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보가 해와 경주를 하다.

   夸父逐日(과보축일)

 

신비한 신화와 이색적인 풍물을 잔뜩 소개하고 있는 기이한 지리서 산해경』 「해외북경(海外北經)에 보면 과보에 관한 신화가 소개되어 있다. 과보가 태양과 경주를 했는데 해 질 무렵이 되었다. 목이 말라 황하(黃河)와 위수(渭水)의 물을 마셨으나 그것으로는 부족하여 북쪽 대택(大澤)의 물을 마시러 가다 이르기 전에 목이 말라 죽었다. 과보가 버린 지팡이가 변하여 등림(鄧林, 큰 숲)이 되었다. 이 신화는 자연을 정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를 반영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역량은 따져 보지 않고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거나 도전하는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과보축일은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다가 태양까지 가려다가 태양열에 날개가 녹아 에게 해에 떨어져 죽었다는 이카로스를 떠올리게 한다. 이카로스의 날개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상징한다면, ‘과보축일은 인간의 무모함이 때로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한다는 보다 진취적인 의미를 함축한다. ‘과보추일’(夸父追日)로도 많이 쓴다.

 

산해경(山海經)

 

 

* 과보추일

 

 

 

 

 

 

중국사의 오늘 :

756715(당 현종 천보 156월 병신)

안녹산 반란군의 장안 진입으로 서촉(西蜀)으로 피난 가던 현종(玄宗)의 일행이 이날 마외역(馬嵔驛)에 이르렀다. 현종을 수행하던 일행이 양 귀비(楊貴妃)를 죽이라고 요구했고, 양귀비는 목을 매어 죽었다(향년 38).

 

* 양귀비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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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에 오르다.

   登龍門(등용문)

 

학원 이름으로 등용문이 많이 쓰이는 까닭은 이 단어가 과거 급제를 비유하기 때문인데, 이 단어에 얽힌 유래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후한서이응전(李膺傳)의 주석에는 이 단어의 유래가 섬서성과 산서성의 경계에 있는 나루터 하진(河津)에서 유래되었음을 전한다. 황하가 거세게 흐르는 이곳의 물살을 헤치고 상류로 오르는 물고기는 용이 된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등용문이란 단어가 나왔고, 명망이 높은 사람을 비유하는 단어가 되었다. 이후 과거 급제를 비유하는 단어로 의미가 확대되었다. 용문이란 별명을 가진 하진은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이 태어난 곳이다. 사마천은 사기』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서 스스로 용문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그리고 그 자신이 역사학의 거대한 용이 되었다. 지명에서 전설이, 아니면 전설에서 지명이 탄생했고 이런 인문 정신의 세례를 받고 인재들이 탄생하나 보다.

 

후한서

 

 

* 등용문

 

 

 

 

 

 

중국사의 오늘 :

612714(수 양제 대업 86월 기미)

수나라 양제(煬帝) 양광(楊廣)이 고구려 정벌에 나서 이날 요동성(지금의 요령성 요양)에 이르렀다(1차 고구려 원정). 이 원정에서 수나라는 고구려 명장 을지문덕의 전술에 걸려 살수에서 참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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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은 백성의 표본이다.

   廉者, 民之表也(염자, 민지표야)

 

북송 시대의 명신이자 중국 역사상 가장 엄정한 판관(判官)이었던 철면무사(鐵面無私) 포증(包拯)은 청천(靑天)이란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깨끗한 청백리였다. 그는 탐관오리를 기용하지 말기를 간청하는 글에서 청렴은 백성의 표본이요, 탐욕은 백성의 도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공직자의 공사 구분을 가르는 기준을 탐욕으로 본 것이다.

