술로 세월을 보내면서 날카로운 풍자시를 남겼다. 이 시도 그중 한 편이다. ‘준마매태치한주는 흔히 다음 구절인 교처상반졸부면’(巧妻常伴拙夫眠)과 쌍을 이루며, 줄여서 준마치한’(駿馬痴漢), ‘교처졸부’(巧妻拙夫)라고도 한다. 이 말은 수호지(水滸志)에서 반금련의 입을 통해 그대로 인용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세상사 불공평을 비유한 말이지만, 어울리지 않는 자리와 권력을 누리는 자들에 대한 씁쓸한 풍자이기도 하다.

 

오잡조(五雜俎)

 

 

 

 

 

중국사의 오늘 :

43674(오대 후당 장종 동광 36월 임신)

봄부터 가뭄이 들다 이날 비로소 비가 내렸다. 그런데 이 비가 75일을 계속해서 내리는 통에 모든 하천이 넘치는 등 엄청난 재난이 닥쳤다. 그러나 환관들은 장종(莊宗)을 졸라 엄청난 비용이 든 높은 누각을 지어 더위와 자연재해를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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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스리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 () 다스리는 법은 없다.

   有治人, 無治法(유치인, 무치법)

 

순자』 「군도(君道)의 한 대목이다. 바로 앞에는 어지럽히는 군주는 있어도 어지러운 나라는 없다는 대목이 눈에 띤다. 아무리 좋은 법과 제도를 갖추어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으면 법과 제도는 유명무실해진다.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인 진나라는 거의 완벽한 법과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진 시황은 그것을 더욱 확대하고, 여기에 각종 문물제도를 통일하는 놀라운 시스템을 창안했다. 하지만 진나라는 20년을 못 버티고 단명했다. 법과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던 까닭이다. 처음부터 어지러운 나라는 없다. 못난 리더가 자리에 앉아 제도와 법을 어지럽히고,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 자기들 멋대로 법을 유린하면 나라는 어지러워지기 시작한다. 법을 가장 잘 아는 자들이 법을 가장 많이 어기고 악용하는 이유는 그 사람의 법의식이 삐뚤어져 있고, 사사로운 욕심에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순자

 

 

 

 

중국사의 오늘 :

83973(당 중종 경룡 46월 임오)

() 황후와 안락공주(安樂公主)가 모의하여 음식물에 독을 타 중종을 해쳤다. 당시 조정은 위 황후의 음란함과 안락 공주의 권력 농단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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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마오

   三毛(삼모)

 

머리카락 단 세 올의 어린 남자아이가 갖은 고생을 하며 이곳저곳을 떠도는 유랑기를 만화로 그린 삼모유랑기1947대공보(大公報)에 연재되기 시작하여 10억 중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문예 작품으로는 가장 강렬한 반응과 눈물을 자아냈던 이 작품의 주인공이 바로 삼모’, 중국말로 싼마오이다.

 

부모 친척도 없이 혼자 몸으로 정처 없이 세상을 떠돌며 온갖 핍박과 천시에도 불구하고 착한 마음을 잃지 않고 세파를 견뎌 내는 싼마오의 고군분투기는 내전 등에 시달리는 중국인의 마음을 씻어 낸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반응을 몰고 왔다. 만화를 그린 장낙평(張樂平)은 머리카락 세 올의 소년 형상을 통해 냉혹하고 잔인하며 추악하고 불공평한 세태를 신랄하게 폭로하면서도 인간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선량한 동정심을 강렬하게 자극하여 최고의 만화가로 거듭났다.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중국인에게 싼마오는 영원이 잊을 수 없는 중국인을 대변하는 이미지로 깊게 각인되어 있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삼모유랑기(三毛流浪記)

 

 

* 삼모(싼마오)

 

 

 

 

 

 

중국사의 오늘 :

62672(당 고조 무덕 96월 경신)

당시 진왕(秦王)이었던 이세민(李世民)이 현무문(玄武門)에서 정변을 일으켜 형제들을 죽이고 당나라의 권력을 장악했다(형이자 태자였던 이건성李建成은 이세민이 직접 활로 쏘아 죽였다). 얼마 뒤 이세민은 고조 이연(李淵)의 선양을 받아 황제로 즉위하니 이가 태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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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사람 또는 서른두 살

   二毛(이모)

 

쉬운 두 글자로 된 단어이지만 옛 기록들에는 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흥미롭다. 먼저 좌전희공(僖公) 22(기원전 638)에 기록된 홍수(泓水) 전투에서 송 양공(襄公)군자는 상처 입은 사람을 다시 다치게 하지 않으며, 머리가 반백인 사람을 사로잡지 않는다라고 했다. 양공이 말한 머리가 반백인 나이의 노인을 이모’(二毛)라 한다. 검은 머리카락과 흰 머리카락이 반반이란 뜻에서 이모라고 한 것 같다.

 

한편, 중국 역대 최고 미남자로 꼽히는 반악(潘岳)이 쓴 추흥부(秋興賦)에는 서른두 살에 처음 흰 머리카락 두 올을 보았네라고 하여 글자 그대로 머리카락 두 올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머리카락 두 올’, 이모가 후대에 와서 나이 서른둘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평균 수명을 고려할 때 천 수백 년 전 남자 나이 서른둘이면 흰 머리카락이 날 만도 했다. 반악은 서른둘에 흰 머리카락이 생겼다며 회한 어린 심경의 일단을 내비쳤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단어에서 이모지년’(二毛之年), 서른두 살의 나이란 표현도 파생되었다.

 

좌전

 

 

 

 

 

중국사의 오늘 :

58571(수 문제 개황 55월 갑신)

수 문제가 장손평의 건의를 받아들여 군현에 의창(義倉)을 설치하라는 조서를 내렸다. 의창은 흉년과 재난을 대비하여 빈부에 따라 차등 있게 곡식을 거두어 비축하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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