송나라 시대 구국의 영웅이었던 명장 악비(岳飛)는 천하가 언제 어떻게 하면 평안해지겠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문신이 돈을 사랑하지 않고, 무신이 죽음을 아끼지 않으면 천하는 태평해질 것이다!포증이든 악비든 의식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두 사리사욕을 버리고 공사를 확실하게 가릴 줄 아는 기본기를 주문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것이 나라의 존망과 직결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걸불용장리(乞不用贓吏)

 

 

* 포증(포청천)

 

 

 

 

 

 

중국사의 오늘 :

815713(당 헌종 원화 106월 계묘)

성덕(成德, 지금의 하북성 정정) 절도사 왕승종(王承宗)이 자객을 시켜 재상 무원형(武元衡)을 죽였다. 무원형은 당시 절도사를 중심으로 한 지방 세력 약화를 위해 삭번(削藩)을 추진하고 있었다. 후임 배도(裴度)가 일을 이어받아 완수하긴 했지만 지방 세력은 갈수록 기승을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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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일에서 사욕을 꾀하면 모든 일에서 사욕을 꾀하게 된다.

   一事私, 百事之私隨之(일사사, 백사지사수지)

 

명나라 때의 청백리 해서(海瑞)에게 누군가 법을 어겨서라도 일을 처리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해서는 이 관청에 25명이 지켜보고 있는데 그게 가능하겠는가? 한 가지 일에서 사사로운 욕심을 꾀하기 시작하면 모든 일에서 사욕을 부리게 된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거짓으로 대하는 것이 옳은가, 사실대로 하는 것이 옳은가라고 말했다. 청백리 해서는 수도에 들어가 조회에 참석하는 일부터 상급자와 만나는 일, 외부 순시, 접대와 관련한 지출 등등을 모두 명문으로 상세히 규정하여 자신은 물론 관리들이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못하게 했고, 또 상관에게 아부하거나 뇌물을 주지 못하게 했다. 해서는 무능하고 타락한 관료들과 어울리지 못해 결국 조정에서 배척당해 한직을 전전했지만 부정이나 불의와는 결코 타협하지 않았던 그의 정신은 지금까지 큰 귀감으로 전해지고 있다.

 

복필송파(復畢松坡)

 

 

* 해서

 

 

 

 

 

 

중국사의 오늘 :

167712(동한 환제 영강 원년 6월 경신)

천하에 대사면령을 내려 당고(黨錮)를 해제했다. 이로써 1당고의 화()’가 끝났다. ‘당고의 화166년 환관 세력들이 자신들을 공격하는 지식인들을 당파로 몰아 죽이거나 옥에 가두고 관련자들을 평생 관리가 될 수 없게 배척한 사건을 말한다. 이날 환제는 이들을 사면하긴 했지만 고향으로 돌아가 평생 나오지 못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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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고 조심하다.

   戰戰兢兢(전전긍긍)

 

시경에서 전전긍긍마치 깊은 연못 앞에 있듯이, 마치 얇은 얼음을 밟듯이겁을 내고 조심한다는 뜻으로 표현되어 있다. 지금은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모습을 전전긍긍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전전은 무서워 벌벌 떠는 것을, ‘긍긍은 조심스러워 몸을 움츠리는 모습을 형용하고 있다.

 

비슷한 뜻의 성어로 긍긍업업’(兢兢業業)이란 재미난 단어가 있다. 서경(書經)에 보이는데 아주 조심하는 모습을 형용하는 표현이다. 여기서 긍긍익익’(兢兢翼翼)이나 글자를 살짝 바꾸어 긍긍업업’(矜矜業業), ‘업업긍긍’(業業矜矜)과 같은 파생어가 나왔다. 모두 같은 글자를 두 개씩 대칭 배열하여 만들어낸 의태어(擬態語)인데, 발음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전전긍긍의 중국어 발음은 잔잔징징이며, ‘긍긍업업징징예예이다). 모두 아주 신중하게 조심스러워하는 모습들을 표현한 단어들이란 점을 알고 적절하게 사용해야 할 것이다.

 

시경소아(小雅)

 

 

 

 

 

중국사의 오늘 :

1405711(명 성조 영락 36월 기묘)

명나라 황제 성조(成祖) 영락제(永樂帝)가 정화(鄭和)로 하여금 배와 수군을 거느리고 서양’(西洋)의 여러 나라를 다녀오게 했다. 이것이 이른바 7차에 걸친 정화의 하서양’(下西洋)이라는 대장정의 출발이었다.

 

* 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